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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8/11/16
    다솜 농장 봄 농사 시작하였습니다.
    간장 오타맨...
  2. 2008/11/16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문화공연
    간장 오타맨...
  3. 2008/11/16
    가난한 이들 나눔과 섬김이 출세 길이 되지 않기를....
    간장 오타맨...
  4. 2008/11/16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왔습니다.
    간장 오타맨...
  5. 2008/11/16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하산(목탄호센) 사연
    간장 오타맨...

다솜 농장 봄 농사 시작하였습니다.

  • 등록일
    2008/11/16 01:32
  • 수정일
    2008/11/16 01:32

다솜 농장 봄 농사를 3월   28일 진행하였습니다.

저희센터에 운영위원이신 신상철(일명 감자선생)선생님 장인어르신 땅 600평을 빌려 농사를 짖고 있습니다.

올해 3년차를 맞이하고 있으며, 옥수수, 감자, 고구마, 깨, 상추, 파를 심어서 여름이면 상추 쌈을 먹고 가을이면 옥수수를 따서 먹고, 초여름이면 감자를 흙에서 캐서 먹습니다.

이 농장을 통해 소박한 꿈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다솜공부방 아이들이 청소년이 되면 해외여행을 위한 용돈을 마련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할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파송온 남인도 교회 프라사드 목사님과 릴리 사모님이 있는 인도를 여행하고 이주노동자 친구들이 있는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태국 등등 다양한 곳을 여행할 수 있을 것을 생각하여 하고 있는데 돈이 좀처럼 잘 모이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인도에 있는 목사님이 3년 선교활동을 마치고 돌아갈때 인도지역에 아동들을 위한 공간과 여행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 마련을 위한 비용으로 100만원정도를 들였습니다.

 

작년 연말 연하장과 남인도교회 프라사드목사님의 편지에서 저희가 준 비용으로 여행자와 아동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였으니 언제든지 방문하라는 메일과 연하장을 받았습니다.

이에 힘을 내어 올해도 농사를 짖습니다.

작년 한해 모아논 퇴비를 뿌리며, 경운기로 밭 쟁기질을 하였습니다.

올해 그리고 주말농장에 참여하는 식구 한가족이 늘어 목사님 내외 두분이 적적하지 않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아침 일찍 농사를 해야하고 일도 고되 저는 농사를  짖지 않는다고 선언..... 간혹 도와줄때도 있지만 농사일에 동참하지 않고 있습니다.

봄날 그윽한 날 바람을 맞으며 밭에서 농사를 일구는 풍경에서 어린 유년시절 고향의 내음을 가득 풍기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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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문화공연

  • 등록일
    2008/11/16 01:31
  • 수정일
    2008/11/16 01:31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경기지역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850여명이 모여서 공연이 성황리에 끝마쳤다.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방글라데시 문화공연을 준비하기 위하여 센터로 들어왔건만 정작 같이 준비해야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오지 않았다.

일단 당황... 당혹...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미아씨만이 홀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며, 왜 나오지 않느냐며, 방글라데시 문화공연을 준비를 위해 친구들을 하나둘 모으기 위한 전화를 하였다.

전화기를 꺼놓거나 아니면 대답없이 전화벨만 무심이 띠리릭~~~~ 당혹감을 감출수 없었다.

 

오산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 조명감독과 오전 10시 행사를 위한 시간을 약속해 놓은 터라 센터에서 오전 9시 30분에 걸어서 오산문화예술회관으로 향하였다.

무대감독과 조명감독은 공연 준비를 위해 미리와 있었다.

일단 도착을 하고 오늘 열심히 잘해보자는 의기투합.. .. 그러나 약속했던 공연식순을 친구들과 사전에 회의를 하지 못한 터..... 가지고 오지를 않았다. 대략 이전에 짜놓은 공연식순을 보강하여 대략 만들었다.

무대감독과 조명감독은 일단 올해 공연은 그리 번잡하지 않고 출연진도 이전 13팀에서 4팀으로 대폭 수정하여 쉬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잡한 무대 장치 또한 다 없앴다.

