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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호와 고갱


Self-Portrait/반고호 Vincent w. Van Gogh(1853~1891)

 

 

"외롭게 살다간 고호란 사나이도 있지 않은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일까?
조용필 오빠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가사중의 일부이다.

 


외로운 영혼의 대표 아이콘 빈센트 반 고호.

고호만큼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도 드물다. 비슷한 부류인 쉴레도 있지만..
고호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어쩔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 자신이었던 것.

자신의 눈을 들여다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1889

: 고갱과의 빈번한 성격적 충돌에 의하여 결정적인 우정의 파탄을 가져오고, 그 격분에 못이겨

  자기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잘라 버린 귀의 비극이 1888년 크리스마스 때 일어났고, 바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1889년 1월 7일 퇴원을 한 고호는 그 무렵 2점의 자화상을 그렸는 데,

  모두 귀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다. 또 한 점의 자화상은 입에 파이프를 물고 있고, 빨간 바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들라크로아나 바그너나 베를리오즈의 마음속에도 광기는 존재하지

  않았을까'라고 고호 자신은 말하고 있다. 그 비극에 대하여 많은 의학자나 평론가, 학자들이

  연구하였으나, 과로에 의한 신경 과민, 환청,피해 망상 등 여러 가지 정신 병리학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차츰 진정을 회복하여 명석한 자기 마음의 지향을 나타내어 갔다.

  (http://www.youth.co.kr/rs/rs030021.htm에서 퍼온 글)

 

 

귀를 자른 후 그린 자화상.
귀가 잘린 사연은 고호의 인간적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누군가 라디오에서 이 그림에 대한 전후사정을 들은 이가 한말이다.

" 고호, 한 성격했네요..흐흠.."


고호의 친구 고갱.

후기인상파의 기수 고갱은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 타이티에서 선녀 같은 원주민여성들과

생활하며 그림에 전념하였던 근현대 예술가중 피카소를 제외하고는 드물게 팔자좋았던? 화가인 것 같다. 그가 타이티섬에 기거하기전 고호와의 짧은 동거생활은 고호의 작품세계와 정신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기였다.

어느 날, 고호의 자화상을 본 고갱의 한마디.
“양쪽의 귀모양이 다르군”
이 한마디의 직설적 평가는 불안정했던 고호의 멀쩡한 귀를 단박에 잘라버리게 하는 원인이었다. 고호의 정신병적 발작은 고갱과의 관계로 인해 좀더 심해졌다하니..뭐..

 


戱畵的(희화적) 自畵像(자화상)

: 사과와 뱀, 머리 위의 노랑빛 관 등을 추측하면 고갱이 여기에서 자기를 구세주(救世主)로

  견주어 나타내고 있는 것이 분명 하다.

  배경의 강한 빨강과 앞쪽의 강한 노랑으로 화면을 이등분하여 상태티즘(synthetisme)의

  지도자상으로 부각하여 평면적으로 밀어버렸다. 그러나 밝고 빛나는 색채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주는 인상은 어둡고 시니크한 괴로움이 감돌고 있는 것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동료들 속에서 이 야만인의 고독을 방영하고 있는 것이리라. 바로 직후에 타히티의

  원시림(原始林)에 자기를 던져, 그 야성을 불태울 거친 이지(理智)의 힘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http://www.youth.co.kr/rs/rs030021.htm에서 퍼온 글)

 

 


왠지 고갱이 밉다.

이성적 설명이 약간 불가한 감성적 접근이다. 그러니 이유는 묻지 마시라~


그림속에는 작가의 세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고호의 그림은 애처로움이 베어들어 인간적 동정심을 유발한다.

그의 외골수적이며 비사회적 성격은 그만의 세계안에서 존재함이고,

불안한 심연은 그림에서 뿜어나오는 강한 에너지의 원천이었으리라.
그러나 고갱의 그림은 긍정적 세계의 화려함과 단순함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타이티의 원시적 색감과 평면적인 인물표현은 자신감에 넘쳐 보이고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평안한 생활방식이 느껴진다.

 

고갱이 아름다운 타이티여성들과 원시적이며 황홀한 노년을 보낼 당시

고호는 외로운 정신병원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죽음을 맞이 하였을 것이다.

 

 

 

난 고갱보다 고호의 그림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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