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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22
    푸른영상 - 기차길 옆 공부방
    간장 오타맨...
  2. 2014/04/22
    세월호 참극은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규제완화가 낳은 비극이다.
    간장 오타맨...
  3. 2014/04/18
    죽음과 망각의 시대....
    간장 오타맨...
  4. 2014/04/17
    세월호 그 인재 모두 무사생환을....
    간장 오타맨...
  5. 2014/04/13
    노동이 역사임을 자랑스러운 것임을 우리스스로 늘 자각하였으면...
    간장 오타맨...

푸른영상 - 기차길 옆 공부방

  • 등록일
    2014/04/22 23:41
  • 수정일
    2014/04/22 23:41

일상이 묶인 몸이라 여유가 있어 기간하지 못했던 것 보고 싶은 것을 즐기고 있다. 푸른영상의 기차길 옆 공부방을 어찌어찌 구해 보았다.
잔잔한 감동과 그 곳이 있어 마음이 놓인다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그 작은 감동과 이야기가 일상이 무미건조한 나에게 햇살을 비춰주고 있다.
투쟁도 그렇게 소소하게 그렇지만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투쟁의 감동에 감흥을 받고 힘받고 그 힘으로 밀고 나가기를 빌어본다.

그 잔잔한 감동 끌적여 본다.
이전 블로그에 쓴 글을 약간 손 봐서 올려본다.

푸른영상에서 만든 기차길 옆 공부방 영상을 보고서 인천에 살면서 그곳을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인천 만석동에 있는 오래된 공부방.....
"가차길 옆 공부방"

깊이 있는 공부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 대학가에 불기시작한 야학과 공부방 교사는 서울의 철거촌과 공단지역이 점차 사라지면서 서서히 그 명맥을 잃어가고 있느데.. 인천 만석동의 공부방은 약 12년간이나 지역민들의 애환을 가슴으로 간직하면서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 한 공부방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성장한 공부방 어린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차길 옆 공부방을 지켜온 교사 들... 그들이야 말로 이 시대를 부여않고 살아온 사람들인 것 같다. 계속 한 지역에서 자신의 사람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초기의 생각을 가지고 살 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만석동 주민들의 애환이라 말로 표현하지만 그들의 삶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막연히 공부방 교사의 삶이 낭만적 지식인으로서 비추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들의 내면을 유심히 살펴보면 무언가 우리와 다른 이상이 있지 않은지 감히 생 각을 해보게 된다.

정말 만석동 아이들의 그늘진 얼굴... 삶의 그늘진 모습들.. 마음으로 가슴으로 느끼지 않고서는 말료 표현하기란 정말 힘들다.

인천 만석동이란 곳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전에 철거촌에서 잠시나마 공부방 선생님 역활을 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인천 만석동이란 동네에 있는 기차길 옆 공부방이라는 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진한삶 의 단면을 같이 느끼고 싶다.

그 공부방이 있어 안심이든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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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극은 국가의 총체적 부실과 규제완화가 낳은 비극이다.

  • 등록일
    2014/04/22 11:26
  • 수정일
    2014/04/22 11:26

촛불이 아랫녘에서부터 밝혀지고 있다.
무사생환 기원을 바랬던 이들의 그 마음들이 모이고 기도가 되었다.

그 울산 공장에서 폭설의 재난에도 실습으로 알바로 일해야 했던 젊음이...

부산외대 O.T장이었던 실내공연장 건물에서 입시지옥을 탈출한 젊음이 꽃 피우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교육과 경쟁만이 존재하는 교육전장터인 교육현장 공교육이 무너진 자리... 그래도 고등학교 그 즐거운 추억이 될 수학여행에서 그 국가의 총체적 부실이 재난을 인재로 만들었다.

국가의 규제완화 재난 시스템 부재가 재난을 인재로 키우고 그 인재를 신속히 대응하여 살아있을 그 생명들을 수장시켰다. 또한 언론은 이 그 현장에서 생명들의 외침을 정론직필하여야 하지만 그 현장 취재에서 언론으로서 존재치 않았다.

국가와 언론 이 자본주의 이윤과 욕망이 재난을 인재로 키우며 그 꽃다운 생명 피지 못한 생명과 그 여행의 길 돌아오지 못한 길을 걷게하였다.

그 죽음이 생명에게 진혼곡 올리는 구슬픔이 미안함이 하나둘이 아니라 울분으로 표출되고 촛불로 번지고 있다.

