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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1/03
    아름다움에 대해(13)
    미갱
  2. 2005/01/01
    마인드바꾸기 대문바꾸기(5)
    미갱
  3. 2004/12/31
    여성의 삶을 그리다_방정아 작(8)
    미갱
  4. 2004/12/29
    메뉴타이틀를 이미지로 변경하기(5)
    미갱
  5. 2004/12/25
    2005년새해복많이받으세요~(12)
    미갱
  6. 2004/12/22
    산오리님께 연말 선물드립니다^^(14)
    미갱
  7. 2004/12/21
    임옥상의 회화와 설치미술(7)
    미갱
  8. 2004/12/18
    환상의 포로샵!(10)
    미갱
  9. 2004/12/11
    최호철의 회화&만화(6)
    미갱
  10. 2004/12/05
    트랑스노냉 거리, 1834년 4월 15일_도미에 작(6)
    미갱

아름다움에 대해

이 글은 행인님의 [하울의 성이 멈췄을 때] 에 관련된 글입니다.

 

영화와는 그닥 직접적 연관성이 떨어지지만...그래두 직업병발동하는게지..

미학에 대해 전문적으로 끄적이기 보다는 경험적 사견을 토대로...



아름다움에 대해 얘길 꺼내본다....

 

하울
머리색깔하나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들먹이는 건 분명 오바질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가지고 있는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부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인 듯하여 속이 메슥거렸다거나 찝찝한 뒷맛은 동일하다.


저패니메이션의 대부 미야자키 하야오


자기는 거울도 안보나?(에고~ 인신공격하려는건 아니지만 쩝...본의 아니게..)... 뚱뗑이 할아버지에 맘좋게 생겼지만 이성적 매력이라고는 없는 볼품없는 아저씨의 외양아니던가ㅠ_ㅠ 못생긴 남자가 이뿐 여자 밝히는 심리적 원리인건지..쩝..
여튼 하야오의 외적 아름다움에 대해 가치운운하는 찬사엔 동의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마르크스가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말라했거늘


메트로 섹슈얼의 패션아이콘 축구스타 베컴

 

지나친 외적 치장을 선호하지도 않고(내가 젤 싫어하는 미술사조는 로코코, 바로크 양식이다. 돈지랄?처럼 보이는 화려함의 빈껍데기가 난무한 골빈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지극히 갠적취향일뿐...), 특히 옷이나 스타일에 신경써서 입은 남성, 특히 요즘 메트로 섹슈얼Metro sexual (케이블에서 소개하는 메트로 섹슈얼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 소개 프로 : 싱글즈인서울2)이라는 남성 트랜드에는 심적 거부감이 만만치 않지만 동아TV의 세계적 패션디자이너의 패션쇼프로는 눈이 휘둥그레가지고 본다.
그건 명품이거나 비싸보이는것에 혹해서도 아니고, 자본의 상품메카니즘에 비판적이지 못해서도 아니라 미적감성을 자극하는, 패션도 예술의 경지가 가능하구나 하는 그 놈의 직업병이 발동하기때문이다.
대학시절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색채학 강사선생님이 하던말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가끔 패션쇼장에 들르는데 거기가면 자신의 예술적 감성을 자극한다는 거였지. 그리고 배우는것도 무척 많아서 영감이 풍부해진다는 거였다. 지금 그 말에 90%는 동의한다.
내가 좋아하는 패션디자이너는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이다.
그의 옷을 보면 패션은 특정국가에서만 태동한 문화가 아니라 서로간의 문화적 영향을 끼치므로 전통성이라는 토대를 다시 느끼게 하고 타국가의 문화에 대한 적극적 관심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또한 칼라에 대한 자극과 패션에 대한 개념을 뒤집는 발상이다.
옷의 칼라는 옷의 재질에 따라 다양한 색깔의 감정을 드러낸다.
옷은 계급을 드러낸다는 것도 사실이다. 선과 옷감의 재질 실루엣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고정화된 계층을 표현해내는데 일조한다.


여튼 사설이 길어졌는데...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성은 개인적 취향이나 그 취향이라는 것도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을 끊임없이 소비하게 부추기는 구조적 상업메카니즘이 존재한다. 또한 “패션은 전략이다”라는 슬로건에 고개를 끄덕이듯 사회생활의 많은 부분 외모로 판단을 당하는 경우는 현대에 일상적이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것은 외적인 것만을 규정하는가. 시각적 아름다움은 시각을 즐겁게 한다. 시각에 민감한 직업의 특성상 아름다움은 곧 창작의 원동력이 될만큼의 근본적 자원이기도 하다.


원시사회의 미술_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아름다움의 기준은 시대적이고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다산(多産)을 의미하는 3등신의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커다란 가슴과 엉덩이만을 강조한 3등신의 돌로 만든 이 조각상은 원시시대 다산, 생식이 아름다움의 최고가치였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중세 근대 그림속에 등장하는 여성상은 손통통, 엉덩이통통한 우유빛의 적당히 살집이 있는 모습들인데 못먹고 생존이 우선하시되던 시대이므로 당연 잘먹고 적당한 풍만함이 여성의 아름다움의 최고기준이었던 것이다.
남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렵과 채취에 능한 원시시대에는 육체적으로 강한 남성이 아름답고 여성에게 인기도 짱이었지만 현대에는 어떤가. 육체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부드러운 미소를 겸비한 꽃미남에 여성들이 열광한다.
아름다움은 드러내는 표현방식도 창작자의 시각에 따라 달라진다.
남성화가들이 미술의 주류를 이루는 지라 누드는 주로 여성의 누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보라.


