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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 등록일
    2009/08/28 01:55
  • 수정일
    2009/08/28 01:55

일정이 부대낀다. 관계가 꼬인다. 그로 인해 짜증이 밀려오고, 뜬금없는 분노가 명치를 치고 올라 온다. 씁쓸하다.  내 성향은 자기부정 따위를 견디지 못한다. 나 자신을 부정하는 건 정말 죽어도 싫은 것이다. 이 부정의 매뉴얼에는 이딴 것들이 있다. 후회, 회한, 자책, 원한, 굴욕감, 등등.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는 것은 내가 만들어 놓은 일에 내가 걸려 허우적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이건 누가 이해해 주지도 않는다. 아무도 그걸, 그 감정을, 그 느낌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온전히 내가, 나만이  최초의 마음가짐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최초의 마음이 '기쁨'이었는데 지금 이 지경이라면 그 '자기부정'의 감정은 더 심각하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고(번역에다 강의에다 연구실 일, 그리고 학교 일, 학원 일까지), 몸은 둘도 아니고, 머리도 둘이 아니다. 젠장, 이런 당연한 '불가능성'을 되뇌이면서 가슴을 치는 꼴이라니.

 

지금 내 상태는 내가 악을 쓰면서 외치고 싶은(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딱 한마디로 요약된다.

 

"냅둬!!!!"  

 

ps.술과 담배를 끊은 이후로 스트레스가 쌓이면 가슴이 갑갑하고 머리가 심하게 아프다. 지금 또 그렇다. 그러나, 이 상태인데도 난 내일 연구실에 가야 하고, 강의 준비를 해야하고, 돈도 벌어야 한다. 정말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대상 없는 쌍욕을 그냥 무더기무더기로 하고 싶다. 속좀 후련해 지게 말이다. 대뇌 어딘가에서 분열증으로 인한 망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걸 해결해야 한다. 영화를 보러 가야 하나? 놀이 공원?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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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과 테제(2009/8/18-24)

  • 등록일
    2009/08/25 10:54
  • 수정일
    2009/08/25 10:54

- 조정환에 의하면 문제는 '조직화'가 부재하니까, 조직이 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미 네트워크 조직이 있으니까 새로운 조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미네르바의촛불] p. 274). 앞의 '조직화'와 뒤의 조직화는 다른 의미다. 상당히 진일보된 관점임에 틀림없다. 이 관점을 일단 수용하고 나면 이제 남은 일은 한편으로는 새로운 네트워크 조직화를 급진적으로 일구어낼 인식론적, 존재론적 정당성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직접행동을 촉발하는 것이며, 한편에서는 기존의 네트워크에 이러한 직접행동을 강령화하면서 실물 수준에서 각 노드들(nods)에 활력을 흘려 보내는 것이 병행되어야 하겠다. 어디서 이에 대한 최신의 메뉴얼을 발견할 수 있을까? 싸빠띠스따? 시애틀? 프랑스 반CPE투쟁? 우리의 촛불들? 이 모두? 아니면 전혀 새로운 것?

 

- '촛불조직화'라는 대의는 촛불 다중 내부와 그 내부로 끊임없이 진입을 시도하는 지식인-지도부들이라는 양방향 화살표로 대변될 수 있다. 이 양방향 화살표는 필연적으로 벡터 합력 제로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또한 비극적인 것이고 말이다. 사실 이 합력을 제로로 만드는 것은 다중 쪽이 아니다. 이 지식인-지도부들의 둔감한 정세판단력과 조직화(Organisation: 이는 작은 조직들을 의미하는 organs와는 다른 의미로 난 쓸 것이다) 가 일을 그 지경으로 만들어 놓는 주범이다.

다중은 이들을 지도부로 인정할 것이다. 여기에 단서가 달리는데, 오직 '우리 옆에' 있으라는 것이다. 즉 '함께 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도부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리딩'하고자 하며, 전체를 유기체로 만들려고 하고, 절합(articulation)이 아니라 통합(unification)하려고 한다. 그것이 사단이다. 옆에 있으면서 부르면 지도력(오히려 전문성)을 발휘하라는데 자꾸 선을 넘는다. 조언을 하지 않고 명령한다. 입으로는 동지를 말하면서 하는 말이나 행동 뽄새는 상전(상집?)이다. 이들은 촛불조직화의 그 조직을 organs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을 대문자 Organization으로 밖에 파악하지 못한다. 그들의 무능력이고, 그들의 운명이었다. 하지만 이 '운명' 자체가 운동의 질곡이 되고 있는 상황,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 운동의 현실이다.

 

- MB정부의 분열증시작-김대중 서거: 내 생각에 여기서 부터다. 중요한 것은 이 분열의 탈주선이 정국주도권의 재탈취 과정과 함께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 정치의 향배는 촛불로부터 시작된 다중주도권이 저들에게로 넘어 가는 반경이 큰 전환국면이라 하겠다.

 

- 고통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죽음충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 다중을 계급계념만으로 즉 공시적으로만 분류하는 것은 반드시 편벽한 결과를 낼 것이다. 다중의 변수에는 시간성이 필연적으로 부가되어야 한다. 척도 없는 영원성을 기반으로 하고서야 다중의 표현이 가늠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다중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함께 고려될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활력을 잃지 않을 것이다. 철학적으로 이 정당화 과정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의 시간, 그리고 스피노자의 기호에서 직관, 지복으로의 시간에 의해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할 수 있음’(can)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이 역량(potentia)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칸트적인 방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즉 can이 must로부터 나오진 않는다는 게다. 오히려 전자가 후자를 포괄하며 후자는 전자의 부정적 효과 안에서 긍정될 뿐이다.

 

-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방벽에 막혀 왜곡되었다. 그런데 이명박의 끝물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인 공황에 의해 폭력화되었다.

 

- 이제 더 중요한 것은 플라톤에 반대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반대의 꼬리를 붙잡고 플라톤의 위대함을 재전유하는 것. 이로써 플라톤 자신뿐만 아니라 중세 전체가 이제 머리로 서기를 그만두고 두 발로 걷게 될 것이다.

 

- 한국 트로츠키주의 진영의 기관지라할 수 있는 [레프트21]에 흥미로운 주장이 실렸다. 옮겨본다. “따라서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에 가해지는 보수적 압력에 맞서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독립적 움직임이 중요하다. 이는 현장노동자들의 지지와 행동을 조직하는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 현장노동자와 투사들의 네트워크 ....” 그런데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은 이런 네트워크 건설에 도움이 될 것이다. ... 사회주의자들은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에 모두 개입해야 하고 두 투쟁을 연결하여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 함께 연대해서 싸울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 있는 정치와 조직을 발전시켜야 한다.” 네트워크의 필요성에서 시작하여 정치조직으로, 연대에서 개입과 운동을 발전시켜야 하는 선도적 역할로. 흔들리는 젊은 사회주의자들. 이들이 비로소 언급한 바, 후자의 요소들의 가치를 과평가하는 것을 그치고, 전자의 요소들을 더 적극적으로 긍정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광기는 이성의 넓적다리에서 태어난다(제우스와 디오니소스). 광기는 그 추종자들에게 살해당하지만 끊임 없이 재생한다(디오니소스와 여신도들). 하지만 광기가 태어난 자리에 상흔을 안고 있는 이성은 끝내 감염되고 미치며 스스로를 혐오하면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신화며, 동시에 현대의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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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의 도래-서거국면 이후 MB권력기계 분열증식 톺아보기

  • 등록일
    2009/08/24 15:29
  • 수정일
    2009/08/24 15:29

*이 글은 [대자보]의 '벼리의 느긋하게 세상보기'  란에 실릴 예정인  redbrigade의 원고다.


권력(potestas)은 자율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의 본질은 오히려 ‘기생성’이다. 역사적으로 자율성은 오직 다중(multitude)의 것이었다. 이 자율성으로부터만 권력의 대당(counterpart)인 권능(pouvoir)이 나온다. 권능의 활력은 적극적인 평화주의와 비폭력주의에서부터 폭력투쟁과 파괴의 열정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풍부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권능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운명’ 즉 일의성(univocity)의 평면에 도달할 뿐인데, 그것의 이름은 ‘삶’(Une Vie)(1)이다.
 
하지만 권력은 이 활력에 기생하면서, 운명(Moira)이 삶의 몫(moirai)으로 할당되는 것에 반대하고, 오직 죽은 결정체인 자신의 유기적 부분에 종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권력은 살아 있는 기관들(organs)이 아니라 죽은 조직화(organization)를 더 선호하며, 다종다양한 정치들(politic's')이 아니라 일괴암적인 정치(Politic)를 구축하고 그를 통해 숙주인 다중을 관리, 통제, 훈육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실패한 시도다. 왜냐하면 활력의 본래적 성격이란 죽음에 있지 않기 때문이며 숙주는 관리할 뿐, 관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활력이 과연 ‘살아 있는’(活) ‘권능’(力)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권력이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실행한다는 데 있다. 화석화된 ‘사회계약’(2)을 한 쪽 저울에 올리고, 다중의 혁명적 시도들을 거기에 따라 심판하면서 그것이 마치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인 양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들은 끝내 과부하를 부르고, 폭력(3)의 상황과 배역들을 불러 모으는데 이것이 ‘공안’이며, 경찰과 검찰, 그리고 백색테러다. 주목해 볼 것은 이들이 펼치는 한 무더기의 드라마가 히스테리와 분열증을 산출한다는 것인데, 리비도 경제 차원이 아니라 이제 권력-기계 안에서 이 두 드라마는 각각의 국면을 특징짓는 죄임쇠와 밈쇠의 기능을 떠맡는다. 
 

