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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갱식물

 

 

 

 

 

 

 

비가온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냉큼 다가오겠지. 으흐흐흐흐..

넘 조아서...그냥 함 끄적이다.

 

 

나의 식물들 중 몇개는 꽇이 핀다.

꽃피는 식물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짧은 생명력 탓이다. 단지...

 

 

미갱식물이 그래서 탄생하다.

 

 

영원하라!

 

식물이여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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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금자씨

씨네21에서 이미지가져옴

 

 

절대악당


백선생과 금자씨
악당도 인간인 것이지만 감독은 절대악당으로 인간의 무엇을 드러내고싶은 것일까?
숨겨도 숨겨지지 않는 진실이 있듯이 죄는 덮어도 덮어지지 않는다.
끝까지 쫓아가 단죄하는 것이 복수의 시작이자 끝이다.
복수의 주체는 금자씨말고도 백선생을 증오하고 있는 유괴된 아이들의 부모들이다.
아이들은 백선생의 죄를 사하여 주었을까?
그들의 부모가 자신들을 대변하여 구원해주기를 바랬던 것일까?
마지막 화장실신에서 커버린 아이의 무표정은 모호하다. 금자씨만이 환상을 본 것이 아닌 그녀의 딸 또한 아이를 본 것이다.

 

금자씨, 본능적인 모성으로 영혼을 구원받다?

모성적 본능은 지구 끝까지 쫓아가 복수해야만 하는 신성하고 강력한 힘인가?

글쎄...


이 시대의 한국적 악당은 전두환이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의 미술
왕가위의 스타일이 연상되는 단점.
자신이 하고 싶은 스타일은 모두 실험해본 듯한 영화였다.

 

키치적 미술은 감독이 관객들을 향해 이건 영화야라고 솔직하게 내뱉는 자신감으로 보였다.

금자씨의 방은 금자의 환타지와 복수심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으로 드러난다. 특히나 벽지의 이미지장식은 왕가위의 <화양연화>를 연상하게 하는 반복적 패턴과 자연이미지의 문양을 사용함으로 클래식한 스타일로서 금자씨의 감정상태와 환타지적 분위기를 풍기는 장치가 된다.

또한 복수극을 모두 마친 금자씨가 화장을 지우는 화장실 공간은 가장 인상적인 곳이었다.

벽면의 재질과 반복적 패턴 스타일은 미래지향적 공간임을 암시하는 듯해서 스토리와 미술이 절묘하게 접합하는 인상적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에서 가장 인상적이 장면은 오대수가 학교에서 몰래 남매를 엿보게되는 회상신이었다. 핸드핼드로 오대수를 따라가는 듯하다(현실) 어느새 어린 이우진을 따라가고 있는(과거) 기법은 과거와 현실을 교묘하게 겹치게 만드는 절묘한 플래쉬백이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흑백대비가 명확한 계단신이 등장하나 <올드보이>에 비해 스토리와의 연관성이 떨어지며 심리적 긴장감 또한 약하다는 생각.

 

뱀발.

씨네21을 보다 <친절한 금자씨>의 미술감독 이력이 역시나 예사롭지 않았다는 걸 알았고(<올드보이>에서 부터 <살인의 추억>, <피도 눈물도 없이>-->꽤나 특이나 세트라는 생각이 들었던 영화였다. 등등)  그녀의 재능이 무척이나 부러워졌다는 거다. 흑흑..부러비~

씨네21 기사 "류성희 미술감독"

 

 


극의 전개를 거스르는 카메오
임수경, 여성교도소내부의 자문이었다고는 하나 양심수였던 임수경과 유괴범으로 오인된 범죄자 금자씨와의 오버랩에는 무리가 있었다. 여성교도소를 보여주고 여성이 주인공이라 하여 여성적 의미의 영화표현이라는 것은 무리한 접근방식이라 판단됨.
류승완
송강호, 복수극시리즈와의 연결. 꼬리의 꼬리를 무는 연결고리.
신하균
유지태


박찬욱감독의 세계적 명성과 감독적 자질을 뽐이라도 내듯이 유명인들이 줄줄이 카메오 출연하는 형식은 잔혹극의 내용에는 아무래도 거슬린다.
히치콕의 영화제작방식을 차용한 듯한 유명인의 카메오출연은 블랙유머라고 피식대기에는 씁쓸한 웃음만이 입가를 번지는 기분이다.

