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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4/11/02
    오늘 서울 신촌 세브란스 길을 홀로 걸어보며....
    간장 오타맨...
  2. 2004/10/28
    날마다 배움이 큰 하루에 감사하며....
    간장 오타맨...
  3. 2004/10/28
    오산 5일 장터
    간장 오타맨...
  4. 2004/10/25
    나는 참 행복한 놈이다.
    간장 오타맨...
  5. 2004/10/15
    작업장 풍경(6)
    간장 오타맨...

오늘 유인물 한장을 달랬다.

  • 등록일
    2004/11/12 22:01
  • 수정일
    2004/11/12 22:01

오늘 공무원노조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모습을 퇴근 길에 보았다.

그러나 추운날씨인지 아니면 언론에서 호도된 보도탓인지 아무도 공무원노조 유인물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 답답하구나....

나는 그 길을 지나가면서 공무원에 다가가 유인물을 달라 손을 내밀었다.

내 모습을 아래 위로 훌터 보더니 유인물을 내준다.

아무말 없이... 나도 아무말 없이 뒤돌아서 그 유인물을 한손에 들고 가면서 읽었다.

 

유인물에 내용보다는 이 추운날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는 공무원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아 저모습... 나도 유인물 나눠줄때 저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난 웬만한 유인물 명함 나눠주는 것을 닥치는 데로 받는다.

아마 동업자의 의식에서 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인물을 나눠줄떄 내용이야 어쟀든 내민손 부끄럽지 않게 받아주는 것도 예의 아니 그 추운데 고생하거나 아니면 삶을 위해 필연적으로 노동해야할 대상에 대한 일상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오늘 유인물의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그 공무원이 눈에 아른거린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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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겨울 비가 모처럼 여유를 가져다 주었다.

  • 등록일
    2004/11/11 09:55
  • 수정일
    2004/11/11 09:55

아침 용역사무소를 나갔다가 보슬비가 내려 일거리가 없는 관계로 오늘 하루 공쳤다.

비가 내리는 날... S.E.N.S 의 투명한 음악 첫번째 테마음악인 "사람과 시간과 바람 가운데"와 열두번째 테마음악 "heaven's song"을 듣고 있다.

 

보슬비가 내리는 이 아침 캄캄한 공간에서 노래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잔잔해지는게 참 평한하다. 모처럼 즐기는 나만의 시간이다.



 

아침 늘 일어나면 부산하게 용역사무실을 나가기 위해 헐레벌떡 화장실로 달려가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양치한 후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가는 그런 일상만을 겪다 아침에 여유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얼마만 인가?

 

내가 듣고 싶은 음악도 맘껏 들어놓고 흐른 겨울하늘을 바라보며 아 내가 살아있고, 2004년 겪였던 또다른 시작에 한복판에 홀로서 있음을 직시한다. 

 

이 아침 조용히 나에게 물어본다.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무엇때문에 지금의 길을 걷고 있는지를... 조용히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난 삶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길에 대해서 해답을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내 인생 조용히 다스려보려는 오만을 떨쳐버리기 위함이다. 세상을 조금 알고 있었다고 자만하였던 나를 책망해 본다. 지금 정작 나를 돌아보고 노동을 하면서 난 알맹이 하나 없는 허상만을 쫓아서 살아왔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였지만 이 열심히라는 것은 나만의 자만이었다.

 

참 부족한 내가 욕심과 허영심에 사로잡혀 살아왔음을 하루하루 지금 하는 일에서 느끼고 배우고 있다.

 

부족한 내가 앞으로 일을 걱정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나에게 주어질 내일이라는 미래에 충실하기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다짐 또한 해본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이 다짐이 공염불로 흐르지 않을까? 약간의 두려움은 있지만.... 난 더 이상 이제 혼자가 아님이 반갑다.

 

외로웠고, 누군가의 손이 절실했던 나에게 그 외로움과 누군가의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는 오산에 내려왔기 때문이다. 말없이 묵묵히 들어주고 배려와 나눔으로 넘쳐흐르는 곳... 늘 그렇지는 않겠지만 내 삶에 충실하다면 그 배려와 나눔에 나 또한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아침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아 정말 흐린 겨울하늘... 여유를 가져보며... 나에 대해 또한번의 지껄임을 해보았다. 이제 살면서 나를 되돌아 볼 시간을 많이 갖고자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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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등록일
    2004/11/03 08:02
  • 수정일
    2004/11/03 08:02

내 길은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

늘 단체에서 조직된 공간에서 안주하며 살아왔던 터라 내 길을 발견할 길이 없었다.

늘 주어진 상황과 일상 활동이 되어버린 일들을 처리하는 실무적인 인간이 되어버렸었다.

그 일을 훌훌 털어버리고 나온 지금 홀가분하다.

