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그녀는... <여자, 정혜>

이 글은 해미님의 <여자, 정혜> 극복 또는 치유되는 상처?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여자, 정혜> 포스터_씨네21에서 이미지퍼옴

 

이번주에 보지 못하면 못볼 것같다는 불안감때문에(극장에서 간판을 내리는..)냅따 예맬했다. 결과는 흐믓함과 미소먹음으로 끝맺었다. 행복했다. 잘 만든 영화를 보는 감상자의 행복감을 영화감독이 줄 수 있다는 건 직업의 장점같다.

(선댄스영화제에서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막바지 한 관객이 이런 환호를 던졌다고 하는군.

“You did a great job!”)
꾸물거리다 늦어져 헐레벅떡 뛰어든 영화관안 스크린에는 벌써 그림들이 흐르고 있다.

 

 

 



 

여자의 외로운 일상


신혼여행 하룻만에 특별한 이유없이 결혼을 깨버린 그녀를 고모는 이해못한다. 오히려 어릴때부터 그녀가 어리버리하고 이상한 아이였다고 단정해 버린다. 나또한 그녀의 행위와 말투가 갑갑하다. 세상과 담쌓고 사는 그녀가 답답했다. 하물며 가장 가까이 속내를 터놓고 자신을 드러내어도 좋을 동료에게도 벽을 쳐버린다. 자신에게 다가서는 주변인들을 자꾸만 밀쳐내고 있는 그녀가 이해불가 했다.
그래서 한여름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운동장 벤치에 앉아 떠난 동료를 잡지않은체 홀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역광으로 시커먼 그녀의 뒷모습이 그렇게 슬퍼보였나 보다. 갑갑해 보였나 보다.  저건 아닌데...속으로 난 이런 대사를 툭 던지고 있었다.

 


 

홈쇼핑으로 시간을 떼우고 밤마다 혼자서 현관문을 잠그고 이방저방 불을 끄는 그녀의 표정은 무표정이다. 주말마다 간단하게 맥주한잔 하는 닭집에서의 동료들과의 자리도 별 대화가 없다.
어찌나 외로워 보이는지..누구나의 일상이지만 누구나 매일매일 그렇게 따분한 일상만 존재하진 않는다. 왜냐. 외로움을 이기기위해 갖은 노력들을 하니까 말이다. 친구를 만나 맛난 음식과 알콜로 수다떨고, 이성(동성)친구를 만나 유명하다는 영화한편 떄리고, 하물며 사이버상의 친구들을 만드는 블질도 있지 않은가? ^^

그런데 그녀는 세상과 담을 쌓고 그 담을 허물려하지 않고 더 굳건하게 닫아버린다. 왜일까?

 

그녀의 유일한 통로는 엄마였다. 신혼여행에서 아무런 이유없이? 그냥 짐싸고 집으로 돌아온 딸을 엄마는 다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다그치는 고모에게 “자기도 무슨 이유가 있겠지요”라고 따뜻하게 대변한다. 그런 유일한 정신의 해방구인 엄마의 부재는 그녀를 더 외롭게 하는 이유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말못한 과거가 있다니..그녀는 왜 그랬을까?

 


 

 

상처는 치유가능할까?


아무일없었다는 듯이 결혼식을 올리긴 했으나 신혼여행 첫날 밤 남편에 의해 그녀가 원하지 않은 섹스를 강요당한다. 결혼식까지 올린 신혼여행지에서의 합법적인 남편과의 섹스는 또다른 강간으로 보인다. 그녀에게 한마디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물리적 강압으로 밀어붙이는 남자의 행위는 그래도 합법적인 거겠지? 남자는 질문한다. 첫경험은 어땠냐고? 자연스러운 질문같아 보이고 그녀 또한 아무내색없이 답한다. "그냥 아팠어" 오히려 내숭떠는 순진녀의 대답같아 보이기도 했다.(하지만 그녀의 상처를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의미있는 대사이다) 그래서 새벽같이 호텔을 뒤로 한체 혼자떠나는 그녀의 행위는 언뜻 논리적이지도 이해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왠지 그녀의 뒷모습은 당당해보인다. 왜일까?

 


 

해미님이 벌써 밝혔듯이 마지막 남자작가에 의해 “정혜”라고 불리우는 그녀는, 그와 함께 새로운 인생의 막이 약간은 무표정한 얼굴뒤로 길고 밝게 펼쳐지면서 긍정적인 상징으로 끝맺음을 한다.
해피해 보이는 결말이 불온해 보이는건 감독의 막연한 이상주의적 사고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어눌하지만 순진하고 착실해보이는 남자작가가 그녀에게 평범함의 행복을, 아픈과거의 상처를 치유해 줄 것이라게 남성감독의 결론이니말이다. 쳇!


