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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9/18
    [시/천상병]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간장 오타맨...
  2. 2004/09/16
    [책/서평] 권영민, '한국계급문학운동사'
    간장 오타맨...
  3. 2004/09/16
    [시/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간장 오타맨...
  4. 2004/09/16
    몬드라곤에서
    간장 오타맨...
  5. 2004/09/15
    [시/김수영] 사랑의 變奏曲
    간장 오타맨...

[시/신경림] 너희 사랑

  • 등록일
    2004/09/18 08:52
  • 수정일
    2004/09/18 08:52

너희 사랑

- 누이를 위하여

 

낡은 교회 담벼락에 씌어진

자잘한 낙서에서 너희 사랑은 싹텄다

흙바람 맵찬 골목과 볼기 없는

자취방을 오가며 너희 사랑은 자랐다

가난이 싫다고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고

반 병의 소주와 한 마리 노가리를 놓고

망설이고 헤어지기 여러 번이었지만

뉘우치고 다짐하기 또 여러 밤이었지만

굳어졌다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너희 사랑은 깊어졌다.



돌팔매와 최추탄에 찬 마룻바닥과

푸른옷에 비틀대기도 했으나

소줏집과 생맥줏집을 오가며

다시 너희 사랑은 다져졌다

그리하여 이제 너희 사랑은

낡은 교회 담벼락에 씌어진

낙서처럼 눈에 익은 너희 사랑은

단비가 되어 산동네를 적시는구나

훈풍이 되어 산동네를 누비는구나

골목길 오가며 싹튼 너희 사랑은

새삶 찾아나서는 다짐 속에서

깊어지고 다져진 너희 사랑은

 

                                                   신경림 시전집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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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상병]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 등록일
    2004/09/18 00:43
  • 수정일
    2004/09/18 00:43

은하수에서 온 사나이

-尹東柱論

 

1

깊은 밤

멍청히 누워 있으면

방안은 캄캄해도

지붕 위에는

별빛이 소복히 쌓인다

그 무게로 살짝 깨어난 것일까?

그 지붕 위 별빛 동네를 걷고 싶어도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진다

가만히 귀기울이면

소리가 난다

무슨 소리일까?



지붕 위

별빛 동네 선술집에서

누가 한잔 하는 모양이다.

궁금해 그를 쭈빗하면

주정뱅이 천사의 소리 같기도 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요절한 친구들의 소리 같기도 하고....

아닐 게다

저놈은

내 방을 기웃하는 도적놈이다.

그런데 내 방에는 훔쳐질 만한 물건이 없다.

생각을 달리해야지.

지붕 위에는 별이 한창이다.

은하수에서 온 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느 겁이 안 난다.

놈도

이 먼데까지 와서

할일없이 나를 살피지는 않을 것이다.

들어오라 해도

말이 통하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뚜렷한 우리말로

한마디 남기고

놈은 떠났다.

"아침 해장은 내 동네에서 하시오"

건방진 자식이었는가보다.

 

2

비칠듯 말듯

아스름히 달아오는

저 별은

은하수 가운데서도

제일 멀다.

이억광년도 넘을 것이다.

그 아득한 길을

걸어가는지

버스를 타는지

택시를 잡는지도 몰라도

무사히 가시오.

 

                                        천상병 시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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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평] 권영민, '한국계급문학운동사'

  • 등록일
    2004/09/16 12:14
  • 수정일
    2004/09/16 12:14
                           신간회 결성부터 해소까지  카프맹원과의 관계 규명 
                                      
                                                                                                                     김철 연세대교수/국문학 
        
    70년대 초반 김윤식 교수가 내어놓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는 한국문학의 연구에서 카프라는 전인미답의 봉우리를  등정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오래동안 이 봉우리는 여전히 ‘입산금지’의 상태에 있었다.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산으로 오르는 등반객들의 발길이 분주히 이어졌고, 새로운 등반로의 개척을 알리는 신호들이 줄을 이었다. 더구나. 이 등반을 부르조아의 한가한 나들이로서가 아니라  당대 변혁운동의 구체적 실천장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비장한 긴장감 역시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것이어서  카프문학에 대한 연구는 오랜동안의 금기와 억압을 뚫고 마침내 새로운 부활을 준비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90년대는 다시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 놓은 듯이 보인다.이 산길에는 이제 부질없는 바람소리만이 외로울 터이다.



