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공장 탈환을 위한 용역깡패와 ‘갈코리’ 공장 진입작전

 

사측의 총동원 전략이 노리는 것

 

 

 

 

 


핵심은 ‘공장’에 있었다

 

출 퇴근 파업을 넘어서 공장점거 파업에 돌입한지 한 달째다. 그렇다. 사측은 몸이 달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환장할 노릇이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지붕과 베게삼아 파업 거점으로 하기 때문에 사측의 당면 최대 과제는 ‘공장 탈환’이다.

 

‘관제데모’ 혹은 저들 표현대로 ‘일터 지키기’ 공장 진입시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첫째, 쌍용차 투쟁에서 공장 사수의 중요성이다

 

현재까지 쌍용차 투쟁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원동력은 바로 여기에 있기도 하다.

 

공장에서 내쫓긴 파업대오를 상상해보라. 끔찍하다.

 

그런 측면에서 ‘공장 점거 파업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일각의 주장은 잘못되었던 것이다.

 

‘공장 점거 파업만으로는 안 된다’는 주장 역시 일면 타당하지만 쌍용차 투쟁 확대를 위한 발판이 바로 ‘공장 점거 파업’에 근거했음을 간과한다면 말 뿐인 주장이 된다.

 

 

 

둘째, 연대투쟁의 중요성이다

 

기아 선봉대, 경기지역 금속 노동자, 그리고 공장 침탈을 자기 일처럼 느끼고 한걸음에 달려온 수도권 지역 노동자들과 여러 사회단체,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쌍차 투쟁은 이미 구조조정에 고통받고 있는 09년 한국 노동자들의 맨 선두에 서있다. 때문에 노동자들과 연대대오는 쌍차 공장 파업 울타리가 갈코리와 포크레인으로 뚫리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순회투쟁도 연대를 강하게 만들었던 요인이었다. 기아소하, 기아화성, 그리고 정리해고 투쟁중인 파카, 동서를 비롯한 경기지역 금속 순회투쟁은 16일 야간작업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꺼히 달려오게 만들었다.

 

 

 

셋째, 사측과 정부는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재차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18일 노사대화에서 진입도발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강력한 저항’과 ‘노노갈등 유발’이라는 여론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가 틀리면 언제든지 협력업체, 관리자, 노동자의 신분임에도 사측에 빌붙은 자들을 동원한 공장진입을 감행할 것이다. 아니면 사측의 뒤에서 관전(?)했던 공권력의 본격적 도발은 명분만 확보된다면 언제든지 취해질 수 있다. 우리가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넷째, 파업 불참자의 사측 조직화이다

 

파 업 불참자의 행보는 시간이 간다고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향후 이것은 노자간에 ‘뜨거운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파업 불참자들은 이미 노동조합 지도부와 파업대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개별화 되어 있거나 사측의 관장력하에 있기 때문이다.

 

 

 

파업대오에 정면으로 얼굴을 대하지 못하고 있는 파업 불참자!

 

회 사는 이들에게 임금반납 동의서를 강요했고 노노분열을 위한 공장진입의 화살 받이로 동원했다. 특히 이날 공장 진입은 그 동안 수차례 강제로 동원했던 ‘무슨무슨 결의대회’의 연장에서 치러진 행사였다. 이 과정에서 한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향후 사측은 공장탈환이라는 숙원사업이 지체되는 대신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사측의 ‘쪽수확보’를 위한 동원행사를 지속시킬 것이다.

 

 

 

공장점거 파업 한달!  쌍용차 공장의 주인은 바로 우리 노동자이다

 

그리고 이제 공장은 우리 노동자들 스스로의 투쟁에 의해 굳건하게 지켜지고 있다.

 

쌍용차 노동자의 힘으로, 기꺼히 달려오고 있는 연대동지들의 힘으로!

 

나아가 이명박 정부의 ‘사람 짜르는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이 땅의 진보와 양심적 연대세력의 힘으로 견결하게 공장점거 파업은 유지되고 있다. 아니, 쌍차 파업은 공장 점거파업을 근거로 사회적 큰 파장을 일으키며 확장되고 있다.

승리의 자신감! 우리는 승리로 나가고 있다.

 

6월 16일 오전 8시 후문 앞 공원에 모인 정리해고에 포함되지 않은 조합원들. 