그리고 공연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약속이 계속 어긋났다. 사전 리허설을 위해 와야할 공연 출연자들이 오후 1시가 아닌 2시에 도착 불야불야 공연감독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가져온 시디와 다소 늦게 리허설을 끝마쳤다. 그리고 시작한 공연 식순부터 엉망 그 자체.... 무대감독 조명을 끌까요 하면서 공연이 약속한 식순과 다르게 되고 있음을 타박.... 그리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친구들의 일정에 없는 행동...... 1부 사전행사가 약속한 30분을 넘어 1시간이 흘렀다.

 

공연을 준비해준 오산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 조명감독, 공연감독 다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나에게 화를 버럭낸다. 지금 몇년째냐....(정확히 올해 오산문화예술회관 대관 4년째 공연이다. 횟수로 6번째 공연... 작년 가을공연 이후 무대감독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화를 낸다. 이유는 청소 불철저와 공연장내 흡연..... 그리고 껌을 무단 공연바닥에 뱉어놓은 사건 이후 우린 정확히 말해 무대감독에게 찍혔다.) 공연 한두번 한것도 아닌데 올해 공연 이게 뭐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버럭화를 낸다.

초조함 그리고 공연이 공연팀 출연자들이 나오면 나아지겠지라며 무대감독에게 미안함을 표시하고 공연을 진행하였다.

 

식순이 바뀌기 시작하더니 첫번째 가수 장지르.... 무난히 통과.... 두번째 가수 아키아였는데 바뀌었다. 다시한번 무대감독.... 공연이 왜이러냐며 타박.... 무어라 할말이 없다.

무심히 쳐다본 연단....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은 연신 환호와 박수를 쳐가며 무대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 즐겁게 공연을 즐긴다. 그나마 위안은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의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그래도 행사는 끝내야지.... 초조함을 뒤로하고 연신 무대감독의 눈치만을 살폈다.

 

노래가 시작되고 잠잠해진 무대감독의 표정..... 사고가 또 발생..... 공연객석에서 관람자들이 뛰어 올라와서 사진을 찍기위해 공연대기실로 향하는 사건.... 버럭 화를 내는 무대감독이 퇴장.... 알아서 하라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다. 당혹감...... 그리고 두번째 가수가 끝마칠 쯤 나오는 무대감독.... 놀란 가슴을 어루만지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

세번째 가수의 노래공연 아키아 노래 연단을 1층 2층 환호의 도가니.... 친구들의 돌출행동... 포기할대로 포기한 무대감독은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바란다며... 화를 내지 않는다. 그냥 포기한 것이다. 우리가 내년도 공연은 기대도 하지 말라는 투의 위협과 함께.... 어찌해야 하나... 내년도에는 오산문화예술회관에 대관 신청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잠시한 후 그냥 스쳐 지내 보내고 오늘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오늘 행사 무사히 치루자... 통제도 안되고, 이제 포기할 대로 포기....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공연을 진행하였다.

아키아의 노래가 끝나고, 마지막 가수 하산의 노래...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친구 하나가 댄서로 나선다.

 

하산과 함께 백댄서로 출연.... 무대의 분위기는 뜨거웠다. 함성과 함께 무대앞을 가득메운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친구들 오늘 하루 그간 느끼지 못하였던 문화적 향유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즐거움.... 다들 신이 났는지 노래를 따라부르며 연실 앵콜과 박수 환호성이 뒤범벅.... 무대 뒤는 연실 한숨과 애타는 마음도 아랑곳 없이 관람객은 뜨거웠다.

관람객 객실의 뜨거움 그리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의 즐거움으로 무대뒤의 어려움은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6시 행사가 모두 마쳤다. 공연을 마치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경품추첨..... 정확히 오후 6시 15분 행사를 마쳤다. 행사를 마치고, 청소할 친구들을 모아 공연객실과 공연장 주변을 대략 40분 청소하고, 공연행사를 모두 끝마쳤다.

