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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단순한 날들...

월요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종일 회의였다.

약 1시간 반의 성평등 교육이 그 사이에 있었다.

저녁에는

수석부위원장의 초대로 의정부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갔다.

먹고 마셨다.

 

화요일.

광주로 출장가는 날,

때마침 화요일이라서 참 오랜만에

과기노조 고영주 위원장 복직 쟁취를 위한 출근투쟁에 함께 했다.

광주에 가서 저녁까지 회의와 간담회를 했다.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졸려서

정읍휴게소에 허겁지겁 들어가서 한 이십분 잤는데

깨어나서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한참 헤맸다.

아주 정신을 놓고 잤던 거다.

 

수요일.

일, 월, 화, 잇따라 잠을 게을리한 탓인지

오래도록 피로가 쌓인 탓인지

5시 30분에 맞춰둔 휴대폰의 알람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고

엄청나게 늦잠을 잤다.

10시에 중집위가 있는 날인데, 그 시간에 간신히 도착했다.

 

회의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고,

저녁에 조직(인사)개편 문제로 한 동지를 만나려 했으나

이 동지가 불만이 그득하여(인사안에 대한 실망이 컸다)

선약을 이유로 나와의 만남을 피해 버렸고

망연자실 사무실에 남아서 이것저것 챙기다가 보니까 기차를 놓쳤다.

밤 12시, 고속버스 막차를 타고 간신히 대전으로 갔다.

 

목요일.

아침 8시 45분에 출근해서 오후 4시가 되도록

정기인사와 관련하여 사무처 상근자들 열댓명과 잇따라 면담을 했고,

나는 녹초가 되었다.

전날에 만나려 했던 동지와는 점심을 함께 먹으며 얘기를 나누었으나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악화되었다.

 

나머지 일들 챙겨놓고

강남 팔레스호텔에서 회의가 있어서 7시에 맞추어 갔다

공공기관 지방이전과 관련하여 전남지역 입지선정위원들이

이전대상기관의 실무책임자들과 만나서 의논하는 자리였는데,

여섯명의 입지선정위원 중에서 나 말고는 모두 교수더라.

무슨무슨 위원회라고 하는 자리는 으레 교수들 차지라고 생각하고

각 기관들이 교수들을 추천한 모양이다.

 

회의라기보다는 간단한 의견과 정보 교환의 자리였고

밥까지 먹고 나니 9시가 지났다.

강남에서 서울역가는 시간에

강남터미널에서 유성가는 고속버스를 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차가 끊어지지 않은 시간에 처음으로 고속버스를 탔다.

 

밤 12시부터 밀린 원고 하나 쓰고

밀린 일거리들을 챙기다 보니 어랍쇼 벌써 새벽 5시가 다 되었다.

 

자고 지각할까 아니면 곧바로 출근할까 20분쯤 망설이다가

출근해서 졸리면 자자는 쪽으로 결론지었다.

첫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집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잠도 못잔 곳이 되어버렸네.

 

금요일.

아침 7시 30분쯤,

지하철 1호선 시청역과 2호선 시청역 사이 통로에서

어어어, 너 흔파 아니냐? 오오오, 오빠!!

실험실 후배를 10년만에 우연히 만났다.

5년 후배이니까 얼추 마흔이 다 되었을텐데

서슴없이 오빠라고 불러서 얼굴이 화끈하더라.

(근데 예전엔 분명히 형이라고 불렀는데 이상하네...ㅎㅎ)

 

이런게 굿 서-프라이즈야, 오빠는 그대로네,

아직 결혼 안했으니까 좋은 사람 소개 시켜줘,

말 시킬 틈도 주지 않고 쾌활하게 떠들길래

나도 하하 웃으면서 전화번호 달라고 하고

다시 악수하고 헤어졌다.

 

사무실에 오니 한 동지가 벌써 와 있다.

냉녹차 한 잔 마시고

오늘 일정 점검하고

그냥 이렇게 주절주절 쓰고 있다.

 

오후엔 민주노총 사무처장단 회의가 있다.

사업계획, 조직혁신 등등이 주된 안건이니까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사무처 이윤주 동지가 양재 시민의 숲에서 결혼을 한다.

휴가 이후엔 토요일마다 서울로 출근한 듯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속도로를 달려야지.

 

이렇게 단순하게

회의와 출장과 회의와 면담과 회의, 그리고

서울과 대전 사이 기차와 고속버스를 번갈아 타고 오가며

하루하루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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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고 김종배 동지가 유명을 달리한지 벌써 6년이다. 그 추모식에 갔다.

전에 없던 것이 생겼다. 열사-희생자 추모단체 연대회의에서 열사들의 사진과 약력을 소개한 동판을 제작해서 설치해 놓았더라.

고 김종배 동지의 묘소 뒷편에 고 최진욱 동지의 묘가 있다. 그는 2000년 사회보험노조의 투쟁과정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어제 그의 5주기 기념식이 있었다.

고 최진욱 동지에 대한 소개-

거기에서, 참 오랜만에, 김예준 동지와 딸 준경이를 만났다.

추모식이 끝날 무렵, 갑자기 후두둑 후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내 사람들은 젖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에 깔판으로 하늘을 가리고 아이들을 대피시켰다.

김예준 동지가 하는 말, "야, 용재야, 빨리 간다고 종배가 화났잖아!"

모란공원을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추모식 끝나고, 곧장 대학로에 있는 P2로 갔다. 일주일 후면 결혼하게 되는 이윤주 동지와 그의 예비 신랑 박양수 동지의 모습- 만난 지 석달 되었는데, 매사 둘이 너무 잘 맞는다고, 아주 난리다.

대천에서, 체신노동자 하계수련회가 있었다. 밤길을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김진숙 동지가 화끈한 교육을 하고 난 직후라서, 내 얘기는 짧은 덕담으로 끝냈다.

