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작가들이 뭉쳤다

 

아시아의 작가들이 뭉쳤다
 
[한겨레21 2004-07-08 05:17]

 


[한겨레] 5개국 문인들이 뜨거운 가슴을 나눈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 고통의 기억을 넘어 평화의 미래로! ▣ 김남일/ 소설가 · 민족문학작가회의 국제위원장 감히 말하건대, 2004년 7월1일은 한국 문학사에서, 나아가 아시아 문학사에서 매우 뜻깊은 날로 기억될 것이다. 이날 광주 5·18 국립묘지 한 시인의 무덤 앞에서 베트남, 몽골,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 온 23명의 작가들이 우리 작가들과 더불어 ‘사랑과 정의, 평화의 연대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아시아 작가 평화 선언’을 발표했다.

 

아시아의 그릇된 운명을 거부한다 “아시아의 역사는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여전히 대부분의 나라에서 제국주의 침탈, 전쟁, 종교·지역·계층간 분쟁, 독재정치의 횡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아시아 작가들은 서로의 슬픔과 울분을 깊이 이해하고 공명한다. 아시아 민중들은 학살당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배받고 길들여지며, 열등 종족으로 영원히 서구를 추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땅에서 버림받고 자원과 노동을 착취당하는 노예의 삶을 우리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우리 아시아 작가들은 오직 하나의 염원으로 이 자리에 서 있다. 미래는 달라야만 한다. 인류의 모든 탐욕과 갈등의 대가를 대신 치르는, 아시아의 그릇된 운명을 우리는 이제 거부한다.” 참석자들은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사)민족문학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회장 염무웅)가 공식적인 결의를 통해 종군 문인으로 파견한 소설가 오수연(40)씨가 초를 잡은 이 선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아울러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규탄하며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결의 사항도 발표했다.

이러한 선언과 결의는 지난 20세기를 고통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21세기마저 고통으로 보내고 있는 아시아 작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들은 비록 신물이 나도록 고통에 친숙하지만, 자신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굴욕적이고 음습한 무기의 연대 대신 문학을 통한 평화와 상생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시인의 무덤 위에 국화꽃을 바치는 아시아 작가들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묻어났다. 무덤의 주인공 김남주(1946~94) 시인도 이 새로운 연대의 출범을 흐뭇하게 지켜보았을 것이다.

작가회의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열린 이번 제1회 아시아 청년작가 워크숍은 여러모로 뜻깊은 만남이었다.

첫날(6월28일), 기자회견장.

이날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한 사람에게 쏠렸다. 이라크에서 온 소설가 하미드 알 무크타르(45)씨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김선일씨가 이라크 땅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이후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이라크인이기 때문이다.

“김선일씨, 당신은 이미 내 형제입니다” 하미드 알 무크타르씨는 그 자리에서 전날 밤 한국의 호텔에서 밤새워 쓴 한편의 시를 낭송했다.

“…그들이 당신 선일씨를 죽였을 때/ 당신의 피는 우리 이라크 국민들의 머리를 따라 흘렀으며/ 그래서 우리의 외침과 뒤섞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어머니는 자식을 잃어 흐느끼는 우리의 어머니와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어머니는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자기 아들인 양 말입니다/ 우리의 아이들도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그들의 아버지인 양 말입니다/ 나 또한 당신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제 나의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고 김선일에게 보내는 편지’) 바그다드를 떠나 요르단에서 비행기 트랩에 오르기 전, 그는 김선일씨의 살해 소식을 들었다. 그때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 사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만나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 모하메드(54)씨와 나란히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나오던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는 회견장에서 한국군의 추가 파병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그리고 대부분의 이라크 민중들의 입장을 정확히 밝혔다.

 


“우리는 미군 주도 하에 이루어지는 한국군의 추가 파병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지만, 팔레스타인의 시인 자카리아씨의 내한도 매우 뜻이 깊다. 그는 하미드 알 무크타르씨가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이라크 작가인 것처럼 한국을 방문한 최초의 팔레스타인 작가가 되었다. “한국에 오는 게 이렇게 쉬운 줄 몰랐습니다. 힘들게 국경을 넘어 요르단에서 수십 시간 비행기를 탔지만, 우리나라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쉬웠습니다.” 영예와 감옥 사이에서 작가는 싸운다 1948년부터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비극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증언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더 있었다. 그는 광주에서 열린 워크숍에서 발표하기 위해 미리 제출한 설문응답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 당신 나라에서 작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답: 우리나라에서 작가란 조국의 운명과 점령을 제거하고자 하는 열망이라는 임무를 두 어깨에 진 존재다. 작가는 사람들의 혀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한편으로 보면 꽤 큰 영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한 감옥이기도 하다. 영예와 감옥 사이에서 작가는 싸우고 있다. 예를 들어 거리에서 자유를 위한 시위가 벌어졌을 때, 그리고 작가가 자기 집 창문을 통해 그것을 보았을 때,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일 거리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잊어버린 채 글만 쓴다면 자유를 잃어버릴 것이다. 거리로 나가 투쟁에 동참한다면 글을 잃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우리나라에서 매일같이 겪는 현실이다. 결정은, 당신이 내려야 한다.

