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님 프로필(계속 업데~♡)

출처 : http://www.kungree.com/sam/sam34.htm

 

조조는 한나라의 역적이자 간신으로 비판받는가 하면,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지혜가 남다른 인물로 평가받기도 한다. 조조는 그처럼 엇갈리는 평가가 가능할 정도로 다양한 면모를 지닌 사람이었다. 조조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의 다양한 면모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문학가로서의 조조


조조는 당대 최고 수준의 문학가였다. 그는 특히 악부시라 불리는 시문학 장르에서 뛰어났고, 한 구절이 다섯 글자로 되어 있는 오언시의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정사 삼국지에는 조조가 밖으로는 무공을 크게 이루고 안으로는 문학을 크게 일으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조가 활동한 시기는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의 연호를 딴 건안 시대(196-220)이다. 이에 따라 조조와 그 아들 조비, 조식 삼부자가 건안 문학을 크게 일으켰다고 평가한다. 건안 문학의 특징은 문장이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으며, 전란의 비참함을 노래하거나, 사람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때로는 흥겨운 감정을 담기도 한다. 인간적인 고뇌와 정감이 풍부하게 나타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조조의 '단가행'의 일부를 보면 이렇다. '술을 마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인생살이 얼마나 되는가? 아침이슬과 같을 것이다. 지난날 많은 고통이 있었구나. 슬퍼하며 탄식해도, 근심 잊을 길이 없구나. 어떻게 근심을 풀 수 있을까? 오직 술뿐이네.'

둔전제를 처음 시행한 조조


조조는 문학, 사상, 조조는 중국 역사상 둔전제라는 제도를 처음 시행한 인물로 이름이 높다. 후한 말기에는 오랜 전란으로 농토가 황폐해지고 농민들이 유랑하는 등 농업이 피폐해졌다. 조조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일정 규모의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농기구, 씨앗, 식량 등을 국가가 빌려주어 안정적으로 농사일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둔전관을 파견하여 농사를 지도, 감시하고 수확한 농작물의 50% 이상을 국가에 바치도록 했다. 조조가 시행한 둔전제의 특징은 이른바 병농일치에 있다. 황폐해진 농토를 군인들로 하여금 개발, 경작하게 하여 농업 생산을 증대시키면서 유사시에서는 전장에 나가 싸우게 했던 것이다. 조조가 시행한 둔전제 아래에서는 농민이 곧 군인이자 군인이 곧 농민이 되었던 셈이다. 이러한 둔전제는 호족들이 대규모의 토지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이기도 했다. 조조는 둔전제를 통해 군사비를 조달하면서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에 삼국 가운데 가장 강한 세력을 이룰 수 있었다.

만능 재주꾼 조조


정사 삼국지의 주석 부분에 따르면 조조는 '낮에는 군사전략을 궁리하고 밤에는 유교 경서를 읽으며 사색에 잠겼다'고 한다. 또한 '높은 곳에 오르면 반드시 시를 읊조리고 새로운 시가 나오면 음악에 맞추어 노래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조조가 대단한 지식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조조는 궁전 건물을 짓거나 기계 설비를 만들 때 직접 설계도를 그리기도 했는데, 모두 훌륭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조조는 서예와 장기에도 능했다고 한다. 정사 삼국지의 위서 무제기편을 보면, 조조가 손자병법 관련 문헌을 널리 수집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13편으로 엮은 것은 물론, 그것을 해설하는 주석을 달아 후세에 전했다고 한다. 조조가 정리, 해설한 손자병법을 위무주 손자병법, 즉 위나라의 무제인 조조의 손자병법이라 일컫는다. 오늘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손자병법도 바로 위무주 손자병법이다. 조조가 문학, 사상, 음악, 건축, 기계 제작, 병법 연구에 두루 능통했던 만능 재주꾼임을 알 수 있다.