 

이어서, 체신노조 현장 동지의 발제문을 들으면서,

또 체신노조 중앙간부의 신변잡담을 들으면서,

단 5분의 연설이라 할지라도

그 얘기를 듣는 동지들의 입장과 처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얘기하고 짧은 전망이라도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한 어려운가를 생각하고

또 그런 측면에서 내 얘기들을 반추하고 반성했다.

이따금 짙은 안개를 더듬으며

어두운 길을 달려서 새벽 1시반쯤에 대전에 도착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점심과 저녁을 제대로 먹지 못했음),

혼자서라도 순대국밥이나 먹자 싶어서 천복순대로 달려가는데,

리베라노조 앞에 몇몇 동지들이 늦도록 정담을 나누고 있다.

어제 잠깐 들렀다가 찍은 사진을 한장 소개...

 



국화 한 송이
가느다란 향 한 줄기
두 번의 큰 절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바칠 것 없네

거푸 들이키는 술잔
남몰래 흘리는 눈물
허허로운 탄식과 회한이라니

그 밖에는 또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네

언제나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움이었고
모진 삶이 도리어 호사스러웠던 터라

검은 뿔테 안경 안에서
온화하게 빛나는 눈빛
조용히 다문 입술

그 영정 앞에
그 얼굴 아래

우리는 한낱
우리는 기껏
우리는 겨우
우리는 비로소
우리는 비로소 비로소...

(1999.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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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가맹신청서

울산대학교병원노동조합

강원대학교병원노동조합

충북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

제주의료원지부노동조합

제주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

 

8월 24일 오후 5시쯤,

이렇게 5개 노동조합이 공공연맹 가맹신청서를 내게 전달했다.

 

뒤이어 경주에서는

동국대학교병원지부노동조합이 대의원대회를 열어

만장일치로 공공연맹 가맹을 결정했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어떡한다?

 

지난 6월 8일 우리 연맹 중집위원회 결정사항 중에서 이와 관련된 부분만 상기해 보자.

 

4. 만약, 중재단의 노력이 실패하고 서울대병원지부노조의 가맹이 승인되었다하더라도 혹여 다른 병원사업장노조의 가맹신청이 있을 경우에는 우리 연맹은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의 원만한 진행과 2005년 보건의료노조의 투쟁을 위해 보건의료노조의 2005년도 산별교섭이 완결되는 시기까지는 가맹심의를 유보한다.

5. 그러나 이 기간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건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똑같은 경우가 반복된다면 서울대병원지부노조건을 처리함에 있어 이미 겪었던 조직내 갈등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다른 병원사업장노조의 가맹신청에 대해서는 동건 처리의 관례를 따라 논란없이 가맹승인으로 처리한다.


 

보다시피, 보건의료노조의 산별교섭이 끝났다고 하면 더 이상 논란을 벌일 일은 아니지만, 보건의료노조가 9월 13일에 다시금 산별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2005년도 산별교섭의 완결 시점'이 새로운 쟁점이 될 수도 있겠다.

 

지금 이 시간, 민주노총 중집위 수련회가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자정을 전후해서 사업계획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뒤이어 서울대병원지부노조 건을 다룬다고 했으니, 아마 지금껏, 서울대병원지부노조에 대한 중재 실패에 따른 후속조치에 관한 사항을 놓고 격론을 벌이고 있으리라.

 

갈 길 멀다. 그래도 갈 길은 가야겠지.

 



‘공공-보건’ 그리고 서울대병원지부
24일 민주노총 중집 격론 예상
상집회의 “집단탈퇴무효” 확인…공공연맹 “조합원이 선택해야”

24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민주노총 중집수련회는 김대환 장관 퇴진, 비정규보호

입법안 쟁취 투쟁 등 하반기 노정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사업계획을 심의

할 예정이어서 장시간 토론과 논쟁이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논란이

된 서울대병원지부노조의 공공연맹 가맹건은 다른 어떤 안건보다도 중집위원

들 사이에 격론을 예고하고 있다.

23일, 민주노총 상집에서 논의된 서울대병원지부노조 처리건을 심의한 결과

민주노총은 ‘(노조 탈퇴서를 개별적으로 제출토록 한) 보건의료노조 규약 제8조

가입과 탈퇴 조항에 따라 서울대병원지부노조가 보건의료노조에서 집단탈퇴

한 것은 보건의료노조 규약에 위반한 사항이므로 무효’라는 해석을 공식확인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상집결정 내용을 24일 중집회의에서 원안에 올릴 예정

이다.

단위사업장노조 또는 지부가 상급단체를 탈퇴할 경우에는 기존 상급단체의

규약을 따라야 하고, 이를 근거로 관련 논란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게 상집

결정 배경이다. 민주노총 한 임원은 “상집이 확인한 내용을 중집 토론에 붙여

권고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집결정과 발언은 사실상 서울대

병원지부노조의 공공연맹 가입 철회를 권고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24일 중집회의에서는 상집결정과 안건처리 등을 놓고 중집위원들

간 격론은 물론, 결과가 나오더라도 조직 내부에서 심한 후유증이 예상되는

등 한동안 파장이 가라앉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공공연맹 한 임원은 “산별연맹끼리 조직대상이 중복되는 경우는 한두개가

아니”라며 “그런 결정을 중집에서 내릴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해 안건

상정자체를 놓고 초반부터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이 관계자는 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상급단체는 조합원들이 선택할 몫”이라고 말해 민주노총

중재가 결정났던 지난 6월 중집회의처럼 산별노조 집단탈퇴가 무효라는

주장과 조합원들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설 전망이다.

