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원래 '미녀 시리즈'였던 카테고리가 추억팔이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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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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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벼

회초리를 든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얘기를 들으며 동전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엄마 말씀의 취지는 알겠는데 나는 왜 그런 비유가 사용되는지 이해가 안 갔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니 입학하고 난 뒤 몇 년 동안도 엄마는 엄마 허락 없이 절대로 신호등을 건너가지 말 것을 명령했었다. 나중에 길 건너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다니게 된 뒤에는 "엄마 미영이네 집은 신호등 두 번 건너야 돼"라고 말하고 허락을 받는 반쯤 해제 상태가 됐었는데,

 

그때 여섯살인지 일곱살 때, 분명히 엄마가 신호등을 건너지 말라고 했지만, 그때 무슨 풍악댄지 뭔지가 지나가니까 신호등이 깜박거렸든가 꺼졌든가, 아무튼 차가 안 다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풍악을 울리는 사람들을 쫓아서 신호등을 두 개나 건너 멀리 가버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 통제가 이미 끝나서 신호등을 건너 왔어야 했는데, 그 얘길 내가 직접 한 건지 누가 제보를 한 건지 엄마가 봐버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 말씀을 어기고 길을 건넜다는 데에 대한 추궁에, 나는 나름대로 그건 말씀을 어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항변을 했던 것 같고, 그때 엄마는 벼 얘기를 꺼냈다. 그뒤로 벼 얘기는 엄마가 날 혼낼 때 쓰는 주된 레파토리였다.

 

그전까진 신호등을 절대 건너지 않았었고, 한번은 엄마와 언니에게 너무 화가 나서 내복입은 채로 그때 가장 소중했던 접으면 007가방이 되는 오르간?같은 걸 들고 가출을 감행했다가 신호등 앞에서 이걸 건너면 엄마한테 혼나는데...하고 쩔쩔 매다 그냥 집에 돌아간 적이 잇었다. 엄마랑 언니는 내가 나갔다 왔는지 어쨌는지 관심도 없었다-_-

 

중학교 땐지 초딩 고학년 땐지, 엄마가 안방 문을 열어놓은 채 놀러온 친구랑 대화하며 나에 대해 "쟤는 애가 외골수라 걱정이야"라고 말하는 걸 듣고 국어사전을 찾아봤었다. "외골수"라는 말은 없고 "외곬"이라는 말이 있었다. 엄마는 항상 날더러 너는 융통성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난 내가 왜 융통성이 없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갔었고, 아니 융통성이 뭔지 자체가 이해가 안 갔었다. 지금은 내가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백권짜리 문학전집을 사왔는데 앞에 60권 정도가 소설 요약류였고 뒤에는 위인전기였다. 위인전 읽는 거 진짜 싫어했지만 그걸 다 읽어야 아빠가 자전거를 사준댔나.. 뭘 걸어서 기를 쓰고 끝까지 다 읽었는데 다 읽으니까 갑자기 독후감을 다 써야 사준다고 해서 집어쳐 버렸었다. 암튼 그 위인전 중 다윈은 정말 인상깊게 읽어서 엄마한테 <종의 기원> 사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사줘서 내가 과학자가 못 됐쟈나< 그때 겨우 그 다윈 전기 읽고 창조론은 잘못됐고 진화론이 맞는 거라고 떠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막 신을 부정하고. 그런 나랑 입씨름하던 같은 반 애가 자기 교회 선생님이 너를 와보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길은 안 건너는데 굉장히 멀다고 생각했던 그 교회까지 갔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예배당 그 기다란 의자에 선생이란 자와 둘이 앉아 대화를 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겨우 초딩용 위인전기에서 읽은 진화론을 떠드는데 그 사람은 말문이 막혀서 허 참 허 참 그런 게 아니란다 허 참 이러다가 가보라고 했다. 어른이라는 존재에 권위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못 해본 때부터 권위라는 상이 깨졌다. 어른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좀 도취되기도 했었다. 교회 깨기...< 근데 그 뒤에 달란트 떡볶이 먹으러 다른 교회 잘만 다님ㅋ 정말로 레알 목사님인지 뭔지 앞에서 하는 얘기는 귀에 한 글자도 안 들어왔었다. 예배 시간에 앉아서 주구장창 딴생각을 했는데, 그전에 언니가 먼저 교회를 다녀서 교회 장날같은 때 따라갔다가 달란트로 사먹는 떡볶이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긴 시간 인내하며 교회를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느므 귀찮아서 안 간 날 교회 쌤이 샌드위치 사줄테니 오라고 해서 밥도 굶고 갔더니 안 사줘서, 다시는 안 갔따 뭐야 찐따같애 ㅋㅋㅋ

