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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나크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영토 병합

*나크바: 대재앙이란 뜻의 아랍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팔레스타인 선주민 인종청소를 일컬음.

이스라엘이 최소 12%에서 최대 30%에 달하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겠다고 한다. 병합의 범위와 방식은 미국과 논의 중이며 이에 따른 병합 안을 7월 1일에 공식 발표할 계획이다. 이스라엘이 전쟁과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를 통해 국가를 건설한 1948년 이후, 규모면에서 최대의 영토병합이 될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군사점령한 뒤 1980년에 동예루살렘을, 1981년에는 시리아의 골란고원을 병합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나머지 땅은 계속 군사점령한 채, 강제 추방 및 토지 몰수를 통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땅을 조금씩-국제적 공분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병합해 왔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은 새로울 것 없는,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고 ‘유대 민족’만의 단일 국가를 세우겠다는 오랜 시온주의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이번에는 미국이 먼저 나서 영토 병합을 제안했다는 점이 다르다. 미국 트럼프 정권은 2018과 2019년에 연이어 동예루살렘과 골란고원이 이스라엘의 영토라고 승인했다. 그리고 올해 1월 말에는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의 대부분을 이스라엘 영토로 할당하며 ‘중동평화안’을 발표했다. 이스라엘이 영토 병합을 하기도 전에,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공식적으로 승인한 것이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것이 “역사적 기회”라며 바로 병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정면으로 위반하자 독일과 같은 이스라엘의 오랜 지지국들마저 당황해했다. 국제사회의 강대국들이 정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라는 ‘2국가 안’의 실현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영원한 군사점령의 약속, 트럼프의 “세기의 딜”

트럼프 대통령은 교착상태에 있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면서, 임기 중에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겠다고 장담했다. 그리고는 중동이나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아무 식견도, 경험도 없지만 이스라엘 위정자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자신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중동 평화’의 청사진을 내놓을 담당자로 앉혔다(쿠슈너는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 자신이 중동 문제를 다룬 “25권의 책을 읽었다”며 전문성을 과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청사진을 발표하겠다면서도 이를 여러 차례 미뤄왔다. 부패 스캔들로 핀치에 몰린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선을 돕기 위해 노골적으로 이를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정부가 네타냐후 총리를 전폭 지지한다면, 이것이 그의 재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계산이었다. 네타냐후는 당시 뇌물, 사기, 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국 지난해 6월 말 바레인에서 청사진의 경제 분야가 공개됐고, 올 1월 말에는 정치 분야가 발표됐다. 연이은 연립 정부 구성의 실패로 작년 이후 세 번째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발표된 것이었다. 청사진의 공식 명칭은 ‘번영을 향한 평화: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이다.

트럼프 스스로 “세기의 딜”이라 자찬하는 이 ‘번영’의 내용이란, 팔레스타인에 돈을 풀어서 경제적 곤궁을 달래줄 테니 대량의 땅과 주권을 이스라엘에 넘기라는 것이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물론, 요르단과 맞닿은 요르단 계곡조차 이스라엘의 영토가 된다. 이는 줄곧 이스라엘이 ‘안보’를 구실로 주장해 왔던 것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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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딜"이 제시하는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지하 터널을 통해 연결하고, 엉뚱하게 네게브 사막에 산업지대를 설치하라고 한다.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영토는 불법 정착촌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유대인 전용 도로로 갈라지고 조각나 있다. 국제사회가 약속했던 수도는 ‘동예루살렘’이었지만, 트럼프는 동예루살렘 외곽의 작은 마을 ‘아부 디스’를 수도로 배정했다. ‘국가’라고 말은 하지만, 무장할 권리를 박탈하고 제공권, 국경 통제권을 모두 이스라엘에 부여했다. 대신 팔레스타인에는 향후 10년간 차관 등을 포함해 50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금액은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에 대한 지원까지 포함한 것으로, 실제로 팔레스타인에 할당된 액수는 278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 돈은 미국이 향후 10년간 이스라엘에 군사원조 명목으로 지원할 380억 달러의 73%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올해 5월 22일,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미국 역사상 최대 군사원조가 될 해당 지원 법안을 조용히 통과시켰다. 하원에서는 이미 지난해에 통과됐고, 앞서 오바마 대통령이 2016년 임기 마지막에 사인했던 내용이라 상원에서도 무리 없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민주당 대선 주자 조 바이든은 이스라엘의 영토 병합을 규탄하면서도, 영토 병합 중단을 군사원조의 조건으로 걸자는 제안은 명백히 거절한 바 있다.