오늘 하루 아침부터.... 초조함 마음으로 준비한 공연.... 공연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무사히 마쳤다. 그리고 무대감독, 조명감독에게 수고하였다는 인사를 끝으로 무대를 뒤로하고 청소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공연감독의 여운을 남기는 말.... 다음 공연에 뵙죠... 과연 다음 공연에 오산문화예술회관이 대관을 해줄까 의구심은 들지만..... 다음에 또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모두가 하나되는 문화공연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오산문화예술회관에서 준 조명 사용료 추가분 170,000원의 입금 명세서만 지금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방글라데시 문화공연을 무사히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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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 나눔과 섬김이 출세 길이 되지 않기를....

  • 등록일
    2008/11/16 01:30
  • 수정일
    2008/11/16 01:30

나눔과 섬김이 요즘 화두로 매스컴에 많이 나오는 단어들 입니다.

그리고 나눔으로 평생을 바쳐온 부스러기선교회 전 회장인 강명순목사가 한나라당 비례대표 기호 1번이 되었다는 소식을 3월 23일자 연합뉴스 소식으로 접하고 화들짝 놀라하는 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 대표의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빈민운동과 가난한 이의 벗이었던 이들이 정치권으로 들어가는 거야 무엇이라 말 할 사안은 아니고, 정치적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것은 뭐 그리 나쁜일이라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부스러기선교회라는 기관의 전회장으로서 사려깊지 못한 판단으로 말미암아 그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수 많은 선생님 그리고 그 공부방에서 미래를 키워가고 있는 아이들을 이용하여 정치적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는 처사는 크나큰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기간 수 많은 사람들이 과거 자신의 경력으로 삶이 좌지우지되는 모습을 많이 지켜본 터라 뭐 저에게는 그리 심각하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부스러기선교회 회원단체로 있는 공간들에 있는 사람들의 상심과 마음가짐은 어떠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크나큰 상심과 당혹감이 들지 않았을까? 판단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과연 그 판단에 그 회원단체와 아이들이 입게된 상처와 당혹감은 생각을 해보셨는지 되묻고 싶습니다.

 

일명 민중교회 혹은 작은교회(미자립 혹은 개척교회)에서 신도들을 늘리기보다 어려운 이웃 가난한 이들과 나눔과 섬김을 위해 함께 살고자 몸소 삶의 현장에 투신하여 빈민(선교)활동으로 지역에서 묵묵히 가난한 이들 특히 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던 부스러기와 같은 공간의 홀씨들이 부스러기 처럼 파편화되어 만들어진 부스러기 선교회는 그 의미가 내포하고 있는 말 처럼 집합체가 아닌 각자의 홀씨들이 민들레 씨앗처럼 홀뿌려져 만들어진 갑지고 소중한 공간들입니다. 

 

오직 가난하다해서 미래를 꿈꾸지 못하면 안되는 것 처럼 비록 현실 아이들이 가난으로 어려움은 있지만 이 아이들의 미래와 삶을 위해 함께 모여 아이들에게 미래를 열어주는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이 자신의 주어진 삶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가 지켜보고, 늘 자긍심을 갖게하는 아랫층 식구들(지역아동센터 다솜공부방)입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때론 어려움과 힘겨움이 있지만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 기쁨 또한 그리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기에 지난한 모진 세월 풍파와 갖은 고초들이 지난 추억으로 아롱아롱 맺혀있습니다. 빛바랜 사진들 속에서 지난 세월의 깊이만을 느끼며 지난 역사를 반추만 해봅니다.

 

전국의 수많은 공간들이 일구어낸 작은 기적이며, 삭막한 세상을 견디어줄 버팀몫이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입니다. 남들이 보기에 별로 볼품없고 누추하지만 아이들과 이 공간에서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섬기며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공간보다 소중하고, 값지고, 가장 멋스러운 공간입니다.

