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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09/27
    [산문/도종환]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간장 오타맨...
  2. 2004/09/26
    [산문/도종환] 어머니, 나의 어머니(2)
    간장 오타맨...
  3. 2004/09/26
    [시/강연호] 신발의 꿈
    간장 오타맨...
  4. 2004/09/26
    [산문/도종환] 모두가 장미일 필요은 없다.
    간장 오타맨...
  5. 2004/09/26
    [산문/도정환] 가장 부러운 좌우명
    간장 오타맨...

[시/김수영] 싸리꽃 핀 벌판

  • 등록일
    2004/09/27 16:25
  • 수정일
    2004/09/27 16:25

피로는 도회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있다

푸른 연못을 넘쳐흐르는 장마통의

싸리꽃 핀 벌판에서

나는 왜 이다지도 피로에 집착하고 있는가

기적소리는 문명의 밑바닥을 가고

형이상학은 돈지갑처럼

나의 머리 위에 떨어진다

 

                                                 김수영 전집중에서.....<1959. 9. 1>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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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 등록일
    2004/09/27 14:34
  • 수정일
    2004/09/27 14:34

"엄마, 난 다시 태어나도 꼭 엄마 딸이 될 건데, 엄마도 내 엄마 되어줄 거야?"

엄마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

"난,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어요."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이 엄마와 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어떤 분이 자가 어머니의 임종을 옆에서 지키면서 나눈 마지막 대화다. 참 아름답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장면인데 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까.

 

"난 엄마 딸이어서 행복했다"고 말하는 딸의 말을 들으며 이 세상을 하직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푸근하고 뿌듯했을 것이다. 기력이 다하고 통증 또한 심하여 말을 할 수는 엇는 어머니이지만 딸의 말을 들으며 '그래 내가 이 세상을 잘못 살고 가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그리고 살아온 한평생의 삶에 대한 긍정은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내 엄마가 되어 달라고 말하는 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 이 마지막 대화는 얼마나 사람의 가슴을 울리는 말인가. 그러면서 얼마나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

 

인연의 수레바퀴가 돌고 돌아 어느 먼 후생에서 이 모녀가 다시 태어난다면 자리가 바뀌어 태어날지 모른다, 인연설에 의하면 그럴 확률이 높다. 어머니가 자식이 되거나 배풂을 받는 이가 되고, 딸이 다시 부모가 되거나 사람을 주는 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갚아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 한없이 베푸는 자리로 가는게 윤회의 법에 더 맞을 듯싶다. 다음 생에서도 받기만 하는 이로 태어난다는 건 어쩌면 이기적인 심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대화의 깊은 뜻은 거기에 있기보다 지금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있다. '엄마의 딸이어서 행복했다'고 하는 말은 엄마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말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있을까.

 

삶과 죽음과 인연이 이럴 수만 있다면, 죽음으로 이별하는 부모와 자식의 대화, 이 세상을 떠나는 이와 남는 이의 대화가 이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정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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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어머니, 나의 어머니

  • 등록일
    2004/09/26 16:24
  • 수정일
    2004/09/26 16:24

* 이 글은 알엠님의 [기독교적 여성주의 세미나 발제문]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며칠째 몸이 좋지 않아 누워 있는데 전화가 왔다.

"뭐 좀 먹었냐?"

어머니이시다.

"예, 곧 먹을 거에요. 에미가 아침에 죽 쑤어놓고 간 게 있어서요."

"먹을 만해?"

"예, 걱정 마세요."

"내가 가서 뭘 좀 만들어줄까?"

"아니에요. 됐어요."

"네 건강 네가 알아서 잘 쳥겨.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있니, 자주 움직일 수가 있니."

"알았어요. 걱정 마세요."

 



작년 초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일어나신 후에 계단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어하시면서 아직도 자식 걱정을 놓지 않으신다. 맞벌이하는 자식 내외가 직장 일 말고도 다른 일로 늘 바쁘게 종종걸음을 하는 걸 아시는 지라 일주일이 멀다 하고 반찬을 만들어 주시고 김치도 담가다 주시면서도 늘 더 어떻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신다.

 

우리 세대의 어머니들이 대부분 다 그러시듯 우리 어머니도 늘 자식들에게 무얼 어떻게 더 해주지 못해 걱정을 하신다. 그래서 늘 받기만 하고 갚아드리지 못한 죄스러움을 가슴에 품고 산다.