이들 중에는 버스에서 내려 작업복 윗도리를 지급받아 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땡볕 아래 30분이 넘는 집회에서 이미 관리자들의 긴 정치연설에 지치고, 

작전(?) 실행에 앞서 또다시 사측의 결의문을 낭독했지만 고개 각도가 저들의 심리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관리자들이 “평화적으로 회사에 출근하겠다”고 마이크로 떠드는 동안 정리해고에 포함되지 않은 

조합원들에게 갈코리, 절단기, 밧줄, 목장갑 등의 장비를 지급하고 있다. 평화의 뜻이 무엇인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성명]쌍용차 노동자투쟁을 왜곡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사측을 규탄한다

[성명] 쌍용차 노동자투쟁을 왜곡하고 있는 보수언론과 사측을 규탄한다

- 노동자투쟁에 전체운동세력이 연대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좌파세력 개입을 운운하며 노동자투쟁을 왜곡

 

 

쌍용차 노동자들은 목숨을 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이에 쌍용차 자본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할 때부터 ‘외부세력 개입’을 악선동 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용역과 구사대를 앞세워 폭력을 유발하고 노동자들을 위협하다 자신들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자 보수언론을 동원해 외부세력 개입을 운운하며 투쟁을 왜곡하고 있다.

 

 

노동자투쟁을 왜곡하는 선두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조선일보는 6월 29일 쌍용차 사측의 인터뷰를 인용해 ‘좌파세력들이 개입해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악선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3년전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투쟁을 했던 좌파세력들이 쌍용차에 집결하고 있다’며 노동자생존권 투쟁을 ‘이념문제’와 결부시켜 마치 쌍용차 노동자투쟁이 변질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특히 준비모임을 겨냥해 ‘폭력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심지어 조선일보의 기사를 그대로 베끼는 일부 보수 언론은 2008년 출범한 준비모임이 3년 전 평택투쟁을 주도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왜곡 보도행위까지 일삼고 있다. 그리고 정부는 보수언론보도에 부응하면서 외부불법 세력을 엄단하겠다며 관련자 색출을 하겠다며 본격적인 탄압을 예고하고 나섰다.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전체운동세력의 존재 이유다

 

 

노동자들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투쟁에는 언제나 이 땅의 진보와 사회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제정치사회단체들이 함께 해왔다. 노동자민중의 억압과 착취, 차별과 배제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며 제 정치사회단체들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쌍용차 대량해고사태는 '자본의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면서 노동자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내모는 행위‘로 공황기 노동자들의 생존과 향배를 결정짓는 문제다. 따라서 가능하면 모든 진보세력들이 이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노동자 생존과 제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노동자들 투쟁에 비하면 제정치사회단체들의 연대는 너무도 초라하다. 전국 곳곳에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에 신음하고 있는 노동자투쟁에 힘을 보태지 못해 너무도 안타까울 뿐이다.

 

 

 

 

‘해고는 살인’,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본

 

 

쌍용차 사측은 3000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만행을 벌였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절규처럼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야말로 살인과 다름없는 행위다. 상하이자본의 기술유출과 약속불이행 등의 불법적 경영,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정부에 잘못된 정책과 자본의 경영파탄에는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오로지 땀 흘려 일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는 행위야 말로 중범죄다.

 

따라서 쌍용차 노동자들이 잘못된 정부정책과 자본의 책임을 묻고 스스로 생존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 무장한 용역과 구사대의 침탈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투쟁을 지키기 위해 방어를 하는 것 역시 너무도 당연하다.

 

 

최근 연이어 일어난 충돌은 자본에 위기를 노동자 희생으로 넘기려는 쌍용차 사측과 정부의 태도가 빚어낸 참극이다. 그것이 이 사태의 본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투쟁을 외부세력, 좌파세력 운운하며 왜곡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또 한번 유린하는 것이다.

 

 

 

공안정국 조성으로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려 한다면 더 큰 분노를 낳게 될 것

 

 

각 정치사회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집회를 참여하고 향후 노동자투쟁 방향을 제안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 26일부터 전개된 쌍용차 사측의 무장한 용역과 구사대의 폭력적 침탈에 맞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농성장을 방어하고 투쟁하는 곳에 연대하는 것 역시 금속노조, 민주노총이 제정치사회단체가 이에 함께 하는 것은 노동자투쟁에서 항상 있는 일이다.

 

특히 쌍용차 투쟁은 노동자민중운동세력의 연대가 더욱 필요하다. 쌍용차 회생을 두고 ‘누가 회생의 비용을 전담할 것인가’를 둘러싼 이 공방에서 지난 몇 년간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이 강요됐던 구조조정을 더 이상은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동자 투쟁에 더 많은 연대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보수언론은 이를 겨냥해서 의도적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좌파세력들의 사주를 받아 투쟁을 한다’고 선동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모욕하는 행위다.

