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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30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들, 그들이 혁명을 한다.(2)
    schua
  2. 2004/11/29
    해단식(10)
    schua
  3. 2004/11/19
    혁명은 진행중(9)
    schua
  4. 2004/11/16
    좋은 시간들..(2)
    schua
  5. 2004/11/14
    <계속된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4)
    schua
  6. 2004/11/13
    아프카니스탄(2)
    schua
  7. 2004/11/12
    일년..
    schua
  8. 2004/11/09
    스위스 영화제에 한국영화특별전(5)
    schua
  9. 2004/11/07
    솔직함..
    schua
  10. 2004/10/21
    한때(4)
    schua

세상과 불화하는 사람들, 그들이 혁명을 한다.

* 이 글은 heesoo님의 [김주익 동지의 호소] 에 관련된 글입니다.

이제 열심히 일해지 하며 다짐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컴 앞에 앉았는데 습관처럼 연 블로그홈에 띄어진 이글을 열고는 울어버렸다. 그 높은 곳에 올라가 내견 플랭카드에 쓰인 내용이 이렇다.

 

"현대판 노예제도 파견법을 철폐하고

이주노동자의 노동허가제 쟁취하자"

 

얼핏 보면 참 맥락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가슴에 꽂힌다.

상처 없는 자 이해의 폭이 적고

억압 당해보지 않은 자 억압 당한 이를 이해할 수 없고

소외 당해보지 않은 자 소외의 냉기를 모른다.

 

지지하자. 연대하자.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움직이자.

 

오늘은 위의 글로 시작해서 아래 글로 하루를 마친다.

 

* 이 글은 지후님의 [난쏘공을 다시 읽어야겠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말 잊지 않기 위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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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단식

오늘 글을 쓰면 안돼는데.

결국은 쓰고 말았다.

이래 저래 밀렸던 메일들을 처리하고 이제 자야지 하는데..

누군가 덧글에 '비즐리다'하고 남겨 놓았다. 이런...

이건 분명 내 정체를 아는 사람이다.

'비즐리'

이건 네팔 말로 뜻은 '번개, 전기 등'이다.

심지어 담배 이름으로도 있단다.

그게 내 네팔 이름이다.

샤말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원래는 "프리야"라는 이쁜 이름이 있었다. 뜻은 "사랑스러운^^"

그런데 샤말씨가 이렇게 바꿔놨다. 이름은 로맨틱한데 로맨틱한 행동을 도체 하지 않는다고

구박을 하더니 몇명의 이주동지들과 쑥덕쑥덕하고는 낼름 이름을 바꿔버렸다.

"비즐리", 정신 없이 왔다 갔다 한다고 비즐리란다. 피이...했다. 아무래도 숨은 뜻으로 웃긴 뜻이 하나 더 있을 것이야. 나쁜 뜻이 아니란 말을 믿을 수 없어. 그런 마음으로 지내는데.

한분이 그런다. "비즐리가 오면 정말 '비즐리'가 온 것 처럼 밝아져."

기분이 싸아..좋아진다...이 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농성 투쟁 처럼 힘든 시기에 밝아진다니...책임감 이빠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내 한국이름의 한문 뜻도 이것과 비슷하다. 아니 쌤쌤이다.

정말 이름이란 신기한 것이다.

서론이 길다.

 

오늘 일년 동안의 농성을 해단했다.

집회에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집회에서 발언 내용 중에 자꾸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둥..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둥...그런 이야기가 들려온다.

참 춥다.

 

아니 추웠다.



작년 이맘때 참 추웠는데 그래도 올 겨울은 안 춥나 보다 했는데

역시나 농성 이야기가 나오니 춥다.

어찌 저찌 집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크리스티앙 동지가 와서 그런다

오늘 여러 군데에서 많이도 왔다고 그런데 숫자는 참 적다고.

워낙에 역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동지이니 그렇게 말할 만도 한데

오늘따라 그 말이 참 따갑다.

하지만 집회에 온 동지들 면면을 보아하니..

일년 동안 농성 투쟁이란 것을 하면서 알게된 알짜배기들만 모인 것 같다.

그래서 난 적은 대오에 실망하지 않았다.

난 그 보다 작년 11월 15일 함께 했던 사람들이 자꾸 떠올라

징그러웠다. 자꾸 작년 이맘 때가 떠올라 징그러웠다.

