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아빰

1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8/06/16
    아빰의 스트라이크
    뎡야핑
  2. 2017/01/13
    우리 아빠가 노인이라니...(3)
    뎡야핑
  3. 2015/07/21
    아빰 생신 맞이(2)
    뎡야핑
  4. 2014/12/31
    대답 없는 아빰(3)
    뎡야핑

아빰의 스트라이크

아빠 삶에 대한 얘기 듣는 거 언제나 재밌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9남매중 첫째 둘째는 초등학교까지만 보냈는데, 아빠는 공부를 잘 해서 대학까지 보낼 계획이었다. 그런데 대학을 가려면 인문대를 가야 하는데, 아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면에 '산림고'라는 특수고가 생겼다. 전국에 2개 뿐인 산림고를 이 학교 교장이 어떻게 잘 해서 유치했던 거다. 그래서 가까운 산림고에 다니게 됐다.

교과과정은 교과서 공부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농업(왜 산림업이 아니고 농업인지 모르겠지만;;) 신기술을 가르쳐 농업을 이어나갈 새로운 세대를 키우는 게 주된 교육 목표였기 때문에 양봉 치고 농사 짓는 실습 위주로 구성됐다. 애초 땡볕에 농사 짓는다는 걸 싫어했던 아빠는 2학년이 되던 68년에 더는 못 해먹겠다며 다른 학생들을 조직해서 스트라이크(아빠 표현)를 일으켰다. 약 60명 남짓한 학생들 대부분은 복학하고 후에 졸업했지만 아빠는 학교를 그만뒀다. 할아버지에게 시내의 인문고등학교로 전학시켜 달라고 얘기했지만 돈이 없다며 학교에 안 보내줬다. 이 때를 회상하는 아빠의 표정은, 왜 아부지만 흰쌀밥 주냐고 대들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와 더불어 진심 원망스러워 보였다. 아빠가 자기 부모에게 실망스러웠던 순간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며 부모가 그것도 못 해 주냐고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그래서 본인은 자식들 부족함 없게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런 얘길 대놓고 하실 때도 많다 ㅋ

아빠 바로 아래 동생도, 철도 고등학교에 붙었는데 돈이 없다고 안 보내줬다. 그 아래 동생은 애초 본인이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스스로 고등학교에 안 갔다. 그 아래 세 동생은 모두 대학을 졸업했는데, 형편이 확연히 나아지기도 했지만, 두 고모가 남매 중 최초로 고등학교(우리 아빤 졸업을 안 했으니까), 대학교까지 간 건 대단한 일인 듯 싶다. 보지 않아도 얼마나 싸우고 졸랐을지 상상된다.

아빠는 농사 짓는 것도 나무 하는 것도, 어린 시절부터 농촌에 살며 자연스럽게 익혔던 일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관두고 서울에 갔는데 서울에서 ㅋㅋㅋㅋ 불쌍한데 웃김;;;; 십원 한 푼 안 받고 재워주고 먹여주는 공장에서 일했는데 불이 나서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그 뒤로 아빠도 여러 일을 전전했고.. 나름 인천에 잘 자리잡아서 엄마랑 아빠 동생도 인천으로 많이 불러왔다. 그래서 인천 출신도 아닌데 인천에 친척이 많다. 나중에 아빠 인생을 쫙 듣고 적어보고 싶다. 맨날 이런 생각하는데 안 함< 우리 외할머니 인생도 해야지 생각만 하고ㅜ

 

