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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5/27
    변명과 기쁜 소식(14)
    schua
  2. 2005/04/17
    삶의 한 토막.(11)
    schua
  3. 2005/03/29
    기분전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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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3/24
    준거집단..(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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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3/20
    행복해지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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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3/11
    이야기가 있는 사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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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2/21
    스위스 갔다 올께요. ^^(23)
    schua
  8. 2005/01/31
    소리를 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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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1/31
    이번엔 꼭 해야지 ^^(2)
    schua
  10. 2005/01/29
    서글프다(6)
    schua

변명과 기쁜 소식

5월달 달력을 보니 헉...

5월 들어 한번도 포스트를 작성하지 않았다니...

이런 이런...참말로 방치했군요.

 

이래 저래 주변 사람들에게는 엄살을 부리며 소문을 내고 다녀서 인지 별 생각을 못했는데 블러그의 달력을 보니 참말로 민망하네요. ^^

 

정말 그 동안 정신이 한개도 없었습니다.

4월 말에는 다큐멘터리 사전지원하는 기간이라서 기획서 쓰면서 집에 처박혀 있느라 계절 바뀌는 줄도 몰랐다가 기획서 내는 마지막날 부랴부랴 뛰쳐 나오면서 두꺼운 옷 입고 나와서 때 아닌 더위 먹느라 혼났고요. 정말 황당했습니다. 결국 지원서는 잘 냈지만 서두...그날은 정말 더운 날씨에 힘겨워서 헉헉...했지요.

 

그리고는 5월 8일 부터 진행된 이주노동자 미디어 교육 하느라 교안 짜고 비쥬얼한 교육자료가 많이 필요해서 프리젠테이션 용 교육자료 만들랴 정신이 없었지요. 현재 진행중입니다. 그래도 이번주가 4차시니 어느정도 자리가 잡혔다고 볼 수 있죠. 요즘 심하게 진행되는 단속을 틈타 오시는 이주노동자분들이 감사하기도 하고 괜한짓 한단 생각도 들고...이래 저래 심난합니다. 그래도 이주노동자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한 회 한 회 진행하는데...걱정은 걱정입니다.

 

그리고 인권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맡았지요. 호호호...참세상뉴스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아는 사람만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손톱만하게 나왔습니다. 집회에서 발언 한번 안한 저로서는 정말 스트레스 만빵인 일이었습니다. 집회에서도 항상 카메라를 잡고만 있었지....어디...휴우....몇백명 앞에서 마이크 잡고 이야기를 하다니...지금 생각해도 손에 땀이 납니다. 저의 인생에 새로운 경험이 늘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싶어요. 또 불법복제물로만 여겨졌던 독립다큐멘터리를 공공장소에서 상영했던 최초의 영화제인 인권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봤던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평생 간직해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ㅎㅎ

 

글고...그 동안 연구(?) 활동을 했던 '비디오액티비즘'에 대해서 포럼을 열었습니다. 발제문 쓰고 회의하느라 정말 스트레스 만빵이었습니다. ^^ 비디오로 발언하는 것이 무엇인지...작년 한해 동안 많이 진행되었던 공동제작프로젝트 사례분석이 중심이 된 포럼이었는데요. 포스트에 광고를 해야지 했는데 결국 그냥 끝내고 말았네요.

 

헥헥....

 

물론 그리고 아르바이트도 했지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

 

조금은 변명이 되나요? 포스트 쓰는 것에 게을렀던 것이. 됐으면 좋겠다. ^^

 

글고 기쁜 소식!

 

 



궁금하시죠?!!!

 

다큐멘터리 사전제작 지원에 됐지 뭡니까? 오호~~~

 

1차 서류 통과되고 2차 면접을 하러 갔는데

너무 떨었지 뭡니까....심사위원 중에 유일하게 알고 있던 한 분이

이러시더라구요. "평소 처럼 하세요."

ㅠ.ㅠ

 

정말 면접 끝나고 나와서 심각하게 웅변학원에 다닐까 고민했었습니다.

 

여하튼 지원금이 제작비의 일부이지만 그래도 지원금을 받고 할 수 있어서 넘 다행입니다. 열심히 알바해서 더 필요한 제작비 글고 생활비를 벌어야겠죠. 그래도 신납니다. 이주여성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의 필요성을 인정한 것 같아서 말이죠. ^^

 

열심히 해야겠죠. 이런 저런 자료들도 모아야합니다.