안정된 직장에 혼자사는 그녀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보여지기 보다는 외롭고 슬픈 여성으로 보여지고 여성으로서의 “평범한 삶”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한가족을 이루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역설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가남자를 저녁에 초대한 다음 장을 보고 상을 차리는 그녀는 더없이 활기차다. 남자를 위해 뭔가를 해야만 여자로서의 행복감을 느끼며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덧날수도 있다는 그런 논리. 게다가 점심시간에까지 집으로 달려가는 그녀의 행위는 모성본능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대상인 고양이 때문이다. 여성이 애완동물을 키우는데는 주체하지 못하는 모성본능때문이라는 것. 그런가 과연? 흐흠...

 


 

용서와 처벌.
해미님의 진단처럼 가해자를 벌했어야 정치적으로 올바를 것이었다는데 동의.

인간적 용서와 가해자 남성에 대한 사회적 처벌은 다르다는 측면에서 어찌보면 남성감독의 이상적 결론이었다는 생각이다. 남성에 의해 받은 상처는 남성에 의해 치유가능하다?

 

제목에 왜 "여자"라는 단어가 삽입되어 있는 걸까?

 

"속삭여본다. 이젠 행복해질꺼라고.."

또 다시 던져보는 질문.

강간당한 여자의 상처로 얼룩진 삶은 과연 이성의 사랑으로 치유 가능할까?

 

 

탁월한 심리묘사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는 교차편집은 그녀의 불안하고 섬세한 심리묘사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아주 기발한 방식이었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은 가끔 혼란스럽다. 구분조차 어려울 때도 존재한다.
현실과 과거에 대한 영상이 동일하여 갑자기 끼어드는 과거의 회상이 현재 일어나는 일인지 그녀의 회상인지 모호하다. 시간을 드러내는 모호한 방식은 그녀의 섬세한 심리, 그녀의 현재의 심경들로 그녀를 이해하는 근거들이 된다. 혼자 드러누운 소파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모녀의 일상적 대화, 우체국상사 때문에 들른 병원이 갑자기 들리는 저쪽 고모의 울음으로 어머니의 죽음을 알리는 장소로 변하는...동일한 공간과 다른 시간이 그녀를 이해하는 절묘한 단서로 쓰여지고 현실에 갑자기 끼어든 강간장면은 그래서 느닷없고, 그래서 그녀가 지닌 심리묘사로서 적절한 방식인 것이다.

 

유난히 그녀의 뒷모습, 화면한쪽을 꽉채우고 뒷부분은 여백의 공간으로 처리해버리는 화면처리 방식은 여운과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적절했다. 감독의 미적감각이 엿보이는 상징적 화면들이었고 초기 핸드핼드촬영기법은 다큐멘터리같은 현실성을 드러내주는 촬영기법으로 흔들리는 시선으로 보여진다.


 

 

김지수라는 배우


김지수라는 배우는 청순가련한 분위기여서 그냥 싫었다. 옆구리를 살짝만 찔러도 슬픈 눈망울을 하며 울어버릴 것 같은 바람만 살짝 불어도 가녀린 몸은 바로 넘어가버릴 것 같은. 그래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여 여성은 무조건 강한 남성의 그늘아래 머물러야만 할 것 같은 그녀의 만들어진 이미지는 정치적으로 싫다.(해미님의 말투를 약간 차용해봄~)


김지수의 갸날픈 표정과 몸매, 깍듯한 목소리와 행동에서 우러나는 여성스러움이 일상적인 캐릭터인 우체국직원 정혜로는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면서 순간 김지수가 아닌 이은주가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이런 잡스런 생각이 초중반을 지배했다.
하지만 그녀가 주는 외유내강의 여성캐릭터는 성공적이었다는 생각.

남성감독의 의도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지닌체 무감각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야리야리한 몸매는 건조한 일상을 드러내는데 김지수의 캐릭터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중반을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내려진 결론이다.

 

아쉬움이라면 가장 극적인 장면이어야 할 화장실 울음은 뭔가 2% 부족하다는 거. 악다구니 같은 처절함이 보이지 않는데..원래 속으로 쌓고 쌓는 내면연기가 더 어려운데 그건 아니고..억누르고 쌓인 감정의 저 밑바닥 크트머리를 울음으로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는 장면인데..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그녀의 슬픔은 아쉬움이 보였다. 억눌리고 덧난 자신의 상처를 날카로운 금속의 칼에 스스로 베임으로 인해 폭발하는 아픔을 드러내는데 굵게 떨어지는 눈물로만 표현되어진것은 뭔가 부족하다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못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주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오랜만에 좋은 한국영화 한 편을 본 난 오늘 마무리가 깔끔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