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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행...

  • 등록일
    2005/01/08 09:40
  • 수정일
    2005/01/08 09:40
남들은 지구화 시대에 맞춰 해외로 여행을 많이 나간다. 나도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고 나에게 있어서 해외여행은 분명 사치이다. 그러다 가기 시작한 국내여행.... 참 좋은 곳을 많이 다녔다. 난 해외여행은 포기한지 이미 오래다 국내에 있는 산들이나 다 올라가 보자... 좋은 공간 많다. 국내에 있는 섬들도 다 가볼 계획이다.


오대산에서 걸었던 길은 참 향이 있고 운치 좋은 길.... 빼곡히 수놓은 전나무숲의 향기에 취해보고 걷고 명상하며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힘들었던 기억들... 그리고 오대산 비로봉을 오를때의 감격... 그리고 수재 이전에 오대산 상주사로부터 시작해 강릉부근 소금강까지 걸었던 기억들이 야런한 추억으로 남는다. 그냥 걷는게 좋았고 주변 펼쳐진 산들의 능선능선의 굵은 높낮이에 감탄을 연발하였던 때의 아련함이 밀려온다. 북한산을 오르면서 느낀 산의 굵은 선... 누가 조각을 했을 것 같는 느낌으로 밀려드는 북한산 첫번째 능선 암벽의 굵음에 감탄한다. 난 주로 북한산을 불광사에서 부터 시작해 능선을 따라 일주한다. 가다가 국사교사서에서 나오는 북한산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로봉에서 커다랗게 보였던 도시의 건물이 조금마한 점으로 보일때 이리도 하찮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하고 향로봉에 가서 북한산 능선의 굵음을 가늠하고, 사모바위에서는 낮은 능선과 바위를 지켜보며 휴식을 취하고 복원된 북한산성을 보면서 인간의 역사를 엿본다. 이리도 좋은 곳이 있는 것에 감탄한다. 그리고 북한산의 지붕이라 할 수 있는 백운대를 올라간다. 그리고 구파발 쪽 방면으로 내려온다. 산을 걷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땅방울 머리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것도 꽤 기분 좋다. 작년 9월 아는이가 사는 곳에 위치한 산을 또 가보았다(무악산, 무악대사가 명명하였나...^^). 무악재를 곁에 두고 있는 그 산은 참 동산이지만 인왕산 서대문 감리교 신학대를 끼고 동네를 올라가다 나오는 무악산 등산로... 등산로라 하기보다는 동산에 있는 동네에 위치한 동산이다. 운동을 하러 오는 이들이 쓰겠금 만든 운동기구들... 그리고 조금 올라가면 우뚝 솟은 암벽이 나온다 이 곳을 올라가면 남산, 종로, 인왕산, 서대문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무악재에 있었던 옛 서울여상 자리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내려가 약수터에서 약수 한사발을 먹고 내려오면 서대문에 있는 태고종 절이 나온다. 이 곳 암자에 모셔진 부처님의 크기에 놀란다. 일반 사찰에 있는 부처와 다르게 다가온다. 금호터널 뒷편으로 나오면 일주를 하는 공간이다. 서대문에서 가볼 만한 곳이다. 낮은 산이라 걷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다. 남해는 볼 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전 보리암을 가기 위해 내려가 상주해수욕장에서 쉬었던 기역... 동해의 해수욕장은 옆에 친 해안철책 때문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남해의 해수욕장은 이러한 구조물이 없다. 그래서 좋다. 모래사장에서 뛰어놀수 있다. 다만, 여름철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더렵혀진 아침 모래사장이 볼상사납게 보이고, 여기저기 여행객을 상대로 한 장사치들이 볼상사납게 보이는 것 이외에는 좋다. 그리고 바다가를 끼고 있는 고즈넉한 농촌에서 민박을 하면서 바람의 깊이를 느끼고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는 것도 운치 좋다. 자전거로 남해를 일주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벌교는 태백산맥에서 나오는 그 갯벌의 조개... 손이 부르트도록 케낸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가야산이 위치한 송광사가 가볼만한 사찰이다. 사찰 초입에 있는 사천왕들이 있는 문이 볼만하다. 그리고 가야산에 댐이 생겨 예전의 운치를 다 앗아 갔지만 가볼 만한 곳이다. 하동에서부터 구례까지 난 도로(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를 도보로 걷는 것이 꿈이다. 하동에서 섬진강을 끼고 있는 마을을 볼 수 있다, 참 경치 좋다. 그러나 한가지 흠은 하동 에 있는 군사시설문이 계속해 눈을 거스린다. 산 꼭대기에 나 있는 레이더 기지가 참 볼품 사납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지나가 조금 올라가면 하동에 화개장터...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는 그 장터... 옛날의 운치 다 없어졌다고 하지만 시골 구수한 냄새와 인정은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그 인심이 넘쳐 주체하기 어렵도록 정겹다. 화개장터에서 섬진강을 끼고 가다보면 섬진강의 어느 곳에서나 쉬고 싶다. 어디를 가도 쉴수 있는 섬진강 줄기... 햇빛에 반사된 섬진강의 빛은 은빛이다. 금빛보다 찬란한 은빛 물결... 길 가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 그 물줄기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아 그 물결을 다시 보고싶다. 그러다 마주하는 곳이 쌍계사이다. 쌍계사에서 피아골로 갈 수 있는 공간... 아 그 피아골 지리산 등정때 힘들었던 그 모래언덕... 가도가도 끝없는 것만 같던 그 길... 그러나 힘을 내어 맞이한 산 정상 도착의 감격... 임걸령에서 갈림길에서 뱀사골로 간다. 피아골의 힘든 여정이 뱀사골로 나를 인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찾아간 구례... 구례 또한 가볼 만한 곳이 너무 많다. 화엄사는 마지막 가볼 코스이다. 화엄사 자동차 야영장에서 야영을 하면 돈을 받지 않기에... 여름이나 봄, 가을 자주 이용하면 좋은 공간이다. 구례에서 남도의 향을 더 느끼고 싶다면 보성으로 가면 좋다. 차 밭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운치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걷다가 찾아간 다원(茶院)에서 주인의 인심에 함박웃음 짖거나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운치를 그리고 강진 땅으로 막바로 가면 좋다. 강진 땅 붉은 황토가 유명하고, 그 황토는 자기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고장으로 강진을 이끌었다. 그 황토길을 걷거나 가마집을 많나 장인이 만들고 있는 자기를 구경하거나 붉은 황토길을 걷는 것도 여유롭다. 아기자기한 길 또한 고즈넉하고 풋풋한 냄새를 자아낸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구수한 향과 사람 향기가 참 정겹게 다가오는 곳이다. 강진에서 해남이나 완도로 가보면 좋다.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남도를 여행한다면 난 전라남도를 권하고 싶다. 내가 태어난 고장이라서가 아니다. 그 곳엔 사람 향 순박한 촌놈들이 모여 아웅다웅 사는 곳이다. 