잠시 무엇을 할지 몰라 방황도 해보았고 그 방황의 늪에서 다른 일을 찾아 오산까지 내려오게 되었다.(정확히 말해 운좋게 오산에 내려와 이 곳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무지 고맙게 생각한다. 내가 뭐 할 줄아는게 있어야 써먹을 텐데... 그 써 먹을 것도 없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워야 할 나를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무심코 내려왔던 오산행..... 지금 몇달 지나지 않았지만 내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체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지 않고, 몇몇 단위노조와 지역단체가 있는 곳....

정확히 말해 시민단체의 수도 그리 많지 않고 민주노동당, 몇몇 지역에 명백을 이어온 시민단체와 조직을 정비중인 공무원, 케리어 엘지 노동조합, 전교조, 환원 CC 등 만이 조직된 노동자로 포진되어 있는 공간이다.



 

작은 도시... 그러나 많은 것들이 새롭게 시작될 수 있는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잡히지는 않지만 만들어 가야겠다. 

단체생활은 주어진 상황과 그 단체의 성격에 따라 늘 벌어지는 사안에 따른 회의와 활동들이 분주하고 일상은 짜여진 프로그램으로 늘 여유없이 분주히 움직여야 한다. 이 생활에서 자신의 방향성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늘 진행되는 일과 활동에 녹초가 되어버리거나 아니면 일상의 흐름에 순종하며 그냥 하루하루를 무미건조하게 보내야하는 순간의 연속....

 

사업에 치이고 활동에 조이는 그런 짜여진 삶을 벗어나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전과 다르게 나를 돌아볼 기회가 많다. 땀의 대가가 무엇인지 노동이 무엇인지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리고 배려와 나눔에 대해 조금씩은 배워나가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치고 있다. 

 

땀의 의미와 노동.... 사회과학서적에서 찾아보기 힘든 단어이다. 직접 일일이 작업을 하면서 체득해야하고 일을 하면서 자연스레 육체에서 흘러내리는 땀은 노동의 총체성이다. 노동을 이야기하기 이전 땀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노동과 학습이 공존하였을 그 당시 노동자들의 현장활동.... 아마도 80년대 초반 위장취업을 하고 공장생활을 하였던 그분들은 고된 노동과 조직된 삶을 살아가면서 노동자 일상을 느끼며 스스로 활동을 지향하는 이로 단련시켰을 것이라 미리  짐작만 해본다.

 

이전 마냥 운동을 하고 싶었고 잘 조직된 단체에 들어가 활동하는 것이 늘 부러움이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참 어릴적 생각이었음에 부끄러움이 든다. 

활동은 조직하고 투쟁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음을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조금 알것 같다. 현장이 있고 만남이 있고 어울림이 있고 투쟁이 공존하는 공간... 지금은 많은 곳이 사라져... 활동가와 활동가들만의 공간으로 치닫고 있는 무수한 집회들... 대중을 조직하여야 한다는 고민이 현재까지 이어져 오지만 용이하지 않는 현실이다.

 

이전 치열한 80녀대 선배들이 세웠고 지켜왔던 공간에서 90년대 우리는 많이 벗어나 있고 지금도 그 공간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고 무엇이 그 치열한 선배들을 떠나게 했는가? 쉽게 이야기 하기엔 너무나 급박했던 90년대... 서정이 넘쳐흐르는 90년대... 무엇이 그토록 서글프게 하였는지 무엇이 그토록 모색하게 하였는지 무엇이 그토록 암흑으로 점철시켰는지... 많은 이들이 새롭게 조직을 만들었고, 조직이 해산되고, 새로운 단체들이 형성되었던 시기.... 그 길에서 많은 시민단체들의 형성되었던 시기....

그러나 90년대 노동운동은 많은 발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자산들을 잃어버렸다. 현장성의 상실.... 93년 전노대를 거치고, 94년 민주노총이 출범, 대산별 소산별이라는 논의가 진행되며 산별노조 건설이 주요한 수단이었고 97년 금속3사 결단으로 출범한 금속연맹... 현장성 강화의 깃발이 나부끼었지만 많은 노동조합의 현장성 깃발은 80년대 90년대를 거치면서 많이 사글어 들었다. 

 

지금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진영에서 주요한 투쟁의 화두는 너무많아 열거하기 힘들지만. 이 투쟁을 지지와 연대하기 위한 노동조합 단결력은 많이 상실되었다. 현장조직이 그나마 고전분투하지만 이전에 비해 현장조직과 현장 분위기는 많이 후퇴하였다.  배달호 열사의 유서에서 발견된 글이 그 단적예가 아니겠는가? 현장에 나가도 재미가 없다. 신명이 사라진지 오래이며, 노동자들의 문화공동체는 그 명맥만 유지될 뿐 되려 시대가 발전하여 여가를 생활을 위한 친목모임이 되려 많이 형성되고 운영이 잘되지만 이 공간에서 활동가들의 결합과 결속은 용이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누구에 의해 노동운동이 지탱되고 있는지는 다들 알 것이다. 장기투쟁사업장. 비정규/이주/여성/장애인 노동자의 끊임없는 비타협적 투쟁이 전노협 정신을 계승한 민주노총을 지탱하게 해준다.