여전히 부족하거든요. 헤헤...

이곳에서도 다양한 생각을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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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토막.

전화만 그렇게 안 받았어도...

 

연행된 이주노동자분들은 출국 전에 최종적으로 화성외국인 보호소에 가게 된다. 들판에 있는 보호소에 가는 길은 항상 황량하다. 말이 보호소인 그곳은 사람을 죄인으로 만든다. 면회실은 이중 아크릴 판으로 막혀 있고 각 아크릴 판마다 다른 방향으로 구멍이 뚫려 있다. 그래서 대부분 말을 할 때 소리를 질러야 한다. 그래도 뭐라 알아 듣기 힘들다. 그도 그럴 것이 옆 면회실과 칸만 쳐저 있지 문이 없어 그쪽도 소리를 질러 대니 면회실에 들어 서면 웅웅 소리에 정신이 아련해지면서 모든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곳에서는 여러가지 감정들이 격하게 진행한다. 얼굴을 봐서 반갑다가 다시 못 볼 것 같아 마음이 울컥했다가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가 '한국에서 살았던 삶은 뭔가'란 생각에 이 사회가 싫어진다. 그리고 어떤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단 생각에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그곳에 가지 않으려 했고 한 동안 안 갔다.

 



어제 연행된 지번씨가 전화를 했다. 평소 차분한 성격의 지번씨는 연행된 상황에 보호소에서 전화를 하는 데도 역시나 차분하다. 그래서 그랬나 보다 '어떻해요' 자꾸 그 소리만 나왔다. 보통은 보호소 안에 있으면 답답해지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맘이 많이 약해져서 약한 소리를 하신다.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그러면 난 평소 대로 실 없는 소리를 해가며 웃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지번씨는 그런다. "집에 가는 건데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좀 마음이 안좋은 건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가야해서 그게 좀 그래요." 그 소리를 들으니 더 막막했다. 괜시리 우는 소리를 한다. "어떻해요."

 

전화를 끊고 후회했다. 그렇게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평소 처럼 너스레 떨었어야 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이 더 막막하지 우째....내가 그랬을까 싶어 더 막막해졌다. 결국 한동안 안가던 보호소에 가야겠다고 맘 먹었다.

 

아침에 모자란 잠을 뒤로 하고 마님님이랑 면회를 갔다.

여전히 담담하다. 반가우신지 약간 얼굴표졍이 밝아지시긴 했는데 별 말도 없이 웃는다. 옆에 있는 다른 분들은 얼굴이 까칠하고 그래서 걱정을 했는데 방에 사람이 많아서 어제 잠을 못 자서 그런단다. 그 분은 농성을 하지 않으신 분이다. 지번씨가 그런다. "농성을 안해서 그런다. 농성때는 한 텐트에 35명 정도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웃는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지번씨는 당신의 이주를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평범하게 이주노동자로 살다 농성을 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다 결국 불법체류란 이유로 연행된 이곳에서의 삶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리고 그 경험은 어떻게 그녀/그를 강제할까?

그녀/그는 본국에 돌아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그분들을 다시 만나야겠다.

삶의 한 토막들이 어떻게 다른 토막을 구성하며 어떻게 그녀/그가 속해 있는 사회를 구성하며 영향 받는 지...알고 싶어졌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의 끝을 밀고 온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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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전환..

이제 봄이 오려나 봅니다.

길가의 나무 가지들에 새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여전히 쌀쌀하긴 하지만 그 바람이 이전만 못 함에 깜짝 놀랍니다.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그래서 할 일이 많아집니다.

봄 옷도 꺼내야 하고 그 동안 쌓였던 먼지들도 털어내야 하고

그리고 새 작업을 위한 책상도 치워야 합니다.

이전 작업 테이프 들이 아직도 책상에 여기 저기 자리잡고 있고

이러 저러한 문서들이 정신 없이 쌓여있습니다.

이제 새 작업을 위해 책상도 정리해야겠습니다.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가장 먼저 기분 전환이 필요한듯 합니다.

다음 단계를 위한 모드 전환을 위해 잠시 휴우~~~

 

 



비빔툰 : 기분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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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거집단..

한때 무지 가깝게 활동하던 후배가 있었다.