 

노동자들은 스스로 결단하고 투쟁에 돌입했다. 이후에도 노동자들은 민주적 의사결정에 따라 자신들의 투쟁을 결정할 것이다. 연대하는 단체들은 노동자들의 주체적 의사결정을 존중하고 이에 기초해 연대해오고 있다.

그리고 준비모임은 지금까지 사측의 왜곡된 선동, 일부 제도 정치권들의 교란에 흔들리지 않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 속에서 노동자가 자본과 정권과 당당히 맞서 자신의 생존과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엄호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온 힘을 다해 연대할 것

 

 

준비모임은 2008년 10월 출범, 2010년 당건설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준비모임 기간이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을 연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준비모임은 이 땅 자본주의 체제 모순이 빚어내고 있는 억압과 착취, 모든 종류의 차별과 배제를 없애고 자유로운 연대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 건설’로 모아내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는 모든 나라에서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마치 사회주의를 말하면 난리가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이 사회의 잘못된 상식을 바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쌍용차 사측, 보수언론, 정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등장을 이번 쌍용차 노동자 투쟁과 연동해 공안정국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저들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준비모임은 더욱 더 쌍용차 노동자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는 것에 앞장 설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결사항전의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마침내 반드시 승리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 날까지 모든 힘을 다해 연대할 것이다.

동시에 쌍용차 사측과 보수언론, 그리고 이명박정권에 경고한다. 이 투쟁을 왜곡하면서 공안정국으로 노동자투쟁을 진압하라고 선동한다면 더 큰 노동자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투쟁을 모욕하지 말고 그 어리석은 행위를 당장 멈추라!!

 

 

 

2009년 6월 30일

 

사회주의 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spt.jinbo.net)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문제는 자본주의다 6호 차례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준비모임 특보 | 2009년 6월 11일 | 발행인 양규헌 | 02 3667 2855 | spt.jinbo.net | spt2008@jinbo.net | blog.jinbo.net/spt | sptzin.tistory.com



차례

쌍용차파업 끝내 이기라라 

6월 6일 밤,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창원지회 한 조의 간담회를 찾아, 파업현장의 일상 분위기를 엿보았다.
쌍용차 파업대오의 투쟁 승리에 대한 결의는 높다. 하지만 쌍차 파업대오만의 투쟁으로 승리를 거머쥐는 건 어렵다. 자본과 정부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가 단결해야 하는 건 공자님 말씀인지 맑스의 글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안하면 다 죽는다는 건,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말이다.
위기의 책임에 대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전투의 결과다. 금속노조가 합세해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하는 것은 산별노조를 건설한 이유기도 하다. 패배의 결과는 위기 책임 뿐 아니라 산별노조 존재 이유의 부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투쟁은 민주당이 말하는 민주주의 투쟁과는 질적 차원이 다른 투쟁이다. 

북핵을 둘러싼 각국의 반응
노무현의 죽음에 소위 한국의 진보진영들도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려는 심정의 정서를 드러냈다. 다 떠나서 노무현은 정말 탈권위의 대통령이었는가? 한편 MB는 북핵실험을 이유로 노무현 애도정국을 공포분위기로 수습하려 했는데, 한반도 위기의 근원지는 정말 북한인가?

올해 초 시작한 전국공동토론회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지금까지 진행한 세가지 주제에서 쟁점은 무엇이었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4주제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에 치열한 쟁점 토론이 예고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묻는다. “아니 거기 아직 장례 안치뤘어요?” 그렇게 잊혀지는 것이 가슴아픈 정영신 씨. 어떻게 철거민이 되었는지, 어떻게 투쟁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가장 억울한 것을 이야기한다.

정부는 실업대란을 비정규직 대란으로 막겠단다. 비정규법을 2년 유예하고, 최저임금을 삭감하려고 한다. 더 짜지 말고 재벌의 곳간을 열어라. 6월 투쟁, 용산참사, 박종태 열사, 실업대란, 쌍차 파업 등 반MB정서는 확대되고 있다. 조직노동자들이 나설 때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규직 비정규직이 아니라 싸우는 노동자와 싸우지 않는 자로

쌍용차 노동자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없이 죽기를 각오하고 
정리해고 분쇄, 총고용 보장을 위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금속노조 간부동지들, 이 투쟁을 엄호해주십시오. 
금속총파업을 조직해주십시오. 연대를 호소합니다
- 쌍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연설 중에