미켈란젤로/다비드상/대리석조각/1501년~1504년

 

미소년의 누드가 저리도 아름답다는 거. 남성의 육체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예술작품에서 느끼는거. 그건 놀라움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성적 취향이 동성애가 아니었다면 미소년의 육체에 대한 아름다움을 각인했었을까? 중세, 근현대 미술의 모델이 대부분 젊은 여성의 누드가 주류를 이루는 건 그리는 이의 시각, 남성화가의 시각에서 유래하는 것 아닌가.


마네/풀밭위의 점심식사/1863년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올랭피아>와 더불어 당시 샬롱(그림을 전시하는 곳을 지칭)에서는 스캔들을 일으킬만큼 획기적인 소재였다. 대낮 점심을 먹는 야외에서 신사는 점잖게 옷을 갖춰입고 있으나 바로 옆에서 그들과 함께 식사하는 여성은 풍만한 누드의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그 누드의 아름다운 여성은 보는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거.

이 그림은 남성의 성에 대한 이중성을 벌거벗은 여성의 당당한 시선으로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난 대학실기수업시간 여성모델을 상대로 누드를 그리며 그녀들을 그려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다.
여성의 누드가 왜 아름답다는 거지? 왜 실기과정중에 모델은 여성 누드밖에 없는거지? 모 이런것들... 물론 이유는 명백했다. 남성 전문누드모델의 숫자가 현실적으로 여성보다 작다는 것도 한몫했기도 하고, 남성의 그 멋진? 근육을 제대로 키운 모델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상대적 이유들이 학창시절 남성누드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 거였다.
나중에 약간 아쉬워하며 알게 된 사실 95학번인가서부터 남성모델을 상대로 누드실기가 있었다하니...


여튼 중요하건 누드를 보며 즐기겠다는 변태적? 사고가 아니라 아름다움 들 중 인간의 몸은
최고라는 것. 하지만 헬스로 인한 왕(王)자 근육에, 허리잘룩의 여체만이 아름답다는 건 아니라는 것. 몇해전 김인규 선생님 , 자신의 부부 누드사진을 개인 홈피에 올려 미술선생님으로서의 징계상태까지 갔던 말도 안되는 사건을 기억해보면...
육체적으로, 시각적으로 아름답진 않을 지언정 사랑하는 부부의 진실함은 슈퍼모델의 죽죽빵빵 몸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것.
의식화된 주관이건, 객관적 주관이건간에...


선풍기아줌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우리딸은 참 이뿌지. 젤루 예뻐” 하는 선풍기아줌마의 어머님. 선풍기아줌마의 부풀어진 피부에 사랑을 그득담아 쓰다듬어 내리는 그 "주름진 손"이 내가 보기엔 최근에 느끼는 최고의 아름다움이었다.


SBS 세상에 이런일이에서 사진 가져옴

 

 

헥헥..숨차다..넘 길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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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7 : 불로그 관리 TIP] 에 관련된 글입니다.


 

새해인사가 아니라 블로그 TIP이라니..ㅋㅋ

쌩뚱맞게 한 해를 시작해보자^^(새해선물로 드리고픈 맘도 약간은 담아~)

 

디자인은 “발상뒤집기”에서부터 연유합니다.


언뜻 제 대문을 보면 이미지제작을 굉장히 요하는 것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이미지가

실제 적용된 곳은 부분일 뿐 전반적으로 진보네의 UI 틀거리안에서 약간의 꼼수만

부린정도라고 할까요?


제 대문 디자인에서의 최대 관건은 UI를 활용한 적절한 디자인컨셉과 신선한 칼라입니다.
제 Tip이 넘 시시해서 실망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활용방안과 컨셉방향에 대한 살짝의 감을 잡으셨다면 제가 바라는

교육은 충분히 이루어진거라 생각합니다~

아래 글이 진보블로거들의 대문만들기 아이디어 찾기와 멋찐 제작에 일조가능하길

바라는 맘으로부터 이 매뉴얼을 시작합니다.

 


1. UI 이해하기


진보네 블로그의 전체 UI(User Interface)구성은 이렇죠?

(공통사항은 화면관리/메뉴위치설정/왼쪽-->메뉴위치설정은 개인적 취향에 따라 바뀌어도 무방)


미갱대문 UI_화면관리/화면정렬설정/블로그 전체화면 가운데정렬

 

 

hand 님 대문 UI_화면관리/화면정렬설정/블로그 전체화면 왼쪽정렬

 

산오리님 대문 UI_화면관리/화면정렬설정/블로그 전체화면 오른쪽정렬

 

세개의 차별지점은 이미지를 적용한 영역과 크기의 차이입니다.
이미지적용을 어디에, 무엇으로, 얼마만한 크기로 하느냐에 따라 디자인 분위기의

결과물도 많이 달라보인답니다.

 

 미갱TIP

" 화면정렬설정은 {왼쪽/가운데/오른쪽} 이렇게 세가지 종류가 선택가능하죠.