역대 미국 정부와 보수적인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 국가를 수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2국가 안’을 채택해 왔다. 그러나 트럼프 정권은 이 최소한의 합의조차 무시한 채,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난민이 돌아올 수도 없고 군대를 가질 수도 없는 ‘국가’에서, 영구적으로 이스라엘 군대의 통제 속에 살라고 강요하고 있다.

미국은 청사진에서 4년의 유예기간을 제시했다. 4년간 이스라엘은 불법 정착촌을 추가 건설하지 않고, 미국은 이 청사진으로 팔레스타인과 ‘협상’을 하고 설득하겠다는 것이었다. 오는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네타냐후는 트럼프 임기 중에 미국이 할당해 준 땅의 일부라도 병합하려고 서두르고 있다. 그래서 주요 불법 정착촌만 우선 합병하고 단계적으로 추가 합병하는 등 다양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이스라엘의 제2여당 청백동맹당은 미국의 원안대로, 팔레스타인 및 요르단과 ‘협상’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며 당장의 병합에는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경화하는 이스라엘 사회: 극우들의 민주주의

잠깐 올해 이스라엘 총선 결과를 살펴보자. 트럼프의 강력한 지원사격에도 네타냐후는 또다시 연정 구성에 실패했다. 하지만 앞서 연정 구성의 기회가 있었던 ‘청백동맹당’의 ‘베니 간츠’ 역시 연정 구성에 실패한 상태였다. 대립하던 두 당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구실로 ‘비상 내각’을 함께 구성하는 극적인 합의를 타결했다. ‘교대 총리’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도입했다. 18개월간 네타냐후가 총리를 하는 기간엔 간츠가 교대 총리직을, 남은 18개월간 간츠가 총리를 하는 동안엔 네타냐후가 교대 총리직을 역임하기로 한 것이다. 군 참모총장 출신 간츠를 필두로 이스라엘 정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신생 청백동맹당은 네타냐후의 리쿠드 당과 얼마나 다를까? 우선 청백동맹당은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요르단 계곡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일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그런 그들이 말하는 점령지 철수란, 영토병합을 마무리한 후의 철수일 뿐이다. 그들은 올 총선에서 네타냐후가 요르단 계곡의 불법 병합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자, 이는 자신의 주장인데 네타냐후가 훔쳤다며 거세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안지구 불법 영토 병합을 둘러싼 이스라엘 내 프레임은 ‘일방적’으로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 vs 팔레스타인과의 ‘협상’ 속에 영토 병합을 할 것인가로 짜여 있다. 어느 쪽이든 영토 병합 자체는 모두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영토 병합의 정의 자체가 ‘일방성’과 ‘강제성’을 포함한 것이지만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공론장에서 영토 병합에 반대하는 이른바 좌파들의 목소리는 더욱 작아졌다. 현재의 영토 병합 반대자들의 목소리란, 헤브론을 이스라엘로 할당하지 않았고 나아가 서안지구 나머지 70%의 땅도 모두 이스라엘 영토라는 주장들이다. 즉 미래에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불법 정착민과 극우의 주장일 뿐이지만, 이것이 마치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다양한 입장이라도 되는 양 토론되고 있다. 그들만의 ‘민주주의’는 더없이 노골화됐다. 서구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그간의 전략, 즉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민주 국가고, 자유와 인권 등 서구의 모든 가치를 공유하며, 자국의 안보를 위해 방어적 조치를 취할 뿐이라는 기존의 ‘이성적인 우파’의 프로파간다는 더 이상 주류가 아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랫동안 우경화해 왔고, 결국 우익과 극우의 각축장이 됐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시온주의 식민 정책에 대한 비판에는 ‘반유대주의’라는 낙인을 찍어 재갈을 물린다. 한편에선 군사점령을 문제 삼지만 않는다면 반유대주의자들과도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다. 네타냐후 총리는 헝가리나 폴란드 등 유럽의 극단적 반유대주의 극우 정치가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강제 징병 대상으로 취급하던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었다. 네타냐후는 심지어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생각까진 없었고, 팔레스타인 무프티의 제안에 따랐을 뿐이라는 망발을 한 전력도 있다. 미국에서, 특히 젊은 유대인 사이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주류로 부상해 왔는데, 이스라엘의 선택적 반유대주의는 이를 설명해주는 이유 중 하나다.