 

 

나는 이런저런 모든 얘기를 엄마한테 가감없이 전부 다 얘기했었는데, 엄마가 다른 사람들한테 내 얘기를 다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얘기하는 게 좀 꺼려졌다. 나를 끔찍하게 예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있는 한편, 내 비밀을 천지사방에 누설하고 다니는 엄마가 있었다 -_- 나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오만방자하다고 혼내키던 엄마, 남자애들이랑 싸워서 지지 말라고 싸우는 법을 알려주던 아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냄새라든가 풍경. 가끔씩 아 이 별것도 아닌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딴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까먹었고 몇 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장면, 문방구 옆골목으로 보인 하늘같은 거. 흐려져서 그때 본 게 확실히 그건지는 모르겠는데 꿈 속에서 보듯이 그런 느낌적인 그런 거.

 

그런 게 있다는 거다<

 

소설 [상실의 시간들]을 읽으며 왠지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좀 참다가 몇 개만 써봤다. 하나만 더 쓰자< 우리 엄마가 짱깨집을 할 때, 안방에서 늦은 시간에 티비를 보는데 남자가 여자의 목을 잡아 뽑았다. 여자 목이 땅에 나뒹굴며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다. 그게 너무너무 무서우면서 웃겼다. 갑자기 그게 생각났엌ㅋㅋㅋ 본래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장면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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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 살던 고향은

♬나의 사알던 고향은 인천 교도소~

란 노래가 있었다 ㅋㅋ

 

나의 살던 고향 말고 1세 때 이사와 주구장창 살아온 내 고향은 부평!!<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에 오래 살았던 그 집 주소가 갑자기 떠올랐어 -ㅁ- 주소를 기억할 줄이야 ㅇ<-< 인천시 지도포털 보다가, 옛날 위성 사진 보는 게 있어서 신기하게 보다가 나의 살던 집을 찾아봤따 ㅠㅠㅠㅠ 아놔 나 지금 너무 감동했어 ㅇ<-< 나 타임머신 탄 느낌이야 엉엉엉엉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빨간 집이 우리집이다 ㅇ<-< 1994.2.28 ~ 11.24에 찍은 거라는데 그게 언제야... ㄱ-;; 여튼 내가 저 초등학교를 다녔고(하지만 94년엔 초딩이 아님-ㅅ-) 저 빨간 테두리에 2000년대 초반까지 살았다. 엉엉엉엉 저 안에 돌아가신 엄마랑 외삼촌이 들어있었을 거 아니냐긔... 대낮이라 일하러 갔을라나..-_- 엉엉 그럼 우리 외할머니라도 들어 있겠지 우리 외숙모랑,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수미랑... 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들어 잇을 수도 있고 ㅠㅠㅠㅠ

 

무슨 옛날 집 사진 없는 것도 아니고 위성 사진 찾고 이러고 있냐. 근데 나 너무 감격해서 당장 아빠집 가서 옛날 집 앨범 보고 싶을 정도임. 우리 옛날집... 동네에서 단풍나무집이라고 불렀는데 ㅠㅠ 총 3층이고 1층은 반지하, 반지하엔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수미가 살았고 2층엔 우리 가족이, 3층엔 세를..< 우리 집이 3층에 세들어 살다가 집을 사고 2층 주인집이 3층으로 세들어 사는 그런 형국이었다<

