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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01
    요모타 이누히코 - 문체(文體)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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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모타 이누히코 - 문체(文體)에 대하여

며칠 전에 바쁜 와중에 참지 못 하고 요모타 이누히코님의 <만화원론>을 다 읽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떠나기 며칠 전에, 이 책의 중고 등록 알림 문자를 받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물담배를 뻑뻑 피며 기쁨에 차 핸드폰으로 결제해대던 때가 생각난다. 한국에 와서 책을 받고 뛸 듯 기뻤지만 몇 장 읽고 또 읽지 못하기를 한참... 그러다 다시 읽었는데 역시 너무 좋아서. 너무 좋다 ㅇ<-<

 

이렇게 좋은데 일단 지금은 미래 첨단 사회니까 필사하지 말고 필타를 하여보자. 이 좋은 책 중 내가 테즈카 오사무 신을 좋아하게 된 만화를 예로 문체에 대해 글 쓰신 부분을 필타하겠다. 당시 다만 스토리의 구성 측면에서만 작품을 감상하고 테즈카 신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문체의 문제로 보니, 백 배로 흥미로와서이다.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자 홀빼 이셔도 다 생략하구 궈궈

 


<만화원론>, 1994 중 22. 문체(文體)에 대하여(1)

 

문체는 누가 보아도 분명히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만화평론이 미리 입을 맞춘 것처럼 침묵을 지켜온 요소였다. 유감스럽게도 작품의 이야기를 설명하거나 작가의 사상을 해설하는 데만 힘을 쏟아 극히 소수의 인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가 만화가가 고심 끝에 그은 한 개의 곡선의 묘미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재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현실이다. 한 사람의 만화가가 작품을 집필하는 데 채용하는 어떤 일정한 선의 상태, 텍스트의 촉감, 특징적인 과장법, 생략, 암시, 은유, 도치, 반복과 같은 문채(文彩 figual)의 개성적인 선택의 문제 등은 요컨대 그의 만화를 읽어 나갈 때 아로마(aroma 방향, 향기, 향내)처럼 피어오르는 어떤 독특한 분위기의 형태를 띈다. 이런 것 일체를 현재의 언어학을 모방하여 '문체(文體)'라고 이름 붙이고 싶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논의하기에는 만화평론의 언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본고에서는 시험적으로 데즈카 오사무가 1959년에 발표한 『낙반 落盤』을 소재로 만화의 문체가 작가의 개인적 선택과 장르의 일반적 규범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극화의 발흥기에 과감하게 대본잡지 『X』에 게재된 이 작품은 복수의 서로 다른 문체를 채용하여 문체와 그것이 체현하는 세계관의 대결·경쟁을 흥미로운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14페이지도 채 안 되는 이 단편을 먼저 도마 위에 올리기로 하자.

 

『낙반』은 어느 광산의 인기 없는 갱도로 두 사람의 인물이 들어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사람은 광신장인 마에바시, 또 한 사람은 오무라라고 자칭하는 소년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캐릭터 시스템에 따르면 배역은 아세틸렌 램프와 『검은 협곡』의 챠니 착이다(데즈카는 기존의 만화주인공들을 마치 영화배우를 기용하듯이 다른 만화에 등장시키곤 했는데 여기에서는 아세틸렌 램프와 『검은 협곡』의 챠니 착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마에바시는 오무라를 향해 이십 년 전 그가 아직 젊은 갱부였던 시절의 추억담을 이야기한다. 언젠가 두 사람의 동료와 갱도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중 낙반 사고를 만났는데 자기는 운 좋게 살아났지만 다른 두 사람은 큰 부상을 당했다. 보다 부상이 심한 사람을 먼저 구출하고, 다시 현장에 되돌아와 보니 또 다른 한 사람(배역은 리키아리 다케시)은 이미 죽은 뒤였다(a). 그는 그 후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 현재의 광산장의 지위에 올랐다고 감개무량하게 이야기한다.

 

그 말에 오무라는 마에바시가 십 년 전에 라디오에서 떠든 담화를 재생한다. 거기에서는 그가 갱목에 깔린 친구를 호자 힘으로는 구할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남겨두고 떠났는데 사람을 데리고 되돌아와 보니 그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b)가 흘러나온다. 나아가 오무라는 사건 직후에 마에바시를 취재한 한 신문의 담화를 인용한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마에바시는 부상한 나카무라를 등에 업고 열심히 이시이를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둘이서 탈출했다(c)고 적혀 있다.