지금은 같은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료가 되었다.

그런 그녀와 어느 영화제 술자리에서 준거집단이 필요하단 이야기를 한 적이있었다. 우리에겐 준거집단이 필요하다고...그 친구는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주변에 자신과 생각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 준거집단이 필요해..."

 

 

살면서 참 다양한 고민을 하면서 산다. 인생의 매 순간 마다...그게 꼭 결정적인 순간이 아닐지라도 어떤 '대략'의 고민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약간의 시차가 있어서 서로 서로에게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되고 현재가 된다. 그러면서 서로 서로에게 동료가 되고 조언자가 된다. 고만운 일이다.

 

준거집단...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나눌 수 있고 같이 비슷하게 행하는 사람들의 집단...우리 모두에겐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너무나 많은 유혹들이 이곳에서 사는 것이 힘들어지게 만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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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자!!!

알엠님의  [난 요즘] , 미류님의 [가벼워져야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지금 상태는 가슴이 답답하고 약간 심장도 불규칙적으로 뛰고...

아무래도 이래 저래 뭔가 불편한 것이 있는데 도리가 없어....결국 하나 하나 풀어보자라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알엠님 말처럼 딱히 관련이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뭔가 풀어내려는 시점에 용기가 될 것 같아서...트랙백을 겁니다.

 



한 술자리에서 제네바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 영화제 보다는 여성의 일과 양육이 꼭 선택이 아닌 그곳의 상황이 더 새로운 경험이었으며 "무지 부럽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어쩜 일상적인 이야기로 끝날 수 있었던 그 대화는 나의 최근의 고민을 건드리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가 그런다..."그 사회였기에 남자들도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난 그 말을 니가 남자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야로 받아치지 않았다. 그런 말안에 놓여 있는 일반화의 폭력도 잘 아니까...그런 말 때문에 가끔은 상처 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아니 상처라고 까지 이야기하면 좀 그렇고 '주저, 혹은 위기소침'해지는 것을 아니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힘을 내어 해보면..

난 최근까지도 내 인생에서 아기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다. 아니 정말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길...아기를 낳고 키우고 그런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부터가 나에겐 너무나 큰 부담이었고 피하고 싶은 무엇이었다. 그리고 그 부담이 사회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지는 것이 끔찍했다.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살 자신이 없었고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무의식에 세뇌하는 사회가 무진장 싫었다. 가는 곳 마다 나이 다음에 물어 보는 게 결혼이고 그 다음이 "이제 아기 낳아야지. 얼렁 결혼해요." 휴우....

 

그러다 그 나이 때문에 나도 모르게 걱정이 되었다. 아니 어쩜 내가 그렇게 거부 반응을 나타냈으면서도 난 그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들은 좀 다르겠지만 여자들은 생물학적 나이가 주는 부담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더 들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웃긴다. 묘한 두려움...두려움과 함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을까?" 어쩜 그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하나둘씩 아이를 낳고 임신을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결혼제도를 반대하니 결혼할 생각을 안했으면서도 주변에서 하나둘 결혼할 때 나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딱히 거기까지 생각 안하더라도 ...뭔가 숙제 안한 찜찜한 느낌...그때가 28살 언저리였던 거 같다. 그 시기를 지나자 언제 그런 불편함을 느꼈냐는 듯이 편안해졌다. 지금도 어쩌면 그때와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부터 뭐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남자친구라고 해야 하나...참말로..여하튼 남자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유화해서 옮기자면 "아이를 갖을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절대로 아기를 키우지는 않을거야. 아기가 아무리 이쁘다고는 하지만 아기를 키우면서 일을 못한다면 나에게도 아기에게도 너무나 않좋을 거 같아." 그랬다. 그러자 남자친구 왈 "내가 키울께. 일년 정도 휴직을 하던간에 내가 책임 지고 키울께" 한다. 어쩜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웃기네. 말은 누구든 할 수 있어. " 하지만 그와 내가 경험한 시간들을 통해 난 그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음에 안도했다. 사실 그 대화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다. 동료들과 그 이야기를 했다. 그들 중 하나 왈 "그렇게 되면 그건 사회적 손실이다" 어이 만개를 잃어버렸다. 난 불쾌했고 나중에서야 혼자서 이런 댓구를 찾았다. "내가 아기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 두는 건 사회적 손실이 아니구?!" 참 서글프다. 난 그 친구의 그런 평이 서글프다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도 이미 그런 엔진이 작동했다는 거다. 남자가 아기를 키우기 위해 일을 쉬는 일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정말 더 서글픈 것은 이 사회 자체가 그런 것들을 쉽게 용납하지 않는 다는 거다. 물론 누가 하나(남자) 강한 의지를 발휘해서 "난 아기를 키우기 위해 일을 그만 둘꺼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속속 그런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이상한 눈으로 그들을 본다. 결국 그들도 나름대로 힘들 것이리라. 그건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누구든 평등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힘들어지는 거다. 난 이 사회가 답답하다. 그래서 적당히 타협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이상하게도 이 사회가 변하는 것 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더 가능한 일일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내가 변해서 내가 행복할까? 난 자신이 없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이거다. 내 생각은 어떠한데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럴때 난 내 욕망을 숨긴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내가 뭘 더 좋아하는 지 내가 뭘 지향하는 지 말하는 것이 이기적이다라고 배웠으니까...그래서 답답하다. 내가 바라는 것과 남이 바라는 것이 다를 때 난 어찌해야 하나? 난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이런 양태는 대부분의 내 삶의 단면에서 그러하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것인데 난 사실 그걸 말 못한다. 그런 걸 말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하니까. 남들이 자신이 뭘 하고 싶다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뭘 원해라고 말하는 것은 이기적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회의에서 필요한 일을 한다. 어쩌면 답답한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려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조절하는 것.

