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간장의 삶

25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28
    문듯(2)
    간장 오타맨...
  2. 2005/03/13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갔다왔다.
    간장 오타맨...
  3. 2005/03/10
    이 곳에 내려와서
    간장 오타맨...
  4. 2005/02/28
    내가 이 공간을 만들고 지금까지...
    간장 오타맨...
  5. 2005/02/19
    어제 저녁 에큐메니칼 교회 연합회 목사님들을 만나다.
    간장 오타맨...

머리가 멈춘 것 같다.

  • 등록일
    2005/03/30 23:12
  • 수정일
    2005/03/30 23:12
머리가 모두 새하얀 지우개로 지워진 듯한 아무 생각도 느낌이 들지 않는다. 멍하고 아무 생각도 안난다. 결전의 날이 건만... 아자 담배 한대 피우고 차한잔 하고 힘내자... 주문을 걸어본다. 아자!아자!가자! 드디어 끝났다. 이제는 되도 그만이고, 안되도 그만이다. 1년 사업 방향성을 잡았다. 내 머리가 알고 있는 만큼 써내려 갔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 길을 지켜보며....

  • 등록일
    2005/03/29 23:08
  • 수정일
    2005/03/29 23:08
* 이 글은 새민중언론님의 [미디어참세상의 전사(前史)를 기록하며 -뉴스메이커 22호] 에 관련된 글입니다.