쌍용차 노동자파업이 전개되자 ‘정리해고’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1500명 희망퇴직, 976명 정리해고라는 숫자 속에는 이미 쫓겨난 300명의 비정규직은 포함되지 않았다. 36명의 무급휴직자들의 해고 통보도 포함되지 않았다. 해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아 있는 300명의 비정규직도 이 숫자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비정규노동자들은  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점거파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전체 노동자들을 향해 ‘총파업을 조직해주십시오’라고 호소한다. 쉬어빠진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나있다. 왜 그들은 언론의 관심밖에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걸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쌍용차 노동자파업
쌍용차 파업 현장 곳곳에 '총고용 보장'이란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쌍용차 지부와 비정규직 지회가 공동으로 내거는 슬로건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는 파업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70미터 굴뚝의 고공 농성도, 파업지도부의 기자회견도, 촛불문화제의 상징의식 때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하고 있다. 계급의 단결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을 그렇게 하고 있다.

결코 다르지 않은 노동자 처지
그러나 파업 그 전후의 행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를 수밖에 없다. 쌍용차 구조조정이 예상되었지만 아직 가시화되기 전인 2008년 11월에 정규직의 전환배치에 따라 비정규직 640여명 중 300명이 강압적 희망퇴직을 당했다. 아니, 쫓겨났다. 이것을 거부한 35명에게는 강제 휴업이 진행되었다. 아니, 잘렸다. 2009년 3월 9일에 짤린 게 맞다며, 정리해고를 통보해 왔다. 이 35명의 다수가 쌍용차 비정규직 지회의 임원과 조합원들인 점을 보면, 남은 300명을 저항없이 자르기 위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6월 안에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고 모두 폐업과 정리해고를 단행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이후 정규직 구조조정과 맞물린 문제다. 3월 말부터 하청업체들이 폐업에 들어갔고, 이는 쌍용자동차 분사를 위한 정지작업이란 점이다. 분사를 통한 정규직의 대량해고와 비정규직화라는 어두운 계획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희생된 것이다.

총고용 보장의 적용 원칙은 싸우는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조건이 다른 상황이지만, 총고용 보장의 기준이나 원칙을 다르게 적용할 수는 없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현재 파업투쟁의 과정에 있고, 함께 대오를 형성한 것을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규직 조합원들도 싸우지 않는 조합원들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고 있으며, 함께 싸우는 비정규직에 대해 함께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높다. 자연스럽게 총고용 보장의 기준은 싸우는 노동자와 싸우지 않는 노동자가 되었다. 남은 것은 현장에서 인정된 소중한 원칙을 파업 이후까지 관철시키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의 죽음에 비친 ‘진보본색’

끝없는 애도, 노무현 신드롬
노무현의 죽음은 일대 사건이었다. 한국사회는 마치 노무현 생전과 생후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회가 되는 듯한 현상을 보였다. 상중에 벌어진 북의 2차 핵실험조차도 삼켜버릴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으며 500만에 가까운 사람이 직접 애도를 표하러 나설 만큼의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는 애도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된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하겠다. 
국민장 기간 동안 보수진영도 일부 극우 인사를 제외하고는 노무현 추모 대열에 동참했다. 오히려 그 와중에 추모 자격 문제에 부딪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노무현이 죽음에 이르게 된 데에 대한 부채가 있으며 그 원망의 화살이 자신들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독립된 정치세력으로 서지 못하고 있는 진보진영
문제는 진보진영이 보인 태도다.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이 보인 전전긍긍과는 정 반대로 조금 심하게 말하면 의기양양 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민주당이 노무현의 상주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야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진보진영마저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려는 심정과 같은 정서를 드러냈다. 진보진영에서도 노무현은 ‘서민’, ‘탈 권위’,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진보의 아이콘으로 격상되었다. 물론 몇 가지 작은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과는 구별해야 한다거나,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과 그의 정책을 반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거나, 노무현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과 노무현이 남긴 과제를 성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등이 그것이다.
적어도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자 민중운동 또는 노동자 정치의 핵심 과제는 기존 보수 정치 또는 부르주아 정치로부터 독립된 독자의 영역과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이 등장함으로써 형식적 독립은 이루었다. 그러나 그 내용에서 민주노동당은 자유주의 세력의 이중대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진보진영은 지난 10년 동안 자유주의 세력의 대체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진보진영은 제 발로 서지 못하고 여전히 자유주의 세력에 기대고 있는 형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대중의 뒤꽁무니만 따를 것인가
지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도 진보진영은 독자적인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의 뒤꽁무니를 따랐을 뿐이다. 탄핵을 반대하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탄핵 반대의 동력을 노동자 민중정치로 안내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지난 ‘촛불 정국’에서도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되었다. 진보진영은 ‘촛불 대중’을 지지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넘어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도력을 획득하는 데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만들어 낸 정치 공간 속에서 진보정치는 자신의 한계, 즉 본색을 또 다시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이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용산대참사라는 노무현의 죽음과는 또 다른 사건이 그 훨씬 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은 이를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용산대참사 초기에 보여준 노동자 민중의 분노는 결코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하는 열기에 비해 덜했다고 할 수 없다. 진보진영은 그 즉시 왜 전국에 분향소를 차리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애도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라면 용산대참사가 벌어진 당시에 대중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를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았던가. 울산 북구에서의 선거 승리는 도대체 지금 무슨 의미가 있는가. 노무현의 죽음이 일으킨 정치 현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도 정치권의 구역질나는 위선을 탓하기에 앞서 진보진영, 진보정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냉정히 돌아봐야 한다. 
고민택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노무현은 정말 탈권위주의 대통령이었는가?

