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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07
    사회적 빈곤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담론....
    간장 오타맨...
  2. 2014/03/06
    활동가인가 직원인가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간장 오타맨...
  3. 2014/03/04
    빗발치는 투쟁 지켜보며 … 푸념만 늘어놓는다.
    간장 오타맨...
  4. 2014/02/28
    민주노총 조직기금으로 200억 조성에 대한 단상
    간장 오타맨...
  5. 2014/02/21
    국민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
    간장 오타맨...

사회적 빈곤화 여전히 바뀌지 않는 담론....

  • 등록일
    2014/03/07 19:49
  • 수정일
    2014/03/07 19:49

사회적 빈곤화가 가시화 되어 다시금 죽음의 행렬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빈곤 그리고 그 복지라는 사각 사회적 안전망이 대두되었다.

김대중정권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자 하며 전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 사회적 안정망이라는 복지의 증대의 초라한 단상을 발견한다.

복지의 사각이 드리우고 김대중정권의 카드 사용 장려로 국민을 전체 신용불량자로 만들고, 노무현 정권은 개발독재로 모기지론으로 전국민을 깡통아파트로 고생시키고 있다.

가진자들은 IMF 경제위기를 기회로 부동산 사재기 현금 모으기 금 모으기 등으로 자산을 증식하였고, 전국민 신용불량자로 만들며 내수촉진시키는 한편 국민의 공적자금으로 확충한 국가 공공인프라를 자신의 사적소유물로 민영화로 팔 아 제끼더니 노무현 정권들어서는 민영화 그리고 개발촉진으로 전국토를 아파트, 토건 족들의 아파트, 도로 등으로 건설공화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개발이익의 소수액을 지역환수라 말하며, 복지와 사회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사용하였다.

서울만 해도 전세가가 안정화 되었고, 그 달동네들이 집들을 리모델링하여 싼 가격으로 주택의 수명을 늘일 수 있지만 개발로 그 정든 터들이 아파트로 흉물화 되었다. 북한산 자락으로 북한산성입구만 가봐도 얼마나 많은 아파트들이 입주하였는 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개발 이익의 일정액을 지역환수로 복지인프라를 확충하였다. 혹자들은 정치자금 및 기업의 사회환원이라는 긍적적 효과를 낳았다 말하지만 빙산의 일각이다.

아파트 주택가의 고공행진 건설업의 규제완화로 대기업들 대다수가 건설업체로 진출하는 쾌거를 김대중, 노무현 정부때 확장되었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 그 고공행진하는 아파트 내수적 수요를 증대하기 위한 모기론은 그야말로 작금의 깡통 아파트 그리고 묻지마 개발로 투자해 손해를 보고 울며겨자먹기로 사는 이들... 이명박 정부들어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론의 부실화로 리먼브라더스를 비롯한 여러 금융자본의 붕괴와 국지 기업들의 도산위기로 정체를 더하였다.

그렇게 민영화 그리고 시장화는 과잉생산 과잉축적으로 위기에 치닫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를 개발독재로 내수촉진 노동자 인민의 빚잔치로 이루어낸 산물이고, 그 결과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론과 같은 사태 그리고 전지구적으로의 주택의 거품에 대한 경고를 낳았다. 한국 또한 그렇다. 수도권 난개발 아파트 이에 따른 토지주택공사의 내적부실화 그리고 수요에 비해 팔리지 않는 아파트 들이 대거 임대시장으로 나와 임대주택으로 수요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의 과잉은 인플레이션의 거대화로 이루어졌다. 치솟는 아파트 아파트의 고품격화로 40억대 타워펠리스 아파트까지 나왔다. 그러나 그 부실화는 이명박 정권들어 팽배해져 작금의 거대 주택위기의 조짐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자본의 토건족과 결탁한 건설이 이명박 정부들어 아파트 시장의 과잉 그리고 토지주택공사의 부채와 내적부실화는 국가 거대 프로젝트 4대강과 도로 건설로 이어진다. 건설로 자본의 살을 찌우는 정부의 토건프로젝트의 부실화가 이어졌다.

복지예산은 코딱지만하게 성장시키고, 그리고 복지라는 것이 체계적으로 국가주도의 공적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하지만 적은 예산으로 효과를 증대하기 위하여 민간위탁으로 내적부실화 그리고 전문성보다는 종교, 정부의 친경향적 복지재단의 등장으로 이어져... 그 부실에 따른 사회적 갈등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에바다 그리고 여타 사회복지법인의 시설인에 대한 수탈과 비리, 공금 횡령 등 이러한 현실이 작금의 사태를 낳았고, 실적위주 그리고 효율성 위주의 전시 행정과 맞닿아 그 수혜자들 특히 빈곤화를 겪고 있는 이들이 수혜를 입을 수 없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여가 공간으로 치닫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요인 그리고 무엇보다 노동의 소외 김대중 정부의 정리해고, 파견법으로 노동시장의 변화 완전고용시장 철폐, 비정규직화, 파견화 그리고 이에 더 나아가 전국민 신용불량자화가 이 사태를 증폭하였다.