이 사회 그 규제와 시스템이 노동자 인민을 때려잡더니 이제는 그 생명들의 죽음에 내몰았다. 이제 울분 분노 촛불들이 모여 그 추모 진혼곡으로 국가의 책임 부실 아니 작금 그 안전불감증의 원흉... 자본의 규제완화 그 부실의 공공성 규제완화를 외쳤던 자본에 대한 특혜 민영(사유)화라는 총체적 국가의 부실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을 어물쩡 넘기면 안된다. 우리 올해만도 그 귀하디 귀한 생명이 국가의 규제완화 공공성을 경쟁으로 보고 있는 정권의 "창조 경제"가 낳은 참극이다.

공기업의 방만 운영 비정규직 양산, 국민의 안정성을 시장에 팔아넘기고 있는 자본과 정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총체적 부실, 규제완화 민영화 논리를 앞세운 공공재의 시장화가 낳은 현상이다.

이 사태 그 촛불이 모이고 모여 추모를 넘어 우리의 생명을 국가로부터 되찾고 나설때이다.

이 길 민주노총이 메이데이 그 추모와 분노를 함께하여야 한다. 이 자본의 횡포 민영화 규제완화 개발독재에 맞서서 이 땅의 노동자 인민과 공분을 모아 총체적 부실 규제완화로 생명을 수장시킨 자본가 정권에 맞서 우리의 생명권을 그리고 자본으로 부터 피받받는 노동자 인민과 추모의 꽃에 진혼곡으로 넋 달래고 그 살인극 막기 위한 분노 저항의 횃불을 들때이다.

노동자의 날 세계 노동절 그 추모 울분 분노의 진혹곡으로 결의 다지고 저항의 횃불로 꺼져간 생명 위로하고 우리 생명권을 찾기 위한 길 나설때이다.

이 잔인한 4월 학살의 5월 맞이할 우리가... 나설때이다. 메이데이 기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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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망각의 시대....

  • 등록일
    2014/04/18 18:56
  • 수정일
    2014/04/18 18:56

죽음과 망각의 시대... 정치로 죽음의 굿판도 서열화 계층화시켜야 하나... 문제는 이 체제가 재난을 인재로 만들고 폭설로 한 꽃피우지 못한 학생들이 이 체제에서 공장에서 학교에서 O.T에서 이번 진도에서 죽었고 그 죽음에 대해 자본의 미디어와 다른 죽음이 부흔 이 체제에 대한 분노와 책임을 뭍고 있건만...

이 죽음의 굿판 죽음이 드리운 시기 재난이 인재가 노동자 인민의 삶을 짖밟고 생명을 앗아가고 있는데 자제가 되겠는가?

그 열사의 죽음 시대의 부음하지 못한 죽음이 정치 사안보다 앞서 생각하는 이도 있다.

그 아래의 정서가 대중적 흐름에 우리인식이 미치지 못한다면 어찌 계급운동 꽃 피울까? 투쟁은 그 죽음도 너와 나를 넘어 우리로 이죽음이 자본주의 체제가 만든 것임을 잘 알기에...

그 죽음에 우리는 한생명이 꺼지더라도 그 사회적 타살에 분노하고 투쟁하고 길거리에서 그 죽음에 부음하며 저항하고 투쟁하렸다. 그게 노동자 인민의 방식이고 그 죽음을 맞이하게된 체제에 맞서 노동자가 촛불을켜고 무사귀환 바라는 심정을 함께하였다.

이 체제 자본주의의 죽음의 굿판에 맞서 당당히... 어찌 한 생명 그 우주의 꺼짐에 슬픔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구보다 리 죽음 이 인재 체제의 문제 그세 슬픔을 넘어 분노하고 있건만 우린 그 아래의 바각 흐름 정서 객관적 시각으로 이 사안 체제의 죽음을 부른 인재에 맞서 분노를 넘어 체제에 저항하여야 하디 않을까? 그 작은 시작이 그 힘들이 노동자 인민의 슬픔 분노 저항을 넘어선 투쟁의 도화선 체제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건만...

그 시각 슬픔 분노가 어디로 향하고 있은지를 잘 보았으면 잘 인식하였으면 좋겠다.

대중의 시각은 늘 헤게모니에 따라 좌지우지하렸건만 객관적 체험적 인식에 그 힘 만들지 못하고 인식하고 조직하지 못한 학습하고 재조직화하지 못한 우리의 무능을 되짚어 보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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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 인재 모두 무사생환을....

  • 등록일
    2014/04/17 12:31
  • 수정일
    2014/04/17 12:31
타전되는 소식들 잠시 차단하고 그 투쟁 잠시 오늘 그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구조의 손길을 빌고 있을 그 세월호에 있을 생명들에게 보낸다.

무언이라도 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나의 마음이 오늘 그 재난, 인재를 보니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진다. 그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울림이... 방송을 보다 TV 크고 라디오 귀 기울이고 있다.

그 가족들의 마음 안산지역민들 그 마음들이 부디 그 생명들의 귀환을 바라는 우리내 인민의 염원에 부음하기를 바램해 본다.