 

김현희를 연상시키는 유괴장면 재현극, 미모의 여성이면 모두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건 아니겠지. 풀리지 않는 과거의 청산에 대한 상적적 재현인건지...

 


잔혹극과 복수
불편하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한가하고 평화롭지 않다”는 감독의 표현처럼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이 영화는 보는이로 하여금 보여주기 싫은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심기가 불편해진다. 드러내는 방식이나 형식이 부정적인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개인적 취향을 빼면 이 영화는 확실히 박찬욱감독만의 영화적 스타일이 잘 드러나는 영화인 듯하다.
한국내 만연한 과거에 대한 이루어지지 않은 수많은 청산과제들과 쉽게 잊어버리는 안일함, 가장 근본적인 측면. 인간적 본능인 모성본능으로의 회귀. 이런 쉽지 않은 상징들을 영화는 저변에 깔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복수가 필요한 사회.
약자들의 의미있는 반란.

 

복수=청산, 치유
이런 공식이 성립가능할까?


복수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은?
폭력이 폭력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시스템을 지양하는 사회가 좀더 진보한 사회일 것이다.
중동의 역사가 대변자구실을 하고 있으며 테러리즘과 미국의 일방주의 외교가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복수가 무엇을 해결해줄 것인가?

인간의 간사함이나 폭력성만을 드러내는 이야기구조로 보여 불편하다.


판타지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금자씨 뒤의 배경 조각은 금자씨의 복수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로 보인다. 자세한 형태는 기억이 가물하나 머리체를 잡은 여성의 강인한 형상을 조각은 보여줌으로서 금자씨의 심리를 대체하고 있는 듯하다. 미술의 상징성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비발디
눈발날리는 어두운골목의 세사람을 배경으로 음악이 흐른다.
개인적으로 강렬한 대비효과와 독특한 양식의 미술보다, 이영애의 소름돋는 발작연기보다 편곡된 클래식음악이 훨씬 좋았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영상을 보완하는 음악이 주는 조화로운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박찬욱감독은 음악을 적재적소에 영리하고 감각적으로 사용하는 감독중의 한명이라는 생각.

 

 

 

 

뱀발.
처음 15분정도를 놓치고 영화를 접한지라 맥락의 이해를 쫓아가기 조금 힘들었다. 마지막 두부모양의 케익을 얼굴에 부벼대는 이영애의 연기가 어찌나 어색한지 “저게 모냐?”며 비웃었는데 “두부”의 상징을 읽어내지 못한 것은 나의 무지함 탓이었다. 이유는 처음 교도소출옥 장면을 놓쳤던 때문이었던 게다. ㅠ_ㅠ

한번정도 더 봐 주어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되어진다. 처음은 아무런 정보없이 순수하게 접근하고 두번째는 평론가의 글들, 관객들의 평, 처음 본 나의 느낌들을 모두 모아 한번 더 봐준다면 영화의 상징들을 읽어내고 뜯어보는 재미가 한층 더할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친절한 금자씨> 보다는 <건방진 금자씨>가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건 왜일래나요?

ㅋㅋ

 

 

붉은사랑님의 [친절한 금자씨] 에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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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을 사랑하는 작가_이종구

들의 역사-백산으로 부터 / 1994 / 145 x 300/ 판넬에 아크릴릭 / 작가소장

: 상단의 얼굴은 전봉준이다. 농민들에겐 혁명이 필요할만큼 절박하다는 듯하다.

 


과천현대미술관을 몇년만에 간건지 새것이었던 건물이 낡아서 흘러내린 녹이 보일

정도였다. 대체 무얼하느라 그렇게 바빴을까? 정신적여유는 대체 어디다 몽땅

써먹어버렸던걸까?

여하간 비온뒤 산머리위의 하얀 솜구름처럼 안개가 멋드러지게 깔려있는 산을 배경으로

상큼한 공기를 마셔대니 찌들었던 머리가 확 트이는 듯했고, 더군다나 한국미술의 역사적

의미가 있는 미술작가의 세계를 체험해주니... 주말하루는 정말 훌륭했다.

같이 동참해준 친구에게 감사를~~~찡긋~

 

 

 

땅 / 1998 / 131 x 519 / 캔버스에 유채 / 작가소장

 

 

땅(부분)

 

 

 

이종구.