그리고는 그날 그렇게 같이 시작했던 사람들을 대오에서 찾아서는

한명 한명 찬찬히 카메라에 담았다.

내일도 맘만 먹으면 본다.

내일 모레도 맘만 먹으면 본다.

하지만 농성투쟁이란 이름으로는 오늘이 마지막이니

그렇게 한명 한명 찬찬히 카메라에 담았다.

연단에서 뭐라 해도 난 대오에 있는 그렇게 일년을 보낸 사람들을 찾아 한명 한명 담았다.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 전화 받고 있는 모습, 담배 피는 모습, 내 카메라를 보고 웃는 모습, 내가 촬영하는 것을 보고는 내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 박수 치는 모습,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모습, 연단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인상 쓰며 듣고 있는 모습.............

 

<계속된다>를 만들고 나서 여기 저기 다큐가 상영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다.

독립다큐하는 선배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상영료를 안줘도 갔다. 그러면 안돼는 데 어쩔 수 없었다.

투쟁을 알리려는 맘 하나만으로 만든 다큐이니 현실에 대한 분노를 나누기 위해 만든 다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 농성장에 자주 못가면 이주동지들이 안온다 뭐라한다.

그래도 난 떳떳했다.

투쟁을 알리는 것도 미디어활동가가 하는 일이라고 그래서 열심히 참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리고 청하지 않아도 농성투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한국에서 이주문제에 대해 미친년 처럼 주저리 주저리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은 든든했다. 내 뒤에는 농성장이 있었으니

그리고 거기에는 동지들이 있으니..

그 동안 지역에 내려간 동지들도 그런 마음이었겠지.

"내가 지역에 내려와 공장에 다녀도 농성투쟁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든든하다" 했겠지.

근데 오늘 해단식을 했다.

 

어찌 저찌 집회가 끝나고 찹찹한 마음인데

명동으로 행진 중에 대오 옆차선 차 앞으로 민수가 누워 버린다.

카메라들은 달려들고 민수는 분에 못 이겨 "더 이상 죽이지 마라" 한다.

저러지 말지...저러지 말지. 지가 저러지 않아도 그 맘 모르지 않은데

저러지 말지...카메라를 들이 대기도 싫고 싫다.

내가 니 맘 아는 데 니도 내 맘 모를리 없고 이러지 말지.

모른척 하려다가 지가 아파하는데 내도 같이 아파하자 하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참 아프다.

 

얻은 것 없다고 지역에 가면 얼마나 괄시 받을까.

 

연단에 올라선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민주노총이 이주노동자 문제를 중요한 투쟁의 과제로 안았고

그러니 얼마나 얻은 것이 많냐고 한다.

누가 모르나..

 

하지만 자꾸 명동 해단식에서 대오 앞에 선 이주동지들은 고개를 숙이고

다른 동지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훌쩍인다.

나...나야 찍어야 하는 사람이니..울면 안돼지.

목으로 몇번 눈물을 삼키는 데

안울순 없지.

한쪽으로 가서 확 울음을 터트리는데 민수가 확 울고 간다.

니도 내맘이지 내도 니맘이지.

다 같은 마음이지.

 

이 혹독한 한국의 사계절을 명동 길 한복판에서 천막치고

잘 버텼으니 지역에 가서도 잘 버티길.

누가 뭐래도 할 일은 했고

누가 뭐래도 할 일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으니

기죽지 말고 더 강해져서 자꾸 자꾸 만나길.

 

비두도, 샤말도, 케이비도, 헉도, 굽다도 빼았겼지만

그래도 버텼고 지내왔으니 우리 같이 똘 똘 뭉쳐서

잘지내길......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 흘리지 말고

즐겁게 투쟁하길.

정말 민수 말대로 더 이상 이주노동자가 이 땅에서 이 땅의 현실이 갑갑해서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는 그런 일은 없길...더 이상 이 땅에서  이주노동자가 아니 모든 노동자가 산재 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일한 만큼 받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길..

 

농성단은 해단했지만..

비즐리, 이제 일상의 투쟁을 해나갈 동지들에게 더 큰 힘이 되도록...노력하길..

비즐리...훌륭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 이주노동자 투쟁 잘 알리고

열심히 열심히 살아서 많은 사람이 이주노동자 투쟁 같이 할 수 있도록 좋은 다큐 만들길..