작가회의 산하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회장 방현석)에서는 15명의 베트남 작가들을 초청했다. 그 수만으로도 지난 세기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라고 일컫는 베트남 전쟁(그들 스스로는 ‘항미전쟁’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우리와 맺은 악연이 이제 형식적으로는 꽤 많이 치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해 어깨를 겯고 나아가자”고 웃으며 말해도, 그들과 만난 한국 작가들은 아직 청산해야 할 빚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다.

6월29일, 임진각.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에서 온 작가들은 이제 사회주의 북녘 땅에서 철책선 너머로 이쪽을 보는 대신 이쪽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 작가들이 소리 없이 지켜보았다.

630일 광주에서 작가회의와 5·18기념재단(이사장 박석무)이 공동으로 연 ‘아시아 문학 연대의 밤’ 행사에서는 특히 몽골 작가들의 존재가 빛났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단 한명의 시인이 단 한편의 시를 낭송했을 뿐인데도, 그들은 이미 거대한 지평선을 지닌 나라, 문명의 거친 호흡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자신들이 지켜낸 초원의 언어로 당당히 번역해내는 여유를 지닌 나라, 폐쇄적인 정주 문명의 울타리를 걷어치우고 이제 유목적 사유에 바탕을 둔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는 데 하나의 귀한 사례가 될 나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더없이 슬픈 고문의 연대 이번 워크숍을 통해 아시아의 다섯 나라 작가들은 서로의 창작 경험을 공유하는 한편, 좀더 활발한 교류의 필요성에도 공감했다. 그 결과 워크숍을 2년마다 좀더 큰 규모로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상시적인 만남을 위해 인터넷상에 아시아 문학 사이트를 개설하고, 각국에 아시아 문학 자료관을 만들기로 했다(한국의 청년작가들은 이미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이 특히 자기 나라 문학작품을 넉넉히 읽을 수 있는 자료관을 준비 중이다. 더불어 내년쯤에는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들과 공동으로 주관하는 ‘아시아 문학의 밤’ 같은 행사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합의가 아주 쉽게 이루어졌다. 아시아 작가들이 이미 충분히 고통을 받아온 공통의 경험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산 작가회의(회장 남송우)가 주관한 ‘아시아 문학 심포지엄’이 끝나고 가진 뒤풀이 자리에서는 아주 희한한, 그렇지만 더없이 슬픈 ‘고문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10여년 전 두만강을 헤엄쳐 건너 북한 땅에 들어간 기막힌 사건의 주인공인 소설가 김하기(47)씨와 미군의 야만적인 고문으로 유명해진 이라크 아부 그레이브 교도소 출신의 하미드 알 무크타르씨는 어느 순간 보디랭귀지로 자신들의 생에서 결코 지울 수 없는 고문의 기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여기도?” 김하기씨가 발가락에 이어 자신의 성기쪽을 가리키자, 하미드씨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거렸다. 두 사람은 이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몸의 다른 부분들을 차례로 가리켰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국의 소설가가 손을 들었다.

“나보다 세네. 이 친구는 귀까지 당했다잖아. 난 거기까진….” 전기 고문 이야기였다.

고통은 고통을 받아온 자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우리는 전쟁만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폭력에 시달렸기 때문에 폭력이 인간성을 말살시킨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안다.”(평화선언) 중요한 것은, 이때 그 ‘폭력’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이번 워크숍에 참가한 작가들은 ‘평화 선언’을 통해 매우 귀중한 발언을 했다.

“우리가 지칭하는 폭력은 무력 행사만이 아니다. 무력이 행사되도록 방관하는 무관심과 이기주의도 폭력이다. 다른 지역, 타인들에게 자행되는 폭력을 용납하면 세상이 점점 폭력으로 넘쳐, 언젠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로 폭력이 돌아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 작가들이 만나야 한다면, 바로 이런 모든 폭력으로부터 좀더 자유로운 아시아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무 때문이기도 하다.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듯, 아시아 작가들은 이제 ‘고통(진흙)의 기억을 넘어 평화(연꽃)의 미래로’(이번 워크숍의 슬로건) 가는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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