고차원적인 것이 없다. 동학농민들이 그랬을 순박함이 너무 철철 넘쳐흐른다. 완도를 가면 그 곳에서 꼭 거문도를 가는 배를 타고 가보시기를... 거문도.... 이국적 정취가 넘쳐흐른다.(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억제하기 위해 영국군이 머물었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국적 정취 향수가 잘 어울린다.)쉬기에도 좋고... 보길도나 다른 섬들은 옛 정취를 잃었다. 그냥 도시인들이 쉬러와서 쉬고가기엔 좋지만 그 지역의 향을 아는데는 결코 권하고 싶지 않다. 완도에 가면 꼭 풋상어 찜에 탁주를 한사말 먹어 보시길...(군침이 돈다.) 그리고 해남 땅끝을 가서 한반도 땅 맨끝을 딛고 서보고 돌아서서 영암땅으로 오면 좋다. 영암 영산강하구 때문에 과거에 비해 웅장함은 덜하지만 그래도 섬진강에 견줄만한 강가이다. 그 영산강을 아래로 내려다 보고 있는 월출산 또한 경감이 빼어나다. 등산을 하기에 조금 험한 산이지만 산에 올라가면 결코 산에 온것이 후회되지 않는 산이 월출산이다. 월출산에서 내려다본 경치 또한 운치가 좋다. 월출산을 등정하고 난 후엔 목포에 가서 세발낙지에 소주한잔을 하면 금상첨화이다. 목포에서 꼭 가볼 곳은 홍도이다. 홍도 앞바다 홍어잡이의 만선의 꿈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지만... 홍어 푸른바다와 가면서 볼 바다 참 좋다. 홍도에 가면 바다에서 파도의 소리를 귀기울여 보세요. 홍도가 당신에게 바다의 목소리를 들려줄 것입니다. 밀려오는 파도의 힘을 바람으로 느껴보시기를... 목포에서 또 담양을 가보세요. 담양 길들에 난 나무들이 햇볕을 가리고 서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합니다. 담양에서 수목원에 들려 산림욕을 한 후 내장산이 있는 정읍으로 넘어가는 것도 운치가 좋습니다. 내장산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산을 넘는 길에서 경관들을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자나 와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 탄성은 자연스러운 감탄사입니다. 아 우리 강산 이리도 아리따웠구나 하는 생각에 미소를 지게 합니다. 다음에 꼭 한번 다시금 오겠다는 다짐도 해보게 하구요. 차에서 내려 백양사에 가보세요 그 내장산이 품은 기를 사찰에서도 면면히 살펴볼 수 있답니다. 내장산도 지리산과 마찬가지로 남도를 품은 어머니 모습을 정읍에서는 부안이나 고창으로 가거나 덕유산으로 갈 수 있습니다. 전북에는 부안지역의 내소사가 있어 좋고, 덕유산이 있어 좋고, 고창의 선운사가 있어 좋습니다. 내소사는 옛 목재건물의 운치를 흠뻑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내소사는 내소사도 보기 좋지만 그 길에 난 등산로가 마음에 꼭 들어요. 나무 숲길이 좋다고 하는데 전 오대산 월정사와 비교하였때 조금 못미치는 것 같아요. 고창 선운사는 가는 길이 좋아서 좋답니다. 걸어가세요. 아기자기한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답니다. 부안 해안을 좋다고 하지만 난 산사가 더 마음에 듭니다. 덕유산 또한 많이 개발되어서 이전에 비해 좋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국도를 따라가 만난 덕유산은 남도의 산치고는 참 좋답니다. 그리고 마이산도 좋다고 하지만 돌탑 이외엔 별로 더라구요. 저는 마니산은 한번 가고 안가봤답니다. 그리고 경북 영주로 떠나보세요. 경북 영주 풍기에서 비로사를 가서 소백산 능선의 위용을 보시고, 마지막 죽령의 웅작함 또한 비장하게 느낄 수 있답니다. 지리산 처음 올라 노도단에서 보는 그 느낌을 죽령 소백산 마지막 자락인 죽령자락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경북 영주는 다양한 방법으로 갈 수 있습니다. 청량리역과 서울역에서 안동행 무궁화호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그 안동행 무궁화호를 탈때 전 청량리역에서 타는 것을 권유해 주고 싶습니다. 서울역행은 가는 길이 너무 건조한것에 비해 청량리행은 가는 길 느린 듯 가는 철도가 주는 주변 경치 선물이 좋습니다. 풍기역에서 내려서 도보로 2시간 가량 걸으면 도착하는 비로사 야영장이 있습니다. 전국 야영장 중에서 가장 잘 꾸며 놓았고, 깨끗하게 단장한 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고 비로사에서 올라가는 산행 또한 걷기가 편해 좋습니다. 비로사에 올라 보는 국망봉 그리고 제2연화봉이 위치한 소백산 천문대 까지 바라보는 경치가 좋습니다. 비로사 정상부근 불이 나서 지금 복원중인게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비로사에서 내려와 산불감시초소에서 끓여먹는 라면의 맛과 소주맛도 운치 좋구... 높낮이가 그리 심하지 않는 소백산 능선 걷기도 좋습니다. 소백산 천문대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등산객들이 희방사역(아기자기한 역이 아름답지만 산을 올라가기 위해 난 돌계단때문에 걷기는 재미없는 등산코스입니다.)을 찾기만 전 권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짧은 등산을 원하거나 체력이 대단하신 사람들은 올라가 보세요. 그 길을 따라 소백산 천문대에 오면 콘크리트 도로가 나 있습니다. 이길을 쭉 따라가면 죽령휴게소가 위한 곳까지 걸을 수 있습니다.(왕건이 넘었다 죽을 뻔한 그 죽령이 경상도와 충청도를 경계로 나누고 있는 위용을 당당히 들어냅니다.) 죽령을 넘어 경상도 땅에 닿으면 그 곳이 풍기요, 넘어서 충청도 쪽으로 가면 단양땅입니다. 경상도 쪽에 있는 죽령주막에서 먹는 동동주와 도토리묵 그리고 감자전 일품입니다. 꼭 한번 먹어보시기를.... 단양땅으로 내려와 영월로 넘어가보세요. 영월에 동강에 가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자연 경관은 그대로 이지만 이곳에 삶의 터전을 닥았던 동물들을 내쫓겨난 것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레포츠로 하는 레프트는 인간의 자연 사랑이 허구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영월에서 정선으로 가서 아라지요의 땅을 밟아보시기를.... 아우라지에서 머물러 보고 정선 5일장에서 정선 내음을 느껴보세요. 그러나 그 느낌은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흉물처럼 들어선 시멘트 공장에서 턱 막힙니다. 단양 땅도 시멘트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미래에 다가올 황폐화된 도시... 산이 없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는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정선땅에서 삼척동자가 있다는 삼척으로 넘어오세요. 다른 동물은 가보지 않았지만 환선굴은 가볼만합니다. 그러나 이 환설굴 또한 민간자본(이하 민자)로 세워진 곳이기에 입장료가 조금 비싼편입니다. 여기저기 수해복구 지역이라는 문구가 못내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인간이 빚어낸 현실이라는 사실때문에 자연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게 됩니다. 삼척 묵호항에서 도루묵이 많이 잡히니 먹어보세요. 