  저는 대부분 {가운데} 정렬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유는 간단합니다.

  UI는 인지심리학적인 측면이 매우 강한데요. 브라우져의 크기에 따라 전체화면이 움직이는데

  사용자에 따라 브라우져 크기는 변동가능하므로 가장 안정적인 위치, 사용자의 시선이

  어디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편안한 위치, 마우스의 동선이 가까우면서 익숙한 위치의

  {가운데}를 가져가는 거랍니다.

  하지만 블로그는 개인이 원하는 선호/취향에 따라 꾸미기가 가능한 공간이므로

  전체화면의 위치는 어디건 크게 문제되진 않다 사료됩니다 "

 


UI의 이미지적용방법에 따라 디자인분위기가 차별화되어질 수있다는 것은

제 대문과 산오리님, hand님의 대문을 비교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1) Top영역을 이미지로 적용한 경우

전체화면 가운데 정렬

 

    (메뉴의 가로폭+포스트영역=Top이미지의 가로폭)
    : 제 대문에서 이미지를 적용한 부분은 “Top 영역”입니다.
      Top영역의 이미지적용을 제외하면 나머지 배경, 공통메뉴, 메뉴영역은 칼라만 적용

      정도입니다. 각 공간이 어떻게 나누어져 있는지에 대한 이해한다면 그 공간을

      디자인컨셉에 따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가 관건이었답니다^^

 

전체화면 오른쪽 정렬

 

     (메뉴의 가로폭+포스트영역=Top이미지의 가로폭)
    : 산오리님 대문도 이미지를 적용한 부분은 “Top 영역”입니다.
      Top영역의 이미지적용을 제외하면 나머지 배경, 공통메뉴, 메뉴영역은 칼라만 적용

      제 대문과 동일한 방법이구요. 배경의 칼라는 흰색으로 가져간 이유는 제가 살짝 꼼수를

      부린 케이스인데요. 배경, 공통메뉴, 메뉴영역은 칼라를 모두 수정하기에는 HTML과

      css의 수정이 필요한데 초보자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

      방법 을 택한거지요^^

      이미지제작의 컨셉에 따라 많은 수정을 요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이거랍니다~

 

2) 왼쪽메뉴영역을 이미지로 적용한 경우/프로필이미지를 적용해서 활용한 경우

 

    (메뉴의 가로폭=이미지의 가로폭)
    : 프로필이미지 를 Main Image로 사용한 경우입니다.

      상대적으로 Top영역 은 텍스트의 크기와 칼라를 조정했고 공통메뉴, top배경 ,전체배경

      영역의 칼라 동일 적용, 요기서 포인트는 이미지와 텍스트칼라를 배경칼라와 유사색으로
      조정함으로써 전체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각 영역에 이미지를 실제 적용한 것은 이렇게 보여지겠지요.

많이 달라져보이죠?
세가지 디자인예에서 알수있듯이 UI의 공간을 무엇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디자인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답니다.

 

몇가지 다양한 경우를 예상해보면


3) 전체배경을 이미지로 적용 
    : 싸이 나 네이버처럼 브라우져크기자체를 조절해서 전체배경을 이미지로 덮어버리
      방법도 있답니다. 브라우져크기까지 조정하지 않더래도 배경의 pattern처리부분
      을 해제하고 원하는 해상도의 이미지크기로 제작하셔서 전체배경대신 써도
      좋겠지요~


4) 전체UI위치조정
     : 전체화면 UI는 왼쪽/오른쪽/중간 정렬만 가능한데 이 틀을 완전히 벗어나고자 한다면

       잼나고 다양한 UI로  디자인결과 또한 풍부해질 가능성 100%보장.

       단 HTML과 css, php등의 개발프로그램 능력이 받쳐주거나 아님 부단히 노력해서

       공부하거나...쩝..이건 도움이 안되는 말이지만 현실인걸..


5) 기타
     :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요합니다.

 

 

2. 디자인컨셉 정의하기


아이디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진보네블로거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개념으로 컨셉의 방향을 잡으니 바로 Top
이미지를 살짝 편지지의 느낌을 주고 배경과 상단의 공통메뉴영역에 색으로 채워주
면 되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답니다.

칼라는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고싶어 희망적이며 안정적인 칼라 "Green"으로 가져간거구요.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보세요.

예를 들어 컨셉을 “하울의 움직이는 성”으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아님 앙증맞은

캐릭터 캘시퍼만 가지고 해보면? 이런 컨셉은 영화나 애니를 좋아하는 문화적 감성의

취향을 가진 블로그 주인으로 보이기도 하고 아님 귀엽고 발랄한 성향으로 드러나기도

하지 않을런지요? 
블로그에 자신의 색깔을 이미지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디자인컨셉의 방향에 따라

드러내어지는 거라 생각된답니다.

칼라나 시각적 이미지로 자신이 드러날 수있다니...

잼있지 않나요?

 

 

3. HTML과 css수정하기
 

오늘은 UI이해하기와 디자인마인드가 핵심이니만큼 여기까지...

