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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1
    현대차 정규직의 자녀 우선 채용 단협안을 보고.(6)
    뎡야핑

현대차 정규직의 자녀 우선 채용 단협안을 보고.

예전에는 자본과 국가가 점점 사람들을 못 살게 굴고, 사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부당하게 각종 탄압받고, 그러면 사람들이 아! 이건 아냐 하고 달라질 줄 알았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쉽게 짤리고 그러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 이건 아니다 나도 위험할 수 있다 이건 막아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자기가 정규직이라도 비정규직 투쟁을 당연히 할 줄 알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십 몇 년 전에는 나는 차별받는 사람들은 어느 맥락에서도 다른 이를(사람+동물) 차별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인간을 평면적으로 바라본 명백한 오류이다. 그래서 장애 운동 집회에 갔을 때 여성 장애인이 여전히 장애여성이 커피를 타고(!) 설거지를 한다는 발언을 듣고 큰 충격을 먹었다. 그거랑 그건 다른 얘긴데, 사람을 몰개성적으로 바라봐서일까,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일까? 장애남성이, 그것도 활동가가 그냥 그런 가부장과 별다를 바 없다는 데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얼마 전에도, 불과 십 년 전까지도 활동가들 중 여성들이 컵을 씻는 일을 담당했고 나이 든 남성 활동가에게 술을 따라야 하는 일도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이 얘기가 충격인 것은 어느 것 하나,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당연한 것이 없구나, 모든 것이 투쟁의 성과구나, 이 점이 충격적이었다.

 

사회가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치고 다른 이의 삶을 배려할 것이라는 나의 기대는, 최초에 누군가에게 얘기를 한 순간부터 언제나 나를 배신했다.

 

우리 아빠의 불안을 보면 흥미롭다. 아빠는 앞으로도 먹고 살 만큼은 돈을 벌었고 연금도 나온다. 그러나 끊임없이 불안해 하며 끊임없이 돈을 벌기 위해 애쓰고, 돈 못 버는 자식(나)을 너무너무 걱정한다(걱정의 얘기는 돈 못 벌어서 한심하다가 주를 이루지만,) 그 불안함의 근저에는 국가와 사회가 자신을 삶의 안전을 전혀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삶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지금 돈이 있어도,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온갖 수단을 써서 돈을 버는 거라고.

 

나는 심지어 기업의 보험은 보이콧할 생각이었는데, 내 명의로 보험도 3개나 가입되어 있다. 그 중 하나는 심지어는 80살이 넘으면 그때 보험금이 연금으로 나오는 거다. 내가 나의 의사에 반하는 아빠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던 건 우리 사이의 여러 이유가 있기도 하지만, 아빠의 불안함을 내가 조금도 해소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같이 뉴스를 보다가 물가가 올랐다는 뉴스에 아빠가 나를 또 긁었다. 물가가 저렇게 오르는데 무능력자인 너는 어떡하냐고 -_- 몇 년이나 그냥 조용히 대응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조금만 말했다. 아빠, 물가가 저렇게 오르는 걸 막으라고 국가가 있는 거라고.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개인들도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고. 그것을 각 개인의 무능력한 문제로 얘기할 수 없는 거라고. 아빠는 오랜만의 나의 반격에 잠시 벙쪘다가 국가가 왜 그런 걸 하냐고 다시 국가불신사상을 드러냈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오랜 시간 한나라당 지지자였다가 국가가 자신을 위해 해 주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고는 아무도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아빠를 비롯해서 국가와 사회를 전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국가와 사회가 그동안 못 했으면 잘 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데, 그냥 아예 보이콧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당혹스럽다. 설득도 안 되고.. 이들의 결론은 결국 죽도록 열심히 해서 자신의 삶을 자신이 지키는 것이다.

 

이제 현대차 이야기. 현대자동차의 정규직 노조는 자신의 자식들이 현대차 입사 지원할 경우 우선권을 주는 단체협약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사측과의 협상에서 이 항목이 얼마나 중요한 카드일지 통과는 될지에 대해 나는 전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의 운동을 폄하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차 정규직의 행동이 운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차 정규직 노조의 자식 걱정은 사회와 운동을 믿지 않는, 그래서 공공성을 포기한 개인들이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군 게 맞다. 이것은 내가 함께 지향하고 연대하고 지지해야 할 운동은 아니다.

 

자본가에게 향해야 할 화살이 상대적 특권층에 향한다는 깰뱅이님의 글을 읽었다. 자본가랑 아무 상관 없다. 나는 자본가들에게 좀더 사회를 생각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운동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들의 주장에서 공공성을 기대한다. 현차 정규직의 행동에는 어떤 공공성이 있는가? 특히 작년부터 뉴스를 통해 접한 현차 비정규직 투쟁에서 정규직들이 담당한 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는 안 해도 자기 자식은 비정규직 안 시키겠다는.

 

사회가 불안해질수록 개인들이 자기 한 몸 보전하는 데에 급급할 수 있다. 이것을 그냥 보수화된다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꼭 모든 사람들이 보수화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의문을 느끼고 학생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사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일도 있다. 그들의 차이가 뭘까? 아직까진 모르겠다.

 

별도로, 비정규직 투쟁을 외면하고 가로막아 온 현차 정규직이 자녀 우선권을 가지고 이기적으로 굴었다, 이렇게 말고도, 일반적으로 노동 조합에서 자녀 우선 채용 특권을 주장하는 것이 잘 이해가 안 간다. 이것이 기존에 노동 운동의 내용이었다는 점이 이해가 안 간다. 공정한 경쟁을 하라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고, 이 불안정한 사회에, 귀족노동자 따위가 아니더라도, 어쨌든 그 직업이 좋은 직업이니까 자식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싶다, 이런 얘기라고 생각이 된다. 그런 것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이익을 고려한 것이라거나 전술/전략상의 주장일 뿐이다 라면 그 근거가 궁금하다. 이 문단만큼은 궁금증임.

 

그러나 나는 민주 노조 운동의 향방을 암울하게 보지도 않고 현차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하길, 연대가 아니라 자신의 투쟁이 되길 진짜로 먼 데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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