특히 안건이 표결에 붙여져 권고사항이 결정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실행여부

를 놓고 후유증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공연맹 관계자는 “서울대병원지

부노조의 연맹 가입은 연맹 중집회의에서 이미 결정난 것으로 번복할 특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갈등만 확대돼 총연맹 지도부 권위만 훼손되는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지도부의 냉철한 판단을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한 임원은 “민주노조 내에서 철의 규율은 대단히 소중한

것”이라며 “이를 무시한다면 조직구성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강한 의사를

밝혔다. 지난번 중집처럼 중재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방안도 가능성이 적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도부는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조합원들에게 조직혁신을 말하겠냐”며 “조직혁신안이 심의되는 9월 중앙위

이전에 규정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태 기자  tae@labortoday.co.kr 2005-08-23 오후 7:30:22  입력    ⓒ매일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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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또 회의가 있었다.

 

밤 11시 30분이 지나서야 회의는 끝났다. 내가 투덜투덜했다. 아니, 10분만 일찍 끝냈으면 12시 고속버스 막차는 탈 수 있었는데, 지금 끝내면 저더러 어쩌란 말이요?

 

그래도 내심 꿍꿍이는 있었다.

회의가 늦게 끝나서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이 밤을 지내게 된다면

밤 늦게 강남에서 만나고 있을 선배와 친구를 한꺼번에 만나 보도록 하지 뭐.

 

선배...

25년전부터 내 삶의 어느 모퉁이에 불숙 나타난 선배...

기록을 들추어 보니 14년 전에 만나서 밤새 술마셨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지난 번에 속초에서 운전하다가 전화를 받았던 바로 그 선배이다.

내가 존경하는 또다른 인물과 친구로 허심탄회하게 만나는 그 선배이다.

 

그 선배가 밤에 전화를 했다.

저녁에 영호를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올 수 있냐?

회의가 제대로 끝나면 곧바로 대전 갈 것니까 쉽지 않다고

다른 날에 일찌감치 만나자고 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에 영호가 전화를 했다.

올 수 있냐?

글쎄 아직도 회의가 계속되고 있으니까 모르겠다.

와라.

막차를 놓치면 가지.

 

영호...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 같은 해에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가

학교는 짤리고 안산에서 조직활동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그러다가 여기저기에서 활동하다가 93년에 늦깎이로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지금은 의사가 된 친구, 의사로서 노동운동하기는 멋쩍으니까

차라리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활동을 하겠다고 나선 친구.

 

그래서

새벽 1시쯤 선배와 친구를 만났고,

먼데서 택시타고 온 선배의 친구이자 나의 존경하는 동지를 만났고,

여전히 세상이 참 좁기도 한 것이,

선배의 친구와 내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인 것도 모자라서

영호라고 하는 내 친구가 다시 대학교에 가기 전에 함께 일했던 동지가

바로 선배의 친구라고 하는 그 분이시네.

 

-그러니까, 한달 전만 하더라도 서로 모르는 줄로만 알았던

  네 명의 사내가 오늘 알고 보니 서로 서로 오래도록 알던 사이라는 거.

 

20년전쯤, 30년전쯤의 얘기를 마구 하는 선배 앞에 있다가 보니

내 맘도 마냥 어린 날의 기억이나 추억으로 돌아가더구만.

 

그러니 술이 술술 잘도 들어갈 수밖에.

 

같이 집에 가자는 영호의 제안을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정중히 사양하고,

일산에 살고 있는 영호와 선배의 친구는 택시타고 가고 난 다음,

가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선배를 집 앞까지 바래다 준 다음,

 

택시를 타고 뚝섬 사무실로 왔다.

 

어, 이 시간에 전화가 오네, 일단 끝.

 



술은 내공이다.

한 3년간 쉰 적이 있었다. 바쁜 인생사에 무엇하러 그렇게 오랫동안 쉬었냐고
질책할 사람도 있겠지만, 남의 인생사에 끼어들 필요는 없다. 내가 쉬든 말든...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슈..??

그 오랜 휴식의 시작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그렇게 오래 끌고 간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광장에 대한 두려움,,,또다시 겪고 싶지 않은 배신과 좌절, 그리고 삶의 허무함이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세상에는 신의 선물이 있었다는 것을 그 때 나는
우연히 깨달았다. 마치 항상 곁에 있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항상
지켜주는 마누라의 엉덩짝의 고마움을 전혀 모르듯..그렇게 모르고 살던 것 중의
하나가 내 앞에 자동 택배로 배달되어 와 있었다.

그것은 술이었다. 한잔도 아닌 한 병도 아닌 한 궤짝의 무엇이었다. 그것은 한
상자의 소주였다.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고 또 째려보아도, 그것은 내가
매일 끼고 살던 참이슬 진로소주였으며, 그것도 한 박스였다. 열지 않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처럼,,, 나는 그 궤짝을 비워나가는 재미를 누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얼마나 빨리 궤짝을 새것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내기를
걸어 그 재미를 더하는 기교까지 부리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것도 무슨
경지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흐르도록, 나는
배신자들을 용서하지 못했고, 인간신뢰에 대한 절망으로 삶의 허무함을 과장되게
느끼기도 하며, 자칫 그 허망함을 가장 절망적이고 창피한 형태로 보여줄 뻔하기도
했었다. 겨우 그 불을 진정시키고 난 뒤에도 그만큼의 또 오랜 시간동안, 나는
사람이 그리웠다. 아무나,, 사람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나를 버리고 떠난 부하
직원들,,거래처 사람들,,친구들,,,그리고 심지어는 나의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부모 형제까지도......그 미치도록 그리운 두 손 두 발을 가진,, 내게 속삭여 줄
수 있는 세치 혀를 지닌 동물이 너무도 그리웠다. 내가 생각하는 의미의 삶이
그리웠다. 배신하지 않고, 나를 억울한 절망에 빠뜨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그리웠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몇몇 옆에 있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것을 공포에 질려 막으려
했고, 나와 성격이 어울리든 안 어울리든,, 무조건 오는 사람이 좋았고, 그들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이 인간이 하의 사람이든,,
전과자이든,,,천하의 개망나니이든..... 나는 구분할 힘을 잃고 있었다.
어쨋거나, 나는 Leaving Las Vegas,,,,Leaving Seou1,,, Leaving my 1over를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니......

