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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03
    월간평가서 3
    간장 오타맨...
  2. 2005/01/03
    주간활동평가서 10
    간장 오타맨...
  3. 2005/01/03
    주간활동평가서 9
    간장 오타맨...
  4. 2005/01/03
    주간활동평가서 8
    간장 오타맨...
  5. 2005/01/03
    주간활동보고서 6
    간장 오타맨...

지난 3개월을 돌아보며...

  • 등록일
    2005/01/07 08:45
  • 수정일
    2005/01/07 08:45
참 내가 나를 돌아봐도 스스로 대견하다. 지난 3개월 건설일용직노동자로 노동현장에서 잘 일을 나갔다. 내가 건설노동자의 삶을 이해하기엔 삶이 너무 단초하다. 처음 일나간 현장에서 잡은 삽자루 손이 아렸고, 어깨에 맨 철근의 무게가 삶의 무게보다 무거워 힘이 들었고, 비오듯 쏟아지는 땅방울을 흘리면서 기뻣던 기억... 짧은 기간 동안의 경험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처음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을 해보았지만 아침 밀려드는 잠과 싸워야 했고, 일이 힘들어 때론 마냥 쉬고 싶어 주저 앉기도 했던 기간... 삶을 이어나가기엔 내가 너무 편안게 생활을 해왔음을 직시하였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본 노동(공장생활과 다르게) 결코 녹녹하지 않다. 오야지의 보챔이 ㅤㄸㅒㅤ론 짜증으로 들리고, 일머리를 몰라 이리저리 바쁘지만 정작 일은 진척이 되지 않았던 기억.... 하나둘 알아나가고 몸이 일에 적응한 요즘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현장을 이야기하였지만 난 현장에 갈 준비가 덜되었던 것 같다. 오산을 중심으로 여러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일도 다양하게 하였다. 목수/쓰미(조적)/미장/철근 대모도도 해보았고, 도로 표지판을 붙이는 일도 해보았고, 공장 철거하는 일도 해보았고, 공장에 나가 박스 무게를 밴딩하는 작업을 하며 서 있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을 느껴보았다. 힘으로 하는 일을 뭐든지 닥치는데로 하면 잘 할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노동도 경험에서 나오는 숙련의 반복임을 깨닫고 가냘픈 몸으로 일을 하는 그 분들이 경이롭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기간 일을 나가 마신 술도 박스로 대략 4상자는 될 것 같다. 평상시 먹었던 술보다 많은 술을 먹고 술에 취해 어찌어찌 다솜교회로 오는 날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 술 먹었을 때 기억과는 다르게 기분좋게 왔던 것 같다. 이전 술을 먹었을때 힘들어 기대고 싶었던 날들이 많아 술을 먹고 우두커니 내 집에 오는 그 길 왜 이리도 씁쓸하거나 쓸쓸했는지.... 가로등 골목에 켜 있는 불빛에 안식을 취하고 싶었던 기억들이 조각조각 나있던 그 때와 다르게 어찌어찌 왔지만 늘 기뻤고 격려를 받고 위로를 받았던 것 같다. 용역 아저씨들로 부터 받은 위로로 내 상처 조각들이 봉합이 되었다. 처음 힘들어 용역나가 무슨 일을 할까 두려움이 밀려드는 시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저씨들과 어떤 일을 나갈까의 기대로 돌아서면서 참 행복하게 용역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일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내 생애 30대 가장행복했던 기억들이다. 위로도 받고 격려도 받았다. 진심 어린 조언들도 많이 들었다.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 아저씨들과 엊그제 마지막 술자리를 하였다. 그런데 가슴한켠 뭉클하다. 아저씨들과 이후 만남은 이어지겠지만 난 비겁하게 아저씨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돌아섰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저씨들에게 진솔하게 대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아저씨들 참 고마웠고 죄송해요. 내가 뭐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되었네요. 제가 첫 상근비 받으면 아저씨들과 우리 중앙시장에서 한잔해요. 모리스 아저씨도 함께요. 늘 진심어린 말들 삶의 충고로 들으며 살아갈께요. 높은 곳보다 낮은 곳을 보면서 위안을 받기보다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아저씨들이 있었기에 제 짧은 기간 노동...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노동을 아름답다 말하지만 전 아름답지는 않다고 봅니다. 연실 마셔야 하는 시멘트 먼지... 용역이라 당해야 하는 그 서러움이 있지만 세상 아침이 있으면 저녁이 오듯 그렇게 시간이 지나 간다는 아저씨들의 말 교훈 삼아 살아가렵니다. 처음 잡은 삽자루가 손이 아렸던 아픈들 처럼 이렇게 아저씨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못내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그래도 중앙시장에 나가 아저씨들 찾아 갈께요. 아저씨들 술 조금 드셔요. 고마웠습니다. 정말로.... 아저씨들이 제 글을 볼 수는 없지만 내 마음입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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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CC에 가보았다.