 

이를테면 MB권력기계를 살펴보자. 촛불 초기에 이 권력은 자기자신 내부에 어떤 억압된 욕망이 있는지 분명히 했는데, 그것은 수구파시즘에 대한 동일시욕망이다. 특히 MB는 박정희 군부에 대한 공공연한 애착을 보이곤 했다. 군부파시즘의 특징상 이 욕망은 다중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통제하고 다중의 일상을 엿보면서(4) 그 생활상 ‘배후’에서 스스로의 거울상(5)을 대면하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이 동일시와 엿보기의 욕망은 번번히 실패하고 마는데, 왜냐하면 군부파쇼 모델은 이미 잃어버린 대상(lost object)며 다중의 배후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박정희는 죽은 아버지고, 촛불의 배후에는 ‘공포’만이 배회한다. 이 공포에 대처하는 MB권력의 반응, 즉 증상이 바로 candlephobia인 것이다.
 
이 공포는 하나의 질문 주위를 배회하는 데, 그것이 그 유명한 “초는 누가 사준 거야?”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애초에 잘못 제기되었기 때문에 그 해(解)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스개 소리가 아니라 최근에 MB가 유기농 흙을 갈쿠리로 헤집으며 “여기 미생물이 어디 있어? 안 보이네”라고 했던 것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것은 이 공포에서 비롯된 헛헛한 실언들이 결코 ‘농담’도 ‘풍자’도, 더욱이 ‘아이러니’도 아니라는 것이다. MB권력에게 이 ‘잘못 제기된 질문’은 그대로 ‘현실’을 구성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 다중-우리는 그것이 ‘가상’일 뿐임을 안다는 것이다. 이러니 ‘소통’은 꿈도 못 꾸는 것이며, MB는 이에 관해 저항하는 다중이 내내 이해 불가능한 것이다.
 
다중의 ‘아침이슬’ 소리가 쟁쟁하게 퍼지던 그 날 청와대 뒷산에서 MB는 그 실재의 노래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계속 “초는 누가 사준 것일까?”라는 가상의 질문에 대뇌가 짓눌린 채 있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 기무사도 동원되었다. 따라서 지금도 그 질문은 해결 불가능한 채로 MB권력기계의 폐쇄회로를 떠돌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래서 히스테리는 상실된 대상이나 해가 없는 질문을 욕망하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실패한다. 이는 권력이 다중을 떠나 감히 ‘자율성’을 표명할 때 극에 달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상태에서 이 상황은 매우 주기적으로 도래한다. 각각의 부르주아 권력기계들은 선거 전과 후에 한 번은 완전한 노예로서의 타율성에 기대어 표를 구걸하고, 또 한 번은 완전히 주인이 되어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MB권력은 이 주기적인 주인-노예 변증법을 극단에 이르기까지 밀어 붙인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가상의 권위’ 즉 재현된 권위(represented authority)에서 나온다. 이 권위는 스스로의 대의성을 은폐하고 그것을 자율성으로 왜곡하는데, 이 과정을 더 멀리까지 추동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공권력은 억압(repression)을, 거짓말은 왜곡(distortion)을 담당한다. 이것의 표면효과는 분명하다. 포화된 왜곡과 억압 때문에 실재의 표면에 경련이 발생하고 주기적인 발작에 휩싸인다. ‘대운하’는 4대강으로, 광우병 소고기는 원산지 추적제로, 참여정부 권력에 대한 복수는 법치주의로 ... 말이다. 이 계열은 앞으로도 계속 가면을 바꿔 써 가며 반복될 것이다. 왜냐하면 히스테리 상태에 놓인 MB권력의 신체는 이와 같은 거짓승화(pseudo-sublimation)를 통해 전 사회체에 경련을 운반하지 않고서는 스스로의 증상 때문에 내파(implosion)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운반된 증상의 충격을 견디는 것은 오로지 숙주-다중일 뿐이다(6). 그러나 충격의 자기정화 능력, 즉 다중의 감수성(perceptibility)도 임계점이 존재한다. 반격이 준비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은 이것을 간파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다중의 반격을 간파하는 속도가 반격이 시작되는 그 속도보다 열에 아홉은 더 빠르다는 것이다. 성공한 반격은 사회체 전체의 기능을 리셋하고 기생-숙주 관계를 올바르게 복원하면서, 빠르게 공동체화하지만, 그렇지 못한 반격은 곧장 권력의 반혁명을 부르고, 더 거센 억압과 탄압에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다중은 반격이 임박했고, 그 임박한 사실이 이번 한 번만으로 끝나지 않으며, 줄줄이 반격의 계열이 늘어서 있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한다. ‘인민은 왕이 행차할 때 엎드려 방귀를 뀌지’만 행차가 끝난 뒤에도 그 쪽으로 엉덩이를 까 보이는 법이다.

 

어쨌든 반혁명의 시기에, 또는 지금과 같은 반촛불의 시기에 권력은 다중의 감수성이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특히 반촛불 상황은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노무현 서거는 권력의 직접적 표적이었던 전직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MB권력의 히스테리가 어디로 운반되는지 알게 해 주었는데, 그것은 노무현으로 상징되었던 다중들 전체다. 이 사건은 집단적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가 되었으며, 다중의 신체에 심각한 자상을 입혔고, 하나의 잠재적 공분상태를 MB 집권기 내내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전에 발생한 용산 참사의 파급력은 이 사건을 통해 보다 광범위해지고, 더 긴 생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상 노무현 노제에는 용산의 희생자들 넋이 뒤따랐던 것이고, 용산 현장에는 노무현의 영정이 어딘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뒤이어 발생한 평택 쌍용차 투쟁은 77일간의 옥쇄파업 일정이 영웅적으로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일련의 잠재적 공분에 미미한 힘만을 보탰을 뿐으로 보인다. 그것이 고립되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고립’은 쌍차 투쟁 전 기간에 걸쳐 현장을 배회하는 유령과 같았다. 이 고립은 민주노총 집행부와 금속노조가 자초한 측면이 많지만 이것을 더 멀리까지 밀고 나가 그 효력의 수혜자가 된 것은 MB권력이다. 결국 구조조정 후 매각의 수순을 밟을 것이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그렇게 ‘고립’을 통과하게 할 것이고, 항복을 받아낼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MB권력은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다중-노동계급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용차 투쟁을 대면하면서 MB권력은 반격의 시간보다 한 발 앞서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이전의 소고기 사태부터 노무현 서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학습된 것이기도 하다. 학습의 내용은 ‘전염’하기 전에 ‘고립’시키라는 것이다. 쌍용차 싸움에서 권력은 종횡으로 두 개의 선분(노자와 노노)을 현장에 배치함으로써 쌍용차 노동자들 투쟁의 고립을 가속화했으며, 관료화된 노총이 미필적인 방식으로 거들었다. 그러니까 한 발 앞서 고립시키면, 그 뒤는 자동으로 그 고립이 누승화된다는 것. 이 전술은 미디어법 공방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이제 보겠지만 이 공방에서 원외로 나가 투쟁력을 놓이려고 했던 민주당은 완전히 고립될 것이다.
 
문제는 이제 이 고립이 전체 다중에 대한 억압과 폭력만으로는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다. 대의 권력의 중추적 강점이자 약점은 앞서도 말했듯이 주기적으로 주인-노예 변증법의 무대(선거)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그 무대가 마련될 시기가 되면 히스테리는 잠잠해진다. 이때 비로소 권력은 주인의 가면을 수치심 없이 벗어 던질 수 있다. 왜냐하면 강제로 노예의 가면을 썼던 다중이 비로소 주인이 되고, 반격의 상황은 유예되기 때문이다. 다중의 취약점은 이런 것이다. 일종의 조삼모사에 대해 무방비상태로 놓여 있다는 것 말이다. 권력은 이 취약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읍소하고, 아양 떨며, 매수하고, 약속하며, 간간히 사전에 세금감면이나 복지혜택을 베풀어 줌으로써 이 무대에서 무사히 내려와 다시 주인의 연기를 계속하려고 시도한다. 이 시도는 대체로 성공해 왔다.

 

MB권력이 김대중 서거 이후 발빠르게 움직인 것은 이 때문이다. 단순히 노무현과 김대중의 죽음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사항일 뿐이다. 이 겉으로 드러나는 ‘죽음의 차별성’조차 오히려 MB권력에게 귀중한 자산이다. 노무현의 죽음이 김대중의 죽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건 노무현 세력을 고립시키고, 김대중 세력을 차후에 끌어안을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인 분할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그래서 매우 성공적이다(7). 어쨌든 촛불 정국 이후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다중의 감수성을 조삼모사식으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거리가 생겼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과 용산의 트라우마는 차라리 훌륭한 수단이 된다. 그 트라우마가 없었다면 이 정국에서 이 정도의 시혜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일리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시간차’고 ‘속도’가 문제다. 그 둘을 장악하는 자가 전략과 전술에서 앞선다.