오슬로 패러다임의 종식

국내 정치가 노골적으로 극우 편향된 상황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만이 아닌 서구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필요로 한다. 그 때문에 네타냐후는 영토 병합 계획에 대한 서구 사회의 경악에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리쿠드 당 의원들이 6월 21일, 미국 안이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를 승인하는 것이라며 반발하자 네타냐후는 그들을 달래기 위해 문서를 회람했다. 즉, 유대와 사마리아(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부르는 명칭)에 이스라엘의 주권이 미칠 것이며, 45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 정착민을 쫓아내는 것은 “인종 청소”라며 그런 일은 절대 없다고 확인시켰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토 병합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영토를 강제로 획득하는 것인데 서안지구에 대한 유효한 법적 권리를 주장하는 국가가 없기 때문에 이것은 영토 병합이 아니”라며 영토 병합에 대한 서구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했다. 특히 이번 영토 병합이 서구 사회가 제시한 2국가 안을 위태롭게 하기는커녕 팔레스타인에도 좋다고까지 주장했다. 앞서 주미 이스라엘 대사도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이번 영토 병합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없앨 수 있다는 환상을 깨주고 진정한 2국가 안에 동의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런 이스라엘의 노력에도 서구 사회가 이번 영토 병합에 침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UN의 인권 전문가 47명은 6월 16일 UN인권이사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점령한 영토의 병합은 UN헌장과 제네바 협약의 심각한 위반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총회가 전쟁이나 무력에 의한 영토 획득을 금지하는 근본 규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 때 서구 사회가 취한 태도와의 일관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구사회는 이스라엘이 가자 주민을 학살할 때마다 이를 규탄만 할 뿐,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이를 ‘계속해도 된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특히 유럽 사회는 이스라엘을 홀로코스트 피해자와 등치시키며, 아무리 국제법을 위반해도 그저 달래고 보상해줘야 할 대상으로 대해왔다. ‘제발 서안지구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그만 지으라’던 서구 사회의 요청은 ‘제발 서안지구를 병합하지 말아 달라’는 호소로 후퇴했다. 여전히 서구사회는 오슬로 ‘평화’ 협정에서 약속했던 2국가 안을 고수하고 있다. 정작 2국가 안은 이스라엘이 원하지 않아 태생부터 파산된 상태였는데도 말이다.

사실 2국가 안에서 얘기하는 이스라엘이란 유대인만의 국가를 의미한다. 2국가 안은 이스라엘에 인종청소당하고 추방당한 채 인접 국가의 난민촌에서 살아가는 700만 난민의 귀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또 이스라엘 내에서 공식적으로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팔레스타인계 시민권자의 지위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애초부터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었다.

이스라엘의 영토병합으로 2국가 안으로 대변되는 오슬로 패러다임이 종식되는 것 아니냐고 한탄하는 논평자들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딛고 정립된 보편적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원칙의 붕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탄하며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UN의 각종 기구에서 수없이 결의한 대로 각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포괄적 무기금수조치를 취해야 한다. 한국도 예외일 수 없다. 한국 정부는 작년 이스라엘과 FTA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 정부는 타결 소식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UN 안보리 결의안에 따라 이스라엘이 ‘67년 이후 점령한 지역에 대해서는 특혜관세 등 동 FTA의 적용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유대인 정착촌은 불법이며,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땅을 병합하는 것은 더욱더 반대하는 것이 일관된 태도다. 그를 위해 아직 서명 전인 FTA의 무효화라는 카드로 이스라엘을 강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1월 30일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의 ‘노력을 평가’한다며 UN 결의안에 따른 2국가 안을 지지하던 입장에서 오히려 후퇴했음을 암시한 바 있다.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게 압박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일 테다.


