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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손을 내밀어 우리
  10. 2007/06/16
    어떤 경고문(2)
    손을 내밀어 우리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짐을 치우다] 에 관련된 글.

 

과기노조 편집위원회에서 생활글이나 하나 쓰라고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오늘에야 보낸 글...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나의 주된 근무지는 서울 뚝섬에 있는 공공연맹 사무실이었다. 새벽 5-6시에 휴대폰의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깨면 헐레벌떡 대전역으로 달려가고,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여 전철 4호선과 2호선을 번갈아 타고 뚝섬역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하는 데는 보통 2시간 10분쯤 걸렸다. 수련회다, 회의다, 뒷풀이다 해서 찜질방 신세를 진 적도 적지 않았지만, 무척 많은 시간이 길 위에서 흘러갔고,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이기에 나는 그것을 새로운 경험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노동조합이라는 데가 제대로 일을 하려면 끝이 없긴 하지만 연맹은 촌뜨기 간부에게 더욱 놀라운 곳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회의, 회의마다 준비되어 쏟아지는 각종 회의 자료와 보고서, 사시사철 거의 날마다 벌어지는 현장의 투쟁들, 크고 작은 집회를 조직하고 진행하는 일들, 거기다가 간담회, 수련회는 또 얼마나 많은지, 이거 참 인간적으로 살기 애당초 틀린 곳이구나, 하는 것이 처음 몇 달간의 느낌이었다. 파견된 임원을 포함하여 서른 대여섯 명의 상근 간부들이 저마다 맡은 역할과 그때그때 주어지는 임무에 따라 바삐 움직였고, 다함께 모여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건 무모한 바람이었다.


나는 나대로 피곤했다. 주말에라도 가사노동에 좀 충실하려다 보면, 일주일치의 장을 보고 식구들이 먹을 밑반찬과 간식거리들을 마련하는 것이 일요일 늦은 밤까지의 일과로 고정되다시피 했으니, 월요일마다 출근 전에 이미 나는 녹초가 되었다. 회의든 집회든 틈만 나면 잠이 쏟아졌고, 심지어는 교육훈련 도중에 요가를 하다가 잠시 누운 사이에 코를 골기도 했으니까. 함께 일하는 간부(활동가)들이 바쁘더라도 자투리 시간에 만나서 힘들고 어려운 사정들을 파악하고 챙기는 것이 내 임무의 하나였는데, 지나고 보니 동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많이 부족했다.


그러면서 참 많이 배웠고, 깨달았고, 반성했다. 맡은 일은 몸이 부서지더라도 해치우는 동지들이 있지만, 그 동지들 중에는 그렇게 일하면서 얻은 남모를 몸과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는 이가 있다.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자고 싸우면서 그 자신이 사는 게 힘들면 되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초보 활동가에게는 상당 기간의 가르침과 훈련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일부터 맡기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급하다고 서두르다 보면 아차 하는 사이에 논의는 일부가 독점하고 일은 몇몇에게만 집중되기도 한다. 민주적인 조직운영은 잘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조직을 끊임없는 실천으로 담금질하고 무시로 쏟아지는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감당할 때 가능하다. 자신의 원칙에 맞지 않기에 분명히 반대 의견을 피력한 사안에 대해 결정되자마자 앞장서서 실천하는 동지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고마웠다. 회의에서는 묵묵히 듣기만 하지만 일상에서는 온몸을 던져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동지들도 많이 보았다. 긴급하게 집회 지침이 떨어지면 즉시 밥숟가락 내던지고 국회 앞이며 광화문으로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오던 동지들은 감동이었다. 노동조합의 힘이 많이 위축되고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적 징후들에 모두가 속이 타들어 가도, 여전히 노동자들의 투쟁은 아름답고 연대는 희망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물론, 말 많고 행동은 뒷전이지만 그러한 자신에 대해 일체의 성찰이나 반성도 없이 세월만 축내고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았다. 나를 채찍질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뿐이다. 2007년 2월 8일, 연맹 사무실에 2년간 쌓아왔던 내 짐들을 모두 치웠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아마도 꽤 오래 그 공간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뚝섬과 대전 유성은 나에게 동일한 생활과 투쟁의 공간이었으므로. 그리고 이전의 경험에서도 그랬지만, 연맹에서 새로이 내 어깨 위에 들어선 짐들 또한, 노동자 민중이 살맛나는 세상이 올 때까지는 내 맘대로 벗어던질 수 없다는 점에서, 노동조합 간부로 처음 시작하던 때의 설레임과 겸허함으로 새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가짐을 가다듬는다. (2007.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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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치우다

