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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타결의 득과 실?

어제 TV는 온통 FTA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다들 긴급 토론회를 편성하고

정부 관계자나 반대 여론을 가진 몇 의원이나 시민 단체 사람들을 앉혀놓고

이미 타결된 FTA가 득이냐 실이냐를 따져대고 있었다.

 

에스비에스에 나온 협상자 중 하나인 홍석우(산자부 무역투자정책본부장)란 놈은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정말 잘 한 협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 입으로 정말 말하기 그런 얘기를 지껄였다.

 

또 민동석(농림부 차관보)라는 놈은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따지면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모든 일이 한 가지 관점으로만 보면 그런 거니까 다양한 관점으로 봐달라" 말했다.

무려 농림부 차관보라는 인간이.

국민의 건강과 위생은 그저 한 가지 관점일 뿐이라는 거다.

 

도저히 봐 줄수가 없어서 채널을 자꾸 돌리면서도

대체 뭔 얘기를 지껄이나 해서 또 다시 보다보면

나오는 건 욕이요, 속은 뒤집혀 메슥거렸다.

 

 

무엇이 득이고 무엇이 실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

엄청나게 많은 득이 있다한다해도

지금 농업이나 의료, 문화 분야를 그 '득'이라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게 무슨 수학 공식처럼 이 쪽에서 빈 걸 이쪽에서 채우는 것으로 평균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 다른 한 쪽마저 빈 부분을 채울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국민의 건강권까지 팔아먹는 것을 누가 대통령에게 위임했는가,

라는 노회찬의 말처럼.

나는 아무 것도 위임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놈의 국민 투표라도 할 생각을 했는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나 했는지..

 

아후 승질난다.

이제 뭐 먹고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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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표를 먼저 찍다

마침표를 먼저 찍다 / 이대흠


 .세상살이의 시작이 막장이고 보니 난 어쩜 마침표를 먼저 찍은 문장 아닌지 .막장은, 마침표는 이전의 것을 보여주는 구멍이다 .그 캄캄한 공사장의 먼지, 이 무수한 마침표를 통해 본다 .오래된 짐승의 알처럼 둥근 마침표 .내 생의 처음이었던 어머니, 그 마침표. 그녀의 검은 눈동자 .한 세상의 아픔이 그득하여 그녀의 눈빛은 맑다 .파이프 메고 어두운 계단을 오르며 난간에만 빛이 웅성거림을 본다 .난간에 버려진 저 작은 쇳조각, 깨어진 돌멩이가 결국 하나의 사상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어두운 곳이라 난간이 길이다 .난간을 걷는 나의 生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무겁다 . 무거운 것들이 적어 세상은 무거워졌다 .대부분 이 짐을 지지 않는다 .마침표를 찍자 여기부터가 시작이다.

 

 

마침표부터,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어.

책상 위에 걸려있는 2001년의 엽서 속에

이 시처럼.

.언제든 죽을 수 있으므로 고개 숙이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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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02

우스운 일이다.

하루종일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어안이 벙벙하다가도

자리에 잠깐 앉은 사이에 또 졸고 있다.

 

분신했다는 그 아저씨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본다.

어떤 마음이 있기에

그의 신념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기에

자신의 목숨을 내어가며

불 타는 그 순간에도 구호를 외칠 수 있게 만들었을까.

사람이 죽어가도 눈깜짝하지 않는 사람들은

또 어떤 심장을 가지고 있기에 그럴 수 있을까.

 

평화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깜깜했다.

지병 중 하나인 야맹증은 기어코 그 짧은 길에서 한 번을 넘어지게 만들었고

나는 노인정이나 회관, 혹은 옆에 집들에서 켜져있었을,

불빛들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아무도 슬픈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하는 그 곳에서

나는 괜히 우스운 짓을 하다가 돌아왔다.

몇 가지 일만 아니었다면 그냥 며칠 있다가

함께 이사를 하고, 더 떠들고 웃고 그러고 싶었다.

 

결국 담배를 다시 물었다.

발단은 지난주 종편 즈음부터인데

그 날 이후 몇 가지 일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한동안 잘 버텼는데 젠장쓰.