 

꾸준히 "농민"이라는 주제로 자신만의 색깔을 구축한 작가.

농민작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사회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한 경이로운 작가.

푸대자루라고 부르는 쌀자루에 페인팅을 하는 자체는 그닥 형식적으로 새로운 시도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작가로서의 재료에 대한 꾸준한 집착은 자기것이 되어버리게 만드는

힘으로 발휘하게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올해의 작가로 <이종구>전을 기획한 것이다.

 

 

1984년~1990년:고향땅 오지리

1991년~1994년:고개숙인 농민의 분노

1995년~2000년: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2001년~2005년:우리땅, 우리겨레

 

기획전시였던 이유로 한작가의 역사적 흐름을 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농민의 일상에서부터 노동하는 농삿꾼의 깊게패인 주름과 거친 손, 노동의 도구인

낫, 낡은 신발이라는 사물에까지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드러나는 작가의 역사적

흐름을 한공간에서 한시에 볼수 있다는 것은 분명 드문 기회였고 <이종구>라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커다란 도움이 되었던 것같다.



명환아저씨/1986/85x60/부대에 유채/작가소장

: 같이 간 친구와 유일하게 공통의 호감을 지니고 감상한 작품

  부대자루의 부드러운 질감과 옅게 칠한 유화의 수채화같은 재질감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지만 작가의 투박한 손과 무뚝뚝한 얼굴표정은 농민의 삶이 드러난다. 

 

 

실제 모델이 되었주었던 농민분들이 자신의 자화상을 보고는 거진다 모델서준 사실을

후회했다는 후일담을 같이 간 친구가 알려주었는데 그만큼 농민의 모습은

행복하게 활짝 웃는 얼굴일 수 없는 모습들로 세상을 향해 일갈하듯한 포즈로

서있거나 현실을 체념하듯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우루과이 라운드와 FTA 칠레협정, 신자유주의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농어민들,

일관성없는 농민정책(아예 정책을 내놓지 않는것이 농민을 도와주는 길일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니..)등으로 한국농민들의 시름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가고

생존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버지의 삶에서 착안한 듯한 농민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부모를 사랑하는

자식의 맘과 작가로서의 현실비판적 시각으로 그림을 그려온 듯했다.

 

흥미로운 소재. 낫.

 

날카롭게 날을 간 낫이 아닌 녹이 잔뜩 끼어있는 낫은 독을 품고 세상을 원망하듯이

누워있는데 그 옆에는 새파란 들꽃이 조그마하게 피어있다.

농민의 현실을 극명한 상징으로 보여준 이 작품은 생각보다 크기에 압도된다.

낫은 곳곳에서 등장하는 소재로 "농심"으로 보인다.

낫을 잘 다루면 노동의 재료가 되어 땅을 풍성하게 황금빛으로 물들이지만 달리 사용하면

혁명의 도구로 변질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상징하고 있는 듯 했다. 

 

 


아버지의 낫 / 1992 / 188 x 96 / 장지에 아크릴릭 / 작가소장

 

 



수몰지의 늦가을 / 1992 / 192 x 188 / 장지에 아크릴릭 / 작가소장

: 저 멀리 뭔가 불안한 돌풍이 몰아칠 것같은 음산한 분위기.

   벼들은 농민들의 발아래서 휘몰아치며 동요하고 있다.

   농민들은 불안을 의미심장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일 기세지만 손에 쥔 낫의 모양은

   싸움을 준비하는 투사의 도구 형상이다. 왜?

 

 

" 나는 그림그리기를 통하여 마치 꺼져가는 불씨와 같은 농촌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고, 궁극적으로 평등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세상은

나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변화를 거듭했고, 현실은 점점 더 어렵게만 되었다.

미술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림을 통해 세상을 이야기하고, 그림이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세상이 나를 규정하고 사회가 나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예술은 결국 시대와 사회의 산물인 것이다. 그림은 결코 허황되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그림이 가진 힘이 아주 미미할 지라도 나는 그림을 통해 우리 인간들의 삶을

억압하는 시대의 폭력에 저항하고 싶다."

 

             2005.5 이종구                

 

 

 

영토-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 227x362cm / 캔버스에 유채 / 2002

: 최근작들은 농민, 농촌이라는 주제에서 국가라는 거시적 주제로 옮겨오고 있음이 드러난다.

