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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3
    노동자 주말에 대한 잡생각...
    간장 오타맨...
  2. 2014/04/10
    운동 말아먹은 세대... 의견
    간장 오타맨...
  3. 201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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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장 오타맨...
  4. 2014/04/08
    법무부 이주노동자 법개정에 대한 단상...
    간장 오타맨...
  5. 2014/04/04
    무심타(2)
    간장 오타맨...

노동자 주말에 대한 잡생각...

  • 등록일
    2014/04/13 09:16
  • 수정일
    2014/04/13 09:16

아침 산보 나가는 길...
노동자에게 주말... 참 주말이 주말이어야 하는데...
오고가는 통근버스 그리고 특근으로 달려가는 모습들이 낮선 풍경이 아니라 우리내 미조직화된 노동자의 삶이다.

늘 삶의 깊이보다 그 굴종의 노동을 삶으로 잔업 몇푼에 몇푼 받은 돈으로 욕망을 채워야 하는 그런 미조직화된 아니 조직화되기 어려운 자본의 덫에 걸린 노동자의 삶을 엿본다.

그 잔업이 주는 몇푼의 돈이 잉여임금이고, 그게 차량, 핸드백, 여가의 일부를 자신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그 고된 노동의 삶을 엿본다.
언제 우리는 그 노동을 정지시켜 금요일이 노동자의 일주일 노동을 마감하는 날이 올것인가? 그것도 자본으로부터 완전히 얻어낸 자유노동을 얻어낼 것인가?

우리내 노동자의 삶의 고달픈 현실... 일정정도 자본이 있어야 자신의 집을 가져야 하지만 그 꿈마저 포기하고, 그 협동이라 불리는 삶에서도 돈이 자본이 그리고 여유가 필요한 일정정도 소부르주아지의 삶도 못미치는 그런 바닥노동자의 삶.... 그 삶이 꺼진 기숙사 원룸촌... 지친 노동끝내고 잔업없이 8시간 특근 끝내 고향집으로 향하는 여성노동자, 젊은 노동자가 빠져나간 그 유령촌에서....

노동의 굴종을 엿본다.
미조직노동자 조직화를 이야기하지만 조직노동이 제대로 작동하여야 그 노동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상기해본다. 조합을 늘리기 보다 노동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려는 노력없이 기교 확대 양적확대만을 이야기하고 알맹이 빠진 초라한 쭉쟁이 우리내를 본다.

그 허울이 얼마나 부실하였던가? 그 외침 그 함성 다시금 투쟁을 위해 빈 머리 채우고 다시금 전열 가다듬어야 하지 않을까?
맑스-레닌시대 자본론이 노동자의 교양서였다지만 과연 우리내 그 교양서로서 철학과 이론을 접하고 있는지 고심해 본다. 다시금 일구어낼 것이 무엇인지 자명하지만 외연적 확장만을 한다.

그 노동자의 삶의 단면을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도 노동을 일으켜 깨우고 빈 자리 빈 공간 채우고 조직, 투쟁, 학습이라는 그런 삶.... 그 대포집에서도 토론하고 사회를 바라보던 냉철한 이성 그리고 따스한 감성 다시금 그 노동자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사상이라는 이름으로 되살려야 한다.

선험적 경향적 경험주의와 무지를 벗어나... 노동자에게 그 역사를 다시금 되돌려줘야 한다. 그 길에 우리사회 투쟁하는 자들 현장활동가들이 다시금 재조직화 길과 그 현장에서 정치를 노동을 불지펴야 한다.

관성과 타성을 벗어나... 모르면 배우던 시절로.... 노동자만이 아니라 활동가라는 자들부터 그 학습에 게으리 하지 말야한다. 함께 책한권 토론하고 논쟁하고 비판하고 서로 상호발전할 수 있는 그 길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노동이 힘이 없는데 어찌 조직되지 못한 자들을 조직한단 말인가? 우리부터 재조직화 되어야 한다. 사살의 누각을 건설하여야 한다.
그 노동자 정치와 노동자계급이라느 계급성, 당파성, 맹아를 만들기 위한 사상의 누각 건설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유일한 무기 노동자 당, 사상의 이행기로서의 사회주의라는 것을 건설하는 길.....