소탈함 속에 가려진
유아독존의
권위주의 리더십




슬픔 속에 묻혀버린 역사와 진실  
‘죽은 노무현과 산 이명박의 싸움’, ‘죽은 권력 앞에 살아 있는 권력이 벌벌 떤다.’ 등의 자극적인 수식어구가 난무하고 있다. 소탈한 성품으로 권위주의 정치를 무너뜨린 전직 대통령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현직 대통령 간의 권력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민중들을 허위의 수렁으로 빠뜨리고자 하는 수식어구들이다. 
수백만의 추모객과 조문객들은 탈권위주의적이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였고, 전직 왕의 남녀들은 애도정치와 추모정치를 앞세워 죽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즈려밟고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은 양 이명박 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의 화살을 쏘아야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진보정치세력들도 마찬가지이다. 전직 대통령이 자살까지 해야만 하는 한국정치의 악폐를 걷어치우자고 소리 높이면서 이명박 정권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고, 노동자·민중의 정치를 외치지만 몸과 마음만은 영정 앞에서 머리 숙여 슬픔을 조아린 고뇌 가득한 진보주의자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그렇다. 한 시대의 역사와 진실을 자신의 죽음으로 묻어버린 노무현의 리더십이 진정 탈권위주의적이었고 민주주의를 강화시켰는가의 문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왕의 죽음에 대한 슬픔만이 흥건하다.
민주주의의 이행과정에 있는 사회일수록 동의에 기반을 둔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많은 사람들은 죽은 노무현을 이러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노무현이 죽고 난 이후에는 아예 역사적 사실로 화석화시키려 하고 있다.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억압과 강제에서 벗어나지 않은 노무현식 탈권위주의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은 소탈하고 겸손하거나 퇴임 이후에 고향으로 내려가서 인터넷 소통을 잘 했다는 현상만으로 규정될 수 없다. 그러한 리더십은 최소한 사회구성원에 대한 억압과 강제를 기반으로 하지 않아야 하고,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법과제도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을 동원하지 않아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죽은 노무현은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리더십을 구성하는 요건 중에서 어느 하나도 충족하지 못하였다. 죽은 노무현은 항상 노동자·민중 학살정책을 추진하면서 국가의 물리력을 폭력적으로 사용하였고,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를 관철시킬 때는 항상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에 의존하였다. 
또한 그는 사립학교문제, 언론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개혁하겠다고 의기양양했지만, 의회 내 다수 의석의 힘조차 활용할 의지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당정분리가 민주적이라고 내세우면서 민주적 사회개혁과 관련된 모든 문제를 정당과 의회로 떠넘긴 무책임성까지 보여준 지도자였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전직 대통령의 탄핵을 사회구조적인 지배세력의 힘에 저항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보았고, 그 이후 고통 받는 외로운 투사에게 의회의 다수 의석을 선사하였다. 하지만 죽은 노무현은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들의 개혁의지를 실현시킬 힘이나 의지가 없었고, 기득권 세력에게는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노동자·민중들에게 권위주의적인 법과 제도의 폭력을 사용했던 것에서 충분히 볼 수 있다. 