  차갑고 건조한 한색계열의 칼라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지만 저 멀리 희미하지만 붉은 색의

  동이 트고 있다. 지금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강렬하게 활활 타오를 것을 기약하는 듯...

  한반도에는 작지만 희망이 드리워 있는 것이다.

  산의 표현기법이 언뜻 뾰족하고 평면적이어서인지 수묵산수화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

  목각의 느낌으로 보이기도 한다. 느낌이 묘해서 계속 들여다 보게 된다.

 

 

 

농민의 시름과 현실을 만나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일을 한번더 자각하려면

주말 과천으로 떠나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전시가 오늘까지 였군요...지송함돠..

 

그래도 이종구 개인홈피 로 가셔서 작가의 세계를 즐~해보세요. 

 

 

 

 


아버지의 한세상/1995 / 278 x 201/장지에 아크릴릭/ 작가소장

: 굉장히 감동적이었던 작품. 아버지의 글을 작가의 글씨체로 캔버스에

그린 그림으로 100호가 족히 넘는 커다란 크기에 빽빽히 새겨넣은 작가의 정성은

곧 "예술적 감동"으로 전해왔다.

맨아래는 아버님의 비석을 쪼개놓은 것인데 농민의 애끓는 사연이 느껴져

숙연해지는 부분이다...

 

* 이미지는 모두 작가의 개인홈피에서 퍼옴.

 

 

 



국립미술관이 농민작가에 촛점을 맞춰 지금 시점에 기획전을 가진 것은 의미심장한

이유로 보인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방점을 찍고 한발짝 다가가려는 시도로 읽혀져 기쁘다.

근데..이런 의미있는 전시가 왜 이리 전시기간이 짧은 거냐구요?

2005. 5. 12(목) - 7. 14(목)

 

두달이면...기간은 문제가 없는 듯하나 홍보가 덜된 건가? 샤갈전이나 근현대 서양미술전에는

사람들이 떼로 몰려 전시장안에서 줄서서 보는 진풍경을 이루든데.. 

문화에 대한 애정과 갈증이 그림을 즐기기보다는 스타작가에 대한 편식과 약간의

사대주의?가 낳은 결과인건지..아님 나의 오해인건지..

나야 모 여유롭게 그림을 감상해서 좋긴했지만....내가 왜 투덜대는건지...

방학기간을 껴서 전시를 하면? 아니면 그 머나먼 과천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되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동을 해주어야 하는건데...라는 아쉬움을 뒤로하며...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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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시크협곡

 

 

오마이기사를 읽고 한동안 입을 떡하니 벌리고 다물어지지 않았다.

인간크기만큼의 돌을 조각하기도 힘들터인데 거대한 바위를 다듬어

역사적 건축물을 조각해낸 이들에게 경의를...

 

위에서부터 조각해냈다고 하는데..

상상해보라. 보조적 장치사용이 아닌 인간의 수작업만으로 저 거대한 건축물을

주조해내는 환상적인 능력을 말이다.

철저한 계획과 공간에 대한 감각능력을 지니지 않고는 힘들었을터인데..

완벽에 가까운 좌우대칭, 안정적인 상하비례감, 올곳게 뻣은 기둥과 지붕라인들, 신비로운

동물조각상과 인위적 문양들로 이루어진 장식물들..예술이다.

인간이란 정말 경이로운 존재이다.

 

 

직접 가슴으로 느끼려면 꾸준히 몸을 단련하고 경비를 준비해보아야 할테지?

 

 

 


카즈네피라움

 

카즈네피라움_부분(오마이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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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DVD 미갱소장3 _추가목록

미갱님의 [비디오&DVD 미갱소장2 _추가목록] 에 관련된 글.

 

 

 


 

DVD목록

 

20. 필라델피아

21. 이레이져 헤드

22. 아이다호

23. 메트로폴리스 2CD

24. 자이언트 로보

25. 연인(무삭제판)

 

 

 

 

최근에 또 구매한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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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_그것이 궁금하다


다수의 폭력을 깔고 있는 복선이라 생각되니 끔찍하군...쩝..

