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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현재까지 사형이 집행된 인원은 920명이라고 한다. 놀랍게도 네명 중의 한명(254명)은 국가보안법, 반공법, 긴급조치 위반 등을 이유로 한 사형집행이었다. 이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정치사상의 자유가 심각하게 탄압되어온 사회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들의 일부는 사면복권되기도 했고, 국가로부터 배상 판결을 받기도 한다. 그동안 국가와 권력자들이 정치사상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을 넘어 정치적으로 왜곡하고, 악용해왔음을 역사가 밝혀주고 있음이다.
하지만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어야 할 국가보안법이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활개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는 작년과 올해 사회주의노동자연합, 남북공동실천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그리고 최근의 사회주의노동자신문까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탄압하고 있다.
또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의 불법적인 민간인 정치사찰은 어떠한가. 최근에는 경찰이 집회·시위와 관련해 입건된 이들을 전산 기록으로 별도로 관리하고, 가족의 집회·시위 경력까지 연계해 관리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야말로 공안정국, 아니 공안천국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부터 대다수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삽질정책’과 ‘불통정치’로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왔다. 그러나 경제공황 속에 내몰린 노동자민중의 ‘살고싶다’는 외침에 대응하는 방식은 경찰병력과 법적처벌을 동원한 강력한 탄압을 통한 공안통치 외에는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계속해서 이러한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행사한다면, 당장의 저항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더 큰 저항과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 국민의 상식을 거스르며 시대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독재망령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임시국회나 정기국회를 보도하는 뉴스의 한 장면! 국회상임위원회 회의장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의장석을 점거하는 국회의원들의 폭력 장면. 소화기와 쇠망치를 들고 회의장 문을 때려 부수는 장면. 그러한 폭력에 희열을 느끼거나 조소를 보냈던 국민들은 앞으로 국회의원들의 폭력적인 저항 대신 카메라 불빛에 반짝거리는 경찰의 철모와 군홧발의 폭력을 뉴스의 주요 장면으로 볼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회선진화라는 이름 아래 ‘국회폭력방지법, 국회질서유지법’을 제정하고, 상시 국회와 상시국정감사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국회법을 개정하려 한다. 한나라당은 국회의원들에게 폭행, 협박, 점거 등의 언행을 금지시키고, 필요한 경우에 국회 안에서 경찰의 호위를 받으면서 입법 활동을 하겠단다. 그들은 정당의 지지 세력을 위해 물리적으로 저항하는 국회의원 대신 경찰을 그 자리에 세워놓고 보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품위를 유지하겠단다. 국회가 이제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한 ‘정치의 사법화’를 넘어서서 검찰과 경찰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수사화’로 나가고 있다. 감시와 체포가 국회에서도 일상화된다. 한나라당은 장기독재체제를 수립하겠다는 자신감 때문인지 되돌아올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찰과 검찰은 이제 입법권조차 장악할 그 날만을 꿈꾸고 있다.
폭력을 단세포적으로 말하고 있는 그들이 참으로 경이롭다! 정말로 그들답다. 국민의 대표권을 경찰과 검찰에게 내주는 폭력, 소수만을 위해 법을 제?개정하는 폭력, 언론을 장악해 국민의 의식과 행동을 조작하는 폭력, 그리고 국민들의 자주적인 단체활동을 억압하는 폭력. 국회법 개정안에선 그 폭력이 하늘을 찌른다. 법을 제?개정하는 과정에서 공청회조차 없애겠다는 폭력, 국민의 알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하겠다는 폭력, 행정의 코드 아니 이명박 정책의 코드에 맞추는 국정감사를 일상화하겠다는 폭력, 그리고 국회의원을 국회 안에 가두거나 다수당의 입법의지를 일상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상시 국회제도의 폭력 앞에 그저 전율을 느낄 뿐이다.
