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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우연히 정호승이란 시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란 시를 읽게 되었다. 유치하기 짝이 없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유다. 노란 조끼에 파란 망토를 둘러쓰고 제법 폼을 잡는다. 이런 것이 시로 통용되고, 이런 사람이 시인으로 통용되는 무리들의 의식상태는 어떤 현실에 발을 맞추고 있는지 궁금하다. 18세기로 돌아갔으면 한다.
몸을 상하게 하는 노력 없이 영혼을 어루만져줄 수 있고, 절망 없이 아름다움을 손아귀에 쥐고, 초롱불 밑에서 밤을 지새우며 눈이 빨개질 때까지 노력하지 않아도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인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를 잘못 읽었어도 한참 잘못 읽었다.
낭만주의 터전에서 시라고 무성하게 자란 나무의 그늘 밑에서 “고요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꼴이 가관이다.
천안함 수병을 보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작태가 꼭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눈물의 강”으로 만들어 동전 몇 푼 벌고 “눈물 밀러”라는 별명으로 낙인 찍힌 요한 마르틴 밀러가 생각난다. 가서 동무해라.
그리고 윌프레드 오웬이 받아주면 그의 수강생으로 들어가 시가 뭔지 배워라. 제발. 그리고 “수국하기 위해서 죽는 것이 얼마나 달콤하고 좋은가”라는 쾌쾌 묵은 거짓말은 내 몸을 관통하는 총알을 느끼고 다시 하지 말아라.
그리고 죽은 영혼 제발 가만히 나둬라. 제발 그들을 조용히 자게 나둬라. 촛불도 켜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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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걸고 공부하자는 게 왜 문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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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님의 [급진은 점진이다] 에 관련된 글.
좋을 글 감사합니다. 앞으로 참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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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님의 [진보활동가의 성적강박이라...] 에 관련된 글.
출처:
www.art-magazin.de/.../
이 그림은 어두운 배경에서 스폿 조명을 받으면서 생생하게 나타나는 고문현장과 그 고문현장을 대하는 두 사람의 행동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 두 사람을 당나귀가 바라보고 있다.
그림의 위 부분에는 Ku Klux Klan과 같이 삼각모를 쓴 세 사람이 한 사람을 고문하고 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은 몸을 비틀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 밑으로 한 사람은 보자기를 둘러쓰고 보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은 땅에 엎드려 귀를 막고 비명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한다.
프란스시코 드 고야는 귀를 틀어 막고 보자기를 둘러쓰고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의 도덕성을 문제시 하지 않는다. 멍청함의 상징인 당나귀가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멍청해서 현실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멍청함은 게으름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기에 저 두 사람이 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데에는 비겁함이 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서 어린애와 같은 상태에서 벗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게으름(Faulheit)과 비겁함(Feigheit)을 제시한 칸트가 생각난다.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 다시 보자기를 뒤집어 쓴 행동에는 비겁함이 있다. 그리고 그 옹졸함에는 게으름이 스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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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그님의 [이른바 대학 보이코트에 대하여] 에 관련된 글.
“신학으로 유명했던 파리대학”이 “봉건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카톨릭교리 연구”만 배출하지는 않았다. 피에르 아벨라르(페트루스 아벨라르두스)와 같이 근대정신의 기초가 된 “내면성”을 12세기에 이미 사유한 사람도 배출했다.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아무튼 파리대학을 떠나 떠돌이 생활을 해서 그랬지 않나 싶다.
예슬님에 대한 이런 저런 입장과 또 대학을 떠난/거부한 예슬님과 대학에 남아서 싸우는 사람들을 대조하는 것에는 객관성과 당파성 문제가 있지 않나 한다. 탈주관주의니 탈객관주의니 하는 포스트모던의 황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황무지에 아직 남아있는 객관주의 잔재들 사이사이에 고삐 풀린 주관주의가 다시 난무하지 않나 싶다.
익히 알다시피 맑스의 사상과 사유는 이데올로기 비판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구체적으로 계급지배가 각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분업과 분배와 함께 그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 국가권력에 의존한다고 한다.
항구적인 국가권력하의 계급지배에서 계급입장을 명확하게 하여 행동에 방향성을 준다는 의미에서의 당파성이 학문에서 말하는 객관성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주관은 전통적으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현실을 쳐다보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주관을 행위, 즉 실천(Praxis)으로 이해한 맑스는 주관을 강 건너 불 난 곳에 갔다 놓았다. 그래서 주관은 가만 일을 수 없고 불에 타 죽든지, 불을 끄든지 할 수밖에 없다. 즉 주관 주체는 „객관 객체" 와 관계하는 가운데 스스로 변하고 객관 "객체"도 거기에 견디지 못해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예슬님과 관련된 문제는 김예슬님의 문제가 아니다. 나를 둘러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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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님의 [성당에서의 코발로프의 절망] 에 관련된 글.