그러니 이제 더 든든해 하기. 지역에서 열심히 일하고 조직하고 투쟁할 동지들 생각하며

더 든든해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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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진행중

그제 노동영화제에서 본 개막작.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

자료집에 나온 내용은..

 

자본주의 세계화에 대항하여 대안적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을 담은 <볼리바리안 혁명 : 베네주엘라 민중의 삶과 투쟁>은 그야말로 현재진행형의 <칠레전투>와도 같다. 제국주의와 기득권 세력의 오랜 착취와 억압에 맞서서 위로부터는 늑수부대 출시늬 '혁명적' 대통령인 차베스의 정치적 지도를 통해서, 아래로부터는 '차베스가 있건 없건 혁명을 계속하려는' 민중들의 자발적이 ㄴ공동체 조직인 볼리바리안 서클을 통해서 사회변혁을 진행하고 있는 베네주엘라의 상황을, 젊은 감독 마르셀로 안드라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구체적 대안의 발견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하고 분석해낸다.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뤄낸 것이 있다면 그것은...그러한 꿈을 꿀 권리를, 그리고 희망을 가질 권리를 정면에서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베네주엘라의 한 활동가) 역동적인 사회 변혁의 단면들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의 기폭제가 된 1989년의 카라카죠 봉기, 차베스를 대중적 지도자로 떠오르게한 쿠데타, 그리고 차베스 정부를 전복시키려다 실패한 2002년 쿠데타 등의 역사적 기록이 모두 담겨있기도 하다.

 

21일 일요일 오후 4시 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다시 상영된다.

 

다큐를 보는 내내 난 질투에 사로잡혀 있었다.

질투..사람에게도 잘 하지 않는 질투를 다큐에서 보여주는 베네주엘라 상황에 질투하고 있었다. 베네주엘라는 말 그래도 혁명중이다. 차베스로 들어나는 혁명은 어찌보면 단편적이다. 다큐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사람들...그들은 하나 같이 깨어있고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실현하고 있었다.

다큐에서 한 농부 할아버지는...내가 보기에 족히 70은 넘어 보였다. 정말 지글지글한 주름이 한 가득한 얼굴로 이런다. "깨어 있는 것이 너무 기쁘다. 이 혁명은 계속 될거다" 고.

혁명은 제도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지도자를 새로 뽑는 것도 아니다.

혁명은 자기가 속해 있는 지금의 세상을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 것인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그것들을 실현해 나가는 것이다. 여러 가지 실험들을 하며 고민하고 활동하는 활동가들, 농부들, 어부들...

 

나는 그 역동적인 베네주엘라 상황을 엿보면서 심한 질투를 했다.

그리고 그 감독이 부러웠다.

그 감독왈 "베네주엘라 혁명에 연대를 해달라고 하지 않겠다. 연대가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곳곳에서 봉기하라. 그래야만이 베네주엘라 혁명은 베네주엘라의 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남아메리카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정말 그렇다. 이제는 일국의 국가에서 혁명을 한다해도 미국이 무력으로 밀고 들어오면 끝이다.  아니 무력도 필요 없다. 경제제제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수단이 있다. 지금도 미국은 끊임 없이 차베스 정부에 우려를 표한다. 국제여론을 만들고 베네주엘라의 구 세력과 손잡고 쿠데타도 시도했다. 

 

베네주엘라는 혁명중..

베네주엘라의 사람들은 차베스만을 쳐다 보고 기달리지 않는다. 혁명속의 혁명이란 이야기를 하면서 베네주엘라의 사람들은 자치공동체를 만들고 의견을 모아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을 꾸린다. 서로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 혁명이 제도변화에 묶이지 않도록 제2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런 시기가 올까.

무거운 몸으로 아침에 카메라를 들고 집에서 나올때

속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한번만 하자. 한번만. 혁명..그거 정말 내 인생에 한번만 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이전에 웃어 넘겼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철없다고 하는 소리에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이제 꿈꿔도 좋지 않을까

꿈으로 멈춰 버리는 꿈이 아닌 실현하는 가능한 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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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간들..

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를 이번주 목요일에 명동성당 농성 1주년 기념 문화제에서

상영한다. 고로 열심히 자질구레한 것들을 손 보고 있다. 편집중.