 

여튼 이 집을 산 우리 부모님은 명실상부 중산층의 반열에 들어서며 집안 인테리어를 어찌나 촌스럽게 전형적으로 꾸며놨던지 ㅋㅋㅋㅋ 그때도 납득이 안 가던 장식물들이 좀 있었는데 ㅋㅋㅋㅋ 막 시커먼 가죽 소파, 무겁고 진한 갈색의 원목 탁자, 대리석빛(대리석이 아니고 빛이다) 주방, 커다란 실내용 화분, 알 수 없는 서예 액자, 역시 알 수 없는 도자기, 피아노, 아르누보삘의 안방침대, 커다란 텔레비젼, 커다란 괘종시계, 수족관, 그 와중에 왜 가족 사진 안 걸어놨었나가 의문이네 ㅎㅎ 이미 60-70년대 영화에서 보여주는 중산층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한, 시대착오적인, 중산층의 미학을 싸구려 복제한, 엄마와 아빠의 낭만이었던, 그런... 그런 집. 갑자기 내 방은 차고 위라서 매 겨울마다 얼어 죽을 것 같았던 게 기억났다... ㄱ-;;;

 

아 졸린 나는 갑자기 향수에 젖어 이러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추억은 생략한다< 다음에 아빰 만나면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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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

과거의 기억이라는 말은 정말 얼마나 말같지도 않냐고 미래의 기억이면 괜히 주위를 환기시키기나 하지 기억이 과거를 기억하지 뭐 당연한 걸 제목이라고

 

뽑음< 추억팔이...랑 암 상관 없이

 

아 이런 거 써도 되나????!!!! -_-;;;;;

 

대박 충격받았다 고등학교 때 수학을 잘 했단 말이야 왜 잘 했냐면 새로 부임한 남자 수학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ㅇ<-< 가서 질문하면서 선생님 시간을 오래 뺏으려면 어려운 문제여야 했고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 위해 많은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것이다... ㄱ-;;;;

 

그렇게 좋아했는데 아 새록새록 기억나네 -_-;;;; 여자 고등학교에 젊은 남자 선생님은 흔치 않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겁나게 좋아했는데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근데 부임한 해에 바로 결혼함 

 

아 근데 이런 거 아무리 그래도 쓰면 안 되겠따. 그냥 선생님에 대해 충격적인 얘길 듣고 -_- 왠지... 그 나 서태지 안 좋아한지 하아아아안참 됐는데도 서태지가 내가 빠슌질 하던 바로 고 시기에 결혼 중이었다는 거 알고 배신감으로 기운이 쑤욱 빠져서 키보드 위에 엎드려 있었음 그런 느낌으로다가.... 뭐 당시에 쌤에게 일이 있었단 건 아니고; 나는 그 때 선생님 결혼하고 신혼여행 간 날 밤에 티비로 [양들의 침묵]을 보는데 머릿속에선 선생님은 지금 이 시각 ㅅㅅ하고 있겠지-_-로 가득 차서 영화를 전혀 못 봤는데 그게 나의 순정인데<

 

여튼 무서운 세상이니까 더 쓰지 말자. 물론 인터넷에 아무 것도 없다 글찮아도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ㅋㅋㅋㅋ 유명인도 아닌데 당근 없긔.. 암튼 괜히 싱숭생숭하네 그와 별도로 집에 오는 길에 간만에 시를 한 수 지어 흡족하다 

 

갑자기 다시 그 명언이 떠오른다. 나는 선생이고, 너는 학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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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인형