아빠 과거 회상 웃긴 거 진짜 많고 현재 얘기도 개웃긴데 진짜 앞으론 녹취해야겠다. 그냥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개인사 듣는 건 항상 재밌다. 특히 현대사랑 맞물려서. 아빠는 몰랐겠지만 1968년에 전세계에서 여러 혁명/파업 등등이 있었잖아? 그 순간에 아빠도 학생 파업을 조직했다니 ㅎㅎ 근데 요즘 얘기는 프라이버시 때문에 적을 수가 없네 가족용으로 만들어서 출판해 볼까 이십 부 정도 찍는 거지.. 요즘엔 주식을 딱 마음 편할 만큼만 하시는데 예전에 돈 많이 넣어놓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갔다는 얘기를 들으며 ㅋㅋㅋ 사실 오늘 들은 요즘 얘기를 쓰려고 창을 열었는데 아빠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관둔다...< 여자친구들 얘기도 흥미로운데.. 아빠가 대단히 부자는 아니어도 노후 대책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아빠에게 끊임 없이 여자분들을 소개시켜준다. 아빠는 재혼할 의지가 있어서 많은 사람을 계속 만남 근데 여건이 맞는 게 쉽지가 않다네. 예를 들어 지금 만나는 분은 아들들 밥해줘야 된다고 주말에는 만나지도 못 하고 평일 낮에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_- 아빠는 관계를 이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예의상 몇 번은 더 만난다고...;;; 아 그리고 ㅋㅋㅋㅋ 아빠가 머리가 많이 빠져서 그게 '콤플렉스'인데, 그래서 항상 모자 쓰고 다니신다. 우리 어디 놀러가도 꼭 모자 쇼핑함ㅋㅋㅋㅋ 근데 여자분들 처음 만날 땐 모자 안 쓰고 가고, 두번째부턴 모자 쓰고 만난단다. 근데 처음부터 모자 쓰고 만나도 예의가 아닌 건 아니지? 하고 물어보시는 거임ㅋㅋㅋㅋ 예의가 아닌 건 아닌데, 그래도 궁금하잖아! 그랬더니 모자 쓰고 만났다가, 다음에 모자 벗고 만나서 머리 보고 싫다고 하면 그 사람이랑은 아니지 않냐고...ㅎㅎㅎㅎ 아 귀여워 ㅋㅋㅋ

암튼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건, 이 재혼 '시장'에 나오는 많은 여자분들이 노후 대비가 안 돼 있어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며 노후를 두려워하는지, 아빠가 알고 약간 딱하게 여긴다는 거다. 사실 아빠가 만났다고 몇 번 얘기해 준 분들이 다 직업이 괜찮아서 왜 자기 먹고살 방편 다 있는 사람들이 굳이 그 나이에 남자를 만나서 또 수발들며 살려 하는가? 아빠한테 이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이런 요지로 의문을 표했었는데, 지금 먹고 사는 거랑 노후 대비는 또 다른 것이다.. 갑자기 만화 추천하고 싶은데< 마영신 작가의 『엄마들』 보면 노후 대비 문제 말고 중년의 연애에 대해 잘 나옴 겁나 재밌다.

 

암튼< 우리 아빠는 본인은 스트라이크도 조직하고, 부모와 불화해서 집 나가고, 막 진짜 십대 시절부터 자유의지로 한 사람의 주체로 살았는데 자식들은 그렇게 안 키웠다. 그리고 아빠의 경험에 비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도 않는다. 그런 것도 흥미롭다 담에 자세히 얘기해 봐야지

 

연애결혼 카테고리에 넣은 건 결혼 후 아빠랑 대화를 많이 하게 됐기 때문. 그냥 나이가 먹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안식년 때도 아빠랑 시간을 많이 보내서 더 친해졌다. 아빠가 갑자기 아프시면서 갑자기 늙고 우울해하셔서 그랬던 건데 그래서 계획했던 건 많이 못 했지만 좋은 시간이었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우리 아빠가 노인이라니...

홍콩 갔다와서 아빰 보러 갔더니 삼겹살을 구워 주시며 내내 아프다고 너무 아프다고 몇 점 드시지도 못 했다. 통풍으로도 고생하셨었지만 이렇게 아파하시는 건 처음 봤다. 병원 가자니깐 그 아픈 와중에도 정색하시며 의사놈들은 전부 다 도둑놈들이라고 언니한테 아빠 피 빼달라며, 과거에 의사도 못 고친 지병을 아빠가 자가치유-_-했던 걸 자랑스레 얘기해 주셨다. 몸에 두드러기 같은 게 돋았는데 허리까지 너무 아파서 근데 디스크 통증은 아닌 것 같고, 통풍 증상도 아닌 것 같고 예전에 한 번 앓았던 신경통 같다고 하시며 자가치유를 고집하셨는데.. 며칠 앓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새벽에 언니랑 응급실에 가셨는데 진료받고 나서도 의사놈들 도둑놈들이라고 욕을 욕을 하셨다고 ㅋㅋㅋㅋ -_- 당일에도 내가 검색해 보니 대상포진일 수 있단 결과가 있었는데, 그거란다. 수두를 앓았던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잠복해 있다가 주로 60대 이후에 대상포진으로 발병한다는데... 의사가 잘 먹고 잘 쉬라는데, 아빰은 이미 잘 먹고 잘 쉬고 있다며, 왜 이런 병에 걸렸지? 의문을 표하시는 데다 대고 검색해보니 노인성 질환이란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또래 다른 사람들보다 건강하시고 운동도 하고 생활 환경도 좋고.. 굳이 병에 걸릴 이유가 있다면 그냥 나이가 들어서 면역력이 약해져서이다. 아빰이 늙으셔서 그래요, 하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우리 아빠가 노인이란 건 나에게도 충격이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외)할머니는 할머니였고(겨우 50대셨지만...), 내가 노인이란 일반명사에서 떠올리는 것도 우리 할머니다. 몇 년 전부터 아빠가 많이 늙으셨구나, 깨닫고는 있었지만, 우리 아빠가 그냥 '노인'이라고, 우리 할머니보다 젊어도 노인이라고는 인식하지 못 했다. 말했듯 아빠는 건강하신 편이기도 하고, 우리 아빠는 그냥 우리 아빠니깐. 내가 나이 드는 걸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막상 우리 아빠가 나이 드는 건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못 했다. 20대까지는 죽는다는 게 너무 두려워서, 노화는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혐오가 노화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있었다. 그런데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구체적으로 우리 아빠의 노화를 접하니까 혹시 내가 여전히 노화를 혐오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처녀도 아니면서 이런 모자를 쓰냐며 쥬쥬 모자를 써보신 최근의 우리 아빰.. 귀요미