하루 종일 작업하다 치즈 넣은 빵을 먹고 싶어 나갔더니

겨울이다. 날이 춥다기 보다는 온통 회색에 칙칙하다.

이런 겨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참 힘든 일이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은

좋은 다큐를 많이 볼 수 있다는 거다.

오늘 부터 시작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에서는 남미 관련 다큐를

그리고 내일 부터인가 시작하는 일본다큐멘터리 특별전에서는

일본의 다다한 다큐를...하하하..

부지런히 봐야한다.

 

저번 인디다큐페스발에는 이래 저래 다큐를 많이 못 봤다.

그런데 김환태 감독님이 열심히 다큐를 보러 다니시는 거다.

야...참 사람 성실하네..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기가 하는 일에 열심히 시간을 내서 연구하고 세상을 느끼는 일도

다큐멘터리 감독이 해야 하는 일이다란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처음 다큐를 시작할때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닥치는 대로 다큐를 찾아 봤던 적이 있다.

하루에 두 세편을 보면서 이런 저런 메모를 하고 그랬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 겨울...칙칙한 겨울에...

다행스럽게 다큐를 많이 볼 수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열심히 보고 열심히 느끼고 열심히 공부해야 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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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상영

그 동안 못 보신분들을 위해 알려드립니다.

(전 이런건 소질이 없나봐요. 어흐...쑥쓰)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많이 오셔서 이주동지들의 삶과 투쟁을 공유하시기 바랍니다.

 

이틀 동안 상영하는 데요.

11월 17일(수) 12:30

11월 19일(금) 8:30(PM)

평일이긴 하지만 금욜 저녁은 그런 데로 편하지 않을까 싶네요.

네오님! 리버미님! 꼭 오셔요~~

장소는 서울아트시네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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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

* 이 글은 자일리톨님의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자일리톨님에게 책을 얻어 열심히 읽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읽고 있다. 다시 한번 감사해야지...감사감사^^해요.

 

워낙에 글 재주가 있는 기자이다 보니 그의 책을 읽는 맛이 쏠쏠하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읽는 재미는 글 재주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겨레21이 재미 없어진 이후에도 아시아 관련한 그의 글을 읽기 위해서

한겨레21을 열심히 사 읽은 적이 있었다.

워낙에 한국 언론에서 아시아 관련한 기사를 찾아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있긴 있으나 거대 통신사들의 글들을 인용하거나 바탕으로 해서 쓰는 그러한

기사는 생명력도 없고 신뢰도 가지 않는다. 

그런 기사들에 비하면 그의 글들은 살아 있었다. 팔닥 팔닥 살아 있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아시아가 동시대를 살아 가는 존재로 다가 왔다.

그리고 그 역사와 사회구조가 한치도 한국의 그것과 어긋나지 않은 것에

감탄했다. 정말 감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세계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고 있단 생각도 들었다.

그저 역사책이나 사회과학 서적에서 읽는 것 하고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아시아를 제 1 세계의 눈으로가 아닌 같은 세계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건 한국의 눈...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근현대사에 전쟁을 경험한 주변부 역사를 경험한 사회에서 산 나로서는

그의 글들이 살아 있었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설명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것 같다.

그를 보면 자신감이 생겼다.

전쟁에 대해서 적어도 세 1 세계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사고할 수 있겠구나...나는...

뭐 그런...자신감.

 



 

그 자신감은 전쟁에 대한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데까지 옮아갔다.

그러다 911이 터졌다. 

미국은 있는 호들갑 없는 호들갑 다 떨었다. 정말 호들갑이다.

무고한 사람이 그렇게 어이 없이 죽어간 것이 어찌 안슬프겠냐만

미국의 지배세력(정말 이 말 안쓰고 싶었는데 이 말 밖에 딱 맞는 말이 없다)은

그 슬픔을 동원해서 빈라덴을 엄호하는 탈레반을 무너트리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해야 한다고 난리를 피웠으니...그리고 그 호들갑에

전세계가 놀아났으니...그리고 911에서 죽은 사람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미국이 지구 곳곳에서 일으키고 있는 전쟁에서 죽어갔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뻔뻔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911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오히려 그런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슬펐다. 그런 역사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 힘들었다.