    
    권영민 교수의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는 이러한  적요를 한숨에 깬 노작이다. 이것은 이 저서가 카프 문학을 다루고 있다는 뜻에서만 하는 말이 아니다.  90년대도 다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서 권교수가 내놓은 이 저서는 기왕의 카프문학 연구에서  이루어진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주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 길은 ‘조직-단체로서의 조선 프로예맹’이라는 길이다.  이 새로 개척된 등반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우리는 식민지 시대 사회운동과 프로문학운동과의 관계라는  거대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이 등반자로의 개척이 만만치 않은 공력과 수고를 필요로 하는  것임은 이 산에서 일찍이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아는 일이다.
   
    우리가 이 저서의 발간을 높이 평가하고 기뻐하는 이유는, 그러나 이 등반로의 새로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풍부한 내용에 있다. 식민지 시대 사회운동의 양상과 카프문학과의 연과성이라는  주제는 새삼스러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전의 연구들이 이 문제를 충분히 깊이있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체적으로 다루었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방대한 사실관계의 확인도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다가,  무엇보다도 문학사적 관점과 운동사적 관점 사이에서의 균형잡기라는,  방법론적 문제도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권교수의 이 저서는 그 점에서  카프문학의 연구의 오랜 숙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신간회의 결성으로부터 해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카프맹원들의 연관을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규명한 연구는 아직까지 없었다.덕분에 우리는 카프 경성본부와 동경지부의 갈등에 관한 기존의 사실들에서 더 나아가,  카프의 헤게모니가 이동하는 과정과  신간회의 관계에 대해 보다 명료한 지식들을 얻게 되었다. 또한 동경지부의  조직속에서 이른바 ‘제3전선파’뿐만이 아니라 『개척』  동인의 실체를 부각시킨 점이라든가,1932년 소장파 중심의 조직개편에서 ‘동지사’그룹의 실체를 밝혀낸 점, 코민테른 12월테제와 신간회  해소의 문제를 카프의 조직 변화와  연결시킨 점들은 이 책의 뚜렷한 성과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카프 해산의 직접적 빌미가 되었던 이른바 ‘신건설사’ 사건의 판결문을 발굴하고, 그것을 통해 카프 해산의 문제를 기존의 ‘해소파/비해소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강요된 해체’의 문제로 다시 인식할 것을 주장하는 저자의 주장은 크게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지면관계상 한가지만  말한다면, “계급문학 운동은 보다 넓은 의미의 저항적인 민족문학 운동이라는 범주 안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관점이다. 서평자는 저자의 ‘민족운동’‘사회운동’ 등의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도 의문이 거니와,  계급운동을 ‘굳이’ 민족운동이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흡수통일론적’시각이 또다른 왜곡을 낳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문예출판사, 2만원)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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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도현] 바닷가 우체국

  • 등록일
    2004/09/16 11:05
  • 수정일
    2014/02/21 00:17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우체국이 있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군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키 작은 측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인 우체국은

문 앞에 붉은 우체통을 세워두고

하루 내내 흐린 눈을 비비거나 귓밥을 파기 일쑤였다

우체국이 한 마리 늙고 게으른 짐승처럼 보였으나

나는 곧 그 게으름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아주 오래 전부터

우체국은 아마

두 눈이 짓무르도록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리하여 귓속에 파도 소리가 모래처럼 쌓였을 것이었다

나는 세월에 대하여 말하지만 결코

세월을 큰 소리로 탓하지는 않으리라

 

 

 

한 번은 엽서를 부치러 우체국에 갔다가

줄지어 소풍 가는 유치원 아이들을 만난 적이 있다

내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우체통이 빨갛게 달아오른 능금 같다고 생각하거나

편지를 받아먹는 도깨비라고

생각하는 소년이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다가 소년의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 돋을 때쯤이면

우체통에 대한 상상력은 끝나리라

부치지 못한 편지를

가슴 속 주머니에 넣두는 날도 있을 것이며

오지 않는 편지를 혼자 기다리는 날이 많아질 뿐

사랑은 열망의 반대쪽에 있는 그림자 같은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삶이 때로 까닭도 없이 서러워진다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바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쓸쓸해지는 저물녘

퇴근을 서두르는 늙은 우체국장이 못마땅해할지라도

나는 바닷가 우체국에서

만년필로 잉크 냄새 나는 편지를 쓰고 싶어진다

내가 나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쓰는

소년이 되고 싶어진다

나는 이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한 게 아니었다고

나는 사랑을 하기 위해 살았다고

그리하여 한 모금의 따뜻한 국물 같은 시를 그리워하였고

한 여자보다 한 여자와의 연애를 그리워하였고

그리고 맑고 차가운 술을 그리워하였다고

밤의 염원에서 소금 같은 별들이 쏟아지면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이 세상의 모든 길이