 

투쟁을 전개하기도 벅찬 현실...

20세기말에서  21세기를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노동운동 내부에 엄슥해 왔다. 정리해고/구조조정이라는 미명하게 정든 일터를 떠난 많은 노동자들.... 이 떠난 자리를 메우고 있는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들.... 현장에 너무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노동조합을 추스리기도 버거운 현실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한국에서의 공장운영이 어렵다 말하며, 중국과 동남아시아로의 공장이전으로 이전 전노협과 민주노총 출범의 일등공신인 중소사업장 수가 많이 줄어 들었다. 현재 노동조합에서 집회를 진행하는 것도 버거운 현실에 다다르고 있고, 수 많은 투쟁이 전개되지만 이 집회에 많은 노동자들의 결집 또한 과거와 다르게 큰폭으로 수가 감소되었다. 

투쟁을 전개하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과거 인천의 한 민주노총 소속 단위사업장에서는 노조위원장에 나올 현장활동가가 없어 고민하던 노조위원장의 모습을 본 기억이 생각난다.  민주

노조 깃발은 나부끼나 더이상 활동가가 없어 노동조합 전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업장이 어찌 이 사업장이겠는가? 그렇지 않는 조합도 있지만 중소사업장의 경우 많은 어려움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노동조합 활동하는 것도 버겁다.

 

조합원과 노동조합 간부와의 언어적 소통....

1999년  제2회 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서 세기말현장보고서팀에서 제기하였던 "노동조합과 Communication-전달인가 소통인가? 에서 제출한 조합원과 조합간부들과의 소통문화에 대한 지적... 평조합원 운동전략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느끼게 해주다.

무엇보다 전노협 시절 전체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많은 교육활동과 수련회가 이제 연맹이나 지역본부 전임자의 활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무엇보다 아쉽다. 또한 현재 민주노총 수련회가 잡혀도 평조합원들이 결합할 수 있는 자리로 적을 뿐더라... 참여한다고 해도 직장에서 평조합원이 노조활동으로 참여하기엔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다.

 

이전 많은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발전이 귀결이 아닌 이상... 그리고 많은 노동조합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순간... 활동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있어 과거 현장에 대한 지지와 연대 그리고 공투의 경험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무엇보다 현장활동의 복원에 온 신경이 집중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직활동의 기풍이 전체 노동운동의 들불처럼 확산되기를 바라며....

 

 

간장 오타맨이....

 

p.s  누군가의 글을 보고 그냥 잡생각을 끌적여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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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 신촌 세브란스 길을 홀로 걸어보며....

  • 등록일
    2004/11/02 19:48
  • 수정일
    2004/11/02 19:48

* 이 글은 간장 오타맨...님의 [아름다운 죽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한달간 노숙생활을 한 신촌 세브란스 병원길을 거닐었습니다.

오늘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이유 아마도 그 당시 열사들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흘린 눈물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답니다.(비오는 날 일어 없어 집에 들렸다 문득 아침에 이 글을 펌하면서 꼭 연세대 세브란스 길을 걸어야 겠다는 다집으로 연세대 세브란스 흉물처럼 크게 짖고 있는 병원 건물을 보면서 그 도로변을 그냥 거닐었습니다.)

 

그 당시 참 많은 이들이 눈물을 머금고 살아갔습니다.

매일 서울 거리는 체루탄으로 자욱한 연기가 안개를 이루었고, 우리는 불을 내뿜는 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 도로 벽돌을 던지며 투쟁을 전개하였죠.



 

신문지를 덥고 잠을 청하고 일어나면 길 건너편 있던 전경들과 매일 대치하며 투쟁을 하던 그 당시.... 연세대 오기전 차창밖 명지대 담벼락에 아름다운 청년 강경대라는 동판을 늘 접할 수 있었는데 오산에 내려와서는 그 광경도 이제 쉽게 볼 수 없습니다.

 

명지대에 모인 많은 학우들을 눈물로 지세우게 하였던 그 당시는 나만의 과거가 아닌 우리모두의 과거이고, 참 가슴아픈 기억입니다. 이후로도 많은 열사들이 나왔지만 그 당시 열사정국은 우리에겐 너무 힘겹고 슬픈 현실이었습니다.