하지만 그 한 궤짝의 진로소주를 즐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인생은 바뀌기
시작할수 있었다.

그래,, 바깥세상이 아니라, 내 속에서 나의 절망을 찾아내고, 내 속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본능적 느낌과 경험으로, 허무함의 정체를 파악해 낼 수 있는 사유의
능력을 극대화시키기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한 궤짝의 참이슬,
진로소주의 행렬이 시작된 날로부터였다.

오로지 술만이 그런 허황된 논리의 비약을 못 본 척 눈감도록,,나 자신의 잘난
이성을 마비시켜 줄 수 있었다. 그 이성을 완전히 까뭉개지 않고는 내 속의
운명과, 내속의 삶의 본능적 욕구와,,,,잊혀져 가는 내 사랑하는 아들의 얼굴
을,,, 내 맘속에 다시 그 기억의 불씨를 지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정상적인
사유의 메커니즘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던, 그 사유의 괴리, 견강부회,
엉뚱한 비약,,,

그러나 본능적으로 삼아남는 쪽으로 치열하면서도 끈질기게 짜깁기를 해 나가는
그 힘은 누가 무어라 해도 그 한 궤짝씩 내 앞에 배달되어 오던 참이슬 진로
소주의 힘이었고,, 나는 그것을 창피해 하지 않고,,알코올중독이라는 누명을
억울해 하지도 않고,, 오로지 내 삶의 재건을 위해서 철저히 그것을 이용하는
현명함을 익힐 수 있었다.

한병, 또 한 병, 그리고 또 한 병...이런 방식이었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그 어려운 일을,,,나는 한 궤짝의 소주와 함께...끝없이 추락해 보자는,,그래
어디까지 떨어지나 한 번 해 보자는,,,
감히 니가 내 건강을 어떻게 할 것이며,,
니가 퀭하게 두 눈만 살아서 반짝 반짝 빛나는,,,24시간 술취한 이 광기어린
인간을어떻게 할 수 있는 지,,,,,어디 한 번 보자는.....
그 말도 안되는 무모함으로,,,나는 겨우 이겨낼 수가 있었다..
그 궤짝 단위의 소주를 배달받기 시작하면서.......

이제 나는 그 내공으로 먹고 산다...
지하실의 조그마하고 곰팡내나는 지저분한 방에 쥐새끼처럼 숨어서,,,
그 궤짝들을 비워나가며,,,,그 빈 병의 숫자를 세어가며,,,,그 빈 병의 정연한
줄서기가 혹시나 잘못되랴 눈자로 재고 또 재고,,,,앞으로 나란히...좌우로
정렬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치며 의식의 가닥을 놓지 않으려 버티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이틀이 지나고,,,1달이,,,2달이,,,,1년이,,,,2년이,,,,
3년이 흐른 후 나는 그것이 내공임을 깨달았다..

오랜 세월을 그와 함께 하며,, 도디어 훌쩍 40인치를 넘어버린 나의 똥배의 힘으로
나는 이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 지겨운 날들동안 내 옆에 있었던 그 사랑하는
진로소주의 힘으로,,비록 몸매는 볼품없이 변했지만,, 나는 이제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기교를 익히는 기막힌 행운을 가지게 되었다. 그 새지 않는 기나긴 밤들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기교들을 나는 배웠다.. 망상이 공상이 되고,,공상이
꿈이 되어서,,그 꿈이 내 눈앞에서 하나 하나 펼쳐지게 할 수 있는 기교를 배웠다...
절망과 배신감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용서와 두터운 인생의 경험창고가 되어버리게
할 수 있는 기교를 부릴 수 있게,,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자기 세뇌와 자기
최면의 힘이 무엇보다 강력하게 빛을 발할 수 있는 때를 어떻게 스스로 만드는지를
배웠다..

절망을,,이길 자신없어 보였던 외로움을,,,어떻게 내 노리개로 만들어,,내가
원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가지고 놀 수 있는가를 배웠다.. 일성, 이성,
삼성,,,,,,,구성,,,,,그리고 최고의 경지인 십이성의 경지에 주화입마 없이 오를
수 있는 호흡조절법을 나는 그에게서 배웠다. 그 날,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로
그 날이.,, 그 날이 오기 전까지의 나날들도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들일 수 있는지를,
아니 오히려 그 날 이전의 시간들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음을 그에게서 배웠다

잠이 깨면 바로 바꾸러 가야 했던 그 궤짝들을 아쉬워하며,,아침부터 시작할 수
있는 구실을 주었던 그 궤짝들에게서,,나는 절망이 사람을 갉아먹지 못하게,,,
외로움과 허무함이 사람을 썩게 하지 못하게,,,,나는 스스로를 그날이 올 때까지
방부처리하고 동면시키는 방법을 배웠다..1병으로는,,,2병으로는,,10병으로는
불가능했던 일을 나는 어느 날 내 눈앞에 우연히 자동택배로 배달되어온 진로소주
한 궤짝에게서 발견했으며,,,그 먹이를 놓치는 어설픈 맹수가 되는 불운은 피해갈
수 있었다. 차라리,,도시가스처럼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계량기 소주였으면
좀 더 나은 무공을 익힐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나는 그 한 궤짝의 진로소주
정도의 무공비급만으로도 내 남은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었으며,,
그 경지에서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내공을 지금도 꾸준히 연마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그 내공의 힘으로 하루,,이틀,,1달,,,,1년,,,이제 2년째 살고 있다.


(2001년 05월 06일 13시 08분 57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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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살, 그리고 악몽

1.

월요일은 늘 그런 편이지만 어제는 더욱 그랬다.