우체국을 향해 모였다가

다시 갈래갈래 흩어져 산골짜기로도 가는 것을 생각하고

같은 해변의 벼랑 끝에서 끊기는 게 아니라

훌쩍 먼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정적인 밥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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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라곤에서

  • 등록일
    2004/09/16 02:20
  • 수정일
    2004/09/16 02:20

몬드라곤에서

우리는 우리가 현재 서 있는 곳으로부터
그리고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나아가면서 길을 만듭니다.

 

스페인의 역사는 크로마뇽인이 그린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처럼 오랜 역사속에는 낯익은 이름들이 곳곳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니발, 시저, 나플레옹과 같은 전쟁영웅에서부터 사도 바울, 세네카, 프란시스 베이컨,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그 자취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리스와 로마, 이슬람과 카돌릭 등 인류사가 보여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사의 출항지(出航地)이며 참혹한 내전이 휩쓸고 간 시련의 땅이기도 합니다. 세계사의 증인(證人)같은 땅입니다. 당신은 이러한 스페인이 모색하는 21세기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특히 몬드 라곤 생산자 협동조합(Workkers Coorperation)에 대해서는 그것을 어떤 대안적 의미로 읽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엽서를 받고 느낄 당신의 실망이 마음에 걸립니다. 나역시 비내리 는 빌바오공항에서 몬드라곤을 떠나면서 'Making Mondragon'을 읽었을 때의 감동을 그곳에 묻 어 두고 돌아온다는 것이 무척 서운하였습니다.