그리고 다른 횟거리를 먹어보거나 묵호항에서 비린내도 맡아 보고 방파제를 걸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전형적인 어촌마을 또한 유심히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차가 있다면 강릉까지 해안도로를 달려보는 것도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모래시계를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정동진은 가볼만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쓰기 위한 소비공간으로 탈바꿈한 정동진이 못내 아쉽게 다가옵니다. 강릉에 도착하면 경포대에 가기전 초당두부 마을이 나오는데 꼭 한번 찾아가 초당두부를 먹어보세요. 새벽에 고속터미널에서 내려와 경포대를 일출을 보러 간다면 꼭 한번 고속터미널에서 택시타고 초당두부집에서 뜨거운 초당두부를 한사발 먹어보시구... 독하디 독한 소주로 초당두부의 온기를 다스려 보시기를 권유하고 싶습니다. 강릉 경포대 이름모를 카페에서 맞이하는 일출 구경 꽤 괜찮습니다. 커피나 자신이 좋아하는 차를 한잔 시켜놓고 우두커니 앉아서 지켜보는 광경... 그리고 해가 떠오른 후 낮에 이 곳에서 해변가를 지나다니는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소라 한봉지를 사서 입으로 빼먹는 재미도 솔솔하답니다. 강릉 경포대에서 머물렀다면 주문진을 가거나 속초로 내달려 보세요. 주문진에서는 오징어 만선의 기쁨을 갖고 오는 어민의 만선의 꿈도 느껴보고 그 만선의 꿈으로 가져온 오징어 회도 한사라 시켜 먹어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가 있답니다. 속초에서는 대포항 방파제를 걸어보세요. 파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좋답니다. 묵호항에서 회를 먹거나 아니면 따끈한 국밥을 먹고 울산바위가 있는 설악산으로 떠나보세요.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나 나오는 공간... 그리고 산암벽에 나 있는 자그마한 암자에서 소원을 빌어보거나 산을 걷고 싶지 않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울산바위(전 잘 몰랐는데 왜 울산바위가 되었는지를 TV 전례동화를 보고 알았답니다. 예전 하늘나라에서 이 땅에서 자장 아름다운 돌들을 금강산에 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그 중 울산에서 온 바위가 설악산이 금강산인줄 알고 머물렀다는 것이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까지 올라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전 삼성콘도에서 가본 적이 있는데.... 그곳 창밖에서 펼쳐져 있는 설악산이 마치 병풍처럼 느껴지더군요. 설악산 지금 가면 오징어 불고기가 맛나게 냄새를 풍기고 있겠네요.. 그리고 산채비빔밥도 군침이 넘어가도록 먹고 싶답니다. 아 맛나겠다. 속초에서 설악을 다녀왔다면... 통일전망대로 가보세요. 통일전망대에서 북녘땅을 바라보고 우리내 왜 평화롭지 못하게 이 철책이 갈라져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간혹 때를 잘 맞춰 가면 북한 방송도 들을 수 있습니다. 북한 방송 참 우리 남한방송보다 좋은 방송이 많아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시간 주옥의 명반 음악이 꼭 평화를 부르는 오케스트라 같거든요. 경기도에서 간다면 파주에 있는 오두산 전망대에 가보세요. 굽이쳐 흐르는 임진강이 분단의 슬픔의 강임을 알 것입니다. 서로 높이 경쟁을 하면서 올린 160M 짜리 북한 깃대도 볼 수 있고 한국에서 올렸다는 100M 깃대도 있습니다. 이념의 고리만큼 높이도 서로 하늘의 이상만 바라보는 인간을 비웃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금강이 위치한 고성땅에 가보세요. 금강산의 줄기라 할 수 있는 해금강... 분단이 아니면 이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정겹게 살까도 고민하게 합니다. 고성에서 머물다 알프스 리조트에서 일박을 해보세요. 속초가 낮게 보이고 바다가 참 넓게 품안에 들어옵니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이 높은 곳에서 스키를 타거나 그렇지 못한 분들은 눈썰매를 타며 설인이 되어 보는 것도 좋답니다. 전 스키를 못타고 탈 생각도 없지만 눈썰매 참 재미납니다. 그리고 춘천으로 오세요. 춘천역(비둘기호가 춘천을 올때 제격이었는데 그 비둘기호는 시대에 밀려 자리를 무궁화호에게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 것이 못내 아쉽네요.) 부근 춘천닭갈비를 잘하는 집을 여행가이드 책을 보고 찾아가 맛나게 먹고... 소양호로 가보세요. 그 곳에서 몇시간 간격으로 인제에 가는 배편이 있는데 이 배도 타보는 것도 좋답니다. 마을을 호수 속에 묻어야만 했을 수몰민의 심정은 어떨것인가?.... 소양호에서 빙어회나 튀김을 먹는 것도 솔솔한 재미입니다. 춘척역으로 다시금 와서 중도를 한번 가보세요. 중도도 좋답니다. 남이섬보다 전 개인적으로 중도가 더 마음에 듭니다. 춘천에서 머물었다면 원주 치악으로 가세요. 산사의 깊이와 치악의 험난함을 느껴보세요. 걷기는 힘들지만 그 산 걸을만한 가치가 있는 산이라 생각됩니다. 치악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걸다보면 자신의 높은 곳을 우리에게 들키고 맙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걸을만한 가치가 있는 산입니다. 혼자 서서히 걸으면서 명상을 하기에 좋은 산입니다. 조금은 힘들지만.... 태백산도 좋은 산입니다. 태백산은 축제나 사람들이 몰릴때가 아닌 가울 억세풀이 한창일때 한번 가보시는 것이 조용하고 산을 즐기는데 일품입니다. 경기도 또한 양평 용문산이 있고 포천 산정호수와 그 옆 산들이 있습니다. 소요산이 있고, 관악산이 있고, 의정부방면에서 올라갈 수 있는 도봉산이 있고, 강화의 마니산도 좋답니다. 강화 동막해수욕장도 갯벌여정을 하기엔 제격인 곳이랍니다. 석모도 또한 여름 바람이 부는 날에 가기에 좋은 곳이구요. 그러나 교동도는 여행지로 가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울릉도 섬나들이를 많이 하는데 전 울름도 보다 백령도가 더 좋다고 봅니다. 분단의 상처를 들어내고 있지만 조금만 가도 볼 거리가 천지인 섬입니다. 가는 거리가 울릉도 처럼 멀지만 그래도 먼 값어치를 하는 섬입니다. 전 경상도지역은 지리산과 소백산 이외에 잘 가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경상도, 충청도를 제외한 많은 지역을 돌아다녀보았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 전 남들이 몰릴때는 가지 않았지만 그 흔적들을 남겨보고 왔습니다. 다음엔 한라산에 한번 가봐야겠네요.... 대학때 수학여행으로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수학여행비를 후배들과 술사먹는데 다 써버려 전 가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아시아나항공포인트가 있으니 꼭 한번 한라산을 가볼 생각입니다. 웅장함은 없지만 아기자기 하면서도 서민향기 물씬 풍기는 우리국토를 내 살아생전 다 볼 수 있을까? 그래도 최선을 다해 우리 국토를 돌아봐야 겠다. 해외여행보다 더 낳다. 난 국내여행을 하면서 해외 여행하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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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주인은 어디에

  • 등록일
    2005/01/08 08:35
  • 수정일
    2005/01/08 08:35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주인을 기다리는 신발1] 에 관련된 글입니다.

