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는 거다

  • 등록일
    2012/04/25 12:27
  • 수정일
    2012/04/25 12:27
  • 분류
    마우스일기

아침에 출근하는데 이미 늦었는데 아빠가 컴퓨터에 뭐 좀 깔아달란다. 버럭! 짜증을 냈더니 미안해서 한참을 다 봐줬다;;; 다른 문제로 화해도 안 한 상태인데.. 아빠는 화해고 자시고 관심도 없는 듯-_-

 

예전에 아빠가 주식을 했었는데 그 때 돈을 좀 따서 햄볶해 하다가 돈을 왕창 잃고 실의에 빠져서 다시는 주식은 안 한다고 선언했다. 그게 몇 년 전 일이라고, 다시 주식을 시작하는데 뭐 그런 전용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까는 거였다. 어찌나 복잡한지 이미 매뉴얼을 받아서 설명을 다 듣고 왔는데도 버벅버벅대다가 마침 출근하는 나에게 수줍게 이것 좀 봐달라고... 근데 내가 버럭!! 아직도 미안하네..;;

 

아빠는 작년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왕창 왕창 망하고 있다. 그 돈을 나에게 유학비로 달라교 아오... 앉은 자리에서 돈을 까먹자니 얼마나 속이 쓰릴까? 예전에도 나는 그냥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인생을 즐기시라고 조언(같지도 않은 걸) 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일을 안 할 수가 없는데, 하나는 앞으로 세상이 어찔 될지 모르는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불안감, 일하지 않는 인간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불안감 두 개 때문이다.

 

주변에서 가까이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중산층인 우리 아빠. 얼마나 일반화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여유로운 아빠가 이렇게 불안감을 느끼는 게 흥미롭고 안타까우면서 다른 중산층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생각하면 이게 진짜 뭐 하고 사는 건지. 싶다가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면 이게 사는 거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 불안감을 가지고 유한한 인생을 살아가는... 갑자기 이상한 결말.

 

암튼 그 프로그램은 나중에 한 번 봐야겠다. 인터페이스가 너무너무 복잡해서 아빠한테 대충 알려주고 나왔는데, 그렇게 메뉴가 많고 항목이 많고 복잡할 수밖에 없는 주식 거래... 복잡한 인터페이스가 말해주는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같지도 않게 감상적<). 백수 시절에 마루에서 컴퓨터를 하면서 아빠가 주식 방송 보는 걸 들으면, 뉴스에서 잘 다뤄주지도 않는 팔레스타인에 감도는 침략(전쟁) 분위기나 기후 변화에 관한 것 등 굉장히 디테일한 소식을 전하더라. 그 때 아 이걸 놓치면 안 되겠구나 공부해야겠구나 했는데 실제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데 앞으로 전개할 팔레스타인 관련 캠페인 때문에 주식 쪽을 한 번 봐야겠구나 다시 생각이 든다. 관심도 없지만 진짜 일반적인 상식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주주들은 뭔지, 주주들을 우리 활동이 움직일 수 있는 건지 뭔가 알아봐야겠규...

 

근데 나이든 사람은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진짜 한국 소프트웨어들 너무 해. 시키는대로 다 해도 안 된다. 내용을 읽어봐야 하는데 글씨가 너무 작다. 아빠가 안경을 끼고 천천히 에러 메세지를 읽는 걸 보면 안타깝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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