니콜라이 고골의 „코“(1836)는 허위의식이 만연한 소시민의 출세욕과 과시욕이 어떤 정신분열을 가져오는가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괴기화다. 이야기내용은 간단하다. 코발로프라는 사람이 자기 코를 상실하고 다시 찾는다는 이야기다.
* 코발로프라는 이름에 스며있는 기본의미는 대장장이(코발)이고, 그리고 추가적으로 <여자꽁무니를 쫓는 자>, <여자 앞에서 과시하는 자>, <약삭빠른 자>란 의미로 쓰인다.
우리나라 공무원으로 따지자면 4-5급 정도 되는 공무원이고, 회사서열로 따지자면 차장정도 되는 코발로프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위엄을 더하기 위해서 자칭 소령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자기 얼굴에 코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코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괴기적인 것들을 경험한다.
이런 괴기적인 장면들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은 군대계급으로 따지자면 준장이 되어있는 자기 코와 만나는 장면이다. 살펴보자.
코발로프는 자기 코를 찾아 헤매다가 자기 코가 준장이 되어 마차를 타고 우아한 귀부인들을 방문하러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시내를 돌아다니는 준장이 된 자기 코를 뒤쫓다가 마침내 카산 대성당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자기 코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 카산 대성당은 페테르부르크에 있는데, 나폴레옹 침입을 물리친 미하일 쿠투조프 야전사령관이 이 대성당에서 기도하고 출전했단다. 그리고 그는 그가 기도했다는 자리에 묻혀있다.
코발로프는 빌빌 꼬면서 준장이 되어있는 자기 코에 다가가서 자기 것이라고 하지만 준장이 되어 있는 코발로프의 코는 딱 잘라 아니라고 한다. 자기는 자기란다.
코발로프는 이 순간 멍하게 되지만 주변에 우아한 귀부인들을 있는 것을 보고 으쓱거리기 시작한다. 즉, 준장이 되어 있는 자기 코의 위엄이 마치 자기 것이나 되는 양. 그리고 자기 얼굴에 코가 없는 것을 의식하고 돌아보지만 준장이 된 자기 코가 이미 그 자리를 떠난 것을 알아차린다.
이 장면이 핵심이다. 바로 이순간 코발로프가 절망에 빠진다. 자기 코가 <나는 나다>했을때 절망에 빠진 것이 아니다. 자기가 기대어 과시하고 으쓱거니는 것이 사라졌을때 절망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코발로프와 같은 소시민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몸에 걸치는 군복과 같은 것이고 그런 군복에 따라붙는 사회적 위엄/권력이다. 출세욕과 과시욕의 외화다.
진보의 <자기> 사유가 이런 것에 근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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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화나님의 [김예슬의 뉴타입 정신과 소심함] 에 관련된 글.
햄릿은 자기 마음을 피리쯤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을 죽음으로 보냈다. 자칭 친구라는 자들이 온갖 궤변을 동원하여 햄릿을 주물러 보려고 했다. 햄릿은 문득 피리를 하나 꺼내놓고 불어보라고 한다.
햄릿 : 이 피리를 불어보게.
길던스턴 : 전 불지 못합니다.
햄릿 : 부탁이네.
길던스턴 : 정말로 전 불 줄 모릅니다.
햄릿 : 간청하네.
길던스턴 : 저는 그것을 다루는 법을 모르고 있습니다. 왕자님.[1]
예슬님의 마음을 가지고 피리를 불려고 한다.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나 있는 구멍을 다 알고 있단 말인가? 그 몸을 주무르고 그 마음의 구멍을 열고 닫아서 무슨 소리를 내는데 이상야릇하기가 그지 없다.
세상이 어지럽다. 세상이 돌아버릴 것 같이 돌아가는데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음씨 착한 우리 어머님들이 하던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님들은 금강 연변에서 무를 다듬으셨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의식은 필연 <자기가 아닌 것>으로 존재해야 하고, 또 <자기>로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우울증의 근거다. 예슬님은 이 우울증에 걸리는 굴레에서 벗어나왔다. 그는 무엇엔가 잡힌바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잡힌바 된 그것을 진실로 취하기 위해서 힘차가 나아갈 것이다.
피리불지 말자. 소심쟁이 뱀 나올까 두렵다.
둥둥둥 북을 치자.
[1] 이경식 해설·번역, <햄릿>,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1998). pp. 232~233. 인용은 <스테레오>님의 블로그에서 (http://stereotype.tistory.com/1#footnote_link_1_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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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sili님의 [전술과 실용에 대한 질문 [경계도시2]] 에 관련된 글.