 

증언의 모순을 지적 당해 깜짝 놀라는 마에바시를 향해 오무라는 고생 끝에 찾아낸 20년 전의 마에바시의 일기를 읽는다. 마에바시는 이시이에게 빌린 돈이 있어서 내심 그가 죽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 때문에 마에바시는 낙반 현장에서 갱목 아래 매몰되어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이시이를 외면하고 나카무라만을 구조해서 돌아갔던 것이다(d).

 

마지막으로 오무라는 빈사상태의 이시이가 소지하고 있던 휴지에 휘갈겨 쓴 유언을 읽는다. 거기에는 마에바시가 그를 살해할 의도로 갱도의 지주 한 개를 몰래 빼내 낙반사고를 유발했다고 하는 놀라운 진실(e)이 적혀 있다.

 

낭패를 당해 허둥대는 마에바시를 향해 오무라는 자기가 이시이의 유복자라고 소리친다. 그는 마에바시 몰래 마비약을 먹여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한 뒤 갱도에 폭약을 장치하여 아버지의 원수에게 똑같은 고통을 맛보게 하려고 미리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략은 멋지게 성공했고 소년은 싸늘한 표정으로 갱도 밖으로 향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연민의 정에 눈을 뜬 오무라는 마에바시를 구출하러 달려간다.

 

『낙반』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세부의 음영을 바꿔 다섯 번에 걸쳐 이야기되고 그 때마다 조금씩 다른 형태의 문체가 채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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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에서는 단순한 선을 중심으로 극히 과장된 만화적 기호가 다용(多用)되고 있다. 갱도 벽의 균열을 눈앞에 둔 마에바시의 경악은 그의 몸이 헬멧·머리·몸체·하반신으로 사등분됨으로써 강조되고 있다. 세 명의 갱부가 허둥대며 도망가는 장면에서는 인물의 동작은 단순하지만 과장되어 있고 어떤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급한 발을 나타내는 회전하는 발이나 모래먼지의 기호가 첨가되어 있다. 부상은 수많은 반창고로 표현되고 있다. 구도는 평면적이고, 원근법을 결한 마치 영화나 연극의 무대장치 같은 갱벽과 낙하하는 둥근 암석은 중량을 갖지 못한 채 강하게 양식화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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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b)에서는 (a)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 경직되고 또한 질량감이 느껴지는 선이 채용되고 있다. 낙하하는 암석은 불규칙한 각을 갖기에 이르렀다. 전형적인 만화의 과장적 표현이나 기호는 자취를 감추고, 등장인물들은 보다 현실에 가까운 대사를 입에 담고 있다. 표정이나 몸짓에서도 좀더 세밀한 붓놀림을 느낄 수 있고, 부상의 정도는 반창고의 다용이 아니라 몸에 그려 넣은 사선의 존재에 의해 표상된다. 마에바시는 그 누구보다도 만화적으로 사방에 땀을 흩뿌리고 그의 손가락은 전후 만화의 암묵적인 약속에 따라 네 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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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에서는 한층 세밀한 묘사가 제시된다. 낙하하는 암석은 확실하게 질량감을 갖고, 컷 아래쪽에 모래먼지 자국이 첨가됨으로써 위기적인 긴박감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구도는 보다 대담하게 선택되고 등장인물들은 팔 근육의 상태나 상처까지도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a)에서는 3등신 정도였던 주인공이 여기에서는 6등신에 가깝게 변신하고 있다. 그의 갱부 동료에게 처음으로 성이 부여되어 이야기가 보다 구체성을 띠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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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d)로 진행되면 더욱 새로운 차원이 전개된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을 향해 사건의 표면적인 추이만을 이야기하고 있던 주인공의 감춰진 내면이 처음으로 드러난다. 이 때 클로즈업이 채용되고 있지만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 램프의 얼굴은 (a)에서 (c)까지의 어느 것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던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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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최후로 (e)에서는 화면 전체에 어두운 음영이 강조되고, 등장인물들은 생각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현실성을 띠고 묘사되게 된다. 데즈카는 여기에서 당시 융성하기 시작했던 극화의 수법을 인용했던 것이다. 그가 장기로 삼아 왔던 캐릭터 시스템은 거의 포기되고, 마에바시와 이시이는 아세틸렌 램프나 리키아리 다케시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하고 음울한 표정을 보여주고 있다. (e)의 전반에서 화면은 이시이의 시점을 빌려 마에바시의 범행을 둘러싸고 주도면밀한 클로즈업 컷이 겹쳐진다. (d)에서는 아직 네 개에 불과했던 등장인물의 손가락이 (e)에서는 완전히 다섯 개, 그것도 손톱이나 관절까지 정성껏 묘사되어 있는 점에서도 전체적인 리얼리스틱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다. 만화의 독자적인 기호가 가능한 한 배제되고 있는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낙반』에서는 이렇게 의도적으로 다섯 가지 문체가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것은 극히 단순하고 양식화되어 있어 만화가 극도로 생략된 선과 다양한 기호로 구성된 슬랩스틱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당시의 일반적인 사회통념과 훌륭하게 대응하고 있다. 최후의 것에서는 그림의 상태도 이야기의 내용도 무서울 정도로 달라져 복잡한 인간심리의 굴절이 충분히 명암법을 강조한 컷의 몽타주를 통해 묘사되게 된다. (a)에서 (c)에 이르는 문체의 정밀화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기와 낙반사고 사이의 시간에 반비례하고 있다. (a)는 20년 후, (b)는 10년 후, (c)는 사건 직후, (e)는 사건 한가운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데즈카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세부의 기억이 애매해지고 이야기에 왜곡된 단순화가 이루어지게 된다고 하는 인간심리의 일반적 과정을 교묘하게 원용해서 서로 다른 문체를 동시에 사용하는 동기로 삼았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를 노린 연출만이 『낙반』의 작가 의도였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데즈카 오사무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적인 구조를 가진 이 단편에서 진정으로 시도해 보고 싶었던 것은 네 칸 만화로부터 극화에 이르기까지 당시 존재하고 있던 모든 만화의 수법을 한데 모아 병렬적으로 대치함으로써 만화라고 하는 표상 장르가 본래 소유하고 있는 자유자재한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데 있었다.