현실 운동이 꼬이니 프랑스와 유럽사회주의자들 처럼 좌익맹동주의, 경향적주의가 판친다. 그러나 블랑키주의자와 프루동만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내 현실이 참 서글프다. 그 투쟁이 희망이라지만 그 희망이 아닌 전망 그 새싹을 키워야 하지만 좌익맹동주의로 치닫는 그 경험주의 경향주의 경계 없이 현실을 안주하고 있다.

다시금 세워내고 만들고 건설하여야 할 것을.... 정치라는 이름으로 사민, 기회로 급속히 우회하는 현실에 그 깃발을 부여잡고 스스로 그 노동과 이념 사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전망이 있다 본다. 그 전망 스스로 밝히고 그 힘으로 다시금 노동과 정치 이념 세워내는 길 투쟁만이 아닌 현장의 노동조합운동을 계급적 선진활동가 현장정치의 태를 만들기 위한 고민으로 이어지를 바램하며....

이 공간 투쟁과 삶 정치가 공존하지만 노동자계급적 인식이 무지한 나에게는 여전히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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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말아먹은 세대... 의견

  • 등록일
    2014/04/10 06:57
  • 수정일
    2014/04/10 06:57

운동을 말아먹은 세대로서 앞으로 운동을 할 동지들에게 의견을 개진해 봅니다.

운동보다 조직이 우선되었던 시기를 선택 강요당하였던 시기가 있었지만 명확한 논쟁의 축에 비판과 토론 논쟁이라는 토대의 시대에 살았던 그 치열함을 전해주지 못한 저열한 우리내가 말하는 이야기랍니다. 그 전통이라 말하면 구차할까... 누렸던 세대의 자만이라 하겠죠.

늘 우리내 시대 넘쳐나는 이론과 넘쳐나는 현장 자료들 현장 자료집 그리고 그 속에서 늘 비판을 담지할 수 있는 논쟁이 비판을 넘어 사회를 변혁 아니 혁명하고자 하였던 열정이 가득한 세대를 누렸던 그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할 겨를 없이 그 이론과 그 토대에 함께 하였고, 사회는 부응하여 그 투쟁이 늘 연례 행사처럼 3월 해오름제 교박 4월 종로 가투, 5월 각 학교별 결집 지역 총련 및 전대협과 한총련 출법식 결의 투쟁 가투.... 그리고 8월 해방통일을 위한 8.15 그리고 하반기 좀 느슨하지만 맞이한느 전태일열사 기념 전국노동자대회... 선거라는 일상 패턴이 투쟁과 학생회 그리고 노동자 투쟁연대를 위한 일상을 살았던 학생때의 기억이 일상이엇습니다.

늘 3월과 4월 5월은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에서 서울시청 진격을 하지 못하엿지만 가투로 화염과 체루탄 그리고 그 집회뒤 함께하였던 이들과 정리집회후의 뒷풀이... 그 평가와 투쟁을 소소하지만 논의하였던 자리.... 술자리도 포함되지만 그때 시대를 역사를 계급을 격하게 고민하였던 우리내였습니다. 그 실천의 장으로서 새내기와 함께한 가투에서 늘 선배를 타박하던 후배들에게 계급을 이야기하며 조직화하고, 학습으로 투쟁의 단위 구축하였던 시기이기도 하였습니다. 실천의 장이 있으니 조직의 장이 열리고 이론을 위한 자기 구축 학습이 형성되었던 시기 그게 제가 경험한 운동이라는 순황의 재생산과 구축의 단계였습니다.