 

 


한국인의 성에 대한 이중성


좋아하는 건지, 본능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인지 헷갈리게 질척거리는 남자. 이유림.
자기자신도 자기의 맘을 모를떄가 많지 않던가. 6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여성인지 여동생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남자. 사랑의 유효기간이 의학적으로 3개월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이남자를 믿어야 할까 아니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자기말대로 유림은 뒤에서 수근대는 비겁함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앞에 대고 얘기하는 정직한 인간이다. 얌전하고 정직해보이는 여선생님, 뒤에서 남의 사생활에 이래저래 간섭하며 누군가를 자신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마녀사냥을 들쑤시는데..그녀는 진정 비난받지 않은 일을 한 정의에 가득한 인간인 걸까? 반대로 느글느글 진정성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어 보이는, 강간인지 사랑행위인지 모를 헷갈릴 행동만 하는 넘, 유림의 행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대한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을 보호하려 애쓴다. 그것이 자신도 다치지 않고 홍, 그녀도 다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래서 그부분에서 그에게 플러스만빵의 점수를 주고 싶다. 남자로서는 신뢰하지 못하겠으나 인간으로서는 신뢰할만한 인간이라고 평한다면 말장난일까...미묘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의 예의는 그녀에게 최대한 취한다. 하지만 결국 여성은 여성스스로 지킨다. 훌륭했다. 칭찬할 만한 지점이다. 너무 쉽게 선악의 언덕을 넘나드는 다수의 얍씰함이 이상했지만..


내가 몸서리쳐지게 공포스러웠던건 유림이 성폭행을 하고도 느글느글하게 달라붙는 질척거림(이건 그의 독특한 표현방식이기 때문에 용서된다. 아무나에게 질척일 가능성 농후하다라고 생각되나 마지막 대사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진실함이 드러난다)이 아니라 진실과는 무관하게 자신들 멋대로 타인을 평가해 버리는 다수의 보이지 않는 폭력때문이었다. 주홍글씨처럼 중세도 아닌데 21세기 한국에서 왜 저런 일들이 여전히 그리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게 의아스러웠고 그게 몸서리 쳐지도록 소름돋는 공포였다.
대중은 진실을 알고싶지도 알 필요도 없다. 그냥 누군가에게 선을 그어 빨갛게 덧칠하고 싶어하는 악의적 대중심리가 존재할 뿐이다. 특히나 여성에게는 여전히 순결이데올로기가 은근히 강요된다. 유림이 자신의 여자친구는 홍이처럼 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순수한 여성이라고 옹호하는 장면이나, 인터넷의 악플들이 주로 최홍 여선생을 향해 삿대질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나가는 남학생의 대사
“ 다리가 참 이쁘시네요. 그런데 멀리서 보니 약간 벌어지셨네요”
이런식의 악질적 대사를 여선생에게 너끈히 내뱉는 남학생들의 무의식 안에는 순결이데올로기가 오롯이 깔려있는 듯하다.

 


 


마약하셨어요? 푸하하하~

 

 

강간당한 뒤 최홍의 행위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은 그녀의 성격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녀도 그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이런 모호한 지점이 영화를 헷갈리게 하기도 한다.

사랑은 마음부터일까 몸부터일까?

궁금하지만 이건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었듯이 사람에 따라 그때그떄 다르다 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녀관계가 섹스이후 관계가 깊어지기도 한다는 여러 사례들.
남자는 왜 항상 섹스가 먼저인 것 처럼 보일까? 유림이 홍에게 자꾸 끈적거리는 것과 홍의 애인이 홍으로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대사에 대한 질문이 “잤어?”이듯이..왜 그들은 여성들의 마음보다 상대남과의 섹스가 먼저일까?
그것이 궁금하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여성도 그러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다수의 소수를 향한 마녀사냥


진실은 어디에도 없고 자신들이 듣고 싶은것만 믿어버리는 상황들. 처음은 미려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을 여기에 대입시키면 얄짤없이 들어맞는다. 말도 안되는 대입법이지만..쩝..
입을 통한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통해 소문으로 번지고, 현대는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좀더 빠른 시간으로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뿌리내린다.
인터넷실명제를 불러온 악플들이 그러하듯이 대중은 다수는 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무슨 기준으로 잣대를 들이대는가?
의도된 소문을 퍼트려 결국엔 소문의 당사자가 자살한다는 영화를 보면서 인간의 “말”이 가진 힘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를 느꼈다. 이 영화는 남녀간 사랑의 과정을 얘기하는 에피소드지만 내 생각에 감독은 이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죄 짓지 않은자만이 돌을 던져라.


