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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4/24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건설
    간장 오타맨...
  2. 2005/04/24
    10년 후 우리는 무엇이 돼 있을까?
    간장 오타맨...
  3. 2005/04/24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 본사 점거투쟁 돌입
    간장 오타맨...
  4. 2005/04/23
    어제 새벽 한잔을 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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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4/22
    건보흑자 1조3천억 어떻게 쓸까
    간장 오타맨...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건설

  • 등록일
    2005/04/24 23:08
  • 수정일
    2005/04/24 23:08
명동성당 투쟁이후 기나긴 휴먼을 끝내고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건설이 오늘 되었다. 모든 동지들의 노고가 깃들여 있는 의미있는 날이다. 출발이 주는 의미 그리고 앞으로 할 일들이 산너머 산처럼 쌓여있지만 오늘 출범은 이후 이주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지닌 날로서 기억될 것이다. 그 길에 함께 하였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앞으로 그 길에 더 열심히 서포트 하면서 함께 걸어가고자 한다. 다들 힘든 와중이지만 오늘 결의한 만큼 실천과 활동으로서 이후 이주노동자 주장들 하나하나가 성과로 아니 투쟁으로 이루어지리라 확신을 가져본다. 긴 산고 그렇지만 의미가 충만한 내용들이다. 이주노동자 눈망울들 하나가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단속추방으로 고국으로 강제송환된 이들 또한 이 기쁜 소식을 듣는다면 결코 그들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음을 직시하리라.... 어려운 끝에 결실을 가져온 그 결과가 이후 투쟁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리라는 희망적 생각을 가져본다. 오늘 창립총회...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과연 잘 될것인가? 이후 산적한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해쳐나갈 것인가가 머리를 짖누르지만 오늘 출범은 이 문제를 함께 풀어낼 동지들 아니 주체들이 생겼고, 이 문제에 있어서 함께 우리는 같이 단결투쟁이라는 연대의 정신으로 하여야 함을 직시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래서 힘이 들었지만 소중한 자리였다.(내가 짧게 경험한 그 기간... 만약 출범의 역사를 쓴다면 담아낼 이야기들이 산적하다. 서로 의견을 합의하기 까지 함께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주축돌을 쌓았던 그 기억이 추억으로 기억되면서 노조의 초석으로 다져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결코 헛된 논의가 아니라 강고한 연대와 투쟁의 전선 그리고 지역의 많은 동지를 담고자 하였던 고통이었다 추억되었으면 좋겠다.) 다들 어디에 그렇게 숨어서 안보였나.... 많은 동지들... 지금 주체로서 결의하고 나선 동지들의 수가 이전 명동성당 투쟁보다 적은 수라 판단되지만 그 희망을 가늠하기엔 충분한 동지들이 모였다는 판단을 가져본다. 명동성당 투쟁에 난 결합은 하지 못했지만... 향후 펼쳐질 이주노동자 독자노조 건설에 함께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조라는 질서를 넘어서 이주노동자 독자 산별연맹 건설의 포문의 초석을 열었다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아니 힘이 난다. 그리고 고민된 부분을 한 질서안에서 함께 논의하고 풀어 해쳐나갈 수 있는 계기가 부여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 오늘 불렀던 "함께가지 이 길"이라는 노래가 헛 메아리가 아니라 투쟁의 구호임을 우리 동지들 하나하나 가슴에 새겨넣었 본다. 그 기난한 과정 이야기를 한다면 산 보따리 처럼 풀어 해칠 수 있지만, 그 길 이 값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태생시키기 위한 지난 한 산고였다 판단을 가져본다. 그 길 늘 광명은 아니겠지만 서로의 어깨가 연대 그리고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굳게 뭉쳐나가 연대의 고리를 형성하기를 바램해 본다. 오늘 소주잔에 비친 그들의 모습에서 희망이라는 작지만 큰 의미의 동지들 힘을 느껴본다. 이제 시작이다. 함께 투쟁하고 함께 나가 이주노동자 권리가 모두 쟁취하는 그날의 항해를 이땅의 모든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해 나가기를 바램해본다. 그 길... 지난하지만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결코 불편하지 않다. 약칭 MTU 깃발아래 이주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이주노동자가 아닌 완전한 노동자로 하나되기를 빌어본다. 투쟁!!!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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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우리는 무엇이 돼 있을까?