노동시장의 불안정화로 노동의 터에서 삶에서 기댈 곳 없는 이들은 전전긍긍 그리고 그 빚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자살행렬과 그 자살행렬에 이어 실직과 사업부도로 인한 노숙인의 과잉증대로 서울역 IMF 전후로 그 서울역과 을지로부터 동대문 지하도의 노숙인들이 늘어 사회적 감당이 안되는 처지에 놓였다..

노동의 소외가 낳은 현상이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초래한 사회적 타살로 치닫게 하고 있다. 1998년 노숙인의 증대와 사회적 자살의 증대.... 한강에서 가족의 자살이라는 보도가 하루걸러 하루 나오던 시기 지금도 그때와 사뭇다르지 않지만 그 때보다 더 심각해 졌다는 것이다.

노동의 불안정화가 고착화되었고, 이 땅의 사회적 빈곤계급은 저임금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고 그 저임금 시장에서 이탈하면 사회적 지원을 받기 어려운 조건..... 이러한 굴레에서 더욱 물가는 고공행진하고 그리고 주거비는 IMF이전의 몇십배가 부풀려져 있어 주거공간에서 밀려나는 현상으로 도시에서 더욱더 밀려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사회복지의 증대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사회적 노동의 구현... 그리고 지금 기초생활임금을 이야기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결과의 바탕에는 건강한 노동의 일터와 이에 따른 노동의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기초생활임금이라는 것만을 고민한다면 또하나의 세수를 위한 부유세 논쟁으로 치닫게 되는 과거의 실패에서 논쟁으로 그칠 공산이크다. 조례재정 그리고 그러한 지역에서 특화가 어떻게 미칠지는 현재 중앙정부의 그 의지없는 모습에서 그리고 친자본정권하에서 그만큼의 재원을 마련할 조건이 될 것인지 의구심이다.

기초생활임금을 말하기 이전 우리내 노동의 소외에서 고민하여 출발하여야 한다. 유럽의 실업급여와 사회적 안정망이라는 케인주의적 복지는 투쟁의 산물이다. 그 투쟁 노동과 사회적 인식과 그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하기에 우리내 지금 벌어지는 사회적 투쟁 그리고 노동자투쟁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투쟁의 힘이 우리내 요구를 자본으로부터 쟁취할 것.... 특히 사회적 비용을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적절한 세법에 대한 사회적 쟁취로 우리내 노동자가 나서야 한다.

자본으로부터 쟁취해야 하고 국가로부터 부유세 성격의 자본의 수탈과 잉여축적물에 대한 요구를 내걸고.... 빗발치는 투쟁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이 시행되어야 한다.

사회적 노동이 되기 위한 고민들이 출발되고, 사회적 빈곤에 대한 일시적 국가의 복지제도에 대한 단발마적 고민은 그 사회적 빈곤의 자살을 방지할 수 없고,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죽음을 또한 부채질 할 것이다.

사회적 노동이 쟁취하였던 유럽의 그 모습들 처럼 우리도 노동의 헤게모니로 그 자본으로부터 노동자 인민의 삶 죽지 않을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사회적 빈곤에 의한 사회적 죽음이 이어지는 작금의 현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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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인가 직원인가 질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 등록일
    2014/03/06 00:50
  • 수정일
    2014/03/06 00:50

지금 우리내 조직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은 스스로 활동가임을 자임하지만 직원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다.
해고노동자가 그 위치를 가름하던 시기는 있었지만 그 현장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지만 그 계급적 한계를 노정한 그들은 직원으로서 계급운동을 각성시키지 못하고 계급적 노동운동의 주체로서 활동가로 서지 못하고 관료적 노동운동에 편승해 있다.

그 길도 인맥이 작용하는 노동현실... 아주 부끄러운 자화상이 우리내 노동이다. 그 현실적 바탕이 작금의 노동을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노동도 현장과 동일하게 선택적 활동가 조직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곳에서 활동가들이 점철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다.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우리 민주노총 인천본부 사태에서 그 상근자 해고 투쟁도 하였지만 여전히 그 문제는 물타기하고 있고 자기 입맛에 맛는 이들이 조직적 발전을 고려하지 않고 그 길을 가고 있다.