시를 읽고 미디어참세상의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참세상방송국, 참세상뉴스가 구분되어 진행되었을때 참세상방송국/참세상뉴스을 조금은 바온 터라... 카메라 깨먹고 그 카메라 보전하기 위해 일일주점을 하였을때 티켓을 팔아주고, 함께 약간 투쟁현장을 함께 나갔던 기억이 아른거린다. 노동넷에 있을때 참세상방송국과 참세상 뉴스가 서로 다른 단위로 움직일때.... 편집기를 대여해주고, 데크도 대여해줬던 기억.... 지금 지나고 나니 참 열악한 상황.... 일인 엔터테이너먼트와 활약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 그늘진 이들의 벗임을 자처하던 참세상뉴스의 2명의 상근활동가의 노고와 자원활동 기자의 노고가 없었다면 지금의 미디어 참세상을 뛰어넘는 민중언론의 비전은 제시되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늘 밤샘작업은 다반사였고, 투쟁하는 현장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달려가던 참세상 뉴스 기자의 노고 조금 지켜온 터라.... 그 활동이 잘되기를 바램해 본다. 함께 하였던 투쟁의 현장의 짧은 기억들... 노대를 함께 갔던 기억.... 재미났던 기억들이다. 그리고 철도노조 건국대에서 1박 2일 짧은 투쟁... 건국대 동아리방에서 잠자던 기억... 그리고 취재를 위해 왔던 참세상 뉴스 기자... 총파업 선언이후 한 5시간만에 역사적 총파업이 극적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멈춰선 전국철도노조의 좌절된 꿈고 함께 보았던 기억... 굶주림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이러한 맥아리 없는 투쟁의 판을 보며 부푼 가슴 쓰러내리던 기자의 심정이지 않았을까? 건대를 빠져나와... 굶주린 배를 풀기위해 들어갔던 닭갈비집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카드 난발을 잘한 나의 장기이지만..... 뭐 그때는 사무를 관장하여 돈 관리를 하던 때라 돈이 없어도 활동비를 줄여서라도 먹을 것을 잘먹어야 한다며 먹었던 기억.... 그때 내 체구 때문에 철도노조 조합원에 잡혀서 린치를 당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때가 벌써 시간이 지나 몇년 흘렀다. 아마 2002년도 였을 것이다. 이 사건 이후 발전노조 산개파업 38일이라는 기억이 난다. 난 민중언론이 되던 미디어 참세상으로 되던... 98년 출범하고 참세상이 만들고자 하였던 뜻.... 민중언론보다는 현장에서 뭍히거나 관심을 가지 않는 시선에 대한 사회화라 생각되어진다. 늘 누구나 가는 곳엔 기자들이 우굴대지만 참세상 만큼은 기자가 안가는 사업장을 골라 가면서 이 땅의 노동자 민중 계급들에게 이 사회의 불완전성과 자본의 위기 총체성을 알리는 언론으로서 아니 모든 노동자 민중 계급을 아우르는 언론으로서 다가가기 바란다. 입장보다는 그들의 정확한 뜻을 전달하고, 운동사회에 대한 잘못된 지점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직시하는 눈으로서 매김하기를 바램해 본다. 민중언론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기간 참세상방송국과 참세상 뉴스에 복무하였더 많은 활동가들의 노고 였을 것이다. 참세상뉴스와 방송국 활동하던 이들은 활동가이며, 액티비스트 였지만 투쟁하는 현장에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무수한 고민과 번민으로 쓰린 속을 다스리거나 술로 위로하던 활동가들이었다. 활동비가 거의 교통비로 소진되는 활동을 진행하였던 그들.... 돈보다 활동이 좋아 모였던 분들... 이땅에 미디어 운동 그리고 방송국이라는 작지만 큰 의미를 실천하기 위해 먼저 나섰던 길이 있었기에 지금 스트리밍 서비스와 텍스트 기반인 멀티미디어 환경에 대한 시선을 다수에게 알려나갈 수 있었다. 