연맹 사무실에 있던 내 짐을 모두 노끈으로 묶어서 차에 싣고 왔다. 2년 동안 모아두었던 자료들 중에서 버릴 것은 지난 주에 충분히 버렸지만, 각종 보고서며 자료뭉치들이 트렁크에 실리자 차가 묵직하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어떤 이들은 평상시에 얼마나 정리를 잘했으면 라면상자 하나 달랑 들고 퇴근하는 차림으로 수년 세월을 말끔하게 정리하던데, 나는 참 미련하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나 해묵은 자료들에 대해서나 평생 이어가고  갈무리할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한번 맺은 인연은 평생 갖고 간다고 큰소리쳤지만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인연들을 챙기지 않고(못하고) 달려왔던가. 타산지석이든 반면교사이든, 내게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었던 서울의 많은 동지들에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고마운 마음을 앞으로의 활동과정에서 되새김질할 틈이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연맹 사무실에 아주 발을 끊을 상황은 아직 아니다. 오늘 청산위원회가 있었다. 1월 19일로 해산한 공공연맹의 자산과 부채는 1월말을 기준으로 모두 처분해야 하는데, 투쟁한다 뭐한다 하면서 각종 적립금까지 털었으니 퇴직금이며 상급단체 의무금이며 채무들을 모두 정리하고자 해도 돈이 모자랄 수밖에 없다. 연맹비 납부를 독려하고 투쟁기금 안낸 노조들도 일일이 방문하거나 연락해서 돈 좀 내라고 사정해서라도 1-2억원을 만들어야 하는데, 해산한 연맹에 돈내겠다는 노조가 얼마나 있을지 걱정이다. 청산위원회에 회계감사에 3월까지도 연맹으로 와야 할 날이 제법 될것 같은데, 그렇게 올 때마다 빚진 동지들에게 술이나 밥이나 한번씩 같이 해야겠다. 2007년 2월 8일, 연맹 사무실에서 내 짐은 모두 치웠지만, 아마 내 마음은 꽤 오래 그 공간을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서울 뚝섬과 대전 유성은 나에게 동일한 생활과 투쟁의 공간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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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대합실

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보리건빵] 에 관련된 글.


민주노총 임원선거는 1시 반쯤 끝났나,

직선제 규약 개정안건이 상정되었는데

아니나 달라?

성원 부족을 이유로 차기 대대로 넘어가고,

결국 임원 선출한 거 빼고는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또 넘어가 버렸네.

 

새벽 2시에,

점심 굶은 거, 저녁 대충 빵으로 때운 거,

오후 내내 물 한잔 마시지 못한 거,

앙갚음을 하는 셈 치고

술을, 소주를,  마신다.

 

술마시다가 보니 새벽 4시닷!

 

내일 오후에 서울에서 약속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 첫차가 5시 25분에 있잖아,

가자, 대전으로~

 

아까부터 대전에서 술마시자고 재촉하는 동지가 있어

지금 전화를 했더니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는데 그래도 첫차 올때까지 기다릴테니

먼동이 트기 전에 술이나 마시잔다.

그래, 기다려라, 동지야.

술이나, 가 아니라, 술을, 마시자.