 

(a)에서 (e)까지의 문체는 각각에 대응하는 세계관을 체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a)에서는 인간은 내면을 소유하지 못하고 그 행동은 자극반응설적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과감히 단순화해서 말한다면) 도타바타(:크게 허풍을 떠는 소란스런 취향의 희극)을 기조로 한 데즈카 이전의 만화와 그 배후에 있는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다. (b)와 (c)는 데즈카가 현실에서 채용하고 있는 문체와 가장 가깝고 그가 당시 소년잡지에 발표하고 있던 ㅏㅈㄱ품의 이데올로기, 즉 휴머니즘과 우정예찬을 체현하고 있다. (d)에 이르러 처음으로 인간의 본성에 잠재되어 있는 악이라는 주제가 얼굴을 내밀고, 그것은 (e)에서 최대한으로 전개된다. 그것은 『낙반』이 발표된 1950년대 후반에 있어서도 소년잡지를 지향하는 만화가의 사정거리 밖에 있어서도 사토 마사아키나 가게마루 죠야와 같은 극화가만이 유일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에 가깝다.

 

데즈카는 종래 그가 즐겨 쓰던 만화의 문체로는 이러한 악의 문제를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방법론적 자각이 『낙반』에 있어서 극화적 문체의 채용을 초래한 것이고, 그것이 이후의 데즈카에게 커다란 표현의 영역의 확대를 선물한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와 동시에 데즈카는 마지막에 반전을 두고 자기의 휴머니즘을 이용해서 성악설을 부정함으로써 신흥의 극화가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에 미리 자기 나름대로의 봉인을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낙반』의 바탕의 문체는 (c)에 가장 가깝다.

 

문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이지만 결국 장르의 문법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 어떤 문체의 선택은 어떤 특정한 세계관의 선택과 동의어이고, 만화가는 이후 그 문체에 구속받게 된다. 문체에 대한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한 만큼 앞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1993.6에 써진 것 같음.

 


조으다 과연 조으다... 집에서 쓰느라고 스캐너가 없어서 이미지가 그지같아서 아쉽지만 아쉬운대로...< 이후로 문체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진척이 되었을까? 아 필타해 보니까 굉장히 좋구나 너무 좋다. 만화원론 일어본도 읽기 시작하였는데, 그냥 읽고 싶은 데부터 읽어야겠다 진도가 안 나가...; 여기부터 읽어야지. 그렇지 않아도 초반에 (b)라고 짚어주는 게 번역본에 빠져 있어서 원문을 찾아봤는데 원문도 재밌구나...< 일본어는 필사해볼까 생각 중이다. 요즘 영어 공부 하면서 필사를 왕왕 하는데 필사하니까 더 이해가 잘 돼. 읽기->번역->필사 순으로 이해가 잘 되는 것 같다. 물론 번역과 필사는 꼭 그렇다기보단... 여튼 그런 얘긴 나중에 하고;; 요모타님의 만화에 대한 책을 매우 읽어댈테다 으릉

 

아 필타는 일주일도 전에 하다가 오늘에야 이어서 완성했다. 맨첨에 며칠 전에 다 읽었다는 건 그니까 2주도 더 된 얘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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