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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제닌

category 팔레스타인, MENA 2017/08/20 19:25

친구 파디와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요르단 계곡에서 2시간 기다린 끝에 잘못 탄 버스에서 대책 없이 내려버렸을 때,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서 차에 태워줬다. 알칼릴(헤브론)에 데려다 준 뒤에도 자주 전화를 걸고 만나자고 했다. 그땐 혼자였어서, 그리고 워낙 찝적거리는 남자들이 많아서, 파디도 그 중 하나일까 경계하면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돈 1원도 못 쓰게 해서 더 미심쩍었다-_-. 매일 같이 짧은 통화를 하던 어느날 이스라엘 심카드를 사용하느라 이틀간 팔레스타인 심카드를 사용하지 않다가 바꿔 끼운 날, 전화 온 파디는 엄청 성을 내며 왜 연락이 안 됐느냐고, 연락이 되었으니 이제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계심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일행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야 같이 제닌에 파디네 집을 방문했는데, 파디의 부인과 아이들, 엄마, 동생들, 동생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안심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파디와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가 있어서 안심했고, 페이스북에서 당연히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번호는 바뀌었고 페북에선 못 찾았다. 나중에 다시 방문했을 때, 그때 기억을 더듬어 파디가 일하던 회사로 찾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햄버거집에 데려다 놓고, 밥시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무래도 여기 어딘데, 하고 나가서 찾아봤다. 한 번 가봤을 뿐이고 따라다니기만 해서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용케도 찾아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우지 않을 길이 없었따< 사무실에 가서 파디를 찾아왔다고 하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 했다. 당시에는 파디 패밀리 네임도 몰랐다... -_- 그래서 아이들 탈라랑 아흐메드 아빠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아! 하고 연락해 줬다. 근처 시장에서 휴대폰 액세서리 노점을 하고 있던 파디는 한 걸음에 달려왔다. 같이 식당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나의 천재적 기억력을 내가 제일 열심히 찬양하고, 그리고 파디네 집에 두 번 갔다. 하지만 처음도 두번째도, 파디가 원하는 건 좀더 많은 시간을 자기 가족들과 같이 하는 거였다. 초대 전화가 올 때마다 나는 여기 일하러 온 거라고, 미안하다고 거절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세상 나만 바쁜 것처럼 매일 일정이 있다고.. 그래서 다음에 오면 무조건 놀러오겠다고, 그때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페친도 맺었따 ㅎ

 

파디하고는 팔레스타인에 있을 때 전화통화를 하곤 했지만, 가족들과 만난 건 몇 회 되지 않아서, 가족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구성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이전에 만났다고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고 지난 번에 왔던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물었다. 돌아와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막내 동생 남편도 왔었네 처음 본 줄 알았는데 ㅎ 지난 번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여동생 남편이 셰프라고 여동생네 집으로 초대해, 그 남편과 남편의 동생;이 차려주는 엄청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 여동생이 6개월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너무 젊은데, 어린 자식들 남겨두고... 이번에 가니 자식 중 둘째 아들 와라드는 외할머니, 그니까 파디네 엄마 댁에 살고 있었다. 와라드는 수많은 어린이들 중 하나로 기억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자길 기억 못 하는 걸 알았는지, 머리끈 같은 팔찌를 4개 주며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ㅎㅎㅎㅎ 귀여워 ㅠㅠㅠㅠ 이번에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와라드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네 ㅎㅎ

 

동생의 죽음 외에도 파디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고용 허가증을 사려다 사기를 당하고, 허가증 없이 일하다 밤에 숙소에 기습한 경찰에 붙들려 한 달간 실형을 살았다. 한국일보 기사에 썼던 것처럼 한동안 택배 기사였는데,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로 내가 있는 동안 관뒀다. 그리곤 중고샵을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야채 가게로 바꿀 거라더니 페이스북 보니까 가게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집주인이 갑작스레 1달 안으로 집을 비우라고 해서 이사까지 했다. 그래서 전처럼 전화가 자주 오지 않았고,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게 정말 마음 아팠다. 항상 내가 바빴는데 이번엔 너가 바쁘네, 그랬더니 그러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서안지구 들어가기 전에 페이스북 메세지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메세지 확인을 잘 안 하고, 내가 제닌에 간다는 것도 확인을 안 하고 있었다. 제닌에 들어가서 전화했을 때, "야핑!!!!!!!" 하고 엄청 반가워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택배 차량을 타고 숙소 앞에 와서는, 시간이 없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얘기하자고 했고 자세한 건 기사에 썼다.

