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의 아리랑

  • 등록일
    2004/08/31 14:41
  • 수정일
    2004/08/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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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조선왕조의 압제 시절 사형 선고 받은 자들이 교수대로 쓰이는

나무에 걸어가기까지 고개를 넘어가면서 부르던 노래라고.

 

어떻게든 살아서 혁명 과업을 수행할 것이냐, 의롭게 죽을 것이냐.

절대로 보통 사람에게 죽을 것을 강요할 수 없다. 나로서는 살아서, 살아내서

하나라도 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옥 속에서의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다.

사실 유명한 자가 아니라면 그 청렴한 죽음은 대중에 알려질 수 없고, 자기네 활동가만

알 뿐이며, 발화점이 될 수도 없다. 어느 궁극에 다다르지 않은 이상은 개죽음이다.

지금 현실만 봐도 그렇잖은가. 나조차 분신자살한 분들의 성함과 배경을 일일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최일선에서 먼저 나아가는 자들- 그것은 선민의식은 아니다-에게는 기대해도 될 것이다.

스스로 목적의 정당성을 파괴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각에 종지부를 찍어준 고마운 책이다.

 

김산의 정의로움은 타고났다 할 수밖에 없다. 같은 시대를 살아도, 비슷한 처지에 있어도

선택은 다르다. 개인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책은 김산의 개인적인 얘기에도 할애하고 있지만 나는 이것이 싫지 않다. 어느 혁명가의

인간적인 모습 개뿔따구를 보려는 것이 아니고, 김산이 본 항일투쟁과 중국혁명 등

김산의 시각에 한 번 걸러진 사실들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그의 관점이 어느 지점에서

생긴 건지 아는 데에 개인적인 얘기들이 크게 도움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중국혁명에 대해 무관심했는데 책을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아직 30대의, 이론이 덜 영근(레닌주의자라니.. 하긴 당시 상황이 그러니까. 하지만 로자 언니는

레닌주의의 패망을 훨씬 더 전에 예견했건만..ㅠ_ㅜ), 하지만 늙을대로 늙은 그래도 순수한.

신기한 모습이었다, 김산은.

 

아 이름 까먹었는데... 오.. 누구더라. 생사를 같이 한 친구. (읽은지 며칠 되서-_-)

둘 다 서로 죽은 줄 알고 있다가 중국의 어느 거리에서 딱 마주쳤을 때.

죽은 줄 알았다고 소리치고. 둘이 굳게 끌어안은 순간. 헉, 하고 눈을 쳤다.

아참 그 이후의 이야기도 읽어봐야겠담. 아내랑 자식은 어찌 되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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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 로자 룩셈부르크

  • 등록일
    2004/08/31 14:41
  • 수정일
    2004/08/3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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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공부하고 있는 철새들도 그처럼 불가사의한 지능이 있어.

가을이 되어서 남쪽으로 이동이 시작되면 두루미처럼 큰 새들은

종종 종달새나 제비 그리고 황금 굴뚝새와 같이 작은 새들을 등에

태우고 날아간다는 거 아니? 아이들의 상상이나 동화 속 얘기가

아니라 실제 과학적으로 관찰되는 거야. 작은 녀석들은 '합승마차

위에서 지저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는 거야. 가을 대이동철

에는, 매, 솔개 등 육식성 조류도 종종 같이 무리를 이루어 날아간

대. 평소 같으면 한 끼의 식사에 불과할 작은 새들과 같이 말이야.

그런 특이한 비행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전면

휴전 상태에 들어간대.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나 행복하고 묘한 흥분을 느꼈는지 아

니? 새 얘기가 왜 나한테 이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감옥이 사람이 살 만한 장소라는 생각까지 들어. 이곳에 들어와

서 얼마간 잊어버렸던 사실, 어쩌면 삶이란 아름다운 동화 한 편과

같다고 생각하게 되어선지도 모르지. 지금은 어쨌든 나 자신으로

돌아왔어. 난 결코 물러서지 않을 거야. 빨리 답장 줘.

 

-한스 디펜바흐에게

 

 

 

여성영화제에 상영될 로자 룩셈부르크는 감독의 변을 읽고 그닥 기대하지 않게 됐지만

갑자기 로자가 그리워져서 편지집을 읽게 됐다.

오늘은 꼭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를 읽어야지. 아우 그 풀무질에서 나온 책은 품절인 거야ㅠ_ㅠ

윗 글은 로자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뽑았는데. 쓰고 보니 더 좋다.

이런 말은 뭐하지만.. 당면한 현실에서의 투쟁으로 감옥에 가신 분들은 좀더 넓은 시야를

갖는 일이 많은가보다. 인간이 아니라 우주섭리를 관망하는.. 그것이 절대로 투쟁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사이비 낭만주의가 아니고 더 넓게 깊게 생각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놀랍다.

 

로자는 선이 고운 사람이다. 아아 진부한 수식어 따위로 그녀를 표현하고 싶지 않다.

책을 읽다가 또 놀랐던 것이 언제나 옳은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녀의 말.

아 좋은 사람이 되기란 얼마나 힘든지!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죽겠는데. 기쁘다ㅠwㅜ

하지만 어떻게 해야 좋은 사람일 수 있을까. 로자는 어떤 사람들에겐 몸서리치게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겠지만. 정도라고 믿고 가는 길에 타협할 줄 몰라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미워했던가. 그런 사람 중에는 진짜 또라이들도 있지만 보듬고

함께 가야 할 대상도 많잖아? 이것은 나의 딜레마.

오늘 읽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베라 빠블로나가 꾸는 꿈에 엄마가 나온다. 엄마는 자신의

악한 행동들이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너를 위한 행동이었음을 역설하며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너는 몸을 팔았을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양심의 소리가 그것은 베라를 잘 교육시켜 좋은 집안에 팔아먹으려는(시집보내려는)

엄마의 수작-_-이었음을 일깨워주며 오늘의 선한 베라의 존재를 긍정해준다.

읍.. 이건 쫌 다른 건가?? 암튼 이 얘기로 이 딜레마를 대신해 버리며..

 

지난 번 내정치에서 있었던 일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려서 이제 정치 싸이트는 취미를

못 붙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격하게 싸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건 정말 아직은 모르겠다.

감정만 상하지 않는다면...... 감정이 안 상할 수가 없는 거겠지만.

로자같은 사람도 카우츠키 등 어마어마한 사람들과 척을 졌으니. 아아 슬프다 슬퍼.

나는 그런 것들이 싫은데. 혁명전술이 다르다 해서 사고방식이 다르다해서 서로 배척하고 가르는

것은 싫은데. 하지만 이것저것 섞여서 떠들기만 하다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이건 누구의 딜레마인가.

이성으로 싸우되 감정만은.. 우리 가는 길이 달라도. 이건 나한테 하는 말-_-

 

요기헤스 외에 코스띠아나 로자한테 청혼했던 그 의사랑 또 딴 사람. 뭐 그런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도 꽤 될텐데. 아우 아쉽다. 너무 요기헤스와 루루한테 편중됐다. 나중에 소냐랑 한스, 로젠펠트도

나왔지만. 레닌 등 러시아 사회주의자한테 쓴 편지도 보고 싶은뎅.

 

현실에서 눈돌리지 않고 제대로 살겠다. 차후의 행보로 지키리라. 이이상 눈감은 가해자이고 싶지 않다. 더이상은 나도 못견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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