 

KTX가 연착을 해서 8시 15분쯤 사무실에 도착했고, 8시 30분으로 예정된 회의는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임원들 덕에 20분쯤 늦게 시작했다. 그나마 임원들끼리 사소한 이유로 언성이 높아져서 시작하자마자 10분쯤 정회했다.

 

그리고는 저녁 9시 30분까지, 밥먹는 시간과 화장실가는 시간을 빼고는 정신없이 바빴다. 바쁘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지만, 십수년전에 바쁜 물방울이 한가한 물방울보다는 보통의 물방울들을 잘 챙기더라는 옛 얘기를 들은 이후로, 나만 바쁜 것도 아니요 바쁜 것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을 늘 챙기고 있었으므로, 바쁜 것은 정말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도 10시 반에 서울역에서 대전역까지 가는 막차는 탈 줄로 알았다. 10시 반쯤 모모 본부장하고 새로운 동지를 채용하는 문제로 주거니 받거니 고민을 털어놓고 집행부의 입장을 설명하기 전까지는.

 

기차는 놓쳤고, 12시 고속버스가 막차이다. 대전에서는, 9시부터 한 동지를 보내는 환송회가 벌어지고 있었으나, 말로 때웠다.

 

택시를 타고 강남터미널로, 강남터미널에서 대전터미널로, 대전터미널에서 대전역으로, 대전역에 서 있던 내 차를 몰고 집으로, 가는 길에 환송회를 파하고 귀가하는 동지들을 만났다. 악수하고, 덕담하고, 다음 약속을 기약없이 잡고...

 

2.

지난 주에 컴퓨터의 메인보드가 맛이 갔다.

 

메인보드를 갈려다 보니 하드를 그냥 맡기기도 불안하다. 얼마나 많은 개인정보가 하드디스크에 담겨 있느냔 말이다. 시간이 돈이다. 차라리 내가 하드디스크를 따로 관리하기로 했다.

 

즐겨찾기부터 시작해서, 식구들 넷이 저마다 익숙해진 사이트들을 챙기는 것이 만만치도 않고, 더군다나 필요한 프로그램을 일일이 설치하는 것도 일은 일이다. 새벽 3시쯤 끝났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신기하기도 하지, 내 과거의 모든 것들을 세세하게 기억해내는 꿈을 꾸었다. 꿈이라고 여겼던 사건조차도 기실 꿈에 지나지 않음을 비로소 알았다. 그런데, 꿈 속에서 사람들은, 심지어 나의 아내조차도, 나를 정신병자로 취급했다.

 

-아니, 이 복잡한 세상에서 과거 일을 일일이 기억하는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

 

라고 그들은 한결같이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기억하는 걸, 기억나는 걸, 나더러 어쩌라고?

 

꿈 속에서, 나는 참 대단하고 신기하다. 그대가 꿈꾸고 있는 것을, 나는 생시에 이루더라. 그런데 그게 정신차리고 보니 꿈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단 말이지-.

 

왜 악몽이라고 했냐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싸잡아서 악몽이라고 하는가 보지,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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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회의, 수련회, 밤샘의 술, 회의, 수련회

열흘동안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열흘 동안

회의는 회의로 이어졌고

수련회는 하나로 끝나지 않았으며

그 늦은 밤과 새벽 사이에는

밤샘의 운전이나 음주나 토론이 익숙하게 되풀이되었지.

 

그 반복되는 시간들 틈새로

반가운 동지들(몰롯, 진똘, 바두기, 날세동, 바다소녀, 나무들...)과의

짧거나 긴 만남들이 끼어들어서 힘을 주기도 했고.

 

뙤약볕 아래 맨살이 타기도 했고

간헐적으로 비 또는 폭우가 반갑고 무서웠다.

 

습관적인 반성의 시간은 허락되지만

진지한 실천은 휙휙 지나치는 창밖의 풍경마냥

가슴과 머리의 핏줄이나 신경망을 벗어나지 못하고

내 몸의 근육세포들이 일제히 긴장하는 시간은 아예 사라졌다.

 

얼핏 보아 바쁘기는 하되

게으름이 극치에 다다랐다고나 할까

...죄짓는 인생-.-

 

오늘밤도 폭우 속에서

어떤 강당에 스스로 갇혀 기꺼이 토론에 참가하고 있는데

늦은 밤, 가문비가 보낸 듯, 문자 메시지 하나 왔다.

 

"천둥이 심하게 치니까 돌아다니지 마

 죄지은 사람은 죽는대

 엄마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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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산오리님의 [삶, 그리고 죽음....] 에 관련된 글.

그러니까 7월 30일이었구나,

가족들과 함께 강릉으로 가는 막히는 길위에 있었는데

과기노조 이광오 동지가 전화를 했다.

 

시설안전기술공단 최현 동지가 교통사고로 죽었단다.

교회 갔다가 연구소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자유로에서

아마도 졸음운전을 한 것 같다고, 현장에서 즉사했다고.

 

아, 최현 동지, 파업 때 열심해 했던...?

예, 위원장님도 잘 아실걸요, 문선대도 하고, 얼굴 갸름하고

빼빼하게 생긴...

 

이름은 바로 알아들었는데

얼굴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런 낭패가.

 

2003년 봄과 여름, 94일동안 전면파업을 했던

시설안전기술공단 조합원 동지들 백 이십여명은

이름이나 얼굴은 어지간히 익히고 있었는데

최현 동지의 얼굴이 곧바로 떠오르지 않다니...

 

여러 동지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긴 했는데

그 중에서 최현 동지라고 생각되는 얼굴은 없다.

 

내 몫의 조문까지 이 동지에게 부탁하고

강릉에 도착한 밤 12시에 다시 이 동지의 전화를 받았다.

 

-스키드 마크도 없이, 중앙분리대를 그대로 들이받았다네요.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 사고냐...)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답니다.

(이 아이들은 또 어찌할 것인가...)