그가 보여준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은 단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고민하지 않고 내뱉었던 막말 리더십이었고, 사회구조적인 기득권 지배세력의 힘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아예 권력에서 일탈해 개인의 존재만을 부각시킨 유아독존 리더십이었다. 1988년 청문회 스타로 부각된 엘리트 정치인은 사회구조적으로 고착화된 군부독재의 틀을 바꿔야 할 소명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역사의식을 저버리고 개인의 영욕만을 선택하였던 것이다.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죽은 노무현의 성정을 따랐던 전직 왕의 남녀들이 또 다시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이명박의 권위주의 리더십을 공격하자고 하니 이것이야말로 역설의 미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권위주의적이고 유아독존적인 리더십을 탈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지도자로 둔갑시켜 가고 있는 우리 안의 봉건주의적이고 사대주의적인 근성이 또 민주주의의  질곡으로 존재하는구나.
김영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위기에 빠진 MB정부 ‘북핵위기’가 호재?

대북강경대응과 안보정국 조성은 더 큰 재앙을 부를 뿐




북한 핵실험 이후 보수 일간지들은 일제히 감정을 자극하고 강경대응을 부추기는 기사들을 전면배치하고 있다. 

고독한 군주의 결단
북한이 4월 5일 로켓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25일 보란 듯이 핵실험을 한 것은 핵무기만이 자신들의 체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믿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 동안 북미 대화는 양측의 신뢰상실과 무리한 요구로 인해 표류하면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하였다. 미국은 과거 북한의 1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와 그로 인한 패권국으로서의 지위 상실을 우려하면서 북핵 문제보다는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에 집중했던 것이다.  
북한 핵실험은 무엇보다 건강 이상설에 시달리고 있는 김정일이 강성대국으로의 진입을 예고한 2012년까지 후계자에게 견고한 권력 기반을 물려주기 위함이라는 일반적인 분석은 일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특히 2012년은 남한과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기 때문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예고되는 시점이다. 이를 감안할 때 그때까지 대미 협상을 통해 체제의 안전판 격인 북미 관계 정상화를 달성하겠다는 의도 아래 ‘속도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후계체제를 3남인 김정운에게 물려줬다고 남한의 국정원이 발표했지만 확인된 바가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 진실은 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퍼즐 맞추기와 같은 것이어서 섣불리 판단했다가 정책적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 만약 김정운에게 권력을 상속하기 위해서 핵실험을 했다면 북한 민중들의 안전은 어떻게 보장하는지, 또한 상속세는 어떤 식으로 부담할 지 자못 궁금하다.  
이번 국면에서 이례적인 것은 중국의 북핵 실험 비판에 대해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가 매우 흥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강력한 불만과 분노를 표출했지만 이는 동북아 정세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으로서는 북한과의 동맹관계를 파기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 정책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남한과 미국 등이 중국에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일장춘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빨리 인식하기 바란다. 설령 김정일이 중국의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해도 국제사회의 비주류이며 거의 왕따 수준의 외롭고 고독한 군주로서 내린 치밀한(?) 결단에 대해서는 세심한 분석과 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한반도 위기는 이명박 정권이 책임져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남한의 PSI 가입과 이로 인한 무력충돌 가능성이다. 올 초부터 한반도에는 보수세력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통일운동 세력에게서도 위기설이 유포되면서 남한 사회를 불안에 떨게 하였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북미 관계 등을 고려하면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의 위기가 아니었음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위기를 증폭시키면서 정세를 교란시키고 운동 전선에 혼선을 빚은 것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지금부터 앞으로 한 달여 동안 위기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협상을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보지 않고 보상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는 미국 내 보수 강경여론과 궤를 같이 한다. PSI 전면 참여, 미국의 핵우산 제공 명시 추진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강경 대응은 북한이 굴복하고 대화에 나와야 한다는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책이 오바마의 입지를 좁혔으며, 북한의 강경대응에 명분을 주고 있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권은 ‘위기로 느끼지 않는’ 국민 정서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선동하며 국면 전환을 위해 몸부림을 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역시 더욱 강경해질 수밖에 없으며, 북미간의 대화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현재는 ‘말 대 말’의 공방이 오가고 있지만 언제 ‘행동 대 행동’으로 주고받으면서 무력 충돌로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만약 안보리가 강도 높은 제재를 취하면 북한의 반발을 불러와 ICBM의 발사 시험과 추가 핵실험으로 이어지고 서해안에서의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리 비관적이지는 않다. 중국이 안보리의 제재 수준을 유연하게 조절하고 북미 대화의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질 것이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에 억류된 2명의 미국 여기자에게 12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것은 오바마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오라는 긍정의 신호로 읽고 반응해야 한다. 북으로서도 상황이 악화되는 것에 대해서 부담을 느끼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전환이 시급하다. 이는 남북 관계개선과 동북아 정세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안보정국을 통해서 돌파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회귀해서도 더욱 안 된다. 더 이상 자신을 파멸의 길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배성인 | 한신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북핵을 둘러싼 각국의 반응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국제사회 논의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2007년 2.13합의, 10.3 합의 등을 통한 비핵화논의 
2007년 북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에너지지원 약속
2008년 북한 핵프로그램 신고 및 영변 원자료 냉각탑 폭파 
2008년 미국 북 테러지원국 해제 
2008년 6자회담 세부적 검증체계를 둘러싼 논란. 협상 실패 
2009년 5월 25일 북한 2차 핵실험 감행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관련 7개국 대북제재 논의 
2009년 6월 16일 한미정상회담. 핵우산 제공 명분화 계획 논의 예정