 

대상포진이 그렇게 아프다는데 일주일을 참으시다니 어휴... 정말 살아온 세월이란 게 정말... 정말 무서운 거구나. 의사에 대한 강력한 불신도 그렇지만, 한국 전쟁 이후 어린 시절을 겪은 아빠는 헛돈 쓰는 걸 정말 너무너무 싫어하신다. 그런데 대상포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오랜만에 만나 또 박근혜 얘기나 하고 아빠를 고통스럽게-_- 만들었네. 집에 와서는 아픈 아빠가 걱정되기보다 왜애애애 우리 아빠가 아직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그 4프로인 거신가 ㅁ이에게 푸념만 했다. 그렇게 오래 아팠고 참았는 줄 몰랐다. 그 아픈 와중에도 박근혜 자체라기보다, '빨갱이'라는 박근혜 반대 세력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게 너무 걱정되셔서, 딸에게 카톡으로 거지 같고 근거 없는 선동글 보내시고, 아빠는 이렇게 죽어도 상관 없는데 너희들 미래가 너무 걱정이라고 집회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가서 헌법재판소에 탄핵 기각하라고 요구하고 싶다고 하시고 ㅠㅠㅠㅠㅠㅠㅠㅠ 아오 사실 이 때는 아빠 병의 심각성을 몰라서 그냥 아 그 태극기 든 노인 행렬에 우리 아빠가 참여한다니 왜 뭐땀시 왜 때문에에에에 우리 아빠가 그런 노인인 거냐 속으로 절규하고 집에 와서 절규했는데... 아니 그리고 막 비논리적이라고 막 따졌음 ㅠㅠㅠㅠ 아빠.... 여담으로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우리 아빤 절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데 왜 저렇게 티비조선마저 빨갱이라고 하며 괴담을 철썩 같이 믿고 계신 걸까 계속 의아했는데, 그 괴담 유포자들이 빨갱이, 적화통일에 대한 오랜 공포를 자극하고 있단 걸 알게 됐다. 아빠는 진심으로, 이러한 국난-_- 속에 이 나라가 북괴들의 손에 넘어갈 수 있다고, 민주당이든 검찰이든 곳곳에 빨갱이가 잠입해 있어서 나라가 위태롭다고 믿고 계신다. 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그 공포심은 오랜 기간 주입된 반공사상이 끊임 없이 자극되고 현재화된 결과다. 그런 걸 첨으로 알게 됐다.

 

나는 내가 잘 늙는 것만 고민했었는데, 정말 이기적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아빠가 자꾸 나를 보고 싶어하시고, 몇 년 전까진 니네 집에 빨리 가버려라~ 그런 태도였는데 이젠 더 늦게까지 있거나 자고 가길 바라시고, 빨갱이-_- 운운하는 것도 예전처럼 내게 공격적이진 않으시고, 이걸 슬프다고 치부하지 말고 자연스러운 거라고, 아빠가 아프신 것도 내가 신경써야 하는 것도 원래 그런 거라고, 내가 좀 이치를 빨리 받아드렸으면 좋겄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아빠가 내 사상을 바꿀 수 없듯이 그 역도 마찬가지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빠랑 있으면 참지 못 하고 -_- 아빠는 틀렸어요! 아빠 얘긴 다 잘못 됐어요! 싸우고 말았는데 뭔가 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내가 내 나이듦을 긍정하는 것과 아빠의 나이듦을 긍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 같기도 하다. 어렵다. 진인옥 여사나 보러 가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