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준비 1 - 중고 피아노 마련하기<

결혼 준비하는 얘기를 써볼라고 했다. 상견례 얘기부터.. 상견례 때 우리 아빠가 진짜 개드립치는 바람에 대박 웃겼는데, 이제 와 지난 얘기는 됐고 앞으로의 얘기를 써보자.

 

결혼을 준비하며 사야 할 몇 가지 필수 항목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피아노이다. 관계자들(애인, 언니, 아빠)은 피아노의 피자만 들어도 짜증을 내고 왕 싫어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강행돌파다. 피아노 왕 비싸서 중고로 살 거임. 부평에만 중고 피아노 취급점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우리 민족이 피아노를 참 좋아하는구나 느낀다. 우리 민족끼리...<

 

암튼 나는 왜 다짜고짜 피아노를 굳이 꼭 혼수로 하겠다고 하는가? 평소에 피아노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고, 못이룬 피아니스트의 꿈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 사연인즉 이와 같다. 잘 읽고 반대하지 말도록.

 

다른 무수한 우리 민족 어린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제법 잘 치는 편은 아니었다. 학원에서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해줬던 것도 아니다. 그 일례로 나는 지금도 코드 잘 모름. 그런 것도 안 가르쳐 줌. 그냥 악보 보면서 무조건 뚱땅뚱땅 마구 쳤다.

 

대부분의 우리 민족들이 아시겠지만은 어린이가 피아노를 배울 때는 개별 어린이의 특성에 맞게가 아니라 뙇 짜여져 있는 정석대로 피아노를 배운다. 바이엘부터.. 잘 기억도 안 남; 나는 하농은 대체 뭐 하는 인간인지 궁금했다 뭐 이런 걸 음악이라고 썼을까. 체르니는 우리들의 음악 실력을 생각하며 쉬운 음악부터 어려운 음악까지 작곡한 건지도 궁금했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바하였는데, 플랫이 너무 많아서 플랫을 이렇게 많이 할 거면 거꾸로 샾 몇 개만 달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이상하게 여긴다거나.

 

학원에서 배우는 거는 너무 재미없었다. 학원 애들 외에 다른 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것을 들어본 일도 없었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을 싫어하게 된 것 같다. 가끔 좋은 것도 생겼지만.. 월광곡 칠 때는 나름 빠져들었었고.. 학원에서 일년에 한 번 괜한 대회에 참여시키고 잘했든 못했든 다 상 주는 그런 게 있었는데, 마지막에 즉흥행진곡으로 참여하려고 연습하다 결국 학원을 관두어 무대에서 연주한 일은 없지만, 그걸 연습시키면서 선생이 같은 곡을 연주한 어느 피아니스트를 들려주며 이렇게 치라고 했다. 처음 들어본 남이 치는 피아노에 깜짝 놀랐다. 나는 한 음이면 한 음, 반 음이면 반음, 몇 분 음푠지 맞춰서 쳐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막 치는 거임. 레알 깜놀함.

 

생각해보면 초2땐가 3땐가, 페달에 발도 안 닿는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했던 게 무대에 처음으로 선 경험인 것 같다. 머리를 뽀글 파마해서 꽉 쫀매고, 무대 의상으로 엄마가 사준 회색 정장을 입고,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페달에 닿지 않는 의자에 높이에 처음으로 긴장했던 것 같다. 무대 위의 강렬한 노란 빛때문에 저쪽에서 나를 보는 엄마도, 객석도 안 보였다. 뭘 연주했는지는 까먹었는데, 원래 템포보다 좀 더 빠르게 연주하면서, 중간에 늦출 수가 없어서 끝까지 빠르게 하고 끝내 버렸었다. 잘 하지도 못 하지도 않아서 금상을 받았다.

 

학원에서는 재미없는 경직된 피아노를 배웠지만, 집에서는 지하상가에서 사온 대중가요 악보를 쳐댔다. 한 개에 300원 하다가 500원으로 올랐던 한 곡 한 곡의 악보들. 내는 회사마다 악보가 달랐는데, 흰색 악보를 내던 데를 제일 좋아했다. 거기 거는 많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항상 악보가 복잡해서 음악이 더 퐁성해서 좋았다. 방과 후에 집에서 친구들이랑 피아노를 치며 미친듯이 대중가요를 불렀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른 외국 곡으로는 에버 그린과 원 썸머 나잇이 있다. 원 썸머 나잇은 아직도 좋아하는 노래임 원 썸머 나잇~

 

작곡하는 것도 좋아했다. 악보를 그릴 줄은 몰랐다. 그릴려고 들면 그렸겠지만. 피아노 앞에서 감정을 쏟아부어서 마구 쳐댔다.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게 된 뒤로도 그런 습관이 남아서 고등학교 때까지는 머릿속에서 피아노를 쳐대며 이 정도면 음악으로 손색없지 않을까? 하고 악보로 남기려 어떻게든 작곡한 걸 기억하려고 했지만 다음날만 되면 깨끗이 까먹고 새로운 노래를 작곡했다.