온 세계가 광기에 휩싸인 듯 돌아가고 마치 거대한 시계가

내 머리 위에서 카운트 다운을 하는 것 같았다.

무서웠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그 광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무기력.

난 말끝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 난 그리고 갈거야. 난 갈거야' 라고 중얼거렸다.

기껏 내가 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땐 그 생각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그 미친시간을 기록해야 한단 생각.

그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그 끝없는 무기력에서 나를 잃을 것 같았나 보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다.

말문이 막혔다.

하루 하루 전쟁관련 소식들을 찾아 읽었다.

전쟁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기사들이 물리긴 했지만 그 안에서라도 

사실들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러다 정문태씨의 기사를 만나는 날이면

반가워 읽고 또 읽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

결국 미국이 들어 앉았고 탈레반은 물러났다.

이미 마음은 잡을 수 없고 좀 거창하긴 했지만

인류는 절대로 진보하지 않는단 생각으로 팽배해져 있을 무렵.

----------------(오버했다. 근데 그 당시에는 정말 맛이 가 있었다.

내가 술이라도 먹을 줄 알았다면 그때 몸 망가졌을 거다. 쉼 호흡하고..휴우.)

 

친구가 한 포털 사이트의 광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국제지원단체가 아프가니스탄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데

거기에 함께 갈 스텝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시큰둥했다.

전쟁이 나고 나서 그곳에 가서 지원을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전쟁을 막았어야지!

선뜻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보지도 않고 그저 전전긍긍한 전쟁,

현대사에 전쟁을 겪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전쟁은 어떤 것인지, 정말 그것은 어떤 것인지.

눈으로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가기로 맘 먹었다.

그런데 그 지원단체에서 가기 전에 유서를 쓰란다.

쓰벌.. 그래도 꼼꼼히 썼다. 내가 어찌 되면 내 카메라는 누구에게 주고

내 편집 컴퓨터는 누구에게 주고 뭐는 누구에게 주고 등등...

같이 가기로 했던 사람들이 내 유서를 보더니 혀를 내두른다.

넘 현실적이라고...

 

집에는 동남아시아에 잠시 갔다 온다고만 했다.

살짝 비자가 나오면 아프가니스탄도 갈 수 있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니다. 진짜루 파키스탄 국경지역에서 비자를 신청하고 기달려야 했으니까.

하지만 워낙에 내가 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 식구들은 귀 담아 듣지 않았다.

걱정한 내가 오히려 머쓱해졌다.

유서도 쓰고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했고(?) 카메라도 챙기고 출발.

 

국경이 열렸다고는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들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쉬이 접근할 수 있다던 파키스탄의 국경지역 폐샤와르로 가는 길만도

험난했다.  만 하루를 꼬박 이동해서 겨우 도착한 페샤와르.

비자를 신청을 하고 기달렸다 운이 좋았는지 비자가 나왔다.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

폐샤와르에서 카불까지 가는 국제지원단체만을 위한 비행기가 있는데

(그 비행기는 10명 정도가 겨우 탈 수 있는 작은 비행기다)

원래는 그 비행기를 이용해서 카불까지 들어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걸 못 타게 됐다. 자세한 기억이 안난다.

왜 비행기를 안타고 육로를 택하게 됐는지.

여하튼 육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아직도 곧곧에 무장한 사람들이 있다고도 하고 

아직도 미군이 뿌려 놓은 지뢰가 곧곧에 있다고도 하고.

눈에 안뜨이기 위해 현지인 옷을 구해 입고 다 허물어져 가는 차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에공..)

 

밤이 깊어 가니 각설하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오늘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그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아이의 이야기다.

아이라고 하면 참 어색하다.

그래도 나이가 어리니 아이라고 해야겠지..일반적으로..그렇게 하니...

 

그 아이를 만난 건...

프로그램 중 난 배가 고파 잠시 밖에 나왔다.

그런데 한 아이가 계단에 앉아 감자 튀김 같은 것을 먹고 있었다.

옆에 가서 안되는 아프가니스탄말로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배고픈 것을 눈치챘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나보러 그 감자튀김을 먹으란다.

당황스러웠다.

국제지원단체 직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오기 전에 했던 이야기가 있다.

어떤 음식이든 길거리에서 파는 것은 먹지 말아라.

