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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2/18
    과거의 흔적...
    간장 오타맨...
  2. 2014/02/17
    5년 지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간장 오타맨...
  3. 2014/02/17
    동해 묵호항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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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4/02/13
    아프리카민속박물관 이주노동자 문제해결에 대한 소회
    간장 오타맨...
  5. 2014/02/13
    225 국민총파업?
    간장 오타맨...

과거의 흔적...

  • 등록일
    2014/02/18 14:49
  • 수정일
    2014/02/18 14:50

요근래 이전 투쟁시기 관리하였던 홈페이지에 자주 들어가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지금은 자료가 거의 다 사라진 것도 있지만 그럭저럭 쌍용차공투본 페이지 그때의 흔적들을 보면서 그 때 그랬지 상기해 본다.

작금 법원의 판결 그 결과로 힘을 받고 있을 쌍차 노동자들의 모습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2001년 그 대우공투본때 전국을 경악하게 했던 경찰의 폭력만행 사태와 wanted 김우중과 철도/발전/가스 공동3사 투쟁의 당시를 위해 곧잘 방문한다.
지금 과거가 되었지만 현재를 일으키는 그러한 모습에서 우리내 노동의 변모 집회시위문화의 분절을 발견한다.

대학시절 매년 4월이면 출범식 교박도 없어진 지금.... 집회문화도 참 서글프게 변했다.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본다. 그 시절 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떠난 선배들의 모습 그리고 그 전통 이어 받아 졸업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취업의 전투장으로 변한 대학은 우리시절만 해도 그 뭐시라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워 지었던 시절.... 그 시절 그렇게 현장으로 현장으로 많이 떠났다. 그러나 똑똑한 이들은 변호사다 뭐 기업 CEO다 하며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 있다 작금... 그러나 무식을 자랑하는 나 같은 인간은 그 언저리 부여잡고 그 졸업장이 주는 사회적 특권을 벗어 던지고 스스로 자칭 고졸의 삶으로 노동을 생계로 살아가고자 버렸지만... 노동현장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비겁자가 되어 그렇게 언저리 단체상근으로 노동의 주변부 삶을 살아왔다. 스스로 사교육 시장 반대를 위해 그 흔한 과외도 학원강사도 하지 않았다. 운좋게 단체상근으로 근근덕지게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삶은 때론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주변의 동료들... 동지들 그런 이들 많이 있지만 나이가 차오르니 그 사람도 자본주의 물질적 삶에 자유로울 수 없어 서서히 학원강사 그리고 그 삶도 특정치 않으면 주류적 삶으로 편입해 간다. 그렇게 그렇게 주변부 사람들은 떠났고, 뭐 그 투쟁으로 일구어낸 사회적 명성으로 그 자리 박차고 나가 다른 삶을 사는 이들 무수히 보았다.

그래서 스스로 똑똑하기 보다 무지한게 이 노동의 언저리 부족한 삶을 사는데 부족함이 때론 큰 무기로 다가왔다.
작금 뭐 그렇게 살게 해준 노동현장 언저리 부여잡을 수 있게 공간을 마련해 주었던 단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그 현장과 함께 20대후반 30대 40대 초반을 같이 보낼 수 있어서....

작금의 시대... 그렇게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여전히 이 땅의 노동의 변화된 지형에 투쟁으로 일으키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에서 노동의 전망과 미래를 발견한다.

서울 진보넷과 함께 사용했던 노동넷 5평 남짓 갈월동 사무실에서의 기억... 그 1평 남짓 공간에서 대우, 한통비정규직, 서울지역 무수한 비정규직사업장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서울지역 비정규직노동자 지금은 깃발을 내린 투쟁을 타전하고 동영상을 만들던 참세상방송국 기자들의 진정성 어린 기억들 같이 그 밤샘으로 소주한잔 하면서 다음날 현장을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였던 기억이 벌써 10년 세월이 지났고... 그렇게 나의 30대를 불태웠던 기억의 저편이 추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작금 몸이 좋지 않아 병원과 산보가 일상이 된 일상이지만 그 때를 기억하며 다시금 그 현장 언저리에서 삶을 부여잡기 위한 나름의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다.

몸은 많이 좋아져 그럭저럭 이른 아침 가족의 도움으로 한방병원을 오가는 무료한 일상이지만 그래도 주말 어디론가 떠나는 여유와 산보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살았던 흔적 그 기억의 저편의 주류가 아닌 비록 가난하지만 비록 직장이라는 일상이라는 틀에서 남들처럼 삶을 부여잡지 않았지만 그 투쟁의 현장과 나름 이 길을 걸으면서 가고자 하였던 길을 지금까지는 잘 이어져 왔다.