사회에 나오니 학생운동도 위축되어졌고, 위기라는 진단을 넘어 자기 재생산 고리가 위축되었던 시기.... 그 위기에서 대중성에 기인한 운동만이 나부끼고 그 재조직화보다는 현장 대응이라는 현실에만 안주하고 이념보다는 단어가 난무하는 그리고 추상의 구호와 투쟁만이 그 빈 터를 자축하는 세대... 그게 이어주니 못한 우리내의 잘못이지만 그 투쟁과 역사 계급을 스스로 자각하고 떨쳐일구어 내지 못하고 그 역사를 외면하게된 우리내 학생운동가들의 모습이기도 하겠다 생각됩니다. 넘쳐 흐르지 못하고 이념의 재구성할 좌파강단 피디조차 정권을 찬양하던 시기... 운동은 진부한 것.... 치업 경쟁이라는 그 울타리에 상아탑이라 스스로 인털리겐챠적 자존심을 갈구하던 배움터는 사라졌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문제도 있습니다. 그런 그/녀들과 함께하고 역사와 계급 사회를 일구어갈 계급이 누구인가 분명히 가르치지 못한 우리내 한계.... 현상을 투쟁으로 물량으로 대체하던 운동가들이 전망을 열어주지 못한 저열하고 독점적 그 치졸함이 작금 몇몇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아 나부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살아남은자의 슬픔이라 말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구축과 재조직화 단계를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즉자적 투쟁에 대응과 현실... 그리고 각자 조직이 선점한 조직에 대한 선거조직으로서 조직은 작동하였습니다. 기억 기억의 저편 아득하지 않지만 논쟁이 난무하였지만 비판보다 서로 다름만을 강조하였고.... 노조 조직을 깃발론적 선점 깃발을 꽃아 운동을 하였던 정립세대.... 그러한 운동이 작금의 풍토를 만들었습니다.

양에서의 질로의 전환 그러한 것은 기대조차 하지 못하고 그 선점한선거조직 승리가 조직의 기풍이었고 그 조직적 기풍에는 평조합원 노동자보다는 대외적 보여주기식 사업만이 강조되고 힘있는 노조와 강성노조라는 외연의 울타리 치고 정작 조합원의 아래로부터의 추동을 이끌지 못하는 초라한 단상을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것 갔습니다. 조합은 깃발이 아닌데.... 조합의 주체는 노동자 그 현장의 주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거라는 틀거리에서 노동운동을 선거라는 틀로서 노동조합으로 축소하고 하향시켰습니다.

스스로 권력이 되고자 하였던 부끄러운 현실 극복해야 합니다. 그 현실이 작금의 노조운동의 파탄 노동운동의 질곡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그 순순히 하였던 노동운동으로 노조운동의 벽 깨부고 나서야 할 때입니다. 어려울 수록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우리는 동지입니다. 때로는 격한 논쟁으로 비판을 가할때도 있고, 서로 보듬어야 할때고 있고 함께 비판을 넘어 일구어야 할 노동해방이라는 신세상을 위해 각자 그 위치에서 격하게 투쟁하고 논쟁하고 비판하고 동지애 잃지 않고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 물려준 것보다 편하게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친할 수록 동지애적 비판이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가 좋다는 뭉게기식 활동 이제 지향해야 합니다.

동지를 원한다면 더 많은 비판 그리고 더 많은 스스로의 조직화와 학습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 술판의 정치 술판의 결맹 걷어 치우고...

우리 현실을 직시하고 투쟁하는 노동자 곁 그 현장 지키고 스스로 연대를 넘어 계급의 편 노동자 편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누가 묻는다면 난 계급의 편 투쟁하는 노동자의 편이라 자신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빗발치는 투쟁의 작금.... 그 현장 다시금 일으켜 세우기 위해 스스로 계급의 편에 서기 위해 그 조직, 학습, 실천 게으리하지 않을 활동가 조직들을 기대하며... 조직이 그 조직 재조직화의 순기능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램해 봅니다.