  • 등록일
    2005/04/24 09:05
  • 수정일
    2005/04/24 09:05
[이완기의 여의도통신] 욕망의 정글속에 내던져진 미디어 ****이완기 / 본지 객원칼럼니스트·MBC기술본부장 91년 여름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선생은 통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뇌옥(牢獄)에서 20년 인고의 세월을 보내다가 1988년 가석방으로 자유를 찾았다. 28세에 시작한 인생의 황금기를 닫힌 세월로 보내버린 셈이다. 선생은 교도소 밖의 사람들이 교도소 안의 인간군상에 대해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는지를 차분하게 풀어 놓았다. 범죄자나 패륜아 등이 모여 있는 교도소는 일반적으로 인간이 살기 힘든 지옥처럼 인식되어 있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이 없는 감옥 안의 세계가 밖의 세상보다 오히려 덜 야만적이고 더 인간적임을 선생은 긴 세월의 감옥살이를 통해 터득했다고 했다. 12살 된 고아 소녀, 그녀는 어떻게? 14년 전에 필자가 들었던 선생의 이야기들 가운데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예화는 가출한 누이동생을 세상에 버려둔 채 감옥에 갇혀버린, 같은 방의 한 재소자의 이야기다.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되었을까?”하며 어린 누이를 애타게 그리는 그 재소자는 출소하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누이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면서 누이의 소식을 전해줄 것을 간절히 부탁한다. 바깥세상에서 막 들어온 신입 죄수나 재범으로 다시 들어온 죄수만 보면, “서울이 많이 변했죠?”라면서 집요하게 누이의 소식을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뿐이다. 갇혀 있는 오빠가 어린 누이동생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선생이 그 재소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천애 고아가 된 12살 소녀가 서울 한 복판에 던져졌을 때, 10년 후 그녀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리들의 상상은 공통적으로 불길한 예측에 포박되어 버린다.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우리는 “십중팔구 ‘거리의 여자’로 전락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너무 쉽게 내려버린다. 그것은 대도시 서울의 본질을 오랜 기간 체득한 관습적 사고 현상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러한 우리의 상상이 거의 대부분 실제상황으로 되어 버린다는 현실이다. 선생의 문제 제기는 거기서 출발한다. 서울이라는 대도시를 인구, 고층빌딩, 자동차 대수, GNP, 각종 경제지수 등으로만 재단할 때, 냉혹하리만치 비인간화된 서울의 중병은 치유되기 어렵다. 선생의 문제 제기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 있는 자본 만능의 사회에 직격탄을 던진다. 서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무신경 사회, 자유는 방임으로 흘러 만인이 투쟁하는 정글사회, 고삐 풀린 자본을 통제 불능에 이르도록 방치한 무기력한 후진사회다. 의지할 곳 없는 고아소녀의 절대 위기를 절대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은 선진사회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노숙자의 문제에는 아랑곳없이 소득 2만달러 달성이 더 시급한 사회는 인간적인 세상이 아니다. 인간다운 미디어를 꿈꾸는 것은 불가능할까 각설하고, 다시 미디어로 돌아가 보자. 자본이 만들어 놓은 사생결단의 경기장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우리의 미디어는 10년 후에 무엇이 될까? 게임의 규율도 없고 무소불위의 자본을 통제할만한 견제기구도 없는 대한민국에 내 팽개쳐진 우리의 미디어는 10년 후 어떤 모습이 될까? 보통사람이 평생을 땀 흘려도 모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돈을 인기연예인은 한 차례 광고출연으로 벌어들인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오늘의 미디어다. 그 위대한 인기를 이슈화하고 확대재생산해서 더 큰 미디어의 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 오늘날 미디어의 정체다. 그 미디어가 쏟아내는 의제와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이데올로기가 우리 사회를 끌고 간다. 문화마저도 ‘문화산업’의 시각으로 바라본다. 어떤 미디어도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공염불인 현실이다. 미디어의 모든 의제가 산업론에 기반해 있고, 공공성과 공익성에 대한 논의는 고용효과, 성장 동력에 묻혀 소수 공영론자들의 한물간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암울하기만한 미디어의 공공성 논의에 실낱같은 희망의 조짐이 보이기도 한다. 