국회 선진화는 국민에 대한 국회의 폭력을 없애는 것부터 시작한다. 후진 기어를 넣고서 KTX의 속도로 폭주하는 것은 그저 엔진을 폭발시킬 뿐이다. 언제든지 국회를 폭발시킬 수 있는 힘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국민은 고대 아테네 사회에서 국회의원들을 국민이 기소?심판했던 ‘비합법성 기소제도’로 국회폭력을 없앨 수 있다. 국회에서 새롭게 제?개정한 법이 다양한 방식으로 국민을 억압할 경우, 직접 선출된 국회재판 심판원들이 ‘국회의원 긴급 체포권’을 발동하여 그러한 법을 제?개정하는데 찬성했던 국회의원들을 체포?기소한다. 국회재판 심판원들은 그들을 심판하고 진짜 ‘평화학교’에 강제로 입교시키면 어떨까! 또 다른 방안도 있다.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각종 특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면책특권부터 없애기 시작하여 포켓머니로 받고 있는 연봉 3억 원 가량도 없애 버린다. 무료 봉사하는 국회로 만드는 방안이다. 대신 국회의원에게는 후원자의 명단과 후원금의 액수가 철저하게 공개되고 검증되는 후원제도로 생활을 유지하게 한다면, 그것이 바로 국회의 진정한 평화이자 선진화이다.
작년 6월, 이순신 장군께서는 이게 무슨 난리냐 하셨을 게야……. 왜적에 맞서 청와대를 지켜 내려는 듯 어떤 날은 촛불투쟁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듯 했지, 하지만 명박산성 뒤에 갇혀계시는 장군님을 뵈니 참 면목도 없고.... “저 분이 왜 저러시나” 하기도 했어 ……. 그해 미친소 수입반대 촛불거리에서 1000여명이 시민 병사들이 잡혀갔다고 하더군. 나도 집시법위반과 일반교통방해라는 죄명으로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이 날아들었고 공소사실거부와 함께 피고인 소환장이 날아들었지, 온몸에 태극기를 감고 뛰어들어 구호를 외치던 열혈 고등학생 덕에 얼떨결에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되었지만 그 덕에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어……. 지금은 이순신 장군이 아이라 세종대왕을 모셔 놓았다더군. 정작 세종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참 모진 놈 만나 내 이 모양 되는구나” 많이 섭섭하지 않으셨을까? 후손들에겐 두 분 다 훌륭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분들이지만 앞으로 대왕세종을 어떻게 뵈어야할지 ......, 지혜를 주시압!
시기에 대한 조급성을 버리고 투쟁을 조직해야
이승에서 인연을 마감한 다섯 분의 열사들이 한해의 3분의2가 넘도록 저승으로 향하지 못하고 구천을 맴돌게 하는 건 어떤 경우에도 납득하기 어렵다. 긴 고통이 누적되어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유족들은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못한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나 열사들에게 ‘살인죄’라는 누명이 씌워졌으니, ‘누명을 벗겨야한다’는 강박관념과 ‘장례를 치러드려야 한다’는 심적 압박으로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다.
앵무새는 아니길 기대했지만
정운찬 총리가 용산 남일당 분향소를 찾았다. 총리 방문에 대해 몇 가지 우려하는 바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범대위는 용산학살에 대한 성격규정을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이명박정권 퇴진’을 걸고 책임자처벌과 진상규명, 철거민의 생존권 등의 요구를 걸고 투쟁해왔다. 따라서 총리가 참사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고, 학살의 본질을 왜곡한다는 우려와 비판이 있었다. 그럼에도 추석명절을 맞고 9개월이 임박하는 시기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유족들의 처절함과 간절함 또한 외면할 수 없다는 점들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정운찬 총리가 학살현장에 와서 면담한 내용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보다는 이명박대통령의 앵무새 역할을 벗어나지 못했고, 양심과 개혁의 참신함으로 치장한 그는 결국 참과 거짓의 갈림길에서 결국 거짓을 선택했다. ‘중앙정부가 용산참사 해결의 직접적인 주체로 나서기는 어렵다는 입장’이었고 ‘정부가 당사자 간 대화를 주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 게 유족들에게 위로삼아 한 말의 요지였다.