6일 서울 용산구 용산동 5가 철거지역의 무너진 담벼락 위에 운동화 한컬레가 놓여져 있다. 현재 이 지역은 도심재개발로 철거가 진행중이며, 주민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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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은 세계의 달콤함?

  • 등록일
    2005/01/08 08:29
  • 수정일
    2005/01/08 08:29
* 이 글은 미류님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성일의 영화세상 / 「수퍼스타 감사용」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옛날 옛적에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프로야구팀이 있었다.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원년에 창단한 삼미 슈퍼스타즈는 거의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는 게임은 거의 대부분 졌으며, 삼미가 이기면 다음날 기삿거리가 되었다. 심지어 삼미 슈퍼스타즈 게임을 '일부러' 보러 가는 팬들마저 생겨났다. 이기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도대체 얼마나 점수 차를 벌려서 지는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보러 가기도 했다. 그들은 다른 팀들의 새로운 기록을 세워주기 위해서 자신들만의 새로운 기록을 세워 나갔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최소득점, 최소홈런, 최소도루는 물론이고 최다실점에 투수 연패기록마저 세웠다. 이 기록은 아직까지 어느 팀에서도 깨지 못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아마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주는 감동


김종현이 시나리오를 쓰고 처음 연출한 <슈퍼스타 감사용 >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패전처리 투수 감사용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독 자신의 프로덕션 노트에 의하면 실명 인물들과 기본적인 설정을 제외하면 '모두 픽션'이라고 밝혔지만, 하여튼 실화이다. 감사용(이범수)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해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야구를 계속했지만, 실업야구 선수로 스카우트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졸업한 다음 삼미 특수강 구매관리과에 입사해서, 직장 야구단에서 취미로 야구를 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삼미가 프로야구단을 창설하고, 여기서 투수모집 오디션을 본다는 말에 응시했다가 감사용은 선수가 된다. 그가 발탁된 이유는 팀에 좌완투수가 없기 때문. 프로 야구가 개막을 하고 삼미는 연전연패를 기록한다. 감사용은 대부분 팀의 패배가 돌이킬 수 없을 때 메인 투수 보호를 위해서 게임을 마무리하는 교체투수로 막판에만 등판한다. 그런 그에게 딱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야구 원년의 슈퍼스타였던 OB 베어스의 투수 박철순이 20 연승기록을 세우는 게임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와 맞붙게 된다. (실제는 18연승일 때 두 사람의 승부가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관심은 OB가 몇 점 차로 이기느냐에만 있을 뿐이다. 누구도 이 게임에 투수로 등판할 생각이 없다. 운동장은 모두 박철순을 응원하고 있다. 그때 감사용은 처음으로 선발투수가 되어 마운드에 선다. 감사용은 최선을 다해서 던지고, OB 베어즈의 타자들은 처음 보는 이 투수의 믿을 수 없게 '느린' 공 앞에서 차례로 삼진을 당한다. 감사용은 박철순을 이길 수 있을까? 물론 여기까지는 감동적이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결국 (대부분의) 패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박철순은 보기 드문 야구 천재였고, 감사용은 지난 20년간 명멸해 간 한국 프로야구 투수 758명 중 한 명일 뿐이다. 모차르트와 살리에르? 아니, 그렇지 않다. 그건 잘못된 비유이다. 왜냐하면 박철순은 천재적이면서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지만, 감사용은 재능도 없고 기회마저 얻지 못한 사람이다. 이건 단 한 번의 기회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제부터 영화의 운명은 감사용과 똑같아진다. 영화도 그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간다. 이기거나 지거나 그 '이후'에 아무 변화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단 한 번의 기회에 모든 것을 건다는 것이 왜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일까? 우리 안의 주문, "노력했노라, 이겼노라" 사실 영화 자체는 따분하기 짝이 없다. 야구 장면들은 대부분 지루하게 찍혔으며, 감사용과 인천 야구장 매점 아가씨와의 연애 에피소드는 심심하다. 가족들은 항상 제 시간에 도착해서 감사용의 감정을 부추기거나, 혹은 그가 해야 할 말을 대신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그런데도 영화관은 눈물로 넘쳐난다. 모두가 그걸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홀린 듯이 빠져든다. 심지어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김종현조차 자기 자신의 센티멘털리즘의 나르시시즘에 말려들고야 만다. 말하자면 감사용은 모두를 홀린다. 더 정확하게 감사용의 저 안간힘과 운명지어진 패배 앞에 자발적으로 복종한다. 마술의 원리는 간단하다. 그것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은 세상의 질서 앞에서 무력한 자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자기 변명으로서, '노력'에 대한 가여운 '믿음'이 지켜져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 기대어 서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혹은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그것을 정당하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어떤 방식으로건 최면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각색해서 자기 믿음 안의 허위 일관성 안으로 끌어들어야 한다.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영화가 개입하는 것은 이 지점이다. 스크린의 주관성이 빚어낸 패배의 미학 말하자면 여기에는 패배에 관한 신화가 있다. 혹은 그것을 휴머니즘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바꿔치기가 있다. 거기에 대중들이 기꺼이 동의하고, 그것을 위해서 눈물을 흘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영화와 스포츠의 다른 점이다. 영화는 패배를 미화하고, 스포츠는 승리를 찬양한다. 스포츠는 승리할 때까지만 관심을 보인다. 영화는 패배의 과정을 따라간다. 스포츠는 엄정한 규칙과 질서로 이루어진 승부의 세계로 우리를 끌어올리고, 영화는 삶과 경기장의 경계가 뒤엉켜버린 드라마의 세상으로 내려보낸다. 그리고 대중들은 그 둘의 자리바꿈의 놀이를 통해서 자신들과의 동화와 정화의 변증법을 즐긴다. 여기서 방점은 즐긴다는 말에 있다.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까닭은 그 둘 모두 모든 모순을 경기장에 올라선 한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계와 모순은 개인적인 것으로 탈바꿈한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그는 인간의 육신이 지닌 한계와 다투면서 세상의 질서로부터 떨어져 나와 초인적인 투쟁을 벌여야 하고, 영화의 세상에 오면 그 반대로 세상의 모순 안에 던져져 비극적 상황을 자기의 문제로 떠안고 하여튼 버텨야 한다. 서로 다른 자리의 두 인간이 마주하는 마지막 장소는 항상 세상 바깥의 경기장이다. 오직 규칙과 질서, 그리고 승부만으로 이루어진 세계. 스포츠가 주는 감동은 그것이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주는 감동은 그 비인간적인 세계에 부여한 세상의 모순에 대한 주관성 때문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경기장에 들어가는 선수는 세상의 인연과 절연하고 오직 승부만을 위해 그 자리에 선다. 그 자리에 선 선수를 다루는 영화는 온갖 세상의 인연을 끌어안고 경기장에 혼자 들어간다. 그리고 여기에 구경꾼들이 자기의 방식으로 각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의 환상을 내맡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것은 대중의 정치학에서 스포츠와 스크린의 상호주관성이라는 환상의 변증법이기도 하다. 혹은 역사의 괄호 치기이다. 악몽 같은 세계의 달콤함 내 질문의 토픽은 여기에 있다. 