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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03
    칠레, 이제는 키신저를 체포할 차례
    간장 오타맨...
  2. 2005/01/03
    2005년 우리 손으로 일구어 내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며(2)
    간장 오타맨...
  3. 2005/01/02
    버스 비를 비롯한 물가인상....
    간장 오타맨...
  4. 2005/01/02
    12월 31일(금) 작업일지
    간장 오타맨...
  5. 2005/01/02
    12월 30일(목) 작업일지
    간장 오타맨...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 등록일
    2005/01/04 09:39
  • 수정일
    2005/01/04 09:39
* 이 글은 30 bullets/sec님의 [영상프로젝트에 대해]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제서야 글을 확인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도 덧글을 남기려다 글을 씁니다. 영상활동가들의 열정어린 활동을 통해 일구어낸 많은 활동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영상활동가들을 운동사회에서는 잘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한예로 대우자동차, 발전산개파업, 등등등 얼마나 많습니까? 전국과 전세계를 이어나가는 활동의 장을 마련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영상활동가들이 그러나 아직 우리내 운동사회내의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인식과 마인드는 정말 부재한 것 같습니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전국을 단일한 투쟁권으로 묶었다면, 영상컨텐츠는 전국을 넘어 전지구적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IMC(Indy Media Center)의 시애틀 투쟁, 그리고 칸쿤에서의 투쟁 등 다양한 투쟁들을 우린 실생활에서 보고 결합하고 격려하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영상활동가들은 우리들만의 리그를 대중과의 소통 코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영상활동가들에 대한 몰이해는 그들은 그냥찍을 뿐이야 하지만 정작 문제시되는 것은 현 지도부나 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인식의 부재함이 낳은 결과라 봅니다. 왜 영상활동에 대해 잘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지.... 운동은 뭐 연설잘하고 그리고 대중에게 선동을 잘하는 연사들 이나 명망가들만 하는지... 조직활동을 잘하는 이만 하는지... 카메라를 들고 투쟁하는 영상활동가들에 대한 몰이해를 넘어, 정형화된 운동은 그런거야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고정관념이 낳은 씁쓸한 현상입니다. 소통의 문제... 과연 집회는 민주적인가를 제기한 세기말 연구소의 글이 생각납니다. 직접행동은 그런 작은 움직임부터 해야 된다고 봅니다. 지금 시각을 뜯어 고치고 올바른 생각을 정립시켜 주는 것이 시작이라 감히 제가 이야기해 봅니다. 전 무엇하자 무엇하자가 아니라 열심히 현장에서 투쟁하시는 영상활동가님들이 받고 있는 운동사회내 차별부터가 개선되지 않고선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갈 것입니다. 언제까지 우리 영상활동가들이 운동사회내에 대한 짝사랑으로 그 힘들고 배고픔을 참아내야 하는지 안타까울 뿐입니다. 감히 제가 잘 모르면서 주저리주저리 하였습니다. 다만, 전 무엇하자는 것은 영상활동가들에게 선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들이 생각으로 그치고 있지 않았고 늘 함께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단계 나아갔으면 해서 덧글을 남겨보았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고생하시는데 힘빼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아 미안스럽습니다. 저도 고민을 많이 해봐야 겠네요.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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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참세상 기사를 보고

  • 등록일
    2005/01/04 09:18
  • 수정일
    2005/01/04 09:18