 

따라서 MB권력은 김대중 서거 이후 선거를 통한 반격이 시작되기 전에 이 시간차와 속도를 장악했다. 분자적으로 다중을 앞선 것이다. 다중보다 더 빨리 자신의 전투대형을 풀어헤쳐 버렸으며(서울광장을 내 주었고), 민주당이나 민노당, 진보신당보다 먼저 무주공산의 고지(선거국면과 김대중 서거)를 점령해 버렸다. 셈을 해 보면 이 짧은 시기(노무현 서거에서 김대중 서거, 그 중간에 미디어법 공방) 동안 다중의 감수력이 임계점을 넘어섰고, 이를 먼저 간파한 MB권력이 그 임계점의 천정을 치면서 급속하게 ‘화해’(8) 모드로 돌아선 것인데, 이로써 열 중에 여덟을 MB가 가져갔다는 결과가 나온다. 해결되지 않은 분노로 지친 다중에게 던져진 조삼모사의 사탕은 바로 ‘화해’며, ‘세금감면-복지혜택’이다. 전자가 이념이라면 후자는 실물이다. 전자가 집단지성의 취약지점을 공략한다면, 후자는 자본주의 사회체의 취약지점을 공략하는 것이다.

 

히스테리는 어디 갔는가? 이 지점에서 MB권력기계의 히스테리는 사회체 전반의 표면에 증상을 운반하기를 그치고, 그 표면에 분열증적인 욕망을 분배한다. 휴식에의 욕구, 똥(화폐)에 대한 집착, 투쟁에 대한 혐오증, 그와 함께 정치혐오, 나아가 소수자(배제된 자들, the excluded: Slavoy Zizek)(9)혐오에 이르기까지, 반정치의 입자들이 사회체의 표면에 서식하면서 분자운동을 규율하고, 법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권력기계는 죄임쇠를 쓰지 않고, 밈쇠를 활용한다. 점점 더 많은 국면에서 시간과 속도를 장악한다면 밈쇠는 죄임쇠보다 훨씬 더 유용하고, 시의적절하며, 경제적이다. 왜냐하면 죄임쇠는 다중의 반발력에 맞서 기생권력의 운동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지만(10), 밈쇠는 이미 임계점을 치고 내려오는 다중의 운동에 편승하면서 간간이 ‘조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분열증은 그래서 다중에게 최면과 같다. 가상의 최면, 마치 MB권력의 공권력과 부르주아 법치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끼는 그 최면상태는 실로 파시즘으로 가는 샛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분열증에서 비롯되는 망상(delusion)은 배제된 자들에게까지 미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권력의 가상은 듬성듬성해서 곳곳에 빈자리가 있으며, 그 빈자리에 창궐하는 것이 바로 이 배제된 자들이고, 프롤레타리아며, 시뮬라크르이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이후 분열증에 도달하는 것은 이렇게 순간적이다. 그리고 다중이 다시 권력이 쥐고 있는 밈쇠의 조종관을 재전유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계기, 즉 이념(the ideal) 층위와 감각적인 것(the sensible)의 층위에서 이 분열증을 앞서 가야 한다. 다시 말해 분열증의 평면에서 권력보다 더 빨리 나아가는 것 말이다. 그래서 법치화와 규율화의 홈을 교란하고 다시 분자운동을 재개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운동의 주체는 누구일까? 이는 반드시 배제된 자들 가운데서 나올 것이다. 권력이 미처 감각하지 못하는 클리나멘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개체화의 발명, 조직들(organs), 정치들(politic's')의 발명이다. 차이(difference)와 미/분화(differen/ciation: Deleuze)(11)에서 앞서가는 것, 곧 “전술과 전략에서 적들을 앞서는 것”(Guattari). - REDBRIGADE

 

[각주]

1) 들뢰즈는 본래 피히테의 것인 이 개념에 니체적인 운명애(amor fati)의 함축을 불어 넣어 일종의 생명철학을 추구했다. ‘일의성’이란 이런 생명과 삶에 대한 절대적 긍정을 의미하는 형이상학적 지평이다.

2) 루소의 것이라기보다 부르주아지의 것, 즉 계약이 아니라 양도에 무게 중심을 두는 것.

3) 다중의 순수폭력, 즉 ‘혁명’과 구분되는 퇴행성, 나르시시즘적 폭력

4) 이 방면에서 도청과 사찰은 매우 일상적인 것이다.

5) 그와 유사한 일괴암적인 ‘조직’을 말한다. 이렇게 권력은 어디에서나 자신의 ‘모습’만을 본다. 나르시시즘인 것이다.

6) 일부 기생충 내부 기관의 손질, 요직의 교체나 경질 등이 있지만 이것은 기생권력에 어떤 본질적 ‘개편’도 가져오지 못한다.

7) 이 두 죽음의 실제적 ‘차별성’이라는 측면과 반MB라는 ‘동질성’이 진보그룹들의 난감함이다. 둘 중 어느 것을 택해도 딜레마에 봉착한다. 전자를 택하면 ‘연대’가 사라지고, 후자를 택하면 ‘설명력’이 떨어진다.

8) 이는 김대중의 업적으로 MB가 칭송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김대중이 MB권력을 ‘독재’라고 규정한 사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묻힌다.

9) Slavoy Zizek, 'How to Begin from the Beginning', New Left Review No. 57 참조.

10) 그래서 숙주의 건강을 위협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기생권력의 한계는 권력을 발휘하면 할수록 자신의 근거인 숙주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그 사실이다. 이것은 자본과 노동의 관계와 유비적이다.

11) 질 들뢰즈 지음, 김상환 옮김, 『차이와 반복』, 5부 5절 참조. “이는 이념 안의 미분비들의 상태나 잠재적 다양체를 가리키는 동시에 질적이고 외연적인 계열들의 상태 -미분비들이 분화되면서 현실화되는 상태-를 가리키기 위함이었다” 이 맥락에서 들뢰즈의 이 개념을 변주하면, 이념적인 차원에서 ‘화해’의 전술을 앞서가고, 외연적인(감각적인) 차원에서 ‘화폐’의 흐름을 앞서가는 공동체(Commune)를 발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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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윤미래, 천상의 HipHopSoul

  • 등록일
    2009/08/23 15:47
  • 수정일
    2009/08/23 15:47

내가 군대에서 일병 달 때니까 1996년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네. 저녁에 근무를 마치고 막사에 늘어져서 티비를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Katusa로 용산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5시 퇴근 후엔 그 누구도 생활에 간섭하지 않았어. Everybody don't care의 군대 아닌 군대였던 셈), 뜻밖에 화면에 괜찮은 아이들이 나오지 않는가. 그 중에 앳되고 좀 통통해 보이는 여자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 왔는데, 목소리 호소력이 장난이 아니었어. 알고 보니 걔네들이 그 유명한 'Uptown'이었지.  그 여자아이는 윤미래였고 말이야. 당시엔 티비 나오는 축들을 개무시하면서 나름 언더그라운드 매니아 겉멋에 빠져 있던 때였는데, 그 여자 아이의 목소린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어. 뭐랄까, 목소리의 입자가 풍부하다 못해, 그 입자 하나하나의 뇌관이 모조리 제거된 채 폭발을 기다리는 듯 했달까. 

 

그런데도 그때는 음반을 구입하지 않았어. 왜냐면 티비에 간간이 나오고, 라디오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당시에 난 힙합보다는 Nirvana 음반을 하나 빠짐 없이 모으고 있었고, Marilyn Manson 음반을 내도록 듣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희안한 오기라는 게 있었는데, 뭐냐면, 'Rock 아니면 Classic' 뭐 그런 거였지.   

 

그런 윤미래를 다시 만났지. 이번에도 우연히. 종종 영화를 다운받기 위해 들어가곤 하는 지하세계에서 이 아이의 베스트 앨범(2003)을 발견한거야.  주저 없이 내려받기, 클릭. 앰프의 볼륨을 높이고 플레이 버튼 꾸욱 . 그리고 ... '까무러쳐'  버린거야([G화자] 중). 내 생각에 이 땅에 난다 긴다는 노래꾼들 중 윤미래만큼 완벽한 목소리는 없어. 듣는 사람이 확, 미쳐버린다니까. 이건 뭐, 랩에서 알앤비, 소울, 팝까지 못하는 창법이 없는 거지. 그러면서도 그 특유의 호소력을 유지하는 거야. 그 카리스마라는 게 장난이 아니야. 오체투지하고 들을 수밖에.

 

그런데, 타이거JK와 결혼해서 애기까지 낳아버렸으니  이젠 그 목소리의 끝 간데 없는 도발과 광기는 사그라드는 건가?  제발 그러진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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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참에 그동안 사고 싶었던 앨범들을 mp3로 다운 받았어. 이 중에 정식으로 CD를 구입할 만한 것들이 생길 건데 ... . 지금은 Kasabian이 심하게 당긴다는. (왼쪽부터, [The Dead Weather], [Kasabian], [황보령 3집], [Evgeny Kissin]

 

 The Dead Weather vol. 1 Kasabian - West Ryder Pauper Lunatic Asylum황보령 3집 - Shines In The Dark The Essential EVGENY KIS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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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2

  • 등록일
    2009/08/22 23:37
  • 수정일
    2009/08/22 23:37

무더운 날씨다. 줄창 비만 오더니 이제야 여름인 거다. 노무현 서거에다가 김대중 서거. 어떤 이는 주책맞게도(?) 백기완 선생 건강은 어떤지 궁금해 하기도 한다. 하긴 나쁜 일이 겹치다 보면 안 하던 걱정도 사서 하게 되는 거다. 한겨레에다가 김대중 서거에 관해 칼럼을 쓰신 걸 보니, 정정한 필력이 행간에 넘쳐나서 나도 반가웠다. 어쨌든 그 누구든 느닷없이 세상을 버려서는 곤란하다. 특히 정치적으로 올곶은 분들은 말이다. 오래오래 사셔서 더러운 '준심'(권력: 백기완 선생 표현이다)이 무너지고 '민중권력'이 들어 서는 걸 보셔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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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 어제 도착했다. 그제 밤을 세고 새벽 차를 타고 와서 그런지 어제 하루 종일 잠에 약간씩 취해 있다가 초저녁에 까무룩 맛이 가 버렸다. 깨 보니 아침이더라.

