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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시작한 지 꽤 됐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거의 읽지 못 하고 있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라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책읽기, 영화보기보다, 뉴스나 소셜 미디어 보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아니면 활동과 관련된 책들을 읽어야 하거나.
또 오랜만에 책을 펼쳐서 몇 페이지만에 또 감수성이 온통 흔들렸다 -_- 이 책 읽을 때마다 정신을 주체를 못 하겠어 당최 아놔... 아름다운 문장에 빠져들어가면서, 잘 그려지지 않는 프랑스 거리를 상상하면서, 그 가느다랗고 위태위태한 무른 감수성을 더듬으면서, 동시에 내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것들, 오랫동안 잊고 지낸 것들이 막 떠오르는 거다 머릿속이 완전 이게 뭥미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뭔가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나는 결코 이런 어린이는 아니었다. 섬세함 쪽과는 전혀 거리가 먼 어린이였다. 하지만 그... 꼭 이 소설의 화자랑 비슷한 경험도 아닌데도, 내가 어릴 때 사건을 냄새로 기억하던 것, 그래서 십대 때 간혹 이건 전에 겪은 어떤 냄새더라, 하고 기억을 뒤지던 일, 고모네 집에 가는 길을 외운 뒤 세상의 길을 모두 아는 줄 알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교회 뒷편의 공터를 친구들을 따라 걸으며 내가 모르는 길이 있었다니, 세상에 내가 모르는 길이 더 있을 거라니, 하고 펼쳐진 공터와 함께 화악 와닿았던 거, 아주 어릴 때 놀아주던 옆집 고등학생 선혜 언니가 세상에서 제일 크다고 생각했던 기억, 그래서 언니를 누켜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내 양팔로 재면서 감탄했던 기억, 언니가 앞집 화단에서 봉선화 나무 한 뿌리를 뽑아올 때의 두려움과 설레임, 집 대문에 엄지 손가락이 찡겼던 거나 언니 친구네 집에서 혼자 그 언니를 기다리며 놀다가 호치케스에 손가락을 찍혔는데, 우리 집이라면 울고 난리를 쳤을텐데 남의 집이라서 얌전히 돌아왔던 기억, 그런 냄새들이 정확하지 않게... 그러니까 나는 대부분의 냄새들은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는데, 그래서 나는 그런 건 다 끝났다고 잊고 있었는데, 나를 그런 시절로, 그런 시절을 냄새로 회상하던 시절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 기억때문에 독서가 방해받는 건 아니다. 가끔 책읽기를 멈추고 내 기억을 더듬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독서 체험은 전에 없던 것이라서 여전히 당혹스럽다. 책을 읽을 때마다 감수성이 온통, 진짜 작가가 내 영혼을 손에 쥐고 흔드는 것만 같다 -_-
그러다 정현종의 '견딜 수 없네'가 떠올랐다. 아아.... 견딜 수가 없어 이거 한 가득 안고 빨리 자야지
갈수록, 일월(日月)이여,
내 마음이 더 여리어져
가는 8월을 견딜 수 없네.
9월도 시월도
견딜 수 없네
흘러가는 것들을
견딜 수 없네
사람의 일들
변화와 아픔들을
견딜 수 없네.
있다가 없는 것
보이다 안 보이는 것
견딜 수 없네.
시간을 견딜 수 없네.
시간의 모든 흔적들
그림자들
견딜 수 없네.
모든 흔적은 상흔(傷痕)이니
흐르고 변하는 것들이여
아프고 아픈 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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