 

너무나 우울해서 너무나 우스운 이야기들을 자꾸만 지껄인다.

블로그를 끊고 싶다는 어떤 여자의 말처럼

나도 이렇게 씨부렁대는 걸 멈추고 싶지만

씨부렁거리지라도 않으면 완전히 주저않을 것만 같아서

자꾸만 중얼거리게 된다.

 

내일 쌀국수나 실컷 먹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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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중학교는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었는데

뉴스에서만 보던 '무섭고 끔찍한' 학생들 대신

환하고 밝은 아이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조금 시끄러웠지만, 몇몇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빛은

나를 두근두근 거리게 하고.

 

하지만 여전히

선생들의 학생 대하는 태도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하루.

역시 학교는 다시 다닐 곳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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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현현님의 [부끄러운 인생2] 에 관련된 글.

2007.03.28. 작성


0.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날씨조차 도와주질 않아,

우박을 맞고 비를 맞았다.

아프고 추웠다.

 

1.

알티비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알티비에 엑세스를 하는 방송팀으로서, 하기로는 했지만

사실은 이게 별 압박이 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2.

그 한 시간 사이 일어난 일.

-로비에서 나가라는 경비 아저씨와 실갱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가지 않고 버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감.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사건에 대한 한참동안의 대화

"말끔하게 잘생긴 놈이 왜 그랬대. 아유 나쁜놈. 그 놈이 이 안에 있어?"

 

3.



성폭력 사건이니 만큼,

피켓을 들고 있는 '여성'인 나를 바라보는 눈길도 만만찮음을 느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고,

어떤 젊은 여인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고 피켓을 한 번 보고를 두 어번 반복했고,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머 너무 안 됐다, 저 여자,

라고 말했을 때

사실 울컥, 했다.

'이봐요. 내가 아니에요.'

내 마음은 어느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서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꽤나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왜 그 순간 나는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는가,

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가, 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그녀의 행실이 그러하여 그리 되었다, 라는 편견에

나조차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아주 뭣 같아졌다.

 

나에게도 성폭력 피해의 경험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도 있고,

말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일도 있었고,

말했으나 이해받지 못했던(혹은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결국 나의 태도를 반성해야만 했었다.

내가 똑바로 하고 다니지 않아서 그래,

내가 너무 사람들을 잘 믿었던 거야,

내 잘못이야.

나는 아직까지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얼마전 한 친구에게 그런 경험들 중 하나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사실은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피켓 속의 이름 없는 그녀는

나이고, 그녀이고 우리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르고

실제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산다.

그 날 내가 들고 있던 피켓 앞에서

내 얼굴과, 활짝 웃고 있는 이형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보고 혀를 끌끌 차고 갔던 그 아저씨는, 어쩌면 평생가도 모를.

 

우울해도 기운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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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당신의 고양이님의 [옛날 옛적에] 에 관련된 글.

춘향전의 완본을 읽었을 때의 화끈화끈 *_* 이나

심청전 완본을 읽었을 때의 무시무시함.

해피엔딩으로 끝난 줄 알았던 '동화'들이

완본에서 그 현실의 징그러움을 그대로 드러낼 때

그 때 정말 나이 먹는 건 참 슬픈 일이군,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난 어렸을 때도 좀 삐뚤고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당고 포스팅을 보고

어렸을 때 썼던 독후감이 생각나서 급 포스팅.

(사실은 일이 하기 싫은 거야...ㅠ.ㅠ)



<심청전>을 읽고
     부처님은 요술장이

부처님
왜 그렇게 마음씨 착한 심청의 아버지를 그냥 눈을 뜨게 해주시지, 공양미 300석을 드려야만 고쳐주시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배가 고파서 그러세요?
그리고 왜 장님으로 태어나게 하셨나요?
심청이가 어딘가에 살면 아주 따뜻한 어머니가 계셨으면 좋겠어요.
부처님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어요. 물론 아주 좋은 곳에도 살고요.
부처님
이젠 그런 사람이 없도록 해주세요.
부처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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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 the strait gate


 

 

편집하다 심심해서 후후


흰색까만색 경찰들은 흰개미 흑개미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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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또또

여긴 내 구역이닷.

 

엉! 무슨 일이야!