 

구구는 더 건강해졌다. 그녀나 나나 구구가 이제 아이 같다. 경임이는 그런 우리가 꽤나 심각해 보이나 보다. 신기해 한다. 구구에게 이야기하고, 구구 눈을 살피고, 구구를 빗으로 빗어 주고, 구구를 이뻐하는 연인 ... . 그러고 보니 둘이 있을 때도 구구 이야기를 많이 한다. 조금전 버스 정류장에서 운암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그랬다. 구구를 놓고 도망가는 척, 숨는 놀이를 했다. 나나 그녀나 그런 걸 확신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다. 구구는 이제 한 가족이고, 그 녀석이 뭘 느끼는지('생각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뭐 아직 냥이가 사유한다고 믿을만큼 나아가지는 않았다.) 우린 안다. 물론 구구도 우리 정서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고 말이다.

 

출판사 일 때문에 우리 둘, 신경을 많이 쓴다. 그 일, 참, 지지부진하다. 7월에 공고가 난다고 해서 기다렸더니, 8월에 난다고 했다. 그래서 또 기다린다. 문제는 그러는 동안에도 광주 일정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정처 없는 서울 일정에 맞추었다가는 광주 일정이 틀어질 것 같아 불안하고, 광주 일정만 믿고 가자니 서울 일이 느닷없이 닥치면 또 곤란해질 것 같아 불안하다. 어서 공고라도 나야지 짐을 싸고 그녀와 구구 셋이서 공원을 거닐던지 할 건데 ... . 일단 화요일 확실한 정보를 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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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이 가기 전에 번역을 끝내야 하는데, 그게 잘 될지도 걱정이다. 아직 100페이지 넘게 분량이 남았다. 출판사에 다시 연락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한 달 정도 여유를 더 준다면 다 해낼 것 같은데 ... . 번역은 만만하게 볼 게 결코 아니다. 예전에 내 스승인 강영안 선생이 "번역 해서 죄짓지 마라"고 하신게 생각난다. 백번 지당하다. 그래도 이 작업이 마냥 지루한 것은 아니다. 나름 성취감도 있고,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다시 번역 작업을 한다면 지금처럼 어리석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충분한 시일을 두고 차근차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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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과 테제(2009/8/4-17)

  • 등록일
    2009/08/18 00:26
  • 수정일
    2009/08/18 00:26

- 첫째, 논쟁 당사자의 논변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논쟁 중 빠지기 쉬운 가장 유치한 함정은 바로 논변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서를 분석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그가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인지 상관하지 말라. 중요한 것은 그가 한 '말'이며, 그 말이 이끌어 가는 '논리'며, 그 논리의 '사실관계'일 뿐이다. 둘째, 상대방의 논변을 분석한 후에 결론을 항상 유보하라. 항상 의문형으로 '되물어라'. 그것이 진정 소크라테스적이다. 논쟁에 있어서 우리는 그때 이후로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한 것 같다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셋째, 절대 이기려고 하지 마라. 스스로를 진실을 찾아 가는 오디세우스라고 생각하라. 그 외에 어떤 승패에도 얽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십중팔구 평상심을 잃고 자기감정에 휩쓸리고 말 것이다.

 

- 이를테면 '흘러넘침'의 이념이 존재하고, '빼기'(결핍)의 이념이 존재한다. 고대 이래(플로티누스)로 전자는 신적 본질이었고, 후자는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악의 본성이었다(칸트는 이 방면에서도 획기적이었다. 그는 악을 결핍으로 본 것이 아니라, '전도'로 보았다. 즉 악은 기피해야 할 것이지만 '온전한 것'이라는 거다). 기독교 신앙은 철학적 관념의 올바른 부침조차 강박적으로 만들었다. 이 관념의 분위기를 부수고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아래로부터의 들끓음, 그것은 민중과 다중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량의 표현이며, 그것은 흘러넘치는 것이라기 보다, 자본의 숨막힐 듯한 밀도 안에서 스스로를 빼 버림으로써 거기 새로운 활력, 혁명의 숨길을 터 놓는 존재론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바와는 달리 악마야말로 저 천상의 꼭대기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신과 천사는 바로 이 땅 위 빛이 없는 어딘가에서 남루한 복장을 하고, 상기된 눈을 뜨고 헤매는 자들 속에 뒤섞여 있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기독교적 관념-해방신학에서조차-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생각이다. 차라리 이는 불교, 특히 대승불교의 보살사상이나 정토사상에서 더 쉽게 이념적인 적합성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 철학이 정치의 평면에 도달하는 순간은 어떤 때일까? 그러니까 이건 정치의 철학 즉 ‘정치철학’이 아니라 ‘철학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이것이 그렇다고 플라톤적인 철인정치가 아님을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철학의 정치가 “관념의 오솔길이 아니라 대도시의 거리”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Deleuze).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철학의 정치를 어렵게 한다는것도 분명하다. 어떻게 이념을 저 거리의 활력과 더불어 ‘살게’ 할 것인가 말이다. 이념의 역동성을 표면으로 운반하는 것, 그것이 또한 정치술 다시 말해, 'polis-craft'일 것이다.

하나의 종합적 질문: 철학정치가 맑스/레닌이라면 정치술은 마키아벨리/한비자일 수 있는가?

 

- 시공간을 무화시키는 특이점은 물리학적 실재다. 그런데 그 특이점으로부터 모든 것이 발생한다는 사유는 새로운 것이지 않은가? 이를테면 잠재성을 취급하는 모든 발생론적 사유는 이런 식이다. 구조주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는 조푸루아 식의 그 괴물로부터 벗어나 다른 식으로 특이점을 사유할 수는 없을까? 그러니까 좀 더 벤냐민적으로 좀 더 테크놀로지에 가깝게 말이다. 로봇공학? 아님면 영화나 홀로그램?

 

- 주체는 잔여(residue)다. 우리는 항상 그런 식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다. 피카소가 면을 통해 주체를 사유하기 전에는 그러니까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나신>(1913) 이 있었던 거다(물론 이는 연대적 순서와는 상관 없다). 신체는 어떤 충만한 기관이 처음이 아니라 움직이는 잔영, 즉 잔여가 처음인 것이다. “양과 질 이전의 극화”라는 들뢰즈-니체의 테제는 따라서 콤플렉스 이전의 오이디푸스를 가리킨다. 우리-주체들은 그 오이디푸스를 완전히 다르게 변주한다. 그래서 때로 오이디푸스는 햄릿이기도 했다.

 

- 이 시기 한국사회에 그나마 존재하는 강단좌파는 부단히 스스로를 이론적으로 일신해 나가야 한다. 그들이 교육자라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또한 당대의 지식이 그룹을 대표하는 그런 체제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그래서 이들은 마땅히 새로운 개념에 대해 기본적인 똘레랑스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조적인 담론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그를 통해 집단적인 문화이윤을 수취하면서 이 메커니즘을 교육과 학회활동을 통해 재생산하는 것 그것만이 자신의 임무인 것처럼 여기는 기풍이 이미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조건은 다시 이데올로기 층위에서 교조주의를 강화한다. 게다가 이 카르텔과 폐쇄순환구조가 학벌과 연고 등과 얽히면 말 그대로 학문적 지옥도가 펼쳐지는 것이다. 한국사회 아카데미즘은 이 지옥의 입구로로부터 얼마나 멀리까지 들어와 있는가?

 

- 비가 많이 온다. 사당가는 7001번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있다. 운전석 유리로 들이치는 빗물들. 이런 도로 위를 이런 찬 비를 보며 간다는 것, 언제나 그런 게 사는 거다. 별다른 것 없는 고뇌의 연속 말이다.

 

- 연대 이전에 중요한 것은 물론 전선이다. 연대는 사회적 합의에 의해 조성되지만 전선은 언제나 정치적 적대에 의해 구성된다. 전선과 연대의 인식론적 선후관계도 중요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하는 것은, 현장에서는 존재론적인 구성의 관점(perspective)이 더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연대 안의 전선과 전선 안에서의 연대를 구성하는 것은 그 매번의 관점에 달려 있으며, 싸움의 효과와 승패 모두가 이 능란한 관점 구성에 우선 달려 있기 때문에 더 그러하다. 따라서 모든 레닌주의와 운동론의 ABC는 여기서부터다.

전선은 확고하게 연대는 느슨하게 그리고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 적들을 앞서 가는 것”(Guattrai).