미디어 참세상에 기사를 오늘 하루 훌터 보았다. 전선 논쟁, 반한나라 vs 반노무현정권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전선논쟁에서 일국정치적 현상만 바라보고 전선을 규정할 수 있을까? 그 면면을 살펴보면 현상적 정치투쟁에 대하여 전선이 명확성을 규정하고자 하지만 이는 자칫 활동에 있어 시야의 협소성과 정치투쟁방향(이하 정치투방)을 잘못 규정하는 크나는 무오류로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전선의 방향이 아니라 투쟁방향이라 해야 옳고, 현 정권에 대한 규정이라 할 수 있다. 전선이라 함은 전체적 맥락속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분명 전지구적 전선은 신자유주의의 탄생물인 WTO가 존재하는 한 총자본대 총노동의 필연적 대립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 운동사회 또한 10년전 신자유주의를 예견하면서 총노동대 총자본의 대립구도로 전선을 규정하였으나 이 전선 구축기에 많은 운동진영에서 자체 정치개편기를 맞이하였다. 이 전선투쟁은 투쟁으로 이어나가지는 못하였다. 그만큼 우리 자체가 정치활동을 통해 많은 역량이 손실되었다 볼 수 있다. 결단도 반한나랑대 반노무현정권은 현 전선의 본질 일 수 없다. 정권에 대한 규정성이다.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필연적으로 총노동대 총자본의 대결구도로 귀착될 수 밖에 없다. 낡은 구도의 진보대 보수라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국독자론)의 해체로 폐기되었다. 대결은 이전 GATT 해체와 ROUND 협상 체계의 개편에 따른 WTO 출범, 그리고 김영삼정부의 출범 이후 무한경쟁과 세계화라는 슬로건은 국가독점자본이 더이상 WTO출범으로 해체되었음을 선언하고 새롭게 동북아와 동남아의 블록화 경제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는 김영삼이 이끄는 경제 브레인의 실패로 IMF를 맞이하게 된다. 총자본의 파이를 늘리기 위한 김대중의 신용카드와 아파트 값 2배 부풀리기... 김대중은 IMF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공기업 해외매각을 적극적으로 단행하였다. 특히 은행에 대한 정부투자분을 해외주식매각을 단행하는가 하면 벤쳐기업 육성이라는 새로운 경제체계를 만들었다. 그럴것도 김대중정부는 정치 자금을 대줄 말한 재벌들에 없었다. 새롭게 정치자금을 만들고 새롭게 정치 자금을 순환할 자금 책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아파트값 2자리 인상과 사회간접자본의 증대를 초래하였다. 지금 뉴타운이니 뭐니 하면서 수도권전체가 아파트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와 무관치 않는다. 지금보라 2000년 초만해도 인천에 아파트 살려면 9천만원(계양구 24평 아파트)이면 될 것이 지금은 무려 1억5천정도를 주어야 한다. 이런 부동산 가격인상은 금융실명제가 아무리 맹위를 떨쳐도 지하자금은 순환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전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참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많은 활동가 조직들이 총노선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습에서 보여지듯 현 정치노선과 조직노선을 정하는데 많은 애를 먹고 있는 것 또한 현실적 고민이다.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의 종결은 운동사회의 다양한 정치, 사회, 문화 분석에 있어 어려움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80초반 MC-MT논쟁(일명 무림-학림논쟁, 이어진 식민지 예속론(NLPDR론), 식민지반봉건론, 식민지반제주국주의론, 식신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 등 다양한 사회구성체논쟁이 각 조직들의 기관지를 통해 활발히 토론되었다. 그 많던 역량들 다 어디로 떠났던가? 어디로 유량하고 있던가? 구별을 위한 구별로 대립이 아닌 대립으로 귀결되는 지금... 무엇이 우리를 내용으로 갈라놓고 있는가? 난 갈라놓고 있는 그 자체의 이론적 규정성이 무엇인지 궁금할때가 많다. 혹시 과거 자신이 속한 정파에 기인하여 그런거라고 생각되지만 이는 결단코 올바르지 않다. 그 과거 정파의 내용 스스로 폐기하고 새롭게 우리내 시작하지 않았던가?(그렇지 않은 조직들도 있지만...) 진보진영 중에서 좌파라고 자임하는 조직들이 주축이 되어 맑스코뮤날레를 기획한다. 위기 일수록 맑스로 회귀하려는 현상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서구 유럽의 경우 이를 넘어 맑스에 대한 재구성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실천에 대한 경종의 역사이다. 누구나 맑스-레닌을 부정하지만, 혁명의 성공 사례가 지구상에서 많았던가? 러시아, 중국, 쿠바, 베트남 이후 어느 나라에서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혁명을 일구어 내었던가? 우리 맑스의 귀절을 인용하며 경제적으로 낙후한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것을 폄하하는 무오류도 범하지 않았던가? 과연 경제적으로 고도화되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가? 유토피아로 귀결되는가? 자본 또한 방어를 하지 않을까? 난 신좌파가 되지 못하는 될 수도 없는(신좌파 운동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혁명을 일구어내지 못한 유럽 지식인과 활동가들의 모색을 위한 아고라(Agora)로 난 생각한다.) 사람이다. 내가 자임 할 수 없지만 난 좌파(난 스스로 좌파라 할 만큼 실천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스개 소리로 쪽파에서 대파로 가고자 한다고 스스로 말한다. 내가 처한 현실이 씁쓸)를 지향한다. 많은 담론들이 언어의 유희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언어들이 공허하게 들린다. 그래 책속엔 혁명이 없다. 모색이란 이름으로 그 많던 활동가들 공부를 하거나 유학떠났지만 돌아와 하는 건 무엇인가? 그래 새로운 이론으로 지평을 열었지만 그건 책속에서나 꿈꾸는 상상에 불과하다. 지금 전국을 돌아보고 전지구를 돌아보자! 노동자 투쟁이 역동적으로 일어나고 있는지...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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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피-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