 

지금 서울역 대합실에는

대전역까지 가는 나,

동대구역에 내릴 동지,

부산역까지 갈 동지,

세 사람이 오순도순 첫 차를 기다린다.

 

서울역 대합실,

기다림보다는 투쟁의 현장이 된 지 오래된 이 곳-.-

 

<추신>

어제 낮 2시부터  오늘 새벽 4시까지 있었던 일에 대한 소감은

내일 내가 술 취하지 않으면 다시 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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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건빵

지금,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이다.

 

2시부터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2시 50분쯤 기념식이 시작되었고,

3시 20분에 기념식이 끝났다.

 

10분 후에 회의를 시작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20분이 지났고 아직 대의원들이 들어오고 있다.

곧 시작할 모양이긴 하다.

 

아, 성원보고를 한다:

1088명 중에서 755명이 참석해서 성원이 됨.

 

지금부터 시작하면 오늘 중으로 끝날 수는 있을까?

선관위원은 미리 오라고 해서

점심도 건너뛰고 왔더니 배가 막 고프다.

 

사탕이라도 없나 하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작은 보리건빵 한 봉지가 잡힌다.

 

어제 주유소에서 받은 건데,

하나를 깨물어 먹으니 고소한 맛이 제법이다.

도대체 몇년만에 건빵을 먹어보는 것이냐?

작은 건빵 한봉지가 비상식량으로 딱이네!^^

 

민주노총 대대와 선거가 궁금한 분은

생중계(http://www.nodong.org)를 보시든지

감비한테 말하면 문자로 중계해드리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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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난다

이번 주는 임기가 끝나고 맞이하는 첫 주였다.

 

22일, 월요일, 오전에는 사무실, 오후에는 선관위 회의,

밤에는 민주노총 임원선거 합동유세와 정책토론회,

끝나고는 너무 늦어서 대전으로 오지 못했지.

 

23일, 화요일, 오전에 지하철 석면관련 기자회견,

오후에는 과기노조 해양지부 임원 취임식,

밤에는 새벽 1시에 술자리에 불려나가서 새벽 3시에 돌아왔고....

 

24일, 수요일, 대전에서 밀린 일거리를 챙기고 있다가

저녁 6시 30분부터 시작한 술자리에 나가서

12시가 다 되어 귀가했고...

 

25일, 목요일, 오늘, 오전은 사무실, 오후엔 선관위 회의,

그리고 저녁 10시쯤 집으로 돌아왔는데,

밤 12시가 좀 안되어서 전화가 왔고,

술자리에 불려나가 지금 막 귀가했고....

 

음, 그러니까 이번 주는 서울에서 묵었던 하루를 빼고는

밤마다 술자리에 나가서,

어떻게 살거냐, 뭐할거냐, 민주노총 선거는 어떻게 되는 거냐,

과기노조는? 연맹은?

이런 질문에 시달리다가

술취한 동지들 간신히 집에 보내곤 하는 것의 연속.

 

임기가 정말 끝났다는 것도 실감나고

내가 다시 대전을 근거지로 살게 되었다는 것도 실감나고

모두 실감난다, 실감나.

 

근데, 내일은 민주노총 임원선거라서 서울에 가야 하니까

이번 주 월, 화, 목, 금, 연속해서 서울에서 일하는 셈인데

당분간 청산이니 보고서니 해서 연맹 사무실로도 뻔질나게 가야 하는데

이걸 정말로 임기 끝난 걸로 봐도 되는 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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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연설

식탁에 노트북 펴놓고 뭔가 몰두하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대통령 말 듣구 있어?

 정말 대단하구 간사하네.

 저런 새끼가 대통령이라니 토악질이 나네

 미친 놈!"

 

무슨 얘기람? 티비를 켰다.

노무현이 빙긋빙긋 짐짓 웃음을 지어보이며 연설을 하고 있다.

종합주가지수도 오르고 연구개발투자비도 10조로 늘어났고

...어쩌고저쩌고 나라 형편이 다 좋아졌다는 거다.

