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5/01

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31
    인사발령이 나다(13)
    자일리톨
  2. 2005/01/31
    말아톤 - 정윤철(2005)(7)
    자일리톨
  3. 2005/01/27
    7인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홍세화 외 6인(2004.6월)(16)
    자일리톨
  4. 2005/01/27
    하얀가면의 제국 - 박노자(2003)(2)
    자일리톨
  5. 2005/01/26
    퇴근하기전(14)
    자일리톨
  6. 2005/01/26
    [펌]김규항의 예수이야기
    자일리톨
  7. 2005/01/25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다.(16)
    자일리톨
  8. 2005/01/23
    어제 오프모임 사진(20)
    자일리톨
  9. 2005/01/23
    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자(5)
    자일리톨
  10. 2005/01/17
    주말이면 어김없이 걸리는 병...(13)
    자일리톨

인사발령이 나다

오늘 인사발령이 났다.

나는 그동안 일하던 팀에서 나와 다른 팀으로 배치되었다.

앞으로 할 일은 부르주와를 위한 논리개발...

앞으로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고민이다.

오늘 발령받은 팀으로 가 인사를 드리는데,

하는 일도 그런데다 분위기도 가부장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에

자발적인 추가근무를 해야하는 분위기여서 한숨만 나왔다.

호시절은 다 갔나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말아톤 - 정윤철(2005)

* 이 글은 알엠님의 [말아톤] 에 관련된 글입니다. 

 


여자친구(내 여친은 조승우 광팬-_-;;)한테 끌려가서 봤는데, 우연히 영화 시작하기 전에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나와서 관객들에게 인사하는 팬서비스까지 받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아한 매력이 더해가는 김미숙씨를 보며 헤벌레해 있던 나는 다른 주연배우들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까지 들었는데, 그 이유는 조승우가 등장하니까 상영관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아톤은 매우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동적인 에피소드들을 군데군데 삽입해놓아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고, 특히 조승우와 김미숙의 뛰어난 연기덕에 많은 관객들이 울고 웃으며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조승우... 데뷔후 놀라울정도로 성장해 버린 것 같다. 오늘 영화를 보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남자배우 1순위에 올려놓았다. 물론 나의 0순위에는 벌써 이얼, 김강우, 박해일, 김병석라는 4명이 들어차 있지만 말이다. ㅎㅎㅎㅎ

 

오늘 관객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예술의 힘'이랄지 그런 것도 생각해봤다. 글이나 인터넷홍보 등을 통해 "자폐는 병이 아니에요. 장애일 뿐이에요", "장애우를 위한 부담을 그 가족에게 모두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해요"라고 아무리 외쳐도 들은 척도 안 했던 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이 영화 한방이 많이 바꾸어 놓은 것같다. 소설, 연극, 영화 등등의 내러티브 장르는 대중들의 감동체험을 그 목적으로 한다. 감동에서 인식의 전환을, 그리고 행동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작품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한국의 모든 영화인들에게 희망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7인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 홍세화 외 6인(2004.6월)

 

04년 3월에 있었던 한겨레신문사 주최 강연회 내용을 정리하여 펴낸 책이다. 기획이 괜찮다. 덕담이나 몇마디 내뱉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말도 안되는 토론을 벌이다 시간핑계를 대고 어중간하게 끝내버리는 토론회 내지는 포럼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이런 종류의 대담집, 강연회정리집은 꾸준히 나와야 한다. 퍼슨웹과 같은 인터뷰중심의 글들도 그래서 높이 평가해주고 싶다.

 

04년 3월이면 한창 탄핵정국으로 시끄러웠을 때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에 "이 바쁜 와중에도 나와주신 방청객들께 감사드립니다.."등등의 말이 많이 나온다. 연사로 나온 사람들은 박노자, 한홍구, 홍세화, 하종강, 정문태, 오지혜, 팔레스타인에서 온 다우드 쿠탑이라는 언론인 7인이다. 7명의 연사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하종강, 박노자였다.

 

하종강 선생님은 가끔 한겨레21에서 칼럼만 읽었을 뿐 잘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노동문제에 대해서 알기 쉽게 청산유수로 뿜어내던 그의 말을 듣고 놀래버렸다. 사무실에서 신문을 보고 너무 맥이 빠져 있었는데 하종강 선생님의 "고통스러울 때는 우리 역사를 긴 호흡으로 지켜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라는 대목을 읽고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그는 진정 "꾼"인것 같았다. 오~ 하종강아저씨 생긴 것보다 더 멋져요~!