그 음식이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너무 깨끗해져버려서 그걸 먹으면 탈이 난단다.

그래서 다들 물도 사다 먹고 음식도 열심히 만들어 먹는다.

그걸 뭐라고 할 수 없다. 탈이 나는 걸...정말로 탈이 난다.

이미 우리들은 현대문명으로 인해 약골이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난 그 말이 잠시 떠오르긴 했지만

그 말때문에 당황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의 당당함 때문이었다.

"먹어, 먹어"하는 그 아이의 모습.

그 아이의 모습은 여느 카불의 아이의 모습이었다.

혜어진 옷, 신발, 깨제재한 얼굴,

그럼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아이는 너무나 당당했다.

행동이 참 당당했다. 정말 시간을 올곧이 살아낸 어른 같았다.

난 그 아이의 당당함이 너무 낯설었다.

그 당당함이 카불에선 낯설었다.

(전쟁에 황폐해진 땅에서 국제지원단체들의 지원에만 기대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론 아니지만 겉으로는 지원단체 사람을 보면 당당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그런 상황을 보는 것도 힘든 일이다.)

아니 어쩌면 세계 어디 가도 그러한 당당함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난 너무 그 아이가 멋있었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잠시 난 그 친구의 당당함에 눌리고 홀려서

그 친구의 감자튀김을 나눠 먹었다.

뒤늦게 날 발견한 한국 스텝이 그런다.

어이구..애들 것을 빼앗아 먹냐.

그래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우리가 익히 알아 왔던 아이가 아니었다.

내가 보호해줘야 하고 안쓰러워해야 할 아이가 아니었다.

그 아이는 어른이었다.

아니 어떤 어른보다도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그 아이는 나 보다 훨씬 강했다.

그 오랜 전쟁을 견뎌 왔고 지금도 그 전쟁 때문에 황폐해진 그 땅에서

살고 있으니...난 그 친구의 그 당당함이 너무 멋져서

그 친구랑 헤어지고 와서도 그 친구 때문에 가슴이 벅찼다.

 

나중에 맘이 통하는 그 학교 선생님에게 그 아이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데리고 산다고

그 아이도 카불의 아이였다.

아침에는 일을 하고 시간 날때 마다 학교에 와서 공부한다고.

선생님도 인정했다..참 당당한 아이라고.

 

이래저래 준비해간 프로그램이 끝나고 마지막 날

사람들은 그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바빴다.

난 너무나 망서려졌지만 그 선생님과 이야기를 했다.

난 그 친구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당당하게 사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그가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그런데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그래서 결국 생각해 낸 것이 너무 창피하긴 하지만 내게 있는 약간의 돈이라고

선생님은 내 맘을 읽어 줬다. 고마웠다.

결국 선생님이랑 내린 결론은

많이 줄 수도 없고 줘서도 안된다고 그 아이의 삶에 존중을 보내는 의미를 담을 수만 있으면

된다고 학자금 처럼...그렇게 난 선생님에게 부탁을 했다.

 

멀리서 그 아이가 보인다.

여전히 당당하다.

나 같으면 기분이 나쁠수도 있을 텐데

혹은 어려운 살림에 돈이니 반갑다고 웃을 수도 있을 텐데

그 아이는 선생님의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고 받았다.

멀리서 인사를 하는데 나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 데.

창피했다.

돈을 지워준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정말 창피한 것은

'전쟁을 막지 못해서' 였다.

참 오바다. 하지만 정말 그 아이 앞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위에 대한 환상이 별로 없는 나는 앞세대에 대한 개념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에게는 앞세대 아닌가

난 그 아이에게 뭘 했나.

전쟁도 못 막고 전쟁 때문에 그 아이를 그렇게 힘들게 해 놓고서

이제와서 그저 당당한 모습에 존경을 표한다고 헛짓을 하니...

창피했다.

창피해서 울었다.

프로그램 내내 감상주의는 아니다라고 지랄하고 다닌 내가 우니

같이 했던 스텝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난 눈물을 멈출수 없었다.

"shame on me"

계속 되네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다.

전쟁을 막는데 노력해야지 더이상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그렇게 다짐을 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왔는데

 

난 이제 정문태씨가 기술해 놓은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겨우 아프가니스탄을 기억하고 이런 글을 쓰고 있다.

참....