난 어떠한 조직이던 투쟁을 조직을 그리고 민주노조 깃발 시켜 세워 노동해방 깃발을 세울수 있는 이가 그 자리에서 그 위치에서 현장과 소통하고 연대하고 단결하는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 보지만 우리는 그 경향성과 조직으로서 그 자리를 아니 직장을 마련하는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작금의 노동의 단절과 분절 현장의 경향성 뿌리의 태초이지 않을까 생각되어진다. 그 출신에 따라 위치를 지워져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조직은 노동자 조직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학습, 조직, 실천하고 그 경험들을 노동자를 둘러싼 단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을 위시한 그 산별에 학출 그리고 노동자 출신이라 말한 이들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작금 그러하지 않지만 앞으로 그 경향들을 바꾸어야 한다. 노동조합부터 노동부터 노동운동부터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주적으로 단결연대투쟁을 이끌어가야 한다. 이것만이 이 분절된 노동을 바꿀 희망이다, 정치를 염두한 인간들과 정치적 무르익은 경향성과의 투쟁이다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산별은 노동자 그리고 무르익지 않았지만 노동자계급의 노동자 주체가 세워내고 만들고 각성하고 투쟁하고 실천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금 일어설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각성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햇지만 지금은 절실하다.

운동의 피폐와 정파의 전투장이된 현장을 보면서 아래로부터의 조합원운동 그리고 사유를 하지 못한 활동의 졸속함을 보면서... 더욱더 절감한다.

그 사유와 사고도 하지 못한는 저열함을 보고 있는 나로서는 그것이 누군가에겐 대의겠지만....나도 그 중의 하나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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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발치는 투쟁 지켜보며 … 푸념만 늘어놓는다.

  • 등록일
    2014/03/04 18:09
  • 수정일
    2014/03/04 18:10

빗발치는 연대 우리내 투쟁도 그 방향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기...  

분명 다들 이 공황기 징후전 그 투쟁이 폭발될 위기의 시기라 하지만 그 투쟁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 투쟁은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작금 투쟁을 외면한 우리내 노동계급 상층과 다르게 사회적투쟁이라는 이름으로 이 땅 자본의 노동탄압에 대해 민주노조 탄압에 대해 그 투쟁의 불씨 지피고 있다.  

그/녀들의 하방연대가 그/녀들의 사회적 투쟁이 이 땅의 울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투쟁이 사회적투쟁으로 발돋음하지 못하고 투쟁승리라는 노동자 염원을 아직 닿지 못하고 있다.

그 투쟁에 대한 지속적 투쟁을 갈구하지 못하는 우리내의 초라한 단상이지 않을까? 빗발치는 투쟁을 보면서 마음을 쓸어내려 본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총파업이 이 사회를 바꾸었던 시기 아니 그 바꾸었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바뀐 현실이 이제 자본의 법 그리고 국회라는 입법부의 권력의 입맛에 난도질 당한 우리내.... 그러나 그 입법부에 기대어선 우리의 초라한 단상.... 그리고 투쟁의 메이라에 부응못하는 우리의 연대가 너무나도 후져져 가슴을 미어지게 할 때가 있다.  

방법과 방향을 알지만 그 투쟁에 대한 책임과 지금 빗발치는 투쟁에 대해 모르쇠하는 무관심이 이 현상을 낳은 것인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향해야 할 곳 그리고 우리가 그 곳에서 세워야 할 것은 나름 아닌 우리내 노동자 인민이다. 그/녀들과 함께하는게 투쟁의 삶이고 활동이지 않곘나 생각되어 진다.  

전문지식과 지식 그리고 법이라는 테두리에 우리의 투쟁 그리고 국회라는 입법부에 더이상 기댈 곳이 없다. 그 전문지식과 법이라는 테두리를 등에 없고 투쟁보다 자본에 투항하거나 계급성을 상실한 쁘띠부르주아 얼마나 많던가? 그래서 여전히 방문한다. 어느계급편에 설 것인가? 노동의 주변부에 머물고 있는 나의 화두이다. 그래서 그 언저리 삶을 살아간다. 노동의 언저리 삶.... 그러나 그 언저리 삶을 살아가는 나도 알고 있다.  

우리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야 하는지... 하방연대 그렇게 목놓아 외쳤지만 그 투쟁에 대해 우리의 관심 그리고 지도부의 의지와 결단만 있더라도 그 일회성이라도 그 투쟁에 진심어린 우리내 투쟁한다는 지도부가 나서서 함께 머리띠 묶고 싸움하는 모습이 우리가 가져왔던 투쟁의 모습 아니었던가? 상기해 본다.   빗발치는 투쟁이 난무한 이 땅에서 여전히 노동자 인민은 투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투쟁하고 조직하기 위해 불철주야 현장에서 고민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그 모습 우리내 지도부의 모습이면 얼나마 좋으련만 그 지도부는 투쟁에 대한 책임을 뒤로한 채 회피와 몸보신으로 달구어져 간다.  

