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 등록일
    2009/08/27 15:46
  • 수정일
    2009/08/27 15:46
  • 분류
    추억팔이

중학교 때는 서태지에게 영혼도 나눠줄 만큼 빠순이였고

횟집 주방장 아저씨를 사모해서 싫어하는 버스를 한 시간씩 타고 매일 얘기하러 가기도 했는데

그래도 첫사랑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ㅈㅎ 언니라고 생각된다.

 

별로 미녀는 아니었는데

그 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다리가 길고,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완벽히 들어맞았다.

 

노래할 때 마이크를 먹는 걸 보고 항상 마이크 먹지 마세요.. 그랬었다

막차를 타기 위해 합주실을 나서면서 노래하는 언니에게 입으로 뻥긋뻥긋 '먹지 마세요'

 

다리가 길어서 청바지를 입으면 캐간지났다

 

갑자기 생각나네 캐간지 개미녀 개이뻐

 

개이뻐

(출처 :맵더소울)

 

나름 학교에서 스타였는데 나는 몰랐다. 언니는 내 얼굴이 익숙하다고 했따. 점심먹고 운동장 도는 풍습이 학교에 있었는데 운동장에서 본 거 같다고...; 자기가 계주 우승했었다고 못봤냐고도 했다. 근데 전혀 몰랐다

 

같이 마니또를 하는데, 나는 언니를 집으려고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근데 언니는 우연히 나를 집었다. 그래서 서로 마니또가 되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그 언니의 1년 학교 생활 내내 아침의 쥬스를 매일같이 사다 바쳤다.

 

상명하복이 엄격하던 고딩 시절, 부조리하게 혼내길래  대들었다가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었다. 울면서 전화로 사과했는데 사과는 정말이지...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좋아하니까 사과하는 거지 잘못했단 맴이 초큼도 안 들었다

 

언니가 졸업하고 한참 지난 어느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밖에 지나가는 언니를 봤다. 창문을 열고 ㅈㅎ 언니! 하고 불렀다. 언니는 돌아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릴까 어쩔까 맹렬히 고민했는데, 내린 것도 같고 안 내린 것도 같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참 맹렬히 좋아했는데, 연애에 대한 가능성을 꿈꾼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전혀, 전혀 없어서 맹렬히 좋아했다. 편지도 100통 넘게 썼는데-_-;; 고삼한테 무슨 짓이야; 내 편지가 재밌다고 그래서 미친듯이 썼던 거지 고삼이라고 해도 뭐 대학은 안 갔으니까...;

 

아마 그때 핸드폰이 있었다면 계속 연락하다가, 적당히 연락이 끊겼겠지. 그럼 강한 추억이 아니라 생각나도 데면데면한 관계가 됐을지도. 지금도 전철을 탈 때, 거리를 걸을 때, 혹시 저 사람인가 꼭 돌아보게 된다.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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