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챠 드라마 추천 - 이어즈 앤 이어즈(YEARS AND YEARS) : 이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가? (O)
희망은 없는가? (X)

<이어즈 앤 이어즈>는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에 사는 ‘라이언스’ 일가 4남매를 중심으로 한 근미래 가족 드라마다. 드라마가 발표됐던 시점인 2019년 현재부터 2034년까지 16년 동안 각 가족 구성원이 주요 사회적·세계사적 사건을 어떻게 겪고 변화하는지 그려진다. 각 구성원이 헤쳐나가던 서로 상관 없어 보이던 사건들은 ‘난민 수용소’라는 문제로 얽혀들고, 우리 가족이, 영국 사회가, 세계 전체가 마주한 핵심 위기로 수렴한다.

드라마의 다른 한 축은 이 평범한 가족들이 주로 TV를 통해 접하는 극우 정치가 ‘비비언 룩’이다. 첫화는 비비언 룩의 등장을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시청하며 그룹통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직 정치 데뷔 전인 비비언 룩은 한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팔레스타인은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지배의 후과를 지금까지 겪는 곳이다. 때문에 영국에서 팔레스타인은 완전히 남의 문제랄 수만은 없다. 하지만 백년간의 피로가 쌓여서일까? 이제 영국 시민들은 팔레스타인 얘기가 지겹다. 하지만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교양 없어 보인다. 체면치레가 필요한 방송에선 더더욱 그런 얘길 할 수 없다. 그러나 비비언 룩은 속시원하게 말한다. “팔레스타인? 그딴 거 솔직히 좆도 신경 안 써요(I don’t give a fuck)” 정부가 우리 동네 쓰레기나 잘 치워주면 좋겠다는 비비언 룩은 fuck을 검열한 ****에서 따온 4성당(4 Star Party)을 창당하고 따분한 영국 정치계에 새바람을 일으킨다.

정치적/계급적 구성이 다양한 라이언스 가족 중 누군가는 비비언 룩에 열광하고 누군가는 경악한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며 비비언 룩과 가장 반대되는 진보적 성향의 가족들조차 극우 정치가의 주장과 자신의 생각이 공명하는 부분을 발견한다. 선거 결과를 본 좌파들은 좌절감을 몰래 표출하곤 한다. 자기 계급의 이익과 반대되는 극우 정치가를 뽑는 멍청한 사람들은 선거도 못 하게 해야 돼! 진심이든 아니든 사회가 망가진 책임을 자본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돌린다. 이렇게 ‘우매한 대중’에 의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정서를 좌파 엘리트들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비비언 룩은 대놓고 말한다. 아이큐 낮은 사람들에게 선거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세계 도처에서 직접행동을 벌여온 아나키스트마저 비비언 룩에 열광한다. 모두가 데이터에 무차별 노출된 상황에서 6세 아동이 휴대폰으로 포르노를 소비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비비언 룩은 30m 반경에 있는 모든 전자기기의 온라인 접속을 끊을 수 있는 ‘블링크’라는 장치를 소개한다. 사이버 테러리스트가 만든 무기지만 이를 합법화해서 각 학교와 가정에 배급해 미성년자의 인터넷 접속을 통제하고, 캘리포니아 거대 IT 기업들의 CEO를 여기 맨체스터로 데려와 재판 받게 해서 감옥에 보내 버리겠노라고! 거대 기업의 부정 행위에 맞서 싸워 온 아나키스트는 그래 세상을 뒤집어 버리자며 적극 동조한다. 물론 흑역사로 남게 되지만.

드라마엔 바뀐 기술을 통해 바뀐 삶의 풍경이 자주 묘사된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일상의 일부로 자리잡고, 온라인 상 주요 소통 수단인 이모티콘이 현실의 얼굴에 덧씌워진다. 기존 정치인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이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치고, 젊은 세대는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해서 사이보그가 되려 한다. 아주 가까운 미래를 그리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쓰고 있거나 개발 중인 기술에 기반해 있어 대체로 위화감이 없다. 곧 당면할 문제로 설득력 있게 그려진 것도 있다. 타고난 몸뚱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초월하는 ‘트랜스 휴먼’이 되겠다는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다. 신체 손상의 연장으로 이해돼서 거부감부터 드는데, 이러다간 신체에 대한 바뀐 통념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지금의 거부감은 오히려 저런 생각을 못 하도록 인터넷을 끊어버리겠다는 부모의 강압적 입장에 더 가까울 정도라서 위기 의식이 든다.