<공통메뉴와 배경의 색깔입히기> Tip은 조만간에 올리겠습니다~죄송~

 

 

4. 액세서리 Tip
1) 메뉴의 텍스트을 이미지로 변경

    예) 미갱의 메뉴타이틀 이미지바꾸기
2) 포스트타이틀/덧글이름/내용/덧글폼/메뉴배경 칼라

    예) 현근님 방의 덧글 색깔 바꾸기
3) Text select 칼라
4) 메뉴의 border
5) 포스트영역 칼라
6) 아이콘이미지 적용
7) 기타
    : 텍스트의 칼라와 크기(자간/줄간 포함)만으로도 잼있고 다양한 디자인가능함을
      잊지마세요~ 디자인칼라를 하나만 잡고 배경과 select칼라, 타이틀 칼라만 
      조정하여도 분위기는 확 달라보일 거랍니다.

 

 

각자 주어진 공간내에서 최대한 잼나는 결과를 위해 공간활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를 상상하며 컨셉을 완성시켜나가보세요~ 잼나는 결과들이 나올 것 같은데..?

 

각자의 공간(UI)에 대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컨셉으로 최대한 잼나게 자신을 드러내보세요~


저 또한 여러가지 UI와 디자인에 대한 실험을 앞으로 제 대문에서 가져볼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전제되어야 할 것이 진보네에서 제공하는 UI가 아닌 기본틀을

수정할 수 있는 코딩능력이 있을 것. 또한 역동적인 재미를 줄수 있는 flash기법 등

다양한 툴활용과 매체의 접목, 미디어의 적용 등으로 대문디자인의 품질과 재미를

훨씬 높일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액세서리 Tip은 몇 개 더 매뉴얼을 만들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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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삶을 그리다_방정아 작

급한 목욕/1994년/Painting

 

오랜만에 사이트를 뒤지다 들르게 된 반가운 공간이었다.

방정아

 

개인전에서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서 제일 먼저 <급한 목욕>을 올려보다.

퍼렇게 멍든 몸을 다른이에게 들키는게 싫어 목욕탕 정리하는 아줌마의 옆에서

불안하게 손을 바삐 움직이며 미안해하는 듯한 저 표정...

안쓰럽다 못해 화가 나는..폭력(물리적이건 사회적이건)으로부터 쉽게 노출되어있는

여성의 삶을 목욕탕이라는 일상적 공간을 통해 투영하고 있다.

정지된 하나의 장면이 여러가지 장치들로 인해 사회적 현상을 폭로하는 듯하다.

구상화의 힘이다.

 

자연스럽게 붓터치를 드러내는게 좋다.

painting에는 면들이 살아있어서 자연스럽게 사물이 우러난다.

좀더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이유는 붓터치에 있는 듯 하다.

 


폭력에세이/1995년/Mixed Media

 

<급한목욕>과 비슷한 연장선에서 그림이 보여진다.

<급한목욕>이 구체적인 폭력대상을 드러내는 그림이라면 <폭력에세이>는 좀더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폭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해서 좀더 섬뜻하게 와 닿는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면서 뒷목이 뻣뻣해진다.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런 느낌들을 일상적으로 각인해야 하는 것이다. 

 

 

 

 



엄마와 매운탕/1994년/Painting

작가노트:고단한 아침은 엄마가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희생한 우리 어머니 세대의 아침일상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 정겹다.

대한민국 어머니들~ 사랑해요!


집나온 여자A women who ran away from home/1996년/painting

작가노트:

화실 운영하던 시절
자주 저녁을 때우던 어느 오뎅집

흘낏 본 그녀는 선 자리에서 무려 여섯개나 오뎅 꼬치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어정쩡하게 선 채 저녁을 해결했다

 

그녀는 왜 춥고 안쓰러워보이는 거지?

여러가지를 상상하게 하는 그림이다. 애기얼굴 또한 왠지 어둡다..


그녀에게 삶은 왜 고통이었을까/2003년/Painting

 

끔찍하다. 그녀에게 무슨일이 있었던가? 왜?


쓰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2002년/painting

 

과장된 해석이겠지만 여성은 소비되어져야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처럼

보인다. 

남편(ㅋ 남친인가?)의 속옷을 걸치고 외모엔 신경쓸 겨를이 없어진 초기 주부의 모습.

이제는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기엔 현실이 더 가까이 있는 걸까...

그래도 소비되어져야 여성은 아름답다 모...이런거..감독이 의도한바는 그게 아니겠지만..

 


신경쇠약 직전의 여인들/1994년/paintng

 

페드로 알바마도르 감독의 영화에서 제목을 따왔단다.

재밌는 풍경이다.

나두 동생들이랑 살때는 주말이면 저러고 TV시청하곤 했지~

약간은 나른하게 세상을 바라보며...쩝쩝..

누구나의 일상적인 모습일 듯...

 


결핍증에 걸린 사람들/1996년/Painting

 

현대인의 외모에 대한 강박증의 한 단면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동일한 외모를 기준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호통치기에는 개인의 힘으로는 역부족.

애닯다.

 


똘마니들-옛! 형님, 형님, 형님/2003년/Painting

 

재밌는 그림이어서 올려본다.

동일한 포즈의 동일한 패션스타일...남성문화의 한 단면을 보는 것같다.

여성들에게 저런 모습들은 얼마나 공포스럽게 와 닿는가말다...

 


 

터질 것 같은 나 I'm Afraid Explode Myself/2004년/Mixed Media

작가노트:

'너무 비대해졌어
나를 주체 못할 만큼

이런 내가 싫지만
나는 끊임없이 채워야 해'

헐키의 고백

 

최근 작업들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듯하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상상의 그녀인 듯하다.