 북핵문제를 둘러싼 관련국들은 저마다 ‘전쟁 억제와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시키고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이명박정부는 북한의 2차 핵실험 감행이후 곧바로 PSI참여를 선언했다. 그리고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 대륙간 탄도미사일 준비 등 북한 상황을 연일 발표하면서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 노무현 전대통령 죽음을 계기로 확산되고 있는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저항의 분위기를 한반도 위기 증폭으로 전환시키려한다는 비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집권정당인 자민당은 ‘대북 선제공격론’을 승인하면서 자위권 보장, 무기수출 완화 등 한반도 위기증폭으로 일본의 군사대국화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고 있다. 이는 최근 선거를 앞둔 보수층의 결집과 지지라는 정치적 계산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한미일 동맹흐름은 이러한 군사력 강화시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유엔안보리 대북제재 논의를 주도하면서 연일 강경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제재 초안에는 금융제제는 물론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등이 포함되어 있고 무력수단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한반도 긴장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반전평화를 주장하는 단체들과 전문가들은 ‘미국이야말로 핵확산의 주범이며 NPT조약의 자의적 적용으로 군사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전쟁을 부추긴다’고 비판한다. 
분명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 이명박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한반도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를 바라하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지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파업현장! 노동자의 로망, 계급의 로망

5색천을 기둥에 집단으로 감는 놀이. 기둥을 잡은 자들, 천을 잡은 자들의 힘조절과 협업의 난이도가 매우 높은 집단놀이다. 
5 색천이 거의 감겨 기둥이 알록달록 꾸며졌을 때 진행자 멘트, “서로 협동하느라 수고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는 이명박도 합니다. 이명박이 많은 문제를 꼬아놓고 풀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이명박보다 낫다는 걸 보여줍시다. 어렵지만 이제 반대로 꼬인 천을 풀겠습니다. 에헤라디야~ ”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고들 말한다. 노동자 개개인의 생존의 이유들로 파업이 시작되지만, 파업의 양상은 개인적인 이유를 넘어서 계급의 이해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또 그 과정에서 노동자 개인은 계급으로 각성한다는 의미가 바로 노동자의 학교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골방 좌파들의 이론이거나 늙은 노동자들의 전설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2시간 파업, 4시간 파업, 하루 파업을 두고 노동자의 학교라고 말하면 그 말이 맞다 틀리다 판가름하기 전에 동시대인으로서 현실감각을 의심받을지 모른다. 지금은 그런 시대다. 그래서 파업이 노동자의 학교라는 건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6월 6일 쌍용차 촛불문화제가 끝나고 조합원들은 그날의 일정을 정리하며 어떤 조들은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창원지회 한 조합원은, “지금은 전쟁 중이라 원칙적으로 술을 마시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강력한 금지보다는 조합원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파업일정에 피해를 안 주는 만큼에서 조합원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정도”라고 했다. 현재 창원 조합원 131명이 결합하고 있고, 스스로 131특공대라 부를 만큼 파업 대오에서도 결의가 가장 높은 대오라고 소개했다. 그 자리에 모인 10여명 중 2명은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된 소위 ‘산자’인데도 함께 투쟁할 만큼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술자리 간담회의 첫번째 관심사는 6월 5일 있었던 노사정 교섭이었다. 내용이 정말 없는지, 있는데 모르는 것인지 의심하는 조합원들에게 그 자리는 규정력없는 비공식 자리였다는 점과 사측이 정리해고를 철회할 의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공유했다. 그리고 6월 8일부터 창원 공장 재가동과 평택 공장의 회사측 집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지에 대해 지도부의 방향이 어떤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구체 전술에 대해 어떤 행동이 좋을지를 두고 자유토론도 이어졌다. 이들은 평소 오전에 결의대회와 간담회, 오후에 전술 훈련, 야간에 촛불문화제를 하며 수시로 상황을 공유하고 훈련하기 때문인지, 속도감 있는 토론과 높은 실행의지를 보였다. 
파업 상황에 대한 공유가 끝나자, 삼삼오오 자유로운 분위기가 됐다. 창원에서 지역 연대투쟁의 경험이 많은 노동자가 신참 노동자에게 자기 경험에 기반한 민주노조운동사를 읊다가, “우리가 연대투쟁이 절실해서 많은 곳에 연대를 호소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동안 우리가 연대 투쟁에 나간 적이 없기 때문에 상당히 염치없는 호소다. 이 파업이 승리하면 지역과 금속에 신경써서 연대해야 한다. 월차를 내서라도 해야 지금 연대하는 동지들에 대해 보답하는 길”이라 말했다. 다른 경험 많은 노동자는 “우리가 한 것도 없지만, 이렇게 연대대오가 많은 것은 운이 좋은 것이다. 공황에 우리가 깨지면 다른 데도 깨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 쌍용차가 중요해 진 것”이라 덧붙이기도 했다. 귀가 의심스럴 정도로 파업 뒤에 숨은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술은 남았고 주당은 울겠지만, 자리는 일찍 끝났다.  
지면에서 생략한 자세한 이야기는, MB시대 만큼이나 아주 황량했던 시절 민주노조운동의 무용담을 재현할 조건을 갖췄다. 무기한 공장점거 옥쇄파업! 또 한편으로 이들의 분위기는 옛시절 지사풍의 무거움 보다는 경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결의를 높이며 쌍용차 조합원들은 노동자의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이제 계급의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금속노조를 비롯한 민주노총이 나서야 한다.
찾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모두가 사는 길, 전선을 확대하라