 

참, 사회자 김갑수는 재미있게 강연과 Q&A를 이끌었다는 느낌이 들긴 했으나, 가끔씩 너무 뻘타(?)를 날리는 모습이 퍽 좋지는 않아 보였다. 쇼맨쉽의 과잉인가? 아니면 생각이 조금 짧은건가? 아님 후까시를 너무 잡았나? 암튼 그런 느낌이 복합적으로 들더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하얀가면의 제국 - 박노자(2003)

 

이 책은 박노자 교수가 "서구중심의 역사를 넘어"라는 주제로 한겨레21에 쓴 글들을 엮은 책이다. 박노자 교수는 이 책에서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서구를 무조건 합리적이고 자유롭고 우월한 체제로 보는 우리의 시각을 뒤집어 버리고, 알게 모르게 스며든 우리의 하얀가면(서구중심적인 시각)을 통렬히 비판한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과 서양의 문제가 아닌, 근대를 보는 하나의 시각이다. 그리고 이는 근대화라는 자본주의화과정을 먼저 거침으로써 강고한 물질적 힘을 소유한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을 효율적으로 관리,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리고 그 기반을 이루는 것은 인종주의, 우생학, 쇼비니즘과 같은 일견 비합리적인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시각은 반주변부에 속하는 우리에게도 스며들어 있는데, 아류제국주의국가가 제국모국보다 더욱 심한 제국주의적 통치를 자행하는 경향을 놓고 볼 때, 큰 문제라고 할 것이다. 앉은뱅이병에 걸린 태국노동자들, 해일참사뉴스를 보면서 "저 못사는 것들은 뻑하면 몇만명씩 죽어나가지..."라고 웃어넘기던 옆테이블 아저씨들, 이슬람에 대한 터무니없는 편견들...

 

다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덧)멀치아 엘리아데가 그런 놈인지 몰랐다. 대학때 '聖과 俗' 재미나게 읽었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이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명암에 대해서도 그렇다. 쳇!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퇴근하기전

뻐근한 몸을 추스려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조금 일하다 점심먹고

또 조금 일하다 고개를 드니

창문밖에는 어느새 검은 커튼이 내려져 있다

허무하리만치 잘도 흘러가버린 시간들

 

어차피 월급받기 위해

하수도구멍으로 내려가는 물처럼

흘려보내야할 시간이긴 하지만,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찾아서 하며

보람을 얻고싶은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처음 회사에 발을 들여놓을 때는

'그래 딱 5년만 일하자'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10년'이 되고... 지금은 기억조차 안난다

 

대신에 하나둘씩 늘어가는 것은 책들과 음반

그리고 나의 허위의식이 늘어붙은 청구서들 청구서들...

 

하지만...

퇴근길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너무나도 배부른 욕심하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펌]김규항의 예수이야기

*출처:김규항씨블로그(gyuhang.net)

예수 이야기 1

예수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동시에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잘못 알려진 사람이기도 하다. 누구나 예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예수가 누구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건 무엇보다 예수와 (예수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의 거리에서 나온다. 사실 예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적은 없다. 그가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과 ‘하느님의 뜻’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고 그 때문에 죽임까지 당했지만, 바로 그 점에서 보듯 그의 활동은 ‘유대교 갱신운동’의 하나였다. 그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한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종교를 허물어 다시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의 뜻이 무엇이었든 그가 죽은 후 그를 창시자로 하는 종교인 기독교가 생겼다. 처음에 기독교는 예수가 그랬듯 하층계급 인민들을 위한 종교였고 그런 계급성에 걸맞게 가혹한 탄압도 받았지만 조금씩 성장해가면서 그 정체성을 잃어갔다. 기독교는 예수를 처형했던 로마의 국교가 되고부터 지배계급의 종교가 되어 세계를 점령해갔다. 점령은 예수가 죽은 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보듯, 인류가 겪는 가장 악랄한 사건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저질러진다.