외모에 대한 사회적 심리적 압박을 남성보다 여성이 느끼고 있다면

그걸 혹자들은 여성의 컴플렉스라고 할건가?

하지만 실업인구가 늘어나면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차별받고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를 요구하는 강도가 높아진다니....모...

나이들수록 점점 심해지는 외모에 대한 압박감이란..쳇!

웰빙을 빙자한 몸매가꾸기는 잘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수도 있겠지만

상업적으로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구조적압박으로 와닿기도 하면서

동시에 역겨워진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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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타이틀를 이미지로 변경하기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 팩 07 : 불로그 관리 TIP] 에 관련된 글입니다.

 

미류님의 질문을 좀더 쉽게 설명하고 진보네 블로그 디자인 TIP도 만들어

메뉴얼화 하는것도 의미있을듯하여 포스팅해봅니다.

 

기회되면 몇가지 디자인sample과 함께 Tip을 만들어서 블로그 관리인"진보네"에

짐을 하나라도 덜어주어얄텐뎅...진보네자활가로서도 약간의 명분을 쌓고..쩝쩝...

이미지위주로 설명을 해드리면 좀더 쉬울텐데...제 자판이 프린트캡쳐가 안되는고로

텍스트위주로만 설명을 드리게되었습니다. 기회되면 이미지로 올려드릴께요~

 

빠~아~져듭니다~~(안어벙을 사모하는 맘에 한번 따라해봤당~)

 

맨 먼저 들어가야 할 곳은

1. " 내블러그관리/스킨편집ㅣ제작 "

 왼쪽의 메뉴들 중 5번째 메뉴선택~

 

2. 서버에 이미지올리기

일단 이미지부터 서버에 올려야 경로를 따라 이미지가 브라우져에 보인답니다.

"스킨편집ㅣ제작/현재스킨편집/부분HTML"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상단에

버튼 "이미지올리기"이 보입니다.

들어가셔서 "이미지 추가"에서 메뉴타이틀에 올리기 위해 제작해두신 이미지를

올려주세요.

 

3. 이미지경로복사

이미지를 서버에 무사히 올리셨다면 "이미지목록"에 이미지들이 쫙 보일꺼예요.

그곳에서 이미지를 선택하시면 미리보기에 살짝 이미지로 보일겁니다.

메뉴에 올릴 이미지를 선택하셔서 오른쪽의 버튼 "경로복사"를 누르시면

서버에 올라간 이미지의 경로가 자동으로 복사됩니다.

 

4. 부분HTML수정

상단메뉴중 "부분HTML" 을 선택하시면

3면으로 UI가 분리된 그림(table)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오른쪽 메뉴목록중 수정할 메뉴를 선택하세요.

임의로 "최근 덧글"메뉴를 선택해서 수정해보면 HTML소스가 아래와 같습니다.

{

 

[%최근 덧글%]-->[%이미지경로border=0>%]로 수정하는데요.

황토색으로 된 이미지경로는 3번 내 이미지창고에서 복사한 것을 갔다붙입니다.(Ctrl+V)

그러면 최종 요렇게 됩니다.

{

 

5. 적용하기

미리보기버튼을 눌러서 원하는 바대로 올라갔는지 확인하시고 그런다음 최종 올려도

되겠다는 판단이 서시면 "적용하기" 버튼을 확~눌려버리세요.

적용하기 버튼을 빼먹으면 소스수정이 안되는거 아시죠?

 

 

그럼 텍스트로 된 메뉴가 멋찐 이미지로 변경되었나요?

 

사실 블로거분들은 멋찐 이미지제작에 관심이 많으실텐데요...

환상의 이미지제작 툴인 포토샵에 대한 교육도 디자인sample을 토대로

기회되면 올려보도록 할께요~~^^

 

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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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새해복많이받으세요~

   
                     

2005년

 

새해가 밝아오겠죠?

쬐금 이른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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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오리님께 연말 선물드립니다^^


 

Top에 들어갈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Top을 사용하시려면 몇가지 스킨을 수정하여야 합니다.

 

스킨종류

1번을 사용해주세요~

배경은 흰색으로 처리해주시구요.

포스트, 메뉴등의 박스라인은 모두 제거하셔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페이지를

만드심이 이 Top디자인이 살수 있는 중요한 요소랍니다. 잊지말아주세용~

 

Top디자인컨셉

산사나이 산오리님이 좋아하시는 산을 배경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자연과 어울어진 산오리의 삶"

모..이렇게 잡고 작업한 것이랍니다~

 

레이아웃

화면의 구성을 약간 조정했으면 합니다.

"블로그관리/화면관리"로 들어가셔서 "부분별 폭 설정"

메뉴부분 : 183 px

포스트부분 : 617 px

이었으면 좋겠구요.

또하나, "기본정보"에서 프로필 이미지는 제가 따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지금의 것은 해상도나 선명도가 떨어지므로 새로운 대문디자인에

어울리지 않을테니까요...잠만...

 

텍스트칼라

select color    0A92F0

Title color       250D02

 

텍스트의 칼라는 산오리님이 HTML과 css를 살짝 그리고 단계적으로 조금씩

배우신다음 적용하심 좋을 듯합니다.