※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구상하는 영토병합 지역의 지도가 다 그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계획 발표를 지연시키고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7월 1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이후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 사실 그걸로는 부족하다. 누차 강조하듯 영토병합 지역이 예정보다 줄어든대서, 심지어 안 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아지는 게 아니다. 이번에 안 하면 이걸 기반으로 이후 무조건 한다. 이미 이스라엘애소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안이 이후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서 기본 밑그림이 될 거라며 극우들 달래고 자빠졌다.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지 전면 철수가 선행되지 않고는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며 영토병합, 학살, 뭘 자행해도 예정된 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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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즌2] 키워드: 서안지구-①편 : 7월 1일, 이스라엘이 서안지구를 빼앗으려 합니다. - 전반적 설명
  2. [시즌2] 키워드:서안지구-② 편: 서울에서 먼저, 분노의 날이 밝았습니다. - 기자회견 발언문
  3. [시즌2] 키워드:서안지구-③편: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육성으로 전합니다. - 제목 그대로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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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선언,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이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 있었기 때문에 워커스는 PLO(파타)의 후신인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배신과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서 썼다. 원래 워커스에는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내용을 쓰려고 준비해 놨는데 망할 놈의 트럼프가...ㅠㅠ 이미 써둔 글은 다시 다듬어서 따로 발표해야지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유대인들의 '정착민 여행'을 군인들이 호위하고 있다. [출처: 뎡야핑]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7년 12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면서 다시 팔레스타인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참세상》 2017년 2월 “이스라엘의 큰 그림,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링크)에서 다뤘듯, 이미 1995년에 제정된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즉 미국은 애초 동-서를 불문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있었고 단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사관 이전 등 구체적 행동만을 보류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실행될 조치였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민중이 트럼프 선언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땅, 특히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강제 병합하기 위해 땅을 몰수하고,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영주권을 박탈하며,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온 이스라엘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조건 없는 완전한 주권을 미국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것이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민중은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를, 언제나 처럼 또 빼앗겼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규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 혹은 정치세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12월 19일 UN 안보리의 트럼프 선언 반대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통과를 저지했고, 이에 UN 총회로 안건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에 UN주재 미국대사가 반대국 명단을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거라며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그동안의 담론은 가식적으로나마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담보로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강요해 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든 권리를 노골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직후였다. 소위 ‘평화협정’이라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1차 인티파다, 즉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반점령 투쟁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시작됐다. 1993년,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 하고, 본 협정에 의거해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협정이 체결됐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조차 시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정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 하에 있다고 명시했다. 결국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뒤로 미루고,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협정에 따른 단계적 철수를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 정착촌을 확대하고 영토를 강제 병합해 온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혼자 협정을 이행하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트럼프 선언에 대한 반발로 자신들도 오슬로 협정을 더 이상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 즉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1948년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그 남은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국가를 세우겠다는, 그리고 그 전까지 자치정부를 구성해 이스라엘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말만 강경할 뿐 실질적 조치가 없다. 2015년 말 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로부터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난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향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이미 2년 전에도 자치 정부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불신과 분노, 절망이 극에 달해 있었지만 2017년 여름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활동가나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치정부에 대한 증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나자마자 “아부 마젠(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별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는 내 대답에 동조하며 그가 ‘crazy(미친 듯)’하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전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알리고 싶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이번 방문에선 점령 당국보다도 자치정부의 문제를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  예루살렘 전경 [출처: 뎡야핑]

자치정부도 해방운동을 탄압

부패와 무능이라는 오랜 이슈 외에 민중들이 가장 분노하는 점은 2003년 압바스가 자치정부 수반이 된 이후 계속 강화되고 있는,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 ‘안보 공조’다. ‘안보 공조’란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세력의 무기 소지와 거래를 금지하고 이들을 형사 소추하는 등 이스라엘의 안보에 협력 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압바스 수반은 안보 공조가 ‘신성’하다고 표현하며 정치 사안에서 이스라엘과 합의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안보 공조만큼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적도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수장은 자치정부가 안보 공조를 위한 이스라엘의 지시에 언제든 잘 따른다고 칭찬했다. 더군다나 자치정부는 지시가 없을 때도 알아서 점령 통치에 저항하는 활동을 탄압해 왔다. 예컨대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해 2,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당시 서안지구 전역에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던 시위대를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체포했던 것도 자치정부였다. 점령자에 맞서 싸워야 할 지도부가 점령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치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면서도 안보 공조 중단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을 때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이 격화되자 안보 공조 중단을 선언 했던 자치정부는 이후 조금씩 안보 공조를 재개하고 있었다. 안보 공조란 명목으로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탄압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일까?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치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점령자에 협조한 책임은 너무 크다. 오랜 세속주의 해방 운동의 전통을 자랑했던 자치정부의 최대 세력 파타는 2006년 하마스 승리라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내전과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를 정점으로 내부의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풀뿌리 활동가를 체포해 가두거나 이스라엘에 넘기는 등 여느 중동의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행로를 걷고 있다. 여러 팔레스타인 사람이 차라리 자치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이스라엘에만 군사 통치를 받던 시절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자치정부의 탄압이 이스라엘보다 덜할 것도 없는데다 해방운동 지도부의 배신은 감정적인 고통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많은 평자들이 또다시 3차 인티파다의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지도부가 해방운동을 오히려 탄압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이번 선언의 여파가 해방운동 세력 간 단결 및 공동전선 수립, 민중봉기와 같이 긍정적인 행보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선언 후 13일간 이스라엘 군경이 체포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450명으로 이 중 138명이 미성년자였다. 살해당한 사람도 10명에 달한다. 당분간은 이 숫자가 계속 늘 것 같다. 그리고 해방운동으로 수렴되지 못한 분노한 청년들이 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이스라엘 군인, 경찰, 불법 정착민을 공격 하고 살해당하는-소위 ‘테러’라 불리는 행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워커스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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