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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선언,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이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 있었기 때문에 워커스는 PLO(파타)의 후신인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배신과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서 썼다. 원래 워커스에는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내용을 쓰려고 준비해 놨는데 망할 놈의 트럼프가...ㅠㅠ 이미 써둔 글은 다시 다듬어서 따로 발표해야지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유대인들의 '정착민 여행'을 군인들이 호위하고 있다. [출처: 뎡야핑]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7년 12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면서 다시 팔레스타인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참세상》 2017년 2월 “이스라엘의 큰 그림,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링크)에서 다뤘듯, 이미 1995년에 제정된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즉 미국은 애초 동-서를 불문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있었고 단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사관 이전 등 구체적 행동만을 보류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실행될 조치였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민중이 트럼프 선언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땅, 특히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강제 병합하기 위해 땅을 몰수하고,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영주권을 박탈하며,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온 이스라엘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조건 없는 완전한 주권을 미국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것이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민중은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를, 언제나 처럼 또 빼앗겼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규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 혹은 정치세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12월 19일 UN 안보리의 트럼프 선언 반대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통과를 저지했고, 이에 UN 총회로 안건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에 UN주재 미국대사가 반대국 명단을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거라며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그동안의 담론은 가식적으로나마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담보로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강요해 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든 권리를 노골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직후였다. 소위 ‘평화협정’이라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1차 인티파다, 즉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반점령 투쟁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시작됐다. 1993년,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 하고, 본 협정에 의거해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협정이 체결됐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조차 시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정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 하에 있다고 명시했다. 결국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뒤로 미루고,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협정에 따른 단계적 철수를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 정착촌을 확대하고 영토를 강제 병합해 온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혼자 협정을 이행하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트럼프 선언에 대한 반발로 자신들도 오슬로 협정을 더 이상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 즉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1948년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그 남은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국가를 세우겠다는, 그리고 그 전까지 자치정부를 구성해 이스라엘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말만 강경할 뿐 실질적 조치가 없다. 2015년 말 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로부터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난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향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이미 2년 전에도 자치 정부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불신과 분노, 절망이 극에 달해 있었지만 2017년 여름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활동가나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치정부에 대한 증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나자마자 “아부 마젠(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별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는 내 대답에 동조하며 그가 ‘crazy(미친 듯)’하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전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알리고 싶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이번 방문에선 점령 당국보다도 자치정부의 문제를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  예루살렘 전경 [출처: 뎡야핑]

자치정부도 해방운동을 탄압

부패와 무능이라는 오랜 이슈 외에 민중들이 가장 분노하는 점은 2003년 압바스가 자치정부 수반이 된 이후 계속 강화되고 있는,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 ‘안보 공조’다. ‘안보 공조’란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세력의 무기 소지와 거래를 금지하고 이들을 형사 소추하는 등 이스라엘의 안보에 협력 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압바스 수반은 안보 공조가 ‘신성’하다고 표현하며 정치 사안에서 이스라엘과 합의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안보 공조만큼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적도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수장은 자치정부가 안보 공조를 위한 이스라엘의 지시에 언제든 잘 따른다고 칭찬했다. 더군다나 자치정부는 지시가 없을 때도 알아서 점령 통치에 저항하는 활동을 탄압해 왔다. 예컨대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해 2,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당시 서안지구 전역에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던 시위대를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체포했던 것도 자치정부였다. 점령자에 맞서 싸워야 할 지도부가 점령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치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면서도 안보 공조 중단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을 때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이 격화되자 안보 공조 중단을 선언 했던 자치정부는 이후 조금씩 안보 공조를 재개하고 있었다. 안보 공조란 명목으로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탄압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일까?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치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점령자에 협조한 책임은 너무 크다. 오랜 세속주의 해방 운동의 전통을 자랑했던 자치정부의 최대 세력 파타는 2006년 하마스 승리라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내전과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를 정점으로 내부의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풀뿌리 활동가를 체포해 가두거나 이스라엘에 넘기는 등 여느 중동의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행로를 걷고 있다. 여러 팔레스타인 사람이 차라리 자치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이스라엘에만 군사 통치를 받던 시절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자치정부의 탄압이 이스라엘보다 덜할 것도 없는데다 해방운동 지도부의 배신은 감정적인 고통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많은 평자들이 또다시 3차 인티파다의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지도부가 해방운동을 오히려 탄압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이번 선언의 여파가 해방운동 세력 간 단결 및 공동전선 수립, 민중봉기와 같이 긍정적인 행보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선언 후 13일간 이스라엘 군경이 체포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450명으로 이 중 138명이 미성년자였다. 살해당한 사람도 10명에 달한다. 당분간은 이 숫자가 계속 늘 것 같다. 그리고 해방운동으로 수렴되지 못한 분노한 청년들이 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이스라엘 군인, 경찰, 불법 정착민을 공격 하고 살해당하는-소위 ‘테러’라 불리는 행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워커스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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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이 의미하는 것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오랜 열망을 불법적 방법을 통해 실현해 왔다. 이스라엘 건국의 근거가 된 'UN 결의안 181'이 국제 관리지구로 지정한 예루살렘의 서쪽을, 건국을 전후한 1차 중동 전쟁 중에 점령·병합한 게 그 처음이었다.