안철수와 민주당으로 갔던 그/녀들이 그러했다. 지금도 비겁자여 갈테면 가라 외치고 싶지만 그런 힘도 소진해 없어진 우리내 노동자 인민의 빗발치는 투쟁이 서럽게 다가온다. 타전되는 소식에 가슴 쓸어내지만 그 투쟁이 편향적 사회적 투쟁으로 시선이 옮겨진 우리내 초라한 단상이 마음을 가슴을 타게 한다.  

225총파업이 거세된 우리내 노동은 하지만 여전히 희망보다 투쟁을 지피코 있다. 단결투쟁 승리, 노동해방, 민주노조 사수 그 수많은 외침이 노동자이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내 고통받고 착취받는 인민은 그 삶의 터전에서 그 삶으로서 절규를 한다. 그 삶이 실시간으로 타전된다.   그러나 나는 또한 반성한다. 내 삶이 그/녀들과 동일성을 갖게되기 까지 아직 멀었구나 투쟁을 말하지만 내 삶이 그러하지 못한 비루한 삶인지라... 그래서 그 삶에 동일성 갖게 나도 낮은자가 되어 함께 비루한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리라.... 무산계급의 손과 몸처럼 나도 손과 몸이 바쁜 그런 삶을 지향하고 싶다.  

머리와 지식이 아닌 오늘 하방연대를 떠올려 본다. 그 하방연대.... 우리내 노동자 인민에게 필요하고 구구절절한.... 신영복 선생 더불어 숲 사이트 갔다 문득 든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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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조직기금으로 200억 조성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14/02/28 11:19
  • 수정일
    2014/04/10 10:56

매일노동뉴스에서 보고 알았다.
민주노총이 조직기금으로 200억을 조성하겠다는 말을….
비정규직기금 50억에 이어 또다시 조직기금으로 운동의 양적/외적 확장을 하겠다고 한다. 조직의 체질개선 저임금 미조직노동자에 대한 조직화를 화두로 던진다.

그러나 노동자 조직화 투쟁은 조직노동자가 자본과 정권으로 부터 투쟁에서 통해 이룩한 투쟁의 산물이다. 과거 87년 노동자대투쟁과 89년 전노협 결성기간 수많은민주노조 건설 움직임 그리고 93년 총액임금철폐 투쟁 등 조직노동자는 정치총파업의 기치로 일치단결하여 자본과 정권에 맞서 투쟁하며 사회적 노동을 확립하였다. 노동자 헤게모니를 통한 사회적 발전을 이룩한 시기였다라고 본다.

이렇듯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노동의 헤게모니하에 조직강화와 노동조합의 양적잘적 확장을 가 져왔다. 파업의 정치학이라 말하며 그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노동단체 노동문화패 노동운동에 대한 다양한 운동들이 상호발전하며 운동의 파이를 넓혔고 지평을 확대하던 때였다. 민주노총이라는 단일대오를 엄호 지지하고 사회적 투쟁을 촉발하고 현장의 선진활동가 평조합원들의 투쟁을 독려하고 모색하고 함께하였던 시기… 노동운동을 둘러싼 자양분이 넘쳤고 그 사회적 자양분이 이 땅에 사회주의 정치라는이념운동으로 치닫게한 시기…. 넘쳐나는 소식지와 이론지 그리고 공론의장의 정치사상에 대한 한국사회구성체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과 비판들이 존재하였던 시… 그 속에서 조직노동운동을 강화하기 위한 현장 민주노조건설을 앞다투어 나갔던 노동자들의 민주노총을 만들고 건설하였다.

그 투쟁들이 있었기에 구사대 폭력과 백골단 폭력에맞서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지고 여전히 노동해방을 외쳐부르는 노동자들이 지금은 현장에서 숨죽이고 있지만 그 깃발 내리지 않고 가슴속 깊숙히 간직하고 있다. 그 자랑스러운투쟁의역사로 조직화를 이루고 민주노조라는 깃발과 노동해방이라는 염원을 스스로 대포집 술상에서 목놓아 부르고 투쟁가 부르며 해방술잔 기울이던 모습 그리고 그 지친노동에도 아랑곳 없이 지역노동자학교에서 학습과 조직화 투쟁을 연마하던 노동자들이 전국에서 모이고 투쟁하고 이룩한 것이 민주노총이라 본다. 조직노동자 총파업으로 조직노동자 사회적 투쟁으로 이룩한 자랑스러운 이름 민주노총의 조직 골간이다. 이러하기에 스스럼 없이 민주노조 깃발 노동해방 염원을 우리 가슴에 담고 그 빗발치는 투쟁에서 노동자 투쟁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의 버팀몫이라 할 수있다.