 

초등학교 때 처음 피아노가 생겼을 때에는 집구석이 약간 중산층 가정의 냄새를 풍길 때였다. 3층짜리 주택  2층에 살게 된 뒤 넓은 부엌과 집안에서 키우는 커다란 식물들, 아마도 싸구려일 도자기들, 가죽 소파, 각 방에 놓인 침대 등이 기억난다. 구색 맞추기용인지 아이들 교육용인지 아빠가 피아노도 사왔는데, 그때 내가 실망했는지 좋아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건반이 가벼운 디지털 피아노. 아마 처음에는 좋았겠지, 드럼 효과도 있고 여러가지 신디사이저 효과가 있어서 혼자 피아노를 쳐도 혼자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건반이 가벼워서,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둔 뒤로는 무거운 건반을 칠 일도 없어서, 가벼운 건반에 익숙해지다보니 무거운 건반이 힘에 겨워졌다. 그래서 새로 피아노를 배운다던 친척동생에게 줘 버렸다. 가벼운 건반이 지긋지긋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키보드라는 악기를 증오할 지경에 이르렀다. 뭔가 성격이 극단적이라서... -_- 키보드 들어간 음악은 듣기도 싫었다 (근데 스웨이드 좋아함;)

 

그런데 항상 피아노 치고 싶었다. 손가락이 망가졌다는 걸 알게 되고, 머릿속에 빼곡했던 악보들이 지워지고, 손이 기억하는 기계적 건반 진행이 불가능해진 뒤에도 계속 치고 싶었다. 대학교 때 한 달인가 두 달인가 동네 재즈 피아노 학원도 다녔다. 학원에서 뭔가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때나 피아노를 칠 수 있어서 배웠는데, 서울로 학교 다니자니 자꾸 빼먹어서 관둔 것 같다. 서울은 뭐든 배우려면 인천보다 너무 비싸고.

 

나도 까먹을 만큼 별로 피아노 치고 싶다는 얘기를 안 하고 살았는데 결혼하려고 혼수품 목록을 만들려니 피아노가 생각났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대로 마음껏 집구석을 단장하고 피아노도 놓을 수 있다....! 1월에 애인이랑 집보러 다니면서 나는 피아노를 어디에 놓을지를 계속 상상했다. 찾는 것보다 좁은 집도, 피아노 놓기 딱인 자리가 있어서 마음에 찼다.

 

그런데 인천에 있는 낡아빠진 빌라에 살게 됐다. 낡아빠졌다의 포인트는 거실에 피아노를 둘 데가 없다는 거다. 어찌 이런 일이.. 매우 분노하고 피아노를 포기해야 하나 계속 고민했다. 왜냐면 그놈의 집구석.. 아오 설명하기도 짜증나. 암튼 -_- 결국 나는 침실로 쓰려던 공간을 거실처럼 쓰며 거기다 만화책도 피아노도, 티비도 탁자도 다 놓기로 정했다. 

 

여담으로 친환경 부부 코스프레를 위해 자전거 발전기를 놓고 싶었는데 놓을 데가 없어...ㅜㅜ 이건 진짜 부엌이랑 거실에 놔야 하는데. 나중에 이사할 때 반드시 발전기용 자전거를 놓을 수 있는 구조의 집을 골라서 이사하겠다. 이거 못 놓는다니까 애인은 쾌재를 불렀다. 뭐든지 내 맘대로 하기로 해서 뭐든 하지 말라고는 안 하는데 겁나 싫어함 ㅋㅋ 너는 지렁이나 키워 이 자식아... 이 얘기는 다음에...<

 

쓰다 보니 새삼 참 이상하다. 나는 오프라인에서 나에 대해 떠드는 게 재미가 없다. 내가 왜 사교성이 없을까를 고민하며 사교성 있는 사람들이 하는 꼴을 보니 지 얘기든 지 아는 사람 얘기든 뭐든 화제를 이어나가기 위해 얘기를 열심히 한다는 걸 알고는 나도 그러는 것 뿐이다. 실제로는 남의 얘기 듣는 것 만큼의 재미도 없고, 내 얘기 하면서도 동시에 속으로는 재미가 없다. 물론 백프로 그런 건 아니다만 기본적으로 말야. 예전에는 내 얘기하는 게 고역이였고.. 그러니까, 내 생각을 말하는 건 좋아하는데 내 과거 얘기같은 거. 근데 옛날부터 거침없이 왕사생활도 쓰는 것을 좋아한다니 이제야 이상하다는 걸 깨달음. 어차피 내가 내 얘기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아무도 몰랐을텐데.. 말로 하면 재미없는데 쓸 때는 흥에 겹다니 신기한 일이로다.

 

그나저나 이 글은 내용적으로도 아무 상관이 없으되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은< 무연의 음악 듣기에 관한 지극히 개인적인 몇 개의 단편.을 읽다가 생각나서 써봤다. 상관 없으므로 트랙백은 걸지 않으리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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