오리발도 정도 것 내밀어라
정운찬 총리의 ‘중앙정부 제3자론’은 결과적으로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말았다. 용산재개발로 생존의 벼랑에 서서 망루로 올라가 생존권을 요구했던 철거민들에게 ‘경찰특공대투입’을 명령하고 지시함으로서 참사가 발생했고, 3천 쪽을 숨긴 채 진행되는 재판에서도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데 참사의 당사자가 제3자인 양 행세하는 건 국가권력을 장악한 그들이 꺼낼 오리발치고는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어쩌면 정운찬 총리에게 일말의 양심을 기대했던 유족과 범대위가 어리석었는지 모른다. 이명박정권의 첨병을 자처한 그가 이명박정권의 공안탄압과 민중억압기조를 바꾼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웠으니 말이다. 현재의 상태에서 만약 총리가 용산학살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낸다면 그건 순전히 왜곡된 형태의 해결방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철저히 이명박정권에게 역사적 면죄부를 주는 선에서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범대위의 요구는 하나도 수용되지 않았음은 물론, 요구할 자유조차도 봉쇄됐다. 용산학살 이후 추모제, 문화제조차도 모조리 불법으로 규정하고 모이기만하면 협박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요구는 늘 구석진 곳에서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탄압은 이명박정권이 용산문제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전열을 재정비해야
용산참사투쟁에는 형식적으로 모든 진보, 변혁세력이 함께하고 있는 역사적인 투쟁이다. 시기에 대한 조급성을 버리고 투쟁을 조직해야한다. 참과 거짓이 너무도 명백한 이 투쟁에 승리하지 않고 ‘반MB전선’, ‘사회연대전략’은 그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추석이 지나도록 용산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큰일이다’라는 유족들이 내 뿜는 한탄의 목소리가 가을바람을 타고 가슴을 짓누른다. 추석이 끝났다. 그러나 용산학살은 담담하게 남일당 주위에 긴 아픔에 여운을 드리우고 있다. 누적된 아픔을 분노로 모아내고 진보, 변혁진영의 자존심을 걸고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하여 위력적인 투쟁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임무일 것이다.
이명박정권이 ‘제한적 개헌론’을 들고 나오면서 개헌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러한 발상은 너무 많은 의제를 다루면 개헌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취지라고는 하나 결국 핵심은 ‘권력구조문제’를 중심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 내각제 개헌이 제기되고는 있으나 자유주의 야당들 또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5년 단임제의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이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일부 진보정치세력들이 사회권 의제 등이 개헌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가 있다. 법, 특히 헌법을 고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그것은 주권자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민주주의 시스템 제고에 있다. 이것은 그 어떤 정치세력도 명시적으로 부정하지 못하는 원칙이다. 그렇기에 개헌 의제들 또한 이런 맥락 위에서 차분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예로 4년 중임제 개헌을 하자는 핵심 이유는 5년 단임제가 정책을 계획하여 일관되게 추진하기에는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과연 합당한 주장인가. 우선 단임제이든, 연임제이든 선거를 통한 재집권은 주권자에게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또한 연임제로 개헌을 한다고 기존의 집권정당의 재집권, 즉 연속성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연임제로의 개헌이 정책의 일관성 및 책임성을 반드시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연임제 개헌이 마치 5년 단임제 문제를 풀 수 있는 매듭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지금 이 사회가 직면한 난제의 근원을 호도하는 것이다. 핵심은 헌법 때문이 아니라 대중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는 보수독점의 사회정치시스템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기존의 개헌 논의가 인민의 자기지배 제고라는 차원에서 숙고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지금 개헌논의 흐름이 대통령제를 전제로 진행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제와 내각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 제도인지는 아직 증명된 바 없다. 이것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에서 ‘위임민주주의’, 즉 선거독재가 횡횡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명박정권이 그 좋은 예 아닌가.
그렇다고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로 개헌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포함한 법, 제도의 변화는 ‘인민의 자기지배’에 기여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다시 환기시키고 싶을 뿐이다. 이것은 개헌논의의 장이 기존의 비대칭적, 억압적 사회관계들을 온존시키고자 하는 수구 및 보수정치세력, 대중으로부터 분리된 관료들의 힘을 제고시키기 위한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주민자치, ‘국민소환’, ‘국민발안’ 등 ‘주권자의 대표성’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제가 설정되도록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 헌법에 보장되어 스위스 민주주의 기초가 되고 있는 수 천 개의 지역 꼬뮨들, 그리고 독일의 비례대표제 등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바로 거기에 ‘인민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대사의 혁명 브리핑
10월 10일 한신대. 주한 베네수엘라 대사 볼프강 곤잘레스가 차베스집권 이후 지난 10년간 베네수엘라의 변화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09년 10월 10일 한신대에서 베네수엘라 대사와 학생들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등 2009년 혁명의 ing를 알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 자리는 얼마 전에 진행된 『대학생과 함께 하는 대안사회 이야기』에서 호주의 사회주의 활동가 크리스가 한국 학생들과 베네수엘라 대사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기로 약속한 데서 가능하게 된 것이다.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 베네수엘라 대사는 ‘차베스’와 생김새가 많이 닮아보였다. 먼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베네수엘라 혁명과 관련된 영화를 설명해 주고, 함께 보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 2002년에 벌어졌던 보수세력의 반란에 대해 생생하게 보여준 다큐멘터리였다.