 

- 개념실체론과 마찬가지로 계급실체론은 칸트적 의미에서 사용이 제한되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초월적 사용이 문제가 아니라 경험적 사용이 문제일 것이다. 계급의 이념적 사용은 사실상 예지계에서 뿐만 아니라 감각계에서도 허용될 것이다. 하지만 이념이란 항상 그것의 그림자인 반입자를 가지고 있는 법인데 이를 미분화라 한다. 경험계에 이를수록 미분화는 계급이라는 몰적 이념의 자루에 쓸어 담기에 차고 넘치는 분자들로 들끓을 것이다. 이 지점을 들뢰즈는 특이점이라고 했으며 칸트는 숭고함이라고 했고 맑스는 프롤레타리아라 했다.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해서 맑스에게서 계급‘론’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알튀세르의 말마따나 이는 단지 “경향적”인데 경향이란 건 일종의 반(半)목적의식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나코-들뢰즈의 지평에서 이는 단지 브라운 운동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말이다. 따라서 ‘계급’이 이런 미분적 투쟁과정이나 현장 안에서 초재적으로 사용되면 거기에는 반드시 몰적 선별과 플라톤적인 배제가 작동한다. 결국 현상은 기이하게 뒤틀리고 차이는 억압당하며 마침내 ‘아버지’가 등장하는데 이를 보통 ‘이론가’ 또는 ‘철학자’라고 부른다. 계급의 경향성이 정치의 내재면에 그리는 오이디푸스 삼각형의 경로 위에서 모든 혁명은 적법성의 내기에 걸리고 필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로두스는 계급의 산맥이 아니라 특이점의 고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조정환과 이택광(그리고 최원?)이 벌인 촛불성격논쟁은 그 생동감에도 불구하고 감정과잉과 이론의 빈곤으로 귀착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이론이란 과학이 아니라 바로 철학이며, 또는 그 둘의 공명지점과 차이를 드러내는 역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둘의 논쟁이 서로의 취미판단을 분석하면서(마치 그것이 분석될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반지성주의와 쁘띠부르주아 지식인론으로 비화될 때 일어난다. 이들은 이 주장의 철학적-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기를 포기하면서 등을 돌린채 고성을 질러댄 것이다. 전자의 철학적 근거는 바로 데카르트와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근대 이성중심주의에 있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엔 엥겔스의 맑스 혹은 레닌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 조정환은 한 가지 필수불가결한 계보적 사항을 더 첨가하는데 그것이 들뢰즈다. 그러므로 이 논쟁은 마땅히 이 근거들의 심층 안에서 독자적인 2라운드에 돌입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이 둘은 근거와해와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이 근거들의 어두운 지대(zone obscure), 이념의 고딕풍 놀이터로 들어오기를 거부했으며 각자의 과학의 방으로 돌아갔다. 한 차례 서로의 “방만 바꾸었을 뿐 혁명은 없었다”(김수영).

 

- 인격적 관계성은 불가능하다. 엄밀하고 가혹하게 대답하자. 당신은 내 코나투스의 인격성 따위를 논할 수 없다. 그런 건 애초에 없다고 말이다. 다만 당신과 나 사이엔 거리가 존재하며 그것은 기반으로 해서만 평가(evaluation)가 가능하며 기쁨의 생산도 가능하다고 말이다. 나든 당신이든 인격이라는 유기체적 조직으로 총체화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는 모든 루카치식 ‘전형적 총체성’에 대한 고별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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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스크랩]2009/8/10-13

  • 등록일
    2009/08/13 11:56
  • 수정일
    2009/08/13 11:56

8/10

<프레시안>

YTN '배석규 쇼크'…"더이상 보도국장 추천제는 없다"현 보도국장 전격 교체…<돌발영상> 임장혁 PD에겐 대기발령 단체협약에 규정된 '보도국장 추천제'의 폐지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함께 '보도국장 추천제'에 의해 선임된 정영근 보도국장을 전격 교체 ... 노조에 강경 대응을 주도해온 김백 경영기획실장을 보도국장에 임명하는 등 '친위 체제'도 갖췄다. 전국언론노조 YTN 지부(지부장 노종면)는 "배석규 사장이 YTN 노동조합에 '전면전'을 선포했다"고 ...

... YTN 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보도국장을 협박해 사퇴시킨 배석규 전무의 만행을 용서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노조는 곧바로 후임 보도국장 선거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이들은 "배석규 전무의 불법적인 외압 행사에 대응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결의할 것"이라고 ... "배석규 전무는 사장이 아니라 '대행'"이라며 "더구나 '사장'이었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폐지'를 통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무도한 짓'"이라며 "특히 이런 인사를 낸 장본인이 YTN 출신이라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향후 노사 관계에 험난한 여정이 놓여있다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침소봉대 낙관론' 이제 그만..."美실업률, 여전히 놀랄 정도로 높은 수준" 미국의 실업률이 15개월만에 처음으로 전달 대비 소폭 하락했다는 똑같은 소식에 대해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의 분석 기사는 이런 점에서 돋보인다.

이 잡지는 'Signs of economic cheer'라는 기사에서 "경제가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놀랄 정도로 높다"면서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 기사는 최근 실업률 하락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통계들을 나열한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면서 "그 배경에는 단일 경제지표로서 가장 중요한 실업률이 여전히 놀랄 정도로 높다는 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 10일(현지시간) 통신에 따르면, 크루그먼 교수는 9일 말레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심포지엄 회견에서 "세계 각국 정부들의 공격적인 경기부양책이 제2의 대공황을 피하는데 기여했지만, 전면적인 경기회복은 2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글로벌 위기는 경제와 수출 성장이 안정되는 신호를 보이면서 최악의 국면은 지났다"면서도 "정부 지출이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고, 실업률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기회복은 여전히 '실망스러운'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특히 그는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처럼 수출의 급격한 회복에 힘입어 경제가 극적으로 성장하는 식의 '불사조 같은' 회복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2의 대공황은 가까스로 피했지만, 전면적인 회복은 최소한 2년 이상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안정국면에 들어섰다는 것과 경제가 정상적인 수준으로 회복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며 "세계 경제가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지지는 않더라도, 향후 몇 년간 취약한 성장세가 이어질지도 모른다"고 ... 또한 그는 "여전히 미국은 2차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면서 "추가 자금은 인프라 구축뿐 아니라 주정부 등 지방자치단체에도 배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실업률이 10%를 향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유력하다. FRB와 미 백악관도 실업률이 연내 10%를 돌파한다는 예상치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 "검찰, 불법· BBK 보은인사에 盧수사팀 영전" 서울중앙지검장에 노환균 대검 공안부장이 임명됐다. 전형적 'KKK(경북-고대-공안)인맥'이라는 점에서 천성관 전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의 공안수사가 그대로 이어 ... 또한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된 김홍일 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충청 출신에 강력통이지만, 지난 2007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 시절 이명박 후보의 BBK의혹과 서울 도곡동 땅 차명보유 의혹 수사를 맡아 여권에서는 호평을, 야권에서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밖에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서 검찰의 '입'을 맡았던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이 검사장으로 승진을 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중수1과장이 김준규 후보자의 검찰인사청문준비단 '비전팀장'을 맡아 일각의 비난을 샀던 터라 이번 인사로 인해 '노무현 수사팀' 영전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

 

방문진 김우룡 이사장 선출…'사전 내정설' 현실로?MBC 노동조합 "김우룡·최홍재·김광동 물러가라" 몸싸움 이근행 MBC 노조위원장은 "MBC 노동조합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방문진 무력화에 나설 것"이라며 "개개인의 부적격 사유를 공개해 사퇴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 것이다. 이제까지 그런 이유로 사퇴한 이사도 많다"고 밝혔다.

이근행 위원장은 "김우룡, 최홍재, 김광동, 차기환 등이 방문진 이사가 되면 뉴스나 프로그램에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할 것이고 경영진을 해임하고 노골적 낙하산 사장을 투입하려 들 것"이라며 "MBC 노조는 각 단계마다 투쟁 수위를 높일 것이며 역량을 다해 역사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서민…서민…서민, MB는 웃는다[김종배의 it] '친서민' 프레임을 넘어설 수 있을까? 각각이 잡고 있는 포인트는 다르지만 맥락은 같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도하는 이른바 친서민 정책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름대로 정책 대안을 내놓는 점에선 같다. 그 누구도 '친서민'의 당위성을 송두리째 부정하지는 않는다. 각론만 달리할 뿐 총론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짠 '친서민 프레임'에 갇혀 제한전을 펴는 것이다.

... 서민 화두가 흥하면 다른 화두가 쇠한다. 서민 화두가 팽창할수록 한때 하반기 정국의 뇌관으로 평가되던 미디어법 화두를 세인의 관심 밖으로 밀어내면서 전선의 성격을 민주에서 민생으로, 전투의 양상을 대치에서 경쟁으로 바꿔버린다.

... 어부지리도 챙긴다. 민주당의 장외투쟁 동력을 떨어뜨려 빈손 회군을 유도해 정치 안정을 모색할 수 있다. 여지는 충분하다. 의원직 총사퇴 가능성을 선언하고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이 민생대책을 발의하겠다고 나서는 형국 아닌가. 법안을 발의하는 순간 의원직 총사퇴 불사 선언은 퇴색하고, 법안 처리에 매달리는 순간 장외투쟁은 동력을 잃는다.

... 10월 재보선이 여권에 또 한 번의 정치적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민심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수도권 지역구가 경기 안산 상록을 한 군데로 좁혀지고 있다. 그리고 경남 양산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출마가 점쳐지고 있다. 안산 상록을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경남 양산에서 박희태 대표가 당선되면 10월 재보선의 정치적 파괴력은 반감된다.

... 인사 파동이 다시 불거진다 해도 정국의 흐름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다.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고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부여된 고리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한 그건 일시적인, 흘려보내는 매개에 불과할 테니까.

 

'쌍용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손호철 칼럼] 영웅적 투쟁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들 우리는 쌍용차 사태에 대한 불편한, 그러나 피해갈 수 없는 진실의 핵심에 주목해야 한다. 이 난의 "부두(voodoo) 경제학과 부두정치를 넘어서: 쌍용차와 GM대우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2009년 6월 22일자)에서 지적했듯이, 그것은 노동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비판적인 외자유치론에 기초해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해 현재의 사태를 야기시킨 당사자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와 민주당이라는 사실이다. ... 쌍용차 사태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는 '억울하게' 이전 정권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일 뿐 ... 나의 주장의 핵심은 단순히 쌍용차 사태의 진짜 책임소재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를 통해 미래를 배우자는 것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시 쌍용차의 해외매각설이 등장하고 있다. 77일간의 영웅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런 역사적 교훈을 배우지 못한 채 또 다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죄문제를 쟁점화하지 못한 진보진영의 잘못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새 정책위의장에 박지원 의원 민주당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정책위의장에 박지원 의원, 전략기획위원장에 전병헌 의원을 임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민주당이 주요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정 대표 등에게 무게감 있는 조언을 해왔던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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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지금은 '파시즘 논쟁'을 할 때가 아니다[창비주간논평]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

 

<참세상속게>

[제안]한국의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전투적인 선진노동자들에게 제안한다!<사회주의 혁명정당 건설 노동자 공동정치투쟁단> 결성으로 함께 나아가자!