획득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쟁취한 참세상의 저력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98년도 부터 시작한 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이길에 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던 많은 분들..... 칼럼보다는 사회적 시선과 함께하는 노동자 민중의 목소리가 더 많이 자리를 차지하였으면 한다. 98년과 2002년도 비록 적은 인원으로 활동을 하였지만 현장의 목소리가 그래도 생생히 전달되는 언론이 었다. 텍스트와 미디어가 일정정도 상호보조적으로 매칭되었던 그 당시의 상황... 함께 술자리도 함께 하였던 기억... 그 당시 그래도 옆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여 재미났었다. 이땅의 노동자 농민들이 공권력에 무참히 깨질때도 고정된 시선으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쓰린 가슴과 복받쳐 오르는 분노를 가라 앉히고 활동가들의 마음을 읽어내거나... 자신의 입장을 말하며 참세상 뉴스에 대한 애착을 보였던 활동가들이 아직도 뇌리에 각인되어 있다. 참세상방송국분들과는 자주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참세상 뉴스 사람들과는 조금 어울리고 함께 술자리를 하며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진보넷 갈월동 숙대역 출구 앞에 생긴 훼밀리 마트에서 새벽 5시까지 마셨던 기억... 참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늦은 귀가 심야 좌석버스를 타고 가거나 술한잔 생각나면 함께 회의실에서 소주잔을 주고 받았던 기억들도 새록새록 난다. 그때 준비가 지금 민중언론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발전이라 생각하는 길도 돌다리 두드리듯 한걸음 한걸음 걸어갔으면 한다. 그냥 참세상방송국과 뉴스가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최소한 낮선 공간이 아니다. 민중언론이라는 것이 새로운 발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난 외형과 새롭게 추진한다는 것보다 그 역사성을 이어나가는 길.... 사회성보다 사회 낮은 곳 사람들의 소소하지만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그 곳에 민중언론이 다가갔으면 한다. 참세상의 정신은 낮은 곳에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과 함께하는 방송이기에.... 참세상만 갈 수 있는 곳이기에.... 그래서 민중언론이 명명가들 몇몇 글보다 그 소소한 투쟁하는 이들의 글로 치장되기를 바램해 본다. 그러다 보면 명칭적 민중언론보다는 내용적 민중언론이 될 것이라 확신해 본다. 참세상방송국과 참세상뉴스 활동가들의 소금땀 내음과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왔던 결과가 부디 잘되기를 소망해 본다. 아직도 힘들게 하는 미디어참세상 활동가들의 노고가 눈에 아른거린다. 아니 내가 봐왔던 참세상뉴스 지금 미디어국장의 소금땀의 결실이지 않을까? 생각을 가져본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 하루

  • 등록일
    2005/03/29 01:08
  • 수정일
    2005/03/29 01:08
어제 새벽 4시를 가르치는 초침을 보고 사무실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하였다. 의자에서 자는 것도 간만이지만 참 포근하게 사무실이 다가온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평수가 한 4평이 조금 넘으려나... 그러나 컴퓨터 3대 놓고 사용하고 회의할 수 있는 탁자까지 있으니 그래도 사무실 치고는 아늑한 공간이다. 오늘 경기도청 자원봉사 우수프로그램 신청서를 최종마감하고, 다시금 숫자를 컴퓨터 계산기에 두드리고 모든 마무리 마치고 도장을 찍고, 강의 계획안을 첨부하고... 하나를 오산 자원봉사센터에 갔다내고 왔다.