 

슬슬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그리고 또 하나 객관화...나 자신을 혹은 상황을 객관화 하는 것.....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더라도 그것을 객관화 시키지 못한다면 난 공존할 수 있을까?

 

오호...이런....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들....수다를 떨어야 겠다. 수다를.....옹알옹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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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사진

잘 다녀왔습니다.

몇년 만의 외유라 사실 낯설기도 했는데 흥미진진한 경험들을 하고 왔습니다.

 

우선 제가 갔던 곳은 제네바라는 곳인데요. 워낙에 세계기구들의 본부가 많이 있다보니

제네바 현지사람은 드문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어서 일반적으로 특정 지역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배타성이 안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나중에 가서야 약간의 느낌을 받았는데요. 그 느낌은 쿨합이었습니다. 근데 그 쿨함이 좀 굳어졌다고 해야 하나요. 그러다 보니 가끔은 차갑게 느껴졌는데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다 보니 서로 존중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러다 보니 쿨하고 더 나가 차갑게 느껴졌나 봅니다. 워낙에 쿨한 것을 좋아하는 저도 사실은 상대적으로 그곳의 기준으로 보면 덜 쿨한 사람이 되더라구요.

그 묘한 쿨함이 편안하기도 혹은 불편하기도 해서 인간관계에 대한 낯선 고민을 하게 되더군요. 헤헤....제네바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하고요.

 

그곳 생활은....정말 신선놀음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하루에 두세번도 있는 회의일정..회의 없는 날은 회의에서 결정난 일들을 다음회의까지 준비해야 하고 진행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그러한 일정들에 비교하면 정말 신선놀음이었. 늦게 시작되는 하루일정. 사유가 가능한 숙소환경...얘기 안할랍니다. 배 아프실까봐...(^^;;)

 

 

그래도 숙소 앞에 있던 요상한 나무 사진 하나 올립니다. 하늘을 향해 두팔 벌리고 있는 듯한 나무가 너무도 인상적이었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 왔던 것은 영화제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자였던 겁니다.  우선은 반가웠죠. 근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미난 것은 대부분이 아이가 둘 이상이었던 겁니다. 아이를 갖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래 저래 들어와서 알고 있던 차에 그 문제를 이들은 어떻게 해소를 하나 싶어 물어 봤죠.

"아니 어떻게 다들 아이들이 하나도 아니고 둘 셋씩이나 있나? 한국은 최근에는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안낳고 있어서 사회가 급속도로 노령화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라고 난리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나? 노하우를 알고 싶다."

그랬더니 그들왈 "열심히 조직한다" 였습니다. 처음에는 영어가 짧아서 조직한다란 이야기만 듣고 여기는 공동육아가 일반적인가 보다 싶었는데 조금 듣다 보니 아이를 볼 사람을 식구들 중에서 찾는다는 거였습니다. 글고 덫붙이는 말이 "아기 키우는 것은 힘든 일이다" 라는 거였습니다. 내심 '그럼 한국이랑 뭐가 다른가? 여기도 비슷하구나. 아기 키우는 일은 어디서든 비슷한 문제구나' 싶었죠.

