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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9/06
    성스러운 도시City of Borders, 2010(2)
    뎡야핑

성스러운 도시City of Borders, 2010

얼마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만나는 공간, 예루살렘의 '슈샨'이라는 게이바를 중심으로 이-팔 몇몇 퀴어들의 삶을 찍은 다큐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가 있었다. 주요인물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유대인 레즈비언 커플,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에 사는 유대인 게이, 서안지구에 살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팔레스타인 최초의 드랙퀸, 예루살렘에서 시의원을 지낸 슈산 사장 등 다섯 명이었다. 나는 영화감독이 '슈샨'이라는 바를, 이-팔의 다양한 퀴어들이 민족과 분쟁을 뛰어넘어 퀴어로서 화합하는 해방구로 오인하고 영화를 찍었는데 막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내용을 살펴보니 딱히 해방구도 아닌지라 공정한 체 이-팔 퀴어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수준에서 어정쩡하게 영화를 마무리했다고 보았다. 슈샨이 해방구가 아니라는 것은 영화 스스로 입증했다. 같은 공간에서 팔레스타인 퀴어들이랑 논다고 해서 식민자로서의 정치가 후퇴하는 건 아니라는 걸 불법 정착민이 인터뷰와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소소하게는 어깨에 총을 메고 클럽에서 춤 출 수 있는 건 오직 유대인 뿐이라는 것, 슈샨에서 발언하는 팔레스타인인은 영어를 써야 하지만 슈샨이 문을 닫을 때 고별사는 히브리어로만 이뤄졌다는 데서도 슈샨이 다른 이스라엘 사회보다 덜 억압적이더라도 여전히 점령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헌법상 권리라는 것을 배운 뒤 권리를 분절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자유권이라는 게 있고 평등권이라는 게 있다. 양심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만 접근권은 침해하지 않는 게 있다. 권리는 여집합 관계일 수 있다.

위키에 있는 적절한 그림을 가져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레즈비언 커플 사미라와 라빗의 대화 중 이런 게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중동지역에서 동성애자가 군대에 갈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냐며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한다. 유대인 라빗은 뭐 그건 팩트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게 아니고 그건 그냥 팩트라고. 사미라는 순간 말문이 막힐 만큼 황당해하며 중동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이스라엘 내 아랍 시민으로 나에겐 한 번도 표현의 자유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하지만 라빗은 적당히 웃어넘기며 누가 널 말 못 하게 하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 한다.

 

가자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에 함께 가는 길에 사미라가 이스라엘 거리에서, 아랍어로 이스라엘을 규탄할 때, 라빗은 마치 공중질서를 생각하는양 집회장에 가서 얘기하라고 말한다. 사미라가 목소리를 높이자 라빗은 매우 곤란해하는데, 이스라엘 공공장소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랍어로 얘기할 수가 없다고, 그러면 유대인들이 테러범인양 쳐다본다는 인터뷰를 읽었던 게 떠올랐다. 누가 널 말 못 하게 하니. 누가 널 소리치지 못 하게 하니. 영화화된 자신의 행동들을 보고 라빗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법정에서 권리를 분절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에서 그래도 유대인 동성애자는 군대에는 갈 수 있어 제대하지 않을 경우 입을 불이익을 피할 수 있으니 법적 제도적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 시스템이 있는 이스라엘도 이런 면에선 민주국가이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잡채 자체가 쉰 게 아니고 당면과 시금치만 쉬었고 당근과 양파는 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만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다. 그런 잡채 너나 쳐먹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여기서 얻은 유일한 교훈은 해방이라는 것은 절대 분절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거다(전략상 단계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GV 때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서 아쉬운데.. 나는 점령 문제를 사회의 여러 억압 중 하나로 다루는 게 옳지 않다고, 점령을 차원이 다른 억압이라고 얘기했다. 점령이 다른 억압과 차원이 다르다는 건 비교급으로 퀴어 탄압보다는 점령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팔레스타인 퀴어가 받는 사회적 탄압은 영화에서 보여주듯 이스라엘에도 있고, 서구 사회에도, 한국에도 있지만 팔레스타인 퀴어가 사는 점령 현실은 다른 데에 없다. 이 얘기 하긴 했었지만... =ㅅ=;;

 

이스라엘 퀴어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별받고, 팔레스타인 퀴어도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차별받는다. 그래도 이스라엘에는 텔아비브라는 게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동네가 있으니 그나마 좀 괜찮다? 이런 얘기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의 핑크워시-팔레스타인은 퀴어들을 미개하리만큼 탄압하고, 이스라엘은 민주국가라 퀴어에게 자유가 보장된다는 이스라엘의 게이 PR 캠페인-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억압받는 자들끼리 연대? 이-팔 퀴어는 절대로 똑같이 억압받는 자들이 될 수 없다. 개개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대인으로 산다는 건 점령자로 산다는 게 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유대인이 군대에 가서 점령군의 일부로 기능을 해 본다. 점령이 가져다준 수자원을 펑펑 쓰고, 점령이 파괴한 팔레스타인 집터에 집을 짓는다. 셀 수 없이 나열할 수 있다. 피점령자로 산다는 건 뭔가. 불도저를 이끈 군인들이 새벽에 쳐들어와 우리집을 15분만에 부술 수 있고, 그 부순 비용을 내가 내야 하고, 잔해물 치우는 비용도 내가 내야 한다. 밤에는 잠자다 가택 수색중이라는 군인들한테 끌려가 기약없이 재판도 없이 몇 년간 수감된다. 코앞에 생긴 장벽때문에 5분 거리를 30분간 돌아가야 하고, 슈퍼에 갈 때마다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살해당해야 한다. 셀 수 없이, 셀 수 없이 많다.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연대가 왜 기만적인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지

 

어차피 연대가 불가능함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드러나지만. 식탁에서, 불법 정착촌에서, 게이바에서, 집회 장소에서. 하지만 연대가능성을 봉쇄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특정한 억압을 매개로 다른 상황을 다 지우고 연대가능성을 제시하다 말아버리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많은 말은 나중에 추가하겠음 추석이라 나가야돼 -ㅅ-

 

영화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사미라 사라야씨한테 포커스를 맞춰 그를 찍었으면 훨씬 이백배 좋았을 것 같다. 아쉬웠다. 그가 한 얘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어느날 술을 마시고 라빗과 섹스를 하는데 갑자기 점령과 섹스하는 것 같았다고. 내가 그렇게 느끼니 걸 라빗도 분명 느꼈다고. 라빗은 점령이 아닌데,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여잔데, 그런데. 그래서 둘이 같이 울었다고. 아 정말... ㅠㅠ 다음에 더 얘기할 기회가 있으으리. 이 분 뭐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작년에 팔레스타인 힙합 그룹 DAM의 랩퍼랑 같이 랩한 게 있넼ㅋㅋㅋ 귀여우심

 

 

읽을꺼리<

  • BDS를 지지하는 팔레스타인 퀴어들은 전세계 퀴어 단체, 조직, 개인들에게 인종차별국가 이스라엘의 보이콧을 요청합니다. http://pal.or.kr/xe/300642
  • Israel, Palestine, and Queers http://mrzine.monthlyreview.org/2009/mr2804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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