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4/01

3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4/01/21
    눈 내린 세상 참 고약하다.
    간장 오타맨...
  2. 2014/01/20
    귀화식물 또다른 이주노동자 다닥냉이
    간장 오타맨...
  3. 2014/01/19
    동지와 함께 걸은 여유로운 소백산행...
    간장 오타맨...
  4. 2014/01/19
    희망이라는 과잉 이데올로기
    간장 오타맨...
  5. 2014/01/18
    [시/안윤길] 벚꽃처럼
    간장 오타맨...

눈 내린 세상 참 고약하다.

  • 등록일
    2014/01/21 11:06
  • 수정일
    2014/01/21 11:29

눈 내린 세상 참으로 고약하다.

아침 여는 창 노동자는 여전히 이 추위에 단사의 문제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투쟁들 3M, 쌍용자동차, 화성방문간호사, 재능교육, 코오롱, 콜트콜텍, 밀양, 용산, 강정, 삼척 LNG 플랜트, 아데카코리아, 유성 등등 단사 투쟁과 민중 투쟁이 열거해만 해도 많다.

그 투쟁사진을 훌터본다.
이 추위에 그곳은 여전히 투쟁을 타전하고 자본과 정권의 한 복판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 투쟁들이 여전히 이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투쟁을 달구고 있다.
이 투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총파업투쟁을 깃발을 들어야 한다. 그 투쟁에 우리 얼마나 무심하였던가?

이 새벽 해방의 새벽빛 노랫 말처럼 언살 녹일 따스한 동지애를 느끼고 싶다. 그 투쟁들에 한걸음에 달려가 해방으로 치닫게 하는 우리들의 힘을 보고 싶다.
그렇게 매일 매일 날 수를 잃어버린 이들의 투쟁은 타전된다. 자본과 정권의 폭거에 항의하며, 노동을 달구고 있다.

노동이 치닫지 못한 역사... 멈춰선 노동을 일으켜 세울때이다.
다시금 맞잡은 손 파도가 되어 나서야 한다. 그 투쟁만으로도 우리의 투쟁은 가능하다.

자본과 정권은 언론의 비호를 받아 권력재편기 6.4 지방선거로 온통 도색하고 한 술 더떠 세기의 스포츠인 소치 동계올림픽, 브라질 월드컵, 인천 아시안게임으로 온통 매스컴을 치장한다. 그렇게 그렇게 우리내 소식은 뭍혀지고 있다.

철도노조 파업이 그렇게 지지와 연대가 모아지고 하나되어 가는 우리의 투쟁이 만들어지는 그때..... 현장복귀 투쟁으로 회귀한 투쟁이 애석하다.

우리내 투쟁이 다시금 작금의 투쟁들과 하나된 총노동대 총자본의 투쟁으로 2,25 총파업을 전개하여야 한다. 그 연단엔 정치권력이 아닌 우리내 노동자 투쟁하는 노동자가 현장 아래로부터 조합원의 목소리가 발언되어야 하고, 그 파업현장에서 외쳐지고, 투쟁결의 다져야 한다.

매일 보는 페북은 투쟁사업장들의 외침들과 소리로 이 아침과 새벽 일깨우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귀화식물 또다른 이주노동자 다닥냉이

  • 등록일
    2014/01/20 04:28
  • 수정일
    2014/01/20 04:28

귀화식물,
또 다른 이주노동자

* 다닥냉이 *

땅거미 지는 광화문 거리 적은 인원이 모여 집회를 열고 있다. 이주노동자운동 탄압에 항의하는 촛불문화제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 서둘러 종종 걸음 쳐 그 옆을 지나쳐 간다,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가 있는 지 일 년이 지났다.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단속에 쫓기고, 피해서 달아나다 떨어져 죽었다, 지난 연말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이 표적 단속되어 강제 추방당했다. 얼마 전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가 있었다, 변한 것은 없다, 비극은 계속 되고 있다.