1956년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신부가 5명의 노동자와 함께 그들의 이름자를 따서 울고 (ULGOR)생산협동조합을 만든 것이 오늘의 몬드라곤의 효시입니다. 폐업한 작은 주물공장에서 석유난로를 만들기 시작한 지 40년. 지금은 무려 3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협동조합 그룹으 로 눈부신 성공을 이룩하였습니다. 협동은 인류의 원초적 정서이고 공동체는 오랜 삶의 틀입니다. 20세기 역시 다른 세기와 마찬 가지로 그 엄청난 격동의 파고를 헤쳐오면서도 이러한 공동체적 이념이 포기되지 않은 세기였 습니다. 인간적인 정서가 파편화되고 공동체적인 삶의 틀이 심하게 상처받을수록 오히려 귀소 본능(歸巢本能)과 같은 그리움을 키워내기도 하였습니다. 유럽각국에서 광범하게 일어났던 60-70년대의 협동조합 운동이 또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협동조합 운동은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세를 잃게 됩니다. 혹은 이상주의로 말미암아, 혹은 현실의 높은 벽으로 말미암아 결국 실패하거나 변질되어 가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이에 비하여 MCC(Mondragon Collective Corporation)가 보여준 성공은 당연히 20세기를 넘어서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다. 그것은 경제적 약자인 노동 자들이 자본가나 국가관리자들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정의롭고, 더 인간적인 경제활동을 조직 할 수 있다는 사례로서 이른바 '대안(代案)의 맹아(萌芽)'를 만들어 내는 운동적 의미로 읽혀졌 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몬드라곤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척 무거웠습니다. 실망의 상당부분은 어쩌면 나의 과도한 기대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초기의 많은 가치들이 포기되었다고는 하지 만 몬드라곤이 지향했던 협동의 가치에 대한 신뢰는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물론 MCC가 헤쳐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무한경쟁의 높은 파도를 모르지 않습니다. 몬드 라곤의 헤수스 이 힌또(J. E. Ginto)이사 역시 민주, 자치, 협동의 원리를 원칙적으로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는 생산과 고용규모, 수출량 등의 통계치를 들어 MCC가 스페인 10 대 그룹으로 성장한 사실을 앞세웠으며 교육과 기술투자를 바탕으로한 경쟁력에 더 많은 무게 를 두고 있었습니다. '경쟁력'이라는 단어를 또다시 스페인의 몬드라곤에서 들었을 때의 착잡한 심정을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쟁력이라는 요건은 자본주의의 바다에서 협동조합이라는 작은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한 일차 적 조건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엄습해오는 경쟁의 높은 파고는 가히 사활적인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협동조합이 협동조합이 아닌 경우는 언제인가?' 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중에서 가장 정곡을 찌르고 있는 답변은 '협동조합이 회사가 되는 경우'라는 ICA(국제협동조합연맹)의 명쾌한 답변입니다. 협동조합과 회사의 차이는 제도면에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 수롭지 않은 차이야말로 결정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은 '경쟁'과 '협동'이라는 아득한 거리를 두고 갈라서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오냐티의 ETEO(몬드라곤 경영기술대학)에 서 만난 호세 루이스(J. Luis)학장은 바로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비교적 솔직한 견해를 들려주 었습니다. 그는 효율성에 밀리는 인간적 관점을 우려하고 있었습니다. 회사와 협동조합의 차이 는 '로봇트'와 '인간'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21세기에는 민족이라는 혈연적 공동체나 국가와 같은 공간적 공동체 대신에 '고도신뢰 집단(高度信賴集團)'을 핵으로하는 어떤 공동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중 요한 것은 그 공동체의 구심력이 되는 신뢰의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인간주 의에 대한 신뢰를 구심력으로 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경쟁력으로 나타나야 한다 고 믿습니다. 인간이 대상화되고 인간의 삶이 파편화된 냉혹한 시장(市場)현실을 살아가면서 이 러한 현실을 통찰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각이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을 재구성하는 일이어 야 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록 인간주의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인 간관계와 신뢰집단이 밖으로는 편협한 집단이기적 집단으로 경원시되고 안으로는 신앙촌의 헌 신성으로 맹목화되지 않을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별 공동체를 넘어서는 연대(連帶)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다른 공동체를 향하여 변함없이 창문을 열어 두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경제적 약자들이 견딜 수 있는 물심양면의 힘을 모울 수 없을 것이며 무한경쟁의 세계체제속에서 20세기의 수많은 집단들이 보여준 공격 과 방어의 역사를 청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몬드라곤은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미리뫼'(龍山)입니다. 몬드라곤이 있는 이곳 바스크지역은 산 세와 기후는 물론이며 역사와 민족과 언어에 있어서도 스페인의 보편적 문화와는 구별되는 비 스페인적인 지역이었습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분리독립하려는 이유가 납득이 갈 정도였습니다. 몬드라곤의 이러한 역사와 전통의 특수성이 오히려 대안적 의미를 낮추는 요인으로 여겨졌습니 다. 특수한 사례가 보편적 교훈이 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수한 전형(典型)을 만들어내는 노력보다는 저마다의 역사와 현실을 이루고 있는 가장 보편적 정서와 가장 현실적인 삶의 틀에서부터 출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적 실천과 그 일상적 실천을 부단히 축적해간다면 전형은 사후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이 몸담고 있는 가장 친숙한 생산, 소비, 학습, 문화의 틀에서부 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일상적인 삶의 틀을 주어진 조건으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대상을 좀 더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가는 평범하면서도 꾸준한 노력에 서 시작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카소는 그 개인의 생애가 곧 현대회화의 역사가 될 만큼 언제나 새로운 미학의 선두에 서 있 었던 행복한 미술가임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의 명화 '게르니카'앞에 서면 그 가 말라가의 메르세데츠가에서 키워 온 지극히 서민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말가가 해변의 눈부신 햇살 그리고 서민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는 메르 세데츠 광장과 그 광장의 비둘기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피카소의 생가 바로 앞에 펼쳐져 있는 이러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서민적 정서가 때로는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민적 현실을 뛰어 넘는 이상과 추상의 세계로 비약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찾아 온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가우디의 천재성에 경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가우디의 천재적인 건축물 역시 스페인의 도처에서 만나는 스페인의 보편적인 전통미학 을 형상화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시대의 어떠한 천재들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한결 같이 그들의 오랜 전통과 서민적 정서로부터 그들의 천재를 길어 올리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넓 게 그리고 오래 공감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안은 차별성에 열중할 것 이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보편성에 충실해야 옳다고 생각됩니다. 나는 피카소가 어린시절에 햇빛을 나누어 받았던 메르세데츠광장에 앉아서 다시 몬드라곤을 생 각합니다. 스페인을 짓누르고 있는 무거운 과거의 중압속에서 몬드라곤의 이상을 개척해간 호 세 마리아 신부의 이야기를 상기합니다. '우리는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나 아가면서 길을 만든다.' 그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실천'일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재 우리가 서 있는 곳으로부터 길을 만들기 시작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마저도 동시대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승인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신영복 더불어 숲2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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