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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6

# 아침

새벽녘에 집으로 들어왔다.

자꾸 가위에 눌린다는 동생 부탁에 녀석 옆에서 함께 자기로 했는데

요 녀석 요 녀석

아침 내내 알람에 전화에 집 전화에.

하마터면 때릴 뻔.. -_-

엿튼 느즈막히 일어났으나 몸은 찌뿌둥

 

#비

약속에 늦어 서둘러 다다다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집에서 출발할 때만해도 내리지 않던 비가 갑자기 쏟아지는데

넓디 넓은 광화문 사거리,

길 건너편에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바람에 방향에 따라 우산 위치를 왔다갔다.

사람은 많고 우산방향은 함께 움직이는데

내 귀에 꼽혀있던 음악 소리에 맞춰 뮤지컬을 찍는듯.

 

#엄마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훌쩍이는 목소리.

왜, 왜 그러는데.

그냥 날씨가 그래서. 기분이 이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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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5

0.

빨래를 두어 번쯤 돌리고 나니 그나마 집이 조금 정리되고 있는 느낌이다. 며칠간 아니 한 이주쯤은 손도 못 대고 방치되었던 이 집은 아마 조만간 아예 이별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작고 아담한 방이 생겨서 좋았었는데 어차피 제대로 돌보지 못하기도 했으니 아쉬워할 건 별로 없을지도.

 

1.

쉬고 싶다고 한 백 번쯤 외친 거 같은데 막상 오늘 시간 여유가 나니 또 해야 할 일들이 엄습해온다. 사실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었던 일이니까 뭐 별로 할 말은 없지만 그 와중에도 그 할 일 안 하고 블로그를 열다니. 쯧쯧 게다가 점점 초췌한 글들만 주절거리고 나불거리고 있다. 사실은 여기에 울적하게 써 놓는 거보다 한 백 배쯤 재미있게 살고 있다.

 

2.

이번 방송을 만들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고 깅과 얘기했는데, 실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뭘 하든 가장 첫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 중요한 사실이지만 종종 잊게 되는 것. 들어간 품은 많았지만 그만큼 재밌었던 시간이었다.

 

3.

들소리는 막방을 올리고 이사를 하고. 그 와중에 이사한 집에도 한 번 들르지 못했다. 무 핑계야 대려면 한정없을테지만 내가 좋아하고 함께하고 싶은 공간에, 혹은 그 사람들에게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은 슬프다.

 

4.

탄력 받았을 때 밀어부쳐야 해, 라고 머리 속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만 게으른 몸은 여전히 움직일 줄 모른다. 다시 스타트 하는 시기는 다음주 수요일로 잡았다. 그 이전까지는 죽은 듯이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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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9

어지러워.

 

어지럽지 않았는데도 문득 그렇게 말을 내뱉고 나니 정말 어지러워졌어. 어지러운 방을 봐도 어지럽고 정리되지 않은 구성안을 봐도 어지럽고 만들어야 할 교안이나 연락해야 할 사람들의 리스트만 봐도 어지러워. 1년 넘게 피지 않던 담배를 다시 집어들고 한대 푸 물고나니 또 어지럽고 어지러워.

 

손톱을 깎고 머리를 감고 설거지를 하고 카메라의 베터리를 충전하고 엘워드를 다운받으며 맥주를 마시고 어지러운 방 한 켠에 내가 누울 자리 정도만 대충 짐을 밀쳐 놓았는데도 계속.

 

꿈에 대추리 할머니들이 잔뜩 나왔어 웃는 얼굴이 선한 할머니들이 꿈 속에서 한참을 우시고 또 우시고 걱정어린 한숨만 푹푹 쉬시는 통에 일어났는데도 마음이 저릿저릿 그래.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내복 바람에 민화투를 치던 모습만 생각나는 한 할머니는 서울 한 거리에 앉아 길가의 나무를 쳐다보셨는데 그게 너무 슬퍼서 나는 꿈 속에서도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가슴만 꾹꾹 누르다 말고.

 

지겨운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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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6

빨래를 돌리고

필요한 곳에 전화를 돌리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빨간 줄을 죽죽 긋고 있는 지금

 

니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어?

그의 물음에 왜 나는 재깍 대답하지 못했을까를 고민 중

무기력한 하루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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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나도 초대

schua님의 [초대합니다] 에 관련된 글.

처음으로 다큐멘터리 작업을 근처에서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사람들의 열정과

또 출연자(?)들 간의 관계가 놀라웠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이후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아마 그런 것들이 나를 혹하게 했을지도 모른다고,

요즘 종종 생각해 본다.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를 고민해보다가

오래 전 일기장에서 "꼭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될 거야"라는 구절을 발견했을 땐

아니! 이런 운명적인 일이!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뭐 일기장엔 수많은 꿈들이 적혀 있었겠지만 ㅎ)

 

여차저차해서

아무 경험도 없던 나는

슈아와 함께 장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물론 그렇지만 처음엔 더 뭐가 뭔지 몰라서

카메라도 못 피하고 인터뷰 촬영도 이상하게 하고 촬영 분량만 많고 별 쓸게 없기도 하고 그랬다.