전반적인 디자인의 어울림을 위해서는 텍스트의 칼라도 같이 적용해주면

제가 드린 Top디자인 선물이 훨씬 살아날 가능성이 높답니다^^

 

 

아무래도 산오리님의 낙담하시는 모습이 아른거려...후다닥 급조해? 작업한 것인데...

선물이 맘에 드실지 모르겠네요ㅠ_ㅠ

멋진 산오리님의 대문이 탄생되길 기대하며....

그럼 전 이만~~~~~~~

 

 

 

 




 

메뉴를 가로폭 183px로 했을때 20px을 빼고 조금 더 뺀 180 px입니다.

어울릴래나?

 

산오리님의 사진들중 가장 표정이 좋은 걸로 잡은건뎅~~

 

휴~~ 끝..

 

완성된 산오리님의 대문을 볼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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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옥상의 회화와 설치미술

땅IV/캔버스유채/103*183cm/1990년

 

작가 임옥상.

 

최근들어서는 공공미술에 관심이 지대해져서인지 설치미술이 주를 이루고

있는 듯하나 원래 임옥상은 평면회화에서부터 시작한 작가이다.

민중미술의 명맥을 이으며 유명세를 떨쳤던 작가군중의 하나이다.

 

힘이 넘치는 필력보다는 섬세하고 따뜻한 표현기법의 구상화가 인상적이었다.

흙의 재질을 이용한 painting은 한국적 회화의 맛을 정갈하게 드러내기도 하였다.

 

<땅 IV>은 대한민국지도를 붉은색으로 도배한건데...

국보법에 걸려들지 않은게 신기할정도다^^;;

은유적 표현방식은 아무래도 해석이 어려운건가? ㅋ

 


김남주묘/흙에 채색/53*40*65/1994년

 

몇년전 지하철내 전동차를 미술작가들이 설치하였던 이벤트성 전시가 행해진 적이 있다.

일정구역을 지나면 빛이 꺼지고 대신 지하의 어둠을 야광조명으로 반짝이게 하여

미친듯이? 신났던 기억이 있다.

그 작가들 중에 임옥상도 있었나보다.

아래사진들은 그 당시의 내부풍경과 전동차 외부를 찍은 것인듯...

 


역사야놀자/지하철7호선설치/2000년년


역사야놀자/지하철7호선설치/2000년

 


작은감옥,큰감옥/서대문형무소 설치/1999년

 

<작은감옥, 큰감옥>은 서대문형무소에 설치한 영상물인 듯하다.

공공건물과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에서의 설치작품은 의식적인 작가의 예술관이

이전의 평면회화와는 매체만의 차별성을 부각한다.

실험적이면서 관객에 좀더 다가가는 미술로서의 소통을 고민하는 듯한 의식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이다.

 

그의 홈피

는 기존작가들과는 달리 내용의 기획력이 돋보인다.

관객과의 참여를 유도하려는 메뉴들이 시선을 사로잡는 보기드문 참여유도형 사이트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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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포로샵!

* 이 글은 한심한 스머프...님의 [행인님~~ 사진 찾아 가세요~!] 에 관련된 글입니다.

 

 

스머프님이 원하는 그림이 이건 거죠?

배경지웠더니....그런데 행인님 얼굴표정과 색깔톤?이 너무 어두워 제가 약간 포로샵으로

마술 좀 부려보았지요~

포로샵은 정말 환상적인 툴이죠?

 

행인님은 맘에 드세요? ㅋㅋㅋ

(블로거들의 돌은 행인님이 알아서 피하세요....쩝..)

 

 

 

쬐금 아쉬워서..

보~~너스 <행인툰>이예요~

 

 




 

 

행인님!

울지마세요~ 삐지지도 마시구요~

그냥 쬐금 웃자고 한거니까....ㅠ_ㅠ (아님 어쩔꺼나..그럴땐...쩝..할수엄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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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철의 회화&만화

을지로 순환선/종이에 혼합매체/87×216cm_2000/1995년

 

작가노트

정태춘의 앨범 ‘1992년 서울 종로에서’를 들으며 그 느낌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 하다가 전철타고 봉천동 달 동네를 갔다 오는 길에 구상을 했다. 95년 봄이 오길 기다리는 늦겨울, 어느 평일날 오후 신도림역으로 들어가는 전철안과 밖의 모습을 상상해 그렸다. 지하에서 지상을 번갈아 가면서 서울을 다람쥐 챗바퀴 돌듯 빙빙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을지로 순환선. 각기 다른 꿈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뒤로, 창밖에는 그들 각자의 목적지인 생활과 생계의 터전인 서울시가 펼쳐 보인다

 

그의 그림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림앞에 시선을 가까이 할수록 볼꺼리는 무궁무진하다.

소문에 의하면 미대건물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돋보기로 갖다대며 사물의 하나하나를 묘사했다는

설도 있었다. 아마 진실일 것이다.

자칫 구체적 표현이 과하면 화면구성이 답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구체적 표현을 하면서도 그의 그림엔 강조와 여백이 공존한다. 화면이 열려있다.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더 현실적이고, 세상을 향한 시선이 좀더 따뜻하게 와 닿는거.

훌륭한 작가이다.