 

파디가 바빠서 엄마나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사실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같이 놀 수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파디 가족들이랑만 있으면 불편했다. 그래서 여럿이 방문하는 게 좋은데 이번엔 몇 번 봐서 그런가 애기들이랑 친해졌다. 특히 엄청 너 따위엔 노관심이다 ㅎㅎ 라고 보이는 오마르... 파디 동생 히바네 둘째 아들램.. 역시 기억 못 하고 있었는데; 돌아와서 옛날 사진 보니까 생각났다 ㅎ 사진 찍을 때 엄청 움직이던 애기. 암튼 오마르네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오마르하고도 친해졌다! 얼마나 친해졌냐면, 밤에 다 같이 모여자는 방에 자기 옆자리를 톡 톡 치며 옆에서 자라고 할 정도였다!! 완전 넘나 기뻤지만 잠은 손님에게 마련해 주신 에어컨 나오는 방에 가서 자버림...< 전날 더워서 거의 한숨도 못 잔 상태라서 =ㅅ= 다음날 "보고싶을 거야"하고 인사하는데, 내 아랍어 발음이 구려서 못 알아듣고는 자기 엄마를 데려왔다. 뭐라는 거야? 다시 말해 봐;;; 해서 엄마가 니가 보고싶을 거래, 지금 갈 거야, 라고 말해주니 갑자기 완전 시무룩해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갈게 보고 싶을 거야, 그러면서 인사 뽀뽀를 하려는데 땅만 쳐다보면서 가만히 앉아서 양볼에 뽀뽀를 받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으윽 찌통 ㅠㅠㅠㅠ 뽀뽀하는데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동생 함무디한테 뽀뽀하려는뎈ㅋㅋㅋㅋㅋ 애기가 끝까지 뽀뽀 못 하게 으으으 하면서 뒤로 피하는 거 보고 웃겨서 눈물 쏙 들어감ㅋㅋㅋㅋ 함무디하고는 못 친해짐 옛날에 같이 사진도 찍은 사이라서 함무디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ㅅ-

 

돌아오기 전 라말라에 지내면서, 파디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파디가 "뭐 필요한 거 있어? 뭐 해줄까?" 하고 묻는데 내가 또 깔깔 웃어버렸다. 파디는, 근데 왜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웃는 거야? 하고 물어왔다. 그냥 맨날 물어보는 게 너무 웃겨서, 하고 대답했던가. 모르겠다, 항상 정말로 뭐라도 내가 말하면 그게 뭐든 해 줄 것 같아서 웃긴 건데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파디는 진지한 남자라서 -ㅅ-;

 

벤구리온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파디와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공항이라니깐 한국이냐고, 해서 아니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했더니 네가 팔레스타인에 있지 않으니 이젠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수가 없구나, 하고 답장이 왔다. 이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 메세지를 보고서 공항부터 뱅기 타서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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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 19:25 2017/08/20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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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꾸스, 팔레스타인 소년

category 팔레스타인, MENA 2017/06/15 23:04

나는 아직도 아랍어를 못 한다.

어찌된 일인지 한참 열심히 하다가, 오기 전엔 완전 손놓고 있었다. 매일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X일이면 배운 거 다 복습하고 갈 수 있어' 하고 매일 하루씩 줄어드는 디데이를 세며-_- 그 안에 이케이케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계산하다 영원히 안 했다. 그래서 다시 아랍어 더듬더듬 몇 마디 건네고, 상대가 너 아랍어 할 수 있어? 하고 물으면 아니...; 라고 대답하는 발전 1도 없는 상태로 팔레스타인에 다시 온 것이다. 넘 아쉬웡...

 

팔레스타인에 몇 번 왔지만 이스라엘 쪽에는 이동을 위해서, 혹은 특정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면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즉 48년 팔레스타인(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들어선 땅) 쪽 얘기는 다음에 자세히 적겠지만, 거기 있다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들어오니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 ㅎ 국경을 넘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랫동안 그리던 친구를 만나 친구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시골길에 친구가 차를 세우고 '파꾸스'를 사주겠댄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로변에 점점이 과일 행상들이 많았는데, 그 중 소년 몇 명의 행상 앞에 섰다. 아랍어로 친구가 뭐라고 얘기하는데 '남한에서 왔다'고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 들렸다 -ㅅ- 아마 남한에서 온 내 친구한테 파꾸스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이었을 거다. '남한'이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소년이 "아흘란 와 싸흘란(반갑다, 환영한다)" 해줬다. 후다닥 행상으로 돌아간  소년이 파꾸스란 걸 잔뜩 가져왔다. 가지고 있던 생수로 친구가 파꾸스를 씻더니 바로 먹어보란다. 딱 봐도 오인데 씹어보니 오이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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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먹나 눈을 반짝거리며+_+ 쳐다보던 소년한테 아~ 이거 한국에도 있다니까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황급하게 한국 오이보다 맛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살짝 단 맛이 나고 연해서 오이보단 맛있는데 여튼 오이였다; 그리고 둘이 뭔 대화를 짧게 나누더니 인사하고 소년이 사라지고 차가 출발했다. 읭? 너 돈 안 냈는데? 하니까 한국에서 왔으니까 선물로 준 거라고 한다. 아놔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막 났다. 타고 이동하는 내내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몰래 우느라 혼났네 아니 나는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어버버 거리는데 차는 이미 저만치 가버렸고.. 아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야핑????!!!!!!!!" 존나 반겨주고 ㅋㅋ 넘 좋다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밥먹고 똥싸고 돈 쓰는 것도 죄책감 느끼고 불편했는데 완전 팔레스타인 너무 좋쟈나.. 물론 길거리 성추행 좀 당하다 보면 아오 썅!!! 지랄 발광을 떨겠지(나)만 아직 나중 일이길 (기원합니다) 어디 짱박혀서 아랍어 수업 받고 싶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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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5 23:04 2017/06/1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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