이후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가자지구·서안지구)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1980년 "온전하고 단일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는 법을 제정해 점령지 동예루살렘마저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니,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당시 UN 안보리는 결의안 478을 통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선언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가 자국 수도라 주장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치 않는 양상은 트럼프의 이번 선언 이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속돼 왔다. 다만 미국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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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가 보이는 예루살렘 올드 시티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미국의 화답 : 1995년 예루살렘 대사관 법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결코 스스로 고안해낸 게 아니다. 미국은 이미 1995년에 '예루살렘 대사관 법'을 상·하원에서 압도적인 다수결로 통과시키며 이스라엘의 열망에 화답했다. 이 법은 "분할되지 않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며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단 대사관의 이전은 국가 안보를 위해 대통령이 보류할 수 있도록 해, 지난 대통령들은 6개월마다 총 35회에 걸쳐 대사관의 이전을 보류해 왔다.

대선 때의 공약과 달리 올 6월 트럼프도 이 보류안에 처음 서명함으로써 빌 클린턴이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들처럼 선거 공약이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많은 이들이 안심했다. 그런데 다시 6개월이 지나 보류할 시기가 돌아오자 돌연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바로 직후이기도 하다. 소위 '평화협정'이라 불리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이스라엘군의 점령에 맞선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로 나서며 1993년 체결됐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하고, 본 협정에 따라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고, 이스라엘 군정 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를 받도록 체결됐다.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 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미루고, 처음의 청사진과 달리 여전히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압도적 면적이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통치 하에 있으며,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한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통합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미래 독립 국가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은 깨져갔다. 이스라엘은 철수하기는커녕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UN이 수많은 결의안을 통해 불법이라 규탄한 유대인 정착촌을 신규 승인하고, 확장했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민은 오늘날 30만 명을 웃돈다.

이스라엘은 '말레 아두밈' 등 서안지구의 거대한 유대인 정착촌 3개와 그곳 정착민 14만 명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예루살렘의 유대인 주민의 수를 선주민인 팔레스타인인보다 많게 하기 위해 '더 큰 예루살렘 법'을 상정해놨다. 점령지에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며, 그 불법적 정착촌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영토 병합하는 것도 불법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강제철거, 강제이주, 도발 그리고 진압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인구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이스라엘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팔레스타인 선주민들을 갖은 구실로 쫓아내는 것이다. 신규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주거지를 강제 철거하고, 결혼이나 유학 등 이유로 잠시 떠난 이들의 영주권을 박탈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도발도 일삼았다. 2000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는 이스라엘 정치인이 수백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을 대동한 채 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템플 마운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주장한 데서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은 2015년 9월에도 무슬림의 알 아크사 사원 단체 참배를 금지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완전무장한 시위 진압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진 시위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며 실탄 발포 기준을 완화하고 최소 4년, 최대 20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지금도 10대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연행·장기간 감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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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트럼프의 선언에 반대하는 시위 중 팔레스타인 소년(16세)이 20여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Abed Hashlamoun