 

>>사족

위에서 바라본 건물에 대한 묘사를 자세히 볼수 있는 그림이 있음 보는재미가 훨씬 더할텐데.. 아쉽게도 없다. 캔버스의 크기도 가로 2미터가 넘는 대작인데 500픽셀로 축소했으니 그림에 대한 감동은 실제보다 떨어질 것이 분명...실재로 볼 기회되면 꼭 보시라 권하고 싶다!



와우산/종이에 혼합재료/74×105cm/1994_전체


와우산/종이에 혼합재료/74×105cm/1994_부분


신촌문화축제/종이에 혼합재료


코리아판타지/단편만화_표지

 


코리아판타지/단편만화_부분

"십시일반`에 실린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야기를 다룬 단편만화 28페이지 만화인데..
작업기간은 4달 걸렸다.
가리봉동의 `중국동포의 집,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 가서 김해성 목사님을 뵙고 취재를 하고...
그곳에서 읽은 `장난감 강아지와 운동화두컬레`라는 목사님의 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

<코리아판타지_작가노트>

 

낙서일지
끄적거리다 보면 뭔가가 되어 있는 종이를 보며 스스로 신기해하던 기억은 꽤 어린 시절부터 있었다. 그 신기함을 즐기다 보니 본격적인 그림보다는 낙서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낙서할 때면 사람 얼굴부터 그리게 되는데 아마도 사람에겐 사람이 제일 관심 있는 대상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눈하고 코만 잘 그리려고 했었다. 한참을 지난 다음에 얼굴을, 머리카락을 그려댔지만 뒷통수나 목덜미는 있는지도 모른채 몸이며, 손을 그렸다. 손 그리기가 힘드니까 낙서장의 사람들은 괜한 팔짱을 끼거나 주먹을 불끈 쥐곤 했다.
그림속에서 손가락을 어느정도 펼 수 있을 때가 되어서야 뒤통수와 목덜미의 선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저 밑의 다리며 발도 잘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지 10년, 이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릴 수 있는 것을 더 잘 그리는 것보다는 안 그려본 새로운 것을 찬찬히 보면서 그리는 게 더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사람의 제각각의 생김새 모두를 사랑하며 관찰하는 즐거움을 가질 수 있었다.
발을 그리다 보면 그 발이 딛고 있는 땅 , 몸을 그리다 보면 몸을 에워싸고 있는 공간이 있는데도 일부러 그리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안 가본 길을 찾아가듯이 펜이 움직이며 이리저리 다녀야 눈에도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을 안 다음에는 사람 밖의 것들도 낙서의 대상이 되었다.
어느날, 그토록 피해 다니던 언덕길을 자연스레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이후로 사람과 공간을 함께 그리는 재미를 누리면서 낙서한지 다시 10년 , 사람을 그리려니 이야기가 궁금하고 공간을 그리려니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알고 싶어지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그릴 수 있는 것을 머리 속에서 외어서 그렸고, 다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종이에 담는 맛에 그림을 그렸다면,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 세상들을 얽어매고 있는 관계의 끈들도 보기 좋게 그려 낼 수 있는 낙서를 하고 싶다.

 

최호철/시각이미지 생산자

 

최호철 작가의 개인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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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랑스노냉 거리, 1834년 4월 15일_도미에 작


<트랑스노냉 거리, 1834년 4월 15일>1834년/석판화

 

프랑스7월혁명을 배경으로 탄생한 도미에의 <트랑스노냉 거리, 1834년 4월 15일>는 신문의 기사만을 기반으로 그려진 석판화이다. 그림의 중앙에 시선을 멈추게 되면 어른밑에 깔려 죽은건지, 군인에 의해 살해당한건지 모르겠지만 피를 흘리며 죽은 애기가 있다. 그림은 정적이지만 앞뒤의 상황을 알고나면 그림의 잔혹함에 온 신경이 쭈삣서며 눈의 동공이 커질 뿐 말로는 어떤 표현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해진다. 할말이 많음에도 오히려 할말이 생각나지 않게 되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2004년 12월. 여전히 많은 한국의 아이들이 가난 때문에 굶주리고 있다.
최저생계비로는 최저 생활이 힘든 오늘날, 빵이 커졌음에도 아직 빵의 크기를 키우자고 하는 사회에 따끔하게 충고하는 경제학자의 말을 정부나 가진자들은 귀기울여 듣기라도 할 것인가.


100만의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지만 그들에게 일자리를 줄 수 있는 가능 수요는 없는건지 못 만드는건지...삼성은 이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휴대폰 매출실적 모토롤라를 뛰어넘고 2위를 꿰찼다. 이번 달 월급이 나올지에 급급한 샐러리맨들이 있는 반면 하반기 풍부한 인센티브를 목빠져라 기다리는 대기업 특혜자들도 있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무직에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하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투정일 뿐. 비온 뒤로 한껏 쌀쌀한 날씨에 아직도 높은 타워크레인에서 기본생존권을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가진자들의 씀씀이는 선진국 여느 부자에 못지 않다고 그러니 희망을 가져보라 큰소리로 그들만의 희망을 얘기하는 CEO. 그런 기사를 버젓이 싣고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기사는 귀퉁이에 보일 듯 말 듯 싣는 우리의 언론.