후배활동가들이 활동가로서 이 땅 노동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지만 선배들님 그 후배 교육 무심하였던 것을 책망해 봅니다. 스스로 학습하여 켜야 했던 시대 후배들을 보면서.... 수혜 받았던 개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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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고공농성...

  • 등록일
    2014/04/10 06:51
  • 수정일
    2014/04/10 06:51

정리해고, 노조탄압, 노동탄압에 맞선 투쟁하는 노동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지도부의 투쟁을 이끌기 위해 스스로 하늘사람이 된 철도노조 고공농성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이 타전된다. 그외 사회적 투쟁으로 확대되지 않는 소소한 노동자 정리해고 원직복직 쟁취투쟁들... 무심히 날수의 의미가 켜켜히 쌓여가는 투쟁들이 소식이 되어 타전된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외치지만 여전히 그 목소리 투쟁에 모르쇠하는 우리내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단위들... 과거 투쟁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지만 선거때만 투사가 되어 머리띠 동여메고 나서는 그런 시츄에이션에서 구속을 각오한 투쟁의 결을 발견할 수 없다.

어찌하였건 투쟁은 주체들의 싸움이다. 아래로부터의 기운이 지도부를 앞도하여야 한다. 그 힘을 위해 우리는 그 철도농성장으로 달려가 지지와 엄호 그리고 내일 강제전출과 전보가 감행되는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실천을 만들고 지도부에게 총력투쟁의 시동을 통해 즉각 총파업요구를 걸고 나서야 한다.

지도부의 파업결단을 아래로부터 강제하고 조합원 즉자적 현장결의로 지도부를 강제하여야 한다. 그리고 나서서 투쟁을 엄호하고 다시금 철도 민영화(사유화) 전선을 철도노동자의 주체적 투쟁의 의지로 전선을 확대하여야 한다. 어떠한 독대와 단합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현장노동자의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투쟁을 위해 엄호 지지 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시야 그 힘이 우리 투쟁하는 노동자로 향하여야 한다. 지도부가 외면한 노동자 투쟁 자본과 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연대하여 노동자투쟁연대전선을 구축하고 이 투쟁의 기운으로 다가올 메이데이를 만들고.... 그 힘으로 민주노총 지도부의 투쟁과 힘을 각 단위 산별노조 및 가맹노조의 투쟁을 도출하여야 한다.

현장노동자의 고민... 선진활동가들이 이제 그 투쟁을 현장 사안과 맞물려 현장선전전을 통해 노동자 투쟁에 함께 할 것을 촉구하여야 한다. 노동운동이 어려울수록 현장 선진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아래로부터 현장투쟁을 평조합원 운동을 만들어낸 기초단위... 이제 현장노동자 선진활동가들이 나서고 그 길에서 아래로부의 현장운동 평조합원 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노동자 총단결 총투쟁의 기치로 무뎌져가는 현장투쟁전선 아니 자본의 위기전가 고통전가 공세에 맞선 투쟁... 민영화저지 전선투쟁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철도노조가 그리고 현재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가 투쟁의 전망을 열고 있다. 그 전망에 우리는 투쟁과 연대로 화답할 때이다. 그 투쟁하는 모든 주체들이 모이고 토론하고 공모하여 투쟁을 확대하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현재 투쟁을 해태하고 있는 지도부를 강제하여야 한다.

이게 투쟁의 전망이고, 노동자 총파업의 시발점이다. 널부러진 희망 걷어치우고... 이제 투쟁을 다시금 조직하고 현장을 재조직하고 현장에서 조직, 실천, 학습이라는 그 운동을 시작하여야 한다.