 

한국에서 사정도 그리 나을 게 없다. 근래 몇몇 대형교회의 불거진 행태가 말썽을 빚고 있지만 그런 경향은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신앙관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한국엔 교회가 많다. 밤이면 온 세상이 붉은 네온 십자가들로 넘쳐 난다. 한국에 이렇게 교회가 많아진 건 박정희 군사 파시즘 이후의 일이다. 물론 그건 시간상의 우연한 일치가 아니다. 한국교회는 군사 파시즘의 홍위병이자 가장 충직한 선교사였으며 인민들의 사회의식을 배설하는 공간이었다.

 

“믿으면 받는다” 라는 한국 교회의 신앙관은 “하면 된다” 라는 군사 파시즘의 구호에 봉사했다. 한국 교회의 철저한 빨갱이 콤플렉스는 군사 파시즘의 존립 기반이던 반공주의에 봉사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는 관제 행사가 아니라면 여럿이 모이는 일조차 불편하던 시절, 인민들(특히 파시즘과 전근대적 가부장제의 이중적 억압에 시달리던 여성들)이 마음껏 소리치고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이른바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결국 한국 교회는 세계에서 가장 저급한 신앙관을 자랑하게 되었고 그 저급한 신앙관은 다시 가장 반동적인 사회의식으로 작동한다. 오늘 한국 인민들의 반동적인 사회의식을 생산하는 가장 결정적인 도구는 ‘수구신문’이 아니라 교회다. 오늘 한국에서 교회 문제는 더 이상 ‘종교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진지한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에게 교회문제는 ‘운동과 별개의, 교회에 안 나가는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와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 문제는 한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단지 ‘교회문제를 비판하는 것’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런 비판은 결국 교회 체제의 내부에 기생하게 마련이다. 해결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던 예수의 선언처럼 좀 더 근본적인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건 “예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 질문만이 오늘 대개의 한국 교회가 교회가 아니라는 것, 교회를 빙자한 상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수 있다.

(노동자의 힘 기관지 연재. 이 글은 예수전은 아닙니다.)

 
예수이야기 2

 

당연한 말이지만, “예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선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건 예수를 종교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와 무관하다. 예수를 그리스도라 떠받드는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해선 무관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알고 나서 그리스도로서 예수가 있는 것이지 어떻게 살았는지 누구인지조차 모르면서 무작정 예수를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라 떠받는 건 우스꽝스런 일이다. ‘사람의 아들’ 예수가 없다면 ‘신의 아들’ 예수도 없다.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가장 유력한 자료는 역시 신약성서의 맨 앞에 실린 네 개의 복음서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이다. 그 가운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 셋을 ‘비슷한 관점’에서 씌어졌다고 해서 ‘공관(共觀)복음’이라 부른다.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보다 훨씬 더 종교적으로 채색된 것이다. 공관복음 가운데 가장 일찍 씌어진 건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70년경에 씌어졌다. 마태와 누가복음은 마가복음보다 늦게, 마가복음을 기본 자료로 씌어진 것이다. 마태, 마가, 누가 복음이 ‘공관’을 갖게 된 것도 마가복음이 먼저 씌어지고 나머지 둘이 그것을 기본 자료로 해서 씌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같은 관점을 가진 복음서가 세 개나 존재하는 걸까? 그것은 복음서가 씌어진 목적 때문이다. 복음서는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는 것보다는 그것을 쓴 작가가 소속된 교회공동체의 ‘신앙 고백’의 차원에서 씌어졌다. 각각의 교회공동체들은 저마다 조금씩 처지와 사명이 달랐고 그에 걸맞게 신앙관도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같은 관점이지만 조금씩 다른’ 자신들의 복음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복음서의 그런 성격을 둘러싸고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논쟁이 있어왔다. 아예 복음서를 통해 ‘예수의 생애’를 파악하려는 게 잘못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복음서가 역사적 사실을 서술하려고 씌어진 게 아니라고 해서 곧 그 내용이 전적으로 역사적 허구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복음서는 예수에 대한 각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이며 그것은 무엇보다 예수의 생애를 근거로 한다. 복음서는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예수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언하는 가장 진솔한 기록인 것이다.