 

그런데 조금씩 그곳에서 활동 영역을 넓히다 보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낯선 모습을 보기 시작했죠. 그 처음은 슈퍼마켙에서였는데요. 많은 남자들이 뭔가 빼곡히 적은 메모를 쥐고는 장을 보는 겁니다. 그것도 매우 진지하게 이것 저것 들어 보고 제보고 하면서 말이죠. 어찌나 이뻐 보이던지.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많은 남자들이 장을 본다는 겁니다. 물론 개중에는 부인이 적어준 메모를 가지고 와서 장을 보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만 해도 참말로 반가운 일인데 자기 일의 하나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장을 볼 때는 보기 힘든 그런 모습이라...참말로 반가웠지요.

 

낯선 장면, 두번째는 아이들과 같이 다니는 남자들이 많다는 겁니다. 그것도 넘 자연스럽게...한번은 영화제 사무국 회의에 우연히 갔었는데(앞에서 말한 것 처럼 대부분이 여자. 실제로는 10명 가까이 되는 사람 중에 남자는 한 명, 것도 극장 오퍼레이터) 사무국 사람 중 한명의 남편이 두 아이와 와 있었어요. 아이가 있어도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이에게는 별 신경 쓰지 않고 회의를 하고 아빠는 아이들을 돌보고....회의가 끝나고 엄마가 아이들에게 잘자라고 뽀뽀하니 아빠가 아이 하나는 유모차에 앉혀 끌고 가고 하나는 손 잡고 가더군요. 넘 자연스럽게. 항상 아이 때문에 불안 불안하면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많은 활동가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한번 더 나간 낯선 장면, 그것은 아래의 사진에 담겨진 이야기입니다. 그 유모차를 끌고 가던 아빠를 우연히 담날 슈퍼마켙에서 만났습니다. 넘 반가워서 인사를 했죠. 역시나 아이를 데리고 왔더라구요. 뭘 샀나고 재미나게 물었더니...그 아빠왈 "아들 친구 생일이어서 같이 선물 사러 왔어요" 하면서 아이랑 함께 고른 동화책을 보여주더라구요. 참 아름답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하나 찍고 싶다고 했죠.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그 상황이 육아를 잘 나누고 있는 아빠를 보는 것 같아서요. 웃으면서 응해주더군요. 그래서 얻은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 헤어지면서 그날 저녁에 있는 저녁 모임에 올 거냐고 물었더니(그 아빠도 영화감독) 아이가 생일파티 갔다 와서 피곤해 하면 못가고 아니면 아이 데리고 간다고 하더군요.

 

생일파티 가는 아빠와 아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처음에 들었던 어디든 아기 키우면서 일하는 것은 다 어렵다는 생각이 제네바에서는 다른 의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아기 키우면서 일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 어려움이었습니다. 같이 책임을 나누는 상황에서 같이 어려워하는 것, 그러면서 같이 키우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아기 키우는 것이 활동에 하중을 가해서 힘들어하는 남자 선배를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하중은 여자 선배들이 느끼는 그러한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제가 여지껏 봐온 것은 말이죠. 그래서 그곳에서 여성이 느끼는 어려움과 이곳에서 여성이 느끼는 어려움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육아문제 때문에 활동을 쉬는 여자선배들은 쉽게 만나지만 그러한 남자선배를 만나기는 정말 하늘에 별따기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가끔 열심히 육아를 고민하는 남자선배들을 보지만 그것도 참...열심히 투쟁해서 얻은 거다란 생각. 열심히 육아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자신의 활동도 중요하다란 것을 알려야 겨우 얻어지는 상황. 그러한 것을 생각해 보면 같은 상황이라더라도 누군 하나를 얻으려고 목터지게 싸워야 얻는데 누군 그냥 그러한 상황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 이 시기에 이곳에서 산다는 것이 참 불편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사는 여성들에 대한 강한 연민도 느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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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갔다 올께요. ^^

컴을 빨리 다시 깔아야 하는데 그럴 정신이 없네요.