 

여전히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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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11월 15일이면 명동에 이주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지 일년이 되어 간다.

어찌 일년이 지나갔는지...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 속에 즐거움도 슬픔도 절망도 기쁨도 있었으니

정말 그냥 일년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농성단에 있는 동지들과 전화 통화를 하다 보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걱정이 된다.

농성 첫날...그 추위...

아마 날씨 보다 그 상황이 더 춥게 느껴졌던 거 같다.

그날 저녁 집회에 당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었던 홍준표 부위원장 말이

무섭게 현실이 되었다. 왈 "이 투쟁이 열흘이 될지 100일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우리는 2004년의 해를 이곳에서 2004년의 따뜻한 봄 햇살을 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맞게 될지도 모릅니다...동지들.. "

처음 그 말을 들을 때는 그냥 의례적인 이야기겠지 했는데 아니 아무런 느낌 없이 들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되고 보니...그리고도 한참을 지나 일년이 되어 가는 것을 보니..

무섭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명동성당 관계자들과 실랑이 끝에 들머리에 농성 천막을 칠 때는

참 심난하기도 하고 그 현실이 싫어서 쳐다 보는 것이 싫었지만

어쪄랴 기록해야 하는 걸...난 열심히 텐트 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다 친 텐트 앞에서 이주동지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진은 왜 직냐고 했더니...이제 집이 생겼는데 기쁘지 않냐고

여럿이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텐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이런 것이 살아가는 것이구나..살아가는 것은 다른 게 아니구나

어차피 현실은 팍팍하고 어디 기댈곳 없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얻어낸 것들을 공유하며 즐거울 수 있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구나 그런 생각에 나도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노숙을 하다 천막이 생기고 천막에 스치로폼을 대고

전기 장판을 마련하고 씻을 곳이 없어 찬물로 화장실에서 씻다가

천주교 인권위 도움으로 따뜻한 물로 씻을 수 있게 되고

그때 마다 사람들은 기뻐했다.

다시 그런 일을 하라면 난 자신이 없다.

물론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같이 그 시간을 나눴던 나로서는

참 뭘 몰라서 그렇게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한 동지도 어떻게 이런 농성을 들어 오게 됐냐고 하니까

"이렇게 힘든줄 알았으면 안했죠" 한다.

 

투쟁은 그런 것이다.

투쟁은 싸움이기도 하지만 동지를 느끼고 어려움을 함께

겪고 나누고 해결하고 그런 것....그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난 이주동지들과 더 가까워졌고 그들을 쉬이 이해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 기간을 통해 기쁨과 함께 실망도 있었지만...

난 그래도 여전히 이주동지들과 함께 할 것 같다.

나의 다음 주제는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린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린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친구...쉽게 말하는 그런 친구 말고 정말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연대할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한번 열심히 고민해 봐야지.

 

그 일년이 내게 준 선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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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영화제에 한국영화특별전

며칠전 방송국에서 일할 때 같이 일했던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문에서 내 이름을 봤는데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어서 한참 기사를 봤다고

그리고 맞는 것 같아 너무 반가워서 전화한다고...

얼떨결에 전화를 받은 나는 '아예...'를 반복했다.

마냥 조용했단다. 내가...헝헝...

참 신기하다. 나는 항상 비슷비슷하게 살아 온 거 같은데

다른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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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 18-27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영 화 축제인 제15회 페스티벌 블랙무비(Festival Black Movie,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 국영화 특별전이 개최된다고 부산영화제의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전했다.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모두 13편. '코리언 스릴러' 섹션에서는 '올드보이' (박찬욱)와 '살인의 추억'(봉준호), '나쁜 남자'(김기덕) 등 3편이 상영되며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섹션에서는 '이중의 적'(이지영), '계속된다-미등록이주노동자 기록되다'(주현숙),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이경순), '노동자다 아니다'(김미례), '엄마…'(류미례) 등 5편이 선보인다.

또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생활의 발견', '강원도의 힘', '오! 수정', '돼지 가 우물에 빠진 날' 등 홍상수 감독의 전 작품은 회고전 섹션에서 상영된다.

(서울=연합뉴스)

 

 

 

 



부산영화제 이후로

가끔 외국에서 메일이 온다.

참 신기하다..

<계속된다>를 보내달라는 메일..

그럼 난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싶어진다

"Who are you?"