조금만 봐도 분위기를 대강 알겠더라.

 

그래서 나도 문자를 보냈다.

 

"탤런트 노무현이구만 나쁜 놈"

 

곧바로 답장이 왔다.

 

"죽여버려야 해

 양경규한테 민주노총 위원장 말구

 윤봉길 의사 하라구 해라!!

 단 이성우는 제외하구"

 

하긴,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이 땅에 진짜 테러리스트가 필요한 건 아닌가,

내가 테러리스트가 되면 어떨까?

 

그런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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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9일

1월 1일 이후

블로그에 글 하나 남기지 못했다.

 

쓸 거리는 참 많았는데,

그토록 바빴나 아니면 게을렀나.

 

오늘은 대구에서 민주노총 임원선거 합동유세가 있었고

내가 진행하는 날이었다.

대구에서 막 돌아왔다.

 

날이 밝으면

오전의 몇 개 일정을 지나서

낮 2시부터 여성개발원 대강당에서

공공, 버스, 택시, 화물통준위 4조직 통합대의원대회가 열린다.

 

비대위가 적법하냐

자의적인 임기연장이 아니냐

이런저런 시비도 있었지만

내일 대대만 잘 치루면 내 역할은 일단 끝난다.

 

떠밀리다시피 당의 중앙위원으로 출마하고

2월 초순이면 참터 토론회도 있다고 하고

이래저래 대전으로 돌아와서 할 일거리들이 밀려드는데

 

모르겠다, 내가 바라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잘 싸우고 있는 건지, 내가 잘 버티고 있는 건지,

내 생각은 제대로 박힌 건지,

역량이 안되면 노력이라도 하고 있는 건지, 가끔 모르겠다.

 

가끔은 하루살이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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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가고 또 온다



12월은 참 무모하게 살았다.

곧 끝날테니까 내친 김에 달려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쉴틈없이 몸과 마음을 혹사했다.

사람과 조직, 일과 회의, 술과 술잔 사이를 넘나들면서

마치 시한부 인생처럼 살았다.

그러는 내 마음을 누구에겐가는 들켜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휴가 시작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몸살이 왔다.

몇년에 한번씩 앓는 몸살처럼 크게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끝까지 화산처럼 뜨거워졌고

나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어제와 오늘 조용히 집에서 쉬었다.

 

장보러 간 것,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서 전자상가에 나간 것,

가문비와 DVD 대여점에 들렀다가 동네 한바귀 산책한 것,

아이들과 영화를 보러 나갔다가 매진되어 돌아온 것,

그런 소소한 일상 말고는

때가 되면 아내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밥을 하고 반찬을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틈틈이 아이들의 간식을 마련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에 참으로 평화스런 연휴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어쩌면 나 혼자만의 것인 듯하다.

 

11월의 총파업 총궐기 투쟁 이후로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집에 가지도 못하고 있는 한 동지가 참으로 오랜만에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집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을 보자마자 전화를 걸었더니 신호만 울리다가 끊어진다.

11월의 마지막 날에 구속된 또다른 한 동지는

지금 감옥에서 새해를 맞고 있다.

 

위에 걸린 사진 속에는 파란 하늘이 있고 까치집이 오손도손

동네를 이루고 배경에는 구름이 살포시 흐르고 겨울나무끼리

서로 손을 내밀며 정겹게 사는 듯이 보이지만 저 사진 아래

펼쳐진 광경은 강남구청 앞 집회 장면이다.

서울정화환경노조 한성지부(이제는 공공서비스노조)의

파업투쟁이 100일째를 맞던 날, 12월 28일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 날씨 탓에 손발이 얼고 입이 얼어 구호도 헛나올

지경이었다. 그 때 올려다 본 하늘이 사진 속 풍경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 땅위에서 평화란 아직도 사치이고,

오히려 치열한 투쟁의 현장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행복감이 역설로 존재한다.