이 지역은 원래 노동자, 기층민중이 거주하던 지역이었고 사민당, 공산당, 독립사민당을 대폭 지지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당시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던 철로를 지키는 연대가 또한 주둔해 있었기 때문에 극우 독일민족당을 지지하는 군 소속 장교가족과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지역이기도 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지역이 나치가 득세하고 독일을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끝날 때까지 SA(나치 돌격대)가 함부로 이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고, 들어오더라도 중무장을 하고 떼거지로만 신속하게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갔다는 사실이다. 또 율리우스 레버는 이 지역에 연탄상인으로 잠복해서 반나치운동을 하기도 했다.(1944.7.20 히틀러암살계획과 연계되어 있던 레버는 1944.7.5 체포되어 동년 10월 20일 사형선고를 받고 1945.1.5 베를린 플뢰첸제 교도소에서 사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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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사무당파님의 [성특법, 그 지옥의 묵시록 리스트] 에 관련된 글.
한속
2월 13일. 가슴속에서 속삭이다가
깨어난 Schibboleth. 너와 함께
Peuple
de Paris. No pasarán.
왼쪽은 새끼 양: 아바디아스,
웨스카 출신의 노인, 개들을 이끌고 온다
들판을 가로질러, 귀양지에서
하얀 구름으로 서있는
인간의 고귀함, 그가 입을 열어 떨어뜨린다
우리 손에 낱말 하나를, 우리가 필요한 낱말 하나를, 그 말은
양치기 스페인어다, 그 말 안에,
순양함 „아우로라“의 어름 빛을 타고서:
형제의 손, 흔드는 그 손
낱말처럼 뚝 떨어지느 말처럼 둥그런 눈에서
벗겨낸 눈가리개를 – 페트로폴리스,
잊혀질 수 없는 사람들의 영원한 도시가 사람들의 몸을 실고 유람하는 도시가
너에게는 또다른 토스카나 [궁궐]이 되었단 말인가.
오두막에 평화를!
(파울 첼란, „Niemandsrose“에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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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shin님의 [보드리야르 재발견의 의미] 에 관련된 글.
관련 karl Heinz Kohl, Die Macht der Dinge를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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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사무당파님의 [전국연대가 중앙일보 보다 더 우익] 에 관련된 글.
몸 파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반병신 모양으로, 쥐어 맞은 꾸부정한 모양으로[1] 가눌 수 없는 몸짓을 하는 우리는, 잡화상을 열고 인권을 이러쿵저러쿵 하는 마광수와 같은 잡화상주인이나 매춘을 단지 사회정화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양선희와 같은 노련한 기회주의자와 기본적으로 달리하는 것이 있다.
우리의 몸에는, 매춘을 사유하는 우리의 실체에는 헝가리에 두고 온 두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서 독일 Hamm-Heessen이란 도시에서 길거리 매춘을 하다가 2009년 6월 5/6일 자정 즈음에 32세의 나이로 살해당한 헝가리 여성 Monika가 쐐기로 박혀있다. 그 뿐인가. 급진여성주의는 우리 사유의 실체에 쐐기를 박고 똑 박는다. 아니, 현실이 그리하고 있다.
이런 쐐기를 안고서 우리는 마광수와 양선희 따위의 무리와 맞서고 있다. 승무춤을 추면서. 동작 하나하나가 아프다.
우리는 마광수와 같은 춤을 추지 않는다. 홀가분한 몸으로 물구나무선 체 걸음마 연습하는 따위의 춤을 추지 않는다. 부부강간에서는 자유법치주의 원칙을 고수하다가 성매매 특별법에서는 머리를 땅에 쥐어박고 <봐라> 하고 자랑하면서 인권을 운운하고 매춘여성을 배려하는 척하는 천박한 물구나무서기 춤을 추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 싸움이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가. 진보진영의 특산물로 생각했던 법정신과 법의미가 왜 마광수가 차지하는 것이 되었는가? 그리고 우리는 악은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는 수구꼴통들이나 취하는 입장을 고수하게 되었는가.
갑갑해서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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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랑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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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우리가 어느 별에서'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람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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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관련, 동아일보 기고 정호승 글 중에서"..돌다리를 두들기고 또 두들긴다 한들 ‘그 돌다리가 바로 그 돌다리’가 아니고 무엇인가. 답답하다. 언제까지 북한의 눈치를 보며 오늘을 살아야 하는가. 북한을 향한 분노의 경고 한마디가 그렇게 두려운가. 이는 마치 북한이 칼자루를 쥐고 남한이 칼날을 쥐고 있는 형국이다. 칼자루를 쥔 자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칼날을 쥔 자는 계속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국가안보 비상사태의 원인을 예단해야 할 고유한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 발발 초두에 섣부른 예단과 막연한 예측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북한이 기습 공격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북한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짐작만 하기에는 오늘 조국을 위해 전사한 천안함 장병의 슬픔은 너무 크다.."
전문/ http://news.donga.com/3/all/20100428/279520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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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문제의 기고문에 성금모금에 정호승이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군요.진보권에선 '우리가 어느별에서' 처럼 안치환 노래로 재미 본 친군데..
당장..안치환이 이미지 타격이 크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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