정책 입안자와 학자와 서비스 공급자들이 하나같이 돈벌이 미디어만을 강조하는 이 시대에, 꺼져가는 공공 미디어의 불씨를 다시 짚이려는 움직임이 조심스럽게 일고 있다. 지난 달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방송통신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는 그 동안 미디어의 진화과정에서 흔히 제시되었던 산업론과 시장주의의 논점을 벗어나, 방송환경변화에 따른 방송의 공공성 퇴색에 어떤 대응이 필요한가를 고민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행복하고 건강한 인간의 삶터로 만들기 위해 미디어가 해야 할 역할은 지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시청률, 돈벌이, 채널수, 성장동력 등 경제지수로만 평가하는 작금의 담론은 빨리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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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 본사 점거투쟁 돌입

  • 등록일
    2005/04/24 08:47
  • 수정일
    2005/04/24 08:47
노조 만들었다고 부당해고, 복직투쟁 3년 6개월째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를 당한 뒤 3년 6개월째 복직 투쟁을 벌여왔던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회사 본사를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대표이사 면담을 요구하고 있는데 회사는 이들과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업무 방해 혐의로 이들을 경찰에 신고한 상태다. 4월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대성그룹 본사. 경찰들이 정문을 겹겹이 에워싸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 책임자를 면담한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는 본관 현관에서 다시 제지당했다. 대성그룹 직원들이었다. "곽민형 지회장을 만나러 왔다. 들여보내달라." "돌아가라. 기자를 들여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직원들은 아예 문을 걸어잠궜다. 유리문 틈 사이로 취재 목적을 밝혔지만 묵묵 부답이었다. 2층 창문 안쪽 복도에 붉은 머리띠를 두른 조합원들이 눈에 띄었다. 곽민형 지회장이었다. 1층에서 막고 있어서 올라갈 수 없다고 하자 직접 내려오겠다고 했다. 그러나 역시 직원들의 제지에 부딪혔다. 2층에서는 기자를 들여보내라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한참 뒤에야 책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법원에 계류돼 있는 사안이다. 법으로 푸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재판에서 악용될 위험이 있다. 일절 대화에 응하지 않을 계획이다." "취재까지 거부하는 것인가." "언론이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 "노조의 요구를 어떻게 보나." "몇년 전부터 진행된 사안이다. 내부적인 문젠데 화섬연맹 등 노동자 단체에서 이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려는 것 같다." 2층의 사람들은 대성산업가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2명과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조합원 8명, 모두 10명이다. 20일 오후 3시부터 점거에 들어가 꼭 하루 만이다. 곽민형 지회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직원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1층으로 내려올 수 없다고 했다. "노조를 만들었다고 6년이나 다닌 회사에서 잘렸다. 2박 3일 동안 잠 한숨도 못자고 차를 몰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일하고 들어가면 몇시간 뒤에 빨리 출근하라는 재촉을 들어야 했다. 1년 365일 휴일도 휴가도 없이 일하고 정작 그렇게 일하면서도 정규직의 절반 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는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고 그것 때문에 해고됐다." 곽 지회장은 이 회사에서 탱크로리 기사로 일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회사의 하청업체인 대성용역의 직원으로 일했다. 대성용역의 직원들은 대성산업가스의 정규직 직원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절반 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았다. 그런데 업무 지시는 대성산업가스에서 받았다. 