질척이는 상황과 대사들로 이어가다 갑자기 생뚱맞은 행동들의 그녀를 조금 이해하게되는 사건은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죄 짓지 않은자 만이 돌을 던져라.

 


남자가 찝적대는 걸 여자도 알고 있지만 그의 권력때문에...!?

 

 

그녀/그들의 연애 목적은 다르다?


남자는 여자에게 미친 듯이 껄떡댄다. 한번 자보려고...
“내가 언제 결혼하자고 했어요? 연애하자고 했지?”
그게 그가 연애하는 목적이다. 남자들 그러한가? 여성작가의 한계일 수 도 있으니 좀 알려주라.

 

 


기자들은 유림의 이런 질척이는 연애방식이 모성을 자극하는 한국식바람둥이의 전형이란다. 헐~ 그런것도 같다.

 

 

여자는 상처가 있다. 현관문을 이중삼중을 걸어잠그고 창문은 창살로 쳐져있으나 계속 커튼을 확인하며 안전을 걱정하는 것 같다. 밤에는 도통 잠을 못잔다. 그러나 옆에 누워자는 남자는 그녀가 왜 잠이 오지 않는가 관심이 없다. 친구들에게는 그럴싸한 포장으로 그녀의 가격을 높인다. 자신의 레벨에 걸맞게...그녀는 그것이 거북하지만 그게 안정적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한다...사랑은 없다라고 조용히 주절이며 말이다.
첨부터 자꾸 질척이는 유림이 자자고 하면 공짜는 안된다고 당돌하게 받아치는 그녀. 이상하다. 상식적이지 않다. 안만나면 그만이지 권력탓은 왜하나? 그녀도 그가 딱히 싫지 않은거였을까? 내숭떠는 건 분명아닌데…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의 옆에서 곤히 잠든다. 그의 향기때문이라나 어쩐대나..여성은 그로부터 치유가 된것일까? 그녀가 연애하는 목적은?

 

 

유림, 미친놈...ㅋㅋㅋ 진짜 똘아이다.

 

 


여튼 난 잼나게 보았다.

영화적 평가는 뒤로하고...
다들 박해일이 연기한 이유림 캐릭터가 싫다 했다.

그의 진정성을 믿어주어야 할지 헷갈리지만..사랑 표현에 문제가 있지만..귀여웠다.

그러나 박해일의 외형이 아닌 남성이 주변에서 질척인다면...당근 No겠지..헤헤..
난 박해일이 좋은거다~ 아휴 조아^^

 

 

 

 

해미님의 [[연애의 목적] 성폭력과 연애사이?]

    붉은사랑님의 [단체관람, 연애의 목적]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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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세계_보드리야르 사진전

jineeya님의 [보라매 호수가 다시 열림] 에 관련된 글.


Saint Beuve, 1986/대림미술관에서 이미지 가져옴

휴식과 안락함을 주는 의자가 왠지 무겁게 와 닿는다. 강렬한 붉은 색은

열정적 의식보다는 왠지 냉혹하고 차가운 세계를 비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뮬라시옹>의 저자 "장 보드리야르의 사진전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책으로만 접한 유명한 철학자의 창작품을 이미지로 접한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다. 현대사회를 사실과 실상이 없는 허상이 지배하는, 다양한 소비유형에 따른

유동적인 기호와 동일하다고 주장한 프랑스 사회학자가 표현해내는 세계.

그의 세계는 실존의 세계일까 허상의 공간일까.

 

여행을 통해 얻어낸 일상의 결과물이라 좀더 인식의 기반이 가깝게 느껴지는 창작물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지니야의 사진을 보며 보드리야르의 재능으로 연상되는 건 그녀의 사진들이

날카로운 시각으로 빛나는 일상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지니야도 언젠가는 사진전 기회가 있기를 강추~

 

사물을 인식하고 들여다 본다는 건 사고가 열려 있으므로 가능하다.

 

얼마전 잼나는 일이지만 즐겨보는 <마루코는 아홉살>이라는 어린이용애니에서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길에서 만난 사진찍는 남자아이와 마루코의 대화

"모든 사물은 계속 변하고 있어"

이어서 마루코가 이해하지 못하니까 쉽게 설명되는 대사

"너의 3살때 웃음과 지금의 웃음은 같지 않자나"

마루코,,잠시 생각에 잠기며..이해되었다는 듯이.."아~~"

사물을 찍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다르다는 남자아이의 사고는 여느 사진작가의 철학이상을

통찰하고 있었다. 허걱! 이 애니를 즐겨보는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거다.