복음서, 특히 공관복음서의 배경이나 맥락을 함께 읽는다면 우리는 2천 년 전 집도 절도 없이 팔레스타인 땅을 유랑하다 초라하게 죽어간 한 사내의 모습을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일자무오설’이니 ‘축자영감설’이니 해서 성서에 씌어진 한자 한자 그대로가 하느님의 영감에 의한 것이니 사람이 그것을 분석하려 드는 건 위험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얼핏 경건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그런 주장은 실은 ‘하느님의 영감’을 ‘인간의 영감’으로 재단하려는 태도일 뿐이다.

 

생각해보라. 한낱 사적인 대화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의 말과 그 말이 갖는 배경이나 맥락을 동시에 들으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은 우리에게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의식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해야만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성서처럼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가장 최근에 씌어진 부분이 2천여 년 전에 씌어진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만 읽는다는 건 그 안에 담긴 뜻을 읽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예수이야기 3

 

연대를 표기하는 방법은 한 사회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북한은 김일성이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하며 남한에서도 민족애가 강한 사람들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새운 해를 기원으로 하는 ‘단기’를 쓴다. 올해는 주체 94년이자 단기 4338년이다. 그러나 오늘 일반적으로 쓰는 연대표기 방법은 서력기원, 즉 ‘서기’다. 서기는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원으로 한다. 재미있는 건 예수가 태어난 해는 서기 1년이 아니라 기원전 4년 경이라는 것이다. 525년 교황의 명을 받아 서기를 계산해낸 수도사(디오니시우스엑시구스라는 긴 이름을 가진)의 실수로 그렇게 되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인 성과를 얻기 시작한 건 현대에 들어와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별 진척이 없었던 첫번째 이유는 기독교를 국제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바울이 역사적 예수보다는 그리스도 예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도 죽음을 당할 만큼 험악했던 당시의 사회적 정황에서 정치범으로 죽은 예수를 ‘탈현실화’하는 그의 방식은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그 덕에 기독교(카톨릭이든 개신교든)는 역사적 예수를 소홀히 하는 전통을 갖게 되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로다.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가 신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니다.

좋든 싫든 이 글을 읽는 상당수의 동지들이 외울 수 있을 ‘사도신경’의 전문(개신교판)이다. 여기엔 예수가 성령으로 잉태해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이야기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는 있지만 정작 예수의 삶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다. 예수는 시종일관 머리 뒤편에 둥그런 불이 켜진 신인 것이다. 노동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일찍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대식구를 건사해야 했던 평범한 팔레스타인 청년의 30여 년은 흔적조차 없다.

 

만일 바울이 좀 더 역사적 예수에 집중했다면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을까? 꼭 그랬을 것 같진 않다. 예수는 2천년 전, 우리로 말하면 바야흐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겨나던 무렵의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이나 행적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사고방식은 그런 고대사회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것이다. 예수의 사상과 행적엔 사회주의, 페미니즘, 아동인권, 생태주의 같은 인류가 이룬 가장 최근의 정신적 진척들이 이미 가장 조화로운 형태로 들어 있다. 그를 직접 보았다 해도 그런 개념의 씨앗조차 없던 사람들이 그를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예수와 같은 경우는 역사 속의 모든 위대한 인물들을 통틀어 봐도 찾기 어렵다. 사람이란 자기가 속한 사회의 지배적인 정신을 근본적으로 거스를 수 없다. 어느 한 부분에 매우 급진적인 사람이라 해도 다른 부분에서는 여전히 지배적인 정신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사상과 행적의 면에서 예수와 비교해서 말할 만한 수운 최제우가 1824년생이라는 걸 생각한다면(수운은 예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예수는 참 놀라운 사람이다. 이제 하나씩 짚어보기로 하자.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예수이야기 4

 

‘주일성수’(主日聖守)라는 말이 있다.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가본 사람들은 들어본 말일 게다.(하긴, 이 극성스런 기독교 국가에 살면서 교회에 한 번도 안 나간 사람이 있을까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일요일에 다른 일 말고 꼭 교회에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주일성수는 특히 보수적인 교회에서 매우 강조한다. 그런 교회에선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가 안 나오는가를 신앙의 척도로 삼는다. 교회에 나오면 구원받은 사람이고 안 나오면 지옥불에 떨어질 죄인인 것이다.