핵폭탄이 터져도 세계는 멸망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승리를 공고화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디스토피아물이다. 하지만 결국 가족구성원 모두가 각자 다른 이해관계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성하고 사회 변화의 능동적 주체로 나아가는 걸 보면 유토피아물(?) 같기도 하다. 그동안 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의 가장 취약한 곳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감당해 왔다. 근미래 영국 중산층들은 세계사적 위기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먼저 쓰러져나가는 이들의 보호막 속에 살 수 있었다. 취약한 이들이 모두 쓰러지고, 파국이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까지 찾아왔을 때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눈 뜨고 보기 힘들지만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세상을 그리는, 한 순간도 놓치기 힘든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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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나간 덕심 되찾아준 도로헤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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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이가 우리집 대형티비로 넷플릭스에 뜬 애니메이션 <도로헤도로>를 보기 시작했다. 강제시청각이었지만 보기 싫어서 등돌리고 내 할 일 했었다. 나는 십 년 전 원작 만화를 몇 권 보고 하차했고, 그래서 애니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몇 몇 대사에 뒤돌아보고 조금 보고 엔딩곡 듣고 잉 뭐여 너무 좋은데..?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보다가 마지막 3화를 다 보게 됐고 뭐지.. 재밌는 것 같네...하고 처음부터 다시 제대로 달렸는데 너무 재밌어서 앉은 자리에서 시즌 1을 거의 다 봄. 그리고 고민 끝에 시즌 1에 해당한다는 만화책 7권까지를 샀다. 보니까 아뿔싸... 너무 재밌어서 다 보기 전에 8권~23(마지막권)도 샀다. 그리고선 ㅁ이가 7만원짜리 원서 화집을 사 줌. 한 번 휘리릭 넘겨보고(2회차 때 정독) 애니 다시 보고 점점 뻐렁쳐서 캐릭터 설명집인 <올스타 명감>도 사고 <도로헤도로 특집본>이라는 원서도 샀다. 거기서 작가 인터뷰 보고 충격.. 작가 너무 멋있어 미친 도랏맨 자기 그리고 싶은 거 중심으로 그려서 세계관이란 걸 특히 중시하지도 않고 얼기설기 대충 연결해 나가는데 그게 개존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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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만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십 년 전에 한국에 정발됐을 때 화제였고, 그림을 너무 잘 그리길래 나도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그 반사회성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한 두 권 읽고 때려친 줄 알았는데 바퀴벌레 '존슨' 기억하는 거 보니 꽤 읽었더라고). 이 얘기했더니 ㅁ이랑 또 누구더라 누군가가 <간츠>나 좋아하는 주제에 뭔 도로헤도로 가지고 그러냐고 반박하는 것이었다. 간츠는 사람 썰고 오지게 부셔도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게 아니야.. 도로헤도로에는 '사회'라는 게 없다. 국가가 없어서 법률이나 경찰이 없는 건 너무 당연하고, 근데 국가 말고 사회조차 없다. 아니 사회가 없는 게 세게관이라면, 그래서 개인들이 약육강식으로 생존해 나가는 게 '룰'이라면, 그럼 그건 흔하기도 하고 괜찮은데, 그냥 만화 속 설정에 그치지 않고 만화 외적으로도 작가가 사회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느껴져서. 사회가 되찾아야 하거나 만들어야 될 무엇도 아니고, 정당성이라는 것도 없고, 그냥 투쟁하는 개인들이 윤리도 서로에 대한 책임도 없이 악무한으로 살지만 그러면서도 우정은 엄청 강조해서. 그냥 소년 만화의 특성으로 보자면 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만화들과 달리 사회가 없고 인간을 정말 말 그대로 고깃덩이로 여기는 게 너무 싫었다. 그냥 만화 캐릭터에게도 인권이 있다, 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라는 거 자체를, 인간이 구축해 온 사회를 파.괴.하는 게, 무시하는 게 너무 못 견디게 싫었다. 그래 파괴도 아니고 무시였다!