그 투쟁의 회색적이고 관조적인 술판 걷어 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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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이주노동자 법개정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14/04/08 18:14
  • 수정일
    2014/04/08 18:14

이주노동자 법이 개정된다.
농축산, 어업 이주노동자, 그리고 단속직 노동자의 노동법 개정때도 그렇게 조용히 2010년 넘어가서 직금 농축산, 어업 이주노동자와 단속직 노동자들이 노예법이라고 외치지만 그 법을 철회할 투쟁과 사회적 힘이 없는 우리에겐 그냥 처다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법 63조가 철폐되지 않는한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농축산, 어업 이주노동자, 단속직 노동자는 이 땅의 노예이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도 지금 법무부가 추진하는 법이 추진되면 두부류로 존재할 것 갔다. 다시금 재고용연장을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다시금 사업주로 부터 고용허가를 받아 재입국이 되어 고국에가서 퇴직금을 수령하고 다시금 한국에 입국하여 노동을 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미등록이주노동자를 감행하여야 할 이주노동자는 그러한 처지에 놓여 있지 못할 것이다. 다만, 미등록이주노동자가 되었을 때 퇴직금과 국민연금을 신청하면, 그 시효가 3년 이내라서 수령을 받고 한국에서 삶을 정리하고 강제출국 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내 이주노동자운동도 그 조직되었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 이후 투쟁에서도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그토록 외쳤던 노동비자(노동허가제), 노동권리, 사업장 이동의 자유, 건강권, 교육권 이라는 내용에서 주로 합법체류자격을 부여 받은 이주노동자의 권리 문제로 치환되는 그리고 조직되는 경향들이 있다.

지금도 법무부 단속직원의 강제단속을 피해 그렇게 숨죽여 노동의 삶 이어가고 있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삶이 눈에 밟힌다.

아이들이 교육받을 공간이 없어 그렇게 마을 할머니 손에 키워지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병이 두렵지만 하루라도 가족의 닥닥같은 송금요구에 아프지만 돈을 벌다. 그만 자신이 병자가되어 깊은 시름에 병원비보다 생과 사의 갈림길 있을 미등록이주노동자, 그렇게 우리내 한국속에서 이방인 유목민이 되어야 할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에 더 신경쓰고 그 소소한 법들보다 그/녀들이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 대접받을 고민이 더욱더 필요한 것 갔다.

2003년 2004년 외쳤던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외침... 그 때 투쟁이 모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권을 보호하였다.
현재 이주노조가 그렇게 대구 성서공단노조가 그렇게 외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법외에 놓인 강제단속으로 내몰리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의 문제에 우리가 더욱더 관심과 지지 그리고 연대 투쟁이 붉어지고 그 노동자들을 위한 조직화 투쟁을 더욱더 드높여야 한다.

명동성당의 투쟁하였던 그/녀들의 외침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해결 지점이 안보인다.

무심히 이주노동자문제들이 고용허가제 안의 이주노동자 문제로 협소하지 말고 다시금 노동허가제를 통한 노동비자. 이주노조 전면 합법화, 사업장 이동의 자유, 건강권 교육권 보호를 위해 더욱더 연대하여야 한다.

농축산, 어업 이주노동자의 노예법인 노동법 63조 폐지운동과 함께... 그냥 무심히 올려지고 있는 이번 법무부의 개악법을 보면서 그 돈으로 이주노동자 보호를 한다는 미명하에 그 벌금으로 뻘짓할 놈(이주노동자 과징금 국고 존치액이 900억, 그리고 고용보험 이주노동자 수령하지 못하고, 국민연금 수령하지 못한 액수도 상당한 액수 일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은 사측에서 외국인 고용보험이라고 근로복지공단에 신고하여야 고용보험을 수령할 수 있다. 일반 고용보험을 들었더라면 실업급여를 고용보험에서 지급하지 않는다.)들만 신났겠다.