 

모든 사물의 척도가 화려한 것으로 치장되지만 화려하지 않고, 누추 하지만 이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값진 아이들이 있기에 공간의 누추함은 아이들의 화사함으로 치장되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희가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이며, 현실 모두 높은 이상 높은 곳으로 향하지만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하방연대(下方連帶)를 저희는 삶속에서 가난한 이들과 이웃이 되어 때론 친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래서 가난한 것이 행복이라는 작은 진리를 발견하여 스스로 가난하다 생각하지 않지만 가난한 이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고, 가난한 것이 가장 멋스럽고, 진리라는 작은 깨달음도 시간의 깊이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무수한 말에서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무수한 공간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 여전히 아이들이 이 세상의 미래라 생각하며, 이 공부방이라는 협소하지만 세상 어느공간에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공간에서 아이들과 시끌벅쩍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바램과 다르게..... 한 기관의 전 대표의 사려깊지 못한 정치적 선택이 부스러기선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회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개인의 정치적 행위를 자의든 타이든 명예롭지 못하게 이용하여 정치권으로 들어갔습니다.(무수한 미사용어와 수식어 그리고 핑계없는 무덤이 없듯이 나오겠지만 지난 세월에서 보았듯이 다 말장난이요,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허울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빈민운동의 대모라고 말하며, 부스러기 선교회 산 역사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기간 활동을 등에 업고 나온다는 것이 그 기관을 바탕으로 일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입니다. 아닌 크나는 상처와 멍을 줘준것입니다.  

 

인간 강명순 목회자 강명순이야 얼마든지 한나라당이든 어느 당이든 국회의원으로 출마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기간 쌓아 놓은 기반을 이용한다는 이 것은 응당 그 구성원들에게 최소한 동의(공인이라 함은 자의든 타이든 자신의 속한 기관이 자신의 명암이 될 수 있다. 그런 처사를 염두해 두었다면 자신의 그 기반이 아닌 인간, 목회자 개인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가 있어야 하며, 그 기반이 아닌 자유인으로서의 기간이 되었을때 정치권으로 가응 것은 자유인으로서의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공인이라하였을때는 사려깊은 안목과 신중함을 보여야 하지 않은지 생각 되어집니다.(물질만능을 숭배되고, 경제 만능주의가 분배보다는 성장을 원동력으로 하는 당을 선택한 것도 참으로 의아해 합니다. 현실 정치가 사람의 마음과 정신도 갉아 먹는 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다시금 상기해보니 만연해 있는 인텔리겐차의 정치적 욕망을 다시금 상기해 보게 합니다.) 

 

보건복지부 지역아동센터라는 것이 만들어져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정부의 지원이 일상된 지금.... 이전 80년대부터 현재까지 지원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의 벗으로 삶의 파수꾼으로 함께 지탱해온 공부방 그 이름이 부스러기선교회입니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가 만들어지는데 일정한 노력 또한 하였습니다.

 

그런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나눔과 섬김을 자임하던 공간의 전 수장이었던 분의 사려깊지 못한 행동은 참으로 가슴을 무겁게 만듭니다.

 

나는 이주노동자와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지만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활동에서 나 자신은 돈보다 값진 것들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개개인들의 마음과 마음속을 나눌 수 있고, 늘 그러한 마음을 받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돈보다 소중한 가치이며, 이런 마음 착한 이들이 주인되는 세상이 곧 해방된 세상이라는 생각을 갖고 때론 힘겹지만 때론 미련스러운 이주노동자와 노동자들 때문에 가슴이 아리지만 그래도 그들과 함께하는 삶에서 돈보다 귀한 인간내음 진하게 배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 되려 내가 돈을 주어서라도 배워야 하는 값진 것들입니다.

 

나눔과 섬김은 곧 내가 배우는 것이요, 배가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배우고, 풍요로워지는 활동에서 남들보다 적은 액수지만 일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되려 돈을 내고 배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러한 소중한 추억을 자신의 입신양면을 위해 팔아야 한다는 것은 애석하고 참으로 애처로운 일입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기간 쌓아놓은 탑들을 부수어버리는 행위.... 가난을 팔아 입신양면하고자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기간 가난한 이들의 벗을 자임한 것은 그 사려깊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고스란히 사그러듭니다.

