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노란 은행잎이 지고 나면
그 여자
아버지와 그 여자
큰오빠가
지붕에 올라가
하루 종일 노랗게 지붕을 이는 집
노란 초가집
어쩌다가 열린 대문 사이로 그 여자네 집 마당이 보이고
그 여자가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말인가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소리와
옷자락이 대문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
그 마당에 들어가서 나도 그 일에 참견하고 싶었던 집
마당에 햇살이 노란 집
저녁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집
뒤안에 감이 붉게 익는 집
참새때가 지저귀는 집
보리타작, 콩타작 도리깨가 지붕 위로 보이는 집
눈 오는 집
아침 눈이 하얗게 처마끝을 지나
마당에 내리고
그 여자가 몸을 웅숭그리고
아직 쓸지 않는 마당을 지나
뒤안으로 김치를 내러 가다가 "하따, 눈이 참말로 이쁘게도 온다이이"하며
눈이 가득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싱그러운 이마와 검은 속눈섭에 걸린 눈을 털며
김칫독을 열 때
하얀 눈송이들이 어두운 김칫독 안으로
하얗게 내리는 집
김칫독에 엎드린 그 여자의 등에
하얀 눈송이들이 하얗게 하얗게 내리는 집
내가 함박눈이 되어 내리고 싶은 집
밤을 세워, 몇밤을 세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오가는 이 없는 늦은 밤
그 여자의 방에서만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면
발자국을 숨기며 그 여자네 집 마당을 지나 그 여장의 방 앞
뜰방에서서 그 여자의 눈 맞은 산을 보며
머리에, 어깨에 쌓인 눈을 털고
가만가만 내리는 눈송이들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가만 가만히 그 여자를 부르고 싶은 집
그
여
자
네 집
어느 날인가
그 어느 날인가 못밥을 머리에 이고 가다가 나와 딱
마주쳤을 때
"어머나" 깜짝 놀라며 뚝 멈추어 서서 두 눈을 똫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면 반가움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환하게, 들판에 고봉으로 담아놓은 쌀밥같이,
화아안하게 하얀 이를 다 드러내며 웃던 그
여자 함박꽃 같던 그
여자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윗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차에서 내리면 제일 먼저 눈길이 가는 집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저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가
있던 집
그
여자네
집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을.하.면...........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적적인 밥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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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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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네 집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는걸요..^^윽..갑자기 첫사랑의 집앞에서 서성이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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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jang_go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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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시골집이 떠올랐습니다. 초가지붕을 매년 올리면 누런 초가지붕이 노란색으로 변하고, 닭, 오리, 돼지, 토끼, 소를 키우고 텃밭에는 상추, 탱자나무, 감나무가 무럭무럭자라나 이맘때쯤 단감을 따먹으며 학교에 등교하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지금도 그 집은 남아있지만.... 더 이상 우리집이 아닙니다. 시골집 그리운 향수를 불러 일으킵니다.부가 정보
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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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보고 싶네요. 소주라도 한잔 하면서.^^ 언제쯤이나 만날 수 있을까요? 모처럼 흔적 한번 남깁니다. 김용택님의 시는 가만히 소리내 읽으면 더욱 정겹지요.부가 정보
kanjang_gong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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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꼭 한번 찾아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메일 주소라도 남겨주세요. 9월이나 10월초순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대전으로 찾아갈께요... 저 시간 만거든요... 그런데 제가 시간많으면 뭐합니까... 위원장님이 워낙 바쁘신지라... 걱정 끼쳐 미안합니다. 꼭 소주한잔 얻어 먹으로 가겠습니다.부가 정보
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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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언제라도 미리 연락만 주세요. 바쁜 시간의 틈새를 최대한 벌리고 넓혀서 기다리지요. kambee@jinbo.net, people4@nodong.org, 011-451-7760 아시죠?^^ 안산에 있는 해양연구원지부 사무실에서 잠깐 들렀습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