  • 등록일
    2005/01/03 19:57
  • 수정일
    2005/01/03 19:57
1999년의 스위트피 EP [달에서의 9년]은 일종의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한 음반이엇지만, 한편으론 한국에서 lo-fi 사운드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에 대한 실험이자 김민규(델리스파이스 보컬/기타) 개인의 음악적 욕심이 묻어잇는 프로젝트엿다. 또한 이전부터 김민규에게는 문라이즈라는 음반사를 '개업'하려는 욕심이 존재햇다고 생각할 수 잇다. 왜냐하면, 문라이즈가 표면적으로 지향하고 잇는 바는 소박한 사운드, 음악 커뮤니티, 음악가와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그로 인한 관계 중심의 비지니스, 라고 읽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위트피와 전자양, 마이언트메리와 재주소년에 이르기까지 문라이즈의 디스크그라피는 모두 '소통'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개인'에 천착하는 감수성을 드러낸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유혹으로 흐르는 강 ♪
♪ We're Not Gonna Take It ♪


스위트피의 공식 1집이자 문라이즈의 제 1호 음반인 [결코 끝나지 않을 이야기]는 홈레코딩으로 이루어ㅤㅈㅕㅅ던 이전 음반 [달에서의 9년]과 마찬가지로 마르고 성긴, 그러나 친숙한 사운드로 채워져잇다. 헤비리프가 인상적인 "유기", 애니메이션 [나의 지구를 지켜줘]의 대사를 빌려와 만든 "달에서의 9년", 상쾌한 기타리프가 귀를 잡아채는 "유혹위로 흐르는 강"과 같은 곡들은 스위트피의 감수성이 어디에 닿아 잇는지를 보여준다. 스위트피의 노래들은 대부분 만화적, (긍적적인 의미로서의)소녀적 상상력에 기대어 잇으며, 그것은 스위트피를 다소 오해하거나 과장해서 이해하는 근거가 되기도 햇다. 이를테면, 그 때문에 스위트피는 여성'적'이고 감성'적'이며 동시에 비유'적'이며 직관'적'인 음악가로 이해되엇다. 개인적으로 스위트피의 음악을 여성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의 감수성이 여성적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스위트피는 다만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남성 작가일 뿐이지 않은가. 취향은 정체성을 결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정체성이 취향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취향이란 그것이 어떤 환경/상황에서 구성되는 것이므로 어떤 면에서는 정치적인 맥락으로 이해가능한 것이다. 라고, 떠벌떠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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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이제는 키신저를 체포할 차례

  • 등록일
    2005/01/03 17:54
  • 수정일
    2005/01/03 17:54
피노체트와 함께 칠레 민주주의 무너뜨린 공범 이종태 기자 jtlee@digitalmal.com 로저 버바하 노워커 대학 교수, 폴 칸토 「국가 테러리즘과 지구적 정의」 저자 출처 : 「Pacific News Service」 12월 14일 칠레 정부가 드디어 피노체트 장군을 체포했다. 피노체트는 지난 1973년 야만적인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뒤 1990년까지 칠레를 철혈 통치한 인물이다. 이젠 미국이 닉슨 전대통령의 국가안보 보좌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를 체포할 차례이다. 그 죄목은 물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배후조종해 미국 법률과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 칠레 아옌데 정권의 몰락을 그린 영화, '산티아고에 비는 내린다'의 포스터. 피노체트가 집권하기 이전의 칠레는 세계에서 가장 활력적인 민주주의로 명성이 자자한 나라였다. 칠레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가 존재했다. 이 나라엔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색깔의 정당들이 존재했는데, 이 모든 정당들은 국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칠레엔 수많은 신문과 잡지,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으며, 각 매체는 정치적 색깔에 관계없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문맹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을 뒤엎은 자가 바로 키신저의 지원을 업은 피노체트였다. 