도시의 빌딩 숲 아래 좁은 잔디밭이나 화단에서 또 다른 이주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관상수 아래 잔디 틈에서 살아가는 귀화식물들 말이다. 강아지풀이나 냉이, 별꽃, 새포아풀처럼 오래 전에 들어와 자리 잡은 것도 있고, 토끼풀이나 망초처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도 있다. 한겨울 도시의 마른 잔디밭을 눈여겨보면 여전히 푸르게 겨우살이를 하고 있는 토끼풀과 함께 뿌리에서 난 잎을 방석처럼 땅에 붙이고 봄을 기다리는 다닥냉이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닥냉이는 논이나 밭보다는 이런 도시의 녹지에 잘 적응한 것 같다. 귀화식물은 이주노동자마냥 토종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비난을 받으며 수난을 당해왔다. 국립공원 같은 생태 보존 지역에 사람들이 발길이 늘어나면서 빠른 속도로 번식하고 있는 다닥냉이는 돼지풀이나 서양등골나물보다는 덜 하지만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닥냉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북아메리카라는 기록이 있지만 정확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닥냉이가 들어온 시기를 개항이전으로 보는데,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귀화식물은 대개 개항 이후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닥냉이가 자라는 곳에 다닥냉이보다 늦게 이곳에 도착한 콩다닥냉이가 자란다. 콩다닥냉이는 개항 이후 북아메리카에서 들어왔다, 다닥냉이와 콩다닥냉이는 자라는 곳도 같고, 겨울을 나는 모습도 비슷해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이 둘을 구별하려면 줄기가 나고 꽃이 필 때가지 기다려야 한다. 콩다닥냉이는 다닥냉이보다 줄기에서 나느 잎이 더 크고 꽃도 더 크다. 줄기에 나는 잎에는 가장자리 톱니가 있어서 쉽게 구별할 수 없다.

겨울을 나는 다닥냉이는 나물로 먹는데 매운 맛이 난다. 황새냉이보다 그 맛이 더 맵다. 꼭 겨자처럼 코를 톡 쏘는 매운 맛이다. 그래서 다닥냉이는 영어로 가난한 자의 추후(poor man’s pepper)g고 불린다. 다닥냉이는 꽃과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서 다닥냉이라 불린다. 꽃은 냉이처럼 휜색 꽃잎이 네 장 나는데, 열매는 심장 모양의 냉이와 달리 동글동글한 모양이다. 꽃은 너무 작아 볼품없지만, 다닥다닥 달리는 동글동글한 열매는 귀엽고 앙증맞다. 가을에 불그스름하게 물이 들면 꽃처럼 아름답다.

잡초마저 자라지 않은 땅은 사막이다. 귀화식물인 잡초는 거칠고 매마른 도시의 땅이 사막으로 바뀌는 것을 막아낸다. 겨울에도 싱싱하게 자라는 다닥냉이의 생명력이 도시의 땅을 살아 숨 쉬는 땅으로 지켜내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없이 이제 이 사회는 굴러갈 수 없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인정하고 노동자로서의 권리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중에서...(메이데이, 20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동지와 함께 걸은 여유로운 소백산행...

  • 등록일
    2014/01/19 18:18
  • 수정일
    2019/10/03 09:30
** 동지와 함께 떠난 산행.... 천동쉼터 따스한 오뎅국물과 오뎅, 막걸리 맛 좋았다.
쉬엄쉬엄 산책로 걷는 길... 겨울산 속살 드러낸 산에 사푼히 내려앉은 눈들과 눈꽃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바람이 시셈하여 추웠지만... 그래도 눈꽃들이 참 좋았다.
소백산 감시초소에서 벙어리장갑을 잃어버려 정확히 누가 훔쳐가 손이 무지 시려웠다.
아이폰은 추위로 방전이 되어 작동이 불능.... 눈꽃사진 많이 찍지 못하지만 눈(目)에 각인하고 왔다.
 
 
일상에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사색의 시간 사념으로 가득한 일상에서 흐린 술집의 담배연기 가득한 공간... 도시라는 각박한 인색의 공간을 벗어나는 것도 좋다.