그 과거를 거울삼아 다시금 노동의 언저리의 삶을 이어가야 겠다. 비록 비루한 삶이지만.... 그 흔적들을 삶의 자양분으로 삼아서 또 올해 몸살림으로 몸 일으켜 추스려 나가야 겠다.

주변 동지 지인들 그리고 알고 있던 사람들의 그 격려와 지지 힘의 응원을 삼아서... 또다시 그 노동이라는 언저리 길 다시금 추스려 가야 겠다.

기름때 얼룩진 노동현장에서 쫓겨나 봉급쟁이 삶을 박탈당한 비주류의 삶이 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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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지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 등록일
    2014/02/17 14:10
  • 수정일
    2014/02/17 14:10

5년전 그 옥쇄파업을 주도하였던 해고자 동지들이 모였다 한다.
그 투쟁의 현장 불지피며 공장 구석구석 노동자들이 사수하고 시설보전하며 교육, 학습, 스스로 파업의 장을 열었던 쌍용차노동자들이 만났다.

함께살자! 해고는 살인이다! 외치며 나를 믿고, 동지를 믿고, 조합을 믿고 투쟁의 최선두에 섰던 자랑스러운 쌍차노동자들이 모였다.
스스로 파업학교를 열어 스스로 조직하고 실천하고 투쟁하였던 노동자들 77일의 투쟁전사들이 모였다.

그 가슴에 24인의 동지의 죽음 마음속 간직하고, 함께 그 마음으로 모였다.
그 뜨거운 늦봄과 여름을 그 쌍차 평택공장에서 보냈고. 그 동지애로 조합을 중심으로 자본이라는 오랑캐 무리에 결코 굴복할 수 없다 말하며 안시성이 되어 옥쇄파업을 결기 있게 지펴나갔던 쌍차노동자들이 모였다.

도장공장안에서 투쟁을 불사르며 연대단위가 쌍차대교를 넘어와 자본과 정권에 의해 닫힌 쌍차정문의 봉쇄를 뚫어줄 것이라는 깊은 믿음을 가지고 자본의 헬기에서 쏟아 부어내는 체류액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하던 그 투쟁하던 쌍차노동자들이 모여 자본과 정권에 의해 통보받은 노란봉투를 찢어버렸다.

그 현장에 모인 자리에서 다시금 공장으로 기필코 투쟁승리하여 정든 일터에서 임펙트 쏘으며 일할 날 학수고대하는 그 날이 올해 꼭 돌아오리라 본다.
그 투쟁의 길 험난하였지만 스스로 투쟁을 열어제낀 쌍차투쟁 승리로 이 땅의 정리해고와 노동탄압으로 얼룩진 노동의 현장에 단결투쟁승리의 심신 않아오기를 바라며....

그 파업현장 함께살자! 사진 올려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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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묵호항 산책...

  • 등록일
    2014/02/17 11:59
  • 수정일
    2014/02/17 11:59

주말 바람쐬러 동해에 갔다 왔다.
그곳 눈폭풍이 흔적이 있는 자리 묵호항은 그래도 사람들이 그럭저럭 있다.
속초 대포항이 지자체의 도시미관정리사업으로 완전 초토화 된 것과 다르게 묵호항 방파제와 그곳 수산시장은 그래도 엣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바람이 좋았고, 그곳도 설원이라 구경하기 좋았다.
산도 좋지만 그렇게 바닷가 가는 것도 좋다.

세상사 어지러운 현실.... 그러나 목적과 방향성 잃은 우리내 투쟁의 모습을 오늘 투쟁에서 보았다.

박근혜 선거부정과 민주주의라는 시대를 역행하는 구호의 집회가 깃발을 나부끼며 투쟁을 타전하고 있다. 시대는 변했지만 그 진영은 여전히 민주대 반민주 보수대 진보라는 낡은 구도로 정치권을 향한 비판적 지지와 구애를 하는 모습에서 우리내 투쟁의 목정성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시대에 맞는 시대에 인식이 필요하지만 그러나 우리내 정치권과 진영은 과거의 낡은 인식이라는 구도로서 자신의 정립하고 정치적 지향을 토대로 삼고 있다.
부정선거 국정조사 실시하는 것 자체가 옛 모습과 다르다. 그 인식의 기반의 천박함 투쟁이라는 단편적 인식에서 우리는 지금 정치라는 것을 국회라는 것을 기대는 것 그것이 91년 시민사회가 말한 시대적 과제를 등안시 하고 시대의 등을 밝히겠다는 참여연대와 경실련의 출범선언문에 나온 그 정치 지향자들의 스펙을 위한 자리마련을 위한 운동에 우리도 편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운동의 건강성이 상실된 시대 건강한 운동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만큼 인식과 사고 철학은 죽어 있고 이분법과 반정립적 운동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는 모습에서 투쟁은 요원하다.