  • 등록일
    2005/01/06 23:59
  • 수정일
    2005/01/06 23:59
한원CC에 법원에서 가처분 신청이 내려져 가보았다. 기간 농성하던 천막을 철거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왜 철거를 하여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유인 즉슨 철거를 하지 않으면 매일 2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돈 앞에 무기력하지 않는 사람 어디있겠는가? 조합원의 한숨썩인 말이 귓가를 때린다. 혼자 죽지 못해 살고 있다. 저 놈들에게 이렇게 당하는 것이 서럽다는 말.... 한원CC 경기보조원 노동자의 자조섞인 말이 천막 철거하는 동안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노동자가 정당한 파업을 해도 법이라는 앞에 무기력하게 당해야 하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는 말이 나오지만 상식은 자본가들에게나 통하는 사회인가 보다. 법 또한 자본가들을 배불리 먹여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지만 장기농성투쟁을 하거나 파업을 벌이는 현장에서 당해야 하는 노동자의 입장은 어떠할까? 조합원의 말데로 죽지 못해 살아갈 수도 있다는 심정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소름이 돗는다. 한원CC 노동자들에게 처해진 현실이 이 땅 모든 노동자들의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조합이기에 당해야 할 설움 또한 장기투쟁사업장에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노조원들의 단결된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웃음을 잃지 않고 서로 격려하고 이 투쟁 반드시 승리해 사측에 당한 설움 다 갚아준다는 다짐의 소리가 위안이 되지만 그래도 가슴 한켠 후련하지만은 않다. 나야 지역현안이라 별 도움없이 천막철거와 나무가지에 있던 천 조각들을 걷어내는 작업을 도와주었고, 덤으로 밥과 술(막걸리 2잔)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노조원들 언제 해결될지 모르는 불안한 생활 속에서도 웃음 잃지 않는 여유로움.... 아마도 속이 다탄 후 얻은 해탈이 아닐까? 끝질긴 놈이 승리한단느 것을 보여주는 사업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시간되면 한원CC 포장마차에 가서 조합원들의 겨울나기 도와주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술을 팔아주는게 최선의 임무 같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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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경림] 農舞(농무)

  • 등록일
    2005/01/06 19:10
  • 수정일
    2005/01/06 19:10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담담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쓴는 건 쪼무레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신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신경림 시전집 농무 중에서....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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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날렸다.

  • 등록일
    2005/01/06 09:08
  • 수정일
    2005/01/06 09:08
어제 술을 먹었는데.... 하루를 날렸다. 낮부터 중앙시장 술집을 몇개 돌았고, 어찌어찌 다솜공부방에 와서 잠이 들었는데... 지금에서야 일어났다. 몸이 피곤하였던 모양이다. 잠 푹 잤다. 지금 몸이 여기저기 뻐근하다. 아무 생각없이 술에 취해 편하게 쉬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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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는 한국교회 찾아온 예수님”

  • 등록일
    2005/01/04 21:25
  • 수정일
    2005/01/04 21:25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 인터뷰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전현준 본지 편집위원 지난 10월 1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법무부가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 「불법체류자의 반한활동에 따른 종합대책」(이하 「종합대책」)에 따르면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를 비롯, 서울조선족교회, 서울외국인노동자선교센타,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방글라데시애국자모임, 버마민족민주동맹한국지부 그리고 민주노총산하 이주노조지부 등이 국가정책반대 등 반한관련 불법체류자 지원 단체로 규정돼 있다.