몸이 쉬라도 병을 주어 이렇게 한국의 산하 자연의 품에 기대어 본다.

오늘 지역별 파업의 기치가 드높이 깃발이 투쟁을 드높이는 날...

일상이된 몸살림을 위해 소백산으로 갔다. 그곳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게 산으로 들로 바다로 가는 이들을 보면서 여전히 우리내 삶... 타전되는 소식보다 개별화되어 개인별로 파편화 된 삶의 단면을 느껴보았다.
여가로 지친 노동을 풀기 위해 찾아나서는 이들이 조금 우리내 투쟁하는 삶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길을 걸으며 가져보았다.

천동계곡으로 비로사로 가는 길.... 배낭에 예전 생각으로 취사도구와 먹거리를 싸가지고 갔지만 먹지 못하고 고스란히 가져 내려왔다. 조금 아쉬웠다.

천동계곡 늘 걷지만 참 편한 길이다. 둘레길 처럼 가파르지도 숨가프지도 않는 길 오름이 있으면 평탄이 나오고 그 긴 길이 주변의 풍경도 내어주고 산의 추위로 언 계곡의 살과 피부 모두 내어보인다. 그렇게 눈이 조금 쌓인 길 아이젠을 차고 걷는다.

산이 주는 품세와 넉넉함 그리고 바람이 주는 추위에 몸 녹이며 쉬엄쉬엄 걸었다. 고개중턱에 쉬며 먹었던 초코바와 귤... 야콘 참 맛났다. 산에서 먹는 모든 것은 맛나다. 그리고 그곳에서 쉬며 보는 경치도 좋다.
비로봉에 올라 언몸 녹이기 위해 하산길 천동휴게소에서 먹은 오뎅국물과 오뎅 막걸리 반사발 참 맛났다.

오늘 참 평탄한 소백산 산행을 하였다.
그리고 그 길이 내어주는 넉넉함 추위가 조금 매서웠지만 그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들이 주는 장관에 탄성하고, 산이 주는 넉넉함 그리고 등산이 주는 여유로움을 느끼는 하루였다. 그러나 언몸 언손으로 사진은 많이 찍지 못하였다. 추위로 아이폰이 방전되어 산사진 품세 많이 담아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눈(目)으로 소백산 그 산의 품세와 눈꽃의 향연 각인하고 왔다.

아직도 그 소백산 길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눈꽃 그리고 비로봉의 그 추운 바람과 설경이 눈에 아른거린다. 그런 여유가 없고, 늘 앞만보고 투쟁으로 힘겨워하는 우리 일상 그 산행이라는 자신의 여유와 사치도 간혹 부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경황이 없어 코오롱 불매 몸벽보는 가져오지 못하여 코오롱 불매 산행은 하지 못하였다. 다음을 기약하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희망이라는 과잉 이데올로기

  • 등록일
    2014/01/19 11:18
  • 수정일
    2014/01/19 11:19

희망이라는 과잉 이데올로기

제작 년 12월 대선 이후 우리는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의 죽음에서 그리고 이은 현대중공업 이운남 열사의 죽음에서 희망의 과잉으로 인한 그리고 희망과 상반되게 투쟁이 전진과 승리를 향한 치닫음이 없음에 스스로 이승의 삶을 던지는 희망의 뒷면인 절망을 보았다.

여전히 구체적 상 없이 투쟁은 희망으로 치닫고 희망을 노래한다. 그 희망 속에서 그러나 여전히 노동자 인민은 절망의 구렁텅이를 박차고 일어서기 위한 처절한 자본과의 투쟁의 연속 아니 매일매일 투쟁의 날들이다.
희망투쟁 승리의 외침은 널뛰기하는 시기... 이곳저곳이 자본과의 전쟁터이고, 이 전쟁터가 이미 10년이 넘긴 투쟁사업장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투쟁에 지쳐 스스로 투쟁을 접어야 했을 투쟁사업장이 또한 한둘이 아니다.

