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등록일
    2004/09/01 21:57
  • 수정일
    2004/09/01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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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내가 죽였소! 그가 나의 아버지라고? 흥, 그는 단지 야후일 뿐이오. 물론 당신도 야후지. 어떻게 죽였느냐고? 이미 보지 않았소? 좋소. 당신이 알고 싶은 모든 걸 다 얘기해 줄테니 미안하지만 좀 떨어져 앉아 주겠소? 당신한테서 나는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으니.
 그래, 대체 뭘 알고 싶은 것이오? 살해 동기? 글세. 나도 그건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우린 식사 중이었을 것이오. 아, 당신도 알겠지만 그는 꽤나 미쳐 있었소. 아마도 그가 집에 돌아온 이후로 5년만에 최초로 함께한 식탁일 것이오. 그는 연신 인상을 쓰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이 짜증났던 것같소. 들고 있던 나이프로 그의 목을 세 차례 찍어내렸소. 왜 그랬느냐고? 글세, 단지 짜증이 좀 났었다니까. 충동적인 행동이었던 것 같은데, 음-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오. 그가 인상을 쓰고 있었단 것 외에는 잘 모르겠소. 그의 목을 찌르니 그는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소. 나는 그를 올라타고 그의 얼굴을 되는대로 마구 찔렀는데 나이프가 잘 들지 않아 깊히 박히진 않고 얼굴에 상처만 내더군. 그래서 칼로 그어 버렸지. 어깨를 그으니 어깨가 오려지더군. 왼쪽 쇄골뼈 밑을 깊숙히 찔러 반대쪽으로 그었소. 물론 나이프가 들지 않아 여전히 애를 먹긴 했소만은. 겨드랑이부터 허리를 찢는데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소. 잠시 미안한 생각이 들어 숨통을 확실히 끊어버릴까 하다가 그를 더 찔러 그의 가죽에 상처를 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거든. 계속 껍질을 벗겼지. 그 때 그 껍질로 무얼 하려는 건 아니었소. 그냥 껍질을 벗기다 보니 장인 정신이 생기던데. 정성껏 오렸지만 쓸만한 껍질은 배와 등 뿐이었소. 한참 오리다가 문뜩 고개를 들어 보니, 꽥꽥 소리를 지르던 어머니와 동생들은 보이질 않았소. 이미 당신들을 부르러 갔던 모양이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다가 가죽으로 배를 만들어 멀리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래서 집안의 야후들을 찾기 시작했소. 시간이 얼마나 지난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군. 그들을 찾으려 돌아다니는데 당신들과 그들이 함께 나타났소. 분명히 말하건대 난 가죽이 필요했을 뿐이오. 그것이 어머니에게 달려든 이유라고. 당신들만 가만히 있었어도 난 우리집 야후들로 멋진 배를 만들 수 있었을텐데.
 내 얘기는 이게 끝이오. 당신도 알다시피 난 도망갈 의사가 없었소. 지금도 없고. 그러니 제발 부탁컨대 저리 좀 가주시오. 역겨운 냄새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니 말이오.

 

200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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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헉 다시 읽기 싫다 이것도 남겨둔 데가 없어서 할 수 없이 크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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