-2003년 파업 때 체결한 단협에

업무상 재해와 유족보상에 관한 것이 잘 되어 있는 편이고,

이사장도 오고, 사용자도 적극적으로 사고 수습에 나서고 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대전 도착했는데 잠이 안올것 같아서 소주나 마시러 왔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나도 한잔 할텐데...)

 

그리고 이틀 후쯤이었나,

강릉에서 속초로 가는, 짜증나게 막히는 길 위에서

불현듯 최현 동지를 떠올렸다.

여러 동지들의 얼굴이 나란히 우르르 나타났다.

그 얼굴들 뒤에서 미남형의 매끈한 얼굴 하나가

처음으로 불쑥 나타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아아, 그리고는 다시 사라졌다.

다른 동지들의 얼굴이 그 앞에서 어른거린다.

분명히 그 얼굴이 최현 동지의 얼굴인 것 같은데,

왜 다시 안나타나는 거지?

눈을 감고 머리를 굴리며 끙끙거려도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얼굴이 다시 떠오르지 않는다.

 

참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 다음날에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그랬다.

떼지어 나타난 얼굴 뒤로 한 얼굴이 나타나고 사라지기를 여러 날-

그러다가 지난 주말부터는

다른 모든 얼굴들이 다 사라지고는

오직 하나의 얼굴만 나타난다.

비로소 내가 떠올리는 그 얼굴이 최현 동지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제는 바빠서 하루가 그냥 지났고,

오늘 아침에 시설안전기술공단 박 지부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최현 동지의 사진 하나 보내달라고 했다.

유족보상 등등 사고 후에도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만만치 않을테니

막히는 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자고 했다.

(나는 연구소에서 두 명의 노조간부를 각각 교통사고로 잃었고,

유족보상을 둘러싸고 사용자와 싸워서 성공한 적이 있다

한번은 1심 재판까지 갔었지만...)

 

지금, 지부에서 최현 동지의 사진이 왔다.

지난 열흘 가까이,

나의 뇌리에서 날이 갈수록 더욱 선명한 모습으로

떠올랐던 바로 그 얼굴이다.

처음부터 기억해내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라도,

당분간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될듯하다.

 

고 최현 동지의 명복을 빈다.

 




1. (2003년 06월 18일 23시 36분 48초)

 

주말에 고민하다가 월요일 아침에 대강 정리해서
건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 전달했던 얘기 중에서,
공단 파업의 특징에 대한 부분...

= 공공기관(정부출연기관)으로서는 드물게 장기파업
→ 6월 16일 현재 64일 경과.

= 단체교섭의 생산성 극히 낮음
→ 파업 직전까지 합의사항 전혀 없음.
→ 파업 60일 임박해서 13개 조항 합의.

= 높은 조직률과 높은 파업 참가율
→ 파업 이후 조합원 증가
(노조설립시 102명 파업돌입시 122명 현재 128명).
→ 책임기술자 대부분이 조합원.
장기파업에도 불구하고 파업이탈자는 단 1명.

= 노조의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투쟁
→ 장기파업으로는 드물게 일체의 점거, 폭력, 파괴행위 없음.

= 사용자의 공세적 요구
: 사용자만의 일방적 요구 20여개 조항.
: 규약에 정할 ‘조합원 범위’를 단체교섭에서 요구,
: 인사(제도)에 관한 사항 전면 배제,
: 단체협약 내용을 형식과 내용이 전혀 다른 '노사협의회'로 이관 주장 등

= 사용자의 불법적 직장폐쇄
: 공격적 성격, 노조 파괴 의도(파업에 참가하지 않는 비조합원 선별 출입 허용)

이렇게 줄줄이 떠들어대는데,
장관의 표정은 태평스럽고 한가하기만 했다.
화물연대 투쟁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던 그 장관이 맞기는 맞나?
허.무.한.면.담.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을 징조가 여실하더라.
믿을 것은 역시 조합원들 뿐이라.
초심으로 돌아가서 싸우자고 역설하는 지부장의 연설에
고개를 끄덕이던 동지들이 고맙다.

 

2. (2003년 06월 18일 23시 44분 24초)

 

오늘 하루 겪은 일을 몇 줄 적는 것으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대강은 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전면파업 66일차,
새벽에 건장한 청년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사설경비업체에서 불러들인,
우리는 쉽게 '용역깡패'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날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다가 경찰의 호응이 없자
이사장이 택한 방법이 바로 사설경호원 고용인 셈입니다.
대여섯명의 어깨들이 오늘부터 현관을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합원들의 화장실 출입까지 막았습니다.
조합원들은 순순히 물러섰습니다.
물리적 충돌을 피하라는 노조의 방침이 확고했으니까요.
직장폐쇄라는 이름으로(그것도 법리적으로는 말도 안되는 부분 직장폐쇄!)
노조의 파업권은 형편없이 제약되고 있습니다.
공단의 영토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일체의 대화는 없다, 그래서 노동부(의정부노동사무소)의
사적중재마저 사용자는 거부했습니다.
노조는 진작부터 동의했던 일입니다.
그동안 습관적으로 공단의 1층 화장실을 이용했던
조합원들이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화장실을 들락거렸다가
무더기로 경찰에 고발당했습니다.
오늘 현재 출석요구서가 발부된 조합원이
무려 33명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본부의 간부 3명을 빼면
128명 중 30명이 고발당한 셈입니다.
그리고도 오늘 추가로 고발을 했다고 하니
얼마나 고발자가 늘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일산경찰서 담당자가 고발 내용을 보고 피식 웃기만 했다고 하더군요.