이와 관련,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10월 22일부터 즉각 반한 규정의 중단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그는 단식에 들어가면서 “법무부가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의 인권 신장을 위한 활동을 반한 활동으로 규정한 것은 명백한 종교와 인권 탄압이며 이러한 자의적인 국가 권력기관의 횡포와 비인권적 행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박천응 목사가 단식에 들어간 이유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백도웅,․KNCC) 인권위원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인권위원회 등 17여개 인권관련 단체들도 10월 26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 앞에서 ‘인권단체 반한 활동 규정에 따른 법무부 규탄 기도회 및 기자회견’을 열어 법무부 장관의 공개사과 등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날 기도회에서 참석자들은 “당국에서 불법체류자라 부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해 체류기간을 넘기거나 연수업체의 노동력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 사업장을 이탈한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국내의 젊은 인력들이 모두 떠나버린 제조업 현장에서 산업재해와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감수하며 이 나라 산업의 밑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과연 반한 활동 체류자인갚라고 되물었다. 이 날 성명서는 “종교시민단체와 한국교회는 이번 사태를 종교탄압, 인권탄압과 관련한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그냥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법무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까지 계속 투쟁해 나갈 것”을 분명히 했다. 특히 국정감사문건자료 작성 및 제출자 즉각 처벌,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성소침탈 관계공무원 구속수사, 반한규정 테러조장 중단, 불법체류자 사면조치 실시, 산업연수제 폐지, 고용허가제 독소조항 폐지 등을 정부 측에 요구했다. 박천응 목사는 장로회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989년 안산으로 내려와 안산형제교회 담임목사를 시작으로 외국인노동자 대책협의회 회장, 안산자활후견기관 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다문화교회 목사,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상임대표 등을 맡고 있다.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로서는 많은 양이 내린 11월 10일 안산 원곡동에 있는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를 찾아간 시간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아직도 단식 중인가? 건강은 어떤가.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는 외국인노동자 보호를 위한 서울서남노회의 공식 선교기관이다.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보호하는 것은 교회의 고유한 사명이다. 특별히 소외된 외국인 노동자들은 교회가 마땅히 돌보고 보호해야 할 이웃들이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이사장 고훈 목사)는 바로 그러한 외국인노동자들을 섬기기 위해 예장통합교단 총회 산하 서울서남노회에서 운영해 온 공식 선교 기관이다. 나는 본 교단에서 우리 총회와 노회를 대신해서 파송된 목사로 지난 10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타의 모범이 되는 외국인노동자 선교사역을 감당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번 단식도 많은 분들이 염려하는 가운데 교단의 만류로 지난 주 수요일(10월 3일) 풀게 됐다. 건강에는 별 이상이 없다.” 단속원들, “네가 목사면 나는 하나님이다”며 폭행 -단식농성에 들어간 경위를 설명해 달라. “이 사건은 법무부가 말하듯 무슨 오해나 실수에서 일어난 일이 결코 아니다. 올해 3월 9일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사무소 소속 단속반원들이 허락도 없이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무단 난입하여 우리 센터에서 보호 중이던 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강제 연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내가 목사 신분을 밝히고, 항의하자 서울목동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 영등포경찰서 형사들이 내게 “네가 목사면, 나는 하나님이다”라는 신성모독적인 폭언과 함께 멱살을 잡고 폭행하며 30여 미터 이상 나를 질질 끌고 강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왼쪽 팔목 삼각 연골판이 파열되는 부상으로 5주 상해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와 관련, 인권위원회, 서울서남노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이 법무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이 사건은 서울목동출입국관리소 관계자와 영등포경찰서 관계자를 상대로 ‘무단주거침입, 상해, 모욕, 명예훼손’으로 서울 남부지검에 제소 법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 사건과 당신이 ‘반한’ 활동가로 ‘찍힌’ 것이 관련 있다고 보는가. “서울남부지검에 고소를 당한 관계자들이 불안을 느낀 나머지, 나를 거꾸로 공무집행 방해로 고소하고, 이를 국정감사자료에 반한(反韓)활동 인사로 보고한 것이다. 법무부가 국정감사에 제출한 「종합대책」 160쪽 ‘반한관련 단속실적’에 보면, 2004년 8월말 현재, ‘불법체류자 단속 방해자 고발’로 3건을 명시했다. 특히 불법체류자 단속방해 고발 실적 사례로 ‘박천응 목사를 공무집행 방해로 고소한 것’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규명도 되지 않은 사건을 사람의 이름과 함께 국정감사 보고자료에 명시하고, ‘공무집행’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일 뿐 아니라, 고소당한 관련 공무원들의 악의적인 보복적 행위라고 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사건은 ‘인천출입국관리소 단속반’이 아니라 ‘서울목동출입국관리소와 영등포 경찰서 단속반’이 관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자료엔 허위보고를 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총 3명이 인천출입국관리사무소 단속반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대한 공권력의 무단 침입과 성직자 폭행 및 신성모독은 묵과할 수 없는 만행이며 법무부의 나에 대한 반한(反韓) 인사 규정은 이 사건을 철저히 왜곡, 변질 시키고 있다.” -당신이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어떤 동기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그때마다 대답하기가 매우 곤혹스럽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질문이 고마울 때도 많다. 왜냐하면 다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나는 대학생 신분으로 민주화를 위한 반독재 학생운동을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자, 빈민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기 위하여 공장과 빈민 현장에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았다. 1989년 안산에 내려와서는 이른바 빈민공단지역의 민중과 함께 하는 민중교회인 '안산형제교회'를 개척하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위한 청소년 공부방을 개소하여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안산 시화 공단 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민중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와 함께 하는 목회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하던 1992~1993년경부터 동네 주변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이미 나 자신은 다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문제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 아무도 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서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을 맡아 헌신하며 연대하고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내가 나서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목회를 지향하던 중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나 함께 하게 된 것이다.” -이 운동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가장 큰 고민이나 갈등은 무엇인가. “나는 요즘 행복한 사람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며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도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날 수가 있다. 