 

8/11

<레디앙>

김정일, ‘통 큰 정치’ 시동 거나?/정욱식 김정일 위원장은 미국의 거물급 인사의 방북을 통해 일석사조의 효과를 누리고 있다. 2명의 미국 여기자 특별사면 단행을 통한 미국 내 대북 이미지 개선, 자신의 건강 문제 의혹 완화 및 통치 능력 과시, 대내적 결속 강화, 오바마 행정부에 최고위급 메시지 전달 등 여러 가지 성과를 올린 것이다.

반면 오바마 행정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당면 과제였던 여기자 석방과 함께 북한 최고지도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에 따라 4월 이후 대북 제재 및 봉쇄에 방점을 찍어왔던 오바마의 대북정책도 새로운 변수를 만나게 됐다.

제임스 존스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9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크게 세 가지 내용을 밝혔다.

첫째는 “북한은 미국과 새로운 관계, 더 나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김 위원장이 건강이상설에도 여전히 권력을 쥔 것 같았으며 말도 심사숙고해서 하는 듯 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김정일과 클린턴이 “한반도에서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언급했다”는 것이다.

... 4월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의 배경에는 김정일의 건강 및 후계 문제가 핵보유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열망을 야기했다는 분석이 깔려 있었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제제와 봉쇄 방안 마련에 몰두해왔다.

그러나 김정일이 직접 나서 건강 위독설을 불식시키고 비핵화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분석에는 근본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 김정일은 클린턴을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와 ‘한반도 비핵화’ 사이의 ‘통 큰 교환’을 제안했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전해들은 오바마는 협상할 만한 제안인지를 판단하게 될 것 ... 기실 오바마 행정부로서도 대북 강경책의 부담은 따른다. 무기 금수와 금융 제재를 통해 북한의 돈줄을 일정 정도 차단할 수 있지만, 북한은 자체적인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 그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 내 일각에서 거론되어온 ‘북한정권교체론’은 중국의 거부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의 붕괴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간과할 수 없다.

세계 전략 차원에서도 대북 강경책의 부담은 따른다. 당장 이란 핵문제가 걸린다. 이란에게 제시한 9월 대화 시한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다. 이때까지 이란 핵협상이 재개되지 않고 북핵에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상대로 위험한 게임이 돌입해야 한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재건’을 내건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회의도 내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북한과 이란 핵문제의 동시 악화는 NPT 재건은 고사하고 그 유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을 야기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대화 형식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담판을 선호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반면에, 미국은 ‘6자회담 틀 내에서 양자대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두 나라 사이의 평행선을 좁히기 위해 ‘3자회담’의 모양새를 띤 북미 양자대화를 주선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기도 하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도 북미관계의 변수이다. 한미일 3각공조를 맹신해온 한국과 일본은 클린턴의 방북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동맹국과의 공조를 강조해온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북한의 성의 표시가 주목된다. 북한이 대미관계 개선의 주사위를 던진 데 이어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변화도 시도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현정은 회장의 평양 방문 성사는 북한으로서도 남북관계 개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일본 총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북한은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성의를 보여주면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추구할 가능성이 있다. 남북관계와 북일관계의 개선은 6자회담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희망적으로 바라본다면, 북미, 남북, 북일 관계의 개선과 중국의 북-미-중 3자회담 주선이 맞물리면서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 조합원 등 38명 구속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서 점거농성을 벌이며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한상균 지부장 등 38명이 추가로 구속됐다. 현재까지 쌍용차 사태로 구속된 사람은 모두 64명이다. ... 지난 6일 쌍용차 노사는 극적 합의를 이루며 사측은 형사상 책임을 최대한 선처하도록 노력하고 민사상 책임은 회생계획 인가가 이뤄지는 경우 취하할 뜻을 밝혔다.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과 김경한 법무부 장관 역시 “자진해서 6일까지 공장을 나서는 사람에 대해서는 최대한 선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은 현재까지 쌍용차 사태로 쌍용차지부 조합원 53명을 구속하고, 조합원 가족과 외부단체 회원 11명을 구속했다. 이는 지난 2006년 포항지역 건설노조 파업 때 구속된 68명과 맞먹는 수치로, 경찰은 일단 귀가조치한 조합원들과 이른바 '외부세력'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있어 구속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여기에 경찰은 노사 대타협 다음날인 7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집행부 등을 상대로 5억48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또 대검찰청 공안부는 평택공장 사무실에서 이념서적 70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하는 등 사태는 공안 사건으로까지 번져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명박이 대신할 수 없다”

[정치사회비평] 점령 미군 같은 쌍용 진압 경찰들…폭력경찰 청산해야 쌍용차에서 발생한 ‘폭력’에서 우려스러운 것은 공권력으로 포장된 적나라한 폭력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진압에 사용된 각종 신무기와 스티로폼을 녹이는 최루액보다 놀라운 것은 경찰과 경찰의 비호 하에서 자행된 사측 용역의 적나라한 폭력이다. 경찰 특공대가 옥상 진입과정에서 이미 제압한 노동자를 재차, 삼차 가격하고, 그것도 모자라 한 번 더 폭행하는 광기어린 폭력은 공권력의 과잉행사가 아니라 폭력 그 자체이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 국민이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천의 경찰이 쇠파이프를 들고 새총을 쏘는 용역들과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과정은 사유화된 공권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심지어 그러한 쌍용차 현장에서 기념촬영하는 경찰의 모습은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들이 포로를 학대하면서 사진을 촬영한 병적인 행태와 어떠한 차이점도 발견하기 어렵다.

... 독재정권에서 경찰의 폭력이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면 민주화 이후 경찰의 폭력은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대변할 정치세력도, 스스로 변호할 능력도 없는 그러한 계급에게 집중되어진다.

... 이제 폭력은 소수의 독재정권이 다수의 저항세력에게 행사하는 폭력이 아니라 다수의 동의와 방관 하에 소수에게 행해지는 폭력으로 더욱 악화되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폭력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처럼 언제든지 모든 국민들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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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에서 너무 일찍 이탈했다” [대안사회주의-유고 자치사회주의⑤] 평화로웠던 발칸 40년

 

<참세상속게>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소식지 09-12호

 

8/12

<민중의소리>

기무사 정치사찰 파문..."군사정권 구태 부활"-민주노동당 당원 등 민간인 10여명 조직적 사찰 군 정보기관의 민간인 사찰은 군사정권 시절에나 자행됐던 일로, 노태우 정권 시절인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소속 윤석양 이병이 노무현, 이강철 등 야당 정치인을 포함한 민간인 1300여명에 대한 사찰기록을 폭로해 당시 야당과 시민사회가 연일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 등 파문이 인 바 있다. 이 일로 보안사는 수술대에 올라 이듬해 국군기무사령부로 개명하며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후 정치사찰 논란 등으로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도 노무현 정부 시절 폐지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초 부활되면서 정치사찰 우려 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정희 의원은 "역사책에서나 있어야 할 구시대적 행태가 이명박 정부에 의해 다시 살아난 것"이라며

 

'최루액분사 가능' 경찰버스 곧 등장할 듯-"'소통'과 거리 둔 현 정권을 잘 보여주는 것" 지적 나와 지난 7월30일 4.5톤 트럭을 개조해 일명 '트랜스포머 차벽'을 선보인 경찰이 이번엔 경찰버스에서 최루액을 직접분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범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버스 4면에 분사노즐 24개를 설치해 최루액 섞인 물이 차체외부 최대 5미터 범위까지 분사되도록 하는 시스템을 시범도입할 계획"이라고 11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 기념․사업회' 9월말 출범 각계 대표 20여명은 11일 서울 시내 모처에 모여 ‘노무현 대통령 추모․기념사업회’ 준비위원회(이하 준비위)를 구성, 준비위가 중심이 돼 ‘10.4 남북정상회담 2주년’ 전인 9월26일까지 ‘노무현 대통령 추모․기념사업회’를 출범시키기로 결의했다.

준비위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학계와 법조계, 여성계, 문화계, 언론계, 정치권 인사들로 구성됐으며 다음주 중 각 지역 대표들과 네티즌 대표들까지 포함시킬 계획이다.

준비위는 또 각계 원로들을 대거 고문으로 추대, 우리 사회 노-장-청이 두루 참여하는 세대와 지역, 온/오프라인을 망라하는 전국 조직을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준비위는 한국미래발전연구원과 함께 ‘노무현 시민주권아카데미’, ‘봉하캠프’ 등을 시작해 장기적으로는 어린이 민주주의 캠프, 청소년 민주주의학교, 사이버 강좌 및 학위코스 등 미국의 케네디스쿨과 같은 <노무현 아카데미> 설립을 목표로 추진키로 했다.