볼리바리안 혁명을 담은 다큐가 주는 흥분은 아직도 유효하고 우리의 현재를 담을 그릇은 카메라가 되어야 하는건지 미디어의 역할이 진정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하다 도미에의 그림들을 한번 더 뒤적이게 된다.
가지지 못한 이들에 대한 억압은 시대를 초월하는데...
함께 행복할 세상은 올 것인가.


 



7월혁명 이후 경제는 여전히 어려웠다.

영국 공황의 여파가 다시 프랑스를 덮쳐 구매력은 감퇴하고 생산력도 격감했다. 임금이 왕정 시대의 4분의 1정도도 안 되었다. 게다가 콜레라가 창궐하여 파리에서만 2만 2천명의 시민이 죽었다. 진보적인 세력은 이러한 불행의 이면에는 정부의 무책임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때 바리케이드의 왕이었던 루이 필립은 왕위에 오르자 태도를 바꾸어 중산 계급의 이익을 옹호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1848~40>에서 말했듯이, 당시 프랑스를 지배한 것은 금융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왕좌에 앉아 의회에서 제멋대로의 법률들을 제정하였으며, 장관직에서부터 담배 판매소의 말단직까지의 모든 공직들을 배분하였다.”
루이 필립이 프롤레타리아의 선동은 엄격한 법률로 규제하면 할수록 이들은 더욱 완강하게 반항했다. 탄압적인 법률은 단지 반정부적인 행동을 자극할 뿐이었다. 왕에 대한 저항 세력은 좌익만이 아니었다. 1832년 4월, 베리 공작부인이 마르세이유에 상륙하여 루이 필립을 하야시키고 옛 부르봉가의 상속인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그 뒤에도 그런 반란은 계속 시도되었다.
그래서 프랑스는 만성적인 반란 상태에서 해가 뜨고 졌다. 그리고 수많은 비밀결사가 불만의 불길을 붙였다. 노동자의 파업과 폭동이 이어졌다. 리용 시는 한때 노동자에 의해 지배되었으나, 2만명의 정규군에 의해 무참하게 탄압당했다. 그것이 1832년의 파리 폭동으로 이어져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묘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1834년 정부는 ‘20명 이상의 무단 집회 죄’를 20명 이하로 수정하는 형법 개악을 자행했다. 이에 따라 노동자의 단결권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거기에 저항하는 격렬한 폭동이 리용의 공장 지대에서 터졌다. 그러나 그 동기는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 경제적인 것이었다. 노동자의 임금이 자활이 불가능할 정도로까지 하락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바로 그러한 파업을 공동 모의로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노동자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1834년 4월 9일부터 4일 동안 군대와의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리용 폭동은 곧 파리로 번졌다.
그러나 그것은 혼란에 의해 상처만을 남겼다. 반란을 주도한 자유주의 좌파는 과격 분자들을 두려워하여 돌연 태도를 바꾸고 물러섰다. 그래서 혁명이 아니라 단순한 시가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리용에서는 저항이 계속되었으나, 4월14일 바리케이드가 군대의 수중에 들어갔다. 그리고 ‘트랑스노냉 거리’의 학살이 이어졌다. 2천여명의 노동자가 전국 각지에서 구속되었고, 정부는 무기 휴대 금지법을 제정하고 군비 확장을 결의했다.

 

도미에의 대작 <트랑스노냉 거리, 1834년 4월 15일>은 상상으로 그린 것이다.
그러나 트랑스노냉 거리의 학살 현장을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다. 바로 폭동과 봉기 그리고 바리케이드의 다음날 새벽, 생 마르탱 노동자 거리에서 국왕 군대에 의해 잠을 자던 노동자 일가를 참살한 현장을 묘사한 것이었다. 트랑스노냉 거리의 어느 아파트 위층의 창에서 총을 맞은 국가 경비대 근위병, 국방군이 그 건물에 들어가 그곳의 주민들을 대부분 살해했다. 그렇게 여러 집에서 행해진 살인을 도미에는 하나의 장면에 응축했다.
중앙에 쓰러진 중년의 노동자는 잠옷 차림이다. 그 밑에는 아기가 죽어있다. 피의 홍수 속에 죽어 있는 아기 위에 잠옷을 입은 채 그대로 죽어있는 노동자, 그리고 오른쪽에는 뒤집혀진 의자밑에 그 아버지인 듯한 노인이, 그 반대편 왼쪽에는 노동자의 아내인 듯한 여인이 죽어있다. 밑쳐진 이불과 베개, 그리고 나동그라진 의자가 소란스러웠던 현장의 모습을 직접 전한다. 도미에의 이 극적인 묘사는 트랑스노냉 거리의 학살을 전한 기사를 읽고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분노로 불타오른 도미에의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이 그림은 우리가 앞서 보았던 고야의 <전쟁의 참화>를 연상케 한다. 밝은 부분에 죽어 있는 노동자를 또렷하게 그리면서, 한편으로 그 아내를 단축기법으로 어둡게 그린 바로크적인 명암대비는 매우 회화적이다. 이런 회화적 특징은 그의 석판화중에서도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보들레르가 평했듯이 이 그림은 단순한 풍자화가 아니라 역사이고 사실이자 놀라운 현실의 재현이었다. 사람들은 이 그림 앞에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자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정부는 즉시 압류 처분을 내렸지만 도미에의 저항은 더욱 강렬하고 날카로워져 수많은 캐리커쳐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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