이 따분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이 다루는 '감동적인' 세계는 악몽 같은 세계에 대한 달콤함이다. 이것은 역설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이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결국에는 얻지 못할 것에 대한(일차 대상의 공허) 상실의 경험에 대한(이차 대상의 허위) 환상의 각색이다. 감사용은 아무리 노력을 기울여도 그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우울한 결론이다. 그러나 그게 감동적이라고 설득한다. 혹은 설득당하려고 대중들은 스스로 애를 쓴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은밀한 타협이 있다. 그러므로 왜 얻지 못할 것을 통해서 희망을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매달리는 대중문화의 비겁한 리얼리즘 도착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감사용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와 맞선 박철순에게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프로 야구의 세계는 규칙에 따라 진행된다. 저 절대적인 규칙 앞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자기 자신이 규칙에 대한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규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얼룩이 되어야 한다. 혹은 자기 자신을 통해 규칙을 찌그러뜨려서 보게 만들어야 한다. 비극은 여기에 있다. 세상에 대한 얼룩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 스스로를 기만하는 자아와 대상 사이의 거리의 상실이다. 그래서 감사용과 박철순의 시합은 그 자체가 아니라 원인에 대한 결과가 된다. 혹은 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원인이 만들어진다. 이 역설의 구조 안에서 감사용은 패배의 기록만 남긴 삼미 수퍼스타즈에서 유일하게 피와 살을 지닌 환유가 된다. 모든 이야기는 감사용이 저 절대적인 야구 천재 박철순과 마주하는 순간에 집중하고 압축된다. 그 과정에서 그 반대로 한없이 지루하게 반복되고, 설명되고, 더해지는 '픽션'이 있다. 감사용은 가난한 집안에서, 아버지 없이, 어물전을 하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도박을 일삼다가 가까스로 마음잡고 택시운전사가 된 형과, 하는 일이라고 줄넘기뿐인 여동생과 함께 살면서 집 한 채 갖는 것이 소원인 사람이다. 그에게는 단 한 사람의 팬인 인천 야구장 매점 아가씨만이 진심으로 야구공에 사인을 청한다. 정말 신기한 점. 감사용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의 주변에 있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동시에 그들은 감사용에게 예외 없이 진심을 지니고 있다. 혹은 감사용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을 끌어내는 재능이 있다. 그의 곁에 오면 모두 진심을 내보이면서 그에게 모든 것을 바칠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런데 감사용은 그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너무 늦게 알게 된다. 이 미루어진 사랑의 불일치야말로 감사용이 당신으로부터 사랑 받는 진정한 이유이다. 사실상 아무 것도 해결될 수 없는 감사용과 박철순의 현실 속 경기에서 영화 속의 한껏 미루어진 사랑의 불일치가 마침내 일시적이고 동시적인 하나로서의 일치라는 기적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현실과 영화는, 혹은 스포츠와 영화는, 규칙과 모순은 단 한 순간 마치 번개와도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말이 번개와 같다는 말을 놓치면 안 된다. 번개가 치는 순간 우리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서 현실을 보지 못한다. 패배, 허구의 중심에 서다. 규칙 안에서 이루어진 승부의 세계에서 정정당당한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패배를 붙들고 그것을 미화하기 위하여 '픽션'을 끌어들이는 것은 다른 일이다. 거기에 대중들이 동참하고, 그것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위로를 받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 패배를 세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패배를 중심에 놓고 세상을 다시 구성해내고, 규칙을 찌그러뜨려 보면서,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더 나아가서 이미 던져진 현실에 드라마를 덧붙이고, 이야기를 만들고, 거기에 논리를 부여해가면서, 마침내 신기한 역설에 이른다. 감사용은 게임에서 졌지만, 그는 사실상 모든 것을 얻는다. 가족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인천 야구장 매표소 아가씨의 사랑의 고백과,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마운드에 처음 등판하여 박철순과 끝까지 맞겨룬 한판의 게임을 얻는다. 그러나 아무리 말을 바꾸어도 결국 감사용은 진 것이다. (그렇다면 반문할지 모른다. 감사용을 승리한 투수로 바꾼다면 이 모든 것을 반박할 수 있을까? 대답은 정반대이다. 결론은 더 끔찍해진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허위가 되어서 감사용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은 세상의 모순을 도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것은 준비론적 패배주의의 미화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패배를 윤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 잔인함, 냉정함, 혹독함, 끔찍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원하건 원치 않건 이미 던져진 그 바탕으로서의) 1980년대의 알레고리가 있다. 1980년대, '삼미 슈퍼스타즈' 그리고 우리 우리들의 1980년대는 결국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1987년의 '소동'은 노태우와 함께 웃음거리가 되었다. 전두환이 3S 정책의 하나로 만들어낸 프로야구 리그, 그리고 모기업인 삼미 철강의 파산과 함께 끝난 연전연패의 삼미 슈퍼스타즈는 얼마나 그 시대의 '엽기적'인 알레고리인가? 영화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감사용이 시위 노동자들과 페퍼 포크로 무장한 전경들의 충돌에 쫓기다가 삼미 수퍼스타즈의 창단 벽화를 보게 된다. 장면 자체는 <모던 타임즈 >의 오마주이지만, '의도하지 않게' 이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 자기의 시대적 배경을 완벽하게 지우거나, 혹은 스스로 잊어버린다. 산산조각 난 희망과 불투명한 미래와 버림받은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 대중들은 패배를 멜랑코리하게 만들고 싶어한다. 항상 패배한 자신들을 위로하고, 버림받은 자신들의 삶에 부여한 기만의 환상에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패배를 멋지게 만들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을 외면하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의 삶은 항상 비참한 것이다. 물론 비참함 속에도 미학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비참함의 미학은 패배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나는 1980년대가 이런 식으로 거듭해서 영화에서 불투명성의 미학 안으로 끌려 들어와서 다뤄지는 것이 정말 역겹다. 대중문화는 끈질기게 역사를 추억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 자신의 패배의 역사를 즐기면서 울고 웃는 대중들의 고통의 망각은 불합리한 복종의 이데올로기적 왜상(歪像)효과에 대한 자기 최면에 다름 아니다. 패배의 해피엔딩? 그게 즐거우면 할 수 없이 계속 즐겨야 할 것이다. 하지만 즐겁지 않은데도 계속 즐긴다면 당신은 두 번 죽는 것이다. 한번은 역사 속에서, 다른 한번은 그것을 재현하는 당신 자신의 환상 속에서 무아지경으로 버림받을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이데올로기 논쟁이 끝났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정말 전투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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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은 UN 선정, 세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

  • 등록일
    2005/01/08 08:20
  • 수정일
    2005/01/08 08:20