위장 도급이고 불법 파견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이들은 6년이나 일한 회사에서 부당 해고를 당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계약 만료였지만 진짜 이유는 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파견법에서는 2년 이상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경우를 정식 고용으로 본다. 그러나 대성산업가스는 하청 관계였을뿐 불법 파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성용역과 이들과의 문제도 알 바 아니라는 이야기다. 2001년 9월, 이들이 노조를 만들고 단체교섭을 요구하자 대성산업가스는 하청 계약을 해지하고 대성용역을 폐업시켰다. 거듭해서 대화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우리 직원들이 아니기 때문에 책임질 일이 없다는 태도로 나왔다. 이 사건은 결국 법원으로 갔고 2003년 11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불법 파견과 부당 해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서울고등법원의 항고심에서는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항고심에서는 대성용역을 사용자로 볼 수 있느냐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고등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노조는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결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법원 판결은 오는 6월쯤 나올 예정이다. 3년 6개월 동안 노조는 회사와 맞서 싸워왔다. 12명의 조합원은 현재 2명으로 줄었다. 나머지 10명은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거나 일부는 이 회사와 특수고용 계약을 맺었다. 특수고용이란 기사들이 각각 개인 사업자로 등록하고 회사와 도급 업무계약을 맺는 형태를 말한다. 고정적인 급여는 당연히 없고 일거리가 없을 때는 수입도 그만큼 줄어든다. 노동자로서 권리는 전혀 보장받지 못한다. 이 회사는 결국 탱크로리 기사들을 모두 특수고용 형태로 전환했다. 그나마 있던 정규직도 모두 특수고용으로 돌렸고 하청회사도 모두 폐업시켰다. '할줄 아는건 운전 밖에 없다'는 노동자들은 결국 훨씬 열악해진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곽 지회장에게도 여러차례 회유가 있었지만 도저히 물러설 수 없었다고 했다. "왜냐고요? 옳지 않기 때문이죠. 당장 일자리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답게 살아보자고 노조를 만든 겁니다. 이렇게 쉽게 꺾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본사 후문 바깥에는 화섬연맹을 비롯해 연대 노조 조합원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돌아가면서 1인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유영구 화섬연맹 교육선전실장은 "구속될 걸 각오하고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며 "억지로 끌려나오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물러서면 안된다"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김충태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조직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회사 차량을 운전하는데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라니 이게 말이 되나. 차량 유지비는 물론이고 수리비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단가 인하를 해도 무조건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나마 그거라도 잘리니까. 특수고용 계약을 맺으면 노동자의 권리는 모두 사라진다." 무려 3년 6개월이다. 그동안 회사는 단 한차례도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교섭에 응한다는 건 이 회사가 이들의 사용자라는 걸 인정하는 셈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교섭을 약속했다가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했다. 이들을 고용한 적이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다는 논리다. 놀라운 건 이 회사가 지난해 1371억원 매출에 238억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는 사실이다. 이 회사는 결국 법으로 풀겠다고 한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 법은 일단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이상 이들의 점거 투쟁은 한동안 지속될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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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 한잔을 꺽다.