 

그래서 

올해도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새해를 예감하며

2007년 1월 1일을 맞는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세상에 대해 훨씬 더 큰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걸머지고 가는 모든 동지들에게

감사한다, 꿈꾸는대로 다 이루시라, 하는 말 한마디는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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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하다가...

26일 통합대대만 치르면

회의에 매여 사는 인생은 잠시 휴지기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통합대대는 무산되고

31일 임기 끝나고도 1월 통합대대가 다시 성공할 때까지

비대위 집행위원장 역할을 맡도록 되어 있고

1월 26일 민주노총 임원선거를 위한

선거관리위원 노릇까지 하라고 하니, 쩝, 쩝....

 

민주노총에서 3시간이 다 되도록 선관위 회의 하다가

잠시 틈을 내서 '포춘쿠키' 한번 해봤다.

 

<인간관계에 '벽'을 느끼고 있다면

자신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로 활용해 보세요.>

 

'벽'을 느끼는 인간 관계 별로 없는데...^^

아고, 배고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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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33조를 아시나요?

인권운동잡지 월간 "사람"에 기고한 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헌법 제33조 1항은 이렇게 노동3권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3권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게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기본인권이다. 그러나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는 기본인권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노동3권을 맘대로 유린해왔고, 보수언론매체들의 왜곡보도까지 가세하면서 일반 국민들은 파업 하면 곧 불법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갖기 일쑤였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파업에 이르렀는데 파업에 들어가는 순간 곧바로 불법의 딱지가 붙어버리는 신통한 마법 탓이다. 우선 직권중재제도는 공공부문의 거의 모든 파업을 실질적으로 금지시키거나 조속히 끝장내는 위력을 발휘했다. 필수공익사업의 경우 15일간의 조정기간 동안 파업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기간이 끝나더라도 중노위(혹은 지노위)에서 일방적으로 직권중재에 회부할 수 있고 이 경우에는 다시 15일간 파업이 금지되며, 단체협약의 효력을 갖는 중재재정이 내려지면 더 이상 파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직권중재에 회부된 이후에 벌이는 노조의 모든 파업은 곧 불법이 되는 것이다. 필수공익사업장의 노동자들은 사실상 단 한 시간도 합법파업을 할 수 없도록,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을 하위 법률로써 제약하고 있는 것이다.


직권중재제도가 파업을 사전에 제한하는 것이라면 공익사업장과 대규모사업장의 합법적인 파업을 사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긴급조정제도이다. 2005년도에 있었던 아시아나조종사노조와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은 준비에서부터 모든 과정이 철저하게 합법적이었으나, 정부가 억지논리를 내세워 긴급조정권을 발동하자 곧바로 불법파업으로 전락하였다.


지난 12월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른바 노사관계로드맵과 관련된 입법안을 강행처리했다. 노사관계법제도를 보편적 노동기준에 부합하는 규범으로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동안 끊임없이 위헌시비가 일었던 직권중재제도는 일단 폐지되었다. 그러나 필수공익사업장의 범위는 더욱 확대되었고, 필수유지업무제도를 도입하고 필수공익사업에 대한 대체근로를 허용함으로써, 직권중재 대신에 파업권을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완비했다. 게다가 긴급조정제도는 여전히 눈 부릅뜨고 살아 있다.


로드맵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만 유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과 같은 재벌 사용자들과 기득권 유지에 집착한 한국노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복수노조 전면허용이 3년간 유예되었다.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어 최소한의 생존권을 확보하고자 하는 몸부림조차 가차 없이 짓밟는 폭력이다. 헌법 제33조의 정신은 이렇듯 무참하게 유린되고 있다. 노동기본권에 관한 한 매사가 절망적인 듯 보인다. 하지만 노동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도처에서 끝없이 벌어지는 노동자들의 불법을 무릅쓰는 투쟁을 보라. 희망은 넘치고, 그 날은 꼭 오리라! (2006.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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