자본으로 자본주의를 넘는 실험 이정환 기자 blue@digitalmal.com 구두닦이에게 물었다. "돈을 벌면 어디에 쓰죠?" "절반은 쌀을 사고 절반은 주인한테 줘야합니다." "주인이 누군데요?" "당연히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을 빌려준 사람이죠."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은 기껏해야 5만원 정도 밖에 안한다. 겨우 5만원이 없어서 이 사람은 구두 닦는 솔과 구두 통을 빌려준 사람의 노예가 된다. 그나마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낫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손을 내민다. 이들에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건 방글라데시의 이야기지만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의 고리대금업자들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일주일에 10%씩 이자를 받는다. 이들은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빚을 내지만 빚은 계속 늘어나고 결코 빚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 끝은 파국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라민은행의 실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라민'은 벵골어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라민은행은 이 구두닦이에게 5만원을 빌려준다. 아무런 담보도 서류도 없이 그냥 빌려준다. 이자는 한해 20%. 그리고 일주일마다 1200원씩 갚게 한다. 놀랍게도 이 5만원은 구두닦이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그날 그날 먹고 살기 바빴던 구두닦이는 이제 어엿한 사장이 된다. 그는 이 5만원으로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20%면 결코 싼 이자가 아니지만 99%에 이르는 사람들이 돈을 착실히 갚는다. 이 5만원이 그들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어떤 은행도 이만큼 대출해준 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다. 일주일마다 갚아야 하는 1200원은 이들에게 더이상 빚이 아니다. 1200원을 갚아나갈 때마다 이들은 가난을 벗어나는 꿈에 한발자국 다가간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마을을 찾아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돈을 빌려가라고 말한다. 돈을 빌려가서 현실과 맞서 싸우고 가난을 넘어서라고 말한다. 그라민은행은 이를테면 자본주의의 한계를 자본의 힘으로 넘는 하나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다. 간장 오타맨이.... 내년은 유엔 경제사회이사회가 정한 '세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란 그라민은행의 실험과 같은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을 말한다. 기본 개념은 노동 능력과 의지가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난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라민은행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1976년에 설립된 그라민은행은 자산 규모가 3조3600억원에 이르는 대형 은행으로 성장했다. 방글라데시 전역에 1175개의 지점을 두고 있다. 방글라데시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영국, 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 그라민은행의 성공사례를 배워갔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가난한 사람들을 원조하는게 아니라 자립과 자활의 기회를 준다는데 의미가 있다. 유엔 자본개발기금에 따르면 2001년까지 세계적으로 268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지원받았다.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신청한 사람들의 6%에 지나지 않는 규모다. 성과는 충분히 검증됐지만 자본금이 부족한 탓에 아직은 지원 범위가 좁다. 유엔은 총회 차원에서 정부와 비정부 기구, 시민사회 단체, 언론 등을 초청해 마이크로 크레디트을 널리 홍보하고 재정을 확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유엔은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 세계 전략의 일환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라민은행의 한국 지부로 '신나는 조합'이 설립돼 있다. 2000년 시티은행이 지원한 1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설립됐고 현재까지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100만~500만원씩을 대출받았다. 신나는 조합은 아직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시범사업 단계에 머물러 있고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춰볼 때 대출 규모 등에서 현실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좀더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야할 때다. 이를테면 한국형 그라민은행 또는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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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한' 노동운동이라면, 두들겨 깨워라

  • 등록일
    2005/01/07 19:40
  • 수정일
    2005/01/07 19:40
[특별기고] 전국비정규연대회의 그 1년의 투쟁기록 편집부 editor@digitalmal.com 오민규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사무국장 올 여름 정부가 도입하려 한 비정규법안이 수면 위로 부상하자, 2004년 노동운동은 순식간에 격랑 속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하였습니다.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두고 정규직이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그야말로 '세계최초'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숱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죽음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의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모여 열린우리당사를 점거하는 등 적극적으로 싸움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아마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한편 '총파업' 정국 속에서 정규직 노조의 '허약성'이 유감없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오민규 국장의 글은 그 치열했던 1년의 가장 생생한 증언일 것입니다.(편집자) 두 죽음과 함께 탄생한 비정규연대회의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탄생시점을 가장 멀리 잡자면, 아마도 2003년 9월27일일 것이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에서 16개 비정규노조들이 모여 연대체 구성을 논의한 시점인데, 당일 회의에서 가장 핵심은 "비정규노조들의 독립적인 연대체가 과연 필요한가" (즉, "비정규노조들이 연맹과 지역본부에 다 속해있으니 기존 정규직 노조 속에서 녹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는가") 라는 것이었다. 논의 끝에 "전국비정규직노조대표자연대회의(준)"이라는 이름을 확정하고, 10월26일로 예정된 전국비정규직노동자대회에 모이기로 결정했다. 10월 26일 양대노총 비정규노조들이 중심이 되어 치러진 이 대회에서, 총파업을 앞둔 근로복지공단비정규노조 이용석 광주전남본부장이 "비정규직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분신자결, 산화해 가셨다. 이용석 열사의 죽음은 이미 전사회적 문제인 비정규직 사안에 대해,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는 얼마나 책임있게 이 문제를 다뤄왔던가"라는 커다란 문제의식을 던졌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 탄생시점을 가장 가깝게 잡자면, 2004년 1월30일~31일 유성 동학산장에서 진행된 전국비정규노조 간부수련회일 것이다. 이날 수련회에서는 운영위원회와 대표자회의 등 조직체계를 확정됐다. 그런데 공식체계를 출범시킨 지 2주일만인 2월14일,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인 박일수 동지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사람답게 살고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자결하고 말았다. 