생명을 살리는 길이 우선시 해야하지만 이 판도 정쟁으로 치닫게할 위선자 그리고 그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런 자본과 정권의 가증스러움을 본다. 그렇지만 그 불안과 생환을 기다리는 그 부모 그 가족의 마음이 어찌한 것인지 알기에.... 그 마음에 힘내라는 그 마음이라도 보내본다.

어제부터 먹먹하다. 그렇게 인재로 무심히 수 많은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그리고 무수한 인재를 보면서... 그 생명의 생환을 바램하는데 마음이라고 보태련다.

아~~~ 가슴이 뻥뚤린 날들이다.

시나 하나 걸어 본다.

어린 것

나 희 덕


어디어 나왔을까 깊은 산길
갓 태어난 듯한 다람쥐 새끼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 맑은 눈빛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고집할 수가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은
내 앞에 눈부신 꼬리를 쳐들고
나를 어미라 부른다
괜히 가슴이 저릿저릿한 게
핑그르르 굳었던 젖이 돈다
젖이 차올라 겨드랑이까지 찡해오면
지금쯤 내 어린 것은
얼마나 젖이 그리울까
울면서 젖을 짜버리던 생각이 문득난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않는 난만한 그 눈동자,
너를 떠나서는 아무데도 갈 수가 없다고
나는 오르던 산길을 내려오고 만다
하, 물웅덩이에는 송사리떼 무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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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역사임을 자랑스러운 것임을 우리스스로 늘 자각하였으면...

  • 등록일
    2014/04/13 18:57
  • 수정일
    2014/04/13 18:58
삶과 가치가 동일하여야 하는데... 참 그렇게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삶으로서 노동을 일구는자들이 이 땅 노동으로 이야기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과 동일할 지어인데...

우리내 교육속 그리고 문화속 깊이 자리잡은 사공농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몸과 머리 삶을 따로 놀게한다.

노동자 스스로가 노동이 자랑스런 노동으로 일구는 것이 노동운동인데... 노동자 스스로도 삶이 주는 팍팍함 그 억압과 착취 굴레를 자식에게만은 남겨주지 않기 위해 교육이라는 그 담론에 자식농사를 짖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내 노동이 갈 길 여전히 팍팍함을 느낀다.

노동의 가치 부여를 위해서는 그 노동이 이 땅에서 홀대 받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노동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을 만들고 인식시키는 것 그것이 자본으로부터 투쟁으로 쟁취할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내 노동교육이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교육에서부터 체계적으로 받고 그 체험 그리고 그 노동이 이 역사를 지탱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일깨워야 한다.

그 교육이 그 인식이 이 굴종의 노동을 역사적 노동으로 노동의 소외를 노동이 이 세상의 역사 주체임을 일깨우는 계기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그 이 땅의 천민자본주의을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임을 스스로 당당히 할 수 있는 길... 걸어야 하지만 그 길을 상기하고 작금의 노조운동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투쟁으로 일구어냈던 그 조직이라는 것이 직장이 되어버린 탓도 있지만 아래를 바라보지 못한 우리내 노조운동으로 포장된 노동의 단상이겠거니 한다. 말보다 행동이 행동보다는 인식이 되어야 하지만 그 것이 현장과 괴리되고 실천으로 타전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내 현 조직노동의 상층의 모습이다.

실천보다 주변상황을 이해타산을 따지는 현상에서 일은 많지만 정작 중요한 노동을 일구는데는 실속이 없는 현실로 타전된다.

과거 허리강화는 이제 확간의 단위에 대한 집적투자로 일정정도 이루었으니 이제 노조의 기둥인 허리강화가 아니라 몸전체를 위한 조합원으로 그 시야 돌릴 때이다. 스스로 자랑스러운 노동을 만들기 위해 작금 투쟁하는 단위에 대한 노조차원에서 투본이라도 형성하여 소통하고 그 투쟁을 지역별로 만들고 함께 일구어 나갔으면 한다.

이번 메이데이도 권역별 집회라 한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지금은 집중된 노동의 총단결 모습으로 집중하고 전국적 투쟁의 기치 높여야 할 때이건만.... 그 모이는 것 조차 전국적 동시다발이라는 이름으로 산개되어 있으니.....

삶과 행동이 언행일치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 삶으로서 노동을 말하지만 그 삶과 언행 그리고 행동이 따로 노는 것을 자주 본다. 삶으로 노동이라 말하지만 허위의식이 꽉찬 우리내 모습을 본다.

그 삶을 말하면서 그 삶과의 조화를 떠올려 보며... 스스로 낮고, 작게 아래로의 향한 삶의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스스로 물질화로부터 자유롭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삶과 행동이 중요한 문제임을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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