 

인권위원장 일주일 만에 국보법 폐지에서 존속으로 현 위원장은 1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며 “나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인권위 전체 입장을 한순간에 뒤집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앞으로 인권위 안팎에 내 소신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설득해 옳다고 판단하는 쪽으로 공식 의견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 국가보안법과 인권은 상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인권 전문가들의 대다수 의견으로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폐지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런데 인권위 수장이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인권위가 급격히 보수화되고 인권기구로서 역할도 의심받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 이명박 정부가 정치색이 엷은 현병철 위원장을 인권위 수장으로 앉히고 실질적으로 인권위를 장악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사무총장의 자리에는 보수적 색채의 인사를 앉히려는 의도가 있다는 지적이다.

명숙 활동가는 “사무총장 자리에 보수 쪽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뉴라이트 계열인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를 유력한 사무총장 후보로 지목했다.

 

쌍용차 사태, 민주노총은 어디에 있었나-껍데기 뿐인 민주노총의 사회연대전략 조중동 등 보수언론들은 쌍용차 투쟁 초기 부터 '연봉 수천 만원씩 받아 온 노동자들이 끝까지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점거농성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갔고, 실제 쌍용차 투쟁을 지켜보는 시민들 중에는 "그동안 잘 먹고 잘 살더니.."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꽤 광범위하게 형성이 됐었다.

때문에 민주노총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바꾸는 투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것도 결국 정권과 자본, 보수언론이 만들어 낸 '고통분담', '대기업 귀족노조' 프레임에 빠질까봐 '발담그기'를 주저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처음부터 민주노총이 쌍용차 투쟁의 성격을 잘못 진단하고 있었다"는 한 노동계 인사의 지적도 이같은 인식과 맞닿아 있다. 민주노총이 쌍용차 투쟁을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구조조정 투쟁' 정도로만 치부한 게 아니냐는 말이다. ... 그러나 처음부터 쌍용차 투쟁은 노조깃발을 꺾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방위적으로 확대시키려는 이명박 정권과의 '정치투쟁'이었다. 민주노총이 쌍용차 투쟁을 '정치문제'로 보지 않고 '경영상의 문제' 혹은 '구조조정'의 문제로만 한정짓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쌍용차 창원지회의 한 노동자는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나 정치적 야망만 있지, 구속을 각오하면서까지 이 투쟁에 나서겠다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한마디로 보여주기식 투쟁만 했다"고 비판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쌍용차 투쟁과 관련 민주노총에 쏟아지는 비판을 안타까워하며 "민주노총이 살기 위해선 임성규 위원장이 도장공장에 드러누웠어야 했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이 진정으로 사회연대를 이루기 위해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정권과 자본에 대한 광범위한 전선을 치는 것에서 부터 사회연대전략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도장공장을 중심으로한 목숨을 건 77일간의 투쟁을 벌인 쌍용차 노동자들의 외침이다.

 

사노련 오세철 교수 등 8명 불구속 기소 검찰은 이들이 북한과 연결돼 지령을 받아 활동하는 이적단체와 달리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자생적으로 조직된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로 국가보안법 7조의 적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작년 8월과 11월 검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 모두 기각당했다.

 

한겨레의 무책임한 광고기조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시기 반환경적인 원자력발전소 광고를 비롯해 반전ㆍ반제국주의 맞은편의 대량 살상 무기인 FA-18기나 F-15K 전투기 광고를 실은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정홍보처의 한미FTA 보도광고를 연재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또 ‘삼성과 포스코에 산별노조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의 민주노총 금속노조 의견광고 게재 의뢰를 거절했는데 “‘삼성’을 ‘모든 회사’로 바꾸지 않으면 광고를 실을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로, 이는 결과적으로 한겨레가 재벌들을 의식해 노동운동을 간접 탄압한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번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 광고 또한 그 연속선상에서 봐야한다.

 

한겨레에 대한 유의미한 비판은 6월민주항쟁의 결과 ‘국민주’로 출발했다는 개혁성과 더불어 신뢰도가 신문 중에서 가장 앞선다는 점에서 수구보수언론과 큰 차이가 있다. 혹자는 신문기사와 광고를 별개로 볼 것을 요구하지만, 한겨레에 실리는 의견광고는 기사성광고쯤 여길 정도로 남다른 데가 있다. 따라서 한겨레는 아무리 돈이 궁하다 해도 진보적 언론으로서 의견광고를 싣는 데 각별히 신중을 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참세상속게>

용산4구역 재개발조합 광고 실은 한겨레, 광고 기조 문제 있다 ‘용산4구역에 대한 불편한 진실 첫 번째’ 의견광고에서 ‘첫 번째’는 향후 시리즈 광고로 진행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미 ‘첫 번째’에 개입한 한겨레는 ‘두 번째’에서 커다란 시험에 직면할 것이다. 그럼, 현존 자본주의 언론시장에서 한겨레가 파산하지 않는 선에서 이번 광고 패착을 풀 수 있는 다른 묘안은 없을까. ‘조합’을 둘러싼 건설자본과 정치권력 그리고 ‘용산참사’가 지닌 시대정신을 공정하게 풀어가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거액을 들여 모든 신문에 광고를 내는 ‘조합’의 힘은 재개발이익에서 비롯되는 만큼, 한겨레는 무책임한 재개발 정책의 산물 ‘용산참사’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는 ‘용산범대위’에게 ‘조합’의 광고 크기와 똑같이 (무료로) 지면을 제공해 대국민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면 된다. 물론, 이는 ‘용산범대위’가 흔쾌히 응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8/13

<한겨레신문>

쌍용차 파업노조원 ‘보복인사’ - ‘농성참여 비해고자’ 등 94명 휴업명령 노조 “상생합의 깬 노조와해 공작”

 

중기·서민·학생 지원금 휩쓰는 ‘4대강 쓰나미’ 기초생활보장·대학생장학금 등 ‘싹둑’ 올해 예산에서 0.36%를 차지하던 4대강 예산은 내년엔 2.88%를 차지하게 된다. 예산 총규모를 크게 늘리지 않는 한, 다른 예산을 깎아 4대강 사업에 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올해 추경예산과 견줘보면 내년 총지출액은 1.1%밖에 줄지 않지만, 민생예산은 8.6%나 줄어든다. 민주당은 중소기업·산업·에너지, 교육, 농식품, 환경, 보건·복지·노동, 도로·철도 건설과 지방하천정비 등 사회기반시설(SOC) 사업을 민생예산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 민주당은 내년 예산요구안에서 기초생활보장 지출이 올해 추경예산보다 2589억원, 대학생장학금 지원은 3686억원 줄었다고 지적했다. 농민 비료가격지원(1508억원)은 없어진다. 이밖에 도로·철도 예산이 14조6000억원에서 10조원으로 급감하고, 호남고속철도의 예산도 공단요구액은 4801억원이지만 해당부처는 2826억원을 깎아 1975억원으로 줄였다. 지역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는 지방하천정비사업 예산도 2889억원 줄었다. 이밖에 노후 공공주택 개선 지원 예산 2700억원도 내년엔 사라진다.

 

촛불재판 잇단 무죄 판결, 검찰 ‘마구잡이 기소’ 논란 강씨는 시위를 구경하다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집회 사진을 찍으려고 경찰버스에 올라갔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강씨는 당시 정장 차림이었고 시위에 필요한 손펼침막 등 물건을 소지하지도 않았다”며 “설사 강씨가 시위에 참가했다 하더라도, 경찰이 설치한 차벽으로 이미 세종로의 차량 통행이 막혀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 권씨는 지난해 8월 광화문 부근 촛불집회 현장에서 경찰이 물포에 섞어서 뿌린 파란색 색소가 옷에 묻어 있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됐다. 재판부는 “증거 사실을 종합하면 권씨는 당시 시위에 참가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함께 시위 현장을 지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인정된다”며 “권씨를 체포한 경찰도 권씨가 집회에 참가한 장면을 보지 못했는데, 단지 옷에 색소가 묻은 사람을 검거하라는 지시에 따라 체포에 나섰다고 진술하고 있어 범죄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말뿐인 신문고시…‘끼워팔기’ 무법천지 참여정부가 신문시장 불공정거래 신고포상제를 시행한 직후인 2005년 4~5월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서울·경기 300개 지국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위반 비율은 각각 7%·5%·5%였다. 반면 이 단체가 지난 7월16~17일 경기·인천 지역 120개 지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조중동의 위반 비율이 100%·100%·96.7%로 껑충 뛰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의 신문고시 위반 직권조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 김순기 전국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현 정부 태도를 봐선 신문고시 폐지나 존치나 결과적으론 큰 차이가 없다”며 “공정위가 조중동 눈치를 보며 단속에 손을 놓고 있어 시장 혼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소득층 투기소득 차단…저소득층 자산형성 도와야”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는 것을 막는 첫 실마리는 당연히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다달이 벌어들이는 소득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자산격차도 벌어지고 결과적으로 계층간 소득격차마저 더 확대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훌륭한 일자리 대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자산 양극화 대책’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평가실장은 “무조건 자산을 많이 보유한다고 해서 세금으로 때려잡겠다고 나선다면 시장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전제한 뒤, “그것과는 별개로 고소득층의 불로소득이나 탈세에 대해서는 더욱 철저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유경원 보험연구원 금융제도실장도 “외환위기 이후의 소비자 금융 정책을 보면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며 “자산형성을 지원하는 제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쓸 돈이 필요한 저소득자들한테 대출 수단만 제공하면 결국 지출을 과도하게 유도하는 시스템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통사 편드는 ‘요상한 방통위’ 더 큰 문제는 방통위의 반박 논리가 이동통신 업체들의 주장과 거의 똑같다는 데 있다. 이는 방통위가 소비자 권익보다 이동통신 업체들의 이해와 손익을 더 따지기 때문이 아니냐는 지적의 근거다. 상품이나 서비스 공급자와 소비자가 가격이나 이용료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도 ‘시장’인데, 굳이 방통위가 나서 공급자 편을 들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방통위의 이중적 행태는 반박 자료에 있는 이른바 ‘향후 대책’에서도 나타난다. 방통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조사결과에 대해 반박하면서 우리나라 이동통신 요금이 비싸게 조사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기본료가 높고 통화료가 낮은 요금제’를 꼽았다. 높은 기본료 때문에 이동통신 요금 순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책’에서는 선불요금제 활성화 유도와 무선인터넷 이용료 인하 따위의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기본료 인하 요구가 나올 것을 우려해 초점을 흐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또 방통위가 소비자·시민단체·정치권 쪽을 향해 인위적인 요금인하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이동통신 업체들의 입맛에 맞춰 요금인하 기준을 주는 것이란 지적을 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노회찬 “반엠비 연대, ‘민들레 연대’로 새판 짜야” 그는 “현재의 반엠비 연대는 대안 연대가 아니라 반대 연대에 머물고 있다”며 “반대 연대는 이명박 정부가 의제를 던지는 대로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반엠비 연대의 가치지향은 6월 항쟁의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신민주연합론”이라며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관심에서 비껴가게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노 대표는 “새로운 비전 아래 정치세력과 지지기반 자체를 재편하는 반엠비 대안연대가 필요하다”며 △기간제보호법·파견법의 폐지와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 입법 △부자기여세 등 부자 증세 △4대강 살리기 저지와 토지·주택 공개념 도입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대안의제로 제시했다. 여기에 그는 ‘민(民)들레 연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노 대표는 “위의 정책 지향에 동의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를 짜야 한다”며 “야권 전체가 ‘뉴민주당 플랜’식의 필패의 길이냐 ‘민들레 복지, 생태, 평화 연대’냐를 놓고 일대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제기는 지금의 공조틀을 유지하다가 자연스럽게 민주당 중심의 선거연합 흐름으로 넘어가면서 진보신당의 입지가 축소될 가능성을 경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종철 대변인은 “새로운 정책대안 중심으로 야4당 공조를 견인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며 “그러나 대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무의미한 공조에 목을 맬 이유는 없을 것”이라며 공조 이탈 가능성도 비쳤다.