  • 등록일
    2005/04/23 13:01
  • 수정일
    2005/04/23 13:01
어제 술한잔을 하였다. 술잔에 담아도 넘쳐 흐를 것만 같았던 이야기를 들은 터라.... 술잔을 연거푸 드리 마셨다. 일어나 보니 날씨는 화창하다. 그런데 내 속은 어제 새벽 드리 마신 술로 인해 불편하다. 그래도 누군가의 속내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술을 드리마시지 않고서는 안된다. 내 속이 좁아서 그렇지만.... 부족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부족한 나에게 너무 과분한 이야기를 해주어 술잔에 넘치는 술만큼 내가 받기 힘들지만... 술만큼은 넘치지 않게 마시며 차곡차곡 그 이야기를 주어담기에 술을 마신다. 이야기한 만큼 마셔버린 술 만큼 그렇게 함께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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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흑자 1조3천억 어떻게 쓸까

  • 등록일
    2005/04/22 13:17
  • 수정일
    2005/04/22 13:17
올해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흑자는 1조3천억원이다. 우리나라 암 환자 모두를 무상 치료할 수 있는 규모다. 이렇게 많은 돈이 생기자, 그 쓰임새와 투자 우선순위 등을 놓고 무성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암 무상치료에 쓸 것을 제안하고 있다. 반면 의료인들은 보험 수가를 올리자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보험가입자들에게 보험료를 많이 거뒀기 때문이라며 ‘돌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정부는 암 등 중증질환에 대한 보험혜택을 넓히는 방안 등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의문점을 질문-답변 형식으로 풀어봤다. 보험료 내리자…1인당 몇천원 환급 도움안돼 수가를 올리자…의약분업뒤 매년 꾸준히 인상 혜택을 늘리자…“암 무상치료”-“무상은 곤란” ■ 1조3천억원 어떻게 생겼나? 지난 몇 년간 보험료가 인상되는 가운데 불황으로 국민이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다. 이로 인해 올해 최대 1조 5천억원 건보재정 흑자가 예상된다. 이 가운데 7천억원을 엠아르아이(MRI), 분만비 지원 등에 쓰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머지 8천억원의 사용처는 아직 미정이다. 또 2004년도 직장 건강보험료 정산 결과 대기업의 성과급, 임금인상 폭이 커 5천억원이 더 걷힐 것으로 보인다. 건보재정 흑자분에서 사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8천억원에다 이 5천억원을 더한 1조3천억원을 건보공단은 추가로 사용할 수 있다. ■ 보험료 내리거나, 돌려줘야 하나? 직장인들의 소득에 대한 보험료율은 2001년 3.4%, 2002년 3.63%, 2003년 3.94%, 2004년 4.21%, 2005년 4.31%다. 비슷한 비율로 꾸준히 올랐다. 그러나 이 부담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평균 보험료율인 1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설사 내년부터 보험료에서 흑자분만큼을 인하하거나 돌려준다 해도 국민 1인당으로 따지면 몇 천원도 안 되는 돈이다. 이 돈을 보험 수혜 확대에 쓰는 것이 국민에게 더 큰 이익이 돌아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 의료인들이 받는 보험수가를 올려야 하나? 의료인들은 자신들이 받는 보험수가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험수가는 의약분업 전후인 2000년 21.7%, 2001년에는 7.08%로 크게 올랐다. 그 뒤 2003년 2.97%, 2004년 2.65% 등 해마다 건보재정 지출 수준에 맞추면서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국민이 병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불황을 겪는 상황에서 보험수가를 다시 올리자는 주장은 시민이나 정부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 어떤 보험혜택을 늘려야 하나? 건강세상네트워크, 보건의료단체연합 등은 국민이 가장 크게 고통받는 암 무상치료에 이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무상치료를 하면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무분별한 의료행위를 남발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대신 정부는 암을 비롯한 중증 질환 전반으로 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환자들이 내는 돈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내는 돈의 최고 상한선을 두는 본인부담 상한제를 강화할 계획이다. 이러면 효과는 크지만 값이 비싸 보험 적용을 받을 수 없었던 항암제, 수술 등이 급여 대상이 된다. ■ 무상치료는 불가능한가? 정부는 환자가 내는 법정 본인부담금이 무분별한 의료 이용을 막고, 질병 예방 행동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다며 여전히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쉽게 얘기해서 의료 이용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는 무상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이 건강보험연구센터 소장은 “암 환자도 올해에는 현실적으로 선택진료비, 1~2인실 병실 이용료까지 건보재정에서 부담하는 것은 어렵다”며 “대안으로 선택진료비 등은 환자가 부담하도록 하고 치료에 관련된 나머지는 모두 건강보험이 부담하면 암의 경우 현재의 50% 정도 보장성에서 85%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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