 

무엇때문에 가난한 이들.... 억압과 착취 받고 고통으로 힘겨운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가? 각자마다 그 계기와 시작은 다르겠지만 늘 초심(初心)에서 우리는 늘 현재와 대화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왜 가난한 그들과 슬픔, 좌절, 고통, 희열, 기쁨들 모두들 희노애락이라고 말하는 것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건 아마도 인간에 마음과 마음이 이어진 보이지 않은 사랑의 선이지 않을까요... 그 소중한 것과의 단절은 그렇다 치러다고 그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사랑의 선을 자신의 입신양면을 이용해 절단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만 되풀이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가 떠오릅니다.

모든 거짓과 허의 의식으로 활동하는 거짓들이 모두들 사라졌으면 합니다.

가뜩이나 어려움을 이겨내고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자 하는 어려운 이들... 가난한 이들의 삶이 자신의 출세를 위한 경로로 이용되지 않기만을 바램해 봅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그리고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과 마음을 죽이는 행위입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의 배품과 나눔과 섬김이 이용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램해 봅니다. 

 

나눔과 섬김은 동정과 시혜 배푸는 것이 아니라 내가 풍요로워지고, 그들에게 다가가 소중한 마음의 정화와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진리를 발견하고 배우는 학습공간이라는 작은 진리를 깨닫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끝으로 이철수 선생님의 나뭇잎편지의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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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왔습니다.

  • 등록일
    2008/11/16 01:29
  • 수정일
    2008/11/16 01:29

베트남 이주노동자 리반밍씨가 어제 센터에 찾아왔습니다.

 

산업재해를 당했지만 회사에서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이기에 산업재해를 신청해 주지 않고, 회사의 합법 이주노동자 의료보험증을 빌려 손가락 접합 수술을 진행하였습니다.

 

손가락 두개를 접합 수술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회사 기숙사 인근에 있는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지만, 재요양 신청을 해야하지만 회사에서 최초요양신청서 직인을 날인해주지 않아서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리반밍씨 회사에 전화를 걸어 관리부장과 연락을 하였습니다.

관리부장은 여러사정을 이야기하며, 직인날인을 해주지 않아 회사에서 피해볼 상황(미등록이주노동자의 경우 산업재해를 당해야만 산재보험에 가입됩니다. 그리고 산업재해를 당한 사업장에 대해 관할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를 해서 미등록이주노동자 고용에 따른 벌금을 부과합니다, 대략 200만원-400만원 선입니다.)과 안해주었을 때의 불이익(직인날인거부사유서를 통한 산업재해신청과 산재승인 후 국내거주비자인 G1비자 발급을 관할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해줍니다. 사업장 조사)에 대하여 설명을 하였습니다.

 

관리부장은 산업재해를 헤야 리반밍씨가 좋다는 것을 알고, 다음주 화요일 산업재해 최조요양신청서에 직인 날인을 해주기로 하였습니다. 

 

리반밍씨는 산업재해를 신청해준다고 이야기를 하니 연실 고맙다는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저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자주 오지 않지만 베트남분들이 센터에 찾아오면 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전쟁의 상흔이 아물지 않았고, 베트남 이주노동자 아버지들과 저희 아버지들이 서로 총뿌리를 겨누고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는 야만적 행위가 떠올라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늘 베트남분들을 보면 미안하다는 말을 합니다.

베트남분들은 옛날이야기라며 지난 일이기에 괜찮다는 말을 합니다.

이에 더더욱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국이라는 낮선 곳에서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이 잘 적응하고, 뜻한바 잘 이루어졌으면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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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하산(목탄호센) 사연

  • 등록일
    2008/11/16 01:27
  • 수정일
    2008/11/16 01:27

작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날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하산(목탄호센)씨가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 가야하는데 체불임금이 3곳의 사업장에 있다고 임금을 받을 수 있냐고 상담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의례적으로 하산씨에게 말을 하고 위임장과 방글라데시 하산씨의 계좌번호 그리고 상담일지를 작성하여 출국한 후 우편으로 출국사실 날인이된 여권사본을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하산씨는 저에게 몇번의 답례를 하고, 비행기표를 끊어놓아서 12월 27일 출국을 한다며 이리저리 친구들을 만나야 한다고 하며, 꼭 부탁한다는 인사를 여러번 하고 갔습니다.