 

미, 북 ‘조선광선은행’ 추가 금융제재 미국은 이번 조처로 핵 관련 대북 제재 국면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874호 결의에 따라 지난달 16일 남천강무역회사, 홍콩일렉트로닉스, 조선혁신무역회사, 조선원자력총국, 조선단군무역회사 등 북한의 5개 회사를 제재 대상 기업으로 지정한 이후, 미국이 별도의 금융제재 대상 기업을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

... 그러나 미국이 대북 강경정책을 지속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하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 6일 케냐에서 <시엔엔>(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에 대해 어떤 디자인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공격적인 방식으로 위협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며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향한 조처를 취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10일 국무부에 의해 뒤늦게 알려졌다. 클린턴 장관의 말은 ‘미국의 체제 전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북한 주장에 답한 것으로, 북한한테 ‘체제를 보장할 테니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라’는 제안을 좀더 구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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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 No! 카니발니즘!

  • 등록일
    2009/08/12 00:57
  • 수정일
    2009/08/12 00:57

명바기와 똘마니들이 파시즘이냐 아니냐를 두고 지식인들 사이에 논쟁이 있는 것 같다. 한 쪽에서는 무자비한 경찰력 남용과 헌정질서 유린을 들어 파시즘이라 하고, 한 쪽(창비와 박노자 같은 분)에서는 아직 파시즘의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내 생각에도 MB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어디 감히 히틀러나 무쏠리니씩이나 되려고 용을 쓰냔 말이다. 히틀러가 지나가다가 콧방귀 낄 일이다. 그만한 역사를 만들려면 잔인함도 도가 지나쳐야 하고,  경제적인 환난 때문에 살짝 맛이 간 군중들의 열렬한 지지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파시스트들도 나름 악행의 규칙 같은 게 있고, 품격(?)이라는 것도 있지 않느냐 이 말이다.

 

MB를 봐라. 어디 그런 규칙이나 격이라는 게 있는지 말이다. 하는 말마다 구라고, 하는 짓마다 천박하지 않는가? 이건 뭐 이념도 없고, 사리분별보다 자기 이권이 앞서니, 아무리 지 나름대로 '착한 일'을 한다고 설레발 쳐도 일거수 일투족이 다 어리석어 보인다.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파시즘이 아니라, 잔인한 괴물의 카니발리즘에 가깝다는 거다. 무식하니 용감하다는 수준은 이미 넘어 섰고, 사람들을 먹이감 다루듯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 다루듯이 하는 걸 보면, 식인풍습이 아니고 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파시즘은 발뒤꿈치도 못 따라 가는 거고, 원시 종족적인 카니발리즘이 더 어울린다는 거다. 거기 죽어 나가는 대한민국 문명인만 불쌍할 뿐이다. 이건 너무 착해 빠진 게 흠인 문명인들이라, 당해도 당하는 걸 모르는 것 같다. 앞으로도 한 몇 년, 아니 한 10년 제 몸을 이 괴물에게 갖다 바쳐야 할 것 같아서 온통 끔찍할 뿐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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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1

  • 등록일
    2009/08/11 14:04
  • 수정일
    2009/08/11 14:04

서글픈 한 때다. 비는 오고, 당신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애써 어루만지려 해도 충분히 가닿지 않는다. 게다가 요새는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모든 것, 모든 결정, 모든 행운, 모든 기쁨도 채 절반의 만족도 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녀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 행여 잘 되지 않는다 해도 그 불운으로 인해 우리가 이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정말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싶다. 잘 하려고 한 짓이 오히려 악연이 되면 너무나 사는 게 헛될 것 같기 때문이다.

 

살아 가는 길에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축복을 느끼며 살기에도 짧은 생이다. 난, 우린이제 얼마를 살 것인가? 30년? 40년? 너무 짧다. 그리고 서글픔은 너무 길다. 이건 불공평하다. 바로 잡아야 한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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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주의 환상 유감

  • 등록일
    2009/08/08 16:24
  • 수정일
    2009/08/08 16:24

미디어법이 표류중이고, 쌍차투쟁이 패배하고, 촛불도 다시 일어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공분이 없을 리는 없다. 활동가들은 특히나 이 공분이 내면으로 타오른다는 것을 잘 아는 것 같다. 그리고 다중이 이제 '선거'로 심판할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 것인가? 공분이 내면으로 타오른다는 것까지만 맞다. 그러나 선거가 과연 저들을 '심판' 씩이나 할 수 있는 기제가 되는가? 지금까지 어땠는지 잘 톺아보기 바란다. 언제 우리가 선거 따위로 독재를 심판하거나 혁명에 나선 적이 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 선거라는 것을 우리만 하는 것인가? 선거권이 프롤레타리아, 다중들에게만 주어진 것인가? 아니다. 저들도 선거를 한다. 오히려 선거에 더 적극적이지 않은가? 철저한 계급투표를 통해 지금껏 승리를 구가해 온 쪽은 우리가 아니라 저들이지 않은가? 열 번 선거했다면 아홉 번은 저들이 열매를 따 갔다는 것을 벌써 잊은 것인가?

 

정세를 보자. 난 최시중 일당과 한나라당이 '선거'를 몰라서, 그게 다가 오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저러는 건 아니라고 본다. 저들도 충분히 그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안다. 다만 저들은 그 선거가 닥쳐 오면 이런저런 패를 꺼내 들고 사람들을 다시 현혹시킬 것이다. 그건 분명하다.

 

난 저들이 꺼내들 패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보는 편이다. 왜냐하면 선거가 오기 전까지 온갖 악행들을 폭력을 동원해서 대중들에게 행사해 왔기 때문에 조삼모사에 취약한 대중들에게 사탕 하나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간접세 인하라든지, 통신료 인하 따위 말이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그러한 '특혜'가 결코 애초부터 특혜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간접세는 이미 올린 것을 깍아 주는 것이고, 통신료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지 않은가? 조삼모사, 눈 감고 아웅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 주위에는 이를 모르는 '어르신'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또 하나. 지방선거에서 패하더라도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남았다. 저들은 잘 안다. 이 선거에서만큼은 박근혜와 딴날당이 승산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멍청한' 대중들은 소고기부터 용산, 그리고 평택에 이르는 처참한 만행들을 박근혜가 나서준다면 용서해, 아니 잊어줄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사실 난 이런 꼼수가 MB나 이상득이 최시중이의 머리 속에서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까지 돌아 보기에는 그들의 머리가 너무 썩었다. 이들은 그냥 밀어 붙이는거다. 그게 다다. 이 꼼수의 로드맵은 주로 딴나라당과 청와대 참모진들의 짱돌 속에서 열나게 돌아 가고 있을 것이다. 권력의 허수아비 밑에서 달콤한 열매를 캐 먹고 있는게 바로 저들이고, 그 태평성대가 세세년년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저들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선거에 대한 환상을 버리기 바란다. 백날 해봐야 도로아미타불일 것이니 말이다. 혹여 브라질이나 베네수엘라 같은 좌파정권이 요상간에  들어설 수 있다고 야무진 꿈을 꾼다면 얼른 일어나서 세수하고 출근이나 하기 바랄 뿐이다. 그리고 둘러보기 바란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이 땅에서 지금 필요한게 선거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 활동가들,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는 물질들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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