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 등록일
    2006/02/09 01:56
  • 수정일
    2006/02/09 01:56
  • 분류

(2/9) 아 슬프다 마태수난곡 제78장을 들으려면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하는구나.

버림받은 애처럼 울었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나 책읽을 때는 긴지와, 겐지와 대등한 자유의지가 고양된 인간이라고 스스로 여겨서 온갖 기존의 단어를 피해가며 단단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는데, 결말이 어떻게 되든 자기혐오와 연민의 뒤엉킨 굴레만큼은 확연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내장을 쥐어짜내며 버림받은 듯 울어댄 것은 겐지를 구원이라고 여긴 것이고 보기 좋게 어긋나서 기만당했다고 배신당했다고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이었다. 휴우 삽질의 변주 형식이 너무나 그럴싸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고양되었다는 착각을 해댔지만 기만당했다고 외치며 가슴에 더 큰 구멍이 뚫리고 그게 아니었어,라고 긴지의 전생애를 부정해서가 아니라 나를 부정당했다고 울먹이는 건 역시나 자기연민 딱 그것뿐.

 

내 죄가 아니지만 나의 죄인 것, 그 시점부터 전혀 모르겠어. 그게 뭐야? 니 죄는 니 죈데 왜 내가 짊어져야 아니 도대체 어디부터 자유의지인지 모호해지고 결국은 자유의지도 악도 긴지도 작가 스스로도 전부 부정해 버리는 것 아닌가. 인터넷을 미친듯이 뒤진 건 작가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대체 그 비루한 부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정말 모르겠어서. 죽음도 선에의 의지도 다 받아들일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내 악업을 부정할 수가 있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다른 그럴싸한 단어로 환희하다 뒷통수 얻어맞은 지금 꼴이 우습고 꼴좋다, 결국 또 남한테 구원받으려고 했지 한심한 인간. 그래 지금 합창을 아무리 들어도 하나도 경건하지도 않다. 인간적인 경건함? 웃기시네.

 

아 그래도 글로 쓰니까 조소하는 게 이거 안 되겠구나 싶다. 쓰길 잘 했네. 예수는 아버지 왜 나를 버리냐고 울부짖었다. 참혹한 최후다. 긴지는 무위자연같은 인간영혼최상의 상태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전생을 부정하고 떠난 긴지를 지금 와서는 도저히 예수보다 악으로 충만한 인생이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 소설가는 질문을 던질 뿐이다. 나는 그가 이런 대답을 던졌다고 왜 절망하고 지랄?? 소설가의 태도로 봐서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서 인터뷰 전문을 찾아 보려고 한 건데. 그러면 모든 것은 나의 오독? 애시당초 첫 장부터, 책에 빨려들어가느라고 앞뒤 재지 못한 아악 이런 또 전부 내 탓이라는 식의 잘난 결말은 집어쳐~~~

 

씁. 생각은 진전이 없지만 기분은 나아졌다.



(2/2)누군가의 글을 읽고 눈에 눈물이 맺히면(흐르진 않고) 그 글을 쓴 사람은 이미 죽었을 거라는 강한 확신에 사로잡힌다. 아니 영화도 마찬가지. 너무 늙어서 죽어 버렸을 것 같다. 근데 대부분 안 죽었고, 그 사람 생각할 때마다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헛갈린다. 쓰다보니 베리만이 죽었던가 말았던가 궁금하네.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은 한 편도 안 읽었으면서 흥

 

어제 소설가의 각오를 좀 읽었다, 부분부분. 이 노인네... 아니 청년 시절부터 완고한 노인네. 너무 좋아,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아서기도 하지만(사소설을 싫어한다, 대충 사는 사람을 싫어한다) 소설에 대한 경외감같은 게 느껴져서, 한국어판 서문을 예전에 읽고 역시 눈에서 땀이 났다. 일단은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소설을 읽어봐야지.

 

아,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언급이 좋았음. 그의 할복을 유아적 망상이라 하는 것도 좋았다. 왜 미시마의 문체가 조잡한지는 모르겠지만;

 

(2/7)

당신은 두려움없이 혼자이다

버림받아서 홀로 서라고 떠밀린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혼자이다

아아 그게 아름다워서 나는 마구 달렸다.

결국 힘들어서 걸어왔지만;;

 

아아 당신을 보며 나는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고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거나 자기 연민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것보다 좀더 확실히 그러니까 당신과 같이 혼자이겠다는

마치 늙은 거북이처럼 말이다.

그런 마음이 샘솟았다.

 

하지만 마음에 눌러붙은 미련, 게으름, 자기연민, 자기혐오

아아 그래도 당신이 있어서 나는 좀더 다른 내가 되고.

그리고 좀더 달라진다. 나는 현재형이다 나는 긴지이고 겐지이고 푸하하

 

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를 읽었다

 

(2/8)무지개여 모독의 무지개여

오늘 낮까지 의지로 충만했건만 다리가 턱턱 꺾였다. 그러니까 왜 격렬한 긍정이었던 자신을 부정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마치 계단을 올라서듯 이전 단계와 절연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왜 전생애를 부딪혀온 문제를 부정당해야 하는가!

 

나는 마루야마 겐지에게 전생애로 화답할 수 없더라도 별거아닌 하루하루로라도 어떻게든 대답하고 싶었다. 근데 지금은 모르겠다. 검색을 해도 왜 이 책 서평은 없다. 자기부정의 출발점도 자유의지였으나 그조차도 못미덥다. 정말 힘빠진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