 

그리고 하산씨와 12월 27일 공항에서 통화를 하고 집에 갔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저는 하산씨가 보내줄 우편물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사업장에서 체불임금을 지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여러번 전화 통화를 하였지만 늘 수화기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하산씨의 우편물이 도착하였고, 그리고 2월중순경 하산씨가 방글라데시에서 입금을 받을 수 있는 통장계화번호 사본을 받았습니다.

 

노동부 수원지청에 진정서를 접수시켰습니다.

 

이전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일한 사업장의 경우는 경인지방노동청 성남지청에 갔을때 회사가 폐업이 되었고, 사건이 관악지청으로 이관이 되어 일단 저희센터 자문노무사인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이종란 법규차장(공인노무사)에게 체당금 신청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원지청에 이번주 2차출석으로 안 사실 2곳의 사업장 모두가 폐업이 되었습니다.

 

임금이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폐업이 되어 받을 수 있는 길은 유일하게 체당금 신청이지만 이도 여의치 않은가 봅니다. 회사 자체가 워낙 영세하여 노동부에서 체당금 신청이 될지 미지수라고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답변(사업주에게 법적 파산에 따른 경매로 인해 발생한 금액을 통한 구상권 청구가 요원하지 않을 경우 각 관할 노둥부 체권수신팀에서 지원이 될지 미지수라고 합니다.)을 받았습니다.

 

하산시를 별 면목이 없었습니다.

폐업된 사업장을 상대로 사업주의 신원을 최대한 파악하여 임금 지급을 요청해 보겠다는 근로감독관의 이야기에 의지한채 그냥 뒤돌아 노동부 근로감독관 사무실에서 나왔습니다.

 

힘이 쫙~~ 빠지더군요.

미등록이주노동자로 7년을 생활하였고, 아버님이 지병으로 돌아가셔서 집으로 귀국한 하산씨.... 친구들에게 돈을 받을 수 있냐고 계속 물어오지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냐라고 방글라데시 친구들에게 말을 했는데.... 참 갑갑하게 일이 꼬였습니다.

 

한 사업장도 아니고 3개의 체불임금 사업장 모두가 폐업이 되었습니다.

운도 억세게도 없는 친구라고 푸념을 하지만 막상 친구들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전해야 할지 답답합니다.

 

돈을 받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낙담을 할까?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겠지라고 말했는데.... 그래도 근로감독관이 이야기에 힘을 내 끝까지 상담 관련 사건해결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아 보았습니다.

 

어렵겠지만 하산씨에게 마지막으로 폐업이 되었다손 치더라도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받아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민사소송을 통해 사업주 신원을 확인하여 압류와 경매를 통해 체불임금을 지급받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 겠습니다.

 

관악지청건은 일단 체당금신청을 한국직원들이 해놓았다고 하니 안심이 되긴 합니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적게는 1개의 사업장에서 많게는 3개-4개의 사업장에서 폐업으로 인해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받지 못하였습니다.

 

노동법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정보를 제공할 곳을 찾지 못하고 일하는데만 열중하다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못하고 진정기간 3년 공소시효를 넘긴 이주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현재 체불임금과 퇴직금 미지급으로 민사판결을 받고 소송을 진행중인 건도 많습니다. 늘 마지막 3차 경매가 되어서야 지급합의를 하는 사장들이 많습니다.

 

올해 2008년도 체불금품확인원을 벌써 7개나 받아 놓았습니다. 참 막막합니다.

친구들이 언제 임금을 받을 수 있느냐 독촉할 때면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요근래 들어 여수사태 이후 체불금품확인원을 발급받은 미등록이주노동자와 산업재해를 당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에게 출입국에서 거주비자인 G1비자를 발급해 주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단 임금을 지급받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기간이 남아 있어 이들이 부당한 한국에서의 처우에 대한 보상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주어졌다는 것이 다행입니다.

 

봄볕의 따스함과 다르게 하산씨는 여전히 겨울의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산씨에게 좋은 소식이 들려 봄의 소식과 함께 하산씨가 화사한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철수의 집 나뭇잎 편지中에서....그 손, 그 마음이, 봄날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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