대중성에 기인한 투쟁의 자생성의 한계에 스스로 놀란다.

작금도 그렇다. 민주주의 외치며, 박근혜 정부 퇴진까지 기치가 올랐지만 정작 우리내 노동자 인민의 삶이 대통령이 바뀌면 모든 세상이 변화할 것인가? 선거의 문제인가 민주주의의 문제인가?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들의 향연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투쟁은 타전된다.
민주주의 수호와 국민 총파업이라는 구호까지 상정되었다. 그러나 정작 그 속에서 투쟁하는 주체들 특히 10년 풍찬노숙 투쟁의 당사자, 그리고 이 땅의 소외되고 자본과 국가폭력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인민들의 삶은 녹아나 있지 않다.

총파업 투쟁이라는 설정으로 투쟁만 하면 된다는 그 발상이 소스라치게 한다.
투쟁의 목적과 그 투쟁이 갖는 사회적 함의가 실종된 투쟁은 우리 지난 과정 촛불과 여러 투쟁에서 이미 봐왔다. 막연한 대중성에 기인하지 않는 투쟁이어야 한다는 교훈까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투쟁을 이끌어 나갈 단위가 부재하고 고민이 부재하다. 막연한 대중적 자생성에 기인한 투쟁만을 외치고, 모든 문제를 하나로 치환시킨다. 박근혜로 민주주의로 자본만의 문제로 그 경향성들이 우리의 패배를 부채질 하고 작금의 철도노조 파업이 갖는 사회적 함의를 정치권에 기대는 현상을 갖게 하였다. 판단된다.

파업의 기치를 든 자들 사회적 파업은 아니지만 그 현장투쟁이 자본과의 전쟁에서 어찌해야하는 것은 현장노동자는 잘 알고 있다. 승리 아니면 패배는 곧 생존권 벼랑으로 치닫는 현실이기에... 인민들 또한 알고 있다. 그 패배가 자신의 삶의 터전 그리고 삶이 이룩한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싹 쓰러 버린다는 것을.... 그러나 정작 이 투쟁의 지도단위만은 모르는 것일까?

아직도 희망이 타전된다. 그러나 그 희망에 난 이전 희망이 그랬듯이 널뛰기하는 희망에 마음한켠 아리고 불편하다. 한곳의 희망도 불 제대로 지피지 못하면서 투쟁을 위해 대중운집을 위해 그 희망을 모아내고 모아내는 모습이 참으로 불편하다.
투쟁만이 희망이라고 투쟁을 위해 나서는 의로운자들 투사들이 많지만 그 투쟁에 우리 투쟁하는 주체들과 함께 자신의 생 걸고 투쟁하는 자 몇이나 될 것인가? 현장을 일으켜 조직하고 학습하고 실천하고 그 투쟁지지 엄호하기 위한 우리의 노래 얼마나 부르짖을 수 있을 것인가?

2003년 노무현 민중탄핵 때 운동을 떠난 사람들이 마치 과거를 벗삼아 투사가 되어 움직이는 선배들의 모습이 불편하였다. 운동을 한 시간보다 운동을 이야기로 풀어 술안주로 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불편을 넘어 불쾌하기도 하였다. 우리내 투쟁이 술한주 뒷풀이 이야기 담화가 아니거늘 우리 내는 내 삶의 목적성과 부합하지 않는 삶에 주변인이면서 주체가 되지 못하면서 그 삶을 조망하고 그 투쟁에서 자신의 위치를 과거의 향수를 달래는 이도 적지 않음이 불편하였다.

이 세상을 이끌고 나가는 이들은 그 희망의 대상도 있지만 정작 우리가 외면했던 그 투쟁하는 자들이 이 땅의 노동을 희망을 밝히고 밝혀 나갔다. 그 치 떨리는 역대 정권에 의해 길거리로 내쫓기고 자본으로부터 쟁취한 것을 지키지 못한 우리 내 노동의 무심이 지키지 못한 비겁이 그 자리에 있다.