이후 베네수엘라 혁명이 일어나게 된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혁명의 ing’가 그려졌다.
“세계 4위의 산유국임에도 그 이윤은 소수의 상층부에게만 돌아가고 다수의 민중들은 가난에 허덕여야 했던 상황에서 민중은 다른 사회를 요구할 수밖에 없었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민중들의 투쟁의 결과, 차베스를 당선시켰고, 이후 다른 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혁명 이후에 불평등 지수가 점점 낮아졌고, 가난에 허덕였던 민중들의 삶이 나아지고 있다.”
베네수엘라 대사는 “현재에도 혁명은 계속 진행 중에 있다”라는 얘기를 강조했다. 대사의 이야기가 끝나자, 많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차베스 이후 혁명을 이어갈 주자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헌법 부결된 이후에 어떠한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한국의 20대들은 엄청난 실업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보면 어떠한지” 등등 생생한 질문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야만의 사회를 민중의 희망이 있는 사회로 만들어낸 베네수엘라의 혁명 이야기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가능성과 자신감을 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이번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 또 다른 만남의 자리를 통해 이 시대 혁명의 가능성을 꿈꿔보는 자리들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28년 전, 지구상공에 외계비행물체가 떴다. 우습게도 그 곳은 뉴욕, 워싱턴, 런던, 도쿄가 아닌 남아공의 요한네스버그였다. 가장 열악한 제3세계 국가에 불시착한 외계인들은 “PRAWN”이라 불리며 쓰레기더미에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포식자로 살아간다. 열악한 처지에 있는 그곳의 원주민들도 이 외계인들을 등쳐먹고 무시하지만, 외계인들은 견뎌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28년을 그 곳에서 살아가도 그들은 지구상의 성원이 아닌 ‘외계인’이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카메라 앞에 앉아 연신 싱글벙글대며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는 MNU(외계인관리소)에 장인 덕에 초고속 승진을 한 비쿠스라는 사내다. 비쿠스는 이번 제한구역 9에 사는 외계인들을 다른 지역으로 철거하는 사업의 총책임자다. 그런데, 비쿠스는 덜렁대고 큰소리 한 번 제대로 못치는 못난이다. 하지만 유독 외계인들에게는 강경한 어조로 철거통보서에 사인을 강제로 하게 만든다. 외계인의 아이들을 죽이면서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팝콘터지는 소리같다고 즐거워하기도 하며, 저항하는 외계인에게 총을 들이댄다.
한편 비쿠스는 철거 과정에서 외계물체의 액체에 노출된다. 그때부터 그는 외계인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의 장인은 비쿠스를 사위가 아닌 실험용 외계인으로 대한다. 비인간적 고문과 학대를 비쿠스의 장인은 카메라를 통해 무표정한 얼굴로 응시하고, 피부와 뇌, 심장을 꺼내 실험하겠다는 MNU 의사의 말에도, 살려달라는 사위의 목소리에도 무표정하게 걱정말라는 거짓된 위로의 말만 남긴다.
살기 위해 MNU를 탈출한 비쿠스는 결국 외계인거주지역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탄압하고 겁박한 외계인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자신이 몸담았던 MNU와의 투쟁을 시작한다. 그의 주변에 모든 인간들은 그를 손에 넣어 죽이거나 실험하려고만 했다. 오로지 그에게 도움을 주고 그와 동지애를 나누는 건 외계인밖에 없었다.
그가 인간이 되는 희망을 버리고 살아가는지, 아니면 외계인으로 사는 것을 만족하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인간이었을 시절에 그리워하는 건 단 하나, 그의 부인을 생각하며 쓰레기더미에서 꽃을 만들어내는 장면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감독은 결국 같은 인간이라해서 모든 인간에게 인류애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결국 착취자가 피착취자를, 피착취자 또한 누군가를 착취하려고 든다는 경고를 하는 것은 아닐까. 용산사건, 쌍용자동차가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다가올 거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하고 슬펐다.
우리는 외계인이 아니며, 언제든 외계인이 될 수 있거나 그와 다름없는 처지가 될 수 있음을 잊고 살아가거나 잊고 싶어 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외계인들은 투쟁하는 노동자, 철거민, 이주노동자, 빈민이다. 그 많은 숫자에도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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