그리고 오늘 오산 장이 열리는 날이라 이리저리 시내가 분주한 가운데... 가을옷 하나가 눈에 들어와 그냥 충동구매를 하였다. 가격은 1만 5천원 옷값이 그래도 비싸지많은 않다. 시내 구경을 하고 5일장 구경을 할까 망설이다. 그래도 남은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일념하나에 충동구매한 봄 점퍼를 들고 룰루랄라 사무실로 왔다. 사무실 평온하다. 이주노동자 무료진료 사업을 오산시 보건소장이 개인적인 월권으로 해주지 않겠다고 하여 그럼 한판 붙어보자 할 요량으로 지역에 있는 공무원노조 형님과 소장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후 컴퓨터에 앉아서 일을 하려는데 졸려드는 잠에 취해 자세를 잡고 의자에 기대어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도통 불편하다. 밤에는 그럭저럭 잠자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낮에는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20분 잠이라기 보다 명상에 가깝게 눈을 감고...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써내려 가지 않았던 대목에 대하여 그림을 그려 보았다.. 이렇게 하면 될려나.. 아니 저렇게 하면 될려나... 아니 그러다 잃어나 되는데로 되라지하고 그냥 써내려 갔다. 폼이 매년 바뀌는 프로젝트.... 얍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작년에 없던 페이지 하나 턱 버티고 있고, 지원 항복 2개 항의 명칭이 바뀌어 있다. 뭐 달라진 차이를 못보겠는데 바뀌었다. 그리고 작년에는 2004년도 진행사업만 등재하면 될 항목이 2005년 항목까지 등장하고, 지원 받을 계획에 대한 소요비용까지 2005년도 사업계획안에 첨부하라고 쒸어져 있다. 계획안이 이전과 판이하게 다르지는 않지만 바뀌어 있었다. 행정주의 그리고 규격이라는 폼이 주는 짜증은 뭐 견딜만하지만 프로젝트 문서 쓰는데 자유롭지 못하고 틀에 박힌 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보내다 저녁을 맞이하였다. 오늘은 저당잡힌 일정이 있는 날... 중학생 5명에게 내 주제에 공부라는 것을 가르치는 날... 오늘은 아이들에게 그동안 빠졌던 날들에 대한 벌금을 모으는 날... 아이들이 벌금으로 피자를 먹으러 가잔다. 아이들 등산에 떠밀려 그냥 피자집으로 향하였다. 음 동네 노란피자라는 집이 생겼다. 그곳에 라지사이즈 피자를 시켰다. 여자 아이들이라 호기심이 발동하여서인지.... 피자가 어떻게 반죽되고 만들어지는지 피자 가게 기계를 쳐다보며 서로들 신기해한다. 거금 14900원 짜리 피자... 아이들 벌금 10000원 난 밥을 많이 먹은 터라 배도 불렀고 그리고 아이들이 먹는 음식...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하여 한점도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 위에 음식을 채워넣기에 저녁식사를 너무 맛나게 하였다. 그래서 여자아이들이 피자를 먹는 모습.... 그래 아마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할꺼라 그냥 생각해 보았다. 공부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캐리어엘지노조위원장이 한원CC 교섭과 관련하여 이야기와 담소를 나누기 위해서 오신 것을 보았는데.... 가신다. 인사를 하고 배웅을 한 다음 오늘 하나는 못해도 끝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공부방에 큰 난리가 났다. 아이들이 가뜩이나 힘든 선생님에게 컴퓨터를 더하겠다고 가지 않은 것이 화근이 되었다. 늘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뜻한 가슴으로 사람을 대하는 선생님.... 요즘 속성 사회복지사 사이버 대학 강좌로 매일 밤 나보다 더 늦은 시각 강의를 수강하고 집안 일하고 그리고 지역아동센터 보건복지부 지원금 관련 서류... 결식아동 급식비 오산시청 사회복지과 영수증 수발, 아이들 2과 2명을 한부모가정으로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다. 무척 고단하고 힘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늘 힘들다는 내색없이 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늘 마다하지 않고 하는 스타일... 일을 버리기 보다는 일을 보듬어 쌓았는 그런 분이다. 마음이 너무 착해서 마음이 너무 따스해서.... 아이들에게 마음에 있는 정을 다 퍼다 주려고 그렇게 열심히 하는 분에게 아이들은 실망을 가져다 주었다. 나무와 같은 선생님이 힘들어 하는 모습이 이내 내 눈에 비춰졌다. 늘 냉철한 이성과 과학적 사고라는 틀을 유지하였던 선배들과 대조적이지만 그들은 다 떠나고 삶의 현장에서... 노무현 지지를 위한 노사모 회원으로 되어 있지만 냉철한 이성보다는 따쓰한 감성과 따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는 선생님이 더 위대해 보이고 더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일이 너무 많아 과부화가 걸리셨다보다. 한마디 말보다 열번 실천을 하던 그분의 우직함에 때론 그러나 일나지 하던 말이 불씨가 되었나 보다. 그래 그래서 사람이야 지지고 볶고 산다는 것이 그런것이지... 우리 삶... 언제 늘 행복하고 희망만 넘치면 멋 대가리 없는 삶이겠지... 이런일 저런일 들이 모여서 그리고 하나되어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것이지 않을까? 마냥 우리보다는 너와 나 서로서로가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희망을 싹을 엿보았다. 힘들지만 그래도 보듬어 않고 함께가는 것.... 힘들면 힘들다 이야기 하지는 않지만 늘 따스함으로 감도는 분.... 그래서 같이 한다면서 함께하지 못한것들이 많아 미안스럽다. 그래도 선생님 화이팅 이에요... 오늘은 그냥 잠이나 잘련다. 머리가 도통 여유가 없다. 내 돌머리를 굴려가며 하는 글쓰기 내가봐도 신기하기 그지 없다. 이런 소소함이 모여 하나가 되고 하나가 혁명의 씨앗의 밑거름이 되지 않으려나 생각해 본다. 혁명은 책속 귀절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기에...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논 역사적 과정이기에... 무엇이 올바르고 그른지는 행동과 투쟁이라는 소소한 곳에서부터 출발하지 않는지... 이는 결코 따스한 가슴과 감동을 담아낼 마음이 없으면 이루기 힘든 일이다. 결단과 판단은 그런 아픔이 쌓이고 쌓여서 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있기에 가능하리라... 늘 노동자 민중의 삶에 가까이 있는 곳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듯