자, 이 빗으로 날 빗어줘.

 

너희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어! (대략 2m 넘는 높이)

 

이제 잘거야. 꽃니불에서.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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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뭐 새삼 이제사 이름을 바꾼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서 새삼

새삼으로 바꾸기로 했다.

매우

즉흥적으로 말야.



 

내게 젤 먼저 생겼던, 엄마 아부지가 함께 지어준 이름은 智民 이다.

슬기로운 백성, 혹은 슬기롭게 백성과 함께

뭐 대략 그런 뜻이라고 들었다.

 

열여덟살때 즘, 엄마는 내 이름을 知旻 으로 바꾸어주었다. 획수가 좋다고 그래서였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예전에 학교 수업 때문에 점을 보러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을때, 이름점을 보는 곳에서 내 원래 이름보고 온갖 나쁜 말을 퍼부어대기도 했으니, 하늘을 안다는 좀 부담스러운 새 이름도 나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한 수업은

자신의 호를 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고전문학 수업이었기 때문에 한자로 된 를 정해야 했는데

한자에 젬병이던 나는 결국 기한을 한참 넘기고 말았고

온화해 보였지만 끈질겼던 선생님은 결국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발표를 시켰다.-_-

나는 고심 끝에 '모리'라는 호를 정했다.

발음만 보면 일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자진모리 휘모리 같은 걸 연상시키긴 하지만

한자로는 暮唎 다.

저무는 소리, 저녁의 소리, 뭐 대강 그런 뜻이다.

당시 좋아하던 장 모 시인은 나 모 시인과의 대담에서

침묵은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꽉 찬 상태,

곧 저녁 해가 질 무렵의 소리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난 저녁의 소리를 가진 사람, 침묵할 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처음 찾은 호는 당연히도 석음(夕音).

근데 너무 발음이 안 예뻐서 조삼모사에서 '모'자를 찾아내고

작은 소리란 뜻에 리를 찾아내서 모리를 만들었다.

자꾸 부르니까 예쁜데,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줘서 -_- 내 작은 서브 노트북에 이름을 모리라 짓고 계속 불러줬었다.

 

그러다 블로그가 생겼다.

그 전에 웹에서는 정말 다양한 이름을 썼었는데

여기선 처음에 주소를 번역한 '얼음곤냥이'라는 별명을 썼다.

근데 줄여서 부르는 것도 안 예쁘고 쓰기는 귀찮게 길어서

작년에 로리라는 이름을 썼다.

로리는 좋다. 예쁜 이름이고 예쁜 사람을 빗대었던 것이라 좋았다.

그러나 로리콘의 약자인데다가 -_-

알~ 발음은 어려우므로 ㅋㅋ

 

뭐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이름을 갑자기 바꾸기로 한데는 사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정말 그냥,

내가 늘 뭔가를 새삼스레 느낀다고 생각해서다.

모든 게 새삼스럽다.

너도, 나도, 바람도, 눈도.

늘 새삼스레 세상을 보고 싶은 거창한 마음을 급변명처럼 붙여본다.

후후

새삼이라 불러줘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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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1

무엇이 됐든 미친듯이 뱉어내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말이 자꾸 안으로만 들어가는 때다.

어떤 어떤 말들은 작은 상처로 시작돼서

안으로 썩고 곪아 들어가

이제 겉으로 보이는 작은 구멍을 조금만 건드려도

파삭 거리며 전체를 부술 것만 같다.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공간에 혼자 앉아있다.

1시간 넘도록 꽉 차 있는 6미리 테잎 두 개를 녹취하고

잠시 쉰다.

 

어느 순간엔 의욕이 넘치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들은 턱, 하고 가슴을 때린다.

나는 이렇게 평생 한 발자국도 더는 못 나갈 것 같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특별한 날이니,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많고 정리할 것도 많다.

편지를 쓰자고 제안한 내가 무색할 만큼,

한 줄을 쓸 때마다 눈물이 쏟아져서 견딜 수가 없다.

때로는 이렇게 사는 게 안타까운 시절도 있는 거라고,

그녀가 토닥이고 있는 것만 같다.

그 토닥임마저도

부끄러운 나날들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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