하면서 힘도 많이 들었고 지치기도 했다. 나는 왜 이거 밖에 못하나라는 생각을 골백번도 넘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재미도 있었다.

슈아 말처럼 산 넘어 산이긴 했지만

다큐에 등장하는 언니들을 만나는 시간도 좋았고

화면들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래도

여하튼

작게나마 함께 작업을 한 다큐멘터리가

첫 극장 상영을 하려고 한다.

내가 만날 "좋아요, 괜찮아요" 이런 말만 해서

슈아는 "우리 조연출은 너무 소박하다"며 아쉬워했는데

난 그냥 모든 경험들이 신기할 뿐이다. 후흐

많은 사람들이 와서 보고

많은 이야기들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4월 6일 6시랑 4월 12일 5시에

신촌 아트레온에서 상영한다.

 

자세한 정보는 여기 를 참조.

티켓을 얼마나 준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사비를 털어서라도 (쿨럭) 노력해 볼테니

많이들 와주삼.

 

영화제가 끝나면

슈아랑 어디 봄나들이라도 가서 회포를 풀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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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타결의 득과 실?

어제 TV는 온통 FTA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다들 긴급 토론회를 편성하고

정부 관계자나 반대 여론을 가진 몇 의원이나 시민 단체 사람들을 앉혀놓고

이미 타결된 FTA가 득이냐 실이냐를 따져대고 있었다.

 

에스비에스에 나온 협상자 중 하나인 홍석우(산자부 무역투자정책본부장)란 놈은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정말 잘 한 협상이라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제 입으로 정말 말하기 그런 얘기를 지껄였다.

 

또 민동석(농림부 차관보)라는 놈은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는 문제에 대해서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따지면 문제가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모든 일이 한 가지 관점으로만 보면 그런 거니까 다양한 관점으로 봐달라" 말했다.

무려 농림부 차관보라는 인간이.

국민의 건강과 위생은 그저 한 가지 관점일 뿐이라는 거다.

 

도저히 봐 줄수가 없어서 채널을 자꾸 돌리면서도

대체 뭔 얘기를 지껄이나 해서 또 다시 보다보면

나오는 건 욕이요, 속은 뒤집혀 메슥거렸다.

 

 

무엇이 득이고 무엇이 실이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화가 난다.

엄청나게 많은 득이 있다한다해도

지금 농업이나 의료, 문화 분야를 그 '득'이라는 것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이게 무슨 수학 공식처럼 이 쪽에서 빈 걸 이쪽에서 채우는 것으로 평균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심지어 다른 한 쪽마저 빈 부분을 채울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말이다.

 

국민의 건강권까지 팔아먹는 것을 누가 대통령에게 위임했는가,

라는 노회찬의 말처럼.

나는 아무 것도 위임하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놈의 국민 투표라도 할 생각을 했는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려고나 했는지..

 

아후 승질난다.

이제 뭐 먹고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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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현현님의 [부끄러운 인생2] 에 관련된 글.

2007.03.28. 작성


0.

되는 일이 없는 날이었다.

날씨조차 도와주질 않아,

우박을 맞고 비를 맞았다.

아프고 추웠다.

 

1.

알티비 앞에서 일인시위를 했다.

알티비에 엑세스를 하는 방송팀으로서, 하기로는 했지만

사실은 이게 별 압박이 될 수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2.

그 한 시간 사이 일어난 일.

-로비에서 나가라는 경비 아저씨와 실갱이.

생글생글 웃으며 나가지 않고 버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피켓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감.

-청소하는 아주머니와 사건에 대한 한참동안의 대화

"말끔하게 잘생긴 놈이 왜 그랬대. 아유 나쁜놈. 그 놈이 이 안에 있어?"

 

3.



성폭력 사건이니 만큼,

피켓을 들고 있는 '여성'인 나를 바라보는 눈길도 만만찮음을 느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쯧쯧, 혀를 차며 지나갔고,

어떤 젊은 여인은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보고 피켓을 한 번 보고를 두 어번 반복했고,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이, 어머 너무 안 됐다, 저 여자,

라고 말했을 때

사실 울컥, 했다.

'이봐요. 내가 아니에요.'

내 마음은 어느새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서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꽤나 복잡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왜 그 순간 나는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꼈는가,

왜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가, 에 대해

계속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은 그녀의 행실이 그러하여 그리 되었다, 라는 편견에

나조차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아주 뭣 같아졌다.

 

나에게도 성폭력 피해의 경험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일도 있고,

말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던 일도 있었고,

말했으나 이해받지 못했던(혹은 내가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도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나는,

결국 나의 태도를 반성해야만 했었다.

내가 똑바로 하고 다니지 않아서 그래,

내가 너무 사람들을 잘 믿었던 거야,

내 잘못이야.

나는 아직까지 그런 생각들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얼마전 한 친구에게 그런 경험들 중 하나를 이야기했을 때에도,

사실은 그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무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피켓 속의 이름 없는 그녀는

나이고, 그녀이고 우리다.