연대회의는 곧바로 상황실을 설치하고 스스로 열사투쟁의 한 주체임을 선언했다. 연대회의는 울산에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열기도 하고 서울 계동사옥과 대한축구협회 앞에서 항의투쟁을 전개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미진한 조직력으로 인해 투쟁에 많은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가진 만큼 솔직하게 연대했고 부족한 만큼 반성하고 되새김질하려 했다. 확실한 것은, 전국비정규연대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조직의 내면에 바로 이용석 열사의 정신과 박일수 열사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정신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전국적인 공동투쟁을 일궈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머지 않아 파견법 개악을 비롯한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에서 실현되게 된다. 민주노총의 안이한 정세인식 정부가 최근에 내놓은 이른바 '비정규직보호법안'은 사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추진되어온 것이다. 2001년 7월에 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특위를 신설하여 법안 마련을 준비해왔으며, 노무현 정부 들어선 직후인 2003년 5월에는 공익위원 안을 중심으로 입법안의 틀이 일부 공개되기도 했다. 2004년에 들어서자 정부는 연내 비정규직 보호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이미 상반기에 부처간 협의를 거의 마쳤으며, 지난 4년간 논의해온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어떠한 형태로든 법제화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내비쳐왔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던 비정규직 보호입법은 파견업종 확대, 특수고용노동자 기본권 제한, 기간제 기간 확대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개악안이며 일부 차별해소 방안은 매우 미흡하고 실효성이 없는 법안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파견법 개악으로 간접고용 중간착취를 양성화, 제도화하고 기간제 법안 제정으로 기간제 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차별을 영구화할 뿐 아니라, 지난 4년간 노사정위에서 논의되어왔던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에 대한 부분은 완전히 누락된 채 또다시 노사정위로 넘겨지는 등, 이번 정부의 입법예고안은 노무현 정부의 반노동자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재계의 움직임이 이토록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었고 그들이 준비하는 개악안 내용이 엄청난 것이었음에도, 민주노조운동진영의 정세인식은 한마디로 '안이함' 그 자체였다. 특히 2004년 1월, 새롭게 민주노총의 지도부로 들어선 이수호 집행부는 "문제가 많은" 기존 노사정위원회와 다른 새로운 사회적 교섭구조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었다. 민주노총이 정책 제도개선 요구를 관철시켜 나가기 위해선 사회적 교섭구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의지를 표명하자, 노사정위원회 개편 내지 '새로운 노사정 대화의 틀'을 만들기 위한 노사정 간의 논의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논의의 주역은 5월 31일 청와대가 주재한 노사정 토론회를 계기로 만들어진 '노사정 대표자 회의'인데, 그 회의는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이수영 경총 회장, 박용성 대한상의 회장, 김대환 노동부 장관, 김금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등 6인으로 구성되었다. 엄청난 노동법 개악안이 준비되던 시점에 민주노조운동진영은 '새로운 노사정 대화 틀'이라는 사회적 교섭구조를 둘러싼 논의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비정규직 내부에서는 광주 금호타이어 불법파견 정규직화투쟁과 타워크레인기사노조의 투쟁 등 스스로 비정규문제를 사회 쟁점화시키고 전선화하려는 노력이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전체운동 차원에서 보자면 '비정규문제'는 "중요하긴 하지만 내 고민과 노력이 선뜻 가지는 않는 문제"로 인식될 뿐이었다. 열린우리당 점거농성, 총파업에 불을 당기다 9월 초, 정부와 여당이 '파견법 전업종으로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3년으로 확대' 등 최악의 노동법 개악을 당정협의를 통해 진행하려는 정황이 포착되자, 그제서야 양대노총 위원장이 이부영 의장을 항의면담하는 등 민주노조운동진영에 '비상'이 걸리기 시작한다. 양대노총 위원장의 항의방문을 받은 이부영 의장은 '노 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하였고, 그에 따라 9월 16일 열린우리당 대회의실에서 공청회가 열리게 되었다.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한 차별철폐 대행진을 오후 1시에 마치고 행진에 참석했던 비정규노조 간부와 조합원들 다수가 공청회에 참관을 하게 되어있었다. 그런데 노동부 측의 기조발제 직후, 비정규직노조 대표자 15명을 비롯해 40여명의 비정규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2층의 당 의장실로 들어갔다. 기습 점거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노동법 개악안 즉각 철회!""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쟁취!" "노동3권 보장 등 노무현 대통령 비정규직 대선공약 즉시 이행!" "이 모든 요구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당 의장 및 대통령과의 직접면담!"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벌인 점거농성이라는 고강도투쟁은, 그동안 노동법 개악에 맞선 민주노조운동진영 내부에 엄청난 호소력을 발휘했고, 하반기 노동법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을 가장 핵심적으로 벌여야 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가져왔다. 농성 4일차인 19일, 농성장을 찾은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점거농성투쟁을 두고 "정부의 개악안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장 적절한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자리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농성단의 요구를 최대한 받아안고 총파업 조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처음으로 밝혔다. 또한 이수호 위원장은 사회적 교섭 혹은 사회적 대화에 대해서도 "쓰레기같은 개악안이 나온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 노력은 의미없다"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농성 6일차인 21일에는, 전국의 지역일반노조를 비롯한 비정규노조 및 지역본부 간부들의 열린우리당 시도지부 동시다발 점거농성이 진행되었으며, 같은 날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파견법 개악안 국회 상임위 상정시 총파업"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기에 이르렀다. 농성 7일차인 22일, 농성단은 열린우리당 이부영 당의장을 면담하고 "노동부의 입법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노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여 입법안을 만들겠다"는 등의 답변을 끌어내고 농성자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명확하게 받아낸 후에 일주일간의 점거농성을 해제했다.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이 벌인 일주일간의 점거농성은,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이해가 아니라 개악안이 핵심적으로 노리고 있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문제제기를 하는 등 1,400만 전체 노동자의 이해와 요구를 내걸고 비정규직노조의 대표자들이 구속과 희생을 각오한 선도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무엇보다 중요한 성과는, 노동법 개악안의 심각성에 비해 긴장감이 걸리지 않고 안이한 정세인식 속에 빠져있던 민주노조운동진영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며, 답답했던 노동법개악 정세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 결의를 이끌어내는 등 후련한 파열구를 낸 투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비정규직 최초의 정치파업과 국회 타워크레인 농성 민주노총의 총파업 돌입 이전인 11월24일, 전국의 비정규직노조가 일제히 간부파업에 돌입하고 국회 앞으로 상경투쟁을 전개했으며, 비정규노조 대표자 20여명의 집단삭발과 1천여 명에 달하는 비정규노조 간부들의 구속 해고 결단식을 가졌다. '결전의 날'이었던 11월 26일, 민주노총 총파업투쟁에서 건설운송(레미콘)노조와 타워크레인기사노조를 필두로 레미콘차량을 동원한 상경시위 등 위력적인 파업전술을 구사하며 건설현장을 마비시키는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다. 