더욱더 미등록이주노동자 문제에 우리 이주노동운동단체들이 고민하고 귀 기울이고 연대하고 투쟁에 나서야 한다. 명동성당 그 농성이 10년이 지난 지금 이주노조 또한 그 10년 역사 그리고 10년전 전국적 이주노동자 단일 조직으로서 이주노조 건설을 위해 그렇게 모이고 토의하고 고민하였던 2003- 2004년도 투쟁 기억의 연장에서 이주노조 창립 2005년 4월 24일 창립하여 얼마 있으면 창립 9주년을 맞이하는 작금 고민하고 더욱더 그 사각 논외로 된 우리내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 길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고 조직하고 실천하고 학습하는 길 같이 걸어 나가야 한다.

그 기억 함께 전국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건설을 함께하였던 한 사람으로서 그 길 늘 항성 연대하고 투쟁하고 실천하는데 이바지 하고자 한다. 그 길을 늘 지켜보고 지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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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타

  • 등록일
    2014/04/04 07:51
  • 수정일
    2014/04/04 07:51

오늘 철도노조 조합원 자살(사회적 타살)소식을 접하였다.
분노가 치민다.
그 사회적 여론을 등에 업고도 제대로 투쟁을 조합원 힘으로 이탈이라는 핑계로 자본에 투항한 철도지부도부의 태도가 분노를 머금게 한다.

그 자본의 정세에 맞선 스스로 사회적 투쟁을 해태한 결과가 지금 작동하고 있다.

이 어찌 분노하지 않을수 없는가?
철도노조 23일간의 파업을 이루었던 것은 지도부의 의지보다 조합원의 의지 투쟁에 대한 사회적 끓어오르는 아래로부터의 기운이었다.

이 죽음의 굿판 어찌 하곘는가?
투쟁의 해태가 가져온 결과 그것이 죽음의 끝판이다.

철도노조가 이전 파업투쟁 이후 그 현장에서 해고와 조합원 징계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던 현장탄압에서의 조합원 해고에 따른 현장에서의 힘겨움 그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3회에 걸친 파업 그리고 지도부의 조합원 총의를 모아내지 않은 철도노조 파업투쟁이 낳은 하나의 형태이다. 노동자 투쟁은 조합원 힘 그리고 의지로 가야만 이러한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는다.
작금의 노동조합운동에서 지도부의 형태가 낳은 형태 그리고 예견된 그 파업후 후폭풍에 대한 조합원에 대한 지도부의 단도리를 하지 못한 결과의 초래이다. 최선을 다했다. 조합의 어려운 조건이다. 지금 탄압을 받는다지만 아래로부터 투쟁의 기운을 모아내고 결집하고 나아간 이상 그 결과에 대한 우리의 투쟁은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조합은 조합원을 챙기고 함께 나서야 했다.

자본의 사회적 타살과 더불어 우리의 무능한 조합운동이 조합원에 전망을 만들지 못한 결과이다. 희망이라 치장한 그 덫이 그 결과를 그 후폭풍을 만들어 낸 것이다.

산자의 비겁한 밤이다. 그 욕도 지껄이지 못한 못난 나를 책망하고 비겁하고 참 한심을 책망하는 밤이다.

이제부터라도 그 죽음에 화답하고 자본에 맞선 총투쟁 총노동의 태세로 나서야 한다. 우리의 무능 그리고 철도노조의 그 굴욕이 낳은 죽음이다. 자본의 사회적 타살 이전에... 아래로부터의 조합원을 조직하고 그 재조직화하고 함께 나서는 현장투쟁 소흘리 한 우리내의 잘못이고, 자본의 죽음에 무대응한 우리의 무능이다.

치떨린다. 그 투쟁 날려버린 우리내 노조운동이 우리내 조합운동이 참 무심히 다가온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굿판에서.... 그 잊혀질 이름을 다시금 떠올리며... 허한 가슴 담을 길 없다. 우리의 잘못이다. 우리의 무능이다. 우리의 조합주의 운동의 한계이다. 참 무심하고, 무참하다.

이 더러운 세상 이 끝 언제 그칠거냐.... 그칠 수 있을까? 한탄해 본다. 허심을 넘어 눈물 흘릴자격 없는 자들인 우리내가... 무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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