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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은퇴서

  • 등록일
    2011/12/15 12:01
  • 수정일
    2011/12/15 12:01
  • 분류
    출근일기

"나는 이제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가 세계대공황을 딛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고생 많았습니다. 일동 민중의롓-"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떠올라서 써봤다. 그 말 너무 웃김; 자연인이 아닌 기간을 부르는 통일된 용어도 있나?

 

서약서는 써본 적이 있는데, 팔레스타인 갈 때 내가 죽어도 팔연대나 진보넷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ㄱ-;; 죽은 뒤 유족들이 엄한 곳에 소송걸거나 할까봐 미연에 방지하는 거임 나중에 갈 때도 또 쓰겠디 ㄷㄷ 내가 죽어도 내 책임이다 ㅇ<-< 이런 내용으로

 

활동하다가 그만 두는 사람은 많은데 공식적인 은퇴란 건 없는 것 같다. 어느 단위에서 활동을 그만 두게 되면 나름 비/공식이든 우야동간에< 평가서를 쓰기도 하는데 아예 그만둘 때는... 개인적 소회를 적은 것도 본 적이 없네 그런 건 있을 것 같지만.

 

나도 예비 은퇴자로서... 나는 직업활동가를 그만두고 5년 내에 만화출판사를 꾸리겠다는 부푼 꿈에 젖어 있지만 해가 바뀌고 2년이 가고 3년이 가도 맨날 5년 뒤네..... 아니 오년 뒤에서 오년 내로 바뀌었다 =ㅅ=;; 아 맞아 내가 자주 쓰는 말이 있구나, 대중이란 말도 일반인이란 말도-_- 다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일반인이란 말은 오덕 쪽에서 자주 쓰는 말인데 이젠 누구나 아는 "일코"같은 거(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거기서 전해진 말인듯 암튼 난 생활인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하지만 직업활동가를 그만 둔다고 해서 활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나중에 은퇴서 써야지 ㅋㅋㅋㅋ

 

돈 벌어야 해서 활동 그만 두는 사람들 보면 너무 너무 슬프고 괴로워. 빨리 돈을 많이 벌어서 막 나눠줘야지< 퀴즈프로그램에 나가라니까 활동가들... 똑똑하잖아-_- 1억씩 벌어오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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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등록일
    2011/09/23 15:08
  • 수정일
    2011/09/29 10:07
  • 분류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 이소선, 여든의 기억


오도엽
후마니타스, 2008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 다이나믹할 수 있다니. 단순히 고생했다 정도가 아니고 정말 다이나믹한 삶이다. 현실의 독백과 과거를 넘나드는 책의 구성이 한 몫하기도 했지만, 삶 자체가 굉장하다.

 

특히 첩보물을 보는 듯한 대담한 순발력들. 장기푠가 하는 사람을 대담하게 경찰 앞에서 택시 태워 보내는 일이나 장준하 씨 살해당한 뒤 동네 사람 코스프레하고 집안에 들어간 거, 간호복 입고 병원 탈출한 거, 어머니인 척 구로에서 분신하신 분의 병원 면회를 간 거 등등. 소설에서만 보던 삶이었다. 막 내가 떨렸긔

 

너무 귀여워서 빵 터진 때도 많았는데... 일단 현재시점에서 글쓴이랑 알콩달콩하는 모습이나, 함석헌 씨 첨 봤을 때 예수님인 줄 알았다고 묘사한 거 ㅋㅋㅋㅋ 빵터졌음 귀여워;;;; 남의 종교라서 웃으면 안 되는 건가...-ㅅ-;;

 

그런데 전태일 씨의 죽음과 그 이후의 고된 투쟁... 엄청난 비극과 고통을 겪었는데도, 더 옛날, 지긋지긋하게 가난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더 두려워하였다. 젊은 날의 고생은 글로 읽어도 잘 상상이 안 되었다. 특히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 때.. 돈을 벌러 서울로 가고, 각자 서울에서 하나 둘씩 만나지만 돈이 생길 때까지 각자 지내야 하고... 그런 상황을 이소선씨 뿐 아니라 많은 한국인이 겪었다니, 뭔가 보수적인 노인들이 처음으로 이해가 간다.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죽을 고생을 한 사람들.

 

전태일 평전을 못 읽을 만큼... 펼쳐보기만 해도 서너흘을 앓을 만큼 그런 고통도 난 모르겠다.. 몇 십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 그 고통 상상이 안 된다. 신이고 사후세계고 그런 건 없다는 강한 확신을 가졌는데도, 저승에서 아드님이랑 만나셨으면 좋겠다. 꿈에서 활동을 독려해주던 그 아드님... 어휴....... 너무 슬프다 책을 다들 읽어보라구!!!! 슬퍼 너무너무 슬퍼ㅜㅜㅜㅜㅜㅜㅜㅜ

 

전태일 열사라고 하지 말고 동지라고 해달라고 하시던데..

 

책으로 본 이소선 씨는 굳이 노동자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인간적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소선 어머니라는 명칭이 이해가 갔다. 많은 활동가를 만나 봤지만 이런 사람은 못 봤다. 그것이 꼭 아들 베이스로 활동을 시작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내가 우리 엄마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것, 자기 자식에게만 보여줄 수 있는 태도, 그런 태도로 모든 사람을 대하신 것 같다. 누구나 비극을 품고 산다.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쉬지 않고, 희생적으로, 끝없이 올바르게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끔찍하게 위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을 믿고 사랑하고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 사람. 실제로 그 마음을 접했다면 절로 어머니 소리가 나올 듯...; 책으로 만난 사람 중에 제일 매력적이었다. 그런 넓은 인류애라니...!!!!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소선씨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아주 옛날에 잠깐 전태일기념사업회에 자원활동 하러 갔는데, 녹취랑 이소선씨에 대한 소책자 타이핑을 하다가, 녹취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갔었다; 소책자는 거의 다 타이핑했는데도, 녹취를 1분도 못 해서, 그냥 도망갔다-_- 단체 분이랑 마지막으로 연락됐을 때 한 데까지만이라도 보내달라고 하셨는데 녹취를 1분도 못 했다는 게 부끄러워서 그냥 잠수탔다-ㅅ- 나에게도 이런 과거가 있따...;

 

아참 위키피디아에 [[이소선]] 항목 내용이 없어서 전태일 항목으로 바로 넘어간다. 누가 작성 좀... 아니면 내가 조만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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