 

주일성수는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규범이라 할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을 근거로 한다. 십계명은 기독교에서 만든 게 아니라 예수 이전, 즉 구약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탈출한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는다. 그 후 유대인들은 십계명을 자신들의 사회와 일상생활에 적용해가면서 세세하게 발전시켰다. 예수 당시에 이르러 율법(십계명)은 어떤 법이나 윤리와도 견줄 수 없는 유대 사회의 유일한 생활규범이 되었다.

 

율법을 지키며 사회에 적용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바리새’는 ‘분리하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그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지켜서 자신들을 거룩하게 분리시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을 세분화하여 6백여 개의 세부 조항을 만들었는데 그 조항들은 대부분 ‘금지하는 것’이었다. 안식일에 대한 조항만도 39개나 되었다. 율법에 따르면 안식일엔 노동을 하거나 농사도 짓는 건 물론 여행을 하거나 짐을 운반할 수도 없었다. 안식일엔 심지어 의료 행위도 할 수 없었다.

 

39개의 조항엔 다시 수백 가지의 ‘사례집’이 달렸다. 이를테면 안식일에 사람이 무너진 담벼락에 깔렸을 경우에 대한 답은 이렇다. “1.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아 볼 만큼만 무너진 담을 헤쳐 본다. 2. 그 사람이 살아있다면 구할 수 있으나 죽었다면 안식일이 지난 다음 시체를 꺼낼 수 있다.” 우리로선 웃음이 나올 만하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런 조항을 목숨처럼 진지하게 지키며 살았다.

 

예수와 그의 제자들은 걸핏하면 안식일을 어기곤 했다. 예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면서 예사롭게 밀 이삭을 따먹었다. 그것은 율법적으로 추수, 타작, 키질, 음식 장만의 네 가지 조항을 한꺼번에 어기는 행동이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다 노동하던 청년들인데 고작 밀 이삭으로 배를 채울 수 있었겠는가. 그건 거룩한 사람들을 엿 먹이는 시위였다. 그들의 스승 예수는 한 술 더 떴다. 예수는 안식일에 버젓이 환자를 치료했다. 그 환자들은 당장 목숨이 위급한 환자들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앓아온 만성병환자들이었다.

 

불한당 같은(예수의 별명 가운데 하나는 ‘먹고 마시길 즐겨하는 자’였다.), 그러나 매우 빠른 속도로 인민들의 호감을 얻어가는 예수에게서 뭔가 꼬투리 잡을 기회만을 노리던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에게 “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느냐” 따졌다. 예수는 그들에게 대꾸한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생겼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생기지 않았습니다.”(마가 2:27) 예수는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 사회적 스캔들에 대해 설명하거나 타협하기는커녕 ‘할 테면 해봐라’ 식의 태도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 비판이란 체제가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만 안전한 것이다. 물론 예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동자의힘 기관지, 계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사동에서 친구(들)을 만나다.

인사동에서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2달전에 결혼한 그 친구는 지금이 참으로 행복하다 하였다.

모 단체의 상근자인 그로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며 맛난 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다음달에 하이타이를 들고 그 친구의 집들이에 가기로 하였다.

친구와 헤어져서 걷다가 길거리에서 우연히 여자친구와 상봉하였다.

나 또한 오늘밤은 행복하였다.

 

윗글을 읽어보니 유치하였다. - 자일리톨 백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어제 오프모임 사진

*이것은 리버미님의 쿵후허슬보기off와 관련된 사진입니다.

 

★1차 고대학생회관(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 후원의 밤)에서..

 

[사진1 "블로거끼리 한컷~ 찍사가 좋아 명작이 나왔다"]



[사진2 "참석블로거끼리 또 한컷~ 지나가던 행인을 협박(?)하여 모두 찍을 수 있었다. 아래편에 조커님의 손도 보인다"]

 

 

[사진3 "담배피우다 스머프님에게 딱 걸리다"]
 



[사진4 "리버미님의 눈썰미덕에 오프라인에서 상봉한 정양님. 자칫했으면 이산가족으로 남을뻔했다"]



 

[사진5 "진보블로그 지하에서 암약하다 드디어 땅위로 올라오신 언더그라운드님"]

 


[사진6 "스머프님과 차일드캐어님이 다소곳이 한장~"]




[사진7 "차일드캐어님과 산오리님의 술상을 넘어서 한장~"]

 


[사진8 "먼곳을 응시하며 詩想을 떠올리는 산오리님. 여기서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사진9 "극구 사진을 찍지 않으려던 조커님. 카메라 렌즈를 잘도 피해다녔다"]




★2차 안암동 모처에서..