 

감독도 초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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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

오랜만에 글을 쓰니 낯설어서 무슨 글을 먼저 써야 하나 고민이 된다.

글을 안쓰는 동안 많은 일들이 생겨서 하나 하나 생길 때 마다

잘 기록해야지 하면서도 그러질 못했다.

아마도 마음이 이리 저리 날라다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또 만나다 보니 계속 흐르는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하나하나 정리해야 하는 데 지금은 그럴 힘은 없고..

곧 정리해야지...

 

그래도 지금 이렇게 글을 써야지라고 만든 것은..

한 친구...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친구였는데

어렵게 영어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하니 오해가 생겼다. 역시 문제는 영어.

어찌할까 망설이는 데 그 친구왈

마음을 열란다. 그리고 편히 표현하면 된단다.

햐...솔직함..

솔직히 먼저 배려랍시고 했던 나의 행동들이

창피해져버렸다.

하지만 마음은 정말 편해져버렸다.

 

역시 영어든 한국말이든 솔직함은 위대하다.

솔직함에는 당당함도 있어야 하는 듯.

문제를 직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 듯.

 

이제 진짜루 솔직하게 살아야지..

에공...눈이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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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 이 글은 schua님의 [시 한편...]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존 버거 아저씨 책을 하나 옆에 놓고 찝쩝거리고 있는데.

진짜루 찝쩝거린다.

 

아마 내가 책 읽는 방식은 두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한번에 파는 방식,

다른 하나는 계속 보는 방식,

 

첫번째는 읽을 때까지 거의 한 자리에서 해결하는 것,

대략 세미나 할 때 발제를 위해서 주로 이용하는 방식인데,

그러니까 아주 목적 의식적으로 드갈때 이다.

계속 보는 방식은 지하철 기다리면서, 지하철 안에서, 지하철 갈아 탈 때,

밥 먹을 때, 밥 먹고 잠시 한 숨 쉴 때, 자기 전, 일어 나기 전 이불 속에서,

편집 하다 랜더링 걸어 놓고, 차 마실 때, 회의 하기 전, 컴퓨터 파워 들어 오기 전,

여하튼 계속 옆에다 놓고

그냥 시간이라고 말하기 뭐한 시간이 날 때도 읽는 방식,

한 마디로 찝쩝거리는 방식..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그렇다.

근데 이런 이야기하려고 한게 아닌데..

찝쩝이라는 단어에 필이 꽂혀서...쯪...

 

하여튼 지금 찝쩝거리는 책이

존 버거 아저씨의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이다.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데...참...기네....아닌가..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책이 두 부분으로 나뉜다.

시간, 공간,(훌륭훌륭..난 존 버거 아저씨를 넘 좋아하는 것 같다)

시간에 대한 글을 모은 것이고 당연이 공간에 대한 글..

시간에 대한 글은 주로 시간의 한때에 대한 글들이다.

시도 있고 소설도 있고 상상의 날개 한 쪽 같은 노트도 있다.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지루하고 그래서 집중력을 요하지만

그렇게 단련을 하면 인간의 한때들과 만나게 된다.

그래서 순간을 영원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조급증 같은 것이 있어서 순간에 영원을 부여하고 그러다

순간도 놓친 적이 많다. 내 20대의 대부분은 그랬던 거 같다.

그렇게 많이 놓친 순간을 오늘 하나 찾았다.

 

요만때, 일년 중 요만때,

날씨도 요만때,

가로등이 켜지려고 스스르 준비하고

아직 간판들 불은 다 안 켜지고

세상은 회색인듯 갈색인듯

잡힐 듯 말 듯, 가물 거리지만 그래서 아늑하고 따뜻한 한때

 

10대때 주로 이런 때이면 큰 공터에 나가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가 좋아서 한동안 매일 매일 그렇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참 외로웠던 거 같다. 그런데 그 외로움이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했던 거 같다.

너무 외로웠다. 너무 외로워서 멍해졌던 거 같다.

얼어 붙는 것 처럼.

 

그런데 오늘 만난 '그때'는 이상하게 외롭지 않았다.

아니 외로운 것이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고 따뜻하고 산뜻하고

당연하게 느껴졌다.

삶의 한 단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인간의 한때와 만난 것 같기도 하고

당당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나이를 먹나 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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