이러한 단위에 대한 고민과 지원 여전히 오리무중 사회적연대가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 서글픔으로 밀려온다.

자본과 정권에 대항하지만 투쟁이 요원해지면 투쟁이 아닌 법원의 판단에 생사여탈권을 맡겨야 하는 우리내 조직노동자의 비애이기도하다. 투쟁이 잠잠한 지금….. 그래서 오늘 쌍용차를 비롯한 수 많은 노동자 노동조합에 대한 손배가압류 대책위가 만들어지는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연유일 것이다. 투쟁으로 획득하지 못한 것은 쉽게 잃고 또 법이라는 굴레에 하나둘 새롭게 각색되어 탄압이 옥죄여 오고 있는 현실을 봐온 터라….

민주노총은 이 투쟁들에 대한 지원 사회적 투쟁 즉 파업의 정치학으로 조직적 확대를 가져올 고민 그리고 이후 IMF 경제위기 이후 나타났던 노동조합 결성의봇물들 속에서 스스로 주체로 나서지 못함으로써 빚어졌던 수많은 단사의 민주노조 건설 실퍠에 대한 교훈 비정규직노동자 투쟁에 대한 생환만을 바라보는 관망적 투쟁 방관… 그러한 문제에서 우리는 조직노동자운동이 더욱더 사회적 책임 그리고 자본과 정권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저임금 미조직노동자들에게 전망 노동자성을 심어주고 함께 해 나갈수 있을 것이다. 40대에서 50대 노동자 많은 수의 미조직노동자들도 민주노조 건설의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진정성은 민주노총의 사회적 투쟁 자본과 정권에 맞서 싸우는 태세와 자세가 그 조직화의 관건일 것이다.

이 빗발치는 노동자 투쟁이 장기투쟁사업장 동지들의 눈물겨운 투쟁이 민주노조사수를 위한 노동자 투쟁이 노동악법 정리해고 파견법으로 투쟁하는 노동자 투쟁이 전국에 산개하여 있는 그 투쟁에 대한 고민없이 미조직 전략적 공단 사업을 위한 미조직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전망이라고 내놓고 있다.

그 기금의 십분의 일이라고 투쟁사업장 지원을 위한 기금으로 조직노동자 투쟁에 대한 조직지원 방안이 더 필요한 논의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조직확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조직노동자에 대한 자본과 정권의 탄압이 드세지고 있고, 투쟁의 기운이 거세된 지금 과연 현재 자본의 탄압 그리고 그 공세에 대한 대응도 버거운 현실 조직노동자에 대한 방어도 요원한 지금 과연 조직적 확대가 답일까? 물음을 하게 된다.

자본의 김앤장을 내세운 정리해고를 앞세운 노동자 탄압, 창조컨설팅을 앞세운 복수노조 용역깡패를 동원한 민주노조 파괴 그 탄압이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고,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현장 투쟁하는노동자들은 공장밖으로 밀난 수많은 조직노동자들이 민주노 깃발을 부여잡고 이 땅의 노동을 불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장기투쟁사업장 조직노도자의 기층강화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가져본다. 투쟁에 대한 정세 판단에 대한 인식이 우선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직노동자 사회적 투쟁 파업의 정치학이 이사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투쟁이 길임을 다시금 상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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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

  • 등록일
    2014/02/21 15:57
  • 수정일
    2014/02/21 15:57

국민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이곳 저곳에서 국민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한다.

서민에서 국민으로 치환된 작금 그 국민을 서민을 팔아 정치 입신양면한 정치 출세 주의자들과 정치에 줄서기하는 우리내 관료들의 모습에서 사상의 결여를 발견한다.
투쟁도 시대도 사상과 이념도 화석화되어 그렇게 퇴행의 시대로 도래한다.

우리 시대의 초라한 이정표 국민이라는 단어를 들춰보고.... 그 국민으로 치장된 지금은 사라진 국민학교를 나온 이들의 향수 달래기 인지... 너무 쉽게 국민 국민을외쳐 부른다. 그 국민에서 국수주의 국가주의의 잔재를 발견하고 우리의 일그러진 인식의 빈곤함과 그 대중추수주의적 결핍을 발견한다.

국민이라는 단어에서 이 시대의 결여된 사상누각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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