나 역시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을 당할 지 모르고

실제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런 두려움 속에서 산다.

그 날 내가 들고 있던 피켓 앞에서

내 얼굴과, 활짝 웃고 있는 이형모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내 얼굴을 보고 혀를 끌끌 차고 갔던 그 아저씨는, 어쩌면 평생가도 모를.

 

우울해도 기운을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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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당신의 고양이님의 [옛날 옛적에] 에 관련된 글.

춘향전의 완본을 읽었을 때의 화끈화끈 *_* 이나

심청전 완본을 읽었을 때의 무시무시함.

해피엔딩으로 끝난 줄 알았던 '동화'들이

완본에서 그 현실의 징그러움을 그대로 드러낼 때

그 때 정말 나이 먹는 건 참 슬픈 일이군,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난 어렸을 때도 좀 삐뚤고 따지기 좋아하는 아이였던 것 같다.

당고 포스팅을 보고

어렸을 때 썼던 독후감이 생각나서 급 포스팅.

(사실은 일이 하기 싫은 거야...ㅠ.ㅠ)



<심청전>을 읽고
     부처님은 요술장이

부처님
왜 그렇게 마음씨 착한 심청의 아버지를 그냥 눈을 뜨게 해주시지, 공양미 300석을 드려야만 고쳐주시려고 했는지 궁금해요.
배가 고파서 그러세요?
그리고 왜 장님으로 태어나게 하셨나요?
심청이가 어딘가에 살면 아주 따뜻한 어머니가 계셨으면 좋겠어요.
부처님
저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빌어요. 물론 아주 좋은 곳에도 살고요.
부처님
이젠 그런 사람이 없도록 해주세요.
부처님, 그럼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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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또또

여긴 내 구역이닷.

 

엉! 무슨 일이야!



자, 이 빗으로 날 빗어줘.

 

너희들을 항상 지켜보고 있어! (대략 2m 넘는 높이)

 

이제 잘거야. 꽃니불에서.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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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뭐 새삼 이제사 이름을 바꾼다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서 새삼

새삼으로 바꾸기로 했다.

매우

즉흥적으로 말야.



 

내게 젤 먼저 생겼던, 엄마 아부지가 함께 지어준 이름은 智民 이다.

슬기로운 백성, 혹은 슬기롭게 백성과 함께

뭐 대략 그런 뜻이라고 들었다.

 

열여덟살때 즘, 엄마는 내 이름을 知旻 으로 바꾸어주었다. 획수가 좋다고 그래서였는데,

뭐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예전에 학교 수업 때문에 점을 보러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을때, 이름점을 보는 곳에서 내 원래 이름보고 온갖 나쁜 말을 퍼부어대기도 했으니, 하늘을 안다는 좀 부담스러운 새 이름도 나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 때 들었던 한 수업은

자신의 호를 정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였다.

고전문학 수업이었기 때문에 한자로 된 를 정해야 했는데

한자에 젬병이던 나는 결국 기한을 한참 넘기고 말았고

온화해 보였지만 끈질겼던 선생님은 결국 마지막 한 사람까지 발표를 시켰다.-_-

나는 고심 끝에 '모리'라는 호를 정했다.

발음만 보면 일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나, 자진모리 휘모리 같은 걸 연상시키긴 하지만

한자로는 暮唎 다.

저무는 소리, 저녁의 소리, 뭐 대강 그런 뜻이다.

당시 좋아하던 장 모 시인은 나 모 시인과의 대담에서

침묵은 아무 소리도 없는 것이 아니라 소리가 꽉 찬 상태,

곧 저녁 해가 질 무렵의 소리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난 저녁의 소리를 가진 사람, 침묵할 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처음 찾은 호는 당연히도 석음(夕音).

근데 너무 발음이 안 예뻐서 조삼모사에서 '모'자를 찾아내고

작은 소리란 뜻에 리를 찾아내서 모리를 만들었다.

자꾸 부르니까 예쁜데, 아무도 그렇게 안 불러줘서 -_- 내 작은 서브 노트북에 이름을 모리라 짓고 계속 불러줬었다.

 

그러다 블로그가 생겼다.

그 전에 웹에서는 정말 다양한 이름을 썼었는데

여기선 처음에 주소를 번역한 '얼음곤냥이'라는 별명을 썼다.

근데 줄여서 부르는 것도 안 예쁘고 쓰기는 귀찮게 길어서

작년에 로리라는 이름을 썼다.

로리는 좋다. 예쁜 이름이고 예쁜 사람을 빗대었던 것이라 좋았다.

그러나 로리콘의 약자인데다가 -_-

알~ 발음은 어려우므로 ㅋㅋ

 

뭐 주저리주저리 썼는데

이름을 갑자기 바꾸기로 한데는 사실 아무 이유가 없다.

그냥,

정말 그냥,

내가 늘 뭔가를 새삼스레 느낀다고 생각해서다.

모든 게 새삼스럽다.

너도, 나도, 바람도, 눈도.

늘 새삼스레 세상을 보고 싶은 거창한 마음을 급변명처럼 붙여본다.

후후

새삼이라 불러줘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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