공단의 이사장은 그러고도 성이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이틀 후에는 40-50명의 사설경호원들을 고용하여
공단 앞마당에서 노조 사무실 대용으로 쓰고 있는 천막을 비롯한
각종 시설물들을 일제히 철거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왜 당장 철거하지 않구선? 했더니
내일 단병호 위원장께서 노조를 방문한다고
하루를 미뤘다고 합니다.
그런 소식을 전하는 사설경비업체의 팀장급 어깨가 하는 말이
"조합원들이 살짝만 부딪혀 와도 자기들은 뒤로 자빠진다,
그리고 입원하면 그만이다, 회사에서 월급도 나오고,
합의금도 따로 받고, 일거양득 아니냐" 그랬답니다.
어쩝니까, 이번 금요일, 그러니까 모레가 되면
조합원과 사설경호원들이 한바탕 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칫 크게 충돌이라도 하게 되면,
노조가 불법파업을 해서 그랬다고 하겠지요.
그리고 그게 빌미가 되어 경찰이 쉽게 쳐들어올 수도 있겠지요.

대수롭지 않게 느끼실 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노사문제의 자율적 해결이 이리도 어렵습니다.
노조가 직장폐쇄 이후 물리적 충돌을 애써 자제하고 있는데도
사용자가 사설경호원들을 동원하여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그게 빌미가 되어 또 고발되고 경찰이 투입되고
이런 것이 빤히 보이는데,
그것을 예방하지 않고, 적어도 그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노조에게 불법 행위 하지 마라, 빌미를 주지 말라,
하고 얘기하는 이른바 제3자들의 충고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얘기란 말입니까.

내일 저는 우리 노동조합의 전임자들과
민주노총의 고양지구협의회 동지들에게
용역깡패들의 난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20일(금요일) 공단으로 총집결하자고 호소해야 합니다.
아무도 몰래 고향의 동생들을 불러서
이사장을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라고 얘기하는
한 조합원의 얘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3. (2003년 06월 21일 06시 14분 43초)

 

새벽 4시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가까스로 어지러운 꿈 꾸며 잠에 빠져들었는데
조금 아까 5시 40분에 전화가 왔다.
사오십명의 철거 전문인 듯한 용역깡패들이 와서
천막에서 잠자고 있던 우리 수석부위원장을 포함한
5명의 간부들을 집단적으로 짓밟았고,
천막과 현수막들은 모두 망가졌고,
현관을 경비 중이던 또다른 용역들은
그 광경에 질려서 도망갔고
그 중에서 일부가 폭력현장 목격자 진술을 하겠다고 나섰다고 하고
그래서 일단 우리 간부들은 대화동 파출소로 가서
폭행당한 진술서를 쓰는 중이라고 했다.
무조건 사무실로 달려왔다.
우선은
동지들 모아 일산으로 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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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삶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만이냐,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다시 읽다가, 눈에 걸린 대목이다. 하필이면 꼭 이 대목이 걸렸을까 하다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 겨우 세상에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지 않은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누가 애써 알고자 하지 않더라도 내 삶이 더하거나 뺄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졌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누군가 아무리 알고자 애쓰더라도 내 삶의 어떤 부분은 죽고 나서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방치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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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여름이 갈수록 더 덥다며 아우성이다. 근거가 있다. 어떤 보고서에서는 지난 100년간 한반도의 기온이 2℃ 정도 올랐다며, 앞으로 100년간 평균 기온이 5~6℃ 정도 더 오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부산은 봄이 8일, 여름이 81일 늘어나고, 가을은 4일 줄며 겨울은 아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후끈 달아오르는 여름, 도시에는 인공의 섬이 형성된다. 열섬이다. 열섬현상은 도심 기온이 주변 다른 지역보다 2~5℃ 가량 높아지는 것이다. 기온이 같은 지점을 등온선으로 연결해 온도 분포 곡선을 그리면 고온 지역이 섬의 등고선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공장 굴뚝연기, 자동차 배기가스, 에어컨과 난방기 배출열 등 각종 인공열과 그로 인한 대기 오염, 열용량이 큰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같은 각종 인공시설물, 녹지면적의 감소 등을 열섬의 주된 발생원인으로 꼽는다.

열섬은 인간환경과 생태계에 다양한 형태로 악영향을 준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30℃ 이상 무더위가 닥치면 노인 사망률이 급증하는데, 서울의 기온이 30~32℃일 때 사망자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해 36℃가 되면 30℃일 때보다 사망률이 50% 증가한다고 한다. 즉, 열섬으로 인한 기온상승과 오염물질 증가는 노약자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전문가들은 열섬현상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차량운전 제한, 각종 에너지원 사용제한, 도시 녹지훼손 금지와 녹지공간 확충 등 다각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한다. (건축기상학에서는 건물 한 채에 약 2.4배의 녹지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서울은 전체 면적의 49%가 콘크리트로 덮여있다) 얼핏, 녹지를 늘리고 도시의 바람길을 열어 열과 공기의 순환이 잘 되게 하면 일반 열섬현상은 어느 정도 극복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대한민국의 열섬은 다르다. 그것은 한 지역과 다른 지역 사이에 발생하는 물리적인 온도 차이를 뛰어넘는 사회적인 현상이다. 계급과 계급, 계층과 계층 사이에서 발생하는 큰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현상은 이미 대단히 악성 열섬이다. 땅부자 상위 5%(1%)가 개인소유 토지의 82.7%(51.5%)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정부 통계자료 2004년말 기준), 상위 20%가 부의 80%를 차지하는 이른바 ‘20대 80의 사회’에서, 노동자 민중에게는 생존권의 벼랑 자체인 열섬현상은 교육, 의료, 주택, 세금 등 공공서비스의 영역에서 다양하고 기형적인 모습으로 더욱 악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지구온난화와는 무관하게 노동자 민중은 겨울에는 더 지독하게 춥고 여름에는 더 후끈하게 찌는 열섬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배아복제, 각종 전자감시, 인터넷 실명제 따위, 과학기술의 발달을 이용하여 도리어 인공의 섬들을 넓히려고 하는 잇따른 시도 앞에, 소통과 연대와 투쟁의 거점으로 우뚝 솟아나는 ‘자연산’ 섬 하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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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또는 재택근무

월요일 아침 회의에 빠진 건 처음인가 보다.

