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나비

  • 등록일
    2005/09/22 22:17
  • 수정일
    2005/09/22 22:17
  • 분류

화구(畵具)를 메고 산을 첩첩 들어간 후 이내 종적이 묘연하다. 단풍이 이울고 봉마다 찡그리고 눈이 날고 영(嶺)우에 매점은 덧문 속문이 닫히고 삼동(三冬)내― 열리지 않었다. 해를 넘어 봄이 짙도록 눈이 처마와 키가 같았다. 대폭(大幅) 캔바스 우에는 목화송이 같은 한떨기 지난해 흰 구름이 새로 미끄러지고 폭포소리 차츰 불고 푸른 하눌 되돌아서 오건만 구두와 안신이 나란히 노힌채 연애가 비린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날밤 집집 들창마다 석간(夕刊)에 비린내가 끼치였다. 박다태생(博多胎生) 수수한 과부 흰얼골이사 회양(淮陽) 고성(高城)사람들 끼리에도 익었건만 매점 바깥 주인된 화가는 이름조차 없고 송화가루 노랗고 뻑 뻑국 고비 고사리 고부라지고 호랑나비 쌍을 지어 훨훨 청산을 넘고.  
                                                                                                      

 

―정지용-

 

오늘 잠깐 만난 숭굴애기씨가 너무 좋다고 보여줬다.

"둘이 자살해서 호랑나비가 되었다"는 한 줄을 이렇게 썼다고 말했다 ㅋㅋ

감히 말하기 거시기하지만 너무 잘 썼다고 둘이 동의하였다.

아름다운 시얌... 이런 시 쓰고 팍 죽어 버리면 좋을텐데.

시인은 이 시를 쓰고 몇 년 안 있다가 죽었다. 50년에 죽었댐...

 

난 향수같은 거 별로더라. 뭐 고등핵교에서 갈쳐주는 거 말고 고향에 환멸을 느끼는 시라고 어떤 비평가가 새롭게 읽은 것도 봤었는데 아무튼 난 별로얌. 그리고 신세한탄하는 시도 있어, 그 두 개만 가지고 관심이 없었는데 이거랑 다른 시들도 읽어보니 좋대.

 

연애가 비린내를 풍기고 석간에 비린내가 끼친다라... 아 진짜 좋아요;ㅁ;

잘 이해가 안 된다고 지난 번에 말했으면서도 왠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 영화가 떠올랐엄.

물론 그 감독 영화에선 뭔가 비끗하는 걸 느꼈는데 그거 말고.

뭐랄까 기체로 표현해 보라면 할 수 있는데. 뭉개다가 흩뿌리다가~~

 

당분간 기분이 안 좋으면 뱅뱅을 들으면서 이 시를 읽어야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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