조조의 인품


조조의 인품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좋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사 삼국지의 내용을 보충, 설명하는 주석을 단 배송지는 <조만전>이라는 문헌을 인용하고 있다. <조만전>에 따르면 '조조는 인품이 경박하고 위엄이 없었으며, 대화할 때는 늘 농담하는 투였고, 기분이 좋으면 크게 웃었으며, 머리를 요리 접시에 처박아 두건에 음식이 묻어 지저분해지곤 했다'고 한다. 단, <조만전>은 오나라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에 조조를 일부러 깎아 내리고자 했을 가능성도 있다. 조조의 이러한 경박함과 솔직함은 유교 지식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좋지 않은 인품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거짓으로 위엄 있는 척 꾸미지 않았다는 점에서 좋은 성격으로 볼 수도 있다. 요컨대 조조의 인품에 대한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실리를 추구한 조조와 법가 사상


도덕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덕이 아니라 무력으로 세상을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옛 선비들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조조를 나쁜 인물로 보았다. 더구나 헌제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그 아들 조비가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황제가 되었기 때문에, 조조는 한나라의 역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런 평가는 도덕 원칙을 강조하는 유학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하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 유학자들은 그런 조조를 결코 곱게 볼 수 없다. 실제로 조조는 210년에 천하의 인재를 널리 구하는 포고문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능력만 뛰어나면 좋다'고 했다. 조조의 이러한 태도는 공허한 명분보다는 구체적인 실리를 추구하는 실용주의, 합리주의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유교가 아닌 법가 사상, 즉 정치에서 도덕을 제외시키는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정사 삼국지를 편찬한 진수에 따르면 조조는 '전국 시대의 법가 사상을 따랐다. (법가의 대표 사상가로 일컬어지는 한비자, 상앙, 관자 중 관자를 가장 좋아했다고 함)

조조의 출신 성분


정사 삼국지에 따르면 조조는 한나라 건국 공신 조참의 후예이며, 환관이었던 할아버지 조등은 환관 최고의 관직을 지냈고, 그 양자인 조숭이 바로 조조의 아버지이다. 본래 하후씨 집안 사람이라는 설도 있는 조숭은 그 출신을 잘 알 수 없으나, 미천한 집안 사람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조조가 조참의 후예라고는 하지만, 아버지 조숭이 환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갔기 때문에 직접적인 후예라고 보기는 힘들다. 아버지 조숭은 태위 벼슬을 지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양아버지인 환관 조등이 거액의 뇌물로 벼슬자리를 사서 양아들에게 준 것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인들은 다른 성의 양자를 들이는 것을 좋지 않게 보았다. 집안 혈통의 순수성을 흐리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환관은 아무리 그 벼슬이 높다해도 사회적으로 멸시받는 사람들이었다. 조조는 환관 조등이 맞아들인 다른 성의 양자 조숭의 아들이다. 4대에 걸쳐 재상을 배출한 명문 귀족 집안 출신인 원소와 무척 대조적이다. 그런 원소가 조조와의 싸움에 앞서 진림에게 쓰도록 한 격문을 보면, 역시 조조 집안과 조조의 출신 성분을 꼬집어 비난하고 있다.

조조는 한나라의 역적인가?


조조는 동탁, 이각, 곽사 등의 위협 속에 허수아비 신세가 된 헌제를 구해냈다. 이를 두고 조조는 자신이 위태로운 한나라 황실을 구해낸 한나라의 충신이라고 자부한다. 하지만 조조는 동탁과 마찬가지로 헌제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리고 이름뿐인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했다. 사실상 한나라의 지배자가 된 조조지만 끝까지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는 않았다. 220년 낙양에서 6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도, 조조는 어디까지나 한나라의 신하로써 일생을 마쳤다. 마음만 먹으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을 조조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정말로 조조가 자신을 한나라의 충성스런 신하라고 생각했을까? 조조의 마음이야 오늘날의 우리로서는 알기 힘들지만, 조조는 4백년 가까이 이어 온 한나라 황실의 정통성과 그에 대한 백성들의 마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조는 황제가 아니어도 사실상 황제나 마찬가지의 권력을 누렸다. 그런 조조로서는 한나라 황실을 수호하는 충신이라는 명분도 취하고 권력이라는 실리도 취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기존의 조조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단선적이다. 보통 인간은 그렇게 무자르듯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신으로 보는 측이나 합리적 경영인(?)으로 보는 측이나 인생 너무 쉽게 사는 듯...-_-;; 농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잖아!

 

조공이 지은 대표 시문학

<호리행〉, 〈단가행〉, 〈보출하문행〉, 〈각동서문행〉, 〈고한행>

 

근데 위에서 오언시 얘기하며 언급한 단가행은 4언시구만=ㅅ=;;;

돌 잡. 한글2002엔 없는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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