 

 

 

전시기간은 7월17일까지이니 조만간에 시간여유와 함께 감성충전으로의 발길을 가지련다.

 

 

 

 

 



 

 


New York, 1992

노란색 벽면에 비춰진 비정형의 빛을 보아라. 빛이 춤추고 있는 듯하다.

 


Punto Final, 1992

보드리야르, 자신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사진같다. 그냥 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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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같이봐요~

미갱님의 [보게 될 영화 2편] 에 관련된 글.

 

 

<스타워즈 에피소드3: 시스의 복수> 같이 보러가실 분 한분만 모집합니다.

평일저녁시간대(6월8일~10일)나 주말하루(6월11일)중 택일가능~

 

 

 

이 영화는 둘이서 보는게 좋을 것같아요~

아니 혹시 더 모이면 몇명 더 추가해도 좋겠지만 시간 맞추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터이니..그냥 한명만 모집하려 하는데...이의를 제기하셔도..모..할말이 엄따요..

돌날라올꺼나요?;;;

 

 

영화는 제가 보여드립니다.

카드할인, 회원할인, SK할인 등의 방법으로 저렴하게 영화보기가 가능하답니다~

 

 

 

6월8일 오전12시까지만 의견을 주시면 되구요.

선착순 1인에게만 해당되오니 빨리 서두르세요^^;

 

두가지의 불안한 시나리오...

만약 지원자가 엄쓰면? 혼자서라도 갈꼬야....ㅠ_ㅠ

만약 모르는 블로거일 경우? 이번에 알아봐야지...ㅠ_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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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바통의 얼굴

미갱님의 [음악 이어받기~] 에 관련된 글.

 

 

 


 

 

 

 

 

아이콘 제작하다 남은? 음표를 활용해서 만들어본 "음악 바통씨".

ㅋㅋㅋ

음악이 이어서 만들어진 얼굴~ 이뿌다~

 

 

 

 

 뽀오~~~너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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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giepop Phantom

 

YES24에서 이미지 가져옴

 

 

 

단편 12개로 이루어진 TV시리즈물인 <부기팝은 웃지 않는다 Boogiepop Phantom>.

시간되는대로 조금씩 잘라 보았고 그래서인지 감정이 끊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이야기의 내용파악이 조금 힘들었다.

시/공간을 쪼개 편집한 플래시백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므로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인간의 근원적 심리인 공포, 폭력에서부터 교육에 대한 비판적 시각, 부모세대와 십대의

세대차, 인간소외 등 사회적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까지 만만치 않게 다가온다.

마지막회를 제외하고는 어두운 회색백 배경으로 깔린 도시의 음산한 영상과 심리를 자극하는

반복적 사운드의 음악은 알수없는 불길함과 두려움을 던진다. 이미지의 선명함보다는

카메라필터를 사용해 블러효과를 주어 환상적, 초현실적 이미지를 창조해 내었다.

그래서 처음 몇편을 햇빛 찬란한 대낮에 보기에는 어딘지 어색하고 부조화스러워

감정연결이 쉽지 않았다.

 

 

또한 중층적 상징코드를 집중해서 보지 않고는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는 시나리오이므로 꼭 몇번을 더 봐야 조금은 이해가능할 듯하다.

두뇌용량의 한계다..

 

 

한국제목의 번역이 어울리지 않는다.

실재와 환상에 대한 철학적 대상 "부기팝"은 마지막까지 실재한건지 인간이 만들어낸

공포의 표상인지 헷갈린다.

커다란 빛의 힘(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발생연유에 대한 미스테리적 요소.

하얀나비를 다루는 소녀의 죽음과 도시의 어둠과의 관계.

하얀나비가 의미하는 "불안, 공포<-->환상"의 관계.

죽음의 신 부기팝의 탄생방법 및 이유와 합성체와의 관계.

몇개의 코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보는 재미를 찾아나가면 좋을 듯...

 

 

 

블로거 상영오프는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하고싶다.

 

 

원제 : Boogiepop Phantom

감독 : 와나타베 타카시

 

 

 

 

미갱님의 [비디오&DVD 미갱소장2 _추가목록] 에 관련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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