신혼집으로 내 짐을 옮겨야 하는데 내가 안 싸니까 아빠가 막 싸서 막 옮김. 그 중에 중딩때부터 모은 편지함을 버린 줄 알았는데 집에 있었다!(중딩까지 모은 건 엄마가 실수로 버림;) 아침에 아빠가 짐싸며 흘린 만화책 없나 할머니 방에(*옛날엔 내 방) 살피러 들어갔다가 기타 피스랑 묶어놓은 걸 찾았다.(아빠가 내 만화책 두 권을 책장 받침용으로 무단으로 사용한 걸 발견했다. 다행히 내가 버릴 책들이기에 망정이지 용서못해 글치 않아도 책이 조금씩 없어진 거는 아빠가 어디서 흘리거나 이런 식으로 써먹은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는데 아빠는 그 두 개만 한 거라고 발뺌<)

 

아무거나 꺼내서 두 개 읽어보았는데 하나는 짝꿍이 짜증내서 미안하다, 네가 그렇게 말해서 깜짝 놀랐다, 꼭 화풀고 답장해라 물어볼 게 있다는 거였고 다른 하나가 두 사람 관계에 대한 거였다. 그러고보니 걔에 대해서 쓴 적이 있을 것 같은데..

 

언제 같은 반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편지 내용을 살펴보니 고2때부터인 것 같긴 한데.. 수능 몇 주 전부터 전주까지 며칠간 써서 보낸 편지였다. 같이 영화 보고 얘기하는 유일한 친구였다. 각자 티비에서 해준 <졸업>을 보고 다음날 달려가는 마음으로 만나서 열정적으로 얘기했던 게 떠올랐다. 서울로 영화도 보러다녔던 것 같은데.. 그런 퀴퀴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대해 걔가 많이 얘기해줬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의 내 영화 보기는 걔랑 피씨통신 영화채팅방으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이젠 기억도 잘 안 남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는데라고 쓰고 이름이랑 영화라고 검색해봤는데 없긔

 

다른 친구들이 나를 독점하려고 든 데 반해 얘는 나에게 매우 쿨하게 굴어서 약간 해방감을 느꼈었는데 어느날 다가와서 자기에게 솔직해지겠다며 나를 꽉 끌어안고 너무 좋다고... 스스로가 변한 자기자신에게 적응하지를 못 하다가 혼자 멀어졌다. 수능 끝나고는 대학 때문에 바빴던 걸까, 수능 전에 편지 받은 기억도 없지만 끝난 뒤 얘와의 관계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렇게 갑자기 나를 솔직하게 좋아하기로-_- 한 기간 중에 쓴 편지였다. 거기에 엄마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네가 유리인형같다, 네가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인 걸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 같다 뭐 그런 얘기가 적혀 있었다.

 

내가 유리인형같다는 얘기를 들었었다니... 웃기다. 엄마가 돌아가신 건 1년 전인데 그럼 1년이나 나를 유리인형으로 생각했던 거늬... 그 때 얘 마음을 무심히 지나쳤던 건 내가 사랑받는 데에 너무 익숙해서였을까 아니면 내 불행에 붙들려서 나밖에 생각을 못해서였을까? 편지에 관계가 역전이 된 것 같다는 말이 있는데, 확실히 나는 무심했던 걔를 좋아했고 나를 좋아한다고 전격 고백한 뒤에는 관심이 식었던 것 같다. 아, 너도. 너와의 관계도 특별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사랑받는 데에 익숙한 미친 여고생이었음 여담이지만 지금 예비남편도 무심한 것에 반했다. 그러고서는 끊임없이 관심을 표명할 것을 지치지도 않고 매일 요구함... 이젠 미친 여고생도 아닌데<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가끔 회상하고는 하는데 대체로 예쁜 애들... 그래서 카테고리 제목도 미녀 시리즈라고 지었었는데... 어떻게 얘를 별로 회상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신기하네. 스티커 사진집 어쨌더라... 찾아봐야지 얼굴이 잘 기억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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