피노체트 군사정부는 의회를 해산하고 정당 및 칠레의 최대 노조를 불법화했다. 또 언론을 검열했으며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맑스주의 선전물이라며 관람을 금지했다. 피노체트 군사정부는 공공연하게 분서갱유를 자행했는데 "그 규모가 히틀러 전성기 때에 필적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뉴욕타임스』도 보도한 바 있다. 피노체트는 대학에서 학생, 교수들을 쫓아내고 군부 장성들을 총장으로 앉혔으며 이 체제에 반대하는 수천여 명의 시민들을 체포해서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렇게 살해된 사람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포크 가수 빅토르 자라, 칠레군 최고 사령관 카를로스 프라츠, 전 부통령 조세 토하, 쿠데타에 반대한 공군 장성 알베르토 베첼레트…. 유엔과 미주기구, 국제사면위원회 등은 이미 피노체트 체제가 정치범 고문과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으로 규정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당시 24세였던 한 젊은이는 “발가벗겨진 뒤 전기고문을 당했다. 고문기술자들은 젊은이의 팔과 다리, 고환을 전선으로 엮은 뒤 고문을 시작했다.” 『뉴스위크』1975년 5월 31일자는 이렇게 보도했다. “칠레 비밀 경찰은 심문할 시민들을 매일 색출한다. 어떤 이들은 기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주 동안 감금되는데 대다수가 고문을 당하며 이중 일부는 영원히 어디론가 사라지게 된다.” 한마디로 칠레는 악몽의 사회였던 것이다. 심지어 피노체트는 지난 1990년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에 권력을 넘긴 뒤에도 군부의 수장으로 남아 칠레의 정치를 계속해서 전횡했다. 칠레가 과거사를 청산하기로 결단한 것은 최근 들어서다. 피노체트 자신을 포함해서 살인과 고문을 자행한 자들이 띠어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사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칠레에서 피노체트는 미국에서 키신저와 동등한 입장이었다. 어떤 죄를 저질러도 처벌 당하지 않는 지위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칠레인들이 '폭군'을 처벌하기로 결단한 것은 다음과 같은 세건의 사건이 전개된 뒤이다. 첫 번째, 지난 1998년 영국을 방문 중이던 피노체트가 스페인 판사에게 반인륜 범죄로 기소당해 가택연금되었던 사건이다. 두 번째, 피노체트의 부정축재에 대한 기록이 출간되었다. 세 번째, 피노체트 하에서 자행된 4만5천여명에 대한 상세한 '고문 보고서'가 나왔다. 그래서 현재 89세의 전직 독재자는 자신의 조국인 칠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피노체트는 자신이 재판을 받기엔 너무 늙었고 무기력하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기소를 피하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1975년 미국 상원에서 발행한 「칠레에서의 비밀작전」 등 수많은 기록들은 키신저가 CIA 등 정보기관을 이용해 아옌데 정권을 흔들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키신저의 동기는 자신이 공산당 정부로 여기는 것이 남미에서 거점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없다. 아옌데가 당선된 직후 키신저는 이렇게 말했다. “그 나라 국민들의 무책임함 때문에 그 나라가 공산화되는 것을 우리가 그냥 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피노체트의 체포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침해한 것에 책임 있는 헨리 키신저 등 미국 인사들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 책임을 질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책임을 지게 하지 않는 한 세계는 미국의 지도자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해외에 퍼뜨리고 싶어한다고 공언할 때 이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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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리 손으로 일구어 내는 한해가 되기를 바라며

  • 등록일
    2005/01/03 10:27
  • 수정일
    2005/01/03 10:27
2005년은 정치권의 정치술수에 녹아나지 않고,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안들이 정치적 사안으로 귀결되거나 입법 투쟁, 헌재 투쟁, 정치권 로비 등 다양하게 정치권과 행보를 같이 취해온 많은 사안들이 있다. 그렇다고 이 투쟁 모든 면면이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난 이러한 과정에서 우린 대중과의 소통의 코드를 늘 놓치고, 늘 위기에서 말하고 있는 상층중심의 운동에 한계에 너무 노출되었다 생각되어진다.