내게도 관점의 차이로 인한 고민이 있었다. 첫째는 주체화의 문제요, 둘째는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에 관한 부분이다. 첫째, 주체의 문제에 대하여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운동을 하면서 그들을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는 잘못된 견해가 있다. 한국 사람이 앞장서서 해 나가면 그들은 따라와 주어야 하는 운동의 대상, 교육의 대상, 동원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이주노동자들은 종교적으로도 선교의 대상, 교화의 대상일 뿐이다. 외국인 노동자를 인격체로, 주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사물로,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심한 말로 하면 외국인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의 이용물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일체(一體)의 정신'이다. '나와 네가 하나‘라는 그 생각 말이다. 일체의 정신에서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이 가능해진다. 상대를 주체로 보지 않고 대상으로 보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영원히 우리에게 종속시키겠다는 보이지 않는 값싼 자기 만족일 뿐이다. 종교적으로 말하면 '외국인 노동자는 1990년대에 한국 교회에 찾아오신 예수님'으로 '섬겨야 할 분'들 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인 노동자운동에서 한국인의 위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돕는 협력자이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주노동자는 예수님” 두번째는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왜 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남을 위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나는 ‘외국인 노동자 운동을 하고 있다’는 말조차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지금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이 결국 나를 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고, 사회를 위한 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면…. 특히 운동을 하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 분들에게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이미 말했듯이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전체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주어진 오늘에 충실히 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야 미래도 있는 것 아닐까. 무슨 거창한 계획이라기보다는 소망이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가진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그동안 우리 실무자들이 고생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체불된 임금과 산재보상금을 받아 자기 나라로 돌아간 그 사람들이 자국민을 대상으로 성매매 사업과 향락산업에 종사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우리들이 한 일이 그들의 성매매 사업과 향락 산업을 돕기 위한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허탈해 진 적이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권리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실무자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마음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오히려 일하지 않는 것이 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외국인 노동자 농장이다. 우리는 농사를 지으며 자연친화적인 마음을 회복하고, 명상의 시간 등을 통해 자신와 이웃과 사회를 근원적으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모든 변화의 출발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의 일에 매몰되던 것에서 벗어나 관찰자의 입장에서 우리 일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자리도 1~2년 내에 다른 사람에게 인계하고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면서 '잊었던 나와 우리 자신을 찾는 작업'을 계속 하고 싶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단체들 간의 연대와 국가별 국제연대가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에 있다. 국제연대사업에 재능을 가진 사람이 나와 국제연대의 틀을 이루어 나갔으면 하는 소망과 각 단체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한 교육 훈련 과정이 체계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에 대해 ‘너무 강경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에 대해 나 스스로는 강경하다기 보다는 원칙을 알고 행하려고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원칙을 알고 행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뛰어들 것과 뛰어 들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고 아는 지혜를 말한다. 나는 천상 목사이기 때문에 목사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원칙 속에서 얘기하고 말하고 실천할 뿐이다.” “‘운동의 힘’을 독점하는 것은 죄(罪)” -우리 시대의 사회운동이라 할지 진보운동에 대해 애정 어린 비판과 조언을 부탁한다. “지난 번 내가 ‘민주노총이 적극적으로 이주노동자 문제를 자기 문제로 못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어용이 아니냐?’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민주노총이 정말 어용이라는 뜻이 아니고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의 문제까지 자기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우리 모두 사회를 향한 문제제기는 잘 하고 있지만 문제해결의 답을 찾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한 가지 언젠가부터 우리 운동 역시 힘에 대한 경쟁과 집착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는 큰 문제인 것 같다. 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누구를 위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만 그 힘을 독점하고 자기들만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문제이고 죄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질과 비물질이 함께 가는 사회이며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내가 생각하는 참된 진보주의란 사회과학 학습과 공부를 얼마큼 많이 하고 투쟁일선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가 아니라 진정 자기를 버릴 수 있고 비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종교인이란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살아가겠다는 길이다. 이 길을 모든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만 ‘섬김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운동의 길에 나서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과정적으로는 섬김의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짜 진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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