작금의 시기... 이 땅의 빗발치는 투쟁을 두루 살펴본다면 어디에서 출발하고 그 힘이 사회적 기운으로 사회적 힘으로 출발하고 나아가야 할지 분명할 지인데... 권력재편기 그 권력과 결탁하여 떡고물을 얻기 위한 꼼수적 운동이 작금의 시민운동이다 사회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편승하여 왔다. 그리고 그러한 기운이 국회라는 절대권력에 입법활동과 정치적 이슈화를 통해 사회적 투쟁의 힘보다 한 개인 권력의 힘으로 표출하며 입법조례다 입법활동이다 하면서 법제화하며 운동의 영역이 사회복지영역으로 확립되고 확장되었다.

많은 활동가들이 이러한 입법으로 법제화로 마련된 복지적 틀속에 단체의 장과 사무장이 되어 그 단체를 운영하기 위한 활동 그리고 그 법조례운동으로 사회적으로 뜨거웠던 열사들의 외침과 활동보다 단체를 운영하는데 사무로 활동으로 피로도가 축척되고 그 길들여진 길 속에서 그냥 활동이라는 것 그리고 그 법이라는 테두리보호 더 많은 예산 확보로 신경이 온통 신경이 곤두서면서 운동이라는 영역이 사회운동이 아닌 사회복지로 전락되어지는 길들여지는 길... 편하지는 않지만 단체운영이라는 길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사회라는 틀거리에서 변혁성과 혁명성은 서서히 서서히 잃어버리고 그 단체라는 틀 그리고 더많은 자신의 단체를 위해 확장으로 되어 간다. 그리고 많은 헌신적 활동가들이 사회단체보다 관료적 상근비가 지급되는 단체로 자신의 위치와 옷을 갈아 입고 그곳에서 그 진정성 어린 활동을 서서히 거세되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렇게 우리는 체계안으로 그리고 체계보다 생계로 운동을 이탈하거나 자신의 사상을 생계라는 이름으로 잃어버리거나 그 비판의 대상의 조직에 속하면서 혁명성과 변혁성을 잃어나가는 활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선배들이 그렇고 많은 이들이 그렇게 조합의 관료로 갔다. 그렇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조합의 조직관료로... 왜 우리는 그 뜨거운 노동현장으로 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우리 활동도 길들여져 있다. 그러한 운동이 오늘과 같은 박근혜 퇴진! 민주주의 수호!라는 철학이 빈곤한 대중성에 기인한 활동으로 대중을 끄집어 내기 위한 기만적 운동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 운동에서 주체인 노동자 인민은 거세되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선험적 운동 노동자 인민 주체가 결여된 운동에서 과거 촛불의 그 향수를 바랜들 그 대중은 운집할 것인가? 그 운동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사회적 투쟁의 전제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과연 사회는 역사는 진보할 수 있단 말인가? 그 촛불은 사회적 공감대라는 사회적 투쟁의 산물이고, 사회적 투쟁이 노동의 투쟁이 일구어낸 산물이다.

작금은 요령의 활동으로 점철되고 있다. 자신의 계급적 기반에서 투쟁을 조직하기 보다 대중성에 대한 맹종의 운동... 그리고 정권의 타도가 아닌 퇴진 그 퇴진 이후 그나물에 그밥에 대한 찬양.... 2012년 문재인 당선에 대한 그 염원의 재탕이지 않을까?

박근혜 퇴진! 민주주의 수호!라는 구호가 작금의 빗발치는 투쟁 인민의 생존권 탄압의 모습에서 철학적 빈곤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그 목적성과 사유가 결여된 그 빗바랜 구호에서 시대철학이 사라졌음에 서글픔과 인식의 빈곤함이 이 시대 투쟁도 드세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오늘은 편하게 바다를 바라보았고, 간만에 간 묵호항에서 도루묵을 먹으며 바닷바람 맞고 왔다. 그냥 바다의 모습... 묵호항의 정겨움을 눈으로만 담고 왔다.