 

서방 언론의 보도와 달리 현재 분노한 대중들의 시위는 '하마스'와 같은 특정 정치조직이 조직한 게 아니다. 트럼프의 선언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의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언제나처럼 자율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1차 인티파다 이래 30년간 다양한 비폭력 투쟁 방법을 개발해왔고, 매주 금요일마다 반(反)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마을도 부지기수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철거하거나, 가자지구를 폭격하거나, 예루살렘 문제로 도발할 때마다 마을 단위로 시위를 조직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선 중무장한 군인들로, 이스라엘에선 특수 경찰 부대 등으로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살해했다. 그 반동으로 시위는 더욱 격해지고, 다시 그 격해진 시위를 빌미로 이스라엘이 더 많은 폭력을 자행하는 그 끔찍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선언의 의미 : 2국가 해법의 종언

중동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나 미국 정치인들이 이번 선언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방 세계가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해 온 '2국가 해법'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군이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한 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은 유대인 민족으로 구성된 유대 국가를 수립해 두 국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오슬로 협정이 바로 그 교두보였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오슬로 협정은 이미 최대한을 양보한 팔레스타인 측에만 더 포기할 것을 요구했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오히려 더 희미해졌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은 견고하다.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존중을 운운했지만 처음부터 기만적이었던 오슬로 협정은 이미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를 수립하면, 지금까지도 귀환의 꿈을 품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이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이스라엘로 돌아올 가능성을 봉쇄한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하면서도, 예루살렘은 최종 지위 협상 때 양 당사자가 논의할 문제라며 여전히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법은 전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의 교묘한 언술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류돼 있던 법이 27년만에 시행되며 2국가 해법에 종언을 고했다.

이스라엘을 멈추게 할 방법, BDS

하지만 갑작스럽긴 해도 예루살렘 선언은 이미 예정된 상황이었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2국가 해법이 실패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10년간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하고, 서안지구에서 군사점령 정책을 강화하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병합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군사 점령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미국의 중동 정책에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가 휘둘리는 상황은 언제든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이미 수백 개의 UN 결의안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이스라엘로서는 스스로 그만둘 이유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해방 운동과 그에 연대하는 국제 시민사회운동은 대화와 협상으로 이스라엘을 설득하기보다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자고 노선을 정립했다.

오랜 비폭력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세계 시민사회에 이스라엘에 맞서 폭넓은 보이콧과 투자철회 운동, 이스라엘을 통상금지·제재 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자국 정부를 압박하는 운동을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BDS (보이콧·투자철회·제재, Boycott·Divestment·Sanctions) 운동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다스트림(Sodastream) 불매 운동과 같은 소비자 운동을 할 수 있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공장을 두고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 등을 받던 소다스트림은 BDS 운동의 압박을 받고 공장을 철수했지만 베두인 마을 강제 철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네게브 사막으로 공장을 옮겨 계속해서 보이콧 대상이다.

자신이 속한 교회 등 종단에 이스라엘 점령 공모 기업에의 투자 철회를 제안할 수도 있다. 2014년 미국 최대 교단인 미국장로교와 연합감리교가 점령 공모 행위를 이유로 모토로라, 휴렛패커드(HP), 캐터필러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던 것도 소속 교인들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한국의 기업과 대학들도 여러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에 연루돼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부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수는 데에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사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피해 주민들과 함께 현대중공업 측에 이스라엘로의 굴삭기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BDS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을 계속하는 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을 전방위적으로 선언하는 행동으로, 특정하게 정해진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점령 공모 물품이나 행위를 찾아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해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과 식민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에 한국 시민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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