사내하청노조들은 정규직노조와 함께 원하청 공동총파업에 돌입했다. 전국비정규연대회의가 전개한 24일 간부파업과 26일 총파업투쟁은, 민주노조운동 역사상 비정규노조들이 전체 노동자의 이해를 걸고 벌인 최초의 정치총파업으로 기록될 것이다. 또한 민주노총 총파업 돌입과 동시에 시작된 비정규노조 대표자 4명의 국회안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은 자칫 정부 개악안 유보로 전선이 흔들릴 수 있었던 정세 속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전선을 "개악안의 유보가 아닌 완전 철회"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라는 성격으로 명확히 하는 계기였다. 아울러 비정규'보호'입법이라는 미명 하에 마치 비정규직을 위한 법안인양 호도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사기행각을 폭로하고, "비정규직 당사자들이 정부 입법안에 가장 처절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을 던져 선언하는 등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 일주일간 지속된 타워크레인 농성단이 사수하고자 했던 것은 "개악안 완전 철회"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라는 전국 노동자들의 투쟁전선이었고, 그들이 들고 올라간 현수막에 담긴 문구들은 열린우리당 점거농성단이 채택했던 것의 연장으로서 전체 노동자의 절실한 요구를 담고 있었다. 크레인 농성단의 요구에는 열린우리당 농성단의 요구에 한 가지를 더했는데, 그것은 "이주노동자 노동허가제 쟁취"라는 요구로서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 요구까지를 포함하려는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정신을 보여준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자들 스스로의 노력과 기대와는 달리,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전선은 정부 여당의 '유보'설 하나에도 휘청휘청댔던 것이 사실이다. 크레인 고공농성단이 희생을 각오하고 지키려했던 전선이 바로 '개악안 완전 철회와 권리입법 쟁취'였음에도 말이다. 민주노총, 개악안 유보 설에 금새 '휘청' 11월19일, 총파업 실행을 위해 긴급하게 소집된 민주노총 중집 중앙위원 합동수련회에서는 '무기한 총파업 전술'을 놓고 장시간 토론이 전개되었으나, 일단 26일과 29일 총파업 전술까지를 결정하고 나머지 구체적인 전술은 24일 투쟁본부 대표자회의에 위임되었다. 어느 사업장, 어느 연맹 하나 자신있게 "총파업을 밀어가자. 개악안 통과되면 다 죽는다"는 입장을 제출하지 못했으며, 서로가 "다른 사업장이나 다른 연맹 분위기는 어떠한가"를 묻는 불필요한 눈치보기와 책임 떠넘기기가 진행되었다. 11월22일, 양대노총 위원장이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을 면담하게 되고 면담 자리에서 당 의장으로부터 "일정에 쫓겨 비정규법안 무리하게 진행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듣게 되자, 언론들 뿐 아니라 운동진영 내부에서조차 "총파업수위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부영 의장의 발언은 법안이 잘못되었으니 폐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유보' 발언에 불과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11월24일 총파업투쟁전술을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투본대표자회의에서는, 26일 총파업 전술을 놓고 투본대표자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19일 중집 중앙위 합동수련회에서 결정된 29일 총파업 전술은 거의 논의대상조차 아니었다. 투본 대표자들은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의 발언 한마디로 "개악안이 29일 처리유보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했고, 그래서 29일 국회논의를 지켜본 뒤에 투본 대표자회의를 열어 추후 투쟁전술을 결정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특히 금속연맹 측은 "하루 총파업을 진행하면 조합원들 출근률이 저조해질 수 있으니 6시간 파업을 통해 2시간 일한 후 전체 조합원을 파업대오로 모아 힘있는 파업집회를 진행하자"고 제안하였다. 결론은 금속연맹의 제안대로 '6시간 파업'이었다. 또한 11월 29일 투쟁 역시 '간부 상경투쟁을 통한 국회방청투쟁' 수준으로 투쟁수위는 뚝 떨어졌었다. 게다가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핵심주력사업장인 현자노조의 경우 21일 대의원대회에서 "26일, 29일 주야 공히 전면총파업 및 27,28일 철야특근거부"를 투쟁지침으로 결정하였으나, 투본 대표자회의 결정이 있은 직후인 25일 오전 긴급하게 쟁의대책위를 소집하여 "26일 주야 6시간 파업, 29일 간부상경투쟁"으로 전술을 바꾸었다. 그뿐 아니라 27,28일 예정되었던 '철야특근거부'까지 철회하게 된다. 현자노조의 결정은, 비록 투본 대표자회의 결정사항에 따라 민주노총 지침대로 전술을 바꾼 형식을 취하고 있기는 하나, 결정된 철야특근거부 전술까지 철회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높지 않은 현장의 투쟁열기가 가라앉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민주노총의 총파업투쟁의 핵심주력사업장이라 할 현자노조의 결정이기에 미치는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은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11월 29일 국회에서 '유보 선언'이 되리라는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환경노동위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간사(배일도, 제종길) 및 법안심사소위장(이목희) 모두 빨리 법안심사소위로 개악안을 넘기자고 주장했던 것이다. 이부영 의장의 발언은 '립써비스'였고, 민주노총 지도부를 비롯한 투본 대표자들은 그 발언에 헛된 기대를 품었던 것이다. 물론 개악안이 곧바로 법안심사소위로 넘어간 것은 아니었는데, 29일 환경노동위 논의 결과는 "12월6~7일 공청회를 거친 후 의견수렴을 거쳐 법안심사소위에 회부한다"는 것이었다. 간단하게 말해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을 뿐 개악안의 국회통과를 위한 절차를 밟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여기서 민주노총 지도부는 지속해서 정세인식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국회방청이 끝난 후 방청보고를 하던 이수호 위원장은 "개악안 연내처리는 저지했다. 동지들, 수고하셨다. 이제 권리입법 쟁취의 길로 나아가자"는 요지의 발언을 하게 되는데, 29일 환노위 논의는 결코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단지 물리적으로 정기국회 통과가 불가능해졌을 뿐 정기국회 직후 소집될 임시국회에서도 얼마든지 처리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평가하기 위해, 우리는 이번 투쟁의 목표와 전선이 무엇이었는지를 분명히 확인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공식결정사항일 뿐 아니라 크레인 고공농성단이 온몸으로 사수하고자 했던 전선, 즉 "개악안의 완전 철회" 및 "비정규권리입법 쟁취"가 이번 투쟁의 목표라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목표와 전선이 불분명해지는 순간, 정부 여당의 '유보가능성 시사'만으로 총파업전술이 흔들리고 말았다. 목표와 전선이 뚜렷하지 않는 이상, 계속해서 정부 여당은 단순한 '립써비스' 한마디로 민주노총의 투쟁전선을 교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개악안을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총파업투쟁은 내년 2월을 기약하며 유실되고 말았다. 물론 비정규연대회의는 출범 당시부터 지켜왔던 원칙, "비판을 앞세우기 전에 스스로의 실천을!"이라는 자세로 전체 투쟁전선을 다시 세우기 위해 비상한 각오로 임할 것이다. 연대회의가 아껴왔던 비판과 문제의식은, 아마도 2월 총파업투쟁을 경과하고 총체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시점이 되면, 자연스럽게 연대회의의 실천을 평가하며 등장할 것이라 믿는다.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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