결국 이렇게 한동안 블로그를 방치했는데

또 한동안 방치해야 할 듯 해요.

내일 스위스에서 하는 블랙무비 영화제에 가게 됐거든요.

작은 영화제인것 같은데 한국 다큐멘터리 특별전을 하나봐요.

고로 초대되었어요. 참말로....<계속된다> 만들때는 정말 다른 생각 없이

빨리 만들어 사람들에게 얼렁 이주노동자 상황을 알리자였는데 지금은 그 덕에

비행기도 타고...참말로...신기하고 그러네요.

 

이번에 한국 다큐멘터리 특별전하는데 다 여자감독들 것이에요.

그쪽 프로그래머가 왜 한국에서는 여자감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지

궁금해 하는 것도 같고 해서 이래저래 한국 상황을 잘 설명하고 와야지

생각은 하는데 워낙에 초자라...잘할 수 있을지

 

여하튼 건강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다들....건강하시고 열심히 불질 하시길.

지금까지 자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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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내다.

* 이 글은 알엠님의 [횡설수설 보충설명] 에 관련된 글입니다.
* 이 글은 schua님의 [이번엔 꼭 해야지 ^^] 에 관련된 글입니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내 성격이 극도로 갈등을 피하는 유형이라고 뜨끔했다. 진짜로 그랬기 때문이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살짝 돌려말하거나 아니면 유머로 넘어간다. 그리고는 될 수 있으면 빨리 잊는다. 예전에는 화도 많이 내고 친한 친구에게 분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분해하지 않는다. 그냥 잊는다. '다 그런데 뭘...' 그렇게 피해 다녔던 것 같다. 점점.... 한번은 회의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그런다 "은근히 예민해" 난 잘 웃고 번잡스럽다. 그래서 실 없어 보인다. 그래서 가끔 속내를 내보이면 그런다. "예민해" 라고..


알엠님이 고백을 해보자고 했을 때 두가지 생각이 들었다. '또 시작이구나'가 하나였고 '내겐 고백거리가 있나' 가 다른 하나 였다. 자신의 상처에 대한 혹은 자신의 우매함에 대한 고백은 정말 중요하다. 그러면서 끊임 없이 반복해서 부정했던 자신에 대해 긍정하게 하니 투명한 것이 좋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있다. 사실 자주 있다. 서로 상처를 공유하다. 결국 그게 다시 상처가 된 경험. 그래서 두려웠다. 그리고 내겐 고백거리가 없다라는 생각에 이르자 '난 명예남성이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위기소침해졌다. 하지만 한 술자리에서 어이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난 생각했다. 난 명예남성이 아니었구나. 다행이었다. 명예남성이였다면 그 상황에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동안 내가 참아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세상은 내가 한번 화를 낸다고 바뀌지 않으니 괜시리 미친년 같이 화를 내봐야 나만 미친년 되는 게 너무 힘들고 나만 핑계를 내는 것 같이 주절히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고 그러면서 목이 메이는데 매번 누군가에게 그걸 털어놀수도 없었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빨리 잊는 것이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서글펐다. 그러면서 조금씩 화를 내자고 맘을 먹었다. 얼마전 버스를 탔는데 기사아저씨가 화를 낸다. 빨리 빨리 안온다고, 차가 역에 안서고 그냥 지나치려고 해서 주춤한 것이 이내 못 마땅했나 보다. 배차시간도 맞춰야 하고 바쁘시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빨리 좀 타주세요." 그럴수도 있지 않나? 내가 여자가 아니고 내가 어려보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화를 냈을까? 그런 생각에 이르자 화가 났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역이니까 세우셨어야죠." 크게 한 소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썰렁해졌다. 버스 안이 불편하다. 그러다 내 뒷자석에 앉은 아줌마 두분이 소근대는 소리가 드린다. "뭐라는거야?" "역이면 서야죠. 그러네" "그래, 맞아. 저번에도 그냥 가서 고생했잖아." 갑자기 편안해졌다.. 알엠님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왜 여자라는 이유로 투쟁해야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냔 말이다. 왜 누구는 태생적으로 누리는 그 권리가 그리고 가끔은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서 누리는 권리가 당연한 듯이 부여되는데 왜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가? 왜 싸워야지만이 얻을 수 있는가?" 하지만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서로 다른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고 사는 익히 가진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세상의 반을 아니 세상의 다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불쌍은 하지만 그렇다고 부탁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부당하게 내게 행동하면 난 이야기할 것이다. 니가 내게 부당하게 행동하고 있다고. 하지만 나를 이해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그래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을 불쌍하다고 웃어주고 말 것이다. 그러고 싶다. 지금까지 충분히 자기 부정을 했고 충분히 불안해 했고 충분히 외로웠고 충분히 설명했으며 충분히 부탁했고 충분히 노력했으니까 이젠 좀 그만하고 싶다. 이젠 자기 스스로 긍정하고 주변에 있는 끊없이 예민해져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알아 보고 웃고 함께 떠들고 싶다. 자기 긍정에 긍정을 끊임없이 해가며 충분히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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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꼭 해야지 ^^