눈폭탄으로 눈내린 현장 재설차량으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미안함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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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민속박물관 이주노동자 문제해결에 대한 소회

  • 등록일
    2014/02/13 19:10
  • 수정일
    2014/02/13 19:10

아프라카박물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러나 현재 E-6(엔터테이너먼트)비자로 입국하여 민속박물관과 지자체 민속해외공연자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에이젠시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 대한 촛점만 맞춰서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다.

고용허가제와 다르게 E-6비자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에 에이전시가 비자를 신청하여 2년 체류기간으로 들어온다.

그 한국에이전시와 그 송출국 에이전시 2중계약으로 고통받고 있다. E-6비자로 들어오는 대다수가 현지에서 500-600달러 송출국 에이전시에게 100-200달러 그리고 나머지는 한국 에이전시의 폭리를 취하는 형태로 열악한 조건으로 근로계약서와 다른 에이전시 소속 전속계약서를 송출국 에이전시 소개로 작성한다. 그리고 에이전시의 체류기간연장이라는 무기로 이러한 문제들을 쉬쉬하고 수면에 들어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에이전시 이중계약으로 고통받고 있다. 아프리카박물관 이주노동자들만이 문제인가 에버랜드, 롯데월드, 그외 수많은 지자체 공연단이 이러한 고리에 노출되어 있고, 미군기지, 호텔 등지의 E-6비자로 오는 다양한 나라의 이주노동자의 현실로 치닫고 이에 대한 해결의 범위를 한국사회 송출과 에이전시 문제로 치닫게 하지 못하고 끝낸것이 못내 아쉽다.

열악한 기숙사의 문제 이주노동자들의 기숙사인 이 땅의 모든 컨테이너 기숙사 특히 농촌과 어촌 그 황량한 들판의 5평 남짓 공간에서 4명의 이주노동자가 살아가야 하고, 어촌 새벽녘 고기잡이를 나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에 대한 근로기준법 제 63조 1항에 대한 개악저지 등 현안이 많이 있지만 끝내 이러한 문제들이 국회라는 제도정치의 힘을 빌어 해결되었던 것이 못내 아쉽다.

이주노조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해결을 위한 활동으로서 이 땅의 이주노동자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다시금 상기하고 이 힘으로 이주노동자 노동권리와 차별적 억압과 탄압에 대한 사회화 투쟁으로 치닫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프리카박물관 노동자의 문제로 E-6비자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상기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재 이 땅의 이주노동자들이 아프리카박물관 이주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현실에서 체불임금, 열악한 기숙사, 산업재해, 노동권, 교육권, 건강권을 박탈당하고 있고, 한국정부의 체류정책으로 미등록이주노동자로 제도적 권리를 박탈당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고민과 실천 연대와 지지를 위한 관심과 이주노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계기가 되기를 바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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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국민총파업?

  • 등록일
    2014/02/13 07:17
  • 수정일
    2014/02/13 07:17

225 총파업에 붙은 수식어 국민총파업이라는 말이 불편을 넘어 자료로 제출되고 조직화되어지고 정치조직의 선전물에 버젖히 선동되어지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노동자의 파업권이 어떻게 국민으로 전환되는지... 계급성의 상실의 시대를 보는 것 갔다. 노동이 소외를 넘어 파업권도 그렇게 계급성이 상실되어 간다.
민중과 함께하는 민중대회는 이해하겠는데... 어찌 그렇게 노동이 상실되어 그렇게 타협과 독대로 점철된 운동이 대중과 접점을 만들기 위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덧쒸우고 있다.

그러나 고민해야 하지 않는가? 노동의 출발점... 그리고 조직노동의 상태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갈 노동해방이라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우고 이 땅의 여러 진영에게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만들기 위한 투쟁의 태세를 우리는 그렇게 쉽게 대중성으로 취환한다.

현장의 평조합원들의 조직화 학습 그리고 실천이 요원한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만나고 가꾸어 이 세상의 역사의 주체로 세워야 할 노동자 현장의 평조합원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동의 태세는 자세는 여전히 부재하다.

그 선동포스터와 정치선동지의 그 문구에서 빗바랜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음이 노동계급적 진군의 북소리 타전되지 않는 서글픔이 물밀처럼 밀려든다.

다시 세울 노동해방 깃발은 노동자 주체적 조직화에서 이루어지고 우리가 이제 현장노동자들과 함께 평조합원들을 노동의 주체로 노동정치 그리고 계급적 단결을 더욱더 공교히 해야 할 때이지 않나 상기해 본다.

계급성이 퇴색화 되어지는 이 시대에... 파업권도 대중성으로 치환하는 그 현실 노동정치의 실종되어진 시대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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