그니까 기존에 뭔가 신자유주의적으로 파편화되고 개인이나 개인의 자아의 연장선에 불과한 가족/친구까지만 바운더리 긋고 소중한 것으로 상정하는 그런 흔한 설정을 넘어서, 인간성도 인간 신체도 다 별 거가 아니고, 인간이란 거 자체가 별 거 아니라는 게 충격적이었다. 사람을 썰고 낄낄 농담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는다-는 흔하고 위악적이며 허세로도 보여서 그냥 만화 코드로 읽을 수 있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 사람은 찐이다. 진짜 신경을 안 쓴다. 허세가 아니다. 하고 충격받아서 더 읽을 수가 없었다. 불쾌했다.

요리 만화냐는 평을 받은 오프닝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애니에서 이런 면이 훨씬 순화됐다. 굳이 인간 시체가 어떻게 썰렸는지 열심히 전시하지도 않는다. 잔인한 면이 많이 희석되고, 작화도 연출도 너무 좋아서(음악은 말해 뭐해), 사실 애니메이션 거의 안 봐서 잘 모르면서 아 애니메이션이 이렇게나 발전했구나 하고 개감탄하며 재밌게 보고나니 만화도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캐릭터들 중에 노이랑 카이만한테 홀딱 반해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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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ㅠㅠㅠ 알라뷰 담에 노이 찬양 글을 써야지 항상 즐거운 노이 너무 사랑해

처음 만화책 볼 때는 연출이 애니가 낫다..고 생각했다. 작가님도 비슷한 취지의 말씀을 하심. 만화는 연출이 특별히 뛰어나다기보다 그림이.. 진짜 작화가 와 진짜 즐겁게 그리시는 게 느껴짐 글구 계속 보다보니까 연출 특이한 거 같애 재밌어.. 만화 너무 재밌어 깨알같이 샅샅이 진짜 개그도 그렇구 그림 진행되는 거도 웃기고 어떻게 이렇게 힘줘서 그린 그림이 이토록 편안하게 보일 수 있는가 너무 신기함

도로헤도로는 모든 것이 너모 좋지만 위선자가 없어서 넘 좋다. 보통 정의를 참칭하는 세력은 당위는 갖구 있어도 하는 짓이 지가 악당이라 규정한 놈들이랑 존똑이면서 지놈만 옳다고 염병 떨어서 그 모순을 눈 뜨고 볼 수가 없는데 여긴 그냥 진짜 무법의 세계임 카이만도 너무해... 싶은 상황 너무 많다 물론 홀의 인간들이 마법사와 적이라서 마법사를 막 그냥 죽이는 거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해... 싶은 상황 많다고;

그 사회란 게 없고 오직 개인적 관계만 있는 세계란 게 십 년 전엔 너무 싫었는데 그런 점 덕에 정의를 독점하는 놈들이 없을 수 있는 거기도 해서 맴이 복잡해짐-ㅅ-

도로헤도로에 대해서 뭐라도 써야지 맨날 혼자 노이 생각하면서 실실 쪼개면서 걸어다님; 진짜 노이ㅠㅠㅠ 아 진짜 담에 쓰자< 작가님 후속작 <다이 다크> 단행본 2권까지 나와서 보고 있는데 이것도 한국에 정발 계약됐다고 한다. 제발 시공사에서 나와라! 단행본 존예임 담에 올려야지 글고 여기 주인공 14세 소년의 정체는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 아오 담에 써야지

>>> 만세 시공사에서 발매 예정 <<<

덕분에 만화 보는 재미를 되찾아서 그 뒤로 많은 만화를 사고 사놓고 안 보던 많은 만화를 읽고 있다. 특히 만화를 보는 내 태도가 '나를 만족시켜 봐' 하는 식으로 거만했다는 걸 깨달았다. 취향에 안 맞는 만화가 더 많은 거야 물론이지만, 그래도 만화의 재미를 내가 더 적극적으로 찾는 독서를 해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에 더해 도로헤도로 만화책 책장에 잘 꽂아넣고 싶어서 이사 후 몇 달을 미루던 만화방 정리를 단행했다. 오오 놀라운 도로헤도로

만화에 대한 애정까지 되찾아준 도로헤도로 보시오 빨리 애니부터 보시라고요

* 재밌게 본 작가님 인터뷰 : [번역] 애니메이션 '도로헤도로' 특집 하야시다 큐 인터뷰 -코믹 나탈리 특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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