성명서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우리의 한계... 모든 노동자 민중의 이름으로 촉구하고 알리고 규탄하지만, 우리는 성명서를 찍어내는 제조기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과거 유신독재가 이땅의 민주주의와 사회변혁을 저해하였을때 마지막으로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양심의 목소리 규탄성명서 그리고 시국성명서는 그 당시 아주 크나큰 용기를 내어 작성된 것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써야 했던 고통... 어떠한 투쟁보다 힘든 결의가 필요하던 시기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조건은 아니지만 성명서의 힘... 그리고 입장에 우린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당연시되던 집회나 직접행동들은 사글어 들고 의례 문제가 되는 지점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작성된 성명....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읽고 동감할까? 작성의도는 정부에 당사자들에게 읽고 반성하고 정책의 문제점을 제대로 반영하여 진행하거나 폐지 또는 폐기하라는 입장에서 쒸어진 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사안을 알고 함께 동참해 줄것인가? 이러한 사안은 대중에 대한 고려보다는 단체가 처한 위험성들을 알리기 위한 것 이외엔 아니다. 메일링리스트가 활성화되어 많은 활동가들이 읽고 동감하거나 단체 연명이 되지만 그 이상의 힘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과거 시국 성명서는 어떠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직접행동을 강조하였고, 행동을 조직하기 위해 마지막 남긴 양심의 이름 그리고 민주의 이름 그리고 진정으로 이땅의 민중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결연한 의지와 행동을 하ㅤㄱㅖㅆ다는 다짐을 위한 약속행위가 아니었던가? 모든 사안은 아니지만, 우리의 힘이 미약하다 보니 진행되는 전술에서의 정치권과의 부분 공생이 애처로웠던 적이 많다. 결코 정치적 논리로서 해결되거나 귀결될 수 없는 사안임에도 우린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이를 행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를 이루어내었고 발전을 가져왔지만 이 발전된 사회에서 계속해 소외되고 이탈되는 것을 잘 알면서도 너무쉽게 해결방법은 찾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모든 행위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들의 절박함... 그리고 늘 대중적 행동을 조직하지만 현 운동진영에서 각 부문별 영역에 대한 이해의 낮음으로 빚어지는 인식의 부재가 낳은 현상이다. 우리내 붉은 악마의 파도와 촛불의 행진의 힘으로 대중의 힘이 분출되었다는 말을 하고 이를 어떻게 운동사회내에서 적용할까? 생각하고 있지만, 이 과정은 일순간에 일어나 사건이 아님을 직시하여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를 알리고 투쟁을 하였던가? 그래도 소외를 받았다. 그러나 자본의 언론이라 할 수 있는 대중매체의 지속적인 보도는 전국에 이 사안의 중요성을 하나둘 알려나갔다. 우리의 노력 더하기 자본의 미디어가 이 사안을 영역확장 시켜 준 셈이다. 이에 우린 자본에 맞선 미디어를 만들어 노동자 민중과 직접 소통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연결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연결창구가 만들고 나서는 우린 지역에 있는 각 운동사회 인프라 구축을 위한 발굴과 지역운동 발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중앙이라 할 수 있는 서울에 비해 지역의 운동사회는 얼마나 열악한가? 그나마 시민단체들 또한 지자체들의 인식부족으로 비영리민간단체 지원금 또한 쥐꼬리만하여 이 돈으로 사무실 운영 및 활동 자금으로 연명하고 있다. 서울에 비해 운동의 의제 또한 다양하지 않으니 부안이나 전주들 전북지역과 다른 지역은 활동가들이 활동하는 것 조차 버거운 현실이다. 효순미선 촛불시위, 붉은 악마의 응원 결집은 우리의 힘이라 볼 수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집단적 광기에 의한 군중들의 욕구 창출이다. 한 사안으로 시름을 달래야 하는 사람들의 집단 히스테리 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집단 행동은 그 행동에 머물고 다른 행동으로 확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집단 광기의 발산이라 다른 한편 볼 수 있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이런 투쟁에 대한 평가에서 우린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손으로 일구어낸 사안이 아닌 이상 우린 또다른 장막에 우리를 갇어놓을 수 있다. 2005년 직접행동으로 나서는 한해.... 많은 것들은 아니지만 우리 행동으로 실천하여 얻어내는 결과물들이 하나 둘 나오는 한해가 되기를 바램해 본다. 간장 오타맨이.... p.s 2002년도 "꿈은 이루어진다" 라고 했던가 내 꿈은 한해가 더할 수록 설 익어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누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거짓 농이다. 내꿈을 이루기엔 아직도 버겁다. 가야할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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