블로거들의 글을 읽다보면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가 있다. 근데 그때 막 시간이 안나면 나중으로 미루게 되는데 그러면 나중에 못 쓸때가 더 많다. 그래서 넘 아쉽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써야지. 이번 영문자막 끝내고 나면 꼭 써야지. 집안 청소 미뤄 놓고라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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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서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때는 카메라를 사야겠단 생각 밖에 없었다. 가까이 있던 친구는 무슨 회사냐며 그냥 활동하라고 했다. 그래도 난 이미 마음을 정해버렸다. 딱 카메라 살 돈만 벌면 나온다였다. 딱 4개월 일을 하고 나오려고 하는데 그때 회사 가는 것을 반대했던 친구가 그냥 더 다니지 그러냐고 했다.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을 생각하며 아쉽다는 느낌을 받았나 보다. 그래도 난 과감히 관뒀다. 그렇게 카메라를 사면서 내 삶에 새로운 국면이 시작되었다. 일을 하나 맞으면 돈이 조금씩 생기는데 그 돈을 모아서 꼭 장비를 샀다. 마이크, 삼각대, 렌즈, 테이프.... 생활비는 정말 필요한 것만 쪼게서 살았다. 그러다 일도 배우고 돈도 벌자 하면서 방송국에 들어갔다. 운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었다. 너무 정신이 없었다. 통장에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오니 당황스러웠다. 돈 쓰는 규모도 커졌다.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방송국에서 계속 일할 것도 아니고 잠시 할 건데 돈을 이런식으로 쓰다간 내 생활이 바뀔 것 같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돈이 아니면 안쓰고 다시 저축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방송국 나오면서 산 것이 편집장비, 랩터... 캡쳐카드만 120만원은 족히 했던 것 같다. 이래 저래 금쪽 같이 장만한 편집장비 한 250만원은 넘었던 듯 하다. 정말 금쪽 같이 다뤘다. 바닥에는 한번도 놓지 않고 항상 책상 위에 모셔 놓고 작업했다. 그 주변은 항상 먼지도 털어주고 닦아주고...지금 생각해 보니 유치하다. 바이러스라도 먹을까 인터넷은 물리지도 않고 불편해도 플로피 디스켓 사다 이리 저리 돌리면서 썼다. 왜 그렇지 않나 아무리 후진 것이라도 자기가 선택해서 산 것은 그 분야에서는 최고 같은 생각이 들고 귀하고 귀한 느낌. 내게 장비들은 다 그렇다. 쪼게고 쪼게서 모은 돈으로 장비를 하나둘 산 나로서는 하나 하나가 최고다. 무엇이든 가격대 성능비 최고다. 남들은 그것이 뭐 어쨌다 해도 난 그것이 최고다. 그런데 그 금쪽 같은 컴이 이제는 한물간 컴이 되었다. 아니 랩터가 그렇게 된 것이다. 이제는 캡처를 하는데 필요한 카드가 10만원대이다. 그럼 이제 새로 싼 값에 더 좋은 사양으로 편집장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서글프다. 컴 봐주시는 분이 어제 겨우 컴을 차선책으로 고치시고는 막 쓰는 최근에 얻은 컴을 보시면서 그게 더 좋은 사양이란다. 랩터를 중심으로 편집장비를 사고한 나로서는 서글프다. 마치 그녀석이 한물간 것이 내가 한물간 것 같아 서글프다. 정말 별스럽게 세월이 느껴지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진다. 이제 새로운 편집장비를 위해서 통장에 돈을 모으기 시작해야겠다. 아이고...이 끝 없는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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