현실 자본의 분석 또한 투쟁과 이 시기 노동이 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연구이지... 자신의 노동의 터를 지키기 위한 보신을 위한 무기가 아니거늘.... 우린 투쟁의 무기 내려놓고 관망과 연구 그리고 이에 따른 고심만 한다.

나의 단사의 문제로 닥치기 이전에는 말이다.

작금의 투쟁이 어찌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 내 깊은 숙고 그리고 승리를 위한 길 어찌해야 하는지 우리 내 깊은 고민이 들어야 한다.

작금 한국사회가 어디로 치닫고 있는지 정권과 자본에 대한 우리의 노동이 인민이 어찌해야하는지 선명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반짝인 225국민총파업 총파업이 우리내 기나긴 노동자 투쟁과 현장과 만나지 않으면 어찌 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투쟁의 선행에 대한 고민 조직, 실천, 학습이라는 그 조직노동자의 움직임이 어찌하여야 하는지 잘 알면서 그것을 묵인한 채 여전히 대중적에 대한 자생성의 폭발을 바라는 것 자체....

현시대의 문제로 과거 민주주의 정권의 문제로만 치환하는 우리내 그릇된 낮은 인식이 참으로 부끄럽다.

어찌해하는지 우리 작금의 투쟁사업장 모습과 그 투쟁과 함께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의 널뛰기가 아니라 그 투쟁 승리하겠다는 일념으로 그 투쟁에 대하 진정성으로 역사를 밀고 나갔으면 한다.

여전히 이 땅의 노동자 인민은 이 사시사철 길거리에서 풍찬노숙으로 투쟁하고 있다. 투쟁을 타전하고 있다. 이들과 만나고 함께하고 함께 전진하는 투쟁으로 225총파업을 맞이하고 더욱더 큰 투쟁의 함성 키워나갔으면 한다.

당위로서의 투쟁.... 그 투쟁이 갖는 사회적 함의.... 정권이라는 문제로 자본이라는 문제로 쉽게 치환하지 않는 무오류를 넘어선 투쟁을 이끌어 내기를 고대하며.... 횡수를 마칠까 한다.

요즘 타전되는 총파업투쟁의 소식 그리고 막연한 박근혜반대, 민주주의, 희망이라는 것들이 우리내 투쟁하는 노동자 인민의 고통의 삶과 대조되어 불편했다.

p.s 일상 함께하는 우리(노동자, 인민)를 보고 싶다. 투쟁하는 우리를 보고 싶다. 투쟁하는 자 승리에 치닫게 하는 우리의 투쟁이 보고 싶다. 타전되고 투쟁의 날 수 년도수 잃어버리고 하는 투쟁들에 함께하는 우리가 보고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시/안윤길] 벚꽃처럼

  • 등록일
    2014/01/18 06:22
  • 수정일
    2014/01/18 06:23

벚꽃처럼

안윤길

노동물결 넘실대는
해방의 바다로 나아가는
우리들의 싸움에
절망과 한계 어디 있으랴
한계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한계일 뿐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과정의 연속일 뿐이리

누가 말했던가
전사는 싸움터에서 피 흘리며 쓰러질 때
가장 아름답다고

무르익는 봄날
혼신의 힘을 다해 피었다가
일제히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 안윤길 시집 "골리앗은 울고 있다."(도서출판 노동자의 힘, 2002)

p.s 산행을 위해 가방 챙긴다. 산을 오르는 것도 어찌보면 한계라 생각하면 힘겹다. 그러나 그 산이 주는 것들에 내몸 의지하고 그 주변 것들과 이웃하며 걷는 과정이 한계가 아니라 이미 동화되고 그 산이 주는 넉넉한 품에 안기는 것이듯... 투쟁도 그런 산이 주는 품처럼 민주노조 깃발 치켜든 모든 곳이 어울어지고 아래로부터의 조합원 힘 응집하는 총파업투쟁의 닻 올리기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