습관이 된 듯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가 거리에 비오는 것 내다보다가

내가 휴가 중이라는 것도 다시 확인하고서 잠이 들었다.

 

하루 종일 전화가 줄을 이었다.

딱히 휴가라고 세상에 방송을 한 것도 아니니까

업무상 전화가 평소처럼 오는 것이 이상한 일도 아니지.

휴가라던데 하며 먼저 아는체 하는 동지가 아니라면

그냥 전화받고 다시 전화하고 그러기를 하루 종일 반복했다.

 

토요일에 강릉에 올 때 아내가 그랬지.

아예 전화기는 집에 두고 자기 전화기 줄테니까

급한 용무는 그것으로 보는 게 휴가답게 보내지 않겠냐고.

내가 즉각 반발했다.

이 판에 휴가가는 것도 미안하고 불편한데

전화기마저 꺼놓고 사라지면 어떡하냐?

그래, 전화를 갖고 온 것은 잘한 일인듯 싶다.

삐삐와 휴대전화에 매달린 일상이 벌써 12년째이니까

그것을 끊고 살면 도리어 금단현상에 시달릴지도 몰라.^^

 

아이들은 날이 흐리니까 바다보다는 워터피아에 가자고 했다.

바닷물 맛은 어제 봤다 이거지-

미적미적하다가 점심때나 되어서 두패로 갈라서 출발했는데

강릉에서 속초가는 길이 장난아니게 막힌다.

속초에 가면 꼭 들리는 냉면집이 있는데 

아이들이 냉면을 싫어해서 그냥 지나쳐 워터피아로 갔다가

만원사례라고 퇴장손님이 있을 때 입장손님을 받는다고 해서

속초로 되돌아 나오지는 못하고 두부와 황태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5시가 지나서 다시 워터피아로 갔지.

어른들로 짜여진 다른 한패는

설악동에 가서 가벼운 등산을 하고 계곡에서 노닌다는데

아이들 우르르 저녁시간표로 끊어서 들여보내고

나와 아내는 그냥 속초로 나와서 해수찜질방에서 여유를 부렸다.

왜? 너무 비싸기도 하고 붐비는 실내가 답답도 해서...

 

꼭 속초 냉면이 먹고 싶었다.

아내랑 찜질방을 서둘러 나와서 이조면옥으로 갔더니 9시.

육수가 떨어져서 더 이상 못판다네, 쩝...

그 옆집 한양면옥에 갔더니 오늘 주문은 그만 받는다네, 쩝...쩝...

오기가 발동하여

더 맛있는 냉면집을 찾아서 속초시내를 뒤진다.

이조면옥/한양면옥(한영인가?) 말고는 딱히 아는데도 없는 처지라서

그냥 옛날에 실향민들이 모여 살았다는 곳을 어림잡아 헤매는데

도중에 몇군데 냉면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여러 차례,

(분위기 보면 그래도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눈치 챔)

포기하고 나오려다 어둠 속에서 먼발치에 허름한 간판을 하나 발견,

다시 불법유턴을 해서 꼬불꼬불 밤길을 되돌아 갔다.

 

단천식당, 3대째 함흥냉면 전문점이란다.

나이드신 할머니 두 분이 주방을 지키는 것 하며

꼬질꼬질하고 허름한 손님방들 하며

낡고 작고 노란 양은 주전자하며

분위기가 딱 요기다 싶어서 들어가는데

아, 여기도 오늘 영업은 끝이란다.

두말않고 돌아서 나오는데

아내가 무어라 주고받더니 다시 들어오란다.

 

흐유, 이렇게 해서 간신히

가자미회냉면 두 그릇을 받아들었다.

어렵게 어렵게 찾은데다가 배도 고팠고 냉면이 간절했으니까

얼마나 맛있겠나. 양념 흔적조차 남김없이 다 먹어 치웠지롱-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만 아니었으면

아바이순대나 오징어순대도 맛 품평을 좀 하고 나올 걸 싶었다.

 

10시에 나오기로 한 아이들과는

10시 반이 지나서 만날 수 있었다.

강릉으로 돌아오는 밤길은 상쾌하게 뚫려 있었고,

힐끗힐끗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밤바다의 까만 빛이 마음에 와 닿더라.

강물은 흘러갑니다아아 제3한강교 밑을

바다로 쉬지 않고 바다로 흘러만 갑니다. 왜 그 노래가 떠올랐는지

혼자서 흥얼거리며 강릉으로 왔다.

 

장모와 처형이 준비한 감자전에 맥주 한잔 마시고

딱 1시간만 피씨방에 있겠다고 하고 이러고 있다.

 

참, 강릉 오는 길에 진보넷 이모모 대표의 전화를 받았는데

불쑥 다른 사람을 바꾸어 주었다.

그래, 니 성우가~? 경상도 진한 억양에 나는 어, 돌쇠 아이가? 했더니

돌쇠라는 친구가 아니라 임모라는 선배였다.

20년전쯤에는 열심히 함께 술마셨던, 그러나 만난지 너무 오래된 선배가

친한 친구 이대표(난 그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를 초대해서 즐겁게 술을 마시다가

우연히 내 얘기가 나왔다는 거-

이따금 겪는 일이고, 그래서 세상 좁다고 하는 거지만, 그 형의 목소리를

얼마만인지 다시 듣게 된 것은 휴가보다 기분좋은 일이다.

어떻게 살았느냐 어떻게 사느냐

이 친구 저 동기 소식은 알고 있느냐,

운전하면서 열심히 떠들었더니 아내가 옆에서 따끔하게 한마디

-통화 계속 할거면 차 세워욧.

 

8월에

이대표와 그 형과 한잔 하기로 했다.

역시 사람 만날 일정표를 다시 정리해야겠다.

공식적인 휴가 첫날의 알맹이없는 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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