 
[사진10 "열변을 토하시는 차일드케어님"]



 

[사진11 "흐릿한 불빛아래 드디어 조커님이 모습을 보였다"]


 


[사진12 "다시 돌아온 지하세계에 안락함을 느끼던 언더그라운드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제대로 된 요리를 해먹자

유치원도 들어가기전이니까 6살정도 되었을까? 그때 내가 만들 줄 아는 유일한 음식은 라면이었다. 어느날 엄마가 매우 급한전화를 받고 외출을 하면서 "점심은 네가 좀 알아서 챙겨먹어"라고 했다. 그런데 찬장을 봐도 라면이 보이지 않았고, 전기밥솥엔 밥도 없었다. 지금같아서는 밥도 앉히고 찌개도 새로 끓여서 먹었겠지만 그땐 정말 암담했다. 그저 무작정 엄마가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온 엄마에게 난 밥부터 달라고 칭얼댔다. 엄마가 놀라며 "점심때 밥 안 먹었어?"라고 되물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급한 외출을 할 때마다 먹을 것을 준비해놓거나, 용돈을 조금 주면서 사먹으라고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현재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때의 일이 갑자기 떠올랐다.

대학시절 난 운동을 하는 친구들 주변에서 맴돌았다. 내 곁에는 항상 자신의 인생의 무게보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가 그들의 짐을 함께 들어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나는 여느 대학생들이 그렇듯, 세상에 나갈 세속적인 준비를 남들만큼은 했고, 또 때가되어 졸업했기에, 지금의 일상은 친구들에 비해 기름지고 안락하다.

 

그럼에도 지금 "진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과 실오라기만큼의 끈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부채의식 때문이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니라고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의 말이 맞다. 나는 그 친구들에게 무언가 빚을 진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블로그를 통해서나 내가 주기적으로 나가는 모임을 통해서, 실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고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실망스럽고 때론 아프기조차하다.

 

어제는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책이나 영화는 라면과 같은 일종의 가공식품이라는 생각을. 세상은 갖가지 요리의 재료처럼 다채롭지만 그 속에는 나쁜 재료도 있고 조리과정에서 손을 베이거나 데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과정이 두려워 작가가 나름대로 소화한 책이나 영화를 통해 편리하게 낼름낼름 라면만 끓여먹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선택한 특정작가표 라면은 항상 내게 일정 정도 이상의 심리적, 지적 만족감은 안겨준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의 실제는 아니다...

 

때문에 이젠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어야겠다. 가끔 손을 베이고 배탈이 나더라도 세상 그 자체는 향기로운 풀들과 기름진 고기, 그리고 담백한 생선들까지 너무나도 다채로운 재료를 가지고 있는 곳일테니.

 

여섯살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덧1)실로 많은 일들로 인해 머리가 혼란스럽다가, 오늘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가끔 한편의 글이 사람보다 더 큰 힘을 주는 걸 보면 전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가 봅니다. 그 글과 "루시드 폴"이 백주대낮에 이런 산만한 글을 쓰게 만드는군요. 핫~ @.@;

 

덧2)리버미님 계좌번호 꼭 가르쳐주세요. 오늘 카드를 써보니 되네요. 어제는 아마 은행시스템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꼭이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주말이면 어김없이 걸리는 병...

난 주말이면 어김없이 병에 걸린다.

이름하여 신체리듬문란병

 

금요일 퇴근하면 너무나 기쁜 나머지 그냥 자기 뭣하쟎아?

그래서 친구랑 늦게까지 놀거나

집에 들어와서도 영화보고, 읽을 것 좀 뒤적뒤적 하다보면

어느새 서너시...

그렇게 금요일, 토요일밤을 보내고 일요일에 낮잠 좀 자고 나면

일요일 밤에는 잠이 안 온다

 

어제도 시계가 4시반을 가리키는 것까지 보고 잠이 들었는데

출근을 하니 내 몸이 아직 시차적응에 실패해서인지

정신이 멍멍하다

오후가 되도 머리가 멍한 증상은 없어지질 않네

에라, 커피나 마시자

 

그래도, 주말이면 밤이 좋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