6월 6일 쌍용차 촛불문화제에서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파업이 공권력에 깨지더라도 다시 거점을 잡아 싸우며 최전선을 지켜달라고 쌍용차조합원들에게 당부했다. 당시 위원장의 연설을 듣던 연대온 한 노동자는 "립서비스라도 총파업을 말하면 안 돼나?"라 외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하지 않겠다'더라고 말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민주노총 지도부만큼이나 답답한 것은, 이 싸움의 양상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번 주 초(8일)에는 공권력 배치가 예상되었지만, 예상은 1주일 정도 미뤄졌다. 노무현 죽음 이후 MB와 한나라당의 지지율 하락과 민주당의 지지율 상승, 그리고 민심 이반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공권력 배치가 MB에게 부담스런 전술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3,000명이나 해고하는 초대형 사고에 공권력 투입의 명분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당장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쌍용차 파업이 노-사 문제에서 노-정의 문제가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MB정부는 쌍용차 파업에 직접 개입할 것이다. 노, 사, 정 어디든 이 파국을 피할 수는 없다. 
현재 파업대오와 공투본은 공권력 진입에 대비해 다음 단계의 전술을 준비하고 장기전으로 갈 때 필요한 물품까지 비축해 놓은 상태고, 파업대오의 투쟁 결의는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공장을 점거한 옥쇄파업의 맹점은 고립이다. 다음 단계로 접어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쌍용차 파업이 고립되지 않도록 공장 밖으로 전선을 펼치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이 교란당할 것인지, 적을 교란시킬 것인지는 공장 밖의 전선, 곧 연대 총파업의 유무에 달려있다.
이번 파업은 단지 쌍용자동차 노동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전체 노동과 자본의 운명을 결정할 대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미 많은 현장에서 쌍용차 파업 현장을 방문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연대하고 있다. 쌍용차가 무너지면, GM대우, 기아, 현대의 순으로 무너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을 지키는 것이 곧 자신과 현장을 지키는 것이고, 금속노조를 지키는 것이다. 지금까지 쌍용차 노동자가 대표선수로 최전선에서 잘 싸우고 있다면, 이제 최소한 금속노조는 금속노동자 총단결의 기치로 이 싸움을 연대하고 확대해야 한다. 지금 당장 금속노조가 취할 전술은 간명하다. 금속노조 총파업이다. 강력한 총파업으로 쌍용차 파업을 사수하고 MB와 자본을 교란시켜야 한다.
찾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