 

도저히 학교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부끄러운 내 자신이 무언가 해야되겠다는 그 당시 심정은 같은 동시대를 살았던 이라면 공감할 것입니다. 무언가를 부여잡아야 헀고 주체할 수 없는 적개심과 슬픔은 우리에게 투쟁이라는 당위성을 심어주었습니다. 부끄럽게 하루하루를 살았던 그 당시.... 집회는 우리들의 유일한 선택이었고 열사를 떠내보내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우린 순응하듯 그 기억은 이제 다큐소재 또는 과거 회상하거나 술안주 무용담으로 변해 있음을 목도할때면 스스로 놀라곤 합니다. 망각의 동물임을 자각하면 말입니다.

 

치열했다지만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잊지 않겠다고 다짐도 해보았지만 그 다짐은 다짐일 뿐 결코 어떠한 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대가 발전했고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말합니다. 민주화기념사업회가 출범하여 민주화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 운동을 하였던 사람들중에 보상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민주화는 현재진행형이지 과거진행형이 아닙니다. 지금도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민주화는 귀착이 아닌 끊임없는 여정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살이가 조금 나아진 것 가지고 너무 호들갑 떠는 우리내 부산한 삶을 반성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하였습니다. 아 참으로 서글프지 그지 없었습니다.

이 서글픔의 기억엔 남녀가 체루탄 연기가 자욱한 복판에서 깃발을 동시에 들고 흐느끼는 걸게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 걸게그림을 보면서 아 참으로 찡하니 마음에 서글픈 파도가 엄습해 와 주루룩 눈물을 흘린 기억도 생생합니다.

후배녀석은 체루탄 연기때문인지 아니면 서글픔에 복받쳐서 인지 모르겠지만 눈물과 콧물을 흘려가며 울음을 주쳅못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참 열정이 가득했고 순수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섰지만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할지는 자명하였던 시절입니다. 앞뒤 제지 않고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갔던 그 당시.... 참 무모했지만 용기가 넘쳐흘렸습니다. 지금 하라면 결코 할 수 없는 그 당시.... 내 마음의 서글픔의 파도와 부채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열사력을 보면서 아 참 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끔씩 합니다.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데 말입니다.

 

아 남녀가 서글피 체루탄 날리는 깃발을 들고 있는 나부끼는 깃발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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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배움이 큰 하루에 감사하며....

  • 등록일
    2004/10/28 17:32
  • 수정일
    2004/10/28 17:32

날마다 하루하루 배움으로 충만한 생활을 하고 있다.

다솜교회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배우고 나가서는 아저씨들에게 배운다.

세상은 늘 배움으로 충만한 공간임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늦은 깨달음이지만 참 행복하고 즐겁다.

 

이 곳 아이들 때로는 엉뚱하지만 해맑음과 아픔을 간직한 이들이다.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지니고 사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늘 해맑은 미소가 끊이질 않기를 바램해 본다.

세상은 이곳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그러나 이곳 아이들에게 도움의 눈초리는 필요치 않다.

이 곳 아이들에게 동정의 눈초리 마음으로 대해주기 보다 이 곳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대해주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커가는데 필요한 덕목이다.

이 곳 아이들은 도움의 대상이 아닌 우리내 동생들이다.

 

사람들은 그러나 이 곳 아이들의 남과 다르기에 많이 배풀어주고자 한다.

초기에 이들에게 배품은 고마움을 낮겠지만 점차 이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라고 스스로가 사회에 나가 홀로서기를 할때 그 배품은 이들에게 크나큰 상처로 남는다.

이들에겐 똑같은 눈높이와 똑같은 교육.... 학교에서 해주지 못한 사회의 구석구석 낮은 시선과 사람이 가져야할 기본적인 소양으로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음을 함께 생활하며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니 함께 배워나가는 것이다.  

 

늘 아이들의 행동에서 배우고 깨닫는다.

아이들은 약속을 하면 보이는 곳에선 지키려 한다. 그러나 정작 어른이 된 나는 약속이라는 것에 둔감해 진지 이미 오래되었고 어린 아이들 처럼 규제되거나 통제되지 않는다.

자유는 부여되었지만 그 자유에 대해 내 자신이 누릴 내 생활에 대한 규범은 없다. 아이들에게 아이들이니까 이래야 한다는 이야기만 한다. 나 자신은 전혀 그렇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 난 무엇하나 말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을 규범이라는 틀에 속박하려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불평없이 내 말을 잘 따라준다.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전 이제 나도 아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겠다.

 

내 생활이 하루하루 나태함을 아이들에게 들킬까 봐 조심조심 살아 간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듯이 나 또한 아이들에게 이야기 하기전 나 스스로 부터 그런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봐야 겠다.

 

아이들에게 늘 배우면서 사는 것도 참 재미난다.

 

간장 오타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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