  • 등록일
    2005/03/28 01:35
  • 수정일
    2005/03/28 01:35
밤에 작업을 간만에 해본다. 프로젝트를 해야한다는 미명하에 저번달에 장만한 MP3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틀어놓고 이어폰을 귀에 대고 작업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 40곡을 선정(Sens, 박기영, 박혜경, 더더, 카펜터즈, 비지스, 딥퍼플, 코어즈 등)하여 귀 흐르는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 옆에 메모지에 수학으로 덧셈과 뺄샘을 하거나 컴퓨터 계산기를 이용해 나눗셈을 하는 것도 싫지 많은 않다.(요즘 CSI(Church South of India) 프라사드 목사님이 선곡한 인디아 음악도 들을 만하다. 불경 소리와 비슷하지만 흐르는 음이 특색 있게 다가온다. 프라사드 목사님과 서투른 영어 단어들을 조합하면서 영어를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프라사드 목사님은 웃음만 지으며 알아차린다고 하면서 이해한다. 어제 회의때문에 서울에 가는 바람에 프라사드 목사님 집들이(기독교 신방이라고 한다고 함.)에 가지 못해서 부리(치킨카레에 밀가루 반죽한 빵도 아닌것이 전도 아닌 것을 싸서 먹음. 방글라데시는 양고기를 치킨으로 만드는 음식은 까막음.... 같은 음식인 것 같다. 못먹어서 조금 샘이 나 있었는데... 오늘 달걀 카레를 먹어 위안을 삼아 본다. 맛나다.)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사업을 하지 않겠노라 하였지만 목구녕이 포도청이라 임금 60만원 쟁취를 위해 프로젝트에 목을 걸고 하고 있다. 그리고 올해 이주노동조합 건설에 일정정도 도움을 주고자 나름데로는 문광부에 여름 캠프, 체육대회, 민속촌 나들이, 등산, 이주노동자 문화제 등 프로젝트 사업의 합목적성을 내 깐에는 찾는다고 하면서 획일화된 프로젝트 항목에 글을 써내려간다. 몇일을 새벽 3시까지 하였건만 지금 완료된 계획서는 3개 밖에 되지 않는다. 흐흐... 날짜가 다가와야 머리가 그나마 회전되는 버릇은 그제나 저제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싫지많은 않다. 센터에 혼자 불빛을 밝히고 혼자 노래를 들으면서 노트북 자판기를 두드리는 것도 운치가 좋다. 아마도 음악이 귓가를 때려서 그럴꺼라 생각해 본다. 이주노동자들이 이나인 비자가 만료시기가 되어서 대거 노동상담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집에 갈지 불법체류자가 될지 고민이고, 불법체류자들은 법무부의 버스를 대절한 대대적 단속으로 인해 강제추방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하나 도와주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번주 고국행 티켓을 끊어 놓고 고국으로 행으로 갈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 먼 타국... 인연이 되어서 만날 수 있었지만... 이내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켠에 석별의 정을 나눌 생각이 하나둘 떠오른다. 비디오 캠을 들고 이런저런 영상을 담았던 그 친구... 센터일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이제는 고국으로 간다. 자바섬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6시간이면 당도한다는 곳에서 산다고, 한번 놀러오라고, 놀러갈 수 있으려나... 미지수 이다. 그래도 언젠가 발리섬에 가게되면 꼭 들려서 인도네시아 구경 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돈이나 차근차근 벌어놔야 겠다. 이밤 숫자 계산에서 막히고 사업일정을 어떻게 잡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블로그에 들어와 드는 생각을 써본다. 오늘 낮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는데... 그놈의 프로젝트 글쓰기 때문에 침낭 하나 들고 낮잠을 자러 가지 못하였다. 오늘 같은 날 침낭하나 들고 잔디밭에 가서 낮잠자면 최고 인데... 4월엔 꼭 한번 침낭 들고 춘곤증에 시달리는 피로를 회복할 겸 꼭 환경사업소 주변 잔디밭에 낮잠을 자러 꼭 가는 날을 만드리라... 이밤 조용하다. 내 귓가를 때리는 소리는 유일한 노래 소리와 열받은 컴퓨터 소음 뿐.... 이런 것도 아마 여유가 아닐까? 오늘도 3시까지는 안되는 프로젝트 문서 바라보면서 모니터와 씨름이나 싫컷 해야 겠다. 5월이 기대된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도 얼추 건설될 것이고, 조금 여유로워 질 것이라는기대심... 그리고 휴일하루 틈내 어디 산이라도 갔다와야지... 치악산이 5월 볼 만하겠군.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에 갔다왔다.

  • 등록일
    2005/03/13 01:51
  • 수정일
    2005/03/13 01:51
이주노동자 연대의 밤 행사를 갔다 왔다. 그곳에서 정말 반가운 이들도 만났다. 같이 학생운동이라는 것을 하였고, 이주노동자 운동의 산역사인 동지를 만났다. 오산에 내려와서 일하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의로의 말 또한 들었다. 장목사님에게 저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듣는데 싫지가 않았다. 고맙게 다가왔다. 그전보다 얼굴이 많이 좋아보였다. 그래 지금도 그렇게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여 나가는 동지들이 있기에 간혹 집회나 호프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니 정말 고맙게 다가온다. 지금도 변치 않음을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음이 고맙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또한 힘을 얻거나 힘을 받는다. 이제 같은 공간과 같은 활동이라는 것을 하지는 않지만 그 곳에서 만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정말 정겹게 다가온다. 간장 오타맨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