 

생각해보면, 어머니 때문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어머니의 평범한 소망을 이루어 드리지 못한 점이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소망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사람과 만나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오손도손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가족들 건강하고, 남에게 욕먹을 짓 하지 않고, 험한 세상 만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너무 쪼들리지 말고 애들 무럭무럭 잘 크고 그렇게 사는 것이었다. 평범한 생활과 소박한 행복, 그런 것을 바라섰다.

 

일본 사람들 밑에서 빼앗기고 짓눌리며 어린 시절을 보내보고, 결혼하자마자 살벌한 전쟁터에 남편을 보내놓고 아슬아슬한 삶을 살았으며, 전후의 폐허와 가난 속에서 자식을 키우며 살아오신 어머니가 바라는 평범한 행복은 평화롭고 단란하며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에 대한 기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어머니의 그 모든 기대를 저버렸다. 결혼 샐활은 건강 문제로 어려움이 많았고, 며느리는 갓난아이 둘을 시어미니에게 맡긴 채 세상으로 가벼렸다. 자식은 험한 세상을 만나 험하게 그 길을 헤쳐 나간다고 여기저기 쫓겨 다니고 있었고, 어린 남매는 어머니가 키우셔야 했다. 하나는 등에업고 하나는 팔에 안고 달래는데 하나가 울면 다른 한 녀석도 따라 울었다.

 

그런 어린 자식들을 어머니에게 맡기고 나는 기어코 감옥으로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험한 세상 만나지 말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으며, 험한 일 겪지 말고 살기를 바라던 어머니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렸다. 한순간에 고아같이 되어버린 손자들을 키우며 어머니는 매일 교도소로 면회를 오시었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니, 교육 운동이니 하는 것들은 사람들마다 분명한 자기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안들이라서 주위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말할 수 없이 괴로우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부자지간의 의를 끊겠다고 화를 내시고 친척들이나 성당분들, 동네 사람들 까지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던 당시에 어머니 혼자 감당한 눈물과 아픔이 얼마나 크셨을까.

 

시집 와서는 앞 못 보는 시아버지를 수족이 되어 공양하시고, 중풍 든 시어머니 병 수발하느라 온갖 시집살이를 하고, 세끼들 굶기지 않으려고 멸치 장사며 막일이며 마다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는 병든 시동생 죽을 때까지 간호하고 돌보았으며, 고아가 되어버린 조카들 데려다 키우고, 이제 손자들에대 자식 뒷바라지까지 해야 하는 어머니의 심정은 얼마나 찢어지셨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을 쓸 쑤가 없다. 몇 번씩 자리에서 일어나 흐르는 눈물을 닦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한다.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큰 잘못을 한 것이다.

 

거기다 출옥한 이후에 해직 생활 10년.... . 어머니가 바라시는 평범하고 소박한 행복과는 정반대되는 삶을 나는 살았다. 아이들과 오손도손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고, 식구들은 건강하지 않았으며, 모진 일들을 숱하게 겪고, 남들에게 욕을 얻어먹거나 비난을 받아야 했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이제 칠십을 훌쩍 넘기 채 몸이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는 병이 재발하면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해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봐 속으로 걱정을 많이 하신다. 당신보다는 자식들, 주위 사람들, 가족들 걱정을 하며 평생을 살아오셨다.

 

내가 쓰는 글에 혹시 선한 마음의 바탕이 깔려 있다면 그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쓰는 시가 부드럽고 온유한 데가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성품을 따른 것이다. 내 삶과 글에서 묵묵히 고통의 한가운데를 걸어 그 고통의 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어머니의 삶에서 터득한 것이다. 내가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놓지 않고 거기서 희망을 발견해야 한다는 글을 쓰고 있다면 그건 어머니의 삶에서 깨달아 안 것이다.

 

내가 만일 남을 위해 가진 것을 다 내주고 희생하면서도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도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욕심내지 않고 소박하게, 순하게 살며 어떤 경우에도 남을 악하게 대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어머니의 소리 없는 가름침에 따른 것이다.

 

어머니는 그런 분이시다. 학교 문턱도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우리 어머니. 그러나 어머니는 말로 나를 가츠치신 적이 별로 없다. 삶으로서 그걸 보여주셨을 뿐이다. 어찌 어머니의 삶의 가르침을 넘어설 수 있으랴.

 

                                                                 도종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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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강연호] 신발의 꿈

  • 등록일
    2004/09/26 13:53
  • 수정일
    2004/09/26 13:53

* 이 글은 처절한기타맨님의 [그저 한없이 걸음 걸으세요]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쓰레기통 옆에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이 있다

벗어놓은 게 아니라 버려진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한 짝쯤 뒤집힐 수도 있었을 텐데

좌우가 바뀌거나 이쪽저쪽 외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얌전히도 줄을 맞추고 있다

가지런한 침묵이야말로 침묵의 깊이라고

가지런한 슬픔이야말로 슬픔의 극점이라고

신발은 말하지 않는다



그 역시 부르트도록 끌고온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걷거나 발을 구르면서

혹은 빈 깡통이나 돌멩이를 일없이 걷어치면서

끈을 당겨 조인 결의가 있었을 것이다

낡고 헤어져 저렇게 버려지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내팽개치고 싶은 날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그를 완전히 벗어 던졌지만

신발은 가지런히 제 몸을 추슬러 버티고 있다

누가 알 것인가. 신발이 언제나

맨발을 꿈꾸었다는 것을

아 맨발, 이라는 말의 순결을 꿈꾸었다는 것을

그러나 신발은 맨발이 아니다

저 짓밝히고 버려진 신발의 슬픔은 여기서 발원한다

신발의 벌린 입에 고인 침묵도 이 때문이다.

                               

                                                             69인의 좋은 시를 찾아서 "긍정적인 밥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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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도종환] 모두가 장미일 필요은 없다.

  • 등록일
    2004/09/26 08:27
  • 수정일
    2004/09/26 08:27

장미꽃은누가 뭐래도 아름답다. 붉고 매끄러운 장미의 살결, 은은하게 적셔오는 달디단 향기, 검꽃잎과 속꽃잎이 서로 겹치면서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자태, 여왕의 직위를 붙여도 정말 손색이 없는 꽃이다. 가장 많이 사랑 받는 꽃이면서도 제 스스로 지키는 기품이 있다.

 

그러나 모든 꽃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모든 꽆이 장미처럼 되려고 애를 쓰거나 장미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실망해서도 안된다. 나는 내 빛깔과 향기와 내 모습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어차피 나는 장미로 태어나지 않고 코스모스로 태어난 것이다. 그러면 가녀린 내 꽃대에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장점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욕심부리지 않는 순한 내 빛깔을 개성으로 삼는 일이 먼저이어야 한다. 남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내 모습, 내 연한 심성을 기다리며 찾는 사람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장미는 해마다 수 없이 많은 꽃을 피우는데 나는 몇 해가 지나야 겨울 한 번 꽃을 피울까 하는 난초로 태어났을까 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화사한 꽃을 지니지 못하지만 장미처럼 쉽게 지고 마는 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장미처럼 나를 지킬 가시 같은 것도 지니지 못했지만 연략하게 휘어지는 잎과 그 잎의 담백한 빛깔로 나를 지키지 않는가. 지금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의 숫자가 물론 더 많지만 더 오랜 세월 동안 사랑 받아온 꽃이 아닌가. 화려함은 없어도 변치 않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랑받고 있지 않은가.

 

나는 도시의 사무실 세련된 탁자 위에 찬탄의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장미가 아니라 산골마을 어느 초라한 집 뜨락에서 봉숭아가 되어 비바람을 맞으며 피어 있을까 하고 자학할 필요가 없다. 나는 장미처럼 붉고 짙으면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빛깔을 갖고 태어나지 못하고 별로 내세울 것도 없는 붉은 빛이나 연보란 빛의 촌스러운 얼굴빛을 갖고 태어났을까하고 원망할 필요가 없다. 봉숭아꽃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빛깔을 자기 몸속에 함께 지니고 싶어 내 꽃과 잎을 자기 손가락에 붉게 물들여 지니려 하지 않는가. 자기 손가락을 내 빛깔로 물들어놓고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할 만큼 장미는 사랑받고 있을까. 장미의 빛깔은 아름다우나 바라보기에 좋은 아름다움이지 봉숭아꽃처럼 꽃과 내가 하나되도록 품어주는 아름다움은 아니지 않은가.

 

장미는 아름답다. 그 옆에 서 보고 싶고, 그 옆에 서서 장미 때문에 나도 더 황홀해지고 싶다.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시기심도 생기고 그가 장미처럼 태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은근히 질투도 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장미일 필요는 없다. 나는 나대로, 내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산국화이어도 좋고 나리꽃이